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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라시드는 어느새 로니의 그 제안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로니의 말을 매몰차다고 생각될 정도로 딱 잘라 거절한다. 다른 건 다 그렇다고 쳐도, 로니같이 음침한 성격에 친할 사람이 어떤 사람이겠는가. 라시드에게는 금방 답이 나온다.
“미안, 그건 관심 없는데. 나는 너희 친구들한테 관심이 없어.”
“뭐, 알겠어. 혹시 생각이 바뀌었으면 나한테 말해 줘.”
로니는 그렇게 말하더니, 막 자리에 앉으려는 라시드에게 무언가 또 생각이 난 듯 말을 꺼낸다.
“야, 그건 그렇고, 너 그 경품 응모는 했냐?”
“아, 당연히 했지. 그런 기회가 있으면 빨리 잡아야 하는 거라고.”
라시드의 얼굴은 다시 밝아지려고 한다. 화제가 다른 곳으로 돌려지니, 아까의 그 일은 금세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잠시 후, 교실 안에 담임 선생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렇다.
“라시드?”
“네, 선생님?”
“이따가 선생님하고 좀 이야기할 게 있는데, 알지?”
“어...”
라시드는 그렇게 얼렁뚱땅 선생이 하는 말을 넘기려고 하지만, 당연히 선생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곧바로 선생이 라시드를 한번 한심하다는 듯 돌아보고는, 수업을 시작한다. 라시드는 어디 쥐구멍 같은 데라도 숨고 싶은 심정인지, 머리를 책상에 파묻으려 하지만...
“잔꾀 부리지 말래, 라시드?”
“네...”
라시드는 고개를 푹 숙이면서도 애써 선생의 시선은 피한다.
그리고 그날 점심시간, 미린고등학교 운동장. 여느 날과 다름없이 운동장에는 학생들이 나와서 일부는 농구나 축구를 하고, 또 일부는 산책하고, 또 일부는 벤치 같은 곳에 앉아서 잡담을 하고 있다. 농구 골대 앞에서는 누군가가 열심히 공을 던지고 있기는 하지만, 평소에 주로 농구를 하러 오던 사람은 아니다. 그리고 평소 여기에서 열심히 농구를 하던 니라차와 친구들은, 오늘은 농구장 한쪽에 가만히 앉아서 그 누군가의 묘기에 가까운 농구를 마치 넋이라도 나간 것처럼 가만히 앉아서 구경하고 있다.?
“야, 오늘은 왜 앉아 있는 거냐?”
그런 니라차를 본 다니엘이 가까이 오더니, 신기하다는 듯 말한다. 어제와는 달리, 적대적으로 대한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제의 앙금이 조금은 남아 있었던 듯, 약간의 볼멘소리도 곁들여서 말이다.
“네가 농구를 하지 않고 구경을 하고 있어? 이런 날도 있는 거야?”
“야, 너는 왔으면 구경이나 해. 이건 꼭 봐야 하는 거라고.”
“꼭 봐야 하는 거라니...”
여전히 그 볼멘소리로 말하는 다니엘이지만, 니라차가 보라고 가리킨 그 문제의 누군가를 보고서는 금세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친구들과 같이 앉아서 그 문제의 누군가를 구경하기로 한다. 그 누군가란, 다름 아닌 오스카다.
“아니, 저렇게 스케이트를 타면서 농구를 한다든가 하는 게 가능하기는 한가...?”
“그러니까. 실력 자체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그렇게 니라차와 다니엘이 말을 주고받는 와중에도, 오스카는 보라는 듯, 또 한 바퀴 스케이트보드를 타더니, 곧이어 점프를 하고서 공을 골대에 집어넣는다. 마치 접착제로 붙이기라도 한 듯, 오스카의 발에서 떨어지지 않는 보드는 덤이다.
그렇게 어느 정도 오스카가 묘기를 선보이고 나서, 자신의 묘기를 눈이 뚫어지라 구경하던 후배들을 보고는, 대뜸 다가와서는 사이에 끼어 앉는다.
“어때, 내 묘기는? 내가 너희들 농구할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은 건 아닌가 걱정되는데...”
“에이, 아닌걸요. 선배님 묘기를 봤으면 그걸로 됐죠.”
“그런데 얘들아, 고민이 하나 있는데...”
오스카는 평소 보이는 모습답지 않게, 어딘가 말 못 할 고민을 품은 듯한 표정을 하고 있다.
“그게 뭐죠? 선배님답지 않은 말인데...”
마침 길을 걷다가 오스카를 본 지온이 궁금했는지 그 자리에 멈춰서며 말하자, 오스카는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우리 스케이팅은 동아리 목적과 활동 범위가 명확하잖아. 알지?”
“네. 그런데...”
“오늘 교류 행사 대상이 미술 애호가 동아리네? 그것 때문에 참 고민이야. 거기 동아리방에서 보드를 타는 모습을 보여 준다든가 할 수도 없고...”
“그러게요...”
