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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이 만화부실까지 걸어가는 길에, 조금은 낯선 광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가는 길이 완전히 바뀌었다든가 하는 건 아니지만, 굉장히 이질적이라고 느껴질 만한 광경이다.
“응? 이게 뭐야?”
복도 양옆에, 애니메이션 포스터가 줄줄이 붙어 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다른 동아리들의 포스터를 가려 버리고, 마치 애니메이션 자랑을 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다들 복도에 늘어서 있는 포스터를 한 번씩은 보고 가는 건 물론이다. 그리고 몇 명은 불만이 섞인 표정을 하는 모습도 보인다. 다른 동아리 부원들일 것이다.
“분명 우리 만화부에서 한 것 같기는 한데, 왜 이런 걸 여기 붙여 놓은 거지?”
머리를 갸우뚱거리면서도, 얼른 부실로 가 봐야겠다는 생각에, 민은 서둘러 부실로 향한다. 옆에 늘어서 있는 포스터는 아랑곳하지도 않고서 말이다.

그렇게 해서 만화부실에 들어온 민의 눈앞에, 만화부에서는 못 보던 사람 몇 명이 앉아 있는 게 들어온다. 몇 명은 민도 잘 아는 얼굴이지만, 또 몇 명은 민도 잘 모르는 얼굴이다. 일단 누구인지는 조금 있다가 자기소개를 할 때 듣기로 하고, 막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으려는데, 민보다 머리 하나 정도는 작아 보이는, 반다나를 머리에 두른 파란 머리의 여자아이 한 명이 다가온다.
“오, 민이 오빠네?”
“어, 그래, ‘로지’구나.”
로지라면 민도 잘 안다. 평소 만화를 좋아하는데, 언젠가는 만화부에 들어올 것 같다고 민도 예상은 했었다. 그런데 옆에 있는 신입 부원은 아무리 봐도 모르겠다.
“어, 네가 민이냐?”
그 모르는 얼굴의 신입 부원이, 민을 보자마자 어깨를 잡는다. 딱 봐서는 중학교 교복을 입은, 은색 머리의 여학생인데, 민이 자주 본 얼굴은 아니다. 아주 본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어... 그러니까 누구...”
“나를 보고서도 잊어버리면 어떻게 해!”
본 적은 있지만, 기억이 나는 건 아니다. 그래서 민은 다시 묻는다.
“그러니까 누구...”
그 여학생은 대답하는 대신, 웃기만 한다. 마치 민의 약을 올리겠다고 선언이라도 하려는 듯한 과장된 손뼉은 덤이다.
“정 모르겠으면, 이따가 자기소개 할 때까지 잘 생각해 봐. 얼굴 보면 알 텐데!”
“하, 이야기를 할 것이지.”
그 여학생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말을 한마디 하고서는, 민은 바로 자신이 봐 둔 자리로 간다. 거기에 앉아 있는 건, 예상대로 토마와 료다. 토마는 민을 보자마자, 안 그래도 어두웠던 얼굴이 더 어두워진다.
“뭐야, 토마는 뭘 했길래 이래?”
“어... 아니야.”
료가 대신 말하지만, 토마는 왜인지 모르게,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다. 이유야 당연히, 민도 잘 아는 것이다. 그래도 굳이 토마에게 다가간다든가 하지는 않는다. 무엇 때문에 저렇게까지 조용히 있는 건지 민은 잘 안다. 옆에 앉아 있는 료가 민을 보더니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리며 웃는다.
“뭐... 그래.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되겠어.”
그렇게 중얼거리고서, 뒤쪽 책장에 있는 책 중 하나를 막 꺼내어 표지를 보려는 바로 그때...
“어, 뭐야, 토마! 살아 있었네!”
한 남학생이 토마를 보고 다들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한다. 민이 그쪽을 돌아보니 아론이 서 있다. 정말로 반가운 건지, 아니면 골탕 좀 먹어 보라는 건지 모를 웃음은 덤이다. 그런 아론을 보고도 토마는 뭘 하려고 하지 않는다. 민이 잠시 기다려 봐도, 주위에 이상한 습기가 찬다든가, 아니면 창밖에 갑자기 없던 구름이 보인다든가 하는 일은, 이제 없다. 그리고, 민을 은근히 피하려는 듯한 아론의 태도는 덤이다.
그리고 아론의 뒤를 따라,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다른 부원들이 우르르 부실 안으로 들어선다. 부실 안에 앉아 있는 못 보던 얼굴들을 보자, 몇 명은 ‘저 애 누구냐’는 듯한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지만, 또 다른 몇 명은 반갑다는 표정을 한다.
“오, 저 애들이야? 몇 명은 예상했지만.”
지온의 목소리도 들린다. 지온 역시 새로 온 부원들을 보자 호기심이 발동한 모양이다. 그리고 그 뒤로 다른 몇 명의 부원들이 더 들어오더니...
“아, 다들 와 있었구나! 내가 너무 늦게 온 건 아니겠지?”
윤진이 들어온다. 역시, 두 손에는 이런저런 소품들이 잔뜩 들려 있다. 표정은 그렇게까지 밝은 건 아니지만.
“토요일 날, 다들 수고 많았어.”
윤진이 처음 꺼낸 그 말에, 몇 명은 박수, 몇 명은 ‘오’ 하는 감탄사 등, 제각기 반응을 보인다.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마치 영혼이 탈출한 듯 소리 없는 박수를 치는 토니는 덤이다. 윤진은 잠시 헛기침을 하더니, 웃음기를 싹 빼고 입을 연다.
“신입 부원들 소개에 앞서서, 우선 미안한 이야기를 전하게 됐는데, 이번 주와 다음 주에 계획되었던 만화부 자체 모임이나 상영회 같은 게 다 취소되었어. 이미 아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순간 부실 안이 조용해진다. 윤진도 이런 반응은 예상했다. 이미 월요일과 화요일에 걸쳐 학교 곳곳에 공지가 붙었고, 인터넷에도 올라온 내용이다. 윤진은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동아리 총연합회에서 결정된 사항이야. 말하자면...”

