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포럼에서 여러 방면으로 언어환경에 대해서 비판해 오면서 느낀 게 하나 있어요.
우리나라의 근래의 언어환경의 제반문제는 언중의 각자에 "주인의식" 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게 아닌가 싶어요. 즉 말과 글의 주인으로서 살려고 하기보다는, 말과 글에 끌려다니는 생활이면 어때 하는 안일함에 지배되어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일단 정리해 본 쟁점은 이렇게 열거할 수 있어요.
- 유행어, 속어 등의 무분별한 남용
- 무리하게 내지는 불필요하게 줄인 약어로 인한 언어의 경제성 저하의 역설
- 긴 글을 스스로 읽지 않고 세줄요약을 바라는 세태
- 현지원음주의라는 해괴한 헛소리로 정당화되는 중국어 유입
- "안한글 안사요" 로 요약되는 게임시장의 행태
- "금도" 의 원래 의미는 무시하고 오용하는 등의 어휘오용 반복
- 사이시옷 남발과 언론의 확대재생산
- 일본산 영상물에 대한 병적인 한글역식 남발
- 오역을 의역이라고 변호하는 작태
- 혐오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언어 재정의
이 10가지 쟁점이, 주인의식의 부재라는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어요.
그것도, 놀라울 정도로 무섭게.
그러면 이것들이 어떻게 주인의식의 부재의 소산이 되는지를 간단하게 볼께요.
- 떠도는 말이 정말 적합한 표현인지 생각하지 않고 막 주워다 쓰니까 남용인지 아닌지도 의식하지 못한다.
- 듣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말을 줄여 썼다가 줄인 말을 설명하기 위해서 원래의 말을 써서 약어의 유용함을 자기부정한다.
- 스스로 읽고 생각하지 않고 사고력을 외주에 맡긴다.
- 현지원음주의의 허구성을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고 중국어 범람의 문제의식조차 느끼지 못한다.
- 스스로 언어의 장벽을 쳐서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의 고립을 자초한다.
- 사전을 찾아보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고 잘못된 관행을 답습한다.
- 아름다운 언어생활 및 합리적인 어문규정에 대한 고민 없이, 정해 놨으니 옳고 그래서 한다는 법실증주의적 사고의 폐단을 노정한다.
- 타국산 영상물에서 하지 않는 것을 왜 유독 일본산 영상물에서만 그렇게 하는지도 생각안하고, 보면 편하니 됐다고 만족할 뿐이다.
- 실력이 없는 것은 드러내기 싫고 자존심은 세워야 하니까 자기기만부터 한다.
- 더러운 말을 찾아쓰고 부족하면 만들어내어 자신이 언어의 오염원으로 타락한다.
정말, 말과 글의 주인이 되기가 이렇게 싫은 건가요.
전에는 이런 생각도 했어요. 또 우리의 말과 글을 남에게 뺏기는 상황이 되어야 소중히 여길지. 그런데 요즘은 이 생각 자체를 하고 있지 않고 있어요. 왜일까요? 이렇게 망가지고 더럽혀진 것을 누가 탐낼지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로 보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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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대왕고래
2021-09-23 00:09:18
간단히 말해서, 귀찮음이 원인이죠. 이거저거 따지기 귀찮으니까 "다 됐고 세줄요약" "줄임말이 더 편함" 같은 게 되는거죠.
개인적으로 "안한글 안사요"는 쉬려고 하는 게임에서 공부하기는 싫으니까 이해할 수는 있지만, 어려운 어휘를 쓰는 게임이 아닌 한 (실제로 그런 게임도 잘 없고) 영어판으로 해도 충분하다고 보거든요. 영어를 몰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영어를 어느정도 읽는데도 한글 아니면 안 산다면 극도의 신토불이가 아닌 이상 귀찮음이 원인인 것.
7~9도 결국에는 좋은 방향이 있는데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 그냥 한 방향 쭉 밀고 가고 싶은 귀찮음이 원인이라고 생각해요.
10번이 좀 골때리는데... 고속도로에서 마구잡이로 운전하면서 비매너 일삼는 그런 사람들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요. 어떻게 하면 좋을지가 애매하죠. 제가 맘대로 심판해서 벌금을 매길수도 없으니...
마드리갈
2021-09-23 13:37:02
자신이 주도적으로 상황에 대처하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안하니까 이런 대참사가 안 벌어지는 게 이상하죠.
그런데, 정말 웃기는 게, 그것 또한 선택적이라는 거예요. 게이머 팬덤에 만연한 "안한글 안사요" 의 경우가 바로 그렇죠. 게임을 하려면 좋든 싫든 게임의 규칙과 플레이방법은 배워야 해요. 그게 없이 게임을 즐긴다는 자체는 어불성설. 그에 대한 노력은 하는 사람이, 언어 문제에만은 스스로 장벽을 쳐 버리는 식으로 손쉽게 태세전환을 해 버려요.
그런 사람들이, 자신들과 꼭 닮은 사람들을 보면 너그럽게 여길까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놀랍게도 아주 지독하게 싫어하죠. 즉 동족혐오.
Lester
2021-09-23 01:02:14
읽어봤을 때 주인의식이라기보단 그냥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4번이나 8번 같은 경우 주인의식이 없는 건 맞겠지만요. 9번의 경우 현직 게임번역가로서 다소 분통이 터지는 부분이기도 하고... 뭐 오역을 지적하다 보면 '그래서 넌 얼마나 잘났냐' 같은 소리가 나오기 마련이라 과도하게 지적하고 다니지는 않지만, 그래도 틀린 건 틀린 거니까요. 문제점이 명확히 보이는 것을 맞다고 우길 수는 없잖아요.
마드리갈
2021-09-23 13:43:56
관점은 다양하죠. 저는 작금의 언어생활에서의 제반문제에서 주인의식의 부재를 읽었고, 레스터님께서는 타인에 대한 배려의 부재를 읽었고...그래서 충분히 양립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요즘 세태 중에 진영논리도 간과할 수 없죠.
틀린 것도 누가 주장하면 맞는 게 되고, 맞는 것도 누가 주장하면 틀린 게 되고, 이런 풍조가 범람하니까 상대방을 찍어누르기 위해서는 거짓말이든 뭐든 불사하는 경우가 횡행하게 되어요. 그리고 더욱 심각한 것은, 진영논리가 더욱 첨예해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