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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나의 마리오네트를 받아들일 준비는 되었나?”
마치 거미줄의 먹이들처럼 묶여 버린 현애, 시저, 그리고 마르코를, 알레한드로는 먹이들을 바라보는 거미처럼 보며 말한다.
“마리오네트 씨? 당신이 이런 식으로 한다면...”
“호오, 네 입에서 그 말이 다시 나왔군!”
알레한드로가 현애의 말을 받아친다.
“예전에는 썩 마음에 드는 별명은 아니었지만, 지금 보니 딱 어울리는 별명이야. 지금 네 녀석이 이렇게 꼴불견으로 줄에 매달린 꼴을 보니, 더 어울리는 별명이지!”
“이 자시이이이익!”
현애가 그렇게 외쳐 보지만, 오히려 줄은 더 팽팽히 조일 뿐. 그것뿐만이 아니다. 어느새, 줄에 잡히지 않은 나머지 한쪽 발이, 지면에서 떨어져 버렸다! 이건 완전히 공중에 둥둥 뜬 먹잇감이 된 꼴 아닌가...
문득 돌아본다. 시저뿐만 아니라, 마르코도 위험하다. 실들이 시저보다도 더 촘촘히 조여 오고 있다. 그중 일부는 머리 안쪽으로도 들어가고 있다. 저것, 다시 세뇌하려는 것 아닌가! 생각 같아서는 냉기를 퍼뜨려서라도 구해 주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조금 전처럼 잘못될 것 같고...
“자, 선택지를 몇 개 주지.”
알레한드로의 줄들이, 길거리를 가득 덮어서, 완전히 세 사람을 둘러싸고 있다. 줄로 만들어진 감옥 안에 들어온 듯하다. 거기에다가, 알레한드로는 끊임없이 줄을 새로 만들어내고 있다. 그것도, 일부러 세 사람이 들으라는 듯, 휭- 휭- 하고 소리까지 내 가면서 말이다.
“1번. 멋지게 이 줄들을 끊어내고, 눈앞에서 실실대고 있는 알레한드로를 쓰러뜨린다.”
“......”
현애는 말없이 알레한드로를 노려다본다.
“자, 2번! 줄들을 순식간에 얼려서, 앞에 선 알레한드로를 얼린다.”
알레한드로는 아랑곳않고, 현애, 시저, 마르코를 농락이라도 하듯, 웃음을 흘리며 말한다.
“그리고 3번! 친구들이 구해 주고 멋지게 알레한드로를 쓰러뜨린다!”
“......”
“자, 골라라!”
알레한드로가 한껏 분위기를 띄워 주지만, 현애는 노려보는 것 말고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왜 말을 안 하나? 어서 말을 해!”
현애가 입술을 움찔거린다. 알레한드로는 그걸 놓치지 않는다.
“으응? 1번이라고? 아니!”
과장된 몸짓으로 한 손가락을 흔드는 알레한드로의 목소리가 확 높아진다.
“그건 네 선택지가 될 수 없다! 이 줄을 끊어낸다는 건 있을 수 없다!”
현애와 시저, 마르코 모두 될 수 있는 대로 줄을 끊어내 보려고 한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줄들은 점점 더 조여올 뿐이다.
“아쉽겠지만, 세 가지 선택지 모두 답이 아니다!”
“......”
휭휭거리는 줄의 소리는 점점 더 커진다. 동시에 줄은 점점 더 조여 온다. 투명한 줄로 이루어진 감옥에 둘러싸인, 세 사람의 감각이 온통 마비될 정도다.
“답은 4번, 4번! 너희들에게 희망은 없다. 현실은 냉정하다. 너희 앞에 펼쳐진 운명을 받아들여라!”
동시에 알레한드로부터 뻗어 나온 대량의 줄들이 현애, 시저, 마르코에게 달려든다. 아무리 투명하다고는 해도, 이 느낌은 차원이 다르다. 필살기, 즉 말 그대로, 쏟아붓는다는 느낌이다!
