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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자 H[ 122화 - 미지의 무대장치(1)

시어하트어택, 2021-06-09 07:46:23

조회 수
133

바리오의 눈에 보인다.
아즈탄의 온 얼굴에, 보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을 중독시켜 버릴 것 같은 독기가 오른다. 바리오도 깨닫는다. 그 강한 독기가 이제 발로부터 점점 올라오고 있다는 것을. 이미 발가락에는 감각이 없다. 그리고 발목도 움직이기가 힘들다. 감각은 실시간으로 희미해져 가고 있다. 그리고 무릎에도! 신음을 흘리는 바리오를 보는 아즈탄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의 웃음은, 이미 뒤통수에서 전해져 오는 고통을 잊고 있다.
아즈탄이 온 힘을 다해 외친다.
“너 같은 불경한 놈에게는 이것이 최선이다! 살려주는 것에 감사한 줄...”
하지만.
아즈탄의 말은 거기서 더 나오지 못한다.
별안간, 아즈탄의 눈에 뭔가가 튀어나오는 게 보인다.
바리오의 옷소매 속에서...
말벌... 말벌이다!
그것도 한눈에도 보일 정도로, 덩치가 큰 말벌!
아즈탄이 뭐라고 할 새도 없이, 한순간에 튀어나온 말벌은 그대로 아즈탄의 목덜미를 쏘아 버린다. 아즈탄이 목덜미를 부여잡고, 고통스럽게 비틀거리다가, 한쪽 무릎을 땅바닥에 콱하고 박고 만다. 눈의 초점은 점점 흐려지고, 비틀거림 또한 점점 심해짐에도, 아즈탄의 눈은 바리오를 똑바로 향하고 있다.
“너 이 자식, 어느 새...”
“내 능력이 벌레를 움직인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숙지하지는 못한 것 같군. 아니, 어쩌면 예상하지 못한 일격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윽... 윽... 윽...”
말벌의 독이 어느새 목을 타고 내려와 온몸에 퍼진 건지, 아즈탄은 바리오를 노려보는 것 말고는 어떠한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한쪽 무릎을 꿇고서나마 서서 버티고 있다는 게 용하다고 할 정도다.
“흐, 흐, 흐... 기대하는 게 좋을 거야, 바리오. 이미 파일 전송은 다 끝났으니까. 나는 여기서 쓰러지지만, 내 동료들의 추격은 이제 시작이니...”
힘겹게 독기 넘치는 말을 뱉어내고는, 아즈탄은 눈을 까뒤집는 듯하더니, 그 자리에 풀썩 엎드려져 버린다. 그가 쓰러지자마자 잔디를 말라 죽게 만들었던 독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사라져 버린다.
아즈탄이 완전히 쓰러진 걸 확인한 바리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다가, 머리를 싸맨다.
“이걸 어쩌면 좋지... 하, 나란 녀석은 왜 이렇게 멍청하지... 그러니까 왜 전단지를 가지고 다니다가 이 꼴이야!”

한편 그 시간, 테르미니 시내의 어느 대저택의 서재. 정장을 입은 남자가 자기 책상 앞에 앉아 있고, 그 앞에는 사파리 복장을 한 근육질의 남자가 각을 잡고 서 있다. 정장을 입은 남자는 시종일관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고, 그의 앞에는 ‘탈라스 곤’이라는 서명이 적힌 서류 몇 장이 놓여 있다.
“호오, 그래?”
정장을 입은 남자는 사파리 복장을 한 남자에게 흥미롭다는 듯 말한다.
“그럼 그 8곳의 유적 채굴권은, 아직 그 ‘테르미니 퍼스트’라는 데에 있다는 건가?”
“네, 맞습니다. 술탄 트래블과 그저께 계약하고 나서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저께까지만 해도 콘라트 뮐러가 꽉 잡고 있었는데, 상황이 급변했어. 그 정도라면 다른 업체들이 노리지 않을 리가 없을 것이고, 그래서 나는 그곳이 하루도 못 가고 다른 업체에 이권을 넘겨 주고 말 것이라고 예상했었는데, 용케 하루는 넘겼군.”
“맞습니다.”
사파리 복장을 한 남자가 말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올 피해는 그닥 크지 않을 겁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콜론?”
정장을 입은 남자는 궁금하다는 듯 말한다.
“설령 우리에게 그 업체들 간의 경쟁으로 인한 불똥이 튄다고 해도, 특전대는 전심을 다해 보스의 명령을 수행하고 보스를 지킬 것입니다. 태양석의 진정한 주인은 오로지 보스뿐입니다. 저를 비롯한 특전대는 언제든 보스의 명령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패기 좋군, 자네. 뭐든 좋기는 하지만, 우리가 기를 쓰고 막아야 하는 녀석들이 좀 있어.”
“하나는 저도 조금 짐작이 갑니다만...”
“자네도 아는군.”
콜론이라고 불린 남자가 말하자 정장 입은 남자의 목소리가 조금 무거워진다.
“그 녀석은 아마도 라자를 쫓아서 여기까지 오겠지. 만약 그렇게 된다면, 자네에게 나와 그 녀석의 오랜 악연을 끊어 달라고 부탁해도 되겠나?”
“저로서는 영광입니다.”
“그리고 또 한 녀석 있는데...”
정장 입은 남자의 목소리는 이제 끓는 듯한다.
“그 녀석이 아니었으면, 지금 내가 이런 고생은 하고 있지도 않았겠지.”
“알지요. 보스께서 응당 얻으셔야 했을 그것을 산산조각 내버린 장본인 아닙니까?”
“맞아.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내 이가 갈리고 뼈가 깎이는 것 같군. 그때 죽여 없앴어야 했는데... 그때 자네와 특전대를 불렀어야 했는데... 망할...”
“걱정 마십시오. 지금 콘라트의 이권을 놓고 업자들끼리의 아귀다툼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 정도 녀석은 우리 특전대가 손보기도 전에 바스러져 없어질 겁니다.”
“자네 말처럼 됐으면 좋겠군. 아무튼, 지금은 라자의 지시를 따르고, 내 명령을 기다리고 있도록. 이상.”
“알겠습니다, 보스.”
정장 입은 남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콜론은 고개를 숙여 인사한 다음 서재를 나선다.

