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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있어도, 태양석은...!”
남자의 시선이, 순간 방해꾼들에게서 태양석이 있는 방향으로 옮겨지고, 그 붉은 빛이 나는 방향으로 손을 뻗는다. 방향은 제대로 맞춰졌다. 이제 시간과 공간을 조금만 휘저어 주면, 여기 있는 다른 모두가 인지도 못 한 사이에 도달할 수 있다. 저 태양석이 빛을 내는, 그 위치에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렵지 않다.
막 그렇게 주위를 잔뜩 휘저어 놓고서, 호기롭게 그 붉은 빛이 발산하는 쪽으로 막 이동하려는 그때.
“뭐야...”
또다시, 남자의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 이번에는 마치 바닥에 붙박이라도 되어 버린 것처럼, 발을 떼 보려고 해도 떼어지지가 않는다. 발바닥에 느껴지는 찬 기운, 맞다. 이것은!
“네 녀석이냐, 또!”
남자는 곧바로 뒤에 있는 현애를 돌아보며 열을 낸다. 발바닥 아래에서 올라온 찬 기운이라면, 틀림없이 발밑에 묻어 있는 물을 얼렸을 것이다. 그것도 증폭을 시켜 놓은 건지, 금방이라도 동상에 걸려 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감각이 마비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건, 이 주위에는 한 명뿐이다.
“역시, 내 생각이 짧았어. 방해꾼들은 확실하게 처단하고 넘어갔어야 하는 것이었는데...”
“파디샤라고 했지, 너?”
“......”
남자는 말없이 현애를 돌아본다. 말은 하지 않지만, 보통 사람은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바로 눈을 피하며 공포에 시달릴 수 있을 정도의 살의다. 거기에다가 화상을 입는다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뜨겁다!
“그렇게 봐서 뭐 어떻게 하려고? 아까 그렇게 기회가 많았을 텐데?”
물론 현애도 이번에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벌써 온몸에 찬 기운을 잔뜩 둘러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치 극저온의 얼음 기둥이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남자도 이제 아케이드 안에 퍼진 냉기 때문에 온몸을 움츠려야 할 정도가 된다. 하지만 그런 태도는 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태도다. 온 우주의 법칙이 되고 세계를 다스려야 할 신이, 고작 이런 추위에 굴복하면 안 된다... 남자는 그렇게 곱씹고서 현애를 향해 손가락을 쳐들고 말한다.
“그래. 그건 내 판단 미스였다. 하지만 내게 대항한 자는 결국에는 좋지 못한 최후를 맞이하지. 수백 년 전에도 그랬고, 바로 오늘도 그런 녀석이 있었지. 조금 늦었지만, 이제는 집행해야겠다.”
“호오, 그러셔?”
별안간, 현애에게 무슨 힘이 생긴 건지, 남자를 똑바로 노려보고 목소리를 높인다.
“해 볼 테면 해 보라고, 쫄보! 어떻게 건드리지도 못하니까 그렇게 쩔쩔매기만 하는 거 아니야? 뭘 제대로 하나도 못 하니까 괜히 화풀이나 하고 말이야!”
그 말을 들은 순간, 남자의 머릿속을 마치 송곳 같은 것이 헤집는 느낌이다. 처음이다. 이제껏 그 누구와 상대해 봐도, 이 정도로 그의 속을 긁어 놓은 사람은 없었다. 수백 년 전에 죽인 프리모에게도, 100년쯤 전에 격렬하게 싸운 끝에 겨우 죽이는 데 성공한 라투에게도, 심지어 오늘 싸워서 죽인 수민에게도 이런 모욕이 가득 섞인 말은 듣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모욕이 아니다. 쫄보라니... 쫄보라니... 그래서 남자가 받은 충격은 더욱 크다. 그리고 그 정도의 충격은, 남자만 그런 게 아니다.
“아니, 뭘 믿고 저렇게 말하는 거죠, 형님?”
“다 생각이 있겠지만... 저렇게 패기를 보일 정도까지는 아닌데...”
옆에서 듣고 있던 발레리오와 비토리오 역시 그 패기 넘치는 말에 순간 겁을 집어먹을 정도다. 여태껏 들어 본 적 없는 말에 충격을 받은 건지, 아니면 심한 분노 때문인지, 남자의 얼굴이 더욱더 일그러진다.
“다시 한번... 다시 한번 지껄여 봐라. 뭐라고?”
남자가 그렇게 있는 성 없는 성을 다 내며 현애에게 되묻지만, 현애는 태연하다.
“왜 그렇게 화를 내? 당신답지 않게.”
“이게... 나답지 않다면... 도대체 뭐가 나답다는 거냐!”
남자는 폭발하려는 것을 겨우 꾹꾹 누르고서 말하지만, 현애는 여전히 남자의 속을 긁어 놓는다.
“아까 못 알아들은 것 같아서 다시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 주지. 여기 있는 나를 공격할 수 있으면 어디 한번 해 보라고, 이 겁쟁이 쫄보야. 나한테 어떻게라도 건드릴 수 있었으면 지금쯤 그렇게 했을 거 아니야?”
