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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자 H] 169화 - 계획에는 없던...

시어하트어택, 2021-11-17 07:42:45

조회 수
138

바로 그 시간, 테르미니 시내의 붉은 벽돌의 저택.
서재 한가운데에 앉아 있는 남자는 꽤 초조한 얼굴을 하고 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긴장감은 조금 있더라도 여유를 잃지 않았는데, 지금은 어딘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이렇게 오래 살아 오면서 잠이 안 왔던 적은 처음이군...”
책상 한쪽에는 안 읽은 검토 서류가 한가득 쌓여 있다. 평소의 여유 넘치는 그였다면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다.
“왜 그런 녀석들 따위에게 태양석을 빼앗겼는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보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라자가 말한다.
“특전대가 있잖습니까.”
“특전대? 그래. 자네가 여태껏 특전대를 잘 통솔해 왔지. 하지만 벌써 마이삼, 콜론, 라이치, 질라니가 당했어. 대책을 좀 더 철저히 세워 놓지 않으면 안 된다고. 무슨 말인지 알겠나?”
“예...”
“거기에다가, 그 배후에 누가 있는지 아나?”
“그건... 알지요! 보스가 틈만 나면 입에 달고 다녔으니, 저도 잘 알지 않겠습니까?”
“맞아!”
남자의 목소리가 순간적으로 확 올라간다.
“진작에 죽여 없앴어야 하는데, 그 녀석들을! 그때 자기네 형제처럼 만들었어야 하는 건데 놓쳐 버렸다고!”
남자는 잠시 얼굴을 붉히다가, 고개를 흔들고서는 다시 라자를 돌아본다.
“그 뭐냐... 발레리오와 비토리오... 그 녀석들 숙소가 어딘지도 아나?”
“예, 알아냈습니다.”
“좋아. 그 녀석들도 기회를 봤다가 특전대에서 처리해 버리라고.”
“예.”
“그리고...”
남자가 라자에게 뭔가 더 명령을 하려는데...
“어... 어? 뭐야?”
라자가 정면의 홀로그램을 보더니, 소스라치게 놀란다. 눈이 휘둥그레지고, 숨은 턱 막힌 듯 큰 숨을 한번 내쉰다.
“저기, 보... 보스.”
“왜 그러나, 라자?”
“저기... 전에 쓰던 안전가옥에서 이상한 신호가 감지되는데요.”
“이상한 신호?”
“예, 저기!”
라자가 가리킨 곳을 보던 남자의 표정이 마치 더러운 것을 씹기라도 한 듯 일그러진다.
“어느 녀석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쫓는 녀석이 있군. 발레리오 패거리인지, 아니면 2년 전에 굴욕을 안긴 그 녀석인지...”
“특전대를 보낼까요?”
“아니. 다른 건 몰라도 이건 부하들에게 맡길 수 없다. 내가 직접 처리한다. 나를 직접 쫓는 녀석이니, 내가 상대해야지!”
“직접 가신다고요? 보스가?”
“그래. 내 개인적인 악연을 끊어내는 일이기도 하고, 또 나를 직접적으로 노리는 녀석이니 부하들에게 떠넘길 수가 없는 게 맞지. 안 그런가?”
“맞습니다.”
“그렇다면 지원이나 좀 해 주게. 나를 쫓는 그 녀석은 내가 추적해 처리할 것이니.”
“알겠습니다.”
“아, 이 저택에 인력을 좀 추가로 배치하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자가 한번 더 고개를 숙이고는 서재를 나선다. 서재 안에 혼자만 남게 되자, 남자는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책상을 한번 주먹으로 쾅 친다.
“그것은 마땅히 내게 속했어야 했을 것, 반드시 찾고, 강탈한 녀석들은 모두 처단한다. 무슨 희생을 들여서라도. 그러자면, 움직여야지, 나도!”
그렇게 몇 분간을 서 있던 남자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후’ 하고 날숨을 내쉬고는 서재에서 나와서, 라자를 찾는다. 남자를 보자마자 라자가 바로 달려온다.
“예, 보스?”
“특전대 가용 인력은 이제 몇 명 남았지?”
“이제 세 명입니다. 저와 완차이, 그리고 도르보입니다.”
라자가 무겁게 입을 연다.
“세 명 남았군... 그 하나하나가 항공모함과도 같던 전력이... 이 상황이 대단히 엄중한 걸 알고는 있지, 라자?”
“물론입니다. 저도 목숨을 바칠 준비는 되어 있습니다. 만일 명령만 있으면, 목숨을 내놓을 준비도 하고 있습니다.”
“맞아. 자네는 그때를 위해 여태껏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지.”
“그렇습니다. 명령만 내려 주시면...”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지. 파울리 녀석과 그 패거리는 아직은 특전대의 선에서 처리해야 할 때야.”
남자는 다시 라자를 돌아보며 말한다.
“파울리 녀석은, 완차이만 나서도 맥을 못 추겠지. 안 그런가?”
“맞습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능력이라도 순식간에 녀석들을 일망타진하기에는 적합한 능력이죠.”
“그러면 일단 완차이를 내보내고, 라자와 도르보는 일단은 대기하도록 하지. 알겠나?”
“예, 보스.”

