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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호 사원 상층부의 복도.
“아니, 소니아는 왜 저기서 자꾸 서성거려? 신경 쓰이게!”
두 번째 방으로 가려던 미켈은 소니아가 신경쓰였는지 발걸음을 옮기지 못한다.
“생각 같아서는 곧장 가서 혼쭐을 내 주고 싶지만, 그러지도 못하겠고!”
잠시 망설이고 있을 때, 메시지 도착음이 들린다.
[미켈, 지금 들어간다]
단번에 보니, 가브리엘로부터의 메시지다. 웬일인가, 가브리엘이 연락을 다 하고? 미켈은 곧바로 답장을 보낸다.
[가브리엘, 네가 여기 들어오면 나하고 헷갈릴 텐데?]
[괜찮아. 내겐 다 계획이 있어]
[무슨 계획?]
그렇게 메시지를 보내 놓고 잠시 생각해 보니, 얼추 미켈의 머릿속에 그려진다. 가브리엘이 생각한 계획이 뭔지 말이다. 생각이 거기에 닿자마자, 미켈은 현애와 세훈을 조용히 부른다.
“너희들, 잠깐!”
“왜요, 파울리 씨?”
미켈은 둘의 귀에 뭔가 소곤거리고, 이내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뒤돌아서서, 미켈은 일행에게 말한다.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잠깐 화장실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그 전까지는 이 안에서 자유롭게 관람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아니, 우리 중 하나가 임시 가이드 역할을 하라고?”
미켈의 메시지를 본 자라와 비앙카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나는 가이드를 해 본 적이 없는데...”
“너만 가이드를 안 해 본 게 아니야, 자라.”
“야, 너는 그래도 여행업에 종사해 봤잖아. 가이드까지는 아니더라도 기획 업무를 했지. 나는 그냥 순전히 유물 발굴 쪽 일만 했다고.”
“뭐, 기획 업무뿐이기는 한데... 그런데도 미켈은, 우리보고 임시 가이드 역할을 하라고 하는데...”
비앙카가 잠시 머리를 굴리더니 말한다.
“이를테면 이런 거겠지. 일종의 바람잡이라든가.”
“바람잡이?”
“그래, 자라. 왜 밤에 길거리 가면 호객꾼들 있잖아. 관광명소 같은 데 가면 흔히 보이고!”
“어, 어, 그래. 이제 좀 감이 잡히네.”
자라의 머릿속이 조금은 정리된 듯, 약간은 격앙된 듯도 보였던 태도는 없어진다.
“그러니까 우리 셋 중 하나가 소니아의 주의를 끌 동안 나머지 크루들은 작업 구역으로 내려가라는 거겠지. 그러면 무사히 우리 작업 구역에 내려가서 작업을 진행할 수 있을 테니.”
“그래... 그러면 누가 가지?”
“일단은... 소니아 녀석의 주의를 끄는 데 적합한 능력이라면...”
자라가 잠깐 생각에 빠진 듯 머리를 굴리다가 입을 연다.
“비앙카 네가 한번 가 봐야겠는데. 거기에 가브리엘이 합세하면 딱이겠어.”
“응... 뭐야?”
비앙카는 귀찮다는 듯한 얼굴이다.
“왜 내가 거기를 가야 해? 왜 네 멋대로야?”
“아니, 그러니까 나는 좀 험한 데로 가겠다는데, 그게 뭐가 문제야?”
“뭐? 네가 말하는 험한 데가 어딘데?”
“우회 루트가 있거든. 새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우회 루트라고?”
비앙카가 화들짝 놀란다.
“설마 그 북쪽 출입문 이야기하는 거 아니야? 너무 돌아가잖아.”
“맞아, 그런데 어쩌겠어. 거기밖에 없잖아.”
비앙카는 잠시 말이 없더니, 이윽고 다시 입을 연다.
“그래... 그러겠네.”
제12호 사원 상층부.
소니아는 초조한 얼굴을 하고서 복도를 이리저리 서성이고 있다. 평범한 관광객처럼 복장이나 행색 등을 갖추고 있음에도, 소니아가 노려보는 건 단 하나, 미켈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켈뿐만 아니라 테르미니 퍼스트의 다른 크루들도 그녀의 사정권 안에 들어 있다.
“좋아, 이제 때가 어느 정도 무르익은 건가...”
곧이어, 미켈이 어디론가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온다. 전혀 공격에 대해 대비를 하지 않은 무방비 상태라는 건 알겠다.
“됐어, 됐어. 파울리 녀석, 이번에야말로...”
소니아는 곧바로 미켈을 응시한다. 저 정도라면 제압하기에는 충분하다. 손을 뻗는다. 머지 않아, 미켈은 소니아의 능력에 걸려들 것이고...
그렇게 막 소니아의 계획이 무르익어 갈 무렵.
“안녕하세요!”
별안간 누군가의 활기찬 목소리가, 소니아의 곁에서 크게 들린다. 그 목소리의 크기로 보아서는, 전형적인 호객꾼이다.
“하... 그럼 그렇지.”
