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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을 한번 보시지? 멀리서 답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도대체 누구야. 누가 장난을 치는 거지?”
자라가 목소리가 들린 쪽을 향해 돌아보니...
한 여자가 길을 가로막고 서 있다. 키는 좀 작아도 꼬장꼬장하게 생긴 그 여자는 운동할 때 입는 타이즈와 후드 점퍼를 입고, 검은 머리는 위로 묶어 올렸다.
“테르미니 퍼스트의 자라 아티크라고 했나? 딱 보기에는 그렇게 저돌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말이야.”
“내가 어딜 봐서...”
“그렇게 목소리가 확 올라가는 게 저돌적인 거 아니야?”
여자는 제법 여유롭게 말한다.
“역시 첫인상에서 오는 내 촉은, 틀리지가 않아.”
“그렇게 말하는 너는 누구지?”
“나? 간단히 말하자면, 슈뢰딩거 그룹이라는 에이전시에서 주로 유적 발굴 쪽으로 활동하고 있고, 이름은 ’소니아 보에레스쿠‘라고 하지. 방향은 달라도 결과적으로 추구하는 건 너희와 크게 다르지 않아.”
“결과적으로 추구하는 거라는 건...”
자라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간다. 소니아라는 여자가 무엇을 바라는 건지 생각하는 건,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맞아.”
“......”
“그리고 이건 확실하게 말할 수 있지. 분명히 너나 다른 멤버들은, 너희들이 아는 사실에 대해 함구할 거야. 하지만, 콘라트가 갖고 있던 이권은 대부분 너희들이 가져갔고, 우리 또한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든 찾아내야 하는 처지지.”
“그렇다는 말이군. 그럼 우리도 맞서 싸울 수밖에 없겠는데?”
자라는 망설임 없이 소니아를 노려보고 말한다.
“그리고 왜 굳이 나를 찾아서, 아니, 내 동료들을 찾아 이리로 왔는지도 알 것 같군.”
자라와 소니아가 잠시 긴장 섞인 눈빛을 주고받는다. 자라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자, 덤벼...”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뭐야. 어디서...”
자라도 소니아도 그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온 쪽이 자꾸 신경 쓰인다. 딱 들어도 여러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다. 거기에다가, 그 소리는 점점 자라와 소니아를 향해 가까워지고 있다.
“뭐야, 신경 쓰이게.”
소니아가 한번 돌아본다.
역시, 사람들이 가까이 오고 있다. 이쪽을 향해서.
“하, 이래 가지고는 더 추궁도 못 하겠잖아. 일단 좀 자세히 물어보는 건 나중에 해야겠군. 또 보자고.”
그 말만 남기고, 소니아는 황급히 뒤돌아서서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소니아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자라는 한숨을 푹 내쉰다.
“슈뢰딩거 그룹이랬지... 아까 그 아즈탄도 그렇고, 아무래도 우리의 앞에는 더 큰 산이 하나 나온 것 같군...”
자라가 그렇게 말하고 막 자리를 뜨려던 그때.
“자라 씨, 여기서 뭐 해?”
익숙한 목소리인데. 이 목소리는...
돌아보니.
“아, 놀랐잖아!”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현애.
“사람 놀라게 말이야!”
“혼자 여기서 뭘 하고 있던 거야?”
“그러니까... 어... 너는 뭐 하는데?”
“뭐 하긴. 여기 놀러 나왔지. 유명한 레스토랑도 있다고 하고 놀 곳도 많다고 하니까!”
“하... 간 떨렸잖아.”
자라는 정말로 떨린 건지, 자꾸만 몸을 떨며 한숨을 내쉰다.
“지금 나 식사하러 가기로 했는데, 밥 제대로 먹을 수 있을지나 모르겠다.”
“그럼 빨리 먹으러 가! 떨지만 말고.”
“그래. 또 보자.”
자라는 서둘러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뛰어가고, 자라가 사야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걸 확인한 현애도 방향을 돌린다. 그리고 잠시 후...
“어? 너 어디 갔다 왔냐?”
“맞아. 갑자기 안 보이더니...”
현애를 본 시저와 니라차가 놀란 듯 묻지만, 현애는 태연하다.
“아니, 화장실도 못 갔다 와?”
“그래도 이야기는 좀 하고 가지.”
“맞아. 맛있는 데를 찾았다고. 어서 가자.”
한편 그 시간, 카사 데 토르나도 호텔 1층의 로비.
정문에서 검은 리무진이 한 대 들어오자마자, 호텔의 직원 몇 명이 뛰어나가서 리무진 앞에 선다. 로봇 몇 대도 직원들을 뒤따라 리무진 앞에 선다. 리무진이 선 곳에는 벌써 또다른 정장을 입은 사람 몇 명이 대기하고 있다.
이윽고 훤칠한 키의 턱수염을 짧게 기른 한 남자가 리무진에서 내린다.
“도착했군...”
검은 리무진에서 내린 키가 크고 흰 정장을 입은 남자가 짧게 한마디 한다.
