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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하! 꼴 좋군. 그렇게 잘난 척하더니, 막상 걸려 버리니 당황하고 있지?”
사원 정상부 어디쯤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 남자의 목소리에는, 조금씩 여유가 생겨난다. 여전히 긴장감은 놓치지 않고 있지만.
“손가락에 붙어 버린 끈끈이 줄을 풀지 못해서 버둥거리는 것도, 내게 지금 다 느껴지고 있어. 내가 이 말을 왜 하는지는 알겠지?”
“......”
마치 지금 승리를 쟁취하기라도 한 듯 으스대는 그 남자의 말에도, 현애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고, 손가락을 휘감아 버린 그 끈끈이 줄을 풀어 보려고 이리저리 방법을 찾아본다. 왼손을 세게 흔들어 보기도 하고, 난간에 줄을 휘둘러 보기도 하고, 신발을 벗어서 줄을 후려쳐 보기도 한다. 아무튼, 그 끈끈이 줄이 몸에 직접 닿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건 모두 해 본다.
하지만...
모두 실패다.
손가락을 거의 감싸듯 묶어 버린 그 줄은 끊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팽팽하게 현애의 손가락을 잡아당긴다.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왼손 검지뿐만이 아니라, 어느새 왼손 전체를 덮으려고 하고 있다, 그 끈끈이 줄이!
“버둥거리는 꼴이 참 보기 좋은데? 그걸 어떻게든 풀어 보겠다고 몸부림치는 건 정말이지 멍청해 보이는군. 애초에 내가 선택지를 줬었지. 하지만 너는 그 기회들을 모두 걷어차 버리고, 네 멍청한 동업자와 같이 되기를 선택했단 말이지. 그렇기에, 나는 네가 선택한 대로 해 줄 뿐!”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혹시나 보이지 않는 함정이 있을까, 몸이 닿을 만한 곳에서 최대한 비켜선다. 벽, 난간, 그리고 문까지. 그렇게 비켜서니, 완전히 가운데다. 거기에다가, 아까 들어온 문밖에 빠져나갈 곳도 없고, 난간 아래는 까마득한 호수고...
“나름 머리를 쓰나 본데, 그러면 빠져나갈 데가 더 없어진다는 건 아나?”
“그래... 어떻게든 되겠지.”
“그리고 그렇게 잔꾀를 쓴다고 해서, 내 끈끈이 줄들을 피할 수 있는 건 아니야!”
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
현애의 오른손에도 이상한 감촉이 느껴진다.
어느새, 그 끈끈이 줄이 오른손을 가득 덮고 있다. 기척도 못 느꼈을 텐데, 마치 그 전부터 덮여 있던 것이라도 된 듯, 아니면 오른손만 고치가 되어 버리기라도 한 듯!
“참 가지가지 하네, 이 자식...”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두 발도 뭔가가 꽉 잡은 것 같다. 마치 바닥 아래에서 손이나 덩굴 같은 게 튀어나와서 절대 도망가지 못하게 잡은 듯하다.
내려다본다.
두 발이 사로잡혔다.
그 끈끈이 줄들에.
마치 두 발이 고치가 되어 버린 것 같다.
거기에다가 어느새...
“이... 이건 도대체 뭐야!”
바닥 전체를 가득 덮고 있다.
그 끈끈이 줄들이, 마치 등나무나 담쟁이덩굴과도 같이, 온 바닥을 가득 메워 버렸다. 거기에다가 스멀스멀 끝없이 움직인다. 보기조차 싫을 정도로, 비위가 좋지 않은 사람은 그 광경을 보자마자 바로 구토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그 크고 작은 줄들이, 끊임없이 현애의 두 다리를 타고 올라오려고 하고 있다!
“이, 이건 다 뭐냐고, 도대체!”
“하, 멍청한 녀석 같으니라고!”
남자의 목소리가 한껏 현애를 비웃는다.
“역시 행동 양상으로 보나 멍청한 것으로 보나, 파울리의 패거리가 분명하군. 파울리 녀석도 이렇게 나한테 꼼짝없이 잡혀 버렸지. 자신을 공격하는 건지도 모르고, 그저 옷자락에 뭔가 축축한 게 묻으니까 그대로 만졌다가 저렇게 되어 버렸지!”
고치가 되어 버린 미켈의 발버둥이 더 심해진다. 현애가 궁지에 빠져 버리자 그 발버둥이 눈에 띌 정도로 격해진다.
“파울리 이 자식, 좀 가만히 있어라!”
남자의 날선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미켈의 발버둥이 확 잦아든다. 동시에 현애의 양손 양다리에도 불쾌한 찌릿거림이 전해진다.
“이미 너희의 운명은 정해졌는데 발버둥쳐서 무슨 소용이냐? 그냥 차분하게 운명을 받아들이는 게 가장 편한 길인데!”
“아, 운명은 정해졌다. 그거 좋은 말이야.”
현애가 별안간 움직임을 멈추고 말한다.
“확실히 신이 정한 운명은,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기는 하지.”
“그래, 그래! 잘 생각했군.”
남자의 목소리에 희색이 돈다.
