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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이 거래를 거절할 그 명분을 떠올리기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당연한 것 아닌가! 근거가 있다면, 저들도 윽박지르거나 폭력을 사용하거나 그럴 수는 없을 터다.
“잠깐만요.”
“시간 끌지 마십시오. 현명한 판단을 하란 말입니다.”
파란 작업복을 입은 남자 중 한 명이, 미켈이 뭐라고 입을 열자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는 자세를 하며 말한다.
“중요한 문제입니다. 당신의 판단에 따라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수도 있습니다. 현명한 생각을 하시는 게 우리와 그쪽 모두에게 윈윈입니다.”
“계약서를 펴 보시죠.”
미켈은 바로 그가 원하는 부분을 짚어낸다.
[...탈라스 컴퍼니에 계약의 우선권이 있다. 다만 계약의 주체가 되는 쌍방 중 한쪽이 신의를 저버리는 행위를 하는 경우에, 계약을 상회하는 금액을 제시하는 제3자의 존재가 확인되면 그러하지 아니하다...]
“보셨죠?”
미켈은 자신을 향해 금방이라도 총을 겨눌 태세를 취하는 푸른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조금은 떨리는 손으로 계약서를 짚으며 말한다. 그의 입에서는 거친 숨이 새어나오고, 손가락 역시 부들거린다.
“방금 당신들은 신의를 저버리는 행위를 했습니다. 세상에 그 무엇보다도 신뢰가 우선시되어야 할 계약 현장에 총을 들고 그것도 위협까지 하는 데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
푸른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은 말없이 미켈을 노려보고 있다. 그냥 노려보는 것도 아닌, 마치 ‘지금이라도 죽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라도 하는 듯, 두 눈은 살의에 철철 넘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가식적이기는 하나 웃음을 보이던 얼굴을 상상할 수 없다. 미켈의 옆에 선 자라는 벌써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이가 덜덜 떨리고 있다. 애써 그렇지 않게 보이려고는 하지만, 그럴수록 그가 겁에 질렸다는 게 더 확연하게 나타난다. 미켈 역시 그렇기는 하지만, 애써 태연히 말한다.?
“이 거래는 지금 이 시점에서 없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송구스럽겠지만, 탈라스 컴퍼니의 대표님께도 제 뜻을 잘 전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바로 그 순간, 푸른 작업복을 입은 사람 중 한 명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진다. 그러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굳어져 있다. 귀에 낀 이어폰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지령을 실시간으로 청취하는 듯하다. 그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끊기자, 그중 한 명이 권총을 빼 들며 말한다.
“경고한다. 그 어리석은 결정을 거두어들이지 않으면 너희의 목숨은 보장하지 못한다.”
“그 ‘너희’의 범주에는...”
미켈이 되물으려 하자, 권총을 든 자는 미켈의 말을 자르며 말한다.
“당연하다. 우리 ‘수령’과, 그분의 일을 가로막는 자는 누구든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게 누가 되었든!”
“그렇단 말인가...”
한편, 비토리오와 파라는 숨을 죽이고, 마치 작업자 중 한 명인 것처럼 사이에 끼어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갑자기 벌어지게 된 험악한 상황에, 둘뿐 아니라 다른 작업자들도 대놓고는 아니더라도 은밀히 불안한 눈빛을 주고받는다.
“상황이 지금 꽤 이상하게 돌아가는데요. 흐르는 기류가 심상치 않고요.”
“일단 개입은 자제하자고요.”
파라의 말에 비토리오가 기다렸다는 듯 금세 답을 내놓는다.
“아니, 비토리오 씨, 왜요? 저는 오히려 저기 있는 미켈 파울리라는 사람이 마치 저 같다는 동질감마저 드는데.”
“동질감이라니...”
“제가 그 녀석을 더 최근에 겪어 봤으니까요.”
“파라 씨, 결코 없어지지 않는 아픔을 안 겪어 보셨군요. 그것도 수많은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생생해지는 것 말이에요. 마치 바위에 새긴 암각화처럼 말이죠.”
“꼭 그렇게 오랜 세월을 겪어야 아픔이 더해지는 건 아니죠. 때로는 확 밀려올 때도 있다니까요. 2년 전에 제가...”
바로 그때.
누군가가 파라의 옆에 살짝 발을 들여놓는다. 그 발걸음이 낯설지 않다. 파라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엇, 뭐야...”
파라가 돌아보니...
옆에 아는 얼굴이 있는 게 아닌가!
“파라 씨, 맞죠.”
“으... 으응?”
파라가 그 얼굴의 주인공을 알아내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분명 여기 오기 전에 봤던 얼굴... 현애가 아닌가!
“어째서...”