“좋아...”
잔뜩 열이 받은 남자는, 거칠어진 숨과 말하기도 힘들 정도의 격노를 참아내고서, 겨우 한 마디 뱉는다.
“네 녀석, 내가 반드시 쓰러뜨린다. 태양석도 태양석이지만, 너 같은 불경을 저지르는 녀석은 도저히 여기에 살게 놔둘 수가 없다!”
“그래? 한번 해 보라고. 그런데, 너답지 않은데? 그렇게 똥폼이나 잡고 있을 시간에 공격을 좀 하지 그랬어?”
“마... 말 다 했냐, 이 자식...”
남자의 머릿속에서는 순간적으로나마 ‘태양석’이라는 단어가 지워질 뻔했다. 지금 눈앞에서 불경을 저지르는 이 녀석의 존재를 지워 버려야, 그의 최종적이고도 완전한 승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불안한 건 남자와 마주 보고 있는 현애도 마찬가지다. 지금 말한 건 순전한 블러핑이다. 말은 그렇게 내뱉었지만, 남자가 어떤 식으로 나올지, 죽어라 달려들지, 무지막지한 힘을 내보일지, 감정이 흐트러져서 힘이 약화할지, 아니면 그냥 움츠러들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어차피 자신을 노렸고, 거기에다가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나는 싸움이라면 이렇게 허장성세라도 내보여 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상 내뱉고 나니 또다시 불안하다. 고작 몇 초, 아니 찰나의 시간이겠지만 불안해진다. 그래서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온몸에 냉기를 잔뜩 두르고 남자의 공격에 대비하는 것이지만...
“네 녀석은 절대 그냥 못 넘어간다!”
남자는 이윽고 달려들려는 자세를 취한다.
한편 그 시간, 직원용 통로.
조나는 벌레들이 가는 방향을 따라 통로를 빠르게 걷고 있다. 어차피 바리오는 그를 따라오지도 않고 멀리서 멀뚱멀뚱 보기만 하고 있고, 다른 수상한 사람들도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얼른 먼저 가서 태양석을 꺼내면 된다. 변수만 없다면 그에게 방해될 것은 없다...
하지만 변수는 있었다.
조나가 막 그 태양석이 발산하는 붉은 빛에 가까워지려는 그때, 조나의 눈에 보인다.
웬 여자 두 명이 그 붉은 빛을 내는 벽 근처에 있는 게 아닌가.
“뭐, 뭐야, 너희들은...”
“응, 바리오가 온 줄 알았는데, 아니잖아.”
“오, 그래?”
이 목소리도 어디서 들어 본 적이 있다. 다름 아닌 테르미니 퍼스트 크루들의 목소리. 조나에게는 절대 잊을 수 없는 굴욕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목소리 들으니까... 좀 들어 본 적이 있는 목소리인데? 조나 피츠조지 맞지?”
“이런...”
조나는 순간적으로 어디에라도 도망가고 싶지만, 수민의 말을 다시 떠올리고, 눈앞에 서 있는 방해꾼들을 당당히 상대하기로 한다. 이는 꽉 다물고, 주먹은 꽉 쥐고서.
“여기는 또 왜 왔어? 설마 너도 태양석을 가져가려고? 혼자서 무슨?”
“그래. 분명히 나는 혼자야. 너희는 적어도 셋이고. 그런데 말이지, 아까 바리오 녀석에게도 말한 게 있어. 어떤 방식으로든, 너희가 원하는 방향으로는 흘러가지 않을 거라고. 지금도 하고 싶은 말이다.”
“하, 하하하하...”
비앙카가 조나의 말이 말 같지도 않다는 듯 소리내어 웃는다.
“뭐 어떻게 하라는 거지? 네가 살아오면서 여태껏 얼마나 형편없는 선택을 해 왔는지는 네가 잘 알 텐데? 우리뿐만 아니라, 동종업계에도 꽤 소문이 난 거잖아. 이것저것 하다가 안 되니까 갈피도 못 잡고 매표원이나 하고 있는 불쌍한 녀석이라고.”
“그래, 그랬지...”
조나는 이를 갈아 가며 말한다.
한편 그 시간.
“그냥 못 넘어간다고?”
“그래...”
현애의 말에 남자는 눈을 치켜들고 노려보며 말한다.
“지금까지 이것과 같은 모욕은 받은 적이 없었다. 그동안의 다른 무엇보다도, 신성모독의 대가가 큰 건 알고 있지?”
“물론. 잘 알고 있어. 그런데, 네가 받아야 하는 거니까. 신을 참칭한 대가는 크지.”
현애는 다시 또박또박 말한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난데없이 수십 개의 주먹들이 현애를 향해 날아오는 듯한 기분이다. 눈치채지도 못한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한 기분에서 끝나지 않는다. 수십 개의 주먹들이, 그대로 눈에 보인다!
“이것이 바로 네게 주는 징벌이다. 너는 인지도 하지 못했겠지. 하지만 이것은 확실한 신의 징벌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것은 단순한 느낌 같은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수십 개의 주먹들이 일제히 한가운데의 현애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눈 깜짝할 새에.
