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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 57분, 미린중학교 운동장.
안젤로의 입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루카스는 웃음을 짓는다. 마침 루카스는 자기 능력을 발동해 놨으니, 안젤로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내기는 성립될 터다. 주위의 다른 구경꾼들도, 로빈과 아이란까지 포함해 이 상황에서 다음으로 무슨 말이 나올지, 잔뜩 긴장하고서 바라보고 있던 바로 그때.
“얘들아, 안 들어가니?”
누군가의 목소리가, 안젤로와 루카스, 그리고 주위에 모인 구경꾼들의 뒤에서 들린다. 돌아보니, 수업 자료를 들고 막 들어가려는, 미린중학교 2학년 C반의 담임이자 생명과학 교사인, 카리니 선생이다.
“지금 시간이 1시 3분 전인데, 빨리 들어가서 수업 준비해야지!”
아무리 뭔가 말하려고 하는 안젤로라도, 자신의 능력을 발동할 준비를 하는 루카스도, 이 상황은 어쩔 수가 없다. 선생이 지켜보고 있으니, 다 그만두고 교실로 들어갈 수밖에.
“선배님... 지금은 어쩔 수 없죠.”
루카스가 조금 힘이 빠진 목소리로 말한다. 그리고 안젤로를 막 휘감으려고 했던 어떤 기운도, 풀려 버린다.
“시간이 되면, 멋진 승부 보여 줄 테니, 기대하는 게 좋을걸요.”
“무슨 승부를 한다고. 애초에 나는 그럴 생각도 없었어.”
안젤로의 그 말에 루카스는 뭐라고 해 보려고 하지만, 그럴 사이도 없이, 안젤로는 루카스의 옆을 벗어나 교실 쪽으로 가고 있다.
“훗, 내 능력을 아직 경험해 보지를 못하니까 저렇게 말하지. 과연 겪어 보고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아니, 못 하겠지. 내 능력에 걸린 이상, 절대로 이길 수는 없어.”
루카스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른 학생들의 뒤를 따라 교실로 들어간다.
한편, 미린초등학교 5학년 H반 교실.?
민의 귀찮다는 듯한 표정을 포착했는지, 마야는 바로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민에게 마치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말한다.
“<나의 영웅담>이라는 책에 이런 말이 있어. ‘힘이 충만할 때, 저장만 해 놓는 건 낭비와 다름없다’고 말이지. 조금 적극적으로 나서 주면 어디가 더 아파지기라도 하냐? 더군다나, 이따가 교류 활동도 같이할 거잖아!”
“어... 그렇지.”
민은 난감해진다. 이걸 거절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나서자니, 그런 미스터리한 일에 나서는 건 또 민의 성격이 아니고...
그런데 바로 그때, 누군가가 전화를 꺼내서 민과 마야의 말을 녹음하는 게 보인다. 혼자 조용히 앉아 있던 카일이다. 민이 그걸 보자마자, 곧바로 달려가서 녹음하고 있던 걸 뺏는다.
“야! 아무리 그래도 남이 하는 말을 그렇게 몰래 녹음하는 건 아니지!”
“왜?”
민의 그 말을 들은 카일은 태연히 말한다.
“내가 막 도와주려던 참인데?”
“뭐야, 뭘 도와줘?”
“내가 아는 선배님들이 이런 건 아주 환장하는데? 그래서 그 선배님들한테 막 메시지를 보내 봤지.”
“어느 선배님들이길래...”
민이 살짝 봤더니 메시지창에 ‘MI스터리 라인하르트 형’이라고 적혀 있다. MI스터리라고 한다면 알고 있다. 말 그대로 각종 미스터리를 찾아다니는 동아리다. 그렇다고 한다면 민의 걱정은 한층 덜어도 될 것이다. 교류 행사가 시작하기 전 쉬는 시간을 이용해, 어떻게든 찾아내거나 할 테니.
하지만, 다음 순간 카일이 보인 표정은...
“야, 안 된대.”
“어?”
민의 바람과는 달리, 카일에게서 돌아온 답은 실망이 가득 섞여 있다.
“왜 그래?”
“선배님들, 그 시간에 다른 거 찾으러 간대.”
“하...”
그렇다는 건, 결국 꼼짝없이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의 머릿속이 귀찮음으로 가득 채워지고,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는 선생을 기다리느라 교실 안이 점점 소음으로 채워지기 시작할 무렵.
“자, 얘들아, 선생님이 많이 늦었지?”
별안간, H반의 담임 ‘카키자키’ 선생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교실 안에 점점 채워져 가던 소음이 확 줄어든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민의 머릿속에 점점 채워지던 귀찮음도, 마치 연기가 바람에 걷혀가듯 사라진다. 하지만 바람에 날려갔다고 해서 연기가 사라지거나 한 건 아니듯, 민의 머릿속도 그렇다. 단지 그 걱정이 조금 연기되었을 뿐.
이윽고 모든 수업이 끝나고 오후 2시가 넘은 시간.
