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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리브 이 자식은 도대체 어디로 숨어 버린 거야...”
모래먼지와 흙먼지가 흩날리던 사원 하층부의 통로 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양쪽 끝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아진다. 자라는 때때로 컥컥거리며 허탈하다는 듯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서는, 주위를 여러 번 두리번거린다.
“제발 그냥 이대로 땅속으로 사라져서 우리하고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럴 리가 없기는 하지만...”
한편 미켈 역시 허리를 펴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여전히 컥컥대고 있는 자라와는 달리 미켈은 전화부터 들고 누군가에게 연락을 시도한다.
♩♪♬♩♪♬♩♪♬
“여보세요?”
한 여자의 목소리가 전화 너머로 들린다. 미켈은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밝게 얼굴을 펴고는 입을 연다.
그 시간, 사원 상층부.
“자, 여러분! 휴식 시간은 충분히 즐기셨는지요?”
복도의 벤치 한쪽에 모여 앉은 일행을 돌아보며, 가브리엘이 일부러 큰 소리로 말한다.
“이제 기다리고 기다리시던 하층부의 발굴 현장을 볼 차례입니다. 오늘 일정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죠.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곳은 아직 발굴이 진행되는 현장입니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일반인에게는 통제되어 있고, 소수의 관광객만 받는데, 여기 오시는 분들마다 만족을 표하십니다. 그만큼 기대가 컸을 겁니다. 또한, 결코 실망하게 해 드리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그럼, 준비는 되셨겠죠?”
가브리엘이 말하자 다들 자리에서 일어난다.
“자, 그럼 이제 출발합니다!”
가브리엘이 앞장서고 일행이 뒤따라 걷기 시작한다. 조금 뒤에서 걷던 현애와 세훈이 귓속말에 가까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가브리엘, 미켈하고 미묘하게 다른데? 사람들이 저러다가 알아채는 거 아니야?”
“글쎄, 나는 잘 모르겠는데... 뭐가 다르다는 거야, 미켈 씨하고 가브리엘 씨하고?”
“그러니까... 조금 설명도 더듬는 것 같고, 말하는 데에 뭐라고나 할까, 자신이 없다가, 하층부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저렇게 확 목소리가 올라가잖아? 나같이 눈썰미가 좋은 사람은 금방 알아볼 수 있다고?”
“그건 네가 파울리 씨를 처음에 만나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고.”
“그런가...”
세훈은 문득 양옆의 벽면을 본다. 아까 처음 들어갈 때 본 것과 같은 수많은 얼굴들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몇 개 보니, 아까처럼 모두 다른 표정이다. 혹시나 해서, 옆의 현애를 돌아본다. 아무 반응도 없다. 아니, 양옆의 벽은 관심에서 벗어나기라도 한 듯, 앞만 향하고 걷고 있다. 세훈은 한편으로는 안도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두근거린다.
한편 12호 사원 하층부의 한 발굴 현장. 상층부에서 하층부로 내려오는 계단 바로 옆에 있어서, 상층부에서 하층부로 내려오는 사람들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곳이다. 방의 크기 또한 상층부의 방들 못지않게 큰 편으로, 기둥과 벽에는 복잡하고 화려한 부조가 장식되어 있고, 바닥에도 부조가 새겨져 있다.
한참 분주하게 유물들을 나르는 작업자들의 한가운데에서, 피부가 물컹거리는 옥타콘인 여자가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있다.
“어때, 도레이?”
초조한 얼굴을 하고 전화를 받는 도레이의 전화 너머에서 미켈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쪽은 괜찮아?”
“아직 몰라. 여기는 다른 곳에 비해 규모가 워낙에 커서... 작업자도 두 배나 들어갔잖아.”
“참... 그쪽 구역은 그렇지.”
“그래도 얼추 다 된 것 같아. 좀 많이 걸린다고 생각했는데, 여기도 오늘 저녁이면 다 끝날 것 같다고.”
도레이는 잠시 작업 현장을 보다가, 다시 입을 연다.