테르미니 문화공원의 대극장 지구. 반원형으로 지어진 오래된 광장이 인상적이다. 지금은 유적으로만 남았지만 군데군데 남은 금속성의 장식, 구조물의 흔적, 그리고 무대에 설치된 각종 조형물은 이곳이 한때 제법 규모가 큰 곳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대극장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고 있다. 앞에 선 가죽점퍼를 입은 가이드는 미켈이라는 걸 멀리서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그 뒤로 들어오는 일행은 신기한지 시선을 고정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보고 있다.
그냥 모르는 사람이나 지나가는 사람이 본다면 여느 유적지의 관광객들처럼 가볍게 보고 지나갈 풍경이겠지만, 이 모습을 고깝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누군가가 있다. 무대 위쪽의 화단에 숨어서 이 광경을 보는 한 여자. 선글라스를 쓰고, 머리에는 두건을 뒤집어쓴 채로 일행을 유심히 보고 있다.

~~~~~~

진동으로 설정한 여자의 전화가 울린다. 가만히 화단에 숨어 있던 여자는 한숨을 쉬며 전화륿 받는다.
“여보세요?”
“아, 여보세요.”
여자는 짜증나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전화 너머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자는 남자가 말하는 것도 무시하고 짜증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아니, 왜! 나하고 아즈탄은 여기서 파울리 녀석을 상대하고 있는데.”
“아즈탄이 쓰러졌다.”
“에이, 설마.”
여자는 순간 김빠지는 웃음을 짓는다.
“아즈탄 같은 녀석이 왜 파울리 따위한테 쓰러져. 너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알잖아. 나하고 아즈탄은 한 팀으로 많이 일해 왔는데. 중독 능력이 얼마나 강한지...”
“믿지 못하겠지만 사실이다.”
중저음의 남자의 목소리가 떨린다.
“뭐.... 뭐, 뭣?”
“아즈탄은 조금 전에 테르미니 퍼스트의 바리오 카로노와 싸우다가 불의의 일격에 쓰러졌다. 하지만, 직전에 요긴한 정보를 하나 보내 줬지.”?
전화 너머의 남자의 목소리는 점점 침울해진다.
“아무튼, 너도 얼른 거기서 돌아와. 아즈탄이 쓰러졌으니, 너도 안전하리라는 보장이 없어.”
“아, 그래. 지금 바로 가지.”
전화를 끊는다. 여자는 조금 전까지의 짜증섞인 모습은 어디 갔는지, 웃음기가 싹 사라진 채로, 제법 침울해진 얼굴을 하고, 풀숲에서 나와 두건을 벗고 자리를 뜬다. 그래도 여전히 독기는 풀지 않았는지, 일행이 있는 쪽을 한번 흘겨보고 간다.

“...저기 밑에 있는 호수 사원을 위시한 이레시아인들의 도시가 본격적으로 형성될 때까지 각종 회합과 행사가 바로 여기 대극장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미켈이 대극장의 무대 위에 서서 무대 아래에 있는 일행을 보고 막 열정에 넘치는 설명을 이어 가던 그때.
“저기, 파울리 씨.”
조제가 궁금했는지 손을 들고 묻는다.
“아, 질문하세요.”
“비록 기술력은 차이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레시아인들은 그 당시에도 성간 우주선을 만들어서 식민지를 건설했잖아요? 그런데도 기술 같은 걸 빌려서 가상공간에서 모인다든가 하지 않고 굳이 이런 장소를 만들어서 모였다는 건...”
“그래서 제가 준비했죠.”
미켈은 바로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이어서 미켈이 AI시계의 홀로그램을 켜자, 어느 도시의 지도가 나온다. 큰 강이 2개 흐르고 있는 전형적인 대도시의 지도다.
“여기는 어디죠?”
“현재 이레시아인들의 도시 중 가장 큰 카라미아입니다. 물론 종족이 다르니까 좀 다른 것도 있고, 개인차도 있기야 하겠지만, 대체로 이레시아인들은 이런 광장 같은 곳에 모이는 걸 좋아합니다. 지도상의 분포를 봐도 알 수 있죠.”
“아...”
“지나쳐서 모르겠지만, 여기 테르미니, 그리고 세라토에도 이런 광장이 많죠. 사실 없다는 게 이상한 겁니다만...”
그렇게 설명을 마친 미켈은, 이제 대극장의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설명하기 위해 무대에서 내려오려고 발걸음을 옮긴다.
막 계단을 내려왔다고 생각했을 때...
“뭐... 뭐지?”
이상하다.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미켈은 무대 위에 서 있다. 무대에서 한 걸음 걸어 내려왔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히, 미켈이 느낀 감각은 무대에서 내려오는 것이었다. 혹시나 몰라서, 한번 다시 해 본다. 무대에서 한 걸음 앞으로 간다. 그리고 한 걸음 무대 아래를 내딛고...
