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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호 사원의 두 번째 방. 미켈은 막간을 이용해 비앙카와 전화통화를 시도한다.
하지만 신호음만 들려올 뿐, 비앙카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뭘 하길래 비앙카도 전화를 안 받는 거야...”
비앙카가 걱정되기는 하지만, 지금 미켈은 가이드다. 통화는 조금 있다가 하기로 하고, AI폰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미켈의 뒤에는, 별과 생물체 등을 새겨넣은 동판이 몇 개 걸려 있다. 각 동판마다 별의 모양과 생물체 혹은 추상체의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어떤 건 육각형의 집합으로 형상화된 것도 있는 반면에, 또 어떤 것은 흐물흐물한 모양이 바탕을 이루고 있는 등.
“자, 여기 있는 동판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미켈은 또다시 일행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시작한다.
“각 행성의 개황도일까요? 아니면 신의 프로필인 걸까요?”
다들 조금씩은 머리를 굴린다. 미켈의 바로 앞에 선 현애는 말할 것도 없고, 니라차의 부모님까지도, 마치 머리 굴리는 소리가 방 안을 울리는 듯하다.
“저기...”
누군가가 손을 번쩍 든다. 미켈이 보니 니라차가 손을 들고 있다.
“니라차 양이었죠?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어... 그러니까, 여기 동판에 있는 것도, 종교관을 나타낸 것이었죠?”
“네, 근접하기는 했습니다만, 조금은 부족한 듯하네요. 조금만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실까요?”
미켈이 재차 답을 유도하자, 니라차는 잠시 대답을 망설이는 듯하더니, 고개를 슬며시 돌린다.
“어? 설마, 생각이 안 나시는 건 아니겠죠?”
“그런 건 아니고...”
니라차가 잠시 망설이자 다들 손을 들 준비를 한다. 하지만 니라차는 이내 뭔가 생각난 듯, 다시 손을 들고 말한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이레시아인들은 별마다 각각의 신을 품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저런 동판에다 각각의 별, 그리고 그곳에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신적 존재를 그려 놓았던 것이죠.”
“오! 맞습니다! 이래 가지고서는 제가 설명할 만한 게 줄어들겠는데요...”
그렇게는 말하지만 미켈의 표정은 꽤나 유쾌하다.
“그러면 이 사원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실마리가 혹시 잡힌 분이 있으신지요?”
“음... 글쎄요...”
다들 또다시 머리를 굴린다. 이번에도, 누가 먼저 대답할지, 다들 눈치를 보며 손들 준비를 한다. 그리고...
한편 그 시간, 지하 통로.
“자, 전화 한번 다시 해 보라고.”
에곤이 비앙카더러 전화를 해 보라고 하자, 비앙카는 일부러 에곤의 시선을 피한다.
“왜 나더러 지금 전화를 하라고 하는 거지?”
“비앙카 너는 지금 그렇게 묻고 싶겠지. 이 녀석이 지금 나보고 갑자기 파울리에게 왜 전화를 하라고 하나? 하지만, 네 말은 행동보다 느린 것 같은데?”
“무슨 소리냐?”
“너는 이미, 전화를 걸고 있거든!”
설마, 그럴 리가.
혹시 에곤이 블러핑을 걸거나 하는 것은 아닌가? 의심스러운 나머지 비앙카는 조심스럽게 전화를 꺼내 본다.
그러나...
이미 전화는 걸려 있다. 그것도, 신호음까지!
“아... 왜 전화가 걸리는 거지...”
분명 비앙카가 전화를 걸었다거나 하는 자각은 없는데, 이미 전화를 걸고 있다니, 이게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다. 신호음만 울리던 전화에서, 신호음이 멈춘다.
그것은 바로...
“여보세요?”
미켈의 목소리다. 미켈이 전화를 받았다...
