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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흘러, 오후 6시 40분.
서부 야시장은 점점 더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한다. 퇴근 시간과 겹쳐, 야시장에는 가족 단위로 나온 사람들과 직장인, 다른 구경꾼들, 그리고 상인들까지 합쳐져 인산인해다. 미켈과 일행이 걸어다니는 곳곳마다, 이런 시끌시끌한 풍경은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주로 길거리 음식을 파는 포장마차가 보이고, 그 뒤쪽으로는 각종 물건을 파는 가게가 늘어서 있다. 100m 정도 되는 강 한가운데로는 카누에 지붕을 씌워 놓은 것 같은 조그만 배도 다닌다.?
“이야- 이거, 기대한 것 이상인데?”
시장 한가운데 강변 길을 걷던 니라차가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띠고 말한다.
“그동안 왜 여기를 가지 않았던 거야...”
“당연하죠.”
니라차의 말을 듣던 미켈이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제가 왜 여기를 일정표에도 넣지 않고 그동안 꽁꽁 숨겨 왔는지, 아시겠죠?”
“맞아, 인터넷에는 여기가 명소 중 하나로 나와 있었는데...”
니라차의 옆에서 걷는 시저도 맞장구친다.
“왜 여기를 뺐나 했다고요!”
“하하하, 그렇죠?”
미켈은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한다.
“바로 여기를 여러분께 보여주기 위해서였다고 하면... 좀 노골적이라고 할까요?”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사실 일정에도 없는 이곳에 온 이유는 따로 있다. 이 여행의 일정은 거의 모두를 콘라트가 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미켈이 도저히 가기 싫은 곳이 하나 있었다. 그곳이 바로 원래라면 저녁에 가게 될 한 면세점이었는데, 그곳이 콘라트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미켈은 일정을 즉석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침에 몇 곳을 놓고 크루들에게 물어봐서 이곳 야시장으로 바꿨던 것이다.
“야, 슬슬 배고프고 하지 않냐?”
세훈은 옆에 있는 현애의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현애가 귀찮다는 듯 짜증 섞인 얼굴을 하고서는 세훈을 돌아본다.
“아, 왜 그래?”
“그러니까, 저녁 먹을 시간 아니냐고?”
“저녁 시간인데, 뭐 어쩌라고 그러는 거야?”
“아니, 그러니까...”
“네가 알아서 찾든가.”
현애가 그렇게 나오자, 세훈은 ‘그럼 그렇지’라고 말하는 듯한 한숨을 짓는다.
한편, 그중 한 포장마차의 상인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미켈과 일행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단순히 가게 주인이 손님을 보는 눈길이 아니다. 마치 목표를 주의하여 노리는 저격수처럼, 그의 시선은 특히 미켈을 향해 집중되어 있다.
“저 녀석이지, 미켈 파울리. 드디어, 내 사정거리 안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좀 더 신중하게...”
포장마차의 상인은 지그시 앞을 노려본다. 마치, 일행이 이리로 오라고 손짓이라도 하는 듯. 그는 다시 앞을 한번 본다. 그의 앞에는 떡볶이, 타코, 소시지 튀김, 케밥 등의 이런저런 음식들이 진열되어 있다. 그것도 한눈에 보기에도 얼른 달려들어 먹고 싶을 정도로, 먹음직스럽게 생겼다.
하지만 포장마차 주인은 다른 상인들처럼 큰소리를 지른다든가, 노래를 시끄럽게 틀어 놓는다든가, 아니면 큼지막한 광고판을 세워 놓는다든가 하면서 손님을 끌려고는 하지 않는다. 아니, 이 야시장은 손님을 끌어야만 장사가 잘 되는 곳이고, 또 경쟁 상인들이 자신의 바로 앞까지 침범해 가며 호객행위를 하는데도, 그는 개의치 않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할 뿐이다.
그러다가 미켈과 일행이 점점 가까워지는 게 보이자마자, 그 상인은 기다렸다는 듯 포장마차 앞으로 펄쩍 뛰어나와 손뼉을 쳐 가며 미켈과 일행의 이목을 끌기 시작한다.
“자, 자! 안 오시면 후회할 겁니다. 간단하게 한 끼 해결하기도 좋고 입도 즐겁게 해 줍니다! 어서요! 어서! 안 오시면 후회해요!”
“뭐지, 저 사람?”
갑자기 눈앞에 상인이 튀어나와 호객행위를 하자, 맨 앞에 서서 가던 세훈은 다소 놀란 건지 한두 걸음 뒷걸음질을 치며 말한다.
“왜 갑자기 튀어나와서는 저래?”
“뭐긴 뭐야, 장사꾼들이 다 저렇게 장사를 하는 거지.”
현애가 심드렁하게 말한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저기 가면 저 사람의 음식을 먹고, 저 사람은 돈을 벌고, 우리는 배가 부르고, 그런 거 아니겠어?”
“그... 그런 거겠지. 그런데 너무 당연한 소리 아니냐? 그걸 왜 빙빙 돌려 가며 말해.”
“야, 저런 데는 안 가면 안 되냐?”
둘의 뒤에서 시저도 말을 꺼낸다.
