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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부가 수상하다!] 55화 - 누군가에게는 난감한 월요일(2)

시어하트어택, 2023-02-14 20:10:02

조회 수
114

민을 본 슬레인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 버린다.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손발을 허공에 휘두르며 민을 오지 못하게 한다.
“오지 말라고! 오지 마!”
“아니, 도와 달라고 해서 가는 건데, 인제 와서 오지 말라니, 그게 말이 되나요?”
“너보고 도와 달라는 거 아니었어! 그러니까 돌아가!”
슬레인이 그러건 말건, 민은 자기 알 바 아니라는 듯,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마치 슬레인을 보고 놀리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그리고 슬레인을 좌우로 보고는, 한마디 더 한다.
“그거 분명히 선배님 능력이죠? 그런데 왜 자기 능력에 자기가 당해요?”
“......”
슬레인의 심장은 점점 불규칙하게 울리고, 숨도 거칠어진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초능력을 푸는 것도 뜻대로 안 되고, 그렇다고 능력을 발동한 채로 그대로 놔두자니 그 끈적한 것이 슬레인의 손발을 점점 더 강하게 옥죈다. 마치 누군가가, 슬레인의 능력을 훔쳐간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러건 말건, 민은 그렇게 슬레인을 놔두고서는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걸 본 슬레인은 다급했는지 목청을 빼고 큰 소리로 말한다.
“야... 야! 그렇게 가지 좀 말고, 나 좀 돌아봐봐. 내가 정말로 가라는 건 아니었거든! 나는 거저, 단지, 내가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같아서 그렇게 말하는 거였는데...”
“돌아가라면서요.”
“그러니까 속뜻은 그게 아니라고!”
슬레인은 더 크게 말해 보려고 해도, 이미 민은 슬레인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다.
“그 뜻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와서, 내 말을 좀...”
하지만, 민은 이미 슬레인의 시야에서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무심코 지나가는 사람들을 빼고서는 말이다.
“그러니까...”
슬레인의 고개가 푹 숙여진다. 허탈했는지, 눈에는 눈물마저 핑 돈다.
“제발 아무나 좀...”

그렇게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슬레인은 여전히 분수대 한쪽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고, 그나마 사람들이 몇 명 있었던 아까와는 달리, 공원 안에는 인기척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공원의 주위에 오가는 사람들이 몇 명 있기는 하지만, 슬레인이 끈적한 무언가에 묶여 버린 위치는 사람들의 시선이 직접적으로 닿지는 않는 곳. 슬레인이 뭐라고 소리를 질러 봐도 사람들은 듣지를 못하는지 그냥 다 지나가 버린다.
“아무도 없어요! 제발 좀...”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슬레인의 바로 옆으로 다가온다.
“아, 아아...”
금방이라도 내밀어 줄 듯한 그 구원의 손길에, 슬레인은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오래 기다린 끝의 구원이란, 정말이지 달콤하고서도 햇빛이 얼굴에 내려 쬐는 듯한 기분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구원자를 향해 얼굴을 돌리자...
“으앗...”
슬레인의 옆에 서 있는 그 ‘구원자’란, 다름 아닌 민이다. 슬레인이 생각한 것과는 다른 이 상황에, 슬레인은 당황했는지 민의 얼굴을 애써 쳐다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네가 왜 또 왔어! 얼른 돌아가지 않으면...”
“어, 아까는 괜찮다면서요?”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고! 지금 내 상황을 봐. 이렇게 끈적이는 건 내 힘으로 풀어버리거나 할 수 없는 건 아니야. 그러니까 내가 왜 너보고 가라고 하는지...”
슬레인은 그렇게 애써서 되도 않는 변명을 해 보지만, 민은 한 마디로 그 수많은 변명들을 쏙 들어가게 한다.
“그럼 진작에 풀고 나오지 그랬어요?”
“그러니까... 내 말은 그게 아니고...”
민의 그 말에 슬레인은 또 풀이 죽는다. 입에서 막 나오려던 말도 쏙 들어가 버리는 기분이다. 그것도 자기 또래나 한두 살 정도 어린 후배라면 모르겠지만, 지금 슬레인의 앞에 선 사람은 초등학생이다. 덩치는 슬레인보다 약간 작을 뿐이기는 하지만.
“아니, 아니, 아니야, 내가 하려는 말은...”
“말 좀 빙빙 돌리지 좀 말고요. 구해 줘요, 안 구해 줘요?”
“그러니까...”
슬레인의 목소리가 잠시 떨리는 듯하더니, 곧이어 울먹임으로 바뀐다.
“그러니까...”
“야, 민아, 이 형 이야기를 지금 할 상황이 아닌가 보다. 가자.”
유와 코니가 입을 모아 그렇게 말하자, 민은 곧바로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떠난다.
“그러니까...”
슬레인이 막 뭐라고 더 해 보려고 하던 그때.
어느새, 없어졌다. 그 끈적거리는, 슬레인을 붙잡아 뒀던 것들이.

