에스텔이 집을 나온 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다행스럽게도 그동안 사도야행과 관련된 사건은 겪지 않았다.
본래라면 꿀 같은 휴일이었을 시간.
보어헤스 백작과의 결투라는 큰 사건을 겪은 뒤였던 만큼, 내게는 휴가가 정말로 필요했다.
하나 유감스럽게도 휴식이라는 달콤한 과실은 내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원인은 다름 아닌 에스텔의 거취.
현실이라는 지고의 적이 나와 에스텔을 위협했다.
소여 백작가라는 든든한 우리를 떠난 이상, 에스텔은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삶을 구가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 필수적인 것은 주거지와 직장.
‘그나마 집은 어렵지 않게 구했지.’
귀족들이 사는 지역을 제외하면, 카다스에는 빈집이 넘쳐날 정도로 많았다. 도시 인구와 비교했을 때 제법 많은 마법사 길드가 모여있을뿐더러, 사도야행을 비롯한 여러 사건으로 원인 불명의 사망자가 충실히 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에 하루 정도 발품을 팔자 그럭저럭 살만한 집을 구할 수 있었다. 조금 치안이 나쁜 구역에 자리해 있긴 하지만, 에스텔의 실력을 생각하면 그리 위험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일자리를 구하기는 영 쉽지 않았다.
닷새.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에스텔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마도기사로서 에스텔의 실력은 최상급. 이런 그녀의 실력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처음에는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길드 뒷골목에서 면접관들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원인을 파악할 수 있었다.
현재 마법사들 사이에는 에스텔에 대해 묘한 소문이 퍼져 있었다.
보어헤스 백작과의 결혼식 당일, 암살자를 고용해 신랑을 중태에 빠뜨리고 도망친 소여 가문의 문제아.
그것이 세간에 알려진 에스텔의 평가.
사도야행에 대한 사실을 감추기 위해 4대 가문이 힘을 쓰긴 한 모양이지만, 굳이 에스텔의 평판까지 신경 쓸 생각은 없었나 보다.
이 상태로는 어떤 곳에서도 일할 수 없을 터. 결국, 내가 매달릴 수 있는 곳은 한 곳뿐이었다.
“한 번만 도와주세요!”
나는 그날 오랜만에 우리 길드 마스터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물론 그 정도로 쉽게 해결될 일은 없을 터. 길드 마스터와 나의 피 말리는 협상 끝에 에스텔은 심부름꾼 길드의 말단으로 가입할 수 있었다.
정해진 사수는 당연히 나.
그리고 오늘, 나와 에스텔은 처음으로 의뢰에 나섰다.
처음으로 받은 의뢰는 솔직히 말하면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다.
빈민가에 있는 보육원 업무 보조.
돈도 안 되고 힘이 드는, 심부름꾼 길드원들도 꺼리는 의뢰다. 길드 마스터 역시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가뜩이나 바닥인 심부름꾼 길드의 평판을 위해 억지로 받는 수준이니 말 다 한 것이다.
예전의 나라면 적당한 후배에게 미루고 도망쳤겠지. 하지만 휴가를 원하는 나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최선의 임무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애들이랑 놀아주며 느긋하게 보낼 수 있을 터. 사도야행과 관련된 사건 같은 건 일어날 리가 없을 터다.
그렇게 작은 희망을 품고 보육원으로 향했건만…….
“이게 무슨……?!”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나는 필사적으로 내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을 부정하고자 노력했다.
꿀과 같던 나의 휴가를 박살 낸 원인은 보육원생 중 하나가 그린 그림.
딱히 대단한 예술적 가치가 있는 건 아니다. 실력만 보면 그냥 그 나이 또래가 그린 낙서 수준에 불과하다.
문제는 아이가 그린 대상.
“너, 너 이게 뭔지 아니?”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이에게 그것의 정체를 물었고.
“천사!”
아이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큰소리로 내게 대답했다.
‘천사?’
그럴 리가 없잖아.
아이가 조잘조잘 떠드는 것을 한 귀로 흘리면서 나는 그림에 그려진 대상을 노려보았다.
저건 절대로 천사 따위가 아니다.
신의 뜻을 받드는 존재라는 건 같지만, 결코 그런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대상이 아니다.
저것은 사도.
