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제목은 그냥 타산지석이라고 쓸까 하다가 뭔가 밋밋하게 느껴져서 그냥 풀어서 썼습니다.
0-2. 요새 들어온 번역작업들의 마감이 1~2주일 간격으로 있다 보니 정리하느라 다소 애를 먹었네요. 일단 급한 것부터 하나 끝내두긴 했지만 아직 해당 프로젝트의 급하지 않은 부분들도 몇 주 내로 처리해야 되다 보니 정신이 없습니다. 오늘은 분명히 (8시간 정도) 푹 자고 일어났는데도 하품이 끊이질 않고, 결국 혼자서 외식 좀 하고 왔더니 코피가 터져버리더군요. 뭐 코피야 하도 겪어봤고 옛날만큼 심하진 않아서 얼른 멎긴 했지만...
0-3. 어쨌든 고독한 미식가가 되어 외식을 하는 동안 나무위키에서 몇몇 문서를 봤는데, 평소에 눈여겨보던 "명탐정 코난/비판" 문서를 읽다가 이거다, 싶은 점들이 몇 가지 눈에 들어왔습니다. (작업 핑계도 있지만) 연재 방향에 난항을 겪고 있었는데 어느 정도 돌파구가 되는 것 같아서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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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의 내용은 만약을 위해 명탐정 코난의 스포일러를 차단했으나, 무심코 누설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1-1. 일단 명탐정 코난은 초장기연재 중이라 전형적인 '결말이 보이지 않는 만화'이고, 그런 만큼 주조연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리고 작품 내외적으로 드러난 1차 목표는 "검은 조직과 싸워 이겨서 원래의 몸인 고등학생으로 돌아가는 것"이기도 하죠. 그 결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려진 상태에서 이런저런 인간관계를 쌓고, 그 중에서 협력자도 많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상술했듯이 초장기연재이다 보니 기존 설정이 유지되지 않고 도중에 모종의 사유로 변경(혹은 변질)되거나, 이를 보완하기 위해 새로 추가한 설정이 기존 설정과 충돌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면상 모든 비판에 대해선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1-2. 이 중에서 제가 영감(?)을 받았던 비판 중 하나는 바로 '특정 캐릭터 편애'였습니다. 작품 도중에 검은 조직의 구성원인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아군이었다는 인물 A가 있고 이후에 비슷한 컨셉으로 B가 등장하는데, 여기까진 좋지만 이 A와 B에 대한 작가의 편애가 점점 도를 넘고 있다고 하네요. 본편에서는 주인공인 코난/신이치의 배경설정을 구체화하는 게 아니라 A의 가족사를 털어놓느라 여념이 없고, 그것도 모자라 A 위주의 극장판을 만들기까지 하니... 이는 나중에 비슷한 컨셉인 B도 똑같이 답습합니다. 그 와중에 B와 비슷한 시기에 추가된 C가 있는데, 이 C는 원래 히로인인 모리 란의 자리를 넘본다거나 알고 보니 A와 같은 가족이었다거나... 이 문단만 놓고 봐도 명탐정 코난의 주인공이 코난인지 A, B, C인지 헷갈릴 지경이죠.
1-3. 물론 비중이 다소 크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비판의 대상이 되는 건 아닙니다. '명품 조연'이라는 말도 있고 매력 있는 캐릭터는 그 자체로 큰 역할을 수행하고 또 큰 사건을 만들어 내기 쉬우니까요. 하지만 상술한 A와 B, C는 유래를 따져보면 사실 명탐정 코난(더 나아가 그 모티브인 셜록 홈즈 시리즈)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오히려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와 관계가 있습니다. 엄밀히는 A가 추가된 시점까진 별 문제 없었습니다. 해당 성우가 맡은 유명한 캐릭터, 샤아 아즈나블에 착안했을 뿐이거든요. 그러나 작가가 그 A의 개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A의 유래인 샤아와 관계가 있는 아무로 레이를 모티브로 삼은 B(더 나아가 C)를 추가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커지기 시작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홈즈 시리즈나 코난과는 관계가 없어요. 그럼에도 이 셋이 판을 치고 있으니 마치 '사실 주인공은 이 셋이었고 검은 조직의 정체는 지온 공국이라더라', '어차피 작가로서 못 끝내는 작품이니 좋아하는 캐릭터나 가지고 놀자' 같은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올 정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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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그렇다면 명탐정 코난에 대한 비판이 저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하면, 제 작품 역시 비슷한 요소를 어느 정도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대강당이나 아트홀에서 DLC라는 이름으로 몇 번 언급했던 패러디 에피소드죠. 뭐 원래 구상했던 본편에 절대로 영향을 주지 않도록 '이 에피소드는 본편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같은 느낌으로 '이 에피소드를 읽으려면 DLC가 필요합니다' 같은 장난스런 문구도 넣고, 실제로 이런 패러디 에피소드는 해당 작품을 제 세계관으로 가져와서 녹여내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2-2. 하지만 그런 생각도 들더군요. '본편의 주조연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모티브로 삼은 캐릭터'와 '패러디 캐릭터'는 무슨 차이인가? 주조연 캐릭터의 개성조차 살리기 힘든데 패러디 캐릭터는 오죽하며, 내 세계관에서 제대로 녹여낼 수 있기는 한가? DLC라는 '참신한(?) 요소'만을 위해 더 큰 것을 잃고 있지는 않는가? 쉽게 말해서 본편의 진도조차 나가지 않았는데 DLC를 꿈꿔봤자 무슨 소용인가, 하는 것이죠. 마음만큼은 벌써 몇십권 분량을 구상하고 있지만 실제로 연재한 내용은 꼴랑 3편이라는 극심한 괴리감도 있고...