“바리오는 어떻게 됐어? 좋은 소식이 있어?”
“글쎄... 좋은 소식은커녕 아무 소식도 없는데...”
“그런데 너 숨소리가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 1분 전까지만 해도 싸우고 있었어.”
“싸, 싸워? 누구하고?”
“리브 있잖아, 리브!”
“응? 그 녀석이 여기 있어?”
‘리브’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도레이의 안색이 금방 변한다. 물컹거리는 윤기가 확 사라져 버릴 정도다.
“정확히는, 우리 발굴 구역 근처의 통로지만. 너도 조심해. 좀 전까지 싸우다가, 정말 사라진 건지, 아니면 모습만 감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고!”
“사라져...?”
“그래. 우리에게 패배 선언을 했다든가, 아니면 죽었다든가 한 게 아니라고. 사라졌어. 말 그대로!”
“으... 으응? 그려면 여기를 습격할 수도 있다는 거 아니야!”
“그... 그렇지! 도레이, 방심하면 안 돼!”
“알아.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쉽게 되나...”
도레이가 막 미켈에게 투덜거리던 그때...
“으... 으응?”
별안간, 도레이가 딛고 선 땅바닥이 흔들리는 듯하다. 분명 제12호 사원은 이 정도로 지반이 무르거나 한 곳이 아니고, 이 작업 구역에서 굴착기 같은 작업도구를 쓸 때는 지나도 한참 지났다. 습기 역시 도레이가 조절하거나 하지 않으면 습해지지도 않는다. 테르미니 퍼스트의 다른 크루들에게는 땅이나 흙 관련 초능력은 없다. 그렇다는 건...
“분명... 이건!”
도레이가 그 장본인을 대면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쿵-
땅속에서, 누군가의 팔이 나온다. 그리고 10초도 지나지 않아, 그의 전신이 모습을 드러낸다. 온몸에 흙이 좀 많이 묻어 있기는 하지만, 사파리 복장을 입고 선글라스를 쓴 민머리 남자가, 도레이의 앞, 그리고 발굴 현장 한가운데에 서 있다.
“리... 리브, 네가 어째서...”
“왜, 놀랐나? 그렇게 놀라거나 할 필요까지는 없는데.”
“내가 무슨 너를 보고 놀란대? 착각은 자유라지만...”
“놀랄 이유가 몇 가지 있지. 첫째, 너는 내 존재를 알아채지 못한 것처럼 말하지만, 실은 조금 전부터 내 위치까지 파악하고 있었지. 이 사원에는 있을 리가 없는, 지금 내게 묻은 진득진득한 진흙이 그 증거고.”
“그래서? 너를 저지할 수 있다면 몇 번이라도 그렇게 만들어 주겠다.”
도레이가 키릴을 향해 금방이라도 달려들 태세를 갖추자, 키릴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이거, 이거! 그때나 지금이나 왜 이렇게도 성급한지 모르겠어. 아직 이유가 더 남아 있다니까? 자, 보라고. 이게 그 두 번째 이유다.”
말을 마치자마자, 키릴의 발 바로 앞에서 뭔가가 떠오른다. 그건 바로...
“뭐... 뭐야!”
바리오가 머리만 내밀고 있는 게 아닌가! 도레이가 자세히 보니 숨은 아직 붙어 있는 듯하지만, 지금 저 상태도 위험하다. 초능력이 아니더라도 머리만 내밀고 있는 상태이지 않은가!
“바... 바리오!”
“아아, 그리고 하나 더. 이건 분명 중대 뉴스일 텐데, 모두에게.”
“또 무슨 헛소리를 하려는 거냐?”
“땅속을 좀 다니다 보니까 알 것 같더군...”
키릴의 목소리는 확신에 가득 차 있다.
“바로 이 발굴 현장, 네녀석이 맡은 바로 이 지역에, 태양석이 있다!”
도레이의 머리가 순간 띵 하고 뭔가에 얻어맞은 것 같다. 태양석이 있다니? 하지만, 이걸 어떻게 자신이라도 한단 말인가?
