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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40분, 지하 사원 묘지 구역.
“뭘 정산하겠다는 건지, 알고 싶은데.”
나오미가 모른다는 듯 말하자, 자라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고는, 목소리를 조금 높인다.
“알잖아. 몇 년 전에 처음 사업차로 만났을 때부터 삐걱거렸지. 그러고서 몇 번 더 부딪쳤지, 아마? 한 번은 내 거래를 고의로 망치려고도 했고.”
“그래... 그랬던 것 같군.”
나오미는 아니꼽다는 듯 자라를 노려보지만 인정할 것은 순순히 인정한다.
“그리고 여기서도 나를 몇 번씩이나 방해했지.”
“아, 그거? 인과관계에 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방해한 건 그쪽이지 우리가 아니잖아.”
“내가 알기로는, 이쪽은 원래 우리가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어.”
자라가 신경전을 벌이려는 듯 하자, 나오미도 지지 않겠다는 듯 자라를 보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데 어거지로 끼어든 쪽이 어디더라?”
“그래... 어디서부터 시작했다고 할지도 참 애매하네.”
나오미는 난감하다는 듯 고개를 한번 흔들고는 말한다.
“자, 그러면 네 말대로, 지금 정산하자고. 동의하나?”
“그래.”
나오미의 말에 자라도 고개를 끄덕인다.
“준비는 됐겠지?”
나오미의 눈앞에 있는 자라의 몸으로부터 강한 초능력의 아우라가 발산되는 모습이 보이자, 나오미 역시 지지 않겠다는 듯 자라를 향해 붉은 줄을 뻗기 시작한다.
“물론, 이쪽도...”
나오미 역시 자라의 말을 맞받아치며 막 목소리를 높이려던 찰나...
♩♪♬♩♪♬♩♪♬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자라와 나오미, 둘 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야, 자라! 안 오고 뭐 하냐?”
자라의 전화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도레이의 목소리.
“작업은 안 하고 지금 어디 처박혀 있는 거야?”
“아니, 나는 미켈을 좀 도와주려고 하던 건데...”
“빨리 나와! 지금 점심 시간 다 됐잖아!”
“아, 그건 그런데...”
“안 나오면 우리만 먹어 버린다?”
한편 그 시간.
주차장에 있었던 검은 리무진은 어느새 유적 사이로 난 도로를 지나고 있다. 파라와 비토리오는 사진을 찍고, 홀로그램에 기록한다. 물론 수동운전이 필요할 때는 파라가 운전대를 잡기는 하지만.
“저기... 비토리오 씨.”
“말씀하세요.”
“이쪽 유적군은, 유독 발굴 인력이 많이 보이네요. 예상은 했기는 하지만, 제 예상보다 훨씬 많아요. 이거는 뭐... 거의 건설 현장 수준인데요?”
“건설 현장 수준이라... 이것보다 더한 광경은 못 보셨나 보군요.”
“이것보다, 더한 광경이라니요?”
“이것보다 몇 배는 규모가 큰 발굴 현장도 몇 번 본 적이 있지요. 재단 일로 여러 행성에 가 보다 보니, 이런 건 큰 축에도 못 끼더군요.”
“그래요... 큰 프로젝트를 많이 겪으셨나 보군요.”
“하지만, 제가 과거에 가 본 그 어떤 곳도, 지금과 같이 살벌하지는 않았지요.”
“살벌한 거요?”
비토리오의 말에 파라는 잠시 뭔가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금방 답을 내놓는다.
“그런 거라면, 2년 전에 좀 더한 걸 많이 겪었죠.”
“2년 전이요?”
“네. 무전여행을 간다고 시작했던 게 밀수업자 같은 합법과 불법을 넘나드는 사람들과 많이 엮이게 됐고, 마지막에는 두 다리까지 잃었죠.”
“그런 경험은 정말 하기 힘들 텐데...”
“그런데 이상한 게 뭔지 알아요?”
“뭔데요?”
“여기는 한 번도 온 적이 없는데, 마치 제가 여기 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거 있죠?”
“그래요... 저도 비슷한데.”
“비토리오 씨도요?”
“네.”
비토리오는 꽤나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다.
“아마도... 그 사람 때문일지도요. 파라 씨도 만난 적이 있겠죠?”
“네...”
파라의 목소리가 어두워진다.
“그리고 지금도 가까이 있다는 느낌이 들고요.”
어느덧 시간은 12시 10분.
일행이 와 있는 곳은 꽤 규모가 큰 ‘골든 슈린’이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의 메인 홀이다.
유적에 어울려 보이는 황토색 외관의 건물의 3층에 있는 홀은 매우 전망이 좋은 편이어서, 비록 창가가 아닌 안쪽의 자리일지라도 통유리 창 너머로 유적들이 훤히 보인다. 그 중에도 일행이 앉아 있는 곳은 전망이 좋은 창가의 원형 테이블 3개다.
