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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훈은 순간 일행의 이목이 집중될 것을 걱정했는지, 세훈은 다시 모기 소리보다 더 작을 정도로 목소리를 낮춘다.
“뭐야, 그게. 저 사람이, 파울리 씨가 아니라고?”
“비슷해 보이는데, 아니야. 미켈은 가이드야. 가이드가 하는 것 중에 여러 가지 일이 있디는 하지만, 여기까지 오면서 어떻게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도 일 중 하나라고. 그런데 그걸 2분간 하나도 안 했다는 게 말이 돼?”
“그건 그렇기는 한데...”
세훈도 한순간 의심은 들기는 했지만, 아직 현애처럼 앞에 있는 사람이 미켈이 맞는지 의심하는 단계는 아니다. 아직은 그건 상식선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아직은.
“사람이 한순간에 바꿔치기된다는 게 말이 되나? 내가 아는 상식에서는 별로 아닌 것 같은데...”
“만에 하나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거지! 우리는 지금껏 그것보다 더한 일도 많이 겪었잖아!”
“하긴, 그래.”
세훈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현애의 말마따나, 세훈도 올해 내내 상식을 뛰어넘는 일들을 많이 겪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 네가 한번 파울리 씨한테 말 한번 걸어 볼래?”
“좋아.”
약 5초 후.
“저기...”
현애는 바로 앞에 가는 미켈에게 말을 건다.
“미켈.”
“어? 어어어...”
앞에 걷던 미켈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얼버무린다.
“미켈? 어... 당신, 미켈 아니지?”
“......”
앞에서 걷는 ‘미켈’은 대답을 피한다.
“미켈의 모습을 했는데 미켈이 아니라면...”
“잠깐.”
세훈이 뭔가 생각났는지 끼어들며 말한다.
“파울리 씨한테 쌍둥이 형제가...”
“맞아. 내가 가브리엘 파울리야!”
앞에 걷던 사람은 다름아닌 미켈의 쌍둥이 가브리엘. 하지만 쌍둥이라고 해도 이렇게 똑같이 닮았을 줄은 몰랐다. 옷차림이며 헤어스타일, 목소리까지 말이다.
“반가워. 가브리엘이라고 하면 되겠지?”
“아, 그렇게 부르면 돼. 너희들하고 너희들 팀에 대한 이야기는 크루들한테서 들었어.”
현애가 살짝 인사하자, 가브리엘도 바로 말한다.
“사실 나는 여기서 발굴 작업 하고 있던 건데...”
“어, 그래? 미켈은 어디 가고?”
“그게... 내가 현장에 돌아오는 길인데, 갑자기 미켈이 사라지지 뭐야!”
가브리엘은 많이 당황했는지, 지하 공간 안인데도 얼굴이 창백해진 게 눈에 뚜렷하다.
“도대체 이번에는 어떤 녀석들이 이러는 건지!”
“그럼 한번 내가 찾아봐도 될까?”
“네가 간다고? 안돼!”
현애가 불쑥 말하자, 가브리엘이 황급히 현애를 말린다.
“미켈이 지금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네가 나서기만 한다고 될 일이야?”
“미켈이 사라진 지 3분밖에 안 지났어. 무슨 초고속능력 같은 게 아닌 이상은, 여기서 멀리 있는 것 같지 않거든? 그러니까, 내가 한번 찾아봐도, 상관은 없겠지?”
“너, 너무 무모한 거 아니야? 너 혼자 찾으러 간다고?”
“그래서 말하는 건데, 여기 너희 동료 중 누구 하나 없어?”
“있기는... 한데...”
“그럼 찾으러 갔다 올 테니까, 사람들 좀 봐 주고 있어.”
“하... 야! 그건 내가 할 말 아니야?”
가브리엘이 정말로 놀란 건지, 아니면 어이가 없었는지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그래. 뭔가 대사 바꿔 말하기 같네.”
세훈도 맞장구친다.
“내가 생각해도 여기 파울리 씨하고 하는 말이 바뀐 것 같아.”
“3초 안에 대답해. 너 나하고 갈 거야, 안 갈 거야?”
“어...”
세훈이 잠시 망설이다가, 답을 못 한 채 3초가 흐른다.
“그럼 간다. 붙잡지 마.”
3초도 안 되는 사이, 현애는 세훈과 가브리엘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너... 너무 무모하잖아... ”
가브리엘은 한순간 사라져 버린 현애가 있던 자리를, 허탈했는지 멍하니 바라본다.
“원래 저런 애였어?”
세훈은 바로 고개를 끄덕인다.
“하... 뭐 저래...”
가브리엘은 주변에 있는 자라와 도레이에게 전화도 걸고, 메시지도 보낸다. 하지만 1분이 지나도록, 모두 받지 않는다.
“왜 다들 안 받아. 그냥 내가 가 봐야 하는 건가?”
