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당신은 인종차별에 찬성하십니까?" 라고 물으면 주저없이 "예" 라고 답할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심지어 인종차별주의자조차도, 인종차별이 그 자체로 정당하다는 말은 쉽게 하지 못해요. 선민사상이나 특정 타민족이나 타민족 전체에 대한 일방적인 증오를 노정하는 경우라도 그다지 다를 바가 없어요. 즉 인종차별이 정당해서가 아니라 앞서 언급한 다른 것들을 이유로 인종차별이 정당화될 따름인 것.
그럼 여기서 처음의 질문을 바꿔보죠.
"당신은 특정조건하에서 인종차별을 묵인하실 것입니까?" 라고.
이러면 찬성할 사람들이 아주 많을 거예요. 그 이유는 인종차별을 정당화할 외부의 사안에서 끌어오면 될테니까.
지난달 미국에서 일어났던 미국의 모녀가족이 겪은 끔찍한 경험이 바로 그 사례라고 할 수 있어요.
언론보도를 두 건 인용해 볼께요.
Southwest employee suspected white mom with Black daughter of human trafficking, called police, 2021년 11월 6일 NBC NEWS 기사, 영어
흑인 딸과 비행기 탔더니... 백인 엄마를 인신매매범으로 몰아, 2021년 11월 9일 조선일보 기사
싱글맘인 메리 맥카시(Mary MacCarthy)는 남동생의 부고를 받고 그녀의 10살 된 딸 모이라(Moira)와 함께 10월 22일 로스엔젤레스발 덴버행 비행기를 탔어요. 그런데 사우스웨스트항공의 직원이 그 모녀를 보고 인신매매단이 아닌가 의심하여 신고를 했고 결국 경찰이 그 모녀를 막아세웠어요. 의심한 근거는 가장 마지막에 탑승해서 다른 승객에게 자리를 바꿔줄 수 있냐고 요구한 것과 둘 사이에 이야기하는 것을 못 봤다는 것. 아무리 다인종 가족에게 별의별 의심이 일어나는 게 일상다반사라지만 일단 인신매매범으로 의심하는 데에서 어이가 없어지고 있어요. 정말 모녀가 같은 인종이었으면 의심하지 않아도 되었다는 걸까요.
그러면 이번에는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볼께요.
"당신은 인종차별에 찬성하십니까?" 라는 질문의 전제가 "정답과 오답이 분명히 있으면 인종차별입니다. 이를테면 2+2=4라고 가르치는 것이." 같이 만들어졌어요. 이딴 질문이 정상적일 수는 없는데 이걸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교육부가 밀어붙인다는 게 충격적이죠.
두 가지 자료를 보면서 생각해 봐야겠어요.
2+2=4 강요는 인종차별적? 수학 꼴찌권 미국은 지금 이런 논쟁 중, 2021년 11월 9일 조선일보 기사
A Pathway to Equitable Math Instruction, 캘리포니아주 교육부 특설사이트, 영어
수학의 객관성과 정확성이 인종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이해를 못하겠어요.
학생의 실수를 정확히 지적한다든지 문제해결의 도중식을 쓰게 하는 것이 왜 백인우월주의 문화의 표출일까요. 정답과 오답이 있는 자체가 왜 주장의 영역에 들어가 있는 것일까요. 저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게다가 영재교육에 대해서도 불공평이니 자아에 상처받느니 하는 이유로 기회 자체의 부여를 봉쇄하려는 것이 옳은 것인지. 가치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없는 수학의 영역을 인종차별 운운하면서 훼손하면서 캘리포니아주 교육부가 내세우는 그 지침이 금과옥조라는 보장은 대체 어디에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한쪽에서는 다인종가족이니까 인종차별을 정당화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제대로 된 수학교육을 인종차별 운운하면서 적극적으로 파괴하려 들고. 미국 사회의 이런 이상한 인종차별 담론은 대체 누구를 위해서 또 무슨 이득을 위해서 벌어지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게다가, 이전에 꾸었던 꿈 이야기인 꿈에서 본 기묘한 이론과 정치병에서 언급했던,
원자는 전자와 양성자와 중성자를 착취하고 있고, 연쇄반응에 의한 핵분열은 원자단위의 인민혁명, 수소의 핵융합에 의한 헬륨 원자핵의
형성과 에너지 발생은 민중의 힘이 창조해 낸 인민의 영도자 어쩌고 하는 괴상한 일이 현실로 발생했다는 게 참으로 무섭기 짝이
없어요.
오늘도 악마가 일자리를 잃어가네요.
악마의 실각을 반겨야 하는지, 인간의 흉포화를 경계해야 하는지.
