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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1887, 도시는 살아남을 수 있는가?

마키, 2021-02-25 01:02:19

조회 수
160

*제목은 기동전사 건담의 캐치프레이즈 "U.C.0079, 그대는 살아 남을 수 있는가?"의 패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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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또 흥미를 일깨우는 게임에 대한 가벼운 소개(?).


11 비트 스튜디오가 개발한 도시 생존형 건설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 "프로스트펑크Frostpunk" 입니다.

컴퓨터의 아버지 찰스 배비지가 차분기관과 해석기관을 완벽하게 제작하는데 성공하면서 급격한 기술발달을 이룩한 대체역사가 이루어진 1887년 빅토리아 시대를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인게임 내에서 확인할 수 있는 텍스트 등으로 보아 이 세계는 1887년에 남아메리카 대륙의 파타고니아에 운석이 떨어지고, 그 영향으로 화산활동이 폭증하면서 매우 돌발적인 이상기후로 인해 빙하기가 도래(인게임내 최고기온이?영하 20도)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에따라 인게임 내 플레이어 및 시민들의 모국인 대영제국은 제국의 모든 것, 심지어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유물 따위도 모조리 포기하면서까지 국민들을 살려내기위해 북극에 거대한 발전기(첨부사진의 거대한 시설)를 건설하고 국민들을 상대적으로 따뜻한 북극에 피난시켰다는 것이 대강의 스토리입니다. 영국뿐만 아니라 언급되는 국가로는 독일, 프랑스, 미국 등이 각기 저마다의 방법으로 빙하기에 맞서 싸운다는 묘사가 나오죠.


이러한 상황에서 플레이어는 도시의 지도자가 되어 도시를 발전시키고 대한파를 맞이할 준비를 갖추는 한편, 도시의 성장과 생존을 위해 효율과 도덕성 앞에서 가치판단을 저울질해야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이 게임의 메인 컨텐츠 중의 하나인 법률의 경우 도시의 기초적인 것과 나아가야 할 길을 결정하는?"적응" 법률서와 메인 시나리오의 이벤트로 선택할 수 있는 "질서""신앙"의 목적 법률서로 나누어 집니다.


적응은 크게 21세기 현대에도 어느정도 용인은 되는 행위와,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에서 자행되었던 행위,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서도 용인되지 않는 행위로 나누어지죠. 가령 24시간 철야 근무연장 근무는 불만이 증가하지만, 이것은 21세기 현대의 산업활동에서 늘상 벌어지는 일이고, 의료행위의 경우?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떠한 방법으로든 가능한 한 모든 환자를 살릴 것인지, 현대와는 정 반대로 생존할 가능성이 희박한 중환자는 포기하고 상대적으로 빠르게 치료할 수 있는 경상자만 골라 치료하는 등의 선택이 주어지죠. 이외에도 마지막까지 망자를 존중해 공동묘지에 매장해줄 수도 있고, 그냥 시체를 눈구덩이에 방치해 둘 수도 있습니다.

요컨대 당장의 위험을 감수하고 대재앙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면서 대한파에도 얼어붙지 않는 온정으로 시민들을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배려해주는 지도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도시의 생존을 빌미로 효율만을 중요시해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이 그랬듯이 인권이고 도덕성이고 깡끄리 내다버린 비인간적인 철인이 될 것인지 플레이어의 도덕성을 시험한다고 볼 수 있죠. 예로 아동 또한 노동자로 간주해 도시의 발전과 생존을 명목으로 죽든 말든 일을 시키던지, 미래를 위해 당장의 일손을 포기함을 감수하더라도 아동들을 보호하고 교육해 미래에 대한 인재로 육성하는 길을 택할건지 또한 플레이어의 자유.