그리고 그 시간, 미린고등학교 방송실.
“그래서... 내일부터 교류 모임을 하고 싶으니까, 좀 빨리 승인해 달라는 거지?”
“네, 선배님... 뭐 혹시 빠진 거 없는지...”
가운데 앉아 있는 방송부 매니저 아멜리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슬레인.
“문제 될 내용이야 없지만, 동아리 주제가 조금... 엉뚱하다고 해야 하는 건가...”
아멜리가 들고 있는 신청서의 동아리 이름난에는 ‘자동차 연구 모임’이라는 이름이 기재되어 있고, 슬레인은 그 이름에 자꾸만 신경 쓰이는 듯 머리를 긁적거리고 있다.
“선배님... 문제 될 거 없잖아요? 자동차 연구야 여러 가지 분야가 있는 것이고, 또 빠르면 선배님 정도 나이에 운전면허가 있는 사람도 있다고요. 거기에다가, 이상한 목적도 아니고요.”
“동아리 방은 구했어?”
“뭐... 아마도 학교 주차장이나 되지 않을까요.”
“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선생님들이나 이사장님이 그런 걸 용납해 줄지는 둘째 치고, 다들 웃으면서 지나가겠다!”
“......”
“방을 못 구했다는 말을 그렇게 빙빙 돌려서 하면 어떡하냐.”
아멜리는 불쌍하다는 듯 한숨을 쉬고는, 금세 방송부실 안에 홀로그램으로 된 학교 약도를 켜고 그중에 어느 한 방을 가리킨다. 위치는 만화부실 기준으로 세 칸 정도 옆에 있는 통로를 지나가면 처음 나오는 곳이다.
“여기는... 초등학교 쪽이잖아요.”
“방이 없는데 어쩌겠냐.”
슬레인이 한숨을 쉬어도, 아멜리는 그저 한마디만 한다.
“더 좋은 방 나오면 이야기해 줄게. 그 방도 꽤 괜찮은 방이니까, 잘 써 보라고.”
“네...”
슬레인은 힘없이 대답한다.
“아마 이따가 선생님들이 검토하실 거야. 승인이 나면 연락이 갈 거고.”
“네, 감사합니다.”
아멜리의 말에 슬레인은 마치 모기 날아가는 소리처럼 대답하더니, 마치 도망가기라도 하듯 서둘러 방송실을 빠져나간다.

그리고 그 시간, 만화부실. 가운데에 다섯 명의 부원들이 일어서 있는데, 지금 한참 자기소개를 하는 중이다. 남자 2명, 여자 3명이다.
“...잘 부탁드립니다.”
부실 한가운데 일어선 다섯 명의 부원들 중 한 명이 말끝을 줄이며 끝내자, 윤진이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자, 그럼 오늘 새로 온 부원들 한번 다시 한번 보자. 여기가 니라차, 또 토쿠, 아오, 료, 로지. 어때, 잘 데려왔지?”
윤진의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실제 속내는 겉에는 보이지는 않아도, 어찌 됐건 새로 부원이 왔으니 축하해 주는 건 당연한 것이다.
“그럼 이제 다시 아까 그 교류 주간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면...”
윤진이 이야기를 할 동안, 지온은 옆에 앉은 니라차를 보고 신기하다는 듯 귓속말로 속삭이듯 말한다.
“그런데 네가 만화부에 왔어? 신기하네. 아무리 윤진이 형이 영업했다고는 해도, 정말로 왔다니... 농구부 같은 데가 더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했더니만.”
“뭐, 여기 온 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지.”
니라차는 지온의 말에 바로 답한다.
“윤진 선배가 그러더라. 너 누구한테 진 빚이 있지 않냐고. 그래서 내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냐고 했더니, 그러면 나는 더더욱 만화부에 들어와야 한다고 그러니까, 그냥 속는 심정으로 들어와 봤어.”
그렇게 니라차가 말하는 걸 듣고 보니, 옆에서 현애가 추임새를 넣어 가며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인다. 마치 니라차의 말에 강한 동의라도 하는 듯. 아니, 확실히 그렇다.
“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잘 해보자고.”
한편, 그 시간, 한참 책을 꺼내려던 아이란의 옆에서 나디아가 끼어든다.
“야, 너 그거 또 무슨 책이야? 설마...”
“에이, 네가 생각하는 거 아니야! 그리고 옆에 한번 봐봐.”
“응? 옆에?”
나디아가 옆을 보니 신입 부원인 토쿠가 윤진의 말을 듣고 있는데, 그 옆에는 원래 만화부원인 타이나가 마치 옆에 직장 상사가 앉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각을 잡고 앉아 있다. 토쿠는 중학생, 타이나는 고등학생이다.
“저 애들, 이레시아인 맞지?”
“그래. 확실히 둘 사이에 신분 차가 있어. 예를 들면 토쿠는 신관 집안인데 타이나는 아니라든가 말이지.”
하지만 나디아는 불안하다. 아이란의 입에서 곧이어 무슨 말이 나올지, 대략 알고는 있지만, 제발 그 말이 나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나디아의 바람과는 달리, 아이란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연다.
“내가 보니까, 성별만 좀 바꾼다면 딱 좋겠는데. 둘 다 남자로 하든지, 그 반대든지.”