“흐흐흐... 이걸로 세 명 모두, 내가 처치하는 거다. 잘 가라!”
당장이라도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줄들을 모두 끊어내고 싶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지금 이 상황에서 피할 방법은 아무래도 없어 보인다. 눈을 질끈 감는다. 이대로, 이대로 당해 버리는 것인가...
한편 그 시간, 발레리오의 저택.
“비토리오.”
“네, 형님?”
“일단 집을 좀 지키고 있어. 사람들이 회복되기까지는 아직도 좀 있어야 하니까.”
시간을 본다. 시간은 벌써 오후 1시가 다 되어 가고 있다.
“일단 요원들을 주변에 배치할 계획이다. 장 박사가 도망치는 것이 힘들 정도의 많은 인원들을 배치한 다음, 적절히 장 박사를 유도할 계획이다.”
“그게 가능할까요? 장 박사가 눈치채고 도망가면 어쩌죠?”
“일단은 녀석에게 거짓 정보를 흘리도록 하지.”
“거짓 정보요?”
“장 박사, 최근 라자라는 부하와 의견 충돌이 좀 많았어.”
“라자라면... 그때 경찰들을 습격했던, 좀비를 만드는 능력을 지닌 여자 아닙니까?”
“그래. 거짓 정보는 주변에 깔린 요원들이 맡을 거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피오와 함께 사람들을 살피죠.”
“부탁한다. 나는 지금 문밖에 있는 상황부터 먼저 처리하고, 바로 떠날 테니.”
이 말을 남기고, 발레리오는 비토와 피오를 뒤로 하고 거실을 나선다. 막 현관을 나서려는데...
“저... 발레리오 씨.”
메이링의 목소리가 들린다.
“저도 같이 가죠.”
“안 돼. 자네하고 자네 직원들은 여기 있게.”
“그래도, 제가 여태껏 조사를 해 왔고, 장 박사에 대한 정보를 안 모을 수도 없는데...”
“그러면 자네만 따라와. 자네 직원들은 여기 남고.”
“잘 가라, 모두들!”
알레한드로의 의기양양한 목소리가 현애의 온 귀를 가득 덮는데...
“야! 남궁현애!”
마르코의 목소리다.
“왼쪽이야! 녀석의 왼쪽이 비었어!”
마치 젖 먹던 힘까지 끌어모은 것처럼, 악을 다 써 가며 소리지른다.
“그쪽을 노려... 그쪽을!”
“호오, ‘왼쪽’이라고 했겠다?”
마르코의 말을 놓치지 않은 알레한드로다. 가소롭다는 듯한 웃음을 짓는다...
“내가 그딴 야바위에 걸려들 줄 알고? 내 기준으로 보면 반대편이라는 걸 모를 줄 알았나? 속임수는 이제 접어두시지!”
알레한드로의 오른쪽에 줄이 팽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퍽-
뭔가가 둔탁하게 후려치는 소리가 들린다.
“크... 으... 으...”
다음 순간.
알레한드로가 바닥 한쪽에 고통스러워하며 쓰러져 있다. 왼쪽 옆구리를 강타당했는지, 왼쪽 옆구리를 꽉 부여쥔 채, 일어나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고 있다.
“이... 이 녀석.... 오른쪽을 노리나 했더니...”
현애의 팔과 다리를 조여 오던 줄의 힘이 약해졌다. 팔과 다리를 살짝 흔들어 본다. 팔은 잘 안 빠지기는 하지만, 다리는 그나마 빠져서 두 다리로 서 있을 수 있다. 그나저나, 가슴이 막 쿵쾅거린다. 마르코의 말을 들은 것, 반쯤은 도박이었기는 하지만...
“괜찮아?”
“아, 아...”
“마르코! 시저! 괜찮냐고!”