한편, 일행이 있는 통로 바로 밑에 있는 또다른 통로. 이곳도 지하 A사원의 통로 중 하나이기는 하지만, 현재는 관광객들에게 개방하지 않고 발굴 작업을 하는 사람들만 드나들고 있다. 거기에다가 바로 위의 통로에서 지척으로 가까우면서도 전혀 보이지 않는 구조인데, 즉, 그렇다는 건...
“이 자식들... 뭘 하려는 거냐?”
한 남자가 자루 안에서 얼굴만 내민 채 자신을 둘러싼 두 사람을 노려보며 말한다.
“용건이 있으면 그냥 말로 하면 될 일이지...”
“좀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지, 파울리.”
투블럭으로 머리를 짧게 깎은, 차가운 인상을 풍기는 여자가 얼굴만 내민 미켈을 경멸하듯 노려보며 말한다.
“애초에 당신이 쉽게 불 것 같았으면 우리가 이러지도 않았어.”
“당신들 뭐야, 납치 공갈단이야?”
“납치, 공갈단이라고요?”
산발하고 수염까지 기른 남자가 속이 상한 듯 미켈을 노려보며 말한다. 순간, 미켈은 이 남자를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산발한 머리와 수염을 가지고서는 바로 연상해 내기 어렵지만, 푸른 제복, 그리고 어깨에 붙은 로고를 보자 미켈의 확실하지 않았던 기억이 확실해진다. 아까 매표소에 있었던 바로 그 매표원이 아닌가!
“파울리 씨, 말씀이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만. 애초에 우리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 건데, 납치 공갈단이라니 그게 가당키나 한 말씀이신지요?”
“그래. 요즘 우리 업계가 좀 많이 살벌하긴 하지.”
미켈은 얼굴을 붉히며 대꾸하는 대신 허탈한 듯 웃는다.
“너희도 필요한 게 있으니까 나한테 이러는 거 아니야.”
“그 말이 옳아, 파울리. 우리가 원하는 건 의외로 어렵지 않지.”
짧은 머리의 여자가 다시 말한다.
“지금 여기서 다들 유적 발굴에 여념이 없지? 당신네 일행 말이야.”
“아, 그래.”
미켈은 무덤덤하게 말한다.
“다들 유적 발굴에 관심이 쏠려 있지.”
“그래, 파울리. 당신과 당신의 동료들이 그간 유적 발굴 사업에 공헌에 온 게 참 많지. 그건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야. 하지만, 이걸 알아야겠지. 테르미니에서 당신과 테르미니 퍼스트는 그 소임을 다했다는 거야.”
“하, 누구 마음대로?”
미켈은 자루 안에서 머리만 내밀고 있으면서도 남자와 여자에게 눈을 있는 힘껏 부라리며 말한다.
“너희들에게 그런 권한은 없을 텐데.”
“그건 두고 봐야 아는 것 아니겠습니까, 파울리 씨.”
산발을 한 매표원이 제법 정중하게 말한다.
“저희도 잘 압니다. 여기 테르미니가 누구 때문에 이 꼴이 되었는지 말이죠. 흔히들 콘라트 뮐러가 이렇게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그 뒤에 또 누군가 있다는 것도 알죠. 의도치 않게 당신들이 콘라트가 갖고 있던 권리를 가져간 건 저희도 뭐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만, 그것 때문에 당신들과 다른 업자들이 계속 고생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잖습니까.”
“좀 말 같은 소리를 하지 그래.”
“만일 여기서 잘 생각하지 않으면, 파울리 씨와 동업자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장담할...”
매표원의 말이 막 거기까지 이어지던 그때.
“으... 응?”
매표원이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여자에게 말한다.
“어이, 나오미.”
“왜 그래?”
“발 좀 시리지 않냐?”
매표원의 말에도 여자는 정말 모르는 건지, 아니면 그냥 모르는 척하는 건지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다.
“어이, 나오미! 발 안 시리냐고!”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조나! 네 발 시린 거하고 내 발이 도대체 무슨 상관인데!”
나오미라고 불린 짧은 머리의 여자가 조나라고 불린 매표원에게 성을 낸다.
“괜히 헛소리 하지 말고...”
“아니, 진짜인데...”
조나가 막 나오미에게 말대꾸를 하려는데...
“뭐야, 발이 안 움직여!”
어느새 지면을 타고 올라온 얼음에 조나의 발이 사로잡혀 버렸다. 조나의 귀를 찬 공기가 때리는 건 덤이다.
“뭐야, 내가 제시간에 온 건가?”
미켈의 귀에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미켈의 눈에 바로 보이는 건...
“야, 네가 여기 왜 내려와!”
미켈은 현애를 보고 소리지른다. 팔이 자루 안에 들어 있지 않았다면 아마도 삿대질을 해 가며 가라고 했을 것이다.
“여기는 네가 올 곳이 아니야! 도로 올라가! 위에 가브리엘 있잖아!”
하지만 현애는 마치 미켈의 말을 무시라도 하는 듯, 미켈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그 옆을 지키고 서 있는 두 사람을 보고 말한다.