안된다... 어떻게든 전화를 꺼야 한다... 그런데 떨리는 손가락은 자꾸 이상한 데만 누르고 있다. 별로 어렵지 않은데도!
“이미 늦었는걸? 통화를 꺼도 소용없어.”
“뭐... 뭐야!”
“내 능력은 이미 발동되었거든.”
그 다음 순간, 비앙카 역시 통화 버튼을 끈다.
“후...”
“소용 없다고? 이미 발동되었다니깐.”
“그래?”
비앙카는 지그시 에곤을 노려본다.
“허, 그래서 어쩌려고? 나한테 뭐라도 할 거야?”
그러다가, 에곤은 자신을 둘러싼 공기가 뭔가 이상함을 느낀다.
마치 나이프 수십 개가 촘촘이 둘러싸고 있는 것 같다.
“무슨 짓이야, 너!”
“나도 이미 발동했거든.”
한편, 미켈은 갑자기 걸려온 전화를 받느라 설명도 잠시 멈추고 몸을 반대편으로 돌려 전화를 받으려 하고 있다.
“여보세요?”
분명히 비앙카에게서 온 전화다. 하지만 이상한 지직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비앙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뭐야, 분명히 전화는 비앙카가 걸었을 텐데...”
전화는 바로 끊겨 버린다. 언제 그랬냐는 듯, 치지직거리는 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는다.
“에이,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지...”
미켈이 허탈해하며 전화를 막 끊는데...
“읏...”
별안간, 미켈이 신음 소리를 낸다. 갑자기 손가락에 전류가 흘러오는 듯한 느낌이다. 꽤나 불쾌하면서도, 손가락 끝마다 그런 느낌이 전해져 오니 불쾌함은 더하다.
“이... 이건 도대체...”
마치 감전된 것과 저린 것이 겹쳐진 것 같은 마비감, 그리고 이 느낌은, 점점 팔을 타고 올라가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 왜 갑자기 두 손이 다 저린 거야!”
원인 모를 손의 저림은 점점 번져나간다. 마치 미켈의 두 손을 다 덮고, 팔마저 덮어, 미켈을 마비시켜 버리려는 듯!
“저기, 파울리 씨!”
니라차의 아버지가 걱정스럽게 묻는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습니다, 선생님. 별 거 아닙니다.”
미켈은 애써 웃어 가며 태연한 척한다.
“혹시 제 질문의 답이 생각나셔서 그런 건 아니겠죠?”
“에...”
갑자기 질문을 받은 니라차의 아버지가 당황했는지 말을 못 하다가, 재빨리 답을 내놓는다.
“혹시 여기, 종교 박물관 같은 것 아닌가요?”
“저... 정답!”
미켈은 순간 크게 내뱉는다. 두 팔이 저려 오는 것도 잊어버린 채로.
“정확히 말하면 여기 두 번째 방만 종교 박물관이기는 합니다만... 아무튼 맞추셨으니, 제가 경품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언제든 원하실 때 말씀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말해 놓고, 미켈 스스로도 프로답다고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두 손이 저린 건 정말이지 겨우겨우 참고 있다.
바로 그때, 미켈의 전화에 메시지가 하나 뜬다.
[어떻게 된 거야, 미켈?]
얼른 주소를 확인해 본다. 가브리엘도 아니고, 다른 가족도 아니고, 테르미니 퍼스트의 크루들도 아니다. 그 외에 미켈이 아는 다른 사람들 중에, 미켈을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로 돌아본다.
현애가 미켈을 향해 고개를 죽 내밀고는 AI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뭐... 뭐야! 저 애가 보낸 거야?”
뭐라고 놀라야겠지만, 그럴 수도 없다. 손님들을 앞에 두고, 미켈은 겨우 모기 소리만한 말을 내뱉는다.
“안 되는데...”
그와 동시에, 미켈의 손이 묘하게 풀어지는 듯한 느낌이 온다. 지리릿거리는 느낌이 점점 줄어들더니, 어느덧 그런 느낌이 없어졌다고 봐도 될 정도로 잦아든다.
