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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 시간, 유적 내부.
“자, 조금만 더 들어오시고, 저기 좀 넓은 데서 설명 시작하겠습니다!”
어느덧 계단을 다 내려간 미켈이 천천히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일행에게 빨리 내려올 것을 재촉한다.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유적 내부는 바깥의 빛이 별로 안 들어오는 공간임에도 의외로 점점 더 쾌적하게 바뀌어 간다.
“오, 여기 의외로 꽤 괜찮은데. 며칠이고 있어도 아무 상관 없는 거 아니야?”
세훈은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는다.
“이런 데가 호텔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야, 꿈 깨라.”
또다시 현애가 핀잔을 준다.
“이런 데가 호텔이면, 옛날 무덤은 대저택이겠네?”
“뭐, 틀린 말은 아니지. 그 시절 사람들은 정말 그런 의도로 만든 거니까.”
“그래... 네 말도 틀린 건 아니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미켈이 서 있는 넓은 공간이다. 일행이 다 내려오자, 미켈은 기다렸다는 듯 손뼉을 치며 일행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자, 자, 여러분!”
미켈의 말에 일행이 돌아보자, 미켈은 기다렸다는 듯 목소리를 더 높인다.
“주의하실 점이 하나 있습니다. 첫날에도 잠깐 말씀드리기는 했습니다만, 테르미니와 그 주변에 있는 이레시아인의 유적들은 현재도 채굴 및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구역이 많습니다. 이 지하 유적도 예외는 아니죠. 따라서 탐방로 중에 제한구역이 많을 수 있고, 여러분이 지금 다니는 구역도 엄격한 절차를 거쳐 개방된 구역입니다.”
미켈은 잠시 가방에서 텀블러를 꺼내서 물을 마신다. 물을 마시려던 미켈이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지만, 일행은 눈치채지 못한다. 순식간에 지나간 일이라 그런 것이기는 하지만. 잠시 후 미켈이 다시 설명을 시작한다.
“자, 여기 지하 유적에는 특징이 몇 가지 있죠. 첫 번째로는, 쾌적한 내부 환경입니다. 내려오는 동안 습하거나 땀이 찬다든가 하지는 않으셨죠?”
하지만.
그렇게 말을 꺼낸 미켈 자신도 당황스러웠는지 잠시나마 말을 잇지 못한 채 시선을 한군데에 두지 못한다. 이 가려운 느낌, 그리고 축축 젖은 듯한 감촉...
“뭐야...”
어느 새 미켈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 있다!
“아니, 이건 또 대체 어느새 이렇게 된 거지...”
미켈은 물을 마시던 텀블러를 다시 꺼내서 이리저리 본다. 이상하다. 분명 70% 정도 차 있을 텀블러 속의 물이, 절반 정도밖에 남지 않은 것이 아닌가!
“이상한데 이거... 내가 마신 것도 아니고...”
미켈이 알기로, 이곳의 습도 조절은 웬만한 현대에 지어진 구조물 이상으로 뛰어나, 굳이 기계를 따로 설치하지 않아도 될 정도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일행이 들어오자마자 습기가 생기다니?
3초도 안되는 시간 사이, 미켈의 머릿속의 촉이 누군가에게 향한다.
“여러분, 잠시 죄송합니다.”
미켈은 잠시 고개를 돌리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이상하다.”
그걸 지켜보던 현애가 중얼거린다.
“진짜 미켈의 설명이 맞기는 한 건가? 쾌적하기는커녕, 오히려 땀이 점점 맺히는 것 같은데... 그런데 어디다 전화를 거는 거야?”
“기다려 보자고.”
옆에서 세훈이 조그맣게 말한다.
“그렇게 신경 쓸 일은 아닌 것 같지만...”
한편, 이곳은 사적공원 주차장.
검은 리무진이 한 대 주차되어 있고, 그 안에 남녀 2명이 앉아 있다. 두 사람은 다름 아닌 파라와 비토리오.
“평일이라 그런 걸까요?”
운전석에 앉은 파라가 옆의 비토리오에게 말한다.
“관광객은 좀 적은 편이네요.”
“아니죠. 그저 상대적으로 적어 보이는 것뿐. 절대적인 수로 따지면 다른 관광지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오는 곳이 바로 이곳이죠.”
“그런데 딱 봐도 관광객은 아닌 사람들도 좀 보이는 것 같고, 트럭이라든가 굴삭기 같은 좀처럼 보기 힘든 차들도 많이 보이고 하니, 범상한 유적은 아닌 것 같아 보이네요.”
“요즘 이쪽에서 유물 발굴 작업이 꽤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니까요.”
비토리오는 파라와 이야기하면서도 홀로그램 상에 나타나는 데이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저, 비토리오 씨, 그건 다 뭐죠?”
“이거요? 저 나름대로 이쪽 업계에서 오고 간 자료들을 모아서 분석하고 있죠.”
