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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온과 세훈이 마주친 곳은 남쪽 화단에서 산책로가 이어지다가 막 호수 산책로로 이어지기 직전인 지점. 길이 합쳐지는 지점이니만큼 사람들이 그만큼 만날 가능성이 큰 곳이다. 그것 덕분인지 팝업스토어도 여기저기 보이고, 광고판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뭐야, 오늘도 어디서 누구하고 싸우고 오는 길이냐?”
세훈의 머리가 약간 헝클어진 걸 본 지온이 그걸 놓치지 않고 말하자, 세훈은 그 말이 조금 듣기 그랬는지 표정을 조금 일그러뜨리고서 말한다.
“무슨 머리가 헝클어지면 다 싸우고 온 줄 아나 봐?”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네가 전에 하도 싸웠다고 하니까, 또 그랬나 하고.”
“어, 지온이, 세훈이냐? 확실히 싸우는 것 가지고는 그렇게 머리가 헝클어지지는 않지.”
그때, 누군가가 산책로 안쪽에 숨어 있다가 모습을 드러내며 말한다. 지온과 세훈의 이름을 말하는 것으로 봐서는 둘을 잘 아는 사람일 것이고, 거기에다가 또래 정도의 남자 목소리라면 아마도 미린고등학교 남학생일 게 분명하다.
“누구시죠?”
“쉿, 조용! 제보를 받고 여기 나와 있거든.”
그 제보라고 한다면, 그 이름 모를 누군가가 자꾸만 장난을 치는 그 마왕성일 것이다. 아마도 다른 특별한 무언가가 더 없는 이상은 그럴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의 얼굴은 지온, 세훈 둘 다 잘 아는 얼굴이다.
“차논... 선배님?”
“어, 맞아! 후배의 간곡한 부탁을 무시할 수 없었지.”
“후배... 라면?”
“그래, 맞아. 올리버 알지? 미린중학교 3학년에.”
“단지 그것 때문에 나온 거예요? 선배님이라면 다른 이유가 더 있을 것 같은데...”
MI스터리라는 동아리를 잘 아는 사람은 얼마 없기는 해도, 그것 정도도 모를 세훈이나 지온이 아니다. 차논이 평소에도 이런 걸 아주 좋아하고, 또 열정적으로 찾아다닌다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 온 것도 필연적으로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혹시 또 여기서 귀신이라든가 심령현상 같은 게 나타나나요?”
“음... 그런 건 아니고...”
차논은 잠시 망설인다. 차논이 지금 이 공원에서 찾아보려는 건 귀신이나 심령현상은 아니다. 당연히, 아까 MI스터리 부원들과 흩어지기 전 라인하르트에게 무언가 들은 게 있다. 지금 온 것도 그것 때문에 온 것이다. 하지만 그걸 곧바로 입에 내어 말하기는 그랬는지, 차논은 대답하기를 망설이는 모습을 보인다.
“어, 그러니까 그건... 말하자면 조금 길기는 한데...”
차논이 막 그렇게 말하고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 보려는 바로 그때. 지온의 눈에 무언가가 보이자, 지온은 그 무언가를 가리키며 말한다.
“응? 저기 저게 뭐지?”
그리고 그 시간, RZ타워에 있는 한 레스토랑. 오락실에서 막 즐겁게 놀고 돌아가려던 친구들을 유가 식당에서 밥을 먹여 보내려는 참이다. 마침 연락을 받은 하야토도 자리를 같이했다.
“이야, 한번 말해 줘 봐!”
“뭐를?”
민의 친구들은 다들 민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를 기대하고 있는 듯, 다들 민의 입만 뚫어져라 보고 있다. 민 역시도 되묻기는 했지만, 친구들이 무엇을 물어보는지는 알고 있다. 잠시 후, 민은 입을 열려다가, 이미지 하나를 보여주며 말한다.
“여기에 오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알았다고 했지.”
“뭐야... 홈카페 동아리 정기모임에 너를 초대하겠다고?”
“어... 나쁘지는 않은 제안 같아서.”
다들 그 카페 이미지를 보니, 한눈에 봐도 카페보다는 어느 다과회에 온 것 같은 이미지인데, 잔이나 그릇 모양까지도 그렇다.
“그런데 네가 거기 취향이 맞기는 하겠냐...?”
민이 보여준 이미지를 보던 카일이 말한다.
“딱 봐도 우리 같은 애들이 가기에는 분위기가 많이 안 맞는데. 저기 미술 애호가 동아리 같은 데라면 모를까.”
“뭐, 딱 봐도 그렇기야 하지. 그런데 내가 그 제안을 수락한 이유가 뭔지 아냐? 내가 맛보고 싶은 디저트가 너무 많거든!”
“어, 그런 건 저기 셀프바에 가면 많은데.”