그리고 오후 5시.
언제 아까의 난리가 있었냐는 듯 쇼핑몰 내부는 그 이전처럼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몇몇 구역에 출입금지 테이프를 쳐 놓기는 했지만, 다들 그쪽으로 가려 하지 않을 뿐, 그것만 빼면 여느 쇼핑몰과 다른 바가 없는 광경이다. 물론 쇼핑몰 내부가 타 버린 게 아니라, 피해는 광장에만 한정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1층의 로비 역시 마찬가지다. 슬슬 저녁 시간이 다가오자, 쇼핑몰 안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낮의 두 배 정도는 늘어나 있다. 주로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이 많이 보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쇼핑몰 안은 점점 더 번잡하고 시끌거린다. 테이프가 쳐진 야외 광장으로는 들어가지 못하지만.
“우와, 벌써 5시야?”
계단에서 내려오는 시저의 눈에, 로비 한가운데 서 있는 미켈이 보인다. 언제 아까의 난리를 겪었냐는 듯, 미켈은 태연히 그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들고 있다. 다른 일행은 이미 다 모여 있고, 이제 다들 시저만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시저 오빠! 빨리 와요!”
외제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순간 시저를 향한 다른 일행과, 미켈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 시선이 부담이 되었는지, 시저는 발에 속도를 내서 에스컬레이터를 뛰다시피 해서 로비까지 내려온다.
“이제 다 모였네요.”
시저가 땅에 발을 딛자마자, 미켈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연다.
“다소 쇼핑몰 내부 사정으로 혼선을 빚었지만, 오늘의 쇼핑몰 일정도 무사히 끝났습니다. 다들 즐거운 시간 되셨는지요?”
미켈이 이렇게 말하고 한번 일행을 돌아보니, 다들 쇼핑백을 하나둘씩 손에 든 게 보인다. 특히 아까 그렇게 툴툴대던 외제니도 양손에 쇼핑백을 들고 있다.
“야, 뭘 그렇게 많이 산 거야?”
“그러게...”
세훈이 쇼핑백을 슬쩍 보더니, 알았다는 듯 입을 연다.
“이거, 다 옷이지? 어디서 다 이렇게 많이 산 거야?”
“어디긴 어디야, 지하에 의류 매장이지 뭐.”
조제가 그렇게 말하자, 외제니는 순간 조제를 홱 노려본다. 그러자 조제는 다시 어색하게 웃더니 외제니의 눈치를 슬슬 보며 다시 입을 연다.
“그래! 다 내가 골라 주고 그런 건데, 외제니가 좋아하더라! 하하하...”
“그렇다니 다행이네.”
“그럼, 그럼!”
조제는 그렇게 잠시 어색하게 웃더니, 문득 세훈을 돌아본다. 세훈은 다른 일행과 달리, 손에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다. 심지어 아까 세훈과 그렇게 열심히 뛰어다녔던 현애와 니라차도 손에 조그만 가방 하나 정도는 들고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묻자.”
“어, 뭐?”
“너는 왜 아무것도 안 샀어?”
“어... 나? 어... 그러니까...”
세훈도 얼른 답을 하지 못하고 얼버무리는데...
“아, 뭘 했긴. 디저트 가게 가서 이거저거 먹어 보느라고 시간 다 갔지.”
현애가 얼른 끼어든다.
“야, 그걸 네가 말하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왜, 나도 같이 먹은 거잖아? 체력이 좀 떨어졌다고 체력보충 한 거고.”
“하긴, 그렇기는 하지...”
세훈은 기어가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다.
“자, 다들 이제 저녁 일정이 궁금하시겠죠?”
미켈이 다시 큰 소리로 말한다. 다들 말은 안 하지만, 반응은 반반이다. 미켈 가까이에 선 조제와 외제니는 관심있다는 듯 눈을 크게 뜻고 보지만, 나머지 일행은 그냥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딴짓을 하거나, 전화를 보고 있다.
“이곳 테르미니에는 낮에도 볼 수 있는 명소도 많지만, 밤에만 경험할 수 있는 명소도 많죠. 그 중에서도 여러분이 직접 그 안에서 왁자지껄하고, 붐비는 모습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은 많지 않을 겁니다. 자, 어디일까요? 한번 맞춰 보실 분?”
“음... 혹시, 불꽃놀이 아닌가요?”
니라차가 손을 들고 말하자, 미켈은 슬며시 고개를 젓는다.
“아니죠, 아니죠. 설마 우리가 지금 불꽃놀이나 보자고 이러는 걸까요? 좀 더 잘 떠올려 보실까요?”
“......”
잠깐 동안, 다들 말이 없다. 여기저기서 눈 굴리는 소리가 들리는 건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일행은 저마다 이따가 갈 곳이 어디인가 나름대로의 상상력과 근거를 더해서 추론해 본다.
“혹시, 생각나신 분?”
미켈이 그렇게 말하자, 잠시 다들 말이 없다가, 이윽고 조제가 손을 번쩍 든다.
“아, 알겠어요!”
“흠, 말해 볼까요?”
“산 같은 데 올라가서 야경 보고 하는 것 아닌가요?”
조제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미켈은 단번에 손을 저으며 말한다.
“아니죠, 아니죠. 제가 뭐랬어요? 왁자지껄하고 붐비는 거랬죠?”
“왁자지껄하고... 붐비는 것?”
다들 그렇게 되묻더니, 다시 1분여 동안 미켈이 말한 수수께끼의 답을 찾느라 다시 머리를 굴린다. 생각해 보니까 알 것 같다... 밤에 그렇게 붐비는 곳이라면...
“아, 알겠어요!”
세훈이 번쩍 손을 든다.
“혹시, 이따가 우리가 갈 곳이 야시장 아닌가요?”
“네, 정답!”
미켈이 추임새까지 넣어 주며 그렇게 말하자, 세훈은 괜히 우쭐거리고 싶어진다. 옆에서 현애가 눈치를 주지만 세훈은 개의치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기 쇼핑몰에서는 조금 거리가 있는 ‘서부 야시장’이라는 곳인데, 강을 사이에 두고 포장마차와 차양 등이 늘어서 있고, 또 그 주위로 늘어선 건물들의 조명이 인상적인 곳이죠. 그 명성에 맞게 매우 활기찬 곳이기도 하고요.”
“어, 정말요?”
마른 동태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눈이 축축 처지기 일보 직전이었던 일행의 눈이 확 떠진다. 미켈이 말한 것만으로도 벌써 야시장 한가운데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얼른 가보고 싶을 정도로!
“네, 다들 그렇게 기대하고 계시니, 저로서는 정말 영광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후회하지 않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지금으로부터 5분 후에, 저쪽 도로에 세워진 버스를 타시면 됩니다!”

