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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호 사원 하층부 발굴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
“아... 아으음...”
머리를 산발하고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한 남자가 누웠던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흔든다. 다름아닌 슈뢰딩거 그룹의 조나.
“이제 좀 괜찮은 것 같은데... 지금 작업은 어떻게 되어 가나?”
조나는 궁금증을 못 이겼는지, 전화를 걸어 본다.
♩♪♬♩♪♬♩♪♬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려 오지 않는다. 전화 너머 키릴의 목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여보세요? 야, 키릴, 키릴! 왜 안 받아!”
조나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내지른다. 언제 그랬냐는 듯 기침도 멎었다.
“정말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니야? 내가 한번 가 봐야 하나?”
조나는 다시 한번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본다.
“여보세요?”
이번에는 바로 전화가 걸린다.
“어이, 단장! 내 말 들려?”
“아, 잘 들린다.”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수민의 목소리.
“무슨 말 하려는지 알아. 빨리 거기서 나와.”
“으... 으응? 키릴은 어쩌고?”
“군말하지 말고 빨리 나오라니까? 너는 또 할 일이 있어.”
“그... 그래, 알았어...”
조나는 두말 하지 않고, 짐을 챙긴 다음 얼른 그 방을 빠져나간다.
한편 그 시간, 카사 데 토르나도 호텔의 레스토랑. 저녁식사를 하려는 손님들로 레스토랑 내부는 북적거린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에도 한쪽 구석은 고요함이 흐르는 듯 평온한 분위기다. 한쪽에 마실 음료수를 놔둔 채 노트북을 열심히 보는 두 사람. 다름 아닌, 발레리오와 메이링이다. 발레리오는 한참 생각에 잠겨 있다.
“좀... 뭐라고 해야 하나... 이제 마음의 짐을 좀 던 것 같겠어요.”
“아니야. 아직 그렇게 말하기는 일러.”
“그럼...”
발레리오는 문득 눈을 지끈 감는다.
“나는 둘째동생에게 아직도 진 빚이 많아.”
“진 빚이라면... 무슨 말인지 잘 알죠.”
“태양석을 내가 직접 보고 만지면 그나마 좀 나아지겠지.”
“서... 설마, 발레리오 씨!”
그동안 가만히 듣고 있던 메이링의 눈이 확 흔들린다.
“그렇게 말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오해는 하지 말게, 메이링 양. 그저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해서 그러는 것일 뿐이니까.”
“음... 그건 그렇고 이제 태양석을 찾는다는 목표는 달성했으니, 할 일이 뭐가 있을까요...?”
“여기 내가 입수한 계약서를 한번 보라고.”
발레리오가 클립에 낀 서류 몇 장을 메이링에게 보여준다. 표지에는 ‘탈라스 컴퍼니 대표 탈라스 곤’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찍혀 있다.
“그러네요. 역시 그 자였어요. 발레리오 씨가 메시지를 파울리라는 자에게 보내 주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그 자리에서 계약을 이행해야 했죠.”
“이번에는 좀더 어려울 수도 있는데...”
“하려면 해야죠. 필요하면 잠입도 하고요.”
“잠입은 하지 마. 몸도 위험하고, 우리 요원들이 더 잘 해.”
“그렇겠죠...”
메이링은 잠시 창밖을 내다보다가, 다시 발레리오를 돌아보며 말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도 우리 일행과 파울리 일행을 무사히 거기서 데려오는 게 우선되는 목표죠.”
“그것도 그래...”
발레리오가 다시 근심에 잠기려다가, 로봇들이 서빙해 오는 저녁 식사를 보더니 얼굴을 확 편다.
“자, 저녁 식사가 왔네. 걱정은 식사부터 하고 나서 하자고.”
그리고 그 시간, 제12호 사원 입구. 사파리 복장을 한 두 사람이 갈색의 소형 승합차에서 내린다. 차에서 내린 그들은 한편 스윽 주위를 둘러본다.
“안 되겠어. 벌써 쫙 깔렸다고.”
“쫙 깔렸다니, 뭐가?”
“누군가가, 우리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그걸 어떻게 아는데?”
“보라고.”
검은 고글을 쓰고 있던 회색 머리의 남자가 고글을 벗어서 옆의 머리를 빗어넘기고 머리핀을 쓴 남자에게 건네준다. 고글을 쓰자마자, 머리핀을 쓴 남자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음... 저 녀석들? 출입구 곳곳마다 지키고 있잖아. 어디서 온 녀석들이지?”
“자세한 건 우리가 알 수 없어. 하지만 이건 확실하지. 우리의 수령을 가로막는 자는 그가 누구이든 간에, 결코 좋은 끝을 맞지 못하리라는 것.”
“그럼 저 녀석들도 일단 죽이고 시작해야 하나?”
“역시...”
회색 머리의 남자가 머리핀을 한 남자에게서 고글을 다시 돌려받으며 말한다.
“너는 나보다 한 수 느리다니까, 콜론.”