현애가 돌아보니 시저와 마르코 역시 묶여 있던 줄이 조금 느슨해졌는지, 몸을 좀더 자유롭게 움직인다. 아직 줄에서 완전히 풀어진 건 아니기는 하지만.
“후... 좀 풀렸나.”
“야! 너는 괜찮아? 발차기는 또 어떻게 한 건데!”
마르코가 오히려 현애에게 걱정스럽게 묻는다.
“아, 나는 괜찮아. 너하고 시저나 신경 써.”
“어, 잠깐...”
시저가 보니, 알레한드로는 벌써 일어나서, 다시 다가오고 있다. 현애의 바로 뒤, 엎어지면 닿을 만한 거리까지. 눈은 살기를 가득 뿜어내고, 한 손은 뒤로 뻗고 있다. 줄들을 다시 뻗기 위해서. 그 모습은 마치, 한 번 잡는 데 실패한 먹잇감이 지척에 있는 걸 보고 다시 노리는 육식동물과도 같다!
“이 자식...”
알레한드로가 현애에게 막 달려드는 순간.
“거기서 피해!”
시저의 외침에 현애가 막 몸을 피하자...
퍽-
시저의 주먹이, 알레한드로의 얼굴을 강타한다.
“크윽...”
시저의 일격에, 알레한드로가 나가떨어진다.
“으... 으윽...”
한발 비켜선 현애가 보니, 쓰러진 알레한드로의 오른쪽 뺨이 조금 물렁물렁하게 변한 것 같다. 하지만 알레한드로는 포기하려고 하지 않는다. 곧바로 몸을 털고 쓰러진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주먹을 꽉 쥐고 투명한 줄들을 쏠 준비를 한다. 비록 얼굴은 조금 흐물흐물해졌을지언정, 두 눈에서 뿜어내는 살기만으로도, 현애, 시저, 마르코를 떨게 하기에는 충분하다.
“이 자식들, 죽인다...”
독기 넘치는 한 마디를 뱉고는, 다시 달려든다. 이번에는 시저를 똑바로 보고, 시저에게 줄을 쏠 준비를 하고!
“안 되지.”
알레한드로의 팔이 시저의 상체를 노리는 순간, 시저는 바로 자세를 푹 숙인다.
곧바로 퍼붓는, 시저의 주먹질.
알레한드로의 오른쪽 다리에 직격한다. 알레한드로의 다리가 흐물흐물해진다... 마치 문어나 오징어의 다리처럼. 알레한드로의 몸이 균형을 잃고, 그 자리에 푹 넘어진다.
하지만...
“너희들이 이런다고 내가 포기할 것 같냐!”
알레한드로는 포기를 모른다. 다시 한번 일어나려 한다. 오른쪽 다리가 흐물흐물하지만, 어느새 왼쪽 다리만으로 버티고 일어섰다. 몸의 균형이 안 맞아서 온몸이 덜덜 떨리고, 두 팔을 허우적거리고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일반인들은 매우 두렵게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이 정도로 강한 의지를 보이는데, 누가 그것을 보고 무섭지 않다고 하겠는가...
“다시 한번 너희들을 묶어 버리는 건 시간문제다!”
알레한드로가 악을 써 가며 외친다.
“받아라아아아아아아아!”
알레한드로가 막 발을 내딛으려던 그때.
“얼음 속에서나 지껄이시지.”
현애의 주먹이 알레한드로의 가슴을 강타하자...
냉기가 알레한드로의 가슴에서부터 퍼져나가기 시작하더니, 얼어 버린다. 그리고 풀썩 그 자리에 쓰러진다. 마치 한쪽 다리를 빼 버려서 균형을 잃은 석상처럼.
“후... 이 녀석, 겨우 끝났네.”
“겨우라니 무슨 소리야?”
시저가 한숨을 푹 내쉬며 현애에게 말한다.
“나는 이 싸움에서 져 버릴 줄 알았다고! 이건 기적이야, 기적!”
“뭐, 기적이라고 할 것은 없지.”