민과 친구들이 떠난 자리에서, 슬레인은 잠시 멍하니 서 있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건지, 그리고 어떻게 자신이 자기 능력에 당하고 또 벗어나게 된 건지,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 지금의 이 결과물이, 믿기지 않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분한 감정이 깊은 곳에서부터 밀려온다.
“결판을 보려고 했는데...”
그렇게 마치 넋두리를 늟어놓듯 말하더니, 슬레인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을 뻔하다가, 용케 어느 나무에 기댄다. 그럼에도 몸에 힘이 상당히 빠져나간 것 때문인지, 다시 일어서고 할 생각도 나지 않는다.
“이래 가지고서는 뭐를 하려고 해도 안 되잖아...”
그렇게 온몸의 힘이 다 빠진 채로, 나무에 약 5분 정도를 기대어 있었을까.

“어?”
문득, 슬레인의 전화로 누군가가 전화를 해 온다. 어디서 한 번 본 적은 있던 번호인데...
“누구지...”
처음에 드는 생각은 의심. 전화를 받지 않기로 한다. 그런데 전화벨은 약 1분 가까이 울린다. 마치 슬레인이 전화를 받을 때까지 전화 걸기를 멈추지 않겠다는 듯 말이다. 하는 수 없이, 전화를 받는다. 그리고 익숙하기는 하지만 많이 들어 보지는 않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어, 슬레인이냐? 어떻게 전화를 받았네?”
“...누구야. 내가 아는 목소리인... 것 같은데?”
“그리고 목소리에 왜 그렇게 힘이 없어. 자다가 일어났냐?”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러던 중 슬레인의 머릿속에 문득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떠오른다.
“너, ‘준후’지?”
“하하, 그걸 이제 알았어? 너 나하고 동아리 같이 하자고 하면 할래?”
준후라는 남학생은 웃으며 뜻밖의 말을 한다.
“뭐, 동아리? 네가 동아리를 다 해?”
“아니, 아직 만들지는 않았는데... 학교에 이제 승인을 받을까 하고.”
준후라고 한다면 슬레인도 그렇게 많이 친한 동급생은 아니지만, 관심사는 좀 많이 맞는 편이라고 슬레인 스스로도 생각한다.
“좋아... 무슨 동아리를 하려고 하는지 이야기나 들어 보자.”

오후 5시, 스텔라 법률사무소. 한참 문서를 검토하던 메이링은, 누군가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저기, 변호사님? 맞죠?”
“어, 세훈이냐? 무슨 일이야?”
“아무래도 이전에 말썽을 부렸던 녀석들 중 몇 명이 모여서 또 이상한 모임을 만들려는 것 같은데요.”
전화를 받자마자 세훈은 역시나 심상치 않은 정보를 꺼낸다. 세훈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는 메이링으로서도 꽤 믿을 만한 정보이기는 하지만, 지금은 바쁘다. 여러모로 말이다.
“너 그 애들 잘 알잖아. 그리고 내가 바쁜 것도 잘 알고, 그렇지?”
“그러니까, 변호사님...”
“정 혼자서는 답이 없을 것 같으면 연락해. 하지만 그 전에는 스스로 알아서 하는 편이 너한테나 아니면 다른 친구들에게나 더 나을 것 같은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전화 너머의 세훈은 잠시 말이 없다. 메이링의 답이 조금 마음에는 들지 않은 모양이다.
“내가 매번 학교 일에 개입할 수는 없잖아? 그러면 모양새가 이상해지는 건 너도 잘 알 테고. 안 그래?”
“그렇기야 하죠...”
“그럼 네 말은 충분히 이해했으니까, 또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알겠지?”
“네...”