“흠... 그런다고 뭐가 더 나올 게 있을까요?”
“축적된 자료라는 건 생각 외로 꽤 큰 힘이 되죠. 모으고 모으면,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죠. 정보를 합치는 건 더하기가 아닌 곱하기 그 이상이라고 해도 되겠죠?”
“하긴...”
그때.
몇 대의 작업용 차량과 버스 한 대가 리무진 옆에 멈춰선다. 모르는 사람이 봐도 관광객이 탄 차로는 보이지 않는다. 차에서 작업반장으로 보이는 사람 몇 명이 내린다. 한 명은 반삭 머리에 약간 짙은 피부의 남자, 또 한 명은 몰캉한 감촉으로 보이는 피부의 여자. 그중 반삭 머리의 남자가, 리무진에 탄 사람들을 유심히 살피더니...
파라가 탄 차문에 노크하는 소리가 들린다.
“음?”
반삭 머리의 사파리 복장을 한 남자가 손을 흔들고 있다. 차 안의 비토리오와 파라가 얼른 보기에도, 이 남자가 오늘 작업의 총책임자인 듯하다. 그런데 그 반삭 머리의 남자는, 특히 파라에게 아는 척을 한다.
“어? 나를... 아나? 아니면... 내가 알던... 사람?”
그의 얼굴을 한번 보자, 파라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있다.
2년 전 무전여행. 아직도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말이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세계를 다니며 경험을 많이 쌓기도 했지만, 두 다리를 잘렸던 그때는 정말 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동행했던 사람들이 특히 기억에 남아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그 전에 만났던 사람들은 얼른 기억해 내기 어려운데...
다시 한번 노크하는 소리가 들린다. 파라가 한번 더 밖을 내다보자...
그 반삭 머리의 남자가 파라를 보고 손을 흔들고 있다.
다시 보니 파라에게 좀 익숙한 얼굴이다. 2년 전에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어... 어?”
반삭 머리의 남자의 얼굴을 스윽 본 순간, 꽁꽁 싸매어 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파라는 곧바로 차에서 내려서 반삭 머리의 남자와 마주 선다.
“응... 자라...? 자라, 맞지?”
“그래... 너는... 분명...”
자라 역시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리고는, 기억을 끄집어낸다.
“레슬리 록웰이었지?”
“아... 맞아. 가명이었기는 하지만.”
“가명인 건 진작에 알고는 있었기는 한데...”
“자.”
파라가 명함을 하나 꺼내 자라에게 보여준다.
“어... 그래. 파라 사라고사... 뭐 뒤는 기니까 생략하고. 이제 이름하고 매칭이 좀 되네. 레슬리 록웰이라는 이름은 왠지 너한테 안 어울렸다고.”
자라는 파라의 얼굴과 명함을 번갈아 보며 말한다.
“2년 동안 잘 지냈던 거야?”
“뭐... 보는 것처럼.”
그렇게는 말하지만, 파라는 마냥 웃지는 않는다. 자라 역시 파라의 다리를 유심히 보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로 온 거야? 지금쯤 제약사 연구소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었어?”
“아, 무슨 일이냐면...”
파라가 막 대답하려고 할 때, 비토리오가 끼어든다.
“잠시 죄송합니다. 여기 파라 씨하고는 혹시 잘 아는 사이인가요?”
“2년 전에 여행하다가 마주쳤다고 해야 하나... 며칠 같이 다녔던 것 말고는 없는데요.”
“그럼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지금 하는 작업이 무슨 작업인지 알 수 있을까요?”
“별 것 아닙니다. 이 주변 유적들의 발굴이 요새 좀 활발하거든요.”
“그래요?”
“이 지역의 여행사나 광업 회사들 중에 유적 발굴에 손을 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죠.”
“최근에 연구 같은 게 좀 많이 진행되거나 한 모양이로군요.”
비토리오는 대략적인 배경은 알고는 있지만, 애써 시치미를 떼 가며 말한다.
“아까도 오면서 봤는데, 이런 장비들만 최소 10대 정도 본 것 같습니다.”
“그렇죠. 다들 ‘그 유물’을 찾느라 그래요.”
“유물 하나 가지고 저렇게 많은 업체들이 경쟁을 벌인단 말입니까?”
“실제로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기록상에는 이 테르미니 일대의 이레시아인 유적 중 하나에 확실히 있거든요. 그것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파급은 어마어마할 거고요.”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비토리오, 파라와 짧은 눈인사를 나누고, 자라는 다시 자기 일을 하러 간다.
“어, 자라! 마침 잘 왔어.”
자라를 보자마자, 도레이가 빨리 오라며 자라를 부른다.
“미켈이 너 찾던데.”
“미켈? 저기 지하 A사원에 들어간 거 아니야? 그런데 왜 나를 찾지?”