“내가 느리다니 뭐가?”
콜론이라고 불린 남자가 되묻자, 회색 머리의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나는 미리 다 끝내 놨다니까? 그것도 은밀하게.”
“은밀하게라니? 마이삼, 또 역사에 길이 남을 잠입 작전이라도 벌인다는 말인가?”
“역시 너는... 말해 줘도 못 알아듣냐.”
마이삼이라고 불린 회색 머리의 남자가 가리킨 곳. 두 명의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서 있는 바로 뒤에는, 어느새 드론 한 대가 자리잡고 있다. 그것도 두 사람의 머리 바로 뒤에!
“잠시 후면 저 드론이 독침을 날리겠지. 저 녀석들은 영문도 모른 채 죽음을 맞이하고, 30분 내로 시체는 모래 아래로 녹아 버릴 거야. 우리의 안전한 출입구가 하나 확보되는 거지.”
“이제 여기서 나갈 일만 남았네요.”
파라가 작업자들 사이에 끼어가며 비토리오에게 말한다.
“태양석이라는 걸 영원히 못 볼 것만 같았는데...”
“조용히. 아직 안심하기는 일러요.”
“왜요, 비토리오 씨?”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니까, 안도하려는 생각은 접어 두는 게 좋아요.”
“그 말은...”
“계약을 했다고 끝이 아니니까요. 사람의 마음이란 변할 수도 있는 법이고, 예상치 못한 변수가 튀어나올 수도 있는 거죠.”
“그렇긴 하죠.”
파라는 무겁게 대답한다.
“일단은 형님에게 돌아가서 보고를 하고, 파울리가 변심하지 않도록 붙잡아야죠. 그래야...”
비토리오와 파라가 진지한 대화를 막 주고받으려던 그때...
뭔가가 휙 스치고 지나간 것 같은, 안 좋은 느낌이 비토리오와 파라의 뺨을 스치고 지나간다. 마치 죽음의 손길이 스쳐 지나가기라도 한 듯한 느낌이다.
“바... 방금 그것... 뭐였죠?”
“파라 씨, 그것이라니요. 저도 아예 못 느낀 건 아닙니다만...”
비토리오가 옆을 돌아보는데...
“뭐... 뭐야! 작업자들... 다른 작업자들이 다 어디로 사라진 거야?”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분명 몇 초 전까지만 해도 비토리오와 파라의 옆에서 걷고 있던 작업자들이, 한순간에 모두 어디로 가 버렸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 빈 자리에는, 불길한 기운이 흘러넘칠 뿐...
“파라 씨,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작업자들은 도대체...”
“다른 건 몰라도 이것 하나는 알 것 같군요. 우리는 지금 공격받고 있어요.”
“공격이라니, 누구에게...”
“조금 전에도 태양석을 인수하려다가 무산된 그 자들이 그러기를, 자신들을 방해하는 그 누구든, ‘처단’의 대상이 될 거라고 했죠. 이제 그걸 실행하기 시작하는 단계일 테고요.”
“하지만 누가 그걸 실행하는 걸까요?”
“누구긴요, 제가 2년 전에 얼핏 듣기로 그 녀석에게는 부하들이 있다고 들었어요. 친위대래나, 뭐래나...”
“친위대요? 뭐, 그런 녀석들 같은 경우 호위무사들을 두는 경우가 거의 다라고는 하지만...”
바로 그때, 파라가 고개를 옆으로 홱 돌리더니...
“피해야 해요, 비토리오 씨!”
“무... 무슨...”
마침 벽면에 그림자가 진 것이 보인다. 파라는 그걸 놓치지 않고...
그리고 잠시 후.
“뭐야, 아까 작업자 2명이 여기 있었는데...”
“왜 그래, 콜론?”
통로 안에 2명의 사파리 복장을 입은 남자들이 들어와서 이리저리 두리번거린다. 그 중 한 명은 벽을 찬찬히 만져 보고, 앞을 살피기도 한다.
“안 보인다고. 코빼기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어.”
“방금 네 능력으로 2명도 마저 없앤 거 아니야?”
“아니라니까. 없앴으면 특유의 자국이 남는다고.”
과연, 콜론의 말대로 비토리오와 파라가 아닌 다른 작업자들이 서 있었던 곳에는 물 흘러간 것과 비슷한 자국이 바닥에 남아 있다. 하지만 비토리오와 파라가 그림자 밑에 숨어 있는 곳에는 그런 자국은 남아 있지 않다.
“찾아봐, 마이삼. 녀석들이 어디로 숨어 버린 건지!”
“신경 쓰지 말고, 얼른 가자고. 밑에 파울리의 다른 패거리들이 아직 남아 있어. 그 녀석들을 처단하는 게 먼저야. 몸통을 우선 없애야지.”
“몸통이면 파울리 말하는 거지.”
그 시간, 미켈은 태연히 일행에게 돌아와서는, 다시 일정을 속행한다.