2-3. 특히 DLC라는 요소에 대해 사고방식을 '있으면 좋다'가 아니라 '왜 있어야 하나'로 바꿔봤더니 갑자기 허망해지더군요. 있으면 좋기는 한데, 과연 몇 명이나 알아볼까? 원본에 대해 추가로 설명해야 하는 것도 수고롭지 않을까? 재미는 있을까? 오히려 본편보다 재미있고 내용이 알차면 주객전도이지 않을까? 그리고 DLC를 생각해 낸 것은 분명히 '패러디의 명문화(明文化)이자 공식화, 작품의 질의 다양화'라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구를 위해서? 인정받으려고 넣은 것인가? 무엇을 DLC로 담아야 할지 강박적으로 소재를 찾아다니고 있지는 않은가? 애초에 본편도 소재 때문에 고생하고 있으면서?
2-4. 이렇게 되니 DLC라는 이름으로 여러 작품을 패러디하여 '공식적으로' 투입시키려는 노력 자체가 애초에 무리였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더구나 어차피 원본이 뭔지 모른다면 차라리 저만 아는 상태에서 주조연 캐릭터의 모티브로 삼아 영양을 보충(?)하는 게 낫겠다 싶은 생각도 솔직히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당초 계획이 '어느 작품이나 캐릭터를 내 세계관에 가져와서 내 식대로 표현한다면'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어느 작품이나 캐릭터를 참고하여 내 세계관을 보충한다면'이 되는 거죠.
2-5. 예전에 대강당에 패러디 관련하여 글을 몇 번 올렸을 때 마드리갈님이나 SiteOwner님 외 몇몇 분들이 '패러디가 의무는 아니다'라고 답변을 주셨던 것 같은데 먼 길을 돌아온 것 같아서 다시 허망하네요. 거 봐, 내가 뭐랬어 하는 자괴감도 들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DLC 에피소드는 추가 1개밖에 없기 때문에, 해당 추가 에피소드를 파일럿(비공식)으로 돌리고 그 외에 계획했던 DLC는 모조리 폐기처분해서 청산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괜히 또 갖고 있으면 미련이 생기니까요. (사실 기존에 연재한 추가 에피소드들 중에는 명시하지 않았다 뿐이지 DLC에 가까운 것들도 몇 개 있습니다. 출처를 밝혀도 의미가 없을 정도로 깨작깨작한 것들이라서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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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비판 문서를 읽으면서 또 하나 영감을 받았던 부분은 바로 '트라우마' 문제였습니다. 정확히는 이 부분은 코난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작품에 해당됩니다. 추리물에서 주인공 일행이 '연달아' 시체를 보거나 사건을 겪어도 후유증이 생기지 않는다거나, 배틀물에서 '계속해서' 상대를 제압하거나 죽여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래야 이야기 전개에 유리하기 때문이다"라고 하더군요. 그런 후유증이나 죄책감을 묘사하기 시작하면 그것을 풀기 위한 이야기를 또 풀어야 하고, 그러다 보면 본래 의도했던 추리물이나 배틀물 등 장르의 성격이 흐려지기 쉽다는 겁니다.