“왠지 모르게 위생적이지는 않을 것 같은데...”
마침 그 상인의 눈에, 미켈이 현애와 세훈 앞에 서서 막 뭐라고 말을 꺼내려는 모습이 보인다. 그걸 놓치지 않고, 그 상인은 소형 메가폰까지 꺼내 가며, 더욱더 큰 소리로 미켈과 일행의 이목을 끈다.
“오세요, 오세요! 다른 집들과는 다릅니다. 오로지 저희에게서만 맛볼 수 있는 맛, 특제 소스, 그리고 2배의 크기까지! 안 오시면 후회합니다!”
순간, 그 상인의 유혹에 넘어간 건지, 외제니가 다른 일행보다 앞에 서서는, 다른 일행을 쿡쿡 찌르듯 부추긴다.
“야, 야, 얼마나 맛있길래 저러는 거야? 한 번쯤은 먹어 봐야 하지 않아? 한번 가 보자고!”
“외제니. 말했잖아. 나는 저런 건 안 좋아한다고.”
“그럼 시저 오빠는 안 먹어도 되고요. 저희끼리 먹어도 후회 없기예요.”
“그래라.”
시저가 그렇게 말하자 외제니는 더욱 신이 났는지 미켈까지 쿡쿡 찌르며 가자고 한다.
“네... 알겠습니다. 하나씩 먹어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죠.”
미켈이 그렇게 말하며 그 포장마차 쪽으로 가자, 상인은 포장마차로 들어가며 미소를 짓는다. 그 상인은 사실 특전대원 완차이. 상인으로 위장하고 여기에 온 것도 모두 명령이 있어서다. 그 목표는 다름 아닌 미켈과 일행.
‘흥! 너희들이 내 손에서 벗어날 수나 있으려고? 절대 안 되지. 내가 너희들을 만나려고 얼마나 바쁘게 준비하고, 또 목 좋은 곳을 잡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이 모든 걸 1시간에 끝냈단 말이다! 물론 훔친 것도 있었지만.’
포장마차 주인으로 위장한 완차이는 주먹을 꽉 쥐며, 겉으로는 살살 웃으며 일행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됐다... 이제 준비는 완벽하다!
‘아, 물론 여기 있는 음식들에는 내 능력으로 강력한 식중독에 걸리도록 해 놨지. 발동하는 시간은 지금으로부터 12시간 뒤니까,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면 다들 지옥을 경험하겠지. 내가 쓰러진다고 해서 없어지는 능력도 아니야. 그렇게 되면 활동 불능이 될 거고, 우리의 위험도 하나 제거되는 거지! 태양석 확보는 일사천리가 되겠고!’
완차이는 그렇게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어느새 자신의 포장마차 앞에 선 일행에게 말한다.
“자, 하나씩 골라 주시죠. 뭘 고르시든 후회는 없을 겁니다!”
그러자 일행 중 세훈의 손이 닭꼬치를 향해 뻗는 게 보인다.
‘좋아, 좋아! 한 녀석은 아웃이다...’
“네, 네! 뭐든 마음대로 골라 주세요. 맛은 보장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뭐야, 우리가 먼저였어!”
난데없이, 한 무리의 또다른 일행이 완차이에게 항의한다.
“우리가 먼저 왔는데, 왜 이 사람들만 신경을 씁니까. 안 그래요, 사장님?”
그중에서도 꽤 험상궂게 생겼고 덩치까지 큰 한 남자가, 금방이라도 주먹으로 사람들을 후려치기라도 할 듯 꽉 쥔 주먹까지 내보이며 큰소리를 지른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오신 분들 먼저...”
그 험상궂은 인상의 남자를 필두로 한 다른 일행도 하나같이 그 남자와 비슷하게 우악스러워 보이거나 어디서 싸움질 한번 하고 온 것같이 생긴 인상이다. 마치 폭풍우가 몰아치는 것처럼, 그들은 그 포장마차를 장악하고서는, 5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것저것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을 골라 먹고, 나머지는 잔뜩 포장해 간다. 그러고도, 여전히 그 포장마차에는 많은 양의 음식들이 남았다.
“뭐야, 저 사람들! 분명히 우리가 올 때는 안 보이지 않았나?”
“그러게. 설령 자기네들이 먼저 왔다고는 해도, 설명을 좀 들어 보는 게 맞지 않았나?”
“맞아! 자기네들만 입인가.”
현애와 세훈부터 해서, 다들 그 험상궂어 보이는 일행에 대해 한 마디씩 불평불만을 쏟아낸다. 완차이로서도 썩 내키지는 않는 상황이지만 어쩌겠는가.
그 험상궂은 남자의 일행이 다 지나간 것을 확인한 완차이는, 한번 주위를 슥 둘러보더니, 아직 가지 않고 앞에 그대로 있는 미켈과 일행을 한번 본다.
“그럼... 다음 손님들, 오시죠!”
하지만, 주위가 시끄러운 것 때문인지, 아니면 일행의 이목이 딴 데 쏠려 있던 것 때문인지, 일행은 완차이가 부르는 방향을 돌아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놓쳐서는 안 된다. 지금 이 기회, 미켈과 일행을 완벽하게 일망타진할 기회이기에.