옛 군주라는 사신(邪神)의 뜻을 받아, 사도야행이라는 무대에서 죽고 죽이는 살육전을 펼치는 존재.
절대다수의 귀족들조차 모르는 존재를 이 아이가 본 적이 있다고? 빈민가 보육원의 고아가?
‘혹시 사도야행에 관계자인가?’
나름대로 그럴싸한 추론이라고 생각했건만, 유감스럽게도 이 가정은 빛보다 빨리 부정되었다.
“응, 이거 천사 그림이네.”
“천사님 보고 싶다~.”
근처에 몰려든 다른 아이들은 그림을 보며 한 마디씩 덧붙였다.
말하는 내용이 제각각. 하지만 그 안에는 공통적인 내용이 들어가 있었다.
사도, 저 아이들의 말에 따르면 ‘천사’는 이들에게 굉장히 친숙한 대상이다.
‘거짓말이지?’
이런 가난한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 전부 사도를 본 적이 있다고?
“저기 천사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려주지 않을래?”
알아봐야만 한다.
사도는 살아있는 재앙. 아무리 친절한 존재라도 만약을 위해 대비할 필요가 있다.
두서없이 이어지는 아이들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머릿속으로 계획을 세워나갔다.
?
*** ***
?
보육원의 아이들과 놀아주면서도 에스텔은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녀의 고민이 향하는 것은 한 가지 단순한 문제.
충동 조절.
그녀는 최근 그것에 굉장한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현상이 시작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처음 그녀가 이 상태를 인지한 것은 소여 백작 저택의 문을 나서 그레고르를 만났을 때. 당시 그녀는 평생 느껴본 적이 없던 기묘한 충동을 느꼈다.
눈앞에 이 남자가 부끄러워하는 것을 보고 싶다.
그레고르가 뺨을 붉히고 귀엽게 반응했으면 좋겠다.
어린애처럼 단순하면서 격렬한 충동. 그 유혹에 넘어간 에스텔은 본래의 그녀라면 절대 뱉지 않을 말을 입에 담았다.
‘어떻게 된 거지?’
상황을 파악하고 급하게 대화를 끊었지만, 이미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는 법.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에스텔은 서둘러 걸음을 옮겼었다.
그래도 당시에는 상황을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저 긴장이 풀려서 이럴 것이다.
오래지 않아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다.
그렇게 속으로 몇 번이나 말하며 몸에 생긴 이상을 무시했다.
하지만 같은 일은 몇 번이나 일어났고, 그녀는 결국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녀에게는 명백히 문제가 있었다.
‘병인가?’
처음에는 그 가능성을 떠올렸다.
하지만 몰래 찾아간 치유술사의 소견에 따르면, 그녀의 몸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된 거지?’
어째서 충동을 조절할 수 없는 걸까?
반복되는 상담. 그 끝에 치유술사는 한 가지 사실을 알려줬다.
“음, 그런데 저주가 해제된 흔적이 있네요.”
그 말을 듣자마자 에스텔은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제드 소여. 현 소여 백작이자 그녀의 아버지.
그는 저주로 가문을 통제했고, 에스텔 역시 그의 손안에서 놀아났다. 그녀는 아버지의 뜻에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고, 그 때문에 그레고르는 보어헤스 백작과 결투를 해야만 했다.
단순히 명령에 복종하게 만드는 저주라고 생각했건만. 그 외에도 숨겨진 기능이 있었던 모양.
충동의 조절.
만에 하나라도 에스텔이 다른 길을 가지 못하도록 제어하는 족쇄.
그 족쇄에 의해 에스텔은 몇 가지 충동을 철저히 거세당한 채로 살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은 장난기와 연애 감정.
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그 충동들은 지금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융합 변이 때문인가…….’
저주가 해제된 원인을 찾던 에스텔은 오래지 않아 이를 찾아낼 수 있었다.
고유 권능 융합 변이.
다른 존재와 융합해 더욱 강대한 존재로 변신하는 그레고르의 능력.
그 힘을 이용해 에스텔은 한순간이나마 그레고르와 한 몸이 되었다.
이는 다시 말하자면 에스텔 역시 사도나 마찬가지였다는 사실.