3-2. 그렇다고 100% 맞는 말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당장 해외 코믹스에서는 히어로들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영웅답게 고뇌하고, 또 해외 코믹스가 아닌 몇몇 만화에서는 주인공 일행에게 트라우마가 생길 법한 사건 자체가 작품 전체에서 분기점이 되기도 하니까요. 그런 트라우마들은 주인공의 성격을 바꾸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더라도 장르적 특징을 해치지 않는 선에 그칩니다. 가령 추리물에서 주인공이 어느 사건을 통해 트라우마를 겪었을 경우, 성격이 바뀌더라도 '추리를 하는 이유나 가치관'에 그치지 '추리를 하지 않는다'가 되진 않습니다. (ex. 소년탐정 김전일 시리즈의 2부라고 할 수 있는 김전일 37세의 사건부의 경우, 입으로는 추리를 하기 싫어한다고는 하지만 작품 성격상 어쨌든 추리 자체는 계속하고 있습니다)
3-3. 그럼 이 부분은 또 제 작품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하니, 이전에도 다뤘던 레스터의 '죄책감' 문제였습니다. 사건 해결에 어디까지 개입할 것인가 하는 문제죠. 초창기에 글쓰던 것처럼 그냥 존과 함께 총 들고 일선에서 날뛰는 건 솔직히 꺼림칙했습니다. 아무래도 저 자신을 투영한 캐릭터니까 말이죠. 그런데 방금 말했듯이 초창기에는 그런 죄책감 따윈 전혀 없었거든요. (사회화의 영향일지도) 그런데 위의 이론(?)을 읽고 보니까, 오너캐라고 이렇게 감싸고 도는 것도 하나의 '편애'이자 '괜한 걱정'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어차피 창작물이고 현실의 저한테 특별히 해가 될 것은 없으니까요. 초창기에 썼을 때는 GTA 세계관이니까 폭력적이어야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3-4. 그렇다고 오퍼레이터로만 등장시키는 건 묘사상의 문제도 있고 비중 면에서도 소위 '페이크 주인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 있다보니, 존과 같이 일선에서 활약하더라도 폭력을 얼마나 사용할지가 관건이겠네요. 일단 트리거 해피는 절대 아니니까 어느 글에서 언급했듯이 경찰처럼 '제압'에 중점을 두도록 해야겠지만, 그렇다고 적들이 레스터만 맞추지 않는다는 보장(이라기보단 주인공 보정)은 없으니까요. 8~90년대 홍콩 영화에서 적들이 무한탄창 쌍권총 앞에 우르르 쓰러지듯이 명확하게 '죽었다'가 아닌 '쓰러졌다'고만 표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아니면 레스터가 처음으로 사람을 쐈는데 죽지는 않았고, 명확하게 생명을 구한 정당한(?) 발포였다고 첫인상을 심는 것도 중요할 것 같고... 이 점은 사전에 납득이 될 만한 묘사를 잘 깔아둬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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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 2개로 나눠서 쓰려던 걸 글 하나에 밀어넣었더니 얘기가 많이 길어졌네요. 어쩌다보니 늘 그렇듯이 자문자답하는 결과가 되었습니다만 아직도 확신은 없습니다. 재미삼아 쓰는 거, 이렇게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의미없는 짓일지도 모르지만요.
p.s. 굵은 글씨는 나중에 제가 예전 글을 읽어볼 때 요점만 파악하기 쉬우라고 해놓은 것입니다.
그거 알아?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유야 어쨌든 고독을 즐겨서 그러는 게 아니야. 사람들한테 계속 실망해서 먼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는 거야. - 조디 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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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1-09-18 20:04:32
그간 고생 많이 하셨어요. 이번 연휴에 잘 쉬시고 다시 건강을 찾으시길 기원할께요.
요즘은 어지간해서는 코피가 터지지 않지만 예전에는 종종 그렇다 보니 남의 일로만 보이지는 않아요. 잘 쉬어야 잘 활동할 수 있다는 것, 꼭 명심해 주시길 바래요.
명탐정 코난은 예전에 친하게 지냈던 선배가 굉장히 좋아하는 만화이다 보니 저도 읽어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엔가 읽다가 머리 속에서 뭐가 탁 끊어지는 느낌이 나더라구요. 분명 처음에는 추리물로서 재미있게 읽을 수는 있었죠. 하지만 거기까지. 이후로는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나면서 언제부턴가 멀어지게 되었어요. 그 선배와의 사이도 그렇게 멀어졌고, 과연 무엇을 위해서 읽었는지 모를 지경이 되었죠. 요즘에는 명탐정 코난에는 아예 흥미를 잃어서, 잘 보는 것도 아니지만 TV에 명탐정 코난이 해도 별 반응이 없이 그냥 채널을 돌리는 상태로...