한편 민은 나머지 1명의 신입 부원이 누군지도 신경이 쓰인다. 아오라는 이름의 신입 부원은 민이 잘 아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알고 싶다. 민은 이런 사람과는 괜히 더 친해지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아주 본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다름 아닌, 아까 민에게 자기가 누군지 맞춰 보라고 했던 그 여학생이다.
“아니, 그래서 누나는 누군데요.”
“언주 친구야. 그래서 나하고 본 적도 있을 텐데.”
“......”
민은 정말로 생각이 나지 않는지, 잠시 말이 없다. 아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음을 터뜨린다.
“하, 하하하하...”
“왜 웃는데요.”
“마음에 들었어, 너. 앞으로 잘 해 보자.”
“쳇, 겨우 그런 말 하려고...”
민은 겉으로는 헛웃음을 내뱉지만, 그 말이 마냥 싫지만은 않다.

그리고 그날 저녁, 스텔라 법률사무소. 메이링과 사무원들 말고도, 조금 긴 머리를 하고 흰색의 옷을 입은 남자 한 명이 앉아 있다. 그러던 중, 메이링의 전화가 울린다.
“여보세요?”
“변호사님? 저 미린고 학생회장이에요.”
전화 너머에서 들려오는 건, 아멜리의 목소리다.
시어하트어택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3-02-19 15:52:16

동아리 운영만으로도 힘들 건 확실한데 그 이외에도 신경써야 할 것은 산적해 있고, 초능력자들 중에서도 인성이 그다지 좋지 않은 자들이 여럿 있어서 언제 무슨 사고가 터질지 모르고, 만화부 포스터가 게재된 상태는 분명 분쟁으로 이어질만큼 크고, 진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거라는 게 보이네요. 저라면 저런 활동은 도저히 못할 듯...

그나저나 저런 상황하에서도 아이란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아주 자연스럽게 자기 취향을 말하네요. 작중에서 가장 천하태평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메이링이 아멜리와도 접점이 있었네요. 아멜리가 문제의 "자동차 연구 모임" 에 저렇게 공간을 배정해 준 것도 혹시 합동작전의 일환인 것인지...

시어하트어택

2023-02-19 22:22:56

경쟁이 치열하니 만화부의 입장에서도 저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무언가 뒤쳐질 거라고 생각했겠죠. 아멜리가 행사를 확대한 것도 저런 식으로 경쟁을 유도해서 활성화를 의도했을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학생회장 정도 되고 학교가 저렇다 보니 메이링과의 접촉이 없을 수는 없었겠죠.

SiteOwner

2023-03-08 22:09:01

당장 대규모 분쟁이 벌어져도 안 이상할 위험한 상황이군요.

게다가 만화부의 입장이 굉장히 난처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동아리들은 선을 안 넘게 사전활동을 하고 있는데 만화부는 대놓고 선을 넘었고, 그에 더해서 만화부의 자체모임이나 상영회 같은 것들은 다 취소되고, 신입부원들도 뭔가 탐탁치 않은 구석이 있고, 아이란만 마이페이스로 걱정없는 것 같습니다.


아멜리와 메이링의 접점에서도 기대되는 게 있습니다. 아멜리는 얼마나 멀리 내다보고 있을지...

시어하트어택

2023-03-12 21:51:36

아무래도 무언가를 기대하고 들어왔는데 그런 게 다 취소되었다든가 하면 크든 작든 실망이 좀 있기 마련이죠. 물론 여기서는 더 큰 행사가 있다 보니 거기에 대한 기대를 더 크게 품은 부원들도 있기는 하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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