“음, 야시장이라고?”
그 시간, 쇼핑몰 근처 도로변에 정차된 승합차.
“우리는 이제 하염없이 여기에만 있어야 하는 건가요...”
“아니지. 이것도 다 태양석을 되찾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나?”
그렇게 푸른 작업복을 입은 네 명의 남자가 지루해하고 있을 즈음.
“잘들 들리나?”
운전석 앞에 홀로그램 화면이 나타나더니, 라자의 얼굴이 나타난다.
“어, 웬일이십니까, 라자 님? 특전대는 또 어쩌고...”
“수령님은 다음 작전을 위해 다시 정찰대를 사용하고자 하신다.”
“뭐든,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완차이의 성공적인 작전 수행을 위해 모든 제반사항을 갖추는 것. 좌표는 바로 이곳이다.”
곧바로 화면에는 테르미니의 지도가 나타나고, 그 중 시내의 한 구역이 확대된다.
“어... 여기는 서부 야시장이잖아... 포장마차 같은 걸 차리는 건 해 본 적이 없는데.”
“하라면 해야지. 바로 출발하자고.”
조수석에 앉은 남자의 말에 따라, 승합차는 곧바로 그곳을 벗어난다.
시어하트어택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1-11-17 23:05:28

그나마 피해범위가 광장에 한정되었다는 건 불행중 다행이지만, 그들이 얼마나 끔찍한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를 수 있는지는 최소한으로 증명된 거라고 봐야겠죠. 저라면 이런 여행을 계속할 것 같지가 않은데, 저렇게 쇼핑도 하고 있고, 주인공 일행도 정말 대단해요.

문제의 특전대가 절반 넘게 희생되어서 3명만 남았다면 선택지는 더욱 좁아져 있겠죠. 게다가 보다 흉악한 수단도 거리낌없이 구사할 수 있을 것 같고. 야시장에 잠입해서 대체 무엇을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노점에서 생각없이 아무거나 사먹고 다니는 건 피해야 할 것 같네요.

시어하트어택

2021-11-21 19:56:06

이제 정말 끝을 향해 가고 있다는 걸 실감합니다. 남은 특전대와의 싸움은 더욱 위험할 것이고, 그 자와의 대결도 점점 다가오고 있죠. 야시장에서 일어날 일은, 전초전에 가까울 겁니다.

SiteOwner

2021-11-24 20:42:14

미켈이 인도하는 여행, 확실히 제 취향과는 맞지 않는군요.

철저히 자체기획에 약간 한적하고 여유있는 것을 선호하는데다 밤중에 활동이 많은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다 보니 이렇게 묘사되는 것을 보면서 신기하게 여길 따름입니다. 게다가 포장마차 등이 있는 야시장은 더더욱...

게다가 잠재적인 위험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으로 업그레이드될 게 보이는군요. 특전대원들이 자기 목숨을 던져가면서까지 작전을 한다면 무슨 잔인한 수를 쓸지 모를 테니까요.


폭풍전야를 느낍니다.

시어하트어택

2021-11-28 20:48:54

그렇습니다. 정말 크게 한번은 맞붙어야 끝나겠죠. 그리고 그게 이제 하루도 남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상상 이상의 인명피해가 있을 겁니다. 그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이제 실감이 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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