미린고등학교 도서관은 평소처럼 조용하다. 물론 도서부원들만 있는 건 아니고, 도서부나 만화부의 교류 행사와는 상관없이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도 몇 명 보인다. 물론 ‘교류 행사가 있으니 양해 부탁드린다’는 내용의 안내문은 곳곳에 보인다.
그 문제의 도서관 서가에, 남들보다 일찍 온 사람이 한 명 보인다. 윤진이 애써 귀를 막아 가며, 서가를 찬찬히 둘러보고 있다. 그런데도 마치 생생히 들려오는 것 같은 소음은 어찌할 수 없었는지, 한숨을 쉬며 거기에서 나온다. 마침, 도서부장 리하르트가 가까이 서 있다가 윤진이 그 서가에서 기다렸다는 듯 나와서 말한다.
“좀 알겠어?”
“어... 글쎄다.”
윤진의 입에서 나온 어딘가 시원찮게 들리기도 하는 답에, 리하르트는 다소 불안감이 커진 건지, 입에서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야, ‘글쎄’라고 하면 어떡하냐고.. 이제 금방 교류 활동 시작인데.”
“내가 한 말은 그 뜻이 아닌데.”
윤진의 입에서 나온 답은 리하르트의 생각과는 좀 다르다.
“아니, 그러면 그 ‘아니’라는 게 무슨 뜻이냐고...”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이거야. 분명 이건 누군가의 초능력이고, 지금 바로 이걸 그 사용자한테 도로 돌려 주고 있다는 거지.”
“어... 그게 무슨 뜻이냐? 그럼 한번 나도 들어가 볼까...”
그렇게 말하고서 리하르트가 그 서가 안으로 들어서는데, 아까와는 달리, 그 시끄러운 운동장의 소음은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마치, 무슨 마법이라도 부려 놓은 것처럼.
“뭐야, 왜 이렇게 조용해졌지?”
“어, 그건...”
윤진의 그 뭔가를 숨기는 것 같은 말에, 리하르트는 살짝 묘한 무언가를 느끼지만, 그 소음이 없어진 건 그것대로 좋았던 건지, 안도한다.
그 시간, ‘메이드 연구회’ 동아리실.
“꽤 묘한데, 이거.”
치히로와 히어로 동아리 부원들은 각기 다른 색의 후드티를 입고서, 메이드 연구회 부원들과 마주 앉아, 앞에 놓인 차를 한 잔씩 마시고 있다. 물론 앞에 놓인 차를 마시는 것 자체는 그렇게 꺼림칙하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만, 지금 치히로의 기분은 그것과는 결이 다른, 마치 얼음장 위를 걷는 것 같은 기분이다. 지금 치히로와 마주앉은 사람들은, 다름 아닌...
“선배님, 그 토요일 이후로는 별 일 없나 보네요.”
“으...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것까지는 아니니까, 그런 걱정은...”
치히로는 바로 앞에 마주 앉은 언주를 보고서 한숨을 푹 쉰다. 마치 다른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공개처형이라도 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옆에 앉은 후배들은 또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치히로는 그렇다.
“왜요? <자가발전 전대>에 나오는 것처럼 입으면 뭐 어때서요?”
“이거 거기서 따 온 복장 아니라니까...”
치히로는 되지도 않는 변명을 해보려고 하지만, 언주나 알리야가 그런 걸 들어줄 리가 없다. 오히려 미리 준비라도 해 온 건지, 미리 가져온 사진까지 꺼내서 보여 준다. 배색은 조금씩 다를지라도, 후드나 알록달록한 마스크가 곡 <자가발전 전대>에 나오는 영락없는 그것이다.
“아니, 선배님, 이래도 아니라도 하게요? 이거 맞잖아요? 안 그래요?”
“야, 복장이 같다고 그게 다 한 작품에서 따 온 거냐?”
듣고 있던 올리버가, 마치 언주의 그 말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말한다.
“그럼 가면 쓰고 레깅스 입고 적당히 타이츠 위에 뭐 그려 넣으면 다 베낀 거겠네?”
“그건 또 아니죠...”
하지만 언주는 올리버의 그 말도 예상했다는 듯, 또다시 말을 꺼내려고 한다.
하지만, 바로 그때.
“어, 뭐냐?”
메이드 연구회 동아리실에, 자동차의 소음이 전해져 온다. 마치 바로 옆에서 자동차가 막 시동을 걸려는 것 같은 굉음이다.
“아니, 이거, 어느 선생님이 새 차를 뽑은 건가?”
그 소리에, 치히로와 언주가 동시에 동아리실 밖으로 나온다. 하지만 밖에는 자동차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혹시 여기 아래에 주차장 아니야?”
“에이, 아닌데요. 주차장은 여기서 좀 떨어져 있어요.”
“그럼 어디서 나는 거지...”
바로 그때, 또다시 자동차의 주행음이 가까운 곳에서 들린다. 언주가 가리키는 곳을 치히로가 보니, 바로 옆 초등학교 건물이다.
“응? 뭐야. 저기는 더욱 아닌데?”
하지만 치히로가 그렇게 말하기에는, 지금 나는 자동차 소리는 너무도 명확하다. 심지어 그 방향까지도 말이다.