“잠깐... 왜 이러지? 분명 조금 전까지는 두 손이 막 저리고 그랬는데...”
1분 남짓 겪은 이상한 사건이지만, 미켈은 여기에 연연할 시간이 없다. 곧바로 다시 태연한 척하고, 미켈은 다시 가이드로써의 일을 계속한다.
“그럼, 여기 두 번째 방의 종교 박물관으로써의 면모를 조금만 더 보여드릴까요?”
미켈은 일행에게 방의 다른 쪽으로 안내한다.
“하, 하하, 하하하하...”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황임에도, 에곤은 실실거리며 웃기만 한다. 불쾌했는지, 에곤을 묶어 두고 있던 비앙카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말한다.
“왜 그렇게 실실 웃는 거지, 에곤? 너는 지금 나한테 완전히 꽉 잡혀 있다고. 네 감각 역시 상당히 제약되었음은 물론이고!”
“그래, 그렇겠지. 하지만 과연 네 그 조악한 능력으로 나를 막을 수나 있을까?”
“......”
“내 전화번호도 모르는데, 어떻게 가능하겠어?”
“전화번호하고 네 능력이 무슨 상관이야?”
“하하하, 힌트를 줬는데도 못 알아먹으니 어쩌겠나.”
“뭐야, 이 녀석!”
그렇게 말하기는 해도, 비앙카는 에곤과 말싸움을 벌이기보다, 다시 전화를 걸려고 한다.
“호오, 전화해 보려고? 대단한데? 하지만 네가 또 전화를 걸면, 어떻게 될까?”
한편 그 시간, 제10호 사원 옆의 주차장.
“저쪽에도 발굴 작업자들이 들어가고 있네요.”
비토리오가 사원 한쪽 출입문 옆에 세워진 버스와 거기서 내리는 작업자들을 지켜보며 말한다.
“저 작업자들은 어느 업체 소속이라고 했죠?”
“어디 보자, 업체명은...”
파라는 노트북 위에 나타난 홀로그램의 자료들 중 하나를 찾아가더니, 금세 거기서 업체 정보를 찾아낸다.?
“업체 이름은... ‘디존 인력관리’고... 계약을 맺은 에이전시는 슈뢰딩거 그룹이군요.”
“그렇다면, 두 에이전시가 계약한 인력 업체는 동수겠군요.”
“저기, 형님?”
비토리오는 호텔에 있는 발레리오에게 물어 본다.
“저희가 지금까지 확인한 내용이 맞나요?”
“99% 일치해.”
“고맙습니다.”
“메이링 씨가 말했죠, 오늘 그 태양석이라는 건 반드시 세상에 나올 거라고.”
파라가 마치 머리 굴리는 소리를 내는 것처럼 턱을 손에 괴고 말한다.
“어느 쪽이 우리에게 유리한 걸까요... 우리가 그 태양석을 무사히 회수하려면?”
“일단은 슈뢰딩거 그룹의 리더부터 알아야겠는데...”
비토리오는 머리에 손을 지그시 대고서 한숨을 쉰다.
“바로 알기는 쉽지가 않겠군요. 거기 리더를 완전히 꽁꽁 감춰 놔서.”
“인터넷 상에 나도는 정보로는 알기가 쉽지 않은 건가요?”
“그렇죠. 그곳의 리더가 나올 만한 사진이나 영상은 모두 편집해서 올려 놨어요.”
“그렇다면...”
파라가 손가락을 딱 치며 말한다.
“일단 지금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인력 업체 쪽을 좀 탐문해 봐야겠군요.”
“그런데 그건 누가 하죠? 우리가 하면 또 이상하게 볼 것 같은데.”
비토리오가 망설이자 파라는 기다리지도 않고 바로 말한다.