지온은 오스카의 말이 의외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평소에는 고민거리는 없다는 듯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모습을 보여 주며 많은 후배들의 부러움을 사더니, 의외라고 생각한다.
“찾아보면 접점이 있지 않을까요. 다들 그렇게 하던데.”
“고맙다.”
오스카는 이윽고 뭔가 떠오르는 게 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보드를 타러 자리에서 일어난다.
한편, 방송실에서는 아멜리와 후배 부원 조셉이 마주 앉아 있다. 조셉은 방송실에 들어온 경품 응모 현황판을 아멜리에게 보여 주며, 얼굴의 반 정도에 걱정이 드리운 듯, 결코 밝지는 못한 표정을 하고서 말한다.
“큰일 났어요, 선배님.”
“왜, 조셉? 경품 응모 행사는 잘 진행되고 있는 거 아니야?”
“그게 아니라, 그 경품들을 어떻게 다 구하냐고요! 일단 지금 지급해야 하는 경품만 어림잡아도...”
조셉이 울상이 되려고 하는 걸 아멜리가 말리며 말한다.
“왜 그런 걸 다 걱정해? 너는 그냥 지금 행사하는 걸 도와주고, 집계 같은 거나 잘하면 돼.”
“어떻게 제가 걱정을 안 해요? 이게 다 돈이 나가는 거라고요! 우리 방송부 활동 지원비 가지고는 턱도 없어요!”
하지만 아멜리는 태연하다는 반응이다. 그런 아멜리를 보고, 조셉은 더욱 기가 찬지, 대놓고 들으라는 듯 한숨까지 내뱉어 가며 말한다.
“저기... 선배님! 제가 웬만해서는 이런 말은 안 하는데, 선배님 기분이 좋다고 멋대로 이렇게 행사를 열어 놓고, 수습은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모르는 거 아니라니까는? 이거 다 내 사비로 하는 거야.”
“잠깐만요, 지금... 사비라고요?”
조셉는 더욱 기가 막혔던 건지, 이제는 그나마 나오던 한숨도 입에서 나오지 않는 듯, 그저 아멜리를 가만히 바라볼 뿐이다. 지금 생각나는 것만 해도, 리조트 7일 이용권, RZ백화점 상품권 등, 학생들이 아닌 성인이었더라도 입이 떡 벌어질 만한 상품들뿐이다.
“그걸 다 어떻게 마련해요! 그것도 사비로.”
“뭐, 부모님께 좀 잔소리 들으면 돼.”
“......”
조셉은 이제는 할 말이 없었던 건지, 그냥 방송실 한쪽에 부착한 상황판만 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시간, 미린초등학교 운동장.
“이야, 그 마왕성이 어제는 웬일로 그 공원에 안 나타났대?”
“에이, 그러게. 구경 한번 해 보려고 했는데...”
6학년 정도로 되어 보이는 몇 명이 운동장이 바로 옆에 보이는 계단식으로 된 경계석에 앉아서 잡담을 나누고 있다. 그중 한 명은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캐치볼을 보고 있기는 하지만, 나머지는 운동장은 보려고 하지도 않고 자기네 대화에만 열중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구경 가려고?”
“야! 내가 시간이 남아나냐? 어디서 우연히 보이면 보고, 아니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사진이나 영상 보는 거지 뭐.”
마침 그 주위를 민과 친구들이 지나가다가 돌아보게 된다.
“에이, 그 이야기 하는 건가?”
민의 옆에서 걷던 유가 마치 듣던 이야기를 또 듣는다는 듯, 귀찮은 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저 형들, 하려면 게임 이야기나 할 것이지.”
“응, 게임 이야기?”
유의 말을 들은 누군가가 민과 친구들 쪽을 돌아보며 말한다.
“뭐, 게임 이야기라면 이따가도 할 거잖아. 안 그래?”
민과 친구들 쪽을 돌아보며 말한 그는 만화부원 아론이다. 어느새, 민과 아론의 거리는 세 걸음 정도로 가까워져 있다. 민에게도 느껴진다. 아론이, 초능력을 썼다는 것 말이다. 이번에는 그닥 위협적인 건 아니지만, 다른 의미로 놀랍기도 하다. 아론이 이 시간에 교실에서 안 자고 있다는 것 말이다.
“지금 우리한테는 그 마왕성 이야기가 더 재미있어.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말고 지나가.”
거기서 또 무슨 말을 더 했다가는 또 며칠 전처럼 될 것 같아서, 민은 알아서 그런 상황은 피하기로 한다.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다시 친구들과 어디론가 간다.
“그런데 말이지...”
조금 걸어갔을 때, 문득 옆에서 같이 걷던 카일이 말을 꺼낸다.
“다른 반에 누가 그거 보고 겁에 질려서 완전히 공황 상태라던데.”
“어... 그래?”
“모르기는 몰라도, 그 마왕성을 옆에서 보니까 완전히 겁에 질려서, 아무한테도 말도 못하고 그런다더라. 그 애하고 친한 친구도 메시지로 겨우 알았다고 그러고.”
“아니...”
민은 그 말이 믿기지 않았는지 되묻는다.