“테르미니 같은 아름다운 곳은 이런 일로 와서는 안 되는데...”
“맞습니다, 형님.”
뒤따라 내리는 또 한 명의 남자가 앞서 내린 키 큰 남자의 말에 맞장구친다.
“수백 년 전의 그 일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맞아, 비토리오. 너도 피오도, 오늘 이 시점까지 잘 참아 왔어. 물론 지금은 흔치 않은 기회이기는 하지만, 저돌적으로 달려들거나 해서는 안 돼. 특히 이번 같은 중대한 사안에는 말이지.”
“우리와 같이 안 오고 남겠다고 한 피오가 어떻게 보면 대단하죠.”
흰 정장을 입은 사람은 다름 아닌 발레리오. 대기하고 있던 정장 입은 사람들은 VP재단의 직원들. 직원들과 발레리오는 한 번씩 악수한다.
두 형제가 내린 리무진 뒤로, 또 한 대의 리무진이 뒤따라온다. 흰 정장을 입은 남자가 몸을 살짝 숙이고 리무진에 탄 사람들에게 내리라는 신호를 주자, 뒤따라 온 리무진에 탄 사람들이 일제히 내린다. 모두 세 명이다.
“다들 잘 왔네, 테르미니에!”
“바... 발레리오 씨가 잘 왔다고 한다면... 잘 온 거겠죠...”
앞에서 떨떠름하게 말하는 키 큰 남자는 파비안.
그리고...
발레리오는 뒤에 선 두 명의 여자를 본다.
“행운을 바라네, 둘 다.”
“네...”
메이링과 파라는 무겁게 대답한다. 발레리오가 메이링을 보더니, 뭔가 생각났는지 입을 연다.
“메이링 양, 그 술탄 트래블이라는 회사는 조사해 봤는데 수상한 점은 없었다고 했지?”
“네. 하지만 그곳 여행사와 유적 발굴 업계에 뭔가 수상한 정황이 있는 건 확인했죠. 아직 조사는 좀 더 해 봐야 합니다만...”
“고맙네.”
“이제 여기에 왔으니 좀더 철저히 조사해 봐야겠죠.”
“계속 힘써 주게.”
“이 호텔을 고른 것도 그런 이유가 크죠.”
메이링은 담담하게 말한다.
“여행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기에 있으면서 얻는 게 잃는 것보다 더 클 테니까요. 이 호텔이, 이를테면 그 업계의 사랑방 같은 곳이라니까요?”
“다 이유가 있었군. 나도 그 친구들의 여행은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런 뜻이 있었다니, 존중해 주는 수밖에.”
발레리오가 앞에 서고 그 뒤에 비토리오가 뒤따라 온다.
“자! 이제 들어가자고. 짐은 로봇들이 옮겨 줄 테니 그건 걱정하지 말고.”
막 걸음을 옮기려다가, 메이링은 뭔가 생각이 났는지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저, 발레리오 씨...”
“왜?”
“레아하고 호렌은 아예 못 오는 건가요?”
“글쎄... 요즘 꽤 바쁘다고 하니, 아예까지는 아니더라도 좀 힘들다고는 봐야겠지.”
발레리오의 목소리가 무겁다.
“바뀔 수도 있겠지만.”
시간은 흘러 오후 8시, 마운틴 로드 번화가. 현란한 조명을 갖춘 오락실에서 현애를 포함한 일행이 나오고 있다. 다들 재미있게 놀았는지 얼굴은 온통 벌게졌고 웃음기가 없어지지 않는다.
“자, 이제 들어가 볼까?”
시저가 웃음기가 없어지지 않은 얼굴을 하고 말한다.
“에이, 벌써 들어가요, 형?”
“그러게. 아직 좀 더...”
“오늘 9시에 TV에서 그거 하잖아... 그 뭐냐... 게임 리그 생중계!”
시저의 말에 다들 손뼉을 친다.
“아, 그거!”
“그건 못 참지!”
다들 맞장구를 치면서 호텔로 들어가기로 한다. 그런데 현애는 혼자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다.??
“뭐 해, 안 들어가?”
세훈이 궁금해서 묻자, 현애는 손짓하며 들어가라고 한다.
“먼저 가. 나는 여기서 뭐 좀 사고 들어갈 테니까.”
“그래? 알았어.”
세훈도 다른 일행을 따라 먼저 가고, 현애 혼자 자리에 남았다. 다들 시야에서 멀어져 가자, 몸을 돌려, 어느 기념품 가게로 향한다.
“저기서 판다고 했지.”
현애는 미리 봐 둔 게 있는지, 두리번거리거나 하지도 않고 바로 그 기념품 가게로 간다. 진열대를 보니, 눈에 잘 띄는 곳에 호수 사원 모양 과자 봉지가 있고, ‘가장 잘 팔리는 과자’라고 강조 표시까지 되어 있다.?
“이거 사면 다들 좋아하려나...”
막 과자 한 봉지를 향해 손을 뻗으려는데...