원래라면 발레리오와 같이 온 사람들은 지금 여행 중인 일행의 눈에 띄어서는 안 될 터인데... 이렇게 마주치게 되다니... 이게 무슨 난감한 상황이란 말인가.
“일단은 조용. 파라 씨가 여기 왜 왔는지는 나중에 물어볼게요.”
“어... 그래. 그런데 왜 여기 일행하고 떨어져서 온 거야?”
“다른 게 아니라...”
막 입을 열어 뭔가 말하려는 그때. 푸른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 앞에서 미켈이 입을 연다.
“이런다고 해서 내가 줄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게 큰 오산 아닌가?”
“좋다, 우리도 그러면 더 이상의 경고는 없다!”
철컥-
미켈과 마주 보고 선 남자가 빼든 권총을 장전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가 들린 다음 순간.
“끄... 으으윽...”
권총을 든 남자가 별안간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낸다. 몇 초 전만 해도 의기양양함, 그리고 거만함이 한데 모여 있는 것 같이 거들먹거리던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권총을 든 두 손이 얼어서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얼굴만이 보인다.
“이... 자식... 무슨 짓을...”
미켈은 순간적으로는 당황했지만, 남자의 양손에 확 달라붙은 얼음을 보고 금세 상황을 파악한 듯, 고통스럽게 얼굴을 일그러뜨린 그 남자를 보며 말한다.
“내가 한 게 아니야. 다른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발굴 현장 안에서 당신들의 그 폭거에 반대하는 움직임은 나 한 명만의 움직임은 아니라는 거지. 무슨 뜻인지 알겠나?”
“말 다 했냐, 이 자식!”
나머지 3명이 미켈을 향해 권총을 뽑아든다. 분위기가 한층 더 험악해지고, 싸늘한 기류가 잠시 흐른다.
“방해하는 녀석에게는 커다란 고통을...”
그 말을 하려던 나머지 3명 역시, 거기서 더 말을 잇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 버린 채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두 손과 두 발이 그 자리에 그대로 붙어 버렸고, 입도 어찌 된 일인지 움직일 수 없다...
“조금만 거기 가만히 있으라고, 너희들.”
자라가 푸른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안쓰럽다는 듯 말한다.
“좀 나서지만 않으면 모든 게 착착 진행되었을 텐데.”
그 광경을 지켜보던 비토리오가 파라를 돌아보며 말한다.
“거봐요, 우리가 개입하지 않아도 잘 돌아간다고.”
“완전히 그런 건 아니었죠...”
파라가 완전히 동의는 못 하겠다는 듯 한마디 한다.
“앞으로 우리가 더 크게 개입해야 할지도 모르겠고요.”
그러고서 옆을 보는데... 어느새 현애는 어디로 가 버렸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30초 전만 해도 옆에 있었는데 금세 사라진 것이다.
“가죠. 작업자들 사이에 껴서 나가야죠.”
푸른 옷을 입은 사람들을 거기 내버려 두고, 미켈을 위시한 테르미니 퍼스트의 크루들과 작업자들은 현장을 벗어나기 시작한다. 미켈이 일행에게 돌아가기 전, 자라가 미켈을 불러세운다.
“하나만 물어 보자. 조금 전에 왜 갑자기 계약을 파기했던 거야?”
“계약서에 나온 대로 했을 뿐이야. 그들이 먼저 신의를 저버렸고, 우리에게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발레리오라는 사람이 나타나자 계약서에 따라 계약을 파기한 것이고.”
“정말이지...”
“그리고 봤잖아? 그 자들은 우리뿐만 아니라 작업자들, 그리고 우리 손님들에게까지 위해를 끼치려고 했어. 그들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자초한 거야.”
“그렇단 말이지...”
마침 자라의 옆에 선 도레이도 끼어든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벌어진 일 때문에 우리가 앞으로 또 무슨 모험을 할지 모르겠네.”
“각오는 됐어. 너도, 우리 크루도, 모두 그 각오는 한 거잖아?”
“그렇기는 하지만...”
도레이 본인도 동의를 한 것이기에, 부정하지는 못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덕분에 바리오도 구했고, 거기에다가 태양석을 손에 넣을 수 있었고. 맞지?”
“맞아.”
한편 테르미니 시내의 어느 저택.
사파리 복장을 한 여자 한 명이 저택 정원에 나와서 심하게 일그러진 표정을 하고 전화를 받고 있다. 그녀는 다름 아닌 라자.
“뭐야... 그 녀석들, 놓쳤다고?”
“예... 계약의 내용대로 우리가 태양석을 확보하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갑자기 파울리 쪽에서 신의를 저버렸다는 이유로 저희와의 계약을 그 자리에서 파기해 버렸고, 우리가 녀석들을 저지하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거기에다가, 그곳의 작업자들을 전부 매수한 건지, 다들 우리와 적대하는 시선이었고...”