그리고 그날 저녁, ‘람다’ 아파트단지.
안젤로는 오늘도 운동을 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역시, 어제처럼, 오늘도 비가 오거나 회오리가 생기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머리 위가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며칠을 그런 소동을 겪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안젤로의 눈에 못 보던 광경이 펼쳐져 있다. 중앙광장과 놀이터 주위로 뭔가 트랙같이 보이는 것이 설치되어 있는 게 아닌가. 가운데쯤에 사람들이 몇 명 모여서 모니터를 열심히 보고 있고, 그 주위로 구경꾼도 몇 명 모여 있는 게 보인다. 조그만 모터카가 쌩쌩거리며 달리는 소리도 들리고, 기계음도 몇 번 울리는 것도 들린다.
“어... 뭐를 하는 거야?”
안젤로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본다. 안젤로의 눈앞에 있는 그 트랙에, 모형 자동차가 휭 하고 지나가는 게, 보인다. 그리고 그 구경꾼들 중 몇 명의 얼굴이 보인다. 몇 명은 안젤로가 아는 사람들이다. 나디아도 보이고, 토마도 보인다.
“뭐야, 여기서 지금 뭘 하는 거야?”
안젤로는 얼른 자기가 아는 만화부원들 사이로 끼어들어서는, 옆에 있는 나디아에게 마치 속삭이듯 묻는다.
“왜 난데없이 여기 갑자기 이런 걸 하고 있냐고? 아는 거 있어?”
“그건 말이죠, 선배님...”
나디아가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하기도 전, 갑자기 모터카가 휭 하며 지나가더니, 앞에서 팡파르 소리가 울린다. 딱 들어도 조잡한 기계음이기는 하지만. 그리고 앞에서 모니터를 보며 무언가를 조작하던 사람 두 명이 안젤로에게 와서는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오, 안젤로냐?”
“응...?”
이 얼굴, 안젤로에게 익숙하다. 옆 반 친구다. 이름은 ‘김해진’으로, 꽤 오래 전부터 모터카에 취미가 있는 건 알고는 있었지만, 왜 갑자기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에서 이런 걸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야, 너 여기서 왜 이런 걸 하는 거냐?”
“아, 인사해. 여기는 ‘파이살’이라는 분이시고...”
그러건 말건 해진은 자기 옆에 있는 처음 보는 사람을 소개하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있다. 물론 주위에 있는 구경꾼들은 거기에 관심이 쏠리기는 하지만, 안젤로의 관심은 다른 데에 있다. 해진을 한번 보더니, 대뜸 입을 연다.
“혹시, 너도 동아리 들어갔냐? 무슨 동아리인지는 대충 알 것 같다만...”
“어,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지.”
정말 그 말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해진은 바로 말한다.
“우리 동아리는 보다시피, RC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어. 설령 우리 학교가 아니더라도 말이지! 그러니까, 관심 있으면 연락해.”
“어, 잠깐.”
안젤로는 해진의 말에서 뭔가 이상한 것 같았는지, 되묻는다.
“야, 명색이 우리 학교 내부 동아리인데 우리 학교 학생이 아니어도 들어올 수 있다니! 그게 말이 되냐?”
안젤로의 말을 들은 해진이, ‘왜 그런 걸 다 묻느냐’는 듯한 표정을 하더니, 기다렸다는 듯, 자기 앞에 놓인 모터카에 괜히 시동을 걸며 말한다.
“어...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야.”
“뭐야, 또 그건? 학교 동아리면 학교 동아리고 아니면 아닌 거지!”
안젤로의 말에, 해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이어 입을 연다.
시어하트어택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3-02-15 17:56:41

슬레인의 기묘한 곤경이었네요. 일단 멘탈붕괴까지 가지 않은 건 다행일까요?

그리고 전작에 등장했던 박준후가 재등장했네요. 그리고 그의 웃음은 역시 여전한 듯...

이전에 일을 벌였던 자들이 다시 준동하고 있으니 역시 안 뜨일 리가 없네요. 그리고 그 정보는 메이링에게도 들어가 있긴 하지만 메이링은 본업에 바쁜 터라 적극적으로 나설 수가 없네요. 세훈에 대한 조언도 아주 적절해요. 역시 메이링이 참 능력이 좋아요.


아파트단지 내부에서 모터카는 좀 뜬금없네요.

게다가 학교 동아리의 구성원이 다른 학교의 학생이라도 가능하다는 것도 좀 이상하네요. 물론 그런 경우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저는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

최근 본 창작물 중 Do it yourself! 라는 제목의 애니에 그런 경우가 있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 여기기도 했어요.

시어하트어택

2023-02-19 22:09:13

슬레인에게는 경험하지 못한 상황이다 보니 저렇게 행동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과 위치의 한계를 체감하고 준후의 제안을 저렇게 수락한 걸지도 모릅니다.


요즘은 학교에 연합 동아리가 있다는 말도 있으니 마냥 개연성 없는 상황은 아닐 겁니다.

SiteOwner

2023-03-08 21:44:58

그렇게 슬레인 자신을 괴롭히던 자승자박 상태거 거짓말같이 해소되었군요. 참 신기합니다.

정말 고생해서 깨달은 게 있으면 그 고생이 헛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과연 그럴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겠지요.

전작에서 등장했던 준후가 이렇게 슬레인에 접근하는 것도 그렇게 순수한 의도가 있다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자와 가깝게 지내봤자 근묵자흑 근주자적인데...


아파트단지 내에서 모터카는 정말 위험한데, 괜찮을지 우려됩니다.

시어하트어택

2023-03-12 20:51:14

하지만 슬레인은 또 정신을 못 차리겠죠. 만일 그랬다면 앞으로 계속 나올 일도 없을 테니까요. 준후가 저렇게 접근하는 것만 봐도 슬레인이 그렇게 쉽사리 갱생될 일은 없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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