“어? 아니, 뭐야?”
미켈은 한 발짝도 내려가지 않았다. 분명 그의 감각은 내려간 것임에도. 더 이상한 건, 분명 미켈은 예상하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옆자리로 옮겨가 있는 게 아닌가!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대체...”
미켈은 혼란스러운 상황을 뒤로 한 채, 아무 일도 없는 척 태연한 얼굴을 한다. 하지만 속으로는 적잖이 당황했다. 발걸음 몇 번 딛는 데 심사숙고를 한다든가, 이리저리 머리를 굴린다든가 하는 건 생각도 못 했다.
“파울리 씨!”
이번에는 니라차가 손을 들고 말한다.
“네, 말씀하세요.”
“혹시 파울리 씨가 잘 알고 계신다면, 여기 대극장의 이모저모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 네! 저로서는 영광이죠!”
미켈은 일단 그렇게 말했다. 손님들 앞에서 핑계를 대면서 못 한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발걸음은 미켈의 뜻대로 따라 주지 않을 게 분명하다. 그래도 어떻게든 행동은 취해야 한다. 살짝 왼손을 숨겨서, 현애 쪽으로 향하게 한 다음, 손짓을 몇 차례 한다.
“뭐야, 대체 뭐 때문에 저러는 거지?”
현애는 미켈의 손짓의 의미를 바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걸 보자마자, 미켈은 약 3초의 시간 동안 열심히 손짓으로 까딱거리며 아래쪽을 가리킨다.
“아니, 왜 저래? 아래쪽에 뭐가 있다는 거야?”

시어하트어택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1-06-09 13:49:43

어떤 이득을 얻기 위해서 보통 사람들이라면 열심히 노력하거나, 합법적으로 상대를 쓰러트리려 하겠죠. 소송전에서 이겨서 이득을 얻고, 그러면 재판비용도 패소한 측이 부담해야 하니까 국가권력을 이용하여 정당성을 보장받는 게 되니...그런데 이들은 상대를 죽여버리는 선택지를 고르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네요. 아무리 회사로 위장해봤자 본질은 절대 감춰질 리가...


무대, 뭔가 시간이 역전되는 것 같네요. 정말 저런 현상이 일어난다면...

죠죠의 기묘한 모험 3부에서 나왔던, 디오에게 다가가려 계단을 올랐지만 실제 행동은 그 반대가 된 것을 확인한 폴나레프의 공포감이라는 게 이렇게...

시어하트어택

2021-06-13 20:23:17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테르미니의 업계는 아주 살벌하게 바뀌어 버렸기에 저런 게 가능하죠. 이권이 워낙 크다 보니 개입한 세력도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많을 테고요.


무대가 저렇게 바뀐 것도 '누군가'의 수작이죠.

SiteOwner

2021-06-23 18:36:12

읽으면서 생각을 해 보니, 그렇습니다. 아름다운 관광지든 추악한 우범지대라도 악인은 있고, 그 악인들 중에는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살인도 거리낌없이 선택하는 자들이 있기 마련이라고. 악의 평범성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다는 게 드러납니다. 그렇다 보니 시원했던 여름날 저녁이 갑자기 오싹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게다가 공간감각이 왜곡되는 일까지 벌어지는군요. 꿈 속에서 간혹 저런 것을 느끼기는 하는데 현실에서 저런 일이 벌어지면 정말 경악할 것 같습니다. 누구의 소행인지는 몰라도 그게 불순한 목적에 안 쓰인다는 보장이 없기에...

시어하트어택

2021-06-24 08:16:39

사실 저런 레벨이라면 유럽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소매치기 같은 건 정말 가벼운 거죠. 사실 그런 데에도 폭력조직 같은 건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작중에서 나오는 정도로 대놓고 싸운다든가 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죠.


저도 오너님과 같이 꿈속에서 저런 감각을 느끼는 일이 많아서, 더 잘 공감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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