소니아는 그냥 넘기려 한다. 애초에 이 정도의 호객꾼은 이런 관광지에서 드문 것도 아니다. 거기에다가 소니아는 여행업을 하면서 지금의 경우보다 더 심한 호객꾼도 몇 번 봤다. 말이 호객꾼이지 납치범과 다를 게 없었고, 심지어 소니아 자신도 몇 번 거기에 당했던 적이 있기에 남 일 같지가 않다.
그런데 이 호객꾼, 어느새 보니 소니아의 바로 옆에 착 달라붙어 있다. 아슬아슬하게 소니아의 몸에 닿지 않을 만큼 밀착했다. 벙거지를 푹 눌러썼는데, 입은 능숙하게 미소를 내보이고 있고, 한 손은 이미 방 하나를 향하고 있고, 다른 손으로는 막 소니아의 팔을 잡아채려는 참이다.
“자, 손님, 손님! 저희가 지금 행사를 하나 하고 있는데, 따라와 보시면 패키지를 특별 가격으로...”
“아, 이거 왜 이래, 귀찮게!”
“그러지 마시고 손님, 일단 와 보시면...”
소니아는 당연히 그 여자를 떨쳐내려고 해 보지만, 호객꾼은 오히려 점점 더 소니아를 꽉 붙들고 놔 주지 않으려 한다. 바로 옆에는, 일행으로 보이는 모자를 눌러쓴 남자 한 명도 같이다. 걸려 버렸다. 순식간에...
“놓으라니까, 이 자식들. 왜 사람을...”
“에이, 손님, 이러시면 섭섭합니다.”
동료로 보이는 남자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부드럽다. 위화감이 들 정도로.
“저희가 손님을 잘 모시려는 건데, 납치범 취급하다니요.”
소니아도 알고는 있지만, 그래서 몸부림은 치지만, 벗어날 수가 없다. 소니아를 끌고 가는 호객꾼들에게서 이상한 느낌이 온다.
‘이 자식들, 설마...’
익숙한 느낌. 하지만 도무지 누군지 종잡을 수가 없다. 이렇게 자신을 가리고, 또 극도로 과장된 몸짓과 목소리를 보이니, 분간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 시간, 카사 데 토르나도 호텔 2층 레스토랑.
아직 식사시간은 아니지만, 테이블 여기저기에는 디저트를 먹으러 나온 사람들이 보인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서 노트북을 보며 심각한 얼굴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도 보인다. 그 두 사람은, 다름 아닌 발레리오와 메이링.
“그러니까, 비토리오 싸와 파라가 거기에 들어간다고 했다고요? 유적 안에, 직접?”
“그렇네. 나는 들어가는 건 좀 위험하지 않냐고 했는데, 자기들이 괜찮다니 반대하고 할 명분도 없었지.”
“그래요...”
“그래도 걱정은 되는 게 말이야...”
발레리오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진다.
“왜 그러세요, 발레리오 씨?”
“프리모도 그렇게 무모하게 앞에 나섰다가 목숨을 잃은 것이거든.”
“어, 정말요?”
“그것 때문에 우리 형제들은 되도록 전면에 나서지 않으려고 했고, 재단도 그래서 만들어진 거야. 물론 그것 덕분에 녀석과 맞설 만큼의 힘도 기를 수 있었지만.”
“하긴...”
메이링의 얼굴도 발레리오처럼 무거워진다. 발레리오가 메이링의 얼굴을 한번 확인하더니 다시 입을 연다.
“자, 메이링 양, 하나만 더 물어봐도 되겠나?”
“네, 말씀하세요.”
“혹시 가능하다면, 그 녀석의 위치 추적도 가능한가?”
“네? 그건...”
메이링은 당황스러운 눈으로 발레리오를 한번 돌아본다.
“역시, 아직은 좀 무리겠지, 아무 단서도 없이 쫓는다는 건...”
발레리오가 막 계획을 보류하려는 그 찰나.
“이사장님, 이사장님!”
발레리오의 뒤에서, 검은 정장을 입은 VP재단 요원 한 명이 조그만 목소리로 부른다.
“어, 무슨 일인가?”
“저희가 이틀 동안 조사를 이어간 결과, 그 자의 대략적인 소재를 파악했습니다.”
“뭐, ‘대략적’이라고?”
“예, 정확한 소재를 알아낸 건 아닙니다.”
“그런가...”
발레리오는 무겁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한편 제12호 사원.
영문도 모르고 호객꾼에게 잡혀 끌려가게 된 소니아가 호객꾼들이 이끄는 대로 어느 방으로 들어가고...
소니아의 앞에 보이는 건 큰 방, 그리고 여기저기 보이는 여행객들.
그리고...
“이 자식들...”
어느새 모자를 벗은 호객꾼 두 사람은...
다름아닌 미켈과, 비앙카다.
“설마설마 했는데!”
“우리도 마찬가지야.”
미켈과 비앙카 역시 능청스럽게 놀란 척하며 말한다.
“이렇게 간단히 네 녀석이 여기로 끌려올 줄은 몰랐다고.”
“좋아. 일단 너희들을 때려눕혀 주겠지만, 여기서는 안 되지. 아까 거기서, 너희들을 다시 상대하면 너희들은...”