토마가 민이 말하는 걸 듣더니, 바로 기다렸다는 듯 말하며 셀프바를 가리킨다. 민이 돌아보니, 과연 민이 보여 준 그 이미지에 나오는 것과 비슷한 디저트들이 많이 있다. 민도 고개를 끄덕이기는 하지만, 100% 만족스럽지는 못한 듯, 고개를 끄덕이듯 말 듯 하는 자세를 보인다.
“왜 그러냐?”
“아... 역시 분위기가 나는 곳에서 먹어야지 더 맛있을 것 같아서.”
“에이, 맛만 즐길 거면 그냥 저런 거로도 충분하지 않냐?”
카일이 그렇게 말하자마자, 민은 손을 내젓더니 한마디 한다.
“에이, 그게 아니지! 너희들은 학교에서 선생님 몰래 먹는 것하고, 집에서 여유롭게 과자를 먹는 거하고 같냐? 그렇다고 여기가 몰래 먹는다든가 그런 건 아니지만.”
하야토가 그 말을 듣고 민의 옆구리를 쿡 찔러 눈치를 주자, 민은 어색하게 웃더니 잠시 후 머리를 흔들더니 다시 입을 연다.
“아니, 하, 하하하! 그럴 의도는 없었고!”
그리고 그 시간, 중앙공원.
“야, 뭐냐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저기 호수 위에 떠 있는 걸 한번 보라고!”
지온이 뭔가를 봤는지, 호수 쪽을 가리킨다. 호수 위에는 보라색의 무언가가 떠 있다. 마치 호수 위에 요새가 하나 생긴 것처럼, 그 보라색의 무언가가 둥둥 떠 있는 게, 멀리서도 잘 보인다. 지온이 아는 게 맞는다면, 저 멀리서 보이는 형태는 틀림없이, 요즘 화제가 되는 ‘그것’일 것이다. 공원 한가운데 나타나고, 갑자기 예고도 없이 나타난 것, 그나마도 이전 며칠간은 구청 공원에서 일정한 시간에 나타났기 때문에 예상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뭐야, 그 마왕성이 나타난 거야? 이 시간에?”
어느 정도 다들 예상은 하기는 하지만, 지금은 마왕성이 나타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다. 그간, 그 문제의 마왕성은 장소가 바뀌기는 했어도, 나타나는 시간은 일정했다. 저녁 9시라는 그 시간은 일정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오후 7시 55분. 아직 그것이 나타나기에는 1시간이나 이른 시간이다. 그럼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지온은 좀더 가까이 가서 보기로 한다.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다가가 본다. 사람들의 반응이 없는 게 조금 이상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 본다. 어차피 하루에 한 번은 일어날 일인 이상, 직접 다가가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발 한발 다가가 보는데...
“뭐야...”
눈앞에 있는 건, 그냥 단순한 홀로그램으로 표시된 광고판 같은 것이다. 보라색 구름처럼 생긴 그 홀로그램 광고판에, 광고 문구가 빙빙 돌아간다.
[빠른 배송, 빠른 응답, 콤비니퀵 홈서비스 ? 문의는 XXXX-XXXX]
“에이, 뭐냐고...”
세훈은 허탈했는지, 한숨을 푹 내쉰다. 잔뜩 긴장했기에, 그 허탈감은 더하다. 하소연할 곳이 있으면 이런 것이라도 하소연하고 싶다. 차라리 눈앞에 그 문제의 마왕성이 나타났다면 이런 허탈감은 그래도 좀 덜할 것인데, 전혀 엉뚱한 게 나타났으니 말이다.
“야, 뭐야, 봤냐?”
세훈은 아직 상황파악을 못 한 건지, 숨어있던 곳에서 막 나오며 지온에게 물어 보려는데, 그 광고판을 멀리서 보더니, 마치 쇼크를 받은 듯 뒤로 나자빠질 뻔한다.
“어, 마왕성... 아닌가?”
“야, 마왕성 아니야. 자세히 보라고.”
“어? 정말...?”
세훈이 지온의 말을 듣고 똑바로 서서 다시 그 광고판을 보니, 과연 뱅뱅 돌아가는 광고 문구가 확연히 보인다. 지온과 세훈이 그러는 걸 보더니, 차논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서, 다시 자세를 낮춘다.
“그것 보라고. 여기 그런 건 안 나타난다니까. 애초에 큰 기대를 안 하기도 했고. 내가 여기서 쫓는 건 따로 있지.”
“선배님, 그게 뭐죠?”
“쉿!”
차논은 갑자기 손가락을 입에 올린다. 그리고 지온과 세훈을 화단 안쪽으로 들어오라고 하며 팔을 잡아끈다.
“아니, 선배님, 왜요!”
“그러니까... 저기 봐봐.”
차논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이질적으로 보이는, 빛나는 무언가가 보인다. 지온과 세훈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눈을 한 번씩 비비더니, 이윽고 한마디씩 한다.
“저건 뭐냐...”
“저것도 누가 장난을 친 거라는 건가?”