“누가 공격을 하고 있다고 그러던데, 꽤 은밀하게 공격하고 있나 봐.”
자라가 미켈과 메시지를 주고받은 내용을 도레이에게 보여주자, 도레이는 뭔가 감이 오는 듯 그 메시지를 유심히 살피다가...
“헤, 녀석들 참 별별 수단을 다 쓰네. 꼭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글쎄, 관광객들 앞에서 망신을 주기에는 의외로 효과가 높을 수도...”
“그래?”
자라가 잠시 뜸을 들이고 입을 연다.
“그럼 도레이 네가 한번 가 봐야겠네.”
“아니, 내가 왜? 나는 원래 여기 작업 감독하기로 했잖아.”
“네 능력이, 미켈을 구하기에는 가장 적당한 것 같아.”
“그래...”
도레이는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말끝을 줄이며 지하 A사원 방향으로 간다.
한편 유적 지하.
“야, 그런데 여기 왜 이렇게 습하냐?”
사원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던 조제가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말한다. 조제의 이마에는 어느새 땀이 몇 방울 맺혔다. 분명, 여기는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습하다고는 아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쾌적한 환경이었다. 그런데 불과 몇 분 새에 이렇게 되고 만 것이다!
문득, 조제에게 벽을 기댄 등이 좀 습하다는 느낌이 든다. 얼른 등을 벽에서 떼어 본다.
“아니! 여기는 또 왜 이래?”
조제가 등을 기대고 섰던 곳이 젖어 있다. 벽 자체에서 물이 새어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조제가 그새 땀을 많이 흘린 건지 모를 정도로.
“어? 뭐... 뭐지?”
조제 옆에 있는 외제니가 벽에 잠시 손을 대자...
“읏... 왜 이래!”
불쾌했는지 외제니의 얼굴이 꽤 일그러진다. 손바닥에는 벽에서 흘러나온 물이 잔뜩 묻었고 거기에다가 황토색의 가루 같은 것까지 잔뜩 묻었다.
“이거 도대체 뭐냐고!”
일행이 하나둘씩 볼멘소리를 내뱉는 가운데, 현애와 세훈은 재빨리 미켈의 옆으로 가서, 목소리를 낮추고 말한다.
“미켈, 대체 무슨 일이지? 쾌적하다는 유적에서 왜 습기가 이렇게 많이 나오는 거야?”
“파울리 씨, 원래 이 지하 유적은 파울리 씨의 설명대로 쾌적한 거 맞죠?”
“아... 맞지. 내가 여기를 많이 다녀 봐서 아는 거거든. 그래서 이건 내가 공격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거고.”
“그럼 이건... 누가 초능력을 사용해서 습기를 올리는 걸까요?”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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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1-06-21 19:02:45
굉장히 기묘한 상황이네요.
쾌적하다는 곳이 실상은 음습하다니, 역시 섬뜩한 감을 지울 수가 없어요. 뭐랄까, 성우로 치면 츠다 켄지로의 목소리랄까요? 죠죠의 기묘한 모험 1부의 브루포드, 5부의 티치아노라든지...그런 음습함이 느껴지네요.
만일, 그렇게 습도를 높이는 게 초능력의 결과라면, 굉장히 위험한 능력같네요. 만일 일정한 습도 이상에서 반응하여 폭발하는 폭발물을 설치했다면...
사람의 운명이라는 것은 알 수 없네요. 이런 데서 만나게 되다니...
시어하트어택
2021-06-27 22:06:32
일단 저것과 비슷한 상황이라면, 건물에 에어컨 같은 게 고장나서 온도와 습도가 미칠 듯이 오르는 상황이 있겠죠. 실제로 겪어보니 불쾌하고, 버티지를 못하겠더군요.
파라의 여행기(?)는 나중에 한번 단편 같은 걸로 써 볼까 생각중입니다.
SiteOwner
2021-07-10 20:49:40
늦은 장마의 불쾌함을 퇴로가 제한된 지하유적에서 만나다니...
오늘 꽤나 눅눅했다 보니 묘사된 상황의 끔찍함이 더욱 부각되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1993년 고등학교 1학년 때 수학여행에서 봤던 경주 토함산의 석굴암이 같이 생각나서 떨떠름한 감을 감출 수 없습니다. 당시 본 석굴암 본존불은 내부에 습기가 차는 문제로 인해 유리격벽이 쳐져 있는 상태였고 내부에 설치된 조명을 통해서 그 모습이 부분적으로 드러나는 상태였습니다.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석굴암 본존불의 아름다움 등은 거의 느낄 수 없는...
역시 음습함은 견디기 힘든 것입니다.시어하트어택
2021-07-11 22:14:10
요즘 아주 절실하게 느끼는 것이기도 합니다. 무더위를 떠올리며 쓴 파트거든요... 그래서 아마 오너님도 그렇게 느끼셨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