때문에 플레이어가 어떤 길을 고르건 시민들은 불만을 토로할지언정 대한파 이전에는 대영제국민으로서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비도덕적인 선택지만 골라도 선을 넘었다고 평가하진 않지만, 예외적으로 단 하나의 법률.?"대체 식량 자원"은 이것 하나만으로도 시민들이 지도자가 선을 넘었다고 판단하고, 엔딩에서?"도시는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해서라도?살아남아야 할 가치가 있는 도시였나?"고 되묻습니다. 어지간해선 볼 일이 없지만 인게임에서 식량을 구하는 방법은 한정되어 있고, 식량이 고갈되어 굶주림에 시달리는 한편, 사람 잔뜩 있다면 무엇을 식량으로 할 지에 대해선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질서와 신앙은 이벤트 중 다른 도시가 파멸했다는 소식을 듣고 희망이 폭락하고 불만이 폭증하는 상황에서 지도자가 선택한 수단입니다. 전자는 권력, 즉 공권력을 동원해 억압하여서라도 말리겠다는 것이고 후자는 종교, 즉 신의 힘을 빌려서라도 구원을 믿어보자는 의미가 되죠. 둘 모두 초반에는 공권력으로 치안을 다스리고 종교 행위를 통해 희망을 가지게 되는등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법률을 계속 선택하다보면 어느 시점부터 본색을 드러냅니다. 전자는 경찰국가화 되다가 종국에는 파시즘에 물들어 시민을 무자비하게 억압하고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독재국가가 되고, 후자는 기어이 지도자를 신으로 추앙하고 신의 말씀대로 이단을 심판하는 광신국가가 되버리죠.?

두 목적 모두 선을 넘은 마지막에는 "질서독재가, 종교광신이 되었다. 이게 최선이었나?"라고 플레이어를 신랄하게 비난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해보고는 싶은데 현재로서는 마땅히 플레이할 방법이 없어서 유튜브의 플레이 영상만 보고 있네요.
닌텐도 스위치로도 이식된다고는 하던데 언젠가라도 이식이 발표되면 플레이 해볼 예정입니다.
마키
東京タワーコレクターズ
ありったけの東京タワーグッズを集めるだけの変人。

7 댓글

마드리갈

2021-02-25 12:10:09

프로스트펑크는 굉장히 충격적이지만 마냥 외면만 할 수 없는 소재와 주제의식을 다루고 있네요.

게다가 게임에서 상정되는 세계의 상황과 비슷한 것이 2021년 현재 미국 텍사스주에서 일어나고 있다 보니 게임 속의 세계만으로 볼 수 없어서 더욱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할까, 그러해요.


제3의 길은 없고, 쉽사리 선택할 수 없는 두 선택지에서의 택일을 강요당할 때 무엇이 정답인지를 쉽게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게다가 의도와 결과가 항상 일치하지만도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반대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니 예측불허네요. 게임의 국가적 배경이 영국이니까 로버트 팰컨 스코트(Robert Falcon Scott, 1868-1912)와 어니스트 헨리 섀클턴(Ernest Henry Shackleton, 1874-1922)이 같이 생각나기도 하고, 하긴 그 둘도 빅토리아 시대에 태어나 청년기를 보냈던 사람이다 보니 이들의 행동을 복기해 보면 게임의 선택지를 좁힐 수 있겠어요.

혹한의 환경에서의 리더의 결단에 관한 창작물 하면 빈란드 사가도 빼놓을 수 없죠.

덴마크인 바이킹의 리더 아셰라드가 영국을 약탈할 때 기독교인 마을을 노리는데, 그 기독교인들에게 "모든 문제가 해결되도록 해 주겠다" 라고 웨일즈어로 말해서 일시적으로 그들의 환심을 산 뒤에 부하들을 시켜 주민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고 그 마을의 약탈에 성공하죠. 분명 끔찍한 장면인데 제가 아셰라드라고 해도 다른 선택지는 없었을 것이고, 그래서 저도 그 위치에 있다면 똑같이 행동했을 거예요. 그래서 뭐랄까, 프로스트펑크에서 악인의 선택지를 자신있게 모두 회피하겠다는 말도 못하겠네요.


시체를 그냥 눈구덩이에 방치한다...

그게 같이 생각났어요.