한편 그 시간, 한 아파트단지 상가에 있는 카페. 상가 꼭대기층에 있어서 단지 가운데 있는 공원이 잘 보인다. 의외로 접근성은 나쁘지 않아서 안에는 항상 손님들로 북적인다. 거기에다가 제법 넓은 편이고, 공원이 보이는 창가 쪽은 벽으로 구분되어 있어서 방해받기 싫거나, 아니면 이런저런 모임을 한다든가 하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곳이기도 하다. 거기에다가 커피 그 자체보다도 디저트로 유명하기도 하다.
“이야, 이번에는 또 다른 디저트야?”
“그러니까. 맛 좀 봐. 언제 이런 걸 맛볼 수 있겠어?”
그중 한 방을 잡고 앉은 사람 중에, 여자 중학생이 2명 있다. 아까의 그 고딕 드레스를 그대로 입고 있는 아이란과, MI스터리의 부원 중 한 명이다. 테이블 한쪽에는 책이 몇 권 쌓여 있고, 가운데 있는 그릇에는 네모난 디저트 몇 개가 놓여 있는데, 마치 꿀을 듬뿍 발라 놓기라도 한 듯, 시럽이 넘치다 못해 그릇에 점점 번지는 게 보인다. 둘은 디저트를 이미 한 입 먹었는지, 포크에는 시럽이 묻어 있다.
“홈카페 동아리가 오늘 좋은 걸 가르쳐 줬다니까!”
“어... 그래? 너 그런 거 좋아하면, 홈카페 동아리나 가지 그랬어?”
“에이, 그래도 나는 만화부가 더 좋은데.”
아이란은 그렇게 말하며 그 네모난 디저트를 하나 집어 먹으며 말한다.
“물론 MI스터리도 나쁜 동아리라는 건 아니지만 말이지. 그리고 내가 이걸 사 줬으니만큼, 너도 지금은 내 말에 귀 기울여 줬으면 좋겠는데, 릴리스.”
“그래... 이 책들 말이지...”
릴리스라고 불린 그 여학생은 그 책들을 몇 번 들여다보며 말한다.
“과연 네가 볼만한 그런 책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추천을 해 줬으니 내가 안 볼수는 없겠어. 내용도 뭐, 그런 내용이겠지...”
릴리스가 책 한 권을 거기서 집어든다. 책 제목은 <미스터리의 5일간 : 베테랑 탐정과 초임 형사>라고 되어 있는데, 딱 봐도 탐정과 형사로 보이는 두 남자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아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그래, 이걸 한번 보자고...”
막 릴리스가 그 책의 첫 페이지를 넘겨보려는데...
“어?”
릴리스는 책을 읽어보려다가 말고, 창밖에 보이는 뭔가에 눈길이 간다. 릴리스가 잘못 봤나 해서 다시 보는데, 여전히 그 무언가가 있는 게 보인다. 보라색의, 마치 홀로그램으로 띄워 놓은 것 같기도 하고, 연막 같은 것을 모아서 거기에 띄워 놓은 것 같기도 하다. 확실한 건, 불과 3분 전까지만 해도 거기에는 없었던 것이다.
“잠깐, 저거 뭐지?”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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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갈
2023-08-13 20:51:03
마왕성이라는 게 역시 유명하긴 하나 보네요. 그것과 닮은 홀로그램 이미지의 광고도 있는데 문제의 마왕성의 실체를 밝히려는 사람들에게는 제대로 맥을 빠지게 하네요. 그렇다 보니 진짜 문제의 마왕성이 나와도 누군가는 그냥 어딘가에서 요즘 유행하는 컨텐츠로 뭔가 해보려는 게 아닌가 하고 지나칠 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그렇게 방심하는 게 문제일 거예요.
이제 이상한 게 또 나타나려나 보네요.
진짜 그런 짓을 왜 하는지, 정말 그거 해서 부자되는지 궁금하네요.
시어하트어택
2023-08-15 23:35:51
아무래도 화제가 되는 건 입소문을 타서라도 유명해질 수밖에 없죠. 그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홀로그램 광고판은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라는 법입니다.
그런 이상한 짓을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지배하는 건 하나입니다. 사람들의 관심.
SiteOwner
2023-09-12 22:35:22
악의 평범성이라는 용어를 만든 한나 아렌트가 마블코믹스를 접했다면 그렇게 말하겠지요. 빌런은 어디에나 있다고. 그 마왕성을 만들어내는 빌런이 생활권역에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빌런이 만들어낸 이미지가 여러모로 유용되어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딱 그렇습니다.
무언가를 먹거나 마시는 행위가 그 자체로 중요하기도 하지만 어떤 형태를 하는가도 역시 중요합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다도 자체에는 관심은 없지만 다기에는 꽤 신경을 쓰는 편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감각을 온전히 믿을 수 없다는 상태, 정말 무섭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16년 전의 저에게는 현실이었습니다.
시어하트어택
2023-09-17 23:11:16
홀로그램 광고판은 실제로 의도하거나 한 것은 아닙니다만, 마침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오해받기 딱 좋을 것입니다. 마왕성을 만드는 그 누군가의 행위는 며칠 안