인간과는 격이 다른 존재인 만큼, 사도에게 평범한 저주는 통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에스텔에게 걸린 저주 역시 이때 사라진 것일 터.
“휴우.”
자유의 몸이 된 것은 좋았지만, 예상외의 부작용이라니.
입에서 자연스럽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나마 조금 나아진 건가?’
지난 며칠 간의 고생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문제를 인식한 이상 고쳐야 할 터.
비록 가문을 나왔다고는 하지만 그녀는 무인. 어지간한 충동쯤은 명상으로 쉽게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도 역시 한계는 있었다.
‘이건 대체 무슨 감정이지?’
단 하나.
그레고르를 떠올릴 때마다 느끼는 충동에 가까운 감정. 그것만큼은 도저히 조절되질 않았다.
두근-!
그레고르를 떠올리자 다시 가슴이 뛴다. 차갑던 머리 역시 뜨겁게 달아오르고, 냉철한 이성은 감정에 파도에 빠져 익사한다.
‘이래서는 안 돼.’
그녀는 그레고르와 함께 싸우는 전우. 이런 식이라면 오히려 방해만 되고 만다.
‘어떻게든 고쳐야 한다.’
그렇게 그녀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충동을 조절하려던 순간.
“고민이라도 있으신가요?”
한 사람이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에스텔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익숙한 중년 여인이었다.
예쁘장한 얼굴을 보면 젊은 시절에는 어느 정도 미인 소리를 들었을 터. 하지만 세월이라는 대적을 이기진 못했는지 술통을 연상시키는 통통한 체형을 하고 있었다.
아이린 원장 수녀.
이 보육원의 원장.
그녀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에스텔을 바라보았다.
‘말할까?’
한순간 에스텔의 머릿속에 그런 선택지가 떠올랐다.
상대는 상담과 교육의 전문가. 어쩌면 그녀에게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에스텔은 결국 부정의 말을 내뱉었다.
지금 그녀가 겪고 있는 고민은 사도야행에 대한 것. 아무래도 그것을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신경 쓰지 마시길.”
살짝 차갑다고 느껴질 정도의 태도로 거절의 의사를 표현하는 에스텔.
“물론 걱정할 필요는 없죠.”
하나 아이린 수녀는 그녀의 거절을 묵살하고 더 가까이 다가와 입을 열었다.
“말씀하신 대로 사랑은 걱정할 만한 일이 아니죠. 그저 인생 선배로서 조언해주고 싶을 뿐이에요.”
귓가에 들려온 익숙하지 않은 단어에 순간 에스텔의 사고가 정지했다.
“사랑?”
“네. 사랑. 연모라고도 하죠.”
“그럴 리가…….”
한평생 그녀에게 인연이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단어. 그런데 그것이 지금 그녀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라니…….
‘그럴 리 없어.’
반사적으로 부정해보지만, 이를 뒷받침할 근거가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애초에 이전에 느낀 적 없는 감정인데 어떻게 진짜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단 말인가?
“너무 고민하지 말아요. 결국 자연스러운 게 좋은 거니까요.”
에스텔이 혼란에 빠지든 말든, 아이린 수녀는 자신이 할 말만 하고 자리를 떠났다. 그런 그녀의 뒤를 보육원의 아이들이 뒤따랐다.
결국, 자리에 남은 건 에스텔 혼자뿐.
“휴우.”
한참 동안 이어진 고민.
결국 그녀가 한숨을 쉬며 보류라는 결론을 내렸다.
‘애초에 답을 낼 방도가 없어.’
처음 느껴보는 감정인만큼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
‘거기다가 어느 쪽이든 억눌러야 하니까.’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전투에 도움이 되지 않는 만큼 억눌러야 하리라.
반대로 이것이 사랑이라 해도 그녀가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는다.
‘그레고르는 나에게 연애 감정을 느끼지 않겠지.’
동료라고는 여길 것이다.
목숨을 걸고 구해줬으니, 친우라고도 여길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연애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걸까?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런 상황에서 그를 사랑해봤자 혼자 상처만 받고 끝나리라.
‘적어도 밀회 요청이라도 받는다면 생각을 달리해볼 텐데…….’
하지만 갑자기 그런 일이 일어날 리 만무하지 않은가?