사실 작중의 패러디가 뭔지 알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건 분명 있어요. 기어와라 냐루코양의 경우가 그랬어요. 그런데 당시에는 오 나의 여신님이, 아마가미, WORKING!! 등은 이미 봐서 알고 있었고 죠죠의 기묘한 모험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 보니 아는 패러디와 모르는 패러디가 혼재되어 있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아는 패러디가 나오면 선택적으로 재미있고 그 이외에는 아니었나 하면 그것도 아니었어요. 그 자체로 재미있으니까 된 것이죠. 그래서 패러디는 어디까지나 선택사항이고 의무나 필수요소인 건 아니라는 것이죠.
어차피 창작물에서 보여지는 인물의 면모는 일부분이고, 그 일부분도 감상자에 따라 다르게 수용되어요. 즉 모든 것을 담을 수도 없는데다 그것이 모두 전달될 수도 없으니 기술적으로 과감하게 생략할 건 생략하고 정말 이것만은 꼭 나타내고 싶은 것에 집중하면 될 거예요. 그리고 인간은 상상과 추론의 동물이니 묘사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의 경험이나 견문 등에 미루어 판단할 거구요. 그렇게 생각하시면 더욱 좋지 않을까 싶어요.Lester
2021-09-20 03:36:37
1. 지금은 계속 앉아 있는 일이 많아서 그런지 허리는 허리대로 아프고 혈변은 자주 나오고 그러네요. 피로 문제인 것 같은데 이번 추석에 휴가 차원에서 전주도 다녀오는 등 푹 쉬어야겠습니다.
2. 저도 명탐정 코난이란 만화 자체는 이제 작품을 즐긴다기보단 일본문화나 캐릭터의 시각적인 묘사 등에 대한 '레퍼런스'로서 접하는 경향이 매우 큽니다. 거의 아동만화로서 성격이 변한 것을 감안하면 결말이야 이미 뻔하고(더구나 작가가 아예 인터뷰에서 어떻게 끝날지 다소 세밀하게 누설했다고도 하죠), 다른 의미로 국민만화가 되어버려서 끝낼 '수가 없게 된' 경우에 가까우니까요. 마치 짱구는 못말려 같은 상황입니다. 물론 짱구와 명탐정 코난을 비교하는 건 짱구에 대한 모욕이고요.
3-1. 엄밀히 말해서 제가 고민했던 부분은 패러디 그 자체라기보단 패러디의 '수준'이었습니다. 말씀하신 작품들은 이름이나 특징만 빌려와서 작가 입맛대로 재창조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ex. 미소녀가 된 니알라토텝, 캐릭터나 스탠드 이름만 모아두면 콘서트장이 되어버리는 죠죠) 하지만 저는 원본을 최대한 보존하는 편에 가깝거든요. (예전 글 참고) 그러다 보니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인가 하는 회의가 먼저 들었고, 뒤이어서 말씀하신 작품들처럼 특징만 가져오거나 해당 특징들을 토대로 아예 새로운 캐릭터를 만드는 게 낫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든 거죠.
3-2. 이 참에 말하자면, 추가 에피소드의 주역들 이름은 전부 게임 "테스트 드라이브 언리미티드"의 사이드 미션들에서 가져다 썼습니다. 물론 게임의 사이드 미션답게 그저 '물건을 전달해라' '히치하이커를 데려다 줘라' 같은 단편적인 목표만 있고, 세밀한 뒷배경 같은 건 전부 제가 만들었습니다. 즉 실제로 가져다 쓴 건 이름밖에 없는데, 그마저도 동명이인 취급하면 그만이니 실질적으로 해당 게임의 패러디나 모티브라고 말할 수는 없는 거죠. 결과적으로 "이미 저질러 놓고 '패러디에 너무 목을 매는 거 아닌가' 하고 고뇌하거나 망설이는 건 무슨 짓거리인가" 하는 꼴이 된 것입니다.
3-3. 어쨌거나 추가 에피소드든 정규 에피소드든, 독자적인 세계관이 존재하는 작품이나 캐릭터를 오롯이 담아내는 건 (공식 크로스오버가 아닌 이상) 절대 불가능하다는 걸 절절히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이름이나 설정만 빌리는' 게 훨씬 쉽고 낫다는 게 증명됐으니, 이대로 가야겠네요.
4. 말씀하신 것도 그렇지만 본문의 고민은 결국 "작가인 나와 소설 속의 레스터라는 캐릭터는 (실화를 쓴 게 아니므로) 사실상 별개이다"라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 쉽게 풀립니다. 그저 계속 찝찝하게 여길 뿐이죠. 창작에 대한 이론이 쌓였다고 괜히 폼잡을 게 아니라 '알 게 뭐야 재밌으면 그만이지' 하고 저질러 버리는 게 낫고 실제로 그래야겠네요. 방금 말한 대로 일단은 재미가 제1순위이기에.