“조금 전에 보신 건 평생 두고두고 자랑하셔도 될 거라고 자신합니다. 요전에 몇 번 비슷한 코스로 다녀가신 분들은 평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보신 것과 같은 화제가 되는 유물의 발굴 현장을 생생하게 보신 분들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평생에 두고 남을 자랑거리라니까요?”
다들 눈동자가 동그래진다. 심지어 애써 점잖게 보여야 할 니라차의 부모님까지도. 다만, 뒤에서 걷는 현애와 세훈은 그렇지 못하다. 유물 발굴 현장에 있었던 건 확실히 자랑거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과정이 왠지 찜찜하다.
“뭔가 더 큰 일이 일어날 것 같은데... 나만 그런가?”
“아니야.”
세훈의 말에 현애가 간단히 말한다.
“나도 마찬가지라고.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아.”
“그 무슨 일이 뭐야. 그렇게 뭉뚱그려서 말하면 뭔지 모른다고.”
“그러니까...”
현애가 막 뭔가 말하려다 말고, 문득 통로 뒤쪽을 돌아본다. 낌새가 이상하다. 뒤에서 물 흘러가는 소리가 나는 것 같다. 그것도 매우 불쾌한...! 바로 미켈에게 가서, 귓속말로 몇 마디 한다. 미켈은 고개를 끄덕이고, 한번 현애가 돌아봤던 뒤쪽을 돌아보더니, 입을 연다.
“여러분, 이쪽을 한번 보실까요?”
미켈이 가리킨 쪽은 또 다른 방. 발굴이 진행되다 만 곳으로, 여기저기 작업도구와 작업복 등이 방치된 것이 한눈에 봐도 훤히 보인다. 일행이 주저하는 듯 보이자, 미켈은 손짓한다.
“자, 빨리, 빨리. 여기도 봐야지 오늘 저녁 식사가 더 맛있습니다!”
미켈의 손짓에 따라, 일행은 그 작업이 중단된 방으로 향한다.
그 시간, 자라, 바리오, 도레이, 그리고 작업자들의 후발대가 막 현장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장비들은 모두 차량 한 대에 실었고, 가장 중요한 태양석이 든 상자는 자라가 들었다.
“미켈이 그렇게 갑자기 거래 상대를 바꿀 줄은 몰랐어.”
태양석 상자를 든 자라가 문득 말한다.
“10분 전만 해도 그 탈라스 컴퍼니에 가는 게 기정사실이었는데.”
“뭐, 계약서에 나온 대로 한 거니까 우리 잘못은 아니잖아? 미켈은 계약서에 나와 있는 내용대로 했을 뿐이라고. 안 그래?”
“그렇기야 하지...”
그러다가 자라가 문득 뭔가 생각났는지, 손뼉을 딱 친다.
“왜 그래?”
“선발대는 잘 가고 있나 한번 연락을 해 봐야겠는데...”
자라가 전화를 걸지만, 신호음만 들릴 뿐 어떤 수신음도 들리지 않는다.
“뭐야, 어떻게 된 거지?”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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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1-10-06 12:21:29
발레리오가 수백년을 살아오면서 가진 회한은 결코 얕지 않겠죠. 그런 그가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메이링이 놀랄만큼 태양석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확실히 다 이해하기에는 쉽지 않을 거예요. 메이링이 놀란 것도 그래서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래요.
타인에게 보여서는 안될 수상한 행동을 사람들이라면 자리를 뜰 때 최대한 흔적이 남지 않게 하겠죠. 그런데 벽면에 그림자가 진 건 대체 무슨 조화일지...계속 미궁 상태네요. 역시 물이 단서인 걸까요. 꽤나 음습하게 느껴지네요.
시어하트어택
2021-10-10 23:12:47
아무래도 그것을 두고 직접 목숨까지 건 적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를 테니까요. 하다못해 조그만 연필 같은 거라도 거기에 얽힌 기억이 복잡한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 법이죠.
그림자는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물 또한 보통의 물은 아니죠.
SiteOwner
2021-10-26 20:44:42
역시 통상의 인식범위를 넘어선 것은 무섭습니다. 그게 인적사항이든, 물적사항이든.
메이링이 발레리오에 대해 실망한 것같이 느꼈던 것일까요. 자칫하면 협력관계가 깨질 뻔했는데 역시 발레리오가 확보한 정보 및 각종 인재풀 덕분에 상황이 최악으로 떨어지는 것만은 막은 듯 싶습니다.
일부러 흔적을 남기는 것은 그 자체로도 무섭습니다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를 바로 알 수가 없다 보니 그래서 그게 보는 이의 시야를 확 좁혀 놓습니다.
문제의 태양석이 대체 무슨 폭풍을 불러일으킬지...시어하트어택
2021-10-31 20:56:16
태양석은 상상 이상의 파급을 일으킬 겁니다. 그 자체 스스로가 아니라 그것을 얻고자 하는 누군가의 욕망으로요. 하지만 그 파급은 그리 오래 가지는 않을 겁니다. 시간에는 제한이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