“적어도 네 녀석은, 저기 고치가 되어 죽어가는 파울리보다는 좀 똑똑하군, 안 그래? 그래 봤자 운명은 어차피 하나지만.”
“그래, 맞아.”
현애가, 별안간 머리 위의 한 방향을 노려본다. 난간 반대쪽, 그리고 오른쪽의 어딘가를.
“그런데 이거 알아? 네가 한 말은, 네게도 예외는 아니지.”
“뭐야?”
“네 운명도, 정해졌다는 거야.”
“이 자식, 순순히 따르나 했는데! 그럼 좋아. 네 녀석에게는 여기 고치가 된 파울리보다 더 끔찍한 운명이 기다릴 줄 알아라!”
“아니, 그렇게는 안 될 것 같은데.”
“뭣...”
하지만 남자의 목소리는 거기서 더 이어지지 못한다. 두 손과 두 발에 엮인 끈끈이 줄들을 통해 전해진다. 덜덜 떨리는 움직임, 그리고... 기우뚱거리는 무게감까지. 한 사람이 아니다. 두 사람이 떨어지고 있다.
현애의 오른쪽으로 떨어진다.
얼른 벽을 얼려서 미끄럼틀처럼 만든다.
잠시 후...
쿵-
쿵-
두 사람이 난간에 둔탁하게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아... 아윽...”
“으... 으극...”
두 사람이 부딪친 쪽을 돌아보니, 미켈은 흐물흐물해진 고치를 찢고 밖으로 나오려고 한다. 고치를 얼리자, 미켈은 수월하게 고치 안에서 나온다. 왼팔을 부딪친 건지 왼팔을 오른손으로 싸매고 있기는 하지만, 다행히 그 외에 다치거나 한 데는 없는 모양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난간 옆에 쓰러져 있는 게 보인다. 탈모가 진행된 머리에, 한눈에 봐도 살찐 게 눈에 들어올 정도다. 그와는 대조로 등산 조끼, 등산 모자 등을 갖춘 그의 옷차림은 깔끔해 보인다. 신음을 흘리며, 일어나지 못하고 팔다리를 버둥거리고 있다. 두 손과 두 발이 얼어 버렸고, 얼굴 몇 군데에는 생채기도 났다.
“어이. 일어나.”
난간 앞에 쓰러진 남자를 보자마자, 미켈은 그를 바로 알아본 듯, 눈살을 찌푸리고는 발로 툭툭 건드린다. 덩치 큰 남자는 신음을 흘리면서도, 여전히 미켈에 대한 경계하는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몸을 가누고, 일으키고, 벽에 기대서면서도 말이다.
“이토다 신지였지? 네 녀석이 이런 능력을 쓸 줄은 몰랐는데.”
“안타깝군. 좀만 더 주의했다면 성공이었는데...”
이토다라고 불린 남자는 몸을 일으키고 나서도 가만히 미켈을 노려다본다. 두 손과 두 발은 여전히 하얗게 얼어 있고, 딛기도 힘든 발은 발꿈치로 겨우 버티고, 손 대신 팔뚝을 벽에 기대고 섰다.
“좀 닥치지. 실패한 주제에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파울리, 이 도둑놈 같으니라고...”
손발을 모두 못 쓰게 된 상황에서도, 이토다는 여전히 미켈을 노려보며 이를 간다. 옆에 있는 현애가 봐도, 노려보는 것만으로도 이 사원 전체를 태워 버릴 만한 살의가 가득 느껴진다. 그것 말고는 서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인데도.
“내가 아니더라도 네놈을 노리는 사람들은 많아!”
“스코프 컴퍼니 말인가?”
“훗...”
이토다가 코웃음 치더니, 별안간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고는, 얼어서 움직이기 힘든 손을 겨우 들어 미켈에게 삿대질을 해 가며 소리 지른다.
“각오하라고!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도둑질해 간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할 거다! 네 몸으로 치르든, 네 목숨으로 치르든 해야 할 거다! 네놈이 훔쳐간 것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지 알기나 해?”
“내가 뭘 훔쳐갔다는 거지?”
미켈은 이토다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는 듯, 머리까지 흔들어 보인다.
“내가 훔쳐간 게 뭔지를 알아야 찾아 주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니야.”
“시... 시치미 떼지 마라, 이 도둑놈!”
이토다의 살찐 얼굴, 벗어진 이마에 핏줄이 두드러진다. 격노했기 때문인지, 눈동자도 점처럼 쪼그라든다. 눈동자가 그렇게 작아 보이는 건 처음 봤다.
“콘라트가 훔쳐간 우리의 정당한 몫을, 네놈이 다시 훔쳐...”
“그 녀석 시끄럽네.”
미켈이 무심하게 한 마디 내뱉는 바로 그때.
현애의 눈에 보인다. 미켈의 오른손에 어제의 것과 같은 기운이 서린다. 악을 써대는 이토다의 앞에, 미켈은 아무 망설임 없이 다가서서, 이토다의 가슴을 노리고 주먹을 쥔다.
그리고.