이러다 "악마같은 놈" 대신 "인간같은 놈" 이 심한 욕설이 될 날도 올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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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ter
2021-11-14 16:41:07
1번이야 오해가 낳은 촌극이라고 볼 수도 있죠. 특히나 (결과적으로 오해로 인해 빙 돌아가게 되더라도) 아동의 보호가 우선시되어야 하는 건 사실이니까요. 게다가 보통 인종차별은 흑인을 대상으로 한 게 부각되는 경우가 많은데 백인이 대상이라는 것도 어느 의미로는 새롭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물론 큰 소득은 없었던 BLM 운동에 의한 잘못된 역차별의 발로일 수도 있고, 인신매매범이라면 비행기에 마지막으로 탑승하거나 자리를 바꿔달라고 하는 등의 눈에 띌 만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지 못한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볼 수도 있죠. 원문 기사를 다 읽고 나니까 피해자 모녀에게도 동정이 가지만, 한편으론 '만에 하나'라는 가능성이 걱정돼서 항공사 직원 쪽에도 수긍하게 되네요.
하지만 2번은... 정신이 나갔다고밖에 할 수가 없네요. 2+2=4는 '기본적인' 수준에선 지극히 정상이자 진리이니 인종차별을 들먹일 이유도 없고 2+2=4의 '참-거짓을 논하려면' 학자의 수준이 되어야 하니까요. 분명히 계산에 대해서 여러가지 접근법(ex. 기사에 나온 27+45)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미디어에도 종종 나옵니다(ex. 꼴찌 동경대 가다(원제: 드래곤 사쿠라)). 하지만 이건 엄연히 수학, 더 나아가면 과학이나 기술 발전적인 측면이기 때문에 옳다 그르다의 문제를 들먹이면 발전은 커녕 일상생활의 물건 값조차 계산할 수 없는 지경이 됩니다. 막말로 저런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동네 가게에서 "선생님이 항상 따지라고 가르쳤다, 나는 왜 껌이 2센트인지 동의할 수 없다"라고 물어볼 수도 있는 거죠. 이런 학생들은 십중팔구 사회로부터 '이상한 애' 취급을 받을 테고요. 소위 '창렬'이라 불리는 과도한 가격이 문제가 될지언정, 그건 사회 과목 수업에서 따질 일이니까요. 앞뒤 안 가리고 정치적 타당성(political correctness)을 들먹인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마드리갈
2021-11-15 01:03:03
백인 어머니와 흑인 딸의 건은 정말 뭐랄까 그렇게 항공사 직원 쪽의 입장이 전혀 옳지 않다고 단정할 수 없는 데에서도 비극임에 틀림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인종가족이라서 의심받는다는 것은 여전히 가슴아프지만요.
수년 전 이웃집에서 일어난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보니 더욱 그러해요.
이웃집 주민 중에 주한미군의 군인으로 근무중인 백인과 한국인이 결혼한 가정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 가족에는 백인의 외모를 한 어린 딸이 있었는데 그 여자아이가 집안에서 가벼운 화상사고를 입었는데 한국인 어머니가 미군 헌병대에 체포되는 일이 발생했어요. 이유인즉 미군 헌병대에서는 동양인 여성이 일부러 딸을 학대하고 사고로 속인 게 아니냐고 무턱대고 의심부터 한 거였죠.
진짜 수학에 정치를 입혀서 저따위 소리를 하는 것은 답이 없어요.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말씀하신 것처럼 당장 부조리한 결과가 양산되는 것. 대체 이런 것을 해서 누가 무슨 이득을 보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분쟁을 위한 분쟁이 양산되어 현실의 문제해결이 저해될 것은 확실하겠죠.
이렇게도 볼 수 있어요. 저렇게 엄격하고 객관적인 방법을 배제하려는 것은 흑인이나 히스패닉이 논리적인 사고력이 떨어지니까 그런 인종적인 특성을 배려하여 그것을 완화하는 게 인종차별 해소책이라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이렇게 생각하면 캘리포니아주 교육부의 방침은 정당화될 수는 있지만 전제에서 "흑인이나 히스패닉은 열등하다" 라는 것이 나오니이것은 기존의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서 새로운 인종차별 사고를 적용하는 것밖에 되지 않아요. 이런 역설이 바로 평등을 말하면서 차별을 옹호하는 것이죠. 흔히 하는 말처럼 기존의 인종차별은 나쁜 인종차별이고 자신들이 시행하는 새로운 인종차별은 착한 인종차별이라는 것으로도 환언할 수 있어요.
복스데이
2022-10-09 23:28:54
포스트모더니즘과 뉴에이지가 유행하던 과거에도 페미니즘 진영에 수학과 과학이 본질적으로 남성중심적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하던 입장이 있었죠. 수학사와 과학사에서 여성의 기여가 실제보다 저평가되었기 때문에 여성 과학자와 수학자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는 정도의 입장이라면 저도 동의를 하겠지만, 수학적, 과학적 사고방식 자체가 남성적이라고 하는 주장은 여성이 과학적, 수학적 사고를 잘 하지 못한다는, 오히려 여성차별적인 함의를 갖게 되어버립니다. 제 생각에는 성이나 인종이 우리 사회에서 차별의 축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해결이 필요함에도 쉽게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점 자체는 맞는 얘기지만, 그러한 차별은 여러 다양한 관점을 통해 이해되어야 할 복합적인 현상이지, 그 자체가 세상의 근본 원리나 인식의 기본 공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닌데, 가끔 다른 이론적 조망이나 방법론에 대한 충분한 훈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이러한 차별에 대해서만 과도하게 몰두하여 그것을 세상만사 혹은 철학의 근본 원리로 두고 모든 것을 그것으로 파악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높은 권한을 가지고 일을 추진하게 되는 일은 꽤나 두려운 일입니다.