“거기서 잡았어야지!”
“그 녀석들이 손을 얼리고 두 발을 묶어놓는 바람에 저희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지금 이것도 어찌어찌해서 겨우 연락을 취하는 건데...”
“좋다. 너희가 할 일은 거기서 됐어. 수고했고, 이제 가서 쉬어도 좋아.”
“하지만 라자 님, 보스가 명령하신 게 있는데...”
“여기서부터는 특전대가 나선다.”
“예...”
전화를 끊고, 라자는 곧바로 저택으로 다시 들어가서, 서재의 문을 두드린다.
“라자인가? 들어오게.”
정장을 입은 남자는 태연한 자세와 표정을 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책을 읽고 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미묘하게 파르르 떨린다.
“보스께서도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테르미니 퍼스트 녀석들은 계약을 어기고 태양석을 넘기려 하지 않았고, 우리가 보낸 요원들의 태양석 확보 시도도 실패했습니다.”
“이후는 알잖나? 특전대가 좀 힘써 주면 되지.”
“감사합니다...”
“그건 그렇고 그 요원들하고 다시 좀 연락해야겠네.”
“무얼... 하시려는 겁니까?”
“일단은 거기 현장소장 녀석을 좀 잡아 와야겠어.”
“그 돈을 탐한다는 매코이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건 내가 직접 연락할 테니, 자네와 특전대는 태양석을 확보하고 파울리의 패거리를 처단하는 일에 힘쓰게.”
“예, 보스.”
서재에서 나오자마자, 라자는 우선 전화를 건다. 곧이어, 한 남자가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특전대장님이십니까?”
“그래, 마이삼. 자네뿐만 아니라, 특전대 모두에게 전달할 사항이야.”
“무엇입니까? 말씀만 내려 주십시오.”
“미켈 파울리와 그 일당은, 계약에 따라 태양석을 우리에게 넘기지 않고, 뻔뻔하게도 태양석을 자신들이 무단으로 점유하고, 거기에 더해 우리와 적대를 선언했다. 그자들을 처단하고, 태양석을 다시 가져오는 것. 이것이 자네뿐만 아니라 특전대 모두의 목표다. 알겠나?”
“예, 분부대로.”
“좋다. 그러면 우선은 마이삼과 콜론이 제12호 사원으로 가서 녀석들을 치는 게 어떨까 한데...”
“저 말씀입니까? 알겠습니다. 바로!”
마이삼과 전화를 마치자, 라자의 눈이 빛난다.
“물론 이쪽도 준비를 해야지...”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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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1-10-04 13:33:15
악당은 결정적인 순간에 마각을 드러내죠. 역시 권총을 휴대하고 온 게 다 그렇게 마각을 드러내기 위했음이 이렇게 명백해지네요. 그런데 탈라스 컴퍼니에서 온 그 남자는 탈라스를 수령으로 칭하네요. 수령 하니까 현재 미이라로 보존되어 연간 1조원 내외로 돈을 먹는 그 누가 생각나서 더욱 떨떠름해지기도 하고...
특전대라고 불리는 조직까지 있네요. 정체를 숨기려는 최소한의 조치도 없으니 이것 또한 마각을 드러내는 건지...시어하트어택
2021-10-10 23:05:53
수령으로 칭하는 건 괜히 그런 게 아닙니다. 일단 그가 우두머리이기도 할 뿐더러, 그가 원하는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면 '신'이 될 테니까요. 그리고 그는 이제 자신의 몫을 찾기 위해 싸울 겁니다. 특전대는 그의 손발이죠. 이제부터 벌어질 특전대와의 싸움은 더욱 처절할 겁니다.
SiteOwner
2021-10-22 20:03:01
무력으로 강탈하려 했지만 그게 안되어 버리는 상황, 참 가관이군요.
그 상황이 일어나기 직전의 상황이 정말 무서웠던만큼 상황이 역전되는 것은 통쾌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그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훈련소에서 조교가 실탄이 장전된 총을 제 머리에 겨누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뒤로도 저에게 가혹행위를 하고 그랬습니다. 밤중에 자는데 군화를 신은 발로 제 얼굴을 밟거나 머리를 찬다든지. 결국 헌병대에 잡혀간 이후로는 영원히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시어하트어택
2021-10-24 22:02:01
오너님께서 겪으신 상황은 정말 생각도 하기 싫습니다. 그 조교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일을 벌인 건지, 자기 나름대로는 뭔가 지배욕 같은 것에 맛들려 있었겠죠. 그게 자기 자신을 옥죌 줄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