SiteOwner
2021-10-02 13:35:31
만성피로는 역시 여러모로 곤란하지요.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건강을 많이 회복하셨는지요? 일단 10월 4일 월요일이 대체휴일이다 보니 다시 쉴 기회가 돌아옵니다. 저도 그때 제대로 쉴 예정입니다. Lester님께서도 충분히 휴식을 취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명탐정 코난, 읽어본 지도 꽤 되었습니다. 저는 일찍 흥미를 잃어버렸고, 동생은 저보다 좀 더 오래 명탐정 코난을 좋아했다가 언제부터인가 무관심해졌다 보니 초연합니다. 그나마 형편이 되는대로 여행해 보고 싶은 지역의 후보로, 일본 톳토리현이 있는데다 우자키 양은 놀고 싶어에도 그 지역이 나오면서 명탐정 코난 관련의 어트랙션도 있다 보니 완전한 단절은 아닌 셈입니다만...
지적하신 논점 중에서는 두번째가 특히 공감됩니다. 연재 초기에 읽었을 때에도 특정 캐릭터 편애가 있다는 것이 느껴졌는데 지금은 또 얼마나 늘어났을지...
패러디라는 게 식물로 치면 나무의 잎, 동물로 치면 허물이나 털, 인간으로 치면 의복이나 헤어스타일과 같은 성격의 것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계절에 따라 잎이 나거나 떨어지거나 털갈이를 하거나, 성장에 맞춰 허물을 벗거나 옷을 갈아입거나 등등 이런 것이지요. 그리고 그런 것으로 달라지긴 하더라도 자아 아닌 다른 존재로의 전생 같은 것은 더더욱 아닐 것입니다. 마법소녀나 변신로봇 같은 것도, 다른 형태를 띌 수 있다는 것이지 기존의 자아와 전혀 연고도 뭣도 없는 다른 존재로 변한다는 것은 전혀 아니듯이.
트라우마도 마찬가지입니다. 트라우마가 인격을 크게 뒤틀어 놓기는 합니다만 그렇게 영향받은 사람이 이전의 그와는 크게 다를 수는 있지만 이전과는 관계없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창작물에서 캐릭터가 지닌 트라우마가 많은 영향을 작중에 확대재생산할 여지가 크긴 하지만 그것을 의무적으로 나타내야 할 당위성도 없습니다.
이야기가 꽤 길어졌습니다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것입니다.
결국 작중에서 바뀌어도 될 요소와 바뀌어서는 안 될 요소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 요소들의 비중을 조절하는 것. 그게 관건이 아닐까 싶습니다.
Lester
2021-10-02 23:59:51
1. 유감스럽게도 허리가 또 망가져서 고생할 것 같습니다. 지난주에 병원을 가서 엑스레이다 CT다 하고 찍었더니 디스크가 다소 밀려 나왔다나요. 터지지는 않았고 CT로 알아보긴 힘들다고는 하나, 아무것도 안 했는데 허리가 쑤시는 걸 보면 분명 뭔가 잘못된 것 같긴 합니다. 아무쪼록 의자에 오래 앉는 습관을 줄이고 최대한 몸을 움직이는 수밖에 없겠네요. 물론 스트레칭도...
2. 애초에 작가가 '로맨스살인코미디'라고 발언한 적도 있는 만큼 이제는 그냥 괴악한 일상물 정도로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추리 요소가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본격 추리물이라고 하기는 힘든 거죠. 그냥 대놓고 노선 전환을 천명하든가, 아니면 검은 조직과의 대결을 끝내고 아버지 쿠도 유사쿠와의 건전한 추리대결로 시즌2를 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3. 패러디라는 것은 바뀐다기보단 '꼭 있을 필요는 없는' 것이고, 트라우마는 '영향을 끼치는 범위가 정해진 것'이다-라고 정리 자체는 됐습니다. 일단 패러디가 아닌 모티브에 초점을 맞추자고 선을 긋긴 했으나, '이것저것 끌어다 쓰고 싶다'는 욕심은 그대로라 피곤하네요. 그나마 패러디에 미쳤던 수준만큼은 아닌지라 다행이지만요. 정규 에피소드도 플롯을 최대한 간단하게 만들고 부풀리는 쪽으로 해야겠는데 이건 이쪽대로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은데... 미치겠네요,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