“그런 걸 봤다고 그렇게까지 되는 게 말이 되냐?”
“왜 좀 그런 애들 있잖아. 길거리에서 개미만 나와도 깜짝깜짝 놀라고, 그 애도 그런 경우였겠지.”
“그런가... 그 마왕성이라는 게 그렇게까지 놀랄 만한 건 아닌 것 같은데...”
민도 본 게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냥 별로 무섭게 생긴 것도 아닌, 판타지 만화 같은 데에 나올 법한 디자인이다. 하긴, 아예 평범한 디자인은 아니니 그럴 만도 하다.
“오, 다 왔네!”
그렇게 조금 걷다 보니, 유와 카일, 코니가 눈앞에 보이는 간판을 보고 말한다. 그 간판이란 다름 아닌, 학교 매점 간판이다. 오늘도 다른 날과 다른 바가 없이, 매점에는 손님들로 가득 차 있고, 인기가 있어 보이는 물건 앞에는 줄까지 서 있다.
“음... 뭘 사야 하지?”
?민이 막 매점 안에 발걸음을 들어놓고서 그렇게 막 입을 떼려는 그때.
“어, 여기 있었네?”
누군가가 민을 알아보고는 일부러 큰 소리로 말을 건다. 민이 돌아보니, 로지와 다른 2명의 친구들이 보인다. 로지는 잘 알고 있고, 다른 2명도 몇 번씩 보기는 했다. 다들 매점에 무언가를 사러 왔을 텐데, 그렇다면 뭘 사러 온 건지, 민 역시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어, 로지잖아? 그리고 옆에는 지나하고, 셀림이었지? 너희들은 뭐 사러 온 건데?”
마치 민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로지는 잔뜩 작정하고는 입을 연다.
“에이, 말을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아니,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건데...”
그 순간, 민은 바로 그 눈빛의 뜻을 이해한 듯 말한다. 이것은, 빠져나가기 힘든 덫에 걸려 버린 것 같은 기분이다.
“아, 알겠어! 알겠다고! 모처럼 왔으니까 친구들하고 동생들한테 사 줘야지!”
“오, 그래?”
“좋아! 오늘은 좀 많이 사 달라고 해야지!”
매점에서 물건을 다 고르고 보자, 다들 함박웃음을 짓는 게 한눈에 봐도 보인다. 의외로 로지는 과자 하나로 만족한 듯하지만, 옆에 있는 지나와 셀림은 뭐가 그렇게 먹고 싶었던 건지, 손에 든 봉지가 꽉 찼다. 민은 다른 친구들이 안 보이게 한숨을 푹 내쉰다.
“에이, 열흘 쓸 걸 한번에 다 썼잖아...”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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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3-06-08 14:32:50
라시드의 평판은 역시 여러모로 안 좋네요. 담임교사가 라시드를 보는 시선이 상상되고 있어요.
다니엘과 니라차가 재회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상황은 불편하고, 오스카는 상상을 초월하는 묘기를 보이고...운동장 상황은 이런데 방송부 상황은 경이 그 자체네요. 그 비싼 경품을 아멜리 본인이 사비로 조달했다니!! 대체 얼마나 부자라는 것일까요.
목격보고가 있는 그 마왕성은 그냥 특이한 이벤트같은 성격이 아니군요. 가까이서 보면 공포에 질릴만한...그런 건 정말 싫어져요. 호러를 싫어하는 저로서는 특히.
시어하트어택
2023-06-11 22:31:05
제 학창시절에 한 반에 한 명 정도씩 보이는 불량학생들을 떠올리며 저 파트를 써 봤습니다. 물론 그 시절에 저를 괴롭히던 가해자들은 저 정도로 끝나지는 않았지만요.
아멜리의 집안의 재력은 정확히는 설정해 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중견 재벌 정도 규모는 되지 않을까요.
SiteOwner
2023-06-11 14:24:25
라시드는 대체 얼마나 이상한 짓을 저지르고 다녔길래 저렇게...정말 사고뭉치군요. 소년원에 보내지지 않은 게 용하다 싶습니다. 혹시 사법판단의 대상이 안 될 정도로 교묘하게 일을 벌인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무서운 일이겠지만.
역시 많은 사람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고민하는 법.
오스카는 교류행사의 대상이 대상인만큼 고민하고 있고 조셉은 아멜리가 사비로 준비하는 경품 사정에 경악하고 있고, 민은 용돈이 조기에 소진되고, 이렇게 흘러가는 점심시간 속에서 고민은 각자의 마음 속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것들이 이후 어떤 일로 이어질지가 조마조마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시어하트어택
2023-06-18 21:45:56
라시드 같은 학생들이 의외로 그런 면에서는 영악한 편입니다. 법에 최대한 저촉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사고를 치고, 장난을 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이 보이더군요.\
아무래도 동아리의 매니저 같은 경우에는 준비도 좀 많이 해야 할 것이고 어떤 말을 할지, 어떤 식으로 진행할지 미리 생각해 놔야 하므로 좀더 바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