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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자 H] 134화 - 계산은 철저히(3)

시어하트어택, 2021-07-16 07:38:59

조회 수
122

한편 3층.

“오, 이제 주요리인가?”

일행의 테이블에는 특제 소스로 양념한 닭고기 요리가 올라가 있다. 풍미도 좋고 군침도 절로 돈다. 주요리가 테이블 위에 올라간 걸 보자마자 세훈이 눈을 번쩍 뜬다.

“오늘 점심은 또 얼마나 맛있으려고 벌써부터 이렇게 군침을 돋우는 거지?”

“직접 먹어 봐.”

세훈이 보니, 현애는 이미 자신의 접시에 닭고기 요리를 담고 있다.

“먹어 보면 알 거 아니야.”

“뭐, 그거야 그렇겠지만...”

세훈이 막 닭고기 요리를 가져가려는데...

“얘들아.”

니라차의 아버지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세훈이 얼른 돌아본다.

“어, 왜요, 아저씨?”

“파울리 씨는 어디 간 건지 혹시 모르니?”

니라차의 부모님은 다들 걱정스러운 얼굴이다.

“파울리 씨요? 잠깐 화장실이라도 갔겠죠.”

현애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말한다.

“금방 다시 돌아오잖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네 말대로 별 일 없겠지?”

니라차의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왠지 불안한 듯 눈을 흐린다. 부모님이 다시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본 니라차는 현애와 세훈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목소리를 낮추고 말한다.

“우리가 뭐라도 좀 해야 하지 않아?”

“야. 지금 내려가자고? 그게 말이나 돼?”

입을 여는 사람은 세훈이다.

“우리가 지금 내려간다고 뭐가 바뀌기나 해? 밑에 있는 사람들이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맞아. 도우려면 우리가 내려가야 하는데 지금 내려가기도 그런 상황이고...”

현애도 세훈의 말에 맞장구친다.


“너희들, 내 능력이 뭔지 기억하고 있지.”

순간 현애의 머리에 마치 그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전학 온 첫날의 그 기억, 어떻게 잊는단 말인가!

“그래... 절대 잊지 않지, 그 능력.”

“아, 하하하, 그래.”

니라차도 쑥스럽게 대답한다.

“혹시 지금도 그거 갖고 있어?”

“‘그거’라니?”

“드론 있잖아.”

“아, 그거라면 있지.”

말을 마치자마자 니라차가 가방에서 뭔가를 집어 꺼낸다. 곧이어 뭔가가 바닥을 소리없이 훑고 지나간다.

“설마 여기도 챙겨온 거냐?”

“아, 맞아. 혹시나 해서.”

“그럼 저기에 카메라도 단 거고?”

“아, 그렇지.”

“저걸로 뭘 하게?”

“이제 좀 기다려 봐. 저거 좀 내려보내고.”


그 시간, 레스토랑의 지하 창고.

“후... 후...”

누군가가 숨을 거칠게 내쉬며 창고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짧은 머리에 얼굴을 수시로 매만지며 들어오는 사람은 다름아닌 나오미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자라 아티크. 여기 잘 있네?”

“한번 말해 주겠어?”

한쪽에서 몸을 쭈그리고 앉아 있던 자라가 몸을 일으키며 말한다.

“왜 굳이 이런 데서 정산을 하려는 건지 말이야.”

“왜겠어?”

그러고 보니, 조금 전부터 자기 것이 아닌 것 같았던 자라의 손발에 묶인 붉은 줄이 더욱 팽팽하게 감겼다. 걸어서 어디를 나가려고 해도 창고 밖으로는 나갈 수 없고, 손이 묶여 있으니 초능력도 사용하기 힘들게 되었다. 거기에다가, 이 붉은 줄이 자라의 몸에만 감겨 있는 것도 아니다.

“아니, 뭐야, 이것들은...”

“이제 안 거야?”

자라가 바닥을 보고 놀란 표정을 보이자, 나오미는 오히려 더 의기양양한 웃음을 짓는다.

“네 움직임은 이걸로 완전히 통제됐지. 네 생각 같아서는 지금 네 눈앞에 있는 나를 어떻게든 해 버리고 싶겠지. 초능력뿐만이 아니라, 주먹이나 발을 써서든, 안 된다면 박치기로라도. 그런데, 왜 안 되는 건지는, 너도 잘 알겠지?”

“물론... 알다마다.”

자라가 이가 갈리는 듯 말한다.


나오미의 생각에, 자라와의 악연은 8년 정도 전부터 시작되었다. 그때는 둘 다 20대 초반이었고, 첫 만남은 나름 살갑게 시작했다. 자라는 일종의 트레저 헌터로써 유적지의 보물을 찾아다니는 일을 하고 있었고, 나오미 역시 그랬다. 지역 방송의 인기 프로그램 ‘보물을 찾아서’에 참가자로 출연했던 게 그들의 만남의 시작이었다. 초기에는 한 팀이었기에 협력도 하고, 보조도 맞춰 가면서 목표를 달성했다.