그렇게 마음을 굳힌 에스텔의 감각이 현실로 돌아오자,
“아, 끝났어요?”
그레고르가 시야에 들어왔다.
“어, 어째서 그대가 여기에!”
너무 깊이 생각에 빠져 있어서였을까?
그레고르의 접근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에게서 떨어졌다.
‘하필이면 지금이라니?!’
조금 전에 떠올린 생각 때문인지 얼굴이 다 후끈거린다.
“보육원장님께서 슬슬 돌아가도 된다고 하셔서 말이에요.”
그런 에스텔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친근하게 웃어 보이는 그레고르.
‘눈치채지 못한 건가?’
그런 그의 태도에 안심하려던 찰나.
“그러고 보니 에스텔.”
“음?”
“내일 밤에 저랑 함께 있어 주실 수 있나요?
“뭐?”
에스텔의 심장에 치명타가 꽂혔다.
‘거짓말?!’
하필이면 밀회 요청에 대해 떠올린 직후 이런 상황이 이어진단 말인가?
그 충격에 에스텔의 의식이 새하얗게 표백되었다.
“네. 조금 확인해봐야 할 것이 있어서요.”
옆에서 그레고르는 계속해서 무어라 얘기하는 것 같았지만, 그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밀회인가? 설마 진짜로 밀회인 건가?!’
그야말로 동상이몽 그 자체.
이후 에스텔이 정신을 차린 것은 자정이 다 되어서였다.
?
*** ***
?
그레고르와 에스텔이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사람이 보육원 정문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왔어, 원장님!”
이윽고 울려 퍼지는 쾌활하면서도 중성적인 목소리. 목소리의 주인공은 답변이 돌아오지 않았는데도 문을 열고 보육원에 들어섰다.
소녀라기에는 조금 나이가 많고, 여인이라기에는 어려 보이는 여성이었다.
미녀보다는 미소년에 더 가까운 얼굴. 마르긴 했지만, 연약해 보이지 않는 날렵한 체형. 바람을 막기 위함인지 몸에 걸친 긴 코트. 그리고 등 뒤에 짊어진 커다란 포대.
“왔니, 빅토리아.”
빅토리아. 그녀의 이름이 아이린 수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오늘도 많이 벌었다고!”
빅토리아는 생긋 웃으면서 등에 메고 있던 포대를 내려놓았다.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밀가루를 포함한 몇 가지 생필품들. 보육원 운영을 위해 꼭 필요한 물건뿐이다.
“어때 잘했지?”
칭찬을 바라는 아이처럼 생글생글 웃는 빅토리아의 모습. 아이린 수녀는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그 웃음에는 짙은 미안함이 서려 있었다.
“미안하구나. 내가 능력이 없어서…….”
본래 보육원장은 그녀인 만큼, 모든 물자는 그녀가 책임져야 함이 마땅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불가능.
그녀는 보육원에서 나고 자란 빅토리아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분명 힘들었겠지.’
물자의 양을 보면 결코 적은 양은 아니다. 식인 사건까지 심심찮게 일어나는 빈민가의 상황을 생각하면 실로 힘들게 구해온 물자일 터. 어쩌면 이를 구하기 위해 입에 담기 힘든 일마저 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괜찮다니까. 여기는 내 집이나 다름없어. 그러니까 나도 노력해야지!”
하지만 이런 아이린 수녀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함인지, 빅토리아는 늘 쾌활한 태도를 유지했다.
“……고맙구나.”
‘그래, 나도 굳게 강해져야만 하겠지.’
빅토리아에게 보여주기 위해 아이린 수녀는 그녀와 함께 걸으면서 밝은 표정을 유지했다.
“내일도 나가니?”
“응! 내일부터 야시장이 열리잖아? 이럴 때 많이 벌어둬야지.”
“하지만 아이들은 너랑 같이 놀고 싶어 할 텐데…….”
“어쩔 수 없잖아. 내가 돈을 많이 벌어오면 그때 놀아줄 거니까!”
어느새 방 앞까지 온 것일까?
빅토리아는 방 한구석에 있는 옷걸이에 외투를 걸었다. 그와 함께 드러나는 모습을 드러내는 그녀의 일상복.
“음.”
‘요즘 젊은이들은 저런 옷을 입는 걸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허벅지와 배를 거의 다 드러내는 옷이라니.