현애가 시저와 마르코를 돌아본다.
“너는 친구를 구하려고 했고, 그 덕분에 우리 모두 무사할 수 있었잖아. 안 그래?”
“아... 그렇지.”
마르코가 시저에게 다가간다.
“고맙다.”
“에이, 무슨 이런 걸 가지고 다.”
그때.
발레리오의 저택 대문이 열리더니, 발레리오가 나온다.
“어, 너희들! 벌써 상황이 끝난 거야?”
“네, 보시는 것처럼.”
발레리오의 눈에도, 알레한드로가 꽁꽁 얼어서 쓰러진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후... 다행이야. 만약 너희들이 이 녀석에게 졌다면, 어떻게 됐을지 몰라.”
“에이, 그런 상황까지는 안 갔잖아요. 이제는 그냥 만약일 뿐이죠.”
“너희들...”
발레리오는 시저와 마르코를 걱정스럽게 보며 말한다.
“괜찮으면 내 집에 들어가서 좀 쉬어도 돼.”
“아니요.”
마르코가 딱 잘라 말한다.
“한번 봐야겠어요. 저를 가두고 세뇌한 녀석을요. 저번 주에 그 녀석하고 처음 마주쳤을 때를 아직도 잊지 못해요.”
“그래도 네 신변이 위험할 수 있어. 웬만하면 뒤는 나한테 맡겨.”
“아니요, 가야겠어요.”
마르코는 단호하다.
“그 녀석이 굴욕적으로 울고 비는 꼴을 한번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래... 정 그러겠다면 말리지는 않겠다만...”
“저, 발레리오 씨.”
“음, 현애 양, 왜?”
“혹시 타고 갈 차는요?”
“준비돼 있지.”
발레리오가 가리킨 쪽에, 검은 차가 두 대 서 있다.
“자, 그럼 이제 가 보자고.”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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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1-02-03 21:32:19
알레한드로가 낸 객관식 문제는 결국 출제오류였네요. 그리고 그 출제오류의 결과는 멋지게 자신의 몫이 되어 버렸고, 결국은 현애의 냉기능력에 무력화되고 말았어요. 아주 시원한 최후군요. 여러 의미로.
영어의 구문 중에 Out of question과 Out of the question이 있죠. 비슷해 보인데 의미는 딴판. 전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의미이지만 후자는 불가능이거든요. 알레한드로는 자신의 승리가 전자라고 생각했지만, 그 문제에 현애, 시저, 마르코는 한 글자씩 더해줬어요. 그렇게 the를 집어넣은 결과가 바로 알레한드로의 승리는 불가능.
시어하트어택
2021-02-11 23:09:00
사실 저렇게 객관식 문제를 낸 건 죠죠 3부의 바닐라 아이스전을 조금 변용해 본 겁니다. 아무래도 알레한드로는 2부의 중간보스이니만큼 약간의 특색도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죠.
SiteOwner
2021-03-06 20:33:18
상대를 얕보면 절대로 안됩니다.
사실, 맹독을 바른 옷핀 정도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고, 그것을 흉기로 쓰는 데에는 거한, 천하장사 등일 필요가 없는 것도 자명합니다. 게다가 인간의 경로의존성은 오류로 잘 가게 되어 있다 보니 그것도 경계해야 합니다.
겨우 알레한드로를 제압하는 데에 성공하긴 했지만 앞으로 대적해야 할 상대는 더욱 강력할 것이니 마찬가지로 상대를 얕봐서는 안되겠지요.
예전에 이런 적이 있습니다.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해", 약칭 답정너 회고 제하의 글에 나왔던 사건. 상대가 뭐 이런 사람이 있어 운운하면 저는 여기 있다고 반문해서 상대방의 말문을 막아버립니다.시어하트어택
2021-03-14 23:08:34
애초에 전제가 틀려먹었으니 뭘 해도 틀린 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겠죠. 알레한드로도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