3시간 동안의 여정으로 조금은 지쳤지만, 특히 현애와 세훈, 미켈은 싸움 때문에 좀 더 많이 체력을 쓰기는 했지만, 겉으로는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 일행과 미켈은 점심 식사를 기다리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역시 패키지는 패키지네.”
현애와 세훈의 옆에 앉은 니라차가 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에 한껏 취했는지 미소를 가득 머금고 말한다.
“식사 하나도 이렇게 고급식이라니 말이야.”
“너 패키지 여행 한 번도 안 가 본 것처럼 말한다.”
“에이, 내가 무슨 이런 여행을 많이 가 보기나 했겠어?”
세훈의 말에 니라차가 바로 웃으면서 말한다.
“부모님 많이 바쁘시잖아, 그래서 이런 기회가 좀처럼 없었지. 그러다가 이번에 겨우 기회가 생긴 거야. 그나마도 오빠들은 오지도 못했고!”
“아... 그랬나?”
“우리 집은 그렇게 여유가 있다든가 하는 그런 집은 아니야.”
“야, 니라차.”
그때,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조제가 못미덥다는 듯 말한다.
“너희 집이 여유 있는 집이 아니면 도대체 누구네 집이 여유 있는 집이라는 거야?”
“야, 물질적으로 풍부한 거하고 가족들끼리 모일 시간이 충분히 나는 건 또 다른 문제지.”
“아... 그런가?”
한편 그 시간. 현애와 세훈의 AI폰에 메시지 하나가 도착한다.
[조심해]
미켈으로부터 온 메시지는 짧게 한 마디만 적혀 있다.
“응?”
현애가 메시지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세훈이 얼른 현애의 옆으로 가까이 온다.
“파울리 씨가 갑자기 왜 이런 메시지를 보냈지?”
“미켈이 뭔가 낌새를 눈치챈 게 있겠지.”
“그 낌새라는 게 도대체 뭘까?”
“난들 알아?”
한편 그 시간, 골든 슈린 레스토랑 1층.
완전히 다른 세상에 온 것만 같은 3층과는 달리, 1층의 분위기는 여느 관광지에 있는 레스토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관광지에 있는 식당보다는 조금 더 고급스러워 보이는 정도다.
“파울리 녀석은 이 레스토랑 3층에 있다는 이야기지?”
레스토랑 한쪽에서 몇 명의 사람들이 심각한 표정을 하고서 음식을 먹고 있다. 남자 2명, 여자 1명인데, 남자 1명은 두꺼운 옷을 입고도 모자라 온몸에 담요를 두른 채 연거푸 기침을 하고 있어, 동료들뿐만 아니라 식당 안에 있는 다른 손님들과도 대비된다. 아무튼, 그들 3명의 관심은 온통 그들이 말하는 3층에 쏠려 있다.
“아, 맞아. 흐음... 문제는 그 녀석이 지금 3층에 있다는 거지만.”
“3층?”
“자기 손님들하고 함께 식사를 즐기고 있겠지.”
짧은 머리의 여자가 아니꼬운 목소리로 말한다.
“그리고 지금쯤이면, 파울리를 위한 5성급 호텔에서 볼 만한 식사가 준비되고 있을 테고!”
“그런 건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기는. 정보에 밝으면 이런 건 쉽게 얻지.”
“그런데 너...”
흰옷을 입은 남자가 문득 말한다.
“아까 누구하고 싸운다는 거였냐?”
“몇 년 전부터 걸리적거리던 녀석 하나 있어.”
“자라? 자라 말하는 거지?”
“야, 에곤.”
나오미는 흰옷을 입은 남자를 보고 말한다.
“왜?”
“너는 어떻게 그렇게 업계 사정을 잘 아는 거야?”
“왜기는. 그런 걸 굳이 말해야 하나?”
에곤이라고 불린 남자가 막 나오미의 말을 웃어넘기려는데...
바로 그때.
“응, 뭐지?”
레스토랑 밖을 지나가던 한 사람이 얼굴을 찌푸린다.
“누가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반삭 머리에 사파리복을 입은 그 사람은 바로...
“뭐, 뭐, 뭐, 뭐야!”
창밖을 내다본 나오미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아니, 왜 그래, 나오미? 설마 저기 창밖에 호랑이가 오기라도 한 거야?”
“네 말대로야, 에곤!”
나오미의 호흡이 거칠어진다.
“자라 녀석이 도대체 왜 저기 있는 거냐고!”
“하하하, 뭐, 당연한 거 아니야?”
나오미의 표정이 자못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에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자세다.
“이 근처에 제대로 된 식당이 여기 말고 더 있어?”
“하긴...”
나오미는 일어서서 다시 자라를 노려본다.
“싸움은 이미 시작됐으니까!”
“응? 싸움이 시작됐다고?”
에곤은 궁금하다는 건지, 아니면 나오미를 놀리는 건지 알 수 없는 얼굴을 하고 말한다.
