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다 보니까 윈도우즈 xp가 처음 나왔을 때가 생각나는군요.

윈도우즈 xp를 처음 접했을 때 컴퓨터가 고유한 인격을 갖고 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보니, 작중의 기묘한 PC가 마냥 허구의 물체같이 느껴지지 않고 생동감 있게 보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갖고 있는 인격이 고인이 된 연구실 최군으로부터 유래한 것이고...아마, 더 이상 신입사원을 맞이하지 않기를 바라는 게 아닌가, 그래서 그렇게 자리를 지키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인간은 도구가 아니고 목적이라는 말, 이미 오래전에 버려진 게, 아니, 처음부터 지키지 못할 말은 아니었는 건가 싶은 생각마저 듭니다. 도덕성 운운하는 사회의 도덕성이 형편없다든지. 예전 직장생활 때 느꼈던 것도 그렇고, 그러합니다.

최군이 컴퓨터에 붙어서 신입사원을 도와주는 이유를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작중 등장하는 T 바이오는 소위 말하는 블랙 기업입니다)

1. 기업체에서 사람이 자주 바뀌게 되면 인수인계를 해 줘야 해서 정상적인 업무를 하지 못 하게? 됩니다(갓 회사에 출근하게 되면 그 날은 보통 세팅만 하고 퇴근하는 경우도 많고요).?

2. 여기에 들어오는 신입사원들이 자기처럼 죽지 않고 차라리 이직해서 나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게 1과 합쳐지면 회사 입장에서는 사람이 계속 바뀌니 인수인계를 하느라 업무를 정상적으로 못 하게 되고, 신입사원들은 블랙 기업에서 멘탈과 시간, 건강을 희생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3. 뒤에서 유가족들을 몰래 도와준 강 팀장의 이직(실제로 11-4에서 괴담수사대를 방문한 이후, 강 팀장은 이직 준비를 하게 됩니다)

얼마나 그 마음이 간절했으면, 연구실 최군의 영혼은 그렇게 PC에까지 깃들어서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에게...

그리고 PC를 치우려는 부장에게 해가 가해진 것을 보면, 역시 그 PC의 존재 자체가 경종을 울리네요. 세상을 떠난 뒤에도 영면하지 못하고 구천을 떠돈다는 게 꽤 가슴아프지만...

상대방이 원할 때 하는 충고는 충고지만, 상대방이 원치 않는데 충고를 하면 오지랖이라는 얘기가 있죠. 딱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