“좀전에 기다리던 손님들!”
완차이는 더 크게 부른다.
“이제 오십시오. 와서 마음껏 드셔도 됩니다!”
그가 바란 대로, 미켈이 완차이의 쪽을 홱 돌아본다. 마치, 완차이를 쭉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보이기도 한다.
‘좋아, 됐다. 이제 됐다고!’
“자, 자! 오십시오. 파울리 씨였죠?”
완차이가 그렇게,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막 미켈을 부르는데.
“응? 뭡니까, 사장님.”
순간, 미켈이 자신의 귀를 의심한 듯 고개를 흔들더니, 완차이를 돌아본다.
“어째서, 제 이름을 알고 계시는 거죠?”
“네...? 어... 어어... 그건...”
“저는 분명히, 사장님께 제 이름을 말하지 않았을 텐데요. 여기 있는 사람들도 제 이름을 부른 적이 없고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다 안다고, 당신! 여기 장사하는 사람 아니지!”
“아윽... 이 자식...”
완차이는 주먹을 꽉 쥐며 이를 간다.
“자, 어쩔 거냐? 뭐라도 할 말 있으면 좀 하시지 그러나?”
“그래... 너희들 말대로, 나는 여기서 장사하는 사람은 아니지. 하지만, 내가 아니더라도...”
“네가 아니면 뭐 어쩌게?”
“해 볼 테면 해 봐라. 너희 따위는... 내가!”
“아니, 굳이 안 해 봐도 될 것 같은데.”
현애가 앞에 서 있던 미켈을 제치고 앞에 끼어들며 말한다.
“뭐야... 이 꼬맹이가. 그 콘라트인지 뭔지 하는 녀석 이겼다고 잘난 척 하기는...”
“이 사람 뭐래. 별 헛소리를 다 해. 안 듣고 싶다니까.”
“뭐야, 이 자식! 너희 따위는...”
완차이가 막 소리를 지르지만, 현애는 미켈과 일행에게 가자고 한다. 일행이 그를 무시하고 그 자리를 떠나자, 완차이는 머리끝까지 화가 났는지 일행을 쫓아가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고 한다.
하지만 발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의 손도 마찬가지다. 뭐라고 다시 한번 소리를 질러 보려던 그의 입도, 눈도. 1분 정도 되는 시간에 그는 마치 포장마차의 광고판처럼 얼어 버린다. 포장마차 깊숙한 곳, 그것도 천막을 비집고 들어가야 볼 수 있는 위치에서 얼어 버렸기 때문에, 그가 소리를 지르거나, 누군가가 일부러 천막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한은, 그를 도와 줄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었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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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1-11-19 19:13:38
이것으로 아트홀에 2000번째 게시물이 등록되었어요. 축하드려요!!
갑자기 다가오는 사람은 모종의 목표가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는 거겠죠. 그리고 그게 많은 경우는 그 목표가 불순하다는 것.
특히 저는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노점에서 음식을 사먹는 경우가 없다 보니 저렇게 노점상이 다가온들 그가 파는 음식을 구매할 확률은 계산할 필요도 없겠죠.
노점상으로 위장한 완차이가 이미 미켈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는 데에서 모든 게 어그러졌네요. 그리고 천막 안에서 얼어 버렸고. 후회해도 이미 답은 없어요.
그나저나 콘라트의 유산은 정말 얼마나 광범위하게 남아 있는 걸까요. 여기에까지...
시어하트어택
2021-11-21 20:01:01
조그만 실수가 모든 걸 어그러뜨리는 법이죠. 원인은 자만감, 그리고 방심. 제가 자주 경험하는 일이다 보니까 더 그렇습니다. 완차이의 경우에는 자만감이 크죠. 그 대가로 저렇게 얼음기둥이 되어 버렸고요.
SiteOwner
2021-12-04 14:03:07
일상적인 통근, 출장이든 여행이든 밤거리는 들뜬 듯 무서운 듯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갑자기 날아든 취객이 휘두른 주먹에 머리를 맞아 보기도 한 저로서는 여행에서 야시장은 늘 빼다 보니 이렇게 묘사되는 야시장의 풍경은 꽤나 이채롭게 보이면서도 묘하게 한기가 드는 기분도 들고 그렇습니다.
역시 그렇지요. 누군가 갑자기 접근한다면 당연히 그가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이지 저에게 이득을 주려고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문제의 완차이 또한 그런 속성의. 게다가 완차이의 목적은 현실세계에서 흔히 보이는 호객행위 정도가 아니라 테러에 있으니까요. 게다가 딱히 유명하지도 않은 특정인에 대해서 그의 이름을 알고 있다면 그런 사람이 수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게 더욱 이상할 것입니다.시어하트어택
2021-12-05 20:43:21
이 에피소드는 제가 오사카 도톤보리에 갔을 때의 그 느낌을 살려서 쓰다 보니 매우 활기찬 느낌이 되었습니다. 그때의 그 느낌이 아직도 제 머릿속에 박혀 잊혀지지 않다 보니 이렇게라도 글로 남기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