하지만 두 번째 목표에서부터 뭔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하필 미션 장소인 유적지가 미로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게 둘의 악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어쩌다 보니 두 사람이 갈림길에서 갈라지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나오미가 간 방향은 막다른 방향이었던 것이다. 그쪽에서 미친 듯이 보물을 찾아 뒤졌지만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고, 나오미는 탈락했다. 자라가 도와 주기를 바랐지만 끝내 도움의 손길은 오지 않았고, 그때부터 나오미의 자라에 대한 악감정이 시작되었다. 나오미의 초능력 또한 이때의 참담했던 경험이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끝났다고 하면 나오미가 지금처럼 ‘정산’이라는 말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라와 나오미가 다시금 악연을 쌓은 것은 그로부터 6개월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둘은 서로 알지 못하는 상태로, 사업 관계로 다시 접촉했다. 물론 둘 다 실명을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대면하지 않고 온라인상으로만 접촉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얼마 되지도 않아 둘은 삐걱거렸고, 나오미는 그 과장에서 자신의 동업자의 정체까지 알게 되었다. 그렇게 되니 6개월 전의 기억이 다시 생생해졌고 자라가 일부러 자신의 사업을 망치려고 접근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둘의 동업 관계가 파탄이 난 건 물론이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마치 자석으로 붙어 버리기라도 한 듯 서로를 끌어당겼다. 물론 좋은 의미는 아니다. 서로 비슷한 일에 종사하다 보니 부딪칠 일이 많았다. 그것도 하필이면 둘 다 유적 탐사 관련 일을 했고, 충돌할 일은 넘쳐났다.

그래도 한번은 개인적으로 만날 일이 있었다. 그게 약 4년 전이었다. 마침 일이 잘 풀려서 기분도 한껏 올라가던 때였다. 그 상태에서 사업 건으로 자라를 만났다. 처음에는 모든 게 좋았다. 근사한 식당이라는 장소, 초저녁 시간의 분위기까지 합쳐서 말이다. 한참 분위기가 무르익던 중, 자라가 문득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우리 전에 방송 나갔던 거 기억 나냐?”

“음... 글쎄?”

나오미는 그렇게 말하며, 아픈 기억을 떠올리지 않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의도적으로 기억을 눌러 버리고, 좋았던 기억만 떠올리려고 했다. 하지만 자라가 웃는 모습만 보기만 해도, 그건 금방 실패로 돌아가기 마련이었다. 거기에 결정적으로 찬물을 확 끼얹은 건...

“정말 재미있었어. 그래서 꽤 좋은 기억으로 남은 것 같고. 안 그래?”

“뭐... 뭐?”

나오미는 되물었다. 꼭지가 돌아 버리고 싶지는 않았기에 다시 한번 물어 본 것이다. 그러나 역시나, 자라에게서 되돌아온 답은 변함이 없었다.

“그때 너도 좋은 경험 쌓았잖아. 비록 미로에서 길을 잃기는 했지만 그게 또 오늘 여기까지 온 영양분이 되었고. 그렇지?”

“이 자식, 뭐야!”

자라가 거기까지 말하자, 나오미는 자기도 모르게, 확 치밀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대판 싸웠다. 어떻게 싸웠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자라가 얼핏 초능력을 쓰는 것 같았다는 것, 그리고 의자와 유리잔 등이 멈춘 것 같이 보였다는 것. 식당 직원이 말린 덕에 둘의 충돌은 잠시 동안의 소란을 빼면 별 탈 없이 끝나기는 했지만, 이후 둘의 관계는 완전히 파탄났다. 그리고 그 때 이후로 나오미는 과거의 악감정을 숨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표출하기 시작했다. 자라가 일을 벌이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훼방을 놓기를 수 차례. 몇 번 그러다 보니 어느 쪽에서 먼저 시작했는지도 판가름하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다. 그러던 중 1년 6개월쯤 전에 자라의 소식이 갑자기 끊겼고, 그 기간 동안 자라는 테르미니 퍼스트에서, 나오미는 슈뢰딩거 그룹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서로 같은 목표를 노린다는 것을 알자, 나오미의 옛 기억은 다시 폭발적으로 나오미를 자극했다. 테르미니 퍼스트와 경쟁하자고 적극적으로 단장 수민을 부추긴 사람도 바로 나오미였다. 그리고 오늘, 자라를 비롯한 테르미니 퍼스트의 크루들이 발굴 작업을 진행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나오미는, 자라가 덫에 걸려들기만을 노렸다가, 마침내 지금, 그 절호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자, 어때, 이제 좀 머릿속에서 뭔가 좀 정리되나?”

나오미는 자라에게 고압적으로 말한다.

“좀 정리된 것 같으면 이제 좀 말하지?”

자라는 깊은 숨을 한번 내쉬고는 입을 연다.

“그래... 그랬지. 다 기억하고 있어. 우리가 어디서부터 이렇게 꼬이게 된 건지는 확실해.”

자라는 담담하게 말한다. 나오미의 차가운 시선을 피하지도 않는다.

“네가 그 때 일로 마음이 상하게 된 거라면 정말 유감이야. 좋은 친구로 남았을 수도 있었는데, 그게 아쉬워.”

“그래? 그게 다야?”