퍽-
조그맣게 나는 둔탁한 소리...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이토다의 몸뚱이가 그대로 난간 바깥으로 미끄러지듯 넘어간다. 이토다의 몸뚱이가 좀 비대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무게중심이 아래로 향하자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현애의 눈에 한순간이지만 보였다.
이토다의 가슴이 점점 흐물흐물해지는 것이. 그리고 그 흐물거리는 것이 점점 이토다의 온몸에 퍼져가려는 것이.
“이... 자... 식...”
현애는 얼른 이토다에게서 눈을 돌린다. 더 보다가는 못 볼 걸 보게 될 것 같다. 하지만, 미켈은 가만히 서서, 그가 떨어지는 걸 계속 내려다본다. 잠시 후, 아래를 내려다보던 미켈이 난간에서 몸을 돌린다.
“뭐... 어떻게 됐어?”
“녀석은 완전히 물에 빠져 버렸어. 이대로 놔두면 자기가 알아서 어떻게든 되겠지.”
“아니, 미켈 씨.”
현애는 적잖이 놀랐는지 미켈과 난간 너머를 멀뚱멀뚱 번갈아 본다.
“녀석을 저렇게 호수에 막 내던져도 되는 거야? 죽어 버리잖아!”
“자, 여기가 어딘지 보라고.”
문을 향해 걸어가던 미켈은 담담하게 말한다. 현애가 곧장 난간 앞에 서서 내려다보니, 이토다는 이미 물속에 빠져 버린 지 오래인지, 아니면 아예 녹아 버린 건지, 호수의 수면에서는 기포만 스멀스멀 나오고 있다. 사진 찍고 구경하고 할 때는 몰랐는데, 막상 내려다보니까 정말, 까마득하게 높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금방 까무러쳐 버릴 정도로.
“우리가 저렇게 하지 못하면, 아마 우리가 지금쯤 저기 호수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거나, 이미 죽었을걸.”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건 너무하잖아...”
현애의 목소리가 덜덜 떨린다.
“이걸 좀 알아야겠어.”
미켈이 문 앞에 서서, 문을 다시 열고 내려가기 전에 현애를 돌아보며 말한다.
“내가 전에도 말했었지. 콘라트 뮐러는 악명높은 마피아였어. 어제 죽기 전까지만 해도 여기 테르미니에서 돈이 될 만한 건 다 잡고 있었다고. 그중에도 특히 큰 이권이 걸린 게 너희 일행이었고, 갑자기 콘라트가 죽어서 녀석이 잡고 있던 걸 내가 다 가져가 버리니까 업계의 다른 사람들이 나를 노리는 건 자명한 일이지.”
미켈의 말을 다 듣고 나니, 현애의 머릿속이 조금 정리되는 것 같다.
잠깐.
그렇다는 건...
“아니, 그렇다면 내가 미켈 씨를 위험에 빠뜨린 거 아니야?”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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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9 22:06:51
끈끈이 줄을 만들어 상대를 묶는 능력을 가진 그 남자, 이토다인가요. 혹시 일본계이고, 성씨의 한자가 ?田인가요? 성씨에 맞는 능력같습니다. 분명 그런 능력은 무섭습니다만, 문제는 그렇게 만들어 낸 끈끈이 줄은 상대와 이어지는 가교 역할을 한다는 것. 그리고 현애의 냉기능력에 당해서 결국 저 꼴이...
이 소동의 전말은 알겠는데, 과연 그 이토다를 호수에 처넣은 게 최선이었는지는, 예감이 좋지 않아 보입니다.
현애의 불길한 예감이 적중할 것 같군요.
시어하트어택
2021-05-23 15:51:49
네, 그렇게 쓴 게 맞습니다. 다분히 의도하고 지은 이름이죠.?
마드리갈
2021-05-22 13:03:57
큰 소동이 될뻔한 게 이렇게 마무리되네요.
그런데 정당한 몫 운운은...콘라트도 잘한 게 없지만, 콘라트의 적들이 할 말도 아닌 듯한데요.
이걸 읽다 보니 두 가지가 생각나네요.
첫째는 문제의 이토다라는 남자의 능력. 죠죠의 기묘한 모험 5부 황금의 바람에서 베네치아에서 싸움이 벌어질 때, 기앗쵸에 대해서 죠르노 죠바나가 꽤 큰 고생을 하죠. 생명체를 만드는 능력인 골드 익스피리언스는 저온능력인 화이트 앨범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죠. 그게 생각나면서, 살짝 오한이 들기도 하네요.
둘째는 현애의 미켈에 대한 생각. 이세계 피크닉에서는 니시나 토리코가 공범이야말로 가장 진실한 관계라고 말하죠. 운명을 같이 하니까. 현애가 미켈을 위험에 빠트린 게 아니냐고 말하는 데에서, 이미 운명공동체라는 것을 직감한 게 느껴져요.시어하트어택
2021-05-23 15:55:05
호수 사원에서의 사건은 이렇게 끝나는 것 같지만, 일행의 앞에는 앞으로도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거미줄이 생명체는 아니기는 합니다만, 확실히 마드리갈님이 언급하신 걸 보니까 그렇게 생각이 들기도 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