“경고하는데, 거기 자루에 있는 녀석 당장 풀어 놔. 안 그러면 어떻게 될지 몰라.”
“하, 말 같지도 않은 소리는 집어치우시고.”
조나는 바로 현애에게 달려들려다가, 두 발이 얼음에 묶여 버린 걸 깨닫고는 신발을 벗는다. 맨발로 바닥을 딛고 섰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먼저 이 녀석이 왜 여기 이렇게 묶여 있는지부터 생각해 보시지.”
“내가 그걸 왜? 발을 헛디뎌서 자루 속에 빠진 거 아니야?”
“아니지. 그건 우리가 원하는 답이 아니야.”
지켜보던 나오미가 현애를 노려보며 말한다.
“애초에 여기 통로는, 저 위의 통로로 정상적으로 가려면 아주 멀리 빙- 돌아서 가야 한다고. 그런데 파울리하고 네가 여기 이렇게 쉽게 도착한 이유는 뭘까?”
“뭐, 알겠어.”
현애는 감이 왔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서도 온몸에 두른 냉기는 풀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하나야. 당장 파울리를 풀어놓고 돌려보내라는 거지.”
“그래? 그거 좋군.”
조나가 코웃음치며 말한다.
“하지만 그냥은 안 된다는 걸 알아야 한다!”
이상하다.
현애의 앞에 선 조나는 왜 공격을 안 하는 것인가?
아무리 조나에게 뭔가 꿍꿍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이건 이상하다. 금방이라도 공격을 할 기세인데 공격을 안 한다는 게 뭔가 이상하다?
“뭐야, 왜 공격을 안 하는 거야?”
현애도 이상했는지 조나에게 묻는다.
“공격을 한다는 녀석이 안 하고 있으면 어떡해?”
“어이, 조나.”
나오미가 팔짱을 끼며 말한다.
“역시 그 명성은 어디 가지를 않는데.”
“내가 뭘!”
“왜 우리 단장도 인정했잖아. ‘조나는 겁쟁이다. 겁-쟁-이.’”
한껏 놀려대는 나오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야, 나오미! 너 도대체 누구의 편이냐?”
준비 자세를 취하던 조나가 열받았는지 나오미를 보고 소리지른다.
“우리 단장이야, 아니면 여기 묶여 있는 파울리야? 빨리 말해!”
“호오, 지금 위기 상황인데도 대처를 안 하는 걸 보면, 너는 확실히 파울리의 편이네?”
“뭐라고오오옷!”
조나가 폭발하려고 한다. 나오미든, 현애든, 미켈이든, 누구든 그를 건드리면 임계점을 넘어 폭발할 지경이다. 하지만 방향을 모르고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기세는 오히려 더욱 혼돈스럽게만 보인다.
이때다. 현애의 눈에 조나의 빈틈이 들어온다.
다리 쪽이 비었다. 다리 쪽을 노리면 되겠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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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1-06-27 00:16:55
드디어 미켈과 쌍둥이형제 관계인 가브리엘이 등장했네요.
그런데 갑자기 가브리엘이 등장한 것도 이상하고, 게다가 미켈 본인은 납치되어 있는 몸이고...
이번에는 현애가 냉기능력을 사용하는데, 현애가 약간 경솔해 보이네요. 전근대의 라인배틀도 아니고, 왜 공격을 안하느냐고 묻는 게 상당히 기괴하게 보이고 있어요.
조나와 나오미의 내홍도 꽤나 곤란하네요...
시어하트어택
2021-06-27 22:14:29
좀 기묘한 상황이기는 합니다만, 두 사람이 다투는 저 상황 자체도 '전략'입니다. 일단은. 다음 화에 그 전말이 나옵니다.
가브리엘 같은 경우 언젠가는 등장을 시키려고 했는데 좀 앞당겨서 나오게 됐습니다.
SiteOwner
2021-07-10 20:50:06
역시 문제의 그 미켈 아닌 파울리는 가브리엘이군요.
그렇습니다. 쌍둥이는 유전자적으로 동일할 뿐 인격이나 경험까지 동일한 것은 아니니까요.
대학생 때 교제했던 여학생 중 쌍둥이자매가 있었습니다. 그 중 1명은 저와 친해서 교제중이었지만 다른 1명은 저에 대해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교내에서 그 다른 1명을 불렀는데 대답없이 지나치는 것을 보고 쌍둥이자매인가 하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런 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녀와 저를 비방중상하기 바빴다가 진상이 알려지고 나서는 어떤 사과도 없었습니다. 끔찍한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만, 모욕당한 그 여학생에게 사과하지 않은 건 대체 무슨 양심인지...
원래 안하던 짓을 하면 뭔가 의심해봐야 하는 법.
조나와 나오미가 대체 무슨 의도로...시어하트어택
2021-07-11 22:33:39
그런 일을 겪으셨군요...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으셨을 듯합니다. 참으셨다는 게 대단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