한편 이 말을 우연히 지나가다 들은 작업자들 역시 눈이 휘둥그레지고 서로를 마주보며 놀라워하는 건 마찬가지다. 물론 그 사이에 낀 비토리오와 파라 역시 마찬가지다.
“방금 들었죠? 여기 태양석이 있다고요.”
“파라 씨, 그걸 믿기라도 할 거예요? 방금 저 남자가 꺼낸 저 말은, 선언적인 표현 아니면 허세에 가깝다고요. 만약에 누군가가 어느 외진 행성에 ‘인구 1억 명이 사는 문명이 있다!’고주장한다면 그걸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을까요?”
“음...”
“물론 그 사람에게 정말로 비상한 초능력이 있어서 그걸 알아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몰라요. 일희일비하지 말고, 기다려 보자고요.”
“그래요...”
한편, 도레이는 잠시 팔짱을 낀 키릴과 머리만 내민 바리오를 번갈아 보다가, 이윽고 키릴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기다렸다는 듯, 키릴은 선글라스를 벗고, 도레이에게 말한다.
“잘 생각하라고. 여기 바리오 녀석의 운명도, 태양석의 운명도, 네게 달렸다.”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가 그딴 수작에 넘어갈 것 같으면, 내가 여기서 이걸 하고 있지도 않았겠지. 안 그래?”
“좋다! 그렇다면 내게도 다 방법이 있지...”
순간, 키릴이 살짝 흔들린 것 같다. 마치 딛고 선 땅이 진동한 것 같은, 이 느낌.
“뭐야... 이 녀석, 또 무슨 수작을!”
“내 능력이 뭔지 잊은 건 아니겠지?”
키릴의 손이 묘한 손동작을 짓고, 발을 구른다... 손가락은 모두 아래를 향하고 있다.
“땅은 흔들린다... 그 땅을 딛고 선, 너희도 마찬가지다!”
“뭐... 뭣?”
도레이가 되물으려 하지만...
이미 땅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땅바닥의 먼지가 이리저리 흩날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곧이어 도레이의 두 다리가 흔들린다. 순간 벽을 짚고 기대어서지만, 그것도 임시방편일 뿐. 이내 벽까지 흔들리기 시작한다. 급히 옆의 헬멧을 가져다 쓴 도레이는 작업자들을 돌아보며 다급한 목소리로 말한다.
“거기 다들! 작업 중단하고 땅에 엎드리세요! 헬멧 쓰시고요! 안 그러면 지진에 다칠 수가 있습니다!”
도레이의 말에 따라, 작업자들은 황급히 작업을 멈추고 땅바닥에 엎드린다. 작업자들로 위장한 비토리오와 파라 역시 마찬가지다.
사원 상층부에서 하층부로 이어지는 통로.
“응? 계단이 조금 흔들리는 것 같은데?”
세훈은 계단을 내려가다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잠시 계단 위에 멈춰선다. 뭔가 쿵 하고 흔들리는 듯한 느낌이 한 차례 세훈에게 전해져 온 것이다.
“아니, 왜 이래? 여기 혹시 부실공사를 한 거 아니야?”
“왜?”
조제와 외제니가 세훈의 말을 듣고 멈춰선다.
“뭐가 흔들린다는 거야?”
“아니, 봐봐.”
세훈은 입에 손을 가져다 댄다. 세훈의 지시에 따라 조제와 외제니가 멈춰서 아무 말도 안 하는 그때, 또 뭔가 흔들리는 듯한 느낌이 온다. 마치 뭔가가 수직으로 낙하해서 그 여파로 흔들리는 듯한 진동이다.
“아니, 왜 여기 사원 지하가 흔들리는 거지? 정말 여기, 뭘 잘못 처리해 놓은 거라도 있는 건가?”
“왜 그래? 무슨 지진이라도 났어?”
세훈과 조제, 외제니를 보고 현애도 끼어든다.
“뭐가 흔들린다고 그래?”
“못 느꼈어, 너는?”