“이상하게 볼 게 뭐가 있나요? 작업복 같은 걸 입으면 알아볼 사람은 많이 없을 거예요.”
“글쎄요, 과연, 그런다고 해서 못 알아볼 사람이 있을는지...”
“비토리오 씨, 저는 무전여행 때 숱하게 해 봤다니까요. 그러니까...”
“파라의 말이 옳아, 비토리오.”
다시 발레리오의 목소리가 들린다.
“간접적으로 알아보는 수단이 막혀 버렸다면, 직접 개척해야지. 안 그래?”
비토리오는 별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파라 양이 해 봤다니까, 잘 할 수 있겠지.”
“그래도 한 명이나 두 명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요?”
“우리 재단 요원들도 그리로 갔으니, 30분 안으로 도착할 거야.”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형님.”
발레리오와의 연결을 끊고, 비토리오는 파라에게 다시 묻는다.
“요원들을 기다릴 수만은 없잖아요? 우리가 먼저 뭔가 해야죠.”
“그래서 준비했죠, 비토리오 씨.”
“뭘요?”
비토리오의 말이 끝나자마자, 파라가 뒷좌석의 그림자를 가리킨다. 비토리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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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1-08-11 17:01:00
굉장히 기분나쁜 상황이 벌어졌네요. 전화기를 사용하려고 꺼냈는데 이미 전화기가 자신의 의지보다 앞서서 행동해 있는. 그리고 손가락 끝이 감전된 듯이 저려오는. 구체적인 상황이 상상되다 보디 더욱 몸서리쳐지네요.
그렇죠. 간접적으로 할 수 없다면 직접적으로 하는 게 최선이죠. 하지만 적도 그걸 전혀 모르고 있지를 않을테니 그 과정에 복병이 없다는 확증은 할 수 없는 법이죠. 야구에서 이런 상황이 많이 있어요. 이미 타자가 2스트라이크 상황인데 바로 지금 투수가 던지는 공에 배트를 안 휘두를 수가 없는 법. 여기서 뛰어난 타자는 어떻게든지 찍어붙여서라도 쳐서 투수의 의도를 분쇄해 내고 안타를 쳐내지만, 그렇지 않은 타자는 무기력하게 헛치거나 쳐봤자 내야를 못 벗어나는 땅볼이 잡히는 거로 끝나지만요.
시어하트어택
2021-08-15 15:45:02
전화기를 매개로 발동되는 초능력은 본 게 많이 없었는데, 제 나름대로 머리를 쥐어짜서(?) 한번 만들어 봤습니다. 생각해 보니 제가 실제로 당한다면 정말 온몸이 감전될 것 같은 기분이겠군요.
SiteOwner
2021-08-14 16:29:43
이번 회차를 읽으면서 1956년작 영화 십계(The Ten Commandments)에서 모세가 하늘로부터 십계명이 새겨진 석판을 받는 장면과 파이오니어호의 동체에 새겨진 정보가 같이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미켈의 가이드 스타일에서 피로감도 좀 들고 그렇습니다. 여행은 기본적으로 즐기는 것인데, 미켈의 방식은 좀 과하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오히려 시야를 좁히는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사슴을 쫓는 자는 산을 못 본다는 옛 격언처럼.
제3자는 모르는 신호가 자신에게 오면 확실히 민감해지지요.
신체에 느껴지는 것도, 개인용 디바이스에 전달되는 것도.
역시 직접 나서는 게 확실한데, 상대도 바보는 아니기에 여러 복병이나 덫을 준비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비토리오가 놀랄까요. 파라가 초능력이라도 발휘해서 조금 전까지 없던 사람을 소환해 온 것인지...시어하트어택
2021-08-15 15:55:06
확실히 미켈의 스타일은 '가르치는' 쪽에 조금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오너님의 코멘트를 보니 좀더 확실하게 느껴졌군요.
파라의 그림자 능력은 예상외로 활용도가 무궁무진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