“잠깐.”
누군가가 현애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응? 누가 나를 불렀어?”
뒤를 돌아보니, 한 여자가 서 있다. 야구 모자를 비뚤게 쓰고 후드 점퍼와 타이즈를 입은, 현애보다 키가 작은 여자다. 그런데 이상하다. 저 여자를 본 적은 없는데, 어디서 본 것과도 같은 느낌이 현애를 확 사로잡는다.
“누가 나를...”
“불렀으면 좀 봐야지.”
“당신, 혹시 누구지? 나를 알아?”
“안심하라고. 지금 그쪽을 공격할 의도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 여자의 말과는 달리, 여자는 건드리기만 해도 바로 뭔가를 발산해 버릴 것 같은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 마치 건드리기만 해도 물어 버릴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상하게 끌어당기는 힘이 현애에게도 느껴진다.
“당신, 이건 뭐야? 초능력이 있는 거 아니야?”
“맞아. 그런데, 초능력이 있으면 다들 공격적인 건 아니잖아?”
“그렇기는 한데...”
현애는 여자의 시선을 피하려다가, 다시 여자를 보고 말한다.
“나는 지금 바빠서 시간이 별로 없거든? 용건만 말해 줬으면 좋겠는데.”
“콘라트 뮐러를 쓰러뜨렸지?”
“아, 맞아. 그런데 오해는 말라고. 그 사람은 그냥 여행 가이드일 뿐이야.”
“물론 알지. 나도 그쪽을 보려고 온 건 아니고, 단지 지나가다 마주쳤을 뿐이야.”
“그래?”
“아까 자라가 말 안 해 주던가? 나는 슈뢰딩거 그룹의 소니아 보에레스쿠야.”
“말 안 해 주던데.”
“그래...”
소니아는 잠시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입을 연다.
“아무튼, 그쪽이 의도치 않게 우리 업계의 사정에 휘말리게 된 건 정말 유감이야.”
“나도 마찬가지야.”
“앞으로는 우리 쪽 일에 관계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즐거운 여행 하다 돌아가기를 바라. 무슨 말인지 알겠지?”
현애가 소니아의 눈빛을 보니, 가식으로 하는 말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은근한 경계심이 말투에 녹아 있다.
“고마워.”
“나도 바빠서. 또 볼 일이 없기를 바라. 그럼 이만.”
소니아는 그 말을 남기고 빠른 걸음으로 어디론가 사라진다. 소니아가 사라지는 걸 본 현애는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더니, 이내 다시 기념품 가게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한숨을 푹 쉰다.
“휴... 그나마 이번에는 오해는 없으니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AI폰을 문득 꺼내 본다. 세훈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뭐 사 오길래 이렇게 늦어? 맛있는 거면 좀 많이 사와]
“하, 그래. 한 세 봉지는 사야겠네.”
현애는 바로 카운터 앞에 서서, 사원 모양 과자 세 봉지를 집어 든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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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1-06-16 14:12:32
또다른 조직이 등장하네요. 이번에는 슈뢰딩거 그룹이라는 이름의.
소니아 보에레스쿠는 루마니아계일까요. 아무튼, 여러 사람이 몰려드는 상황에서까지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역시 역부족이었나 보네요. 이것은 앞으로 일어날 불상사가 잠시 미루어진 것이겠죠...
현애에게 따로 접근해서 이야기를 하는 거로 봐서 이전의 악인들과는 좀 다른 부류같지만, 그래도 안심하기에는 이를 것 같네요. 오히려 저런 사람이 더 위험할 수도 있고.
결국 VP재단의 발레리오가 왔군요. 역시 그의 말대로겠죠. 방문한 이유는 중요하니까...
게다가, 수백년을 생존해 왔다 보니 경험과 생각의 무게 또한 일반인들의 것을 크게 능가할 거예요.시어하트어택
2021-06-20 22:55:13
이름은 대충 지었어도 슈뢰딩거 그룹이라는 조직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예정입니다. 익숙한 인물도 나오게 될 예정이고요.
상대 조직에서 저렇게 접근하는 건 다 이유가 있어서죠. 무슨 이유인지는 차차 밝혀지게 될 거고요.
SiteOwner
2021-07-02 20:00:54
이익은 역시 어느 누구의 편도 아니지요.
여기서도 여실하게 드러납니다. 콘라트가 죽고 나니 그가 보유하고 있던 이권을 찾아 합종연횡...
그리고 테르미니 퍼스트가 싫든 좋든간에 원한을 사고 있는 것도 분명하고, 곱게 끝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몇백년을 살면서 그 옛날의 장소를 방문한다면 감회가 어떨지...
혹시 근미래에 가능할 지도 모르다 보니 여러모로 상상되기도 합니다.시어하트어택
2021-07-04 20:25:31
앞으로 5일 정도 남았죠, 작중으로는. 그 안에, 어떤 일이 더 일어날지는 아직 베일 속에 가려져 있습니다. 그 안에 결판은 다 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