“음... 전혀. 발 밑에 뭐가 느껴진다고? 지진이 날 만한 곳도 아니잖아, 여기는.”
“아니, 지진이 날 만한 곳과 안 날 만한 곳이 어디 있어?”
조제가 현애의 말에 끼어든다.
“이런 데도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지진 단층이나 열점 같은 게 있을지도 몰라. 안 그래?”
“거기, 좀 조용히 합시다. 작업자들이 들으면 어쩌려고요.”
일행의 목소리가 막 커지려는 그 찰나, 가브리엘이 앞에서 핀잔을 준다.
“여기 사원은 지진 단층이나 열점 같은 곳과는 거리가 먼 편이니 안심하시고 둘러보시면 됩니다. 아시겠죠?”
가브리엘의 말에 막 목소리를 높이려던 일행은 언제 그랬냐는 듯 소리를 죽이고 다시 계단을 따라 내려간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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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1-09-25 00:09:33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는 말이 바로 이거였군요.
키릴이 갑자기 사라졌길래 변고가 생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이렇게 갑자기 재등장해버린 거네요. 진짜 그 사실만으로도 다들 안 놀라고는 못 배길듯. 게다가 지진을 일으키는 능력까지...단층이나 열점 같은 게 있는 지형도 아닌데 이렇게 지진이 난다는 것 자체가 공포 그 자체예요.
역시 일란성 쌍둥이는 정말 자세히 안 보면 모르죠.
요즘 시청중인 신작애니인 가극소녀에도 일란성 쌍둥이로 같이 음악학교에 진학하여 100기생이 된 자매가 나오는데 대선배 중 1명이 그 자매 중 어느 한 사람을 알게 된 이후로 그 사람을 불렀는데 정작 눈앞에 있었던 사람은 다른 인물이었고, 이후에 대선배가 100기생 전원을 모아놓고 고운 말로, 하지만 굉장히 따가운 뉘앙스로 선배에 대한 예의를 모르는 자가 있다고 비판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어요. 그게 같이 생각나면서, 누가 일란성 쌍둥이를 쉽게 구분가능한지, 그리고 못 알아본 게 과연 잘못일까에 대한 생각도 같이 하고 있어요.
시어하트어택
2021-09-26 20:20:31
완전히 갑자기는 아니고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서 숨어 있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기는 하지만,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두려움에 빠질 만도 하겠죠. 거기에다가 강력한 초능력을 보유했다고 하면요...
사실 쌍둥이도 잘 알고 지낸 사람들 같은 경우는 미묘한 차이를 구분할 수 있기는 합니다만, 부모가 헷갈린 사례도 있다는 걸 보면 그건 또 케이스 바이 케이스일 듯합니다.
SiteOwner
2021-10-16 12:15:08
문제의 키릴이 재등장하면서는 지진을 일으켰군요.
참 끔찍합니다. 분명 다른 방면에서 쓰면 꽤나 유용한 능력일텐데 그의 능력이 발휘되는 상황은...
그러고 보니 경험해 본 지진도 여러번이군요. 국내에서 3번 경험했고 일본에서 2번 경험한 건 확실히 기억나는데, 역시 매번 반갑지 않았던 게 기억납니다.
역시 쌍둥이는 비슷하면서 또한 다릅니다.
어릴 때부터 일란성 쌍둥이의 자매와 이란성 쌍둥이의 형제를 봐 왔고 대학생 때 교제했던 여학생도 쌍둥이자매였고 하다 보니 타인들에 비해서 쌍둥이인 사람에 익숙한 저라면 좀 구분이 될 것 같습니다.시어하트어택
2021-10-17 21:11:21
땅 관련 능력은 분명 잘 쓴다면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보여줄 수 있죠. 물론 키릴 나름대로도 꽤 절박한 상황이니 일단 쓰고 보자는 심정이었지만요.
저는 오너님과는 달리 지진은 직접 안 겪어 봤습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에는 우리나라가 참 지진 같은 데에서 안전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게 깨진 게 2017년 포항 지진 때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