소니아는 그렇게 말하며, 성큼성큼 걸어서 방을 나가려고 한다.
하지만...
“엇, 뭐, 뭐야!”
강한 힘이 소니아를 다시 방 안으로 들여보내는 듯한 느낌이다. 몇 번 더 해 봐도 마찬가지다.
“무슨 수작을 부린 거냐. 어떤 묘한 짓을 했길래 이 안이 이렇게 이상한 거야!”
“어, 너는 여기서 이제 내가 내보내 줄 때까지 나갈 수가 없어.”
비앙카가 태연히 말한다.
“너한테만 적용되는 결계를, 내가 쳐 놨단 말이지.”
“그래? 좋아...”
소니아가 한번 비앙카와 미켈을 흘겨보더니, 등 뒤, 복도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일행을 휙 돌아보며 말한다.
“그렇다고 하면 나도 가만히 당하고 있을 수는 없지. 여기 관광객들에게는 어쩔 수 없게 됐지만...”
소니아가 문득 보다가, 익숙한 얼굴을 하나 본다. 마침 문 바로 앞에 서 있어서, 소니아의 능력이 닿을 만하다.
“아, 그래. 저 녀석은 아니고!”
그리고 약 1분 후.
어안이 벙벙한 세 사람의 앞에 선 소니아가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가장 오른쪽에 선, 자주색 베레모를 쓴 여자를 잠시 안쓰럽다는 듯 바라보다가, 눈이 마주친다. 다름아닌 현애다.
“그런 선택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안 그래?”
“......”
현애는 애써 소니아의 시선을 피하며 말을 하지 않는다. 미켈과 비앙카는 현애보다는 조금 덜 당황스러운 듯하지만, 여전히 지금의 상황이 의문스러운 건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고서 소니아를 적대감 가득한 눈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한순간에 소니아의 뒤로 펼쳐진 의문스러운 풍경...
마치 유아용 만화나 TV프로그램에서나 볼 법한, 잔디가 깔린 언덕에 크레파스로 그린 해가 떠 있고, 굉장히 단순화된 꽃과 나무들이 언덕 여기저기 서 있다. 거기에다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매우 과장된 형태의 새와 나비들은 덤이다.
“이건 도대체 다 뭐냐...”
“뭐긴, 너희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지.”
소니아는 약간 얼굴이 풀어졌어도 세 사람을 노려보는 표정은 변하지 않는다. 그 표정이, 소니아의 뒤에 펼쳐진 동화에 나올 법한 풍경과 겹쳐 위화감을 준다.
“이 자식, 이런 수작을...”
미켈이 그 말을 내뱉고서 소니아에게 달려들려는데...
퍽-
뭔가가 미켈의 머리를 강하게 내려치자, 미켈은 그 자리에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한다. 현애와 비앙카가 돌아보니, 역시 매우 과장된 형태의 알록달록한 망치가 미켈의 머리 위에 둥둥 떠 있는 게 아닌가!
“봤지?”
소니아는 딱 한 마디 한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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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갈
2021-09-01 20:45:16
다짜고짜 난입하는 사람은 정말 대처하기 힘들죠.
한참 관광객 인솔중인 미켈 파울리를 자신에게 오게 만든 소니아는 그 점에서만큼은 상당히 머리를 잘 쓰고 있어요. 저 또한, 혼자 힘으로 여러 적대적인 사람을 상대할 경우에는 상황을 어지럽혀서 저에게 적대적으로 대한 사람들이 비난의 주축이 되도록 한 적이 있다 보니 이해되어요.
갑자기 주변상황이 저렇게 바뀌다니, 역시 안 놀랄 수가 없겠네요.
이 싸움을 위해 만들어진 결계 안, 동화같지만 그 안의 상황은 잔혹할 것이 뻔하겠죠...
시어하트어택
2021-09-05 20:45:24
소니아는 위기를 기회로 활용했죠.
그것 역시 그녀의 능력인 것이고요.
동화 속의 풍경에서 살벌한 분위기를 풍긴다는 건 어찌 보면 위화감도 크니만큼 공포감도 극대화될 수 있겠죠.
SiteOwner
2021-09-18 15:33:59
역시 전쟁은 정보역량이 중요한 법입니다.
이렇게 치열하게 벌어지는 정보전에서 승자는 누가 될지, 직접 무기로 사람을 살상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상황으로 전환되는 것도 그리 멀지 않아 보입니다. 특히 아주 오래전에 동생 프리모를 잃은 발레리오에게는 이 상황이 더욱 무겁게 다가올 것 같습니다.
갑자기 이상한 배경에 둘러싸이면 정말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겠지요.
순간적으로 자신의 지식과 사고능력이 부정되는 것같은...동화같은 분위기가 이렇게 무섭게 보인 적이 전에 있었는지...시어하트어택
2021-09-19 23:22:25
익숙한 것에서 오는 새로움이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기괴함으로 연결되는 창작물들이 몇몇 있었죠. 이 에피소드에서는 단편적으로나마 그런 이미지를 차용해 봤습니다. 제 의도대로 잘 전달되었다면 다행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