다만, 캘리포니아 교육부가 운영하는 해당 사이트에 들어가서 대강 읽어보기로는, 생각보다는 '2+2=4'조차 객관적인 정답이 될 수 없다는 식의 극단적으로 반수학적인 기조가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객관성'이 교실내 백인 우월주의의 한 항목으로 들어가있는 것은 좀 걱정스럽지만 이탤릭체로 표기된 것을 보아 객관성 일반에 대한 얘기라기보다는 해당 평가기준 내부에서 사용되는 어느 특정한 항목(아마 절차적 경직성과 관련된)에 붙은 이름인 것 같고, 기본으로는 답 혹은 개념적 이해만 올바르다면 풀이절차의 다양성을 인정하자는 것이기 때문에 해당 접근이 수학의 객관성을 부정한다는 여러 기사의 내용은 자극적으로 과장된 면모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학생들의 실생활과 관련된 예시를 들자는 내용도 있고요.) 미국 교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예를 들어 일본 초등학교 시험 채점에서의 경직성을 지적하는 이런 기사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1975513 /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0/19/2017101902219.html )을 보면 풀이의 다양성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 자체는 맞는 얘기 같습니다. 그런데 그게 미국 교실에서 흑인이나 히스패닉 학생들이 수학 성적이 낮은 진짜 이유일까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들긴 합니다. 제가 해당 주제에 대해 잘 아는 교육 전문가가 아니고 이에 대한 연구가 얼마나 쌓여있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강하게 말을 할 순 없겠지만 '백인 우월주의적 교육'이 인종간 학력 차이의 가장 핵심적인 원인이 아니라면(그것이 실존할 떄의 얘기지만) 다른 제대로 된 원인들을 찾고 그를 해결하는 게 인종간 평등에 더 확실하게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일 것으로 생각되네요.?
마드리갈
2022-10-10 17:26:30
학문이 남성적 여성적 하는 이런 담론이 상당부분 정체성 정치와 연결되어 있어요. 그리고 그 정체성 정치의 함정에 빠진 결과, 지적하신 것처럼 수학과 과학이 남성중심적이라는 페미니즘 진영의 담론이 역으로 여성차별적인 함의로 귀결되는 모순에 동의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이런 정체성 정치의 함정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병폐를 거의 그대로 안고 있거든요. 대표적으로 구성주의적 가정. 인간은 거대한 사회구조의 지배를 받고 그 구조에 따라 사고와 행동이 결정되니까 그 사회구조를 바꾸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지긴 한데, 그 전제를 받아들일 경우 인간은 자율적인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없어서 결국 인간은 아무것도 이루어낼 수 없고, 인간의 자율성을 인정하면 구성주의적 가정을 버려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어요. 이탈리아의 공산주의 이론가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 1891-1937)가 헤게모니 이론을 내세워서 자신의 정체성을 따르지 않는, 일례로 자본가의 이해관계에 찬성하는 노동자들같은 사례를 설명하기도 했지만 그러더라도 구성주의의 딜레마는 절대로 해결되지 않고 정체성 정치 또한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 정치적으로 의사를 결정하고 관철한다" 라는 말만 할 뿐 그 뒤의 대안에 대해서는 아예 말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치게 되죠. 사실 극단적인 경우이긴 하지만 흑인이 아니면 국적 자체를 가질 수 없는 라이베리아같은 나라가 아닌 이상 정체성 정치는 실현가능성 자체가 의문시되어요.
문제는 그런 정체성 정치를 적극적으로 실현하는 정책입안자들이 있고 그들이 위력을 발휘하는 곳이 바로 캘리포니아주라는 것이죠. 객관성을 교실내 백인 우월주의로 낙인찍은 것이 그 출발점이죠. 즉 객관성은 백인 정체성이 만들어낸 허구의 개념이라는 것인데, 이미 여기에서부터 우려의 씨앗은 많이 뿌려져 있어요. 게다가 이에 앞서 1990년대부터는 이런 현상도 있었다고 하죠. 단어를 철자대로 쓰는 것도 인종차별이라는 담론이 있어서, teacher를 ticha로 쓰는 것도 허용되어야 하고 그걸 반대하면 인종차별이라고. 그래서 저는 캘리포니아주 교육청의 그 방침이, 현실화되어서는 안되는 극단주인 반수학적인 기조가 지금은 아니더라도 향후 이행의 여지는 갖고 있다고 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