아이린 수녀는 이를 지적하고 싶은 충동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 솟아올랐지만, 빅토리아를 위해 말을 삼켰다.
“얘들아, 나왔다!”
그런 아이린 수녀의 속마음을 모른 채 빅토리아는 신이 나 아이들의 방으로 향했다.
이윽고 그 뒤를 따르는 아이린 수녀.
빅토리아의 노출이 심한 옷에 눈이 팔렸던 그녀는 한 가지 중대한 사실을 놓쳤다. 빅토리아의 배에 기괴하기 짝이 없는 금속 허리띠가 걸려있다는 사실을.?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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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1-01-25 13:58:36
이번 회차를 읽으면서 떠오른 말이 하나 있어요.
불합리, 부조리 등을 가리키는 일본어 단어인 "리후진(理不?)". 그리고 그 단어에 얽혀 있는 언어유희가 하나 같이 생각나서 쓴웃음이 지어지기도 했으니까요.
카다스에서 변사가 늘고 있는 게 역설적으로 그레고르와 에스텔의 주거문제 완화에는 도움이 되었다는 것도 그렇고, 에스텔에 대한 묘한 소문이 퍼져 있어서 실력이 있음에도 취업하지 못하는 것도, 또한 에스텔이 취업에는 겨우 성공했지만 얻은 게 심부름꾼 길드의 말단 자리인 것도 그러해요. 이것까지는 납득하겠지만, 보육원의 아이들이 그린 그림에서는 정말 이 사회가 어떻게 되어 버린 것인지...
게다가 에스텔이 그레고르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사랑이라는 것도 에스텔에게는 쉽사리 납득할 수 없는 사안일 거예요. 소여 가문의 딸로서도 아주 호사를 누려본 건 아니지만 이제부터는 완전히 다른 상황하에 놓인 것은, 리무진을 탄 귀족이 아니라 위에서 말한 "리후진" 그 자체가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빅토리아의 배에 걸려있는 기괴한 금속 허리띠의 정체는 대체 뭘까요...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 아이린 수녀는 알고도 그걸 묵인하는지 아니면 정말 모르는지...그게 궁금해지고 있어요.
Papillon
2021-01-26 01:35:57
카다스 시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죠. 4대 귀족이 사도야행을 원할하게 진행하기 위해 그렇게 만든 것도 카다스가 망가진 원흉 중 하나입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4대 귀족이 아니었다면 카다스는 현재 인간이 살 수 있는 땅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겠지만요.
빅토리아와 관련된 이야기는 이번 장의 주요 키워드입니다. 그녀의 정체는 이번 챕터 말 쯤에 밝혀질 예정입니다.
SiteOwner
2021-03-06 20:23:10
이번 회차를 읽으면서, 어릴 때 잠깐 살았던 동네가 생각이 나면서 묘하게 떨떠름해지고 있습니다.
저희집이 있었던 데가 카다스의 빈민가같은 곳은 아니었고 그냥 한적한 농촌이었지만, 빈집이 드물지 않게 있었는데다,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어린이의 간을 빼먹으려고 낫을 들고 다니는 미친 사람이 돌아다녔다 보니 안심하고 밖에 돌아다닐 수도 없는 그런 곳이었다 보니 그다지 좋은 기억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잔혹주의] 끔찍했던 사건 몇 가지를 회고하면... 참조).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일단 거처를 어렵지 않게 구한 것 자체는 다행이군요.
그레고르, 에스텔 둘 다 정말 강인하군요. 역시 보통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운명이라는 게 참으로 고약하군요. 의뢰받은 일에서 알게 된 의외의 사실은 아이린 수녀의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그림이 지칭하는 대상...빅토리아와 어떻게든 접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으로서의 본성을 억누를 수는 있어도 그것을 완전히 제거하거나 무력화시킬 수는 없는 법입니다.
에스텔은 그레고르를 통하여 본성을 되찾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더 높은 차원으로 성장한 에스텔도 훌륭한 시프터입니다.Papillon
2021-03-15 02:03:55
그레고르 덕에 에스텔 역시 사람의 본성을 되찾았죠. 긍정적인 일이긴 하지만 그것이 또 다른 사건의 원인이 될 예정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