“너 하는 말이나, 네 능력을 보면, 싸우는 것 같지 않은데?”
“너도 여기 조나처럼 되려고 이러는 거지?”
“응? 그런 건 아니고.”
“아니면 끼어들지 마! 돕든가.”
“아... 그래.”
에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한다.
“나오미가 도와 달라는데, 안 도와 주고 배기겠냐.”
“아니, 누가 자꾸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그 시간, 길을 걷던 자라는 자꾸만 신경이 레스토랑 쪽으로 쏠린다.
“미켈이 그러지는 않을 테고, 도대체 누가 그러는 거야?”
머릿속을 뭔가 자꾸 헤집어 놓는 듯한 불쾌한 느낌. 도저히 못 참겠는지, 자라가 레스토랑 쪽으로 홱 고개를 돌리려는데...
“뭐... 뭐야?”
고개를 돌리지 못하겠다. 마치 뭔가가 자라의 목을 잡고 있는 듯하다.
“아니, 도대체 뭐지... 뭐길래...”
애써 목을 돌려 보려고 애쓰지만 그럴수록 자라의 목의 움직임은 더 부자연스러워진다. 거기에다가, 자라의 목만 그런 것이 아니다. 팔다리 또한 마찬가지다. 마치 쇠사슬 같은 것에 꽁꽁 묶이기라도 한 듯, 아니면 인형극의 인형이 되기라도 한 듯, 팔다리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
“저기... 저기에 들어가 봐야 하는데...”
자라는 위험을 직감하고 필사적으로 알 수 없는 압박을 떨쳐내려 하지만, 그럴수록 그 알 수 없는 압박은 점점 더 강해진다. 자라의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게 있다.
“설마...”
자라의 생각은, 아까 전 지하유적에 닿는다. 그렇다는 건, 즉...
“설마, 나오미 녀석이, 1층에!”
하지만 레스토랑으로 들어갈 수 없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팔을 움직여 멋대로 움직이는 팔을 잡는 것조차도, 잘 되지 않는다. 급히 AI폰을 꺼낸다. 하지만 손가락마저도 뭔가가 조종하는 것 같다. 손가락에 최대한 힘을 줘서, 필사적으로 몇 글자 쓴다.?
[위험해]
이 메시지를 미켈에게 보내자마자, 자라는 자신의 것이 아닌 발걸음으로 어색하게 걷더니,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됐나?”
자라가 어딘가로 끌려가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에곤이 말한다.
“적어도 자라 녀석은 허튼짓 못 하겠지? 네가 저렇게 선제조치를 취해 놨으니.”
“맞아. 녀석에게 당한 걸 정산하는 건 또 다른 문제지만.”
“그래, 어떤 식으로 정산할지 꽤나 궁금해지는데. 아무튼 그건 조금 있다가 생각할 문제고, 지금 당장은 파울리 녀석부터 손봐 주자고.”
“잠깐.”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나오미와 에곤의 뒤에서 들린다.
“누가 누굴 손봐 준다고?”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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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1-07-09 13:22:51
역시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네요.
게다가 그 운명의 시간에 있을 그 장소는 이전에도 와본 것 같은 기시감이 강한...
그런 상황을 겪어본 일은 없지만, 어떤 기분일지는 어렴풋이 예측이 되네요.
대체 그 정산이라는 게 어떤 방식과 규모로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제대로 될 것 같지는 않아 보이네요. 우선 전제 자체도 정합성이 분명히 갖추어져 있다는 생각은 안 들지만...
시어하트어택
2021-07-11 22:51:30
간단히 자라와 나오미 사이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써 볼까 합니다. 아무래도 그들의 묵은 빚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테니까요.
SiteOwner
2021-07-18 00:01:58
대규모 발굴현장, 어떤 느낌일까요. 중국에서 병마용을 발견했을 때 전개된 상황을 상상하면 되는 것인지...
그런데 살벌함까지 더한다면 이건 상상의 범주를 넘어설 것 같습니다.
남의 이야기를 하면 대상이 된 그 사람은 모를 것 같지만, 그게 또 그런 것도 아닌가 봅니다.
저도 겪어 봤다 보니 상황이 상상됩니다.
사람들이 정황도 모르고 저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은 것이 있었지요. 예전에 포럼에서 언급했던 쌍둥이자매 중 1명과 교제했을 당시의 일이라든지, 복학전에 대학내에서 이상한 소문이 떠돌았다는 것을 복학하고 나서야 알았다든지...시어하트어택
2021-07-18 23:06:35
대략 인디아나 존스 같은 분위가보다 훨씬 더하다고 보면 될 겁니다. 그쪽은 적과 싸운다고 해도 그냥 모험 분위기였지만 여기는 그야말로 죽고 죽이는 상황까지 일어나거든요. 설정상으로만 보면 인디아나 존스도 크게 다를 게 없기야 하겠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