러시아의 R504 연방고속도로(Федеральная автомобильная дорога P504), 통칭 콜리마 하이웨이는 니즈니 베스챠흐(Нижний Бестях)와 마가단(Магадан)을 잇는 2031km의 고속도로로 소련시대에 만들어졌어요. 연선지역에는 스탈린 시대부터 설치된 굴라그가 다수 있었고, 금광 개척, 도로 건설 등도 대부분 굴라그 수감자 노동력으로 만들어졌어요. 그 콜리마 하이웨이도 스탈린 시대의 것인데, 건설현장에서 죽은 사람들의 시신은 노반을 만드는 데에도 대거 활용되었어요. 그래서 그 도로를 뼈의 길(Road of Bones)이라고 칭하기도 하죠.

마키

2021-02-25 22:31:34

개발진의 전작 "This War of Mine" 또한 극단적인 상황에서 효율과 양심 중 무엇을 선택할지를 논하는 게임이기도 했죠. 다만, 본작에서 질서와 신앙의 선을 넘는 법률은 사전정보가 없는 초회차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플레이어가 선택하기 좋게끔 감언이설로 포장해놓고는 법률을 선택하고 나서야 본색을 드러내기 때문에 그에 따른 불만이 꽤 있었다는 모양이에요.


이런 류의 게임이 늘 그렇듯 효율을 포기하고 도덕적으로 떳떳한 사람이 되는가, 효율만을 중요시한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 되는가, 양자를 저울질하며 당장의 상황에서 차악의 선택을 고를 수밖에 없다던가 개개인의 성격이나 플레이 상황에 따라 선택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에 무엇을 고르던지간에 꼭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는 법이죠.?


본문에서 언급한 의료 행위의 경우에도 이 게임에서 중상자는 기본적으로 동상 환자이기에 팔다리를 절단해 장애인(나중에 의수족 기술로 다시 일할 수 있게 할수는 있습니다만)으로 만드는 한이 있더라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치료해줄 수도 있고, 중상자는 더 이상의 치료를 단념하는 대신 죽지는 않게 연명시켜줄 수도 있고, 아예 중상자는 일치감치 포기하고 상대적으로 생존 확률이 높은 경상자 우선으로 치료하는 극약처방(환자분류(Triage))도 필요에 따라서는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오기도 하죠.


시신의 대한 대우도 마찬가지로 공동묘지와 택일인 시신처리(Corpse Disposal:(쓰레기 등의 처분))는 말이 좋아 장례지 말 그대로 시신을 그냥 눈구덩이에 갖다버린다는 뉘앙스에 가깝죠. 대한파 때문에 시신이 부패하지 않고 냉동되기에 가능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무리 내일 얼어죽는 상황에서도 망자에 대한 존중은 어디다 팔아먹었냐고 화내는 인간의 존엄성 문제기도 하죠.

Lester

2021-02-25 22:53:32

프로스트펑크... 다른 분의 입으로 이 이름을 듣기는 참 오랜만이군요. (게임 나오고 나서 좀 됐으니 2019년쯤인가) 게임의 초반은 어느 정도 제가 검수를 진행하면서 바로잡았는데 이후 DLC의 번역이나 검수는 저한테 안 주고 다른 사람한테 맡긴 것인지 퀄리티가 개판이라길래 상심하고 있습니다. 뭐 저에게 오지 않은 것은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굳이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니 한결 낫지만요. (하청이라는 게 원래 그렇기도 하고) 그래도 나무위키에 엔딩 문구 같은 게 올라오면 수정하는 식으로 미련을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직업병이겠죠.


말씀하신 대체 식량 자원에 관해서는 검수하다가 접해보고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 RTS는 실시간으로 독촉(?)하는 느낌 때문에 크게 애정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저 '대책'이라는 게 실상을 알면 얼마나 소름끼치는지, 하지만 그러면서 얼마나 '효과적'인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터라 꽤 기억에 남았습니다.