“이, 이런 것쯤...!”
한순간에 주위를 확 얼려서, 어느 정도는 대처할 수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용케 얼어 버리는 것을 피한 주먹들이, 허리와 옆구리 쪽에, 강타한다!
“으... 윽!”
그 두어 개의 주먹으로도 꽤 충격이 컸는지, 앞으로 나가떨어진다. 아까 복부를 직접 직격하려던 주먹 한 방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힘이 꽤 셌는지 그늘진 구석까지 날아가서, 대리석으로 된 바닥에 바로 떨어질 뻔했지만...
“어... 뭐야?”
알 수 없는 공간이다. 다행히, 그나마 충격을 덜 수 있었다. 어디로 떨어져 버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돌아보니 호텔 아케이드 안은 아닌 듯하다다.
“괜찮아?”
“어, 누구...?”
“나야, 안심하라고.”
파디샤라고 불리는 그 남자는 아니다. 다행이다. 온몸이 욱신거려도 안도할 수 있다. 현애가 일어서려다가 옆을 보니, 미켈이 옆에 있는 게 아닌가. 잔뜩 긴장한 얼굴은 현애 못지않다.
“왜 여기 웅크려 있는 거야, 다들? 혹시 위에서 설쳐대고 있는 녀석 때문에?”
“어, 맞아. 한 번의 기회를 노리고 있지.”
“어우...”
현애는 타격된 부위가 쑤셔 오는지, 자꾸만 어루만진다.
“왜 그래? 괜찮은 거야?”
“괜찮아, 나는 괜찮으니까, 각자 안전에 신경 써. 나는 어차피 저 녀석과 어떻게든 결판을 봐야 돼.”
“야, 네가 무슨 저 녀석과 결판을 낸다는 거야!”
뒤에서 듣고 있던 세훈이 소리를 버럭 지른다.
“세상의 고통을 모두 짊어진 것처럼 말하지 말라니까? 꼭 너 전학 오기 전의 나를 보는 것 같다고!”
“나 전학오기 전...? 그래, 선배들하고 좀 싸웠다고 했지. 그걸 어떻게든 극복해 냈고. 그런데 지금은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잖아? 너도 나하고 함께 다녀서 잘 알기는 하겠지만...”
“그러니까 말이야. 너는 혼자가 아니라고! 알겠어?”
“아, 알아, 알아. 무슨 말인지.”
그런데, 바로 그때.
“옳거니, 여기 있었군!”
남자의 목소리다. 거기에다가, 이 그림자 바로 위를 밟고 있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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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갈
2022-02-19 23:48:49
자신이 대단하다고 여기는 사람에게 제대로 일격을 가할 수 있는 방법, 현애가 제대로 알고 있었네요.
아주 간단하게, 그것도 아픈 데를 훅 찔러서 비웃어주기. 파디샤가 완전 발작하는 게 눈에 보여서 굉장히 웃기게 보이기도 했어요!! 이제 제대로 찔렸으니 남은 건 그 찔린 구멍으로 바람이 들어가는 거네요. 풍자(風刺)라는 한자어 그대로예요.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오는 건, 게다가 예측하지 못한 방향에서 들려오는 건 확실히 그렇죠.
게다가 갑자기 복수의 공격이 들어오면 이걸 모두 막는다는 보장도 없고...시어하트어택
2022-02-20 21:22:51
확실히 자존심을 긁어놓는 것보다 큰 상처를 남기는 건 없습니다. 자존심으로 가득 넘쳤던 상대를 일순간에 무너뜨려 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과연 어떤 과정을 거칠지, 태양석의 행방은 어떻게 될지, 그래도 아직은 확실한 행방은 알 수 없습니다. 끝의 끝에 가서야 행방이 나오겠죠.
SiteOwner
2022-03-26 16:51:39
허세가 드높은 사람들이 저런 도발에 제대로 당하기 마련입니다.
겁쟁이라고 들으니 파디샤는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듯 분노가 끝간데를 모를 것입니다. 현애가 제대로 잘 찔러줬군요.
예전에 저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저에 대해서 인신공격을 가했던 게 생각납니다. 이를테면 부모없는 놈이니 하는 욕에 대해서 "최소한 난 당신같은 불량품을 낳은 부모에게서는 안 태어났는데?" 이라고 맞받아치거나, "개새끼야" 라는 욕에 대해서 "개새끼 하나 못이겨서 안달인 사람님이 참 불쌍합니다" 라고 비꼬거나.
태양석이라는 게 정말 태양처럼 빛을 내는 순간이 왔군요.
이제 모든 것이 결정될 순간이라고 예지하는 것인지.시어하트어택
2022-03-27 21:10:39
물론 '팩트폭력'도 좋은 공격수단입니다만, 저렇게 약간의 허세를 섞더라도 자존심을 팍팍 긁어놓으면 효과가 더 커집니다. 불행히도 저는 저 정도까지의 언변은 갖추지 못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