“......”

자라는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실망이야, 자라 아티크!”

나오미는 목소리를 확 높인다.

“너는 말을 빙빙 돌리기만 할 뿐, 내가 원하는 그 답은 내놓지 않았어. 그 답을 주었으면, 너와 나의 정산은 그걸로 끝났을 수도 있어. 하지만 아니었지.”

“그런가...”

“내가 여러 번 준 기회를, 너는 전부 거절했지. 따라서 오늘, 나는 너한테서 제 값을 치러야겠다!”


그 시간, 레스토랑 1층.

“에곤? 어디서 좀 들어 본 이름인데...”

미켈은 앞에 선 에곤을 잠시 보다가, 조그만 기억을 끄집어낸다.

“그래... 에곤 슬라니였지.”

“한때는 가이드로 같이 일했고.”

에곤은 이가 갈리는 듯한 소리로 말한다.

“이런 데서 이런 식으로 만나고 싶지는 않았는데.”

“너만 그런 건 아니지.”

“에... 에곤... 콜록... 콜록...”

에곤이 뭔가 더 말하려는데, 담요를 뒤집어쓴 조나가 끼어든다. 그 와중에도 기침을 멈추지 못한다.

“발 밑에... 조심해... 콜록...”

“야, 조나! 좀 가만히 있어! 네가 자꾸 기침하면서 말하니까 신경 쓰이잖아!”

“아니... 콜록... 기침이 나오는 걸 어떡해...”

“이불이나 뒤집어쓰고 있어! 몸 상했는데 자꾸 나서면 몸이 더 상한다고!”

“아... 알았어...”

조나는 이불으로 온몸을 덮고 구석에 웅크린다.

“좋아.”

조나가 완전히 이불을 덮고 웅크린 걸 본 에곤은 이제 다시 미켈을 똑바로 본다.

“지난날 함께한 건 좋은 인연이었어. 하지만 지난날은 지난날일 뿐. 각오는 되었나?”

“되었다마다.”


한편 그 시간, 3층.

니라차가 드론을 조종하는 모습을 현애와 세훈이 지켜보고 있다.

“드론은 어디쯤 가고 있어?”

현애와 세훈은 마치 모기 우는 소리처럼 작게 말한다. 다른 일행이 볼까 봐 수시로 슬금슬금 눈치를 보는 건 덤이다.

“어... 지금 돌아갈 데를 찾느라고 시간이 좀 걸려.”

“뭐야? 어느 쪽으로 가는 거야?”

시어하트어택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1-07-16 13:16:08

자라와 나오미에게 그런 일이 있었군요.

처음부터 아예 알지 못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인연이 생겨버린 것으로 인해 완전히 생면부지인 것보다도 더 못하게 되어 버렸네요. 그런데다 재회할 때마다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고, 자라는 나오미를 이해할 생각이 없고 나오미 또한 자신만의 사념에 잡혀 있는 것같고...정말 최악의 상황이네요. 이런 말을 하면 좀 그렇긴 하지만, 이미 죽어버린 콘라트는 이제 이런 상황을 만날 일이 없어서 다행인 건가 싶기도 하네요.


그나저나 세훈이 먹으려 했던 닭고기 요리...대체 어떤 것일까요.

저희집에서는 닭고기를 거의 안 먹다 보니 갑자기 궁금해지고 있어요. 약간 엉뚱할지도 모르겠지만...

시어하트어택

2021-07-18 23:12:36

테르미니 퍼스트나 슈뢰딩거 그룹이나 완전히 깨끗한 곳은 아니고, 또 동종 업계에서 몸담은 사람들이다 보니 저렇게 연이 닿는 경우도 많죠. 확실한 건 콘라트가 끼친 악영향은 상상 이상이라는 겁니다. 그가 죽음으로써 생겨난 파급효과도 상상 이상이고요.

SiteOwner

2021-07-25 14:24:19

이번의 상황에서는 저는 나오미에 꽤나 연민이 가고 있습니다.

역시 비슷한 상황에 처해진 적이 많아서 그런 걸까요. 사실 과거에 저를 중상모략했던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을 굴복시키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은 저를 기억하고 있지도 않을 것이고, 만난다 한들 "그거 네가 자의식과잉 아냐?" 라고 반문할 확률도 높겠지요. 뭐, 앞으로 만날 일은 없겠지만, 설령 만나더라도 저는 그들을 그냥 기계적으로 대할 것 같습니다. 물론 어떤 권리의무관계도 없다 보니 설령 그들이 위험에 처하더라도 도와야 할 의무 따위는 전혀 없고, 만일 그 상황이 저에게 이득이 된다면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득만 취해야겠지요. 그것만큼은 나오미와 다를 것 같습니다. 어차피 저는 악한이 될 생각도 없는데다 고결한 도덕성을 지고지선의 가치로 삼는 사람도 아니기에...

시어하트어택

2021-07-25 23:05:38

자라와 나오미 같은 경우는 동종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데다가 같은 목표를 노리다 보니 저렇게 다시 만나기라도 했죠. 저라도 저런 경우라면 미쳐 버릴 것 같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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