“도대체 저기서 뭘 하길래...”
그리고 바로 그 시간, 자동차 연구 모임 동아리방. ‘자동차 연구 모임’과의 교류 상대는, 어제 만화부와 행사를 한 그 ‘취미로 요리하는 모임’.
“너희 동아리는 언제쯤 생긴 거냐? 못 들어 본 동아리라서 말이야.”
요리 동아리 매니저 도나텔라가 옆에 앉아 있는 슬레인에게 묻자, 슬레인은 바로 대답하지 못한다. 바로 그저께 생겼다고 하기에는, 말하기가 조금 부끄럽다. 그리고 자동차와 관련된 물건도 없으니, 슬레인의 입장에서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참 난감하다. 그나마 자동차 연구 모임이랍시고 작은 모형 몇 개를 놔두고, 자동차 주행음을 배경음으로 틀어놓기는 했지만.
“그러니까... 물 밑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건 저번 달부터였는데...”
“어, 아닌 것 같은데?”
도나텔라는 마치 슬레인이 뭘 말하려는지 잘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슬레인의 말을 중간에 가로막아 버리고 뭘 말하려고 한다. 바로 그때, 준후가 입을 연다.
“그건요, 선배님! 설명드리자면...”
하지만, 준후가 막 뭐라고 몇 마디 말을 하려 하자...
갑자기, 배경음으로 깔아 둔 주행음이 매우 시끄럽게 울린다. 마치, 바로 옆이 도로고, 거기에 대형차가 다니기라도 하는 것처럼. 당연히, 동아리방 안에 있는 자동차 연구 모임 부원들과 요리 동아리 부원들은 귀를 틀어막고는 표정을 찡그린다. 자동차 연구 모임 부원들은 그렇다 쳐도 요리 동아리 부원들까지 불쾌한 표정을 지으니, 슬레인과 준후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야, 여기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배경음악 틀어놓은 거 고장이라도 났어?”
준후가 그렇게 말하자, 옆에 있던 루카스가 바로 컴퓨터 쪽으로 가서 배경음악 프로그램을 만져 본다. 하지만 이렇다 할 고장이라든가, 아니면 기계에 이상이 있는 건 보이지 않는다.
“아니에요... 그런 건 없어요. 음량도 다 정상이고... 특별히 그런 건 없어요.”
그리고 그 상황에서,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사람 한 명이 있다. 바로 자동차 연구 모임의 부원인 라시드다.
‘어떻게 된 거지... 분명히 내가 도서관에다 시험삼아 설치해 놓은 ’소리 폭탄‘일 텐데...’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3-03-03 16:35:37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이 이렇게 소란스러울 줄이야...
민은 정말 난감하겠어요. 마야라는 인물이 저렇게 다가와서 있는 말 없는 말을 다 풀어놓고 카일은 그 둘의 대화를 녹음하고...사실 카일의 저런 행동은 현행법상 당장 문제가 되어요. 이 세계에서는 어떤 법이 적용되고 미성년자에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따라서 양상은 다르겠지만, 적어도 무례한 행동인 것만은 확실해요.
윤진의 능력은 역시 자신은 딱히 드러내지는 않지만 리하르트는 감지하고 있다는 걸까요. 의외로 존재감이 강하네요. 이게 마야가 책의 내용에서 인용한 말처럼 "힘이 충만할 때, 저장만 해 놓는 건 낭비와 다름없다" 는 것인지...
결국 난리를 치네요, 문제의 자동차 연구 모임은. 그리고 실제 목적이 자동차 연구가 아니라는 것도 보이는 듯.
시어하트어택
2023-03-05 21:02:44
카일의 의도는 좋기는 했습니다만, 그게 자칫 다른 사람들에게 오해를 살 수 있는 방식이었습니다. 조금 머리가 굳어지면 나아질 테니 그건 그것대로 다행이겠죠.
물론 마야가 한 말은 민을 두고 하는 말이겠습니다만, 작중에서 그 말이 어울리는 인물도 좀 많은 편이죠. 절대적으로 강한 것까지는 아니겠지만...
SiteOwner
2023-03-10 00:07:43
시험삼아 설치해 놓은 소리 폭탄...
정말 할 말을 잃었습니다. 이 정도면 장난을 넘어 이미 범죄의 영역이군요. 소란스러운 것을 싫어하는 저로서는 정말 질색입니다. 게다가 문제의 자동차 연구 모임 내부에도 내홍이 꽤 있는 게 참 우려스럽습니다. 문제의 라시드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위험한 것 같습니다.
역시 아멜리와 메이링이 생각하는 것처럼, 요주의인물은 한 데에 모여 있는 게 감시하기 좋겠습니다.
시어하트어택
2023-03-18 09:25:48
소리 폭탄이라는 게 일반적으로 말하는 폭약 같은 게 아니고 라시드의 능력이기는 합니다만, 저것으로 내는 소리만으로도 조용한 공간이어야 할 도서관이 저렇게 시끄럽게 되니 파괴적인 능력이로 발전할 수도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