마키

2021-02-27 00:40:37

레스터 님이 한국어 번역을 담당하셨다니 인터넷 세상은 참 좁다는게 느껴지네요... 그러고보니 본편 시나리오도 번역이 미흡한 부분이 꽤 있다고 하던거 같던데 그것도 아마 영향을 받았다고 해야겠죠??


여하간 도덕성과 존엄성을 내다버릴수록 효율적으로 진행되는게 게임 시스템의 특징이라지만 대체 식량 자원은 내용이나 시민들의 반응이나 엔딩이나 한결같이 께름칙하네요.

Lester

2021-02-27 02:29:44

비공식 한글패치에서도 초기 정식 번역본(즉 미검수본)에서도 오토마톤Automaton이라고 쓰이던 것을 제가 고집을 부려서 '자동기계'로 바꾸기도 했고(한글로 표현할 수 있다면 굳이 음역할 필요가 있나 하는 제 지론이죠), 그렇게 알게 모르게 제 손길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윈터홈의 몰락" 시나리오까지는 분명히 제가 검수를 마쳤는데, 그 이후로는 Roboto 측에서 저한테 연락을 안 주더라고요. 당시 새로 취직을 했다보니 정신이 없어서 '바쁠 것 같다'고 답장을 보냈는데 그게 이런 참상(?)으로 돌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은 전문 번역가 연합(?) 비스무리한 집단의 프로젝트를 맡아서 Roboto의 일은 못하고 있는데, 여유가 생기면 다시 연락해 볼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제가 손을 놓은 이후부터의 번역은 수정되지 않을 거에요. 저 대신 다른 사람이 '검수'를 했을테고, 아무리 오역이 많다고 한들 에이전시는 '자비롭게도' 검수자까지 붙여서 번역을 끝냈으니 제 역할을 다한 셈이니까요. 다키스트 던전 때처럼 커뮤니티가 들끓으면 수정해 줄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보기에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던데요. 그렇다면 끝난 거죠 뭐.

SiteOwner

2021-02-26 00:54:38

이런 게임이 있군요. 빙하기를 살아남아야 하는 운명에 있는...

꽤 좋아하는 SF작품 중 로버트 실버버그(Robert Silverberg, 1935년생)의 1964년작 장편소설 대빙하 생존자(Time of the Great Freeze)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거기에서는 적도 주변의 브라질이나 싱가포르 등의 국가들이 번영하고 북반구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지하에서 겨우 생존해야 하는 운명에 처해졌고, 지하시설의 용량의 한계가 있다 보니 인구제한법이 가장 무서운 법률이 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프로스트펑크의 세계도 이렇게 혹한인데 원인도 이전의 문명발달도 다르게 되어 있군요. 여러모로 관심이 갑니다.


작중의 영국의 처절함과 왕실의 대응, 정말 이게 현실이 아닌 게 천만다행입니다.

영국의 소설가 존 윈덤(John Wyndham, 1903-1969)의 작품 바다속의 우주괴물(The Kraken Wakes)에 나오는 표현인 "500만 영국인" 이라는 상태가 이 게임에서도 예외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선을 넘었을 때 나오는 메시지, 정말 섬뜩하군요. 독재든 광신이든 결코 좋은 개념은 아니고 대체로 기피하지만 그에 대해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를 묻는 것 같습니다.

마키

2021-02-26 23:15:45

게임 이름 그대로 어느정도 스팀펑크 요소도 띄고 있어서 의수족 기술이라던가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로봇(자동기계, Automaton) 등이 보급된 세계관이긴 한데, 밝고 희망찬 분위기가 보편적인 스팀펑크 장르와는 거의 정반대의 암울하고 절망적인 분위기로 그려지죠. 그런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싶어하는 모습은 많은걸 생각나게 하네요.


질서나 신앙이나 아무튼간에 선을 넘지만 않으면 공권력의 치안 집행이든 종교 행위든 어느정도 현대에서도 용인되는 행위인데 선을 넘어버리면 파시즘 독재국가와 광신국가가 된다는게 현실에서도 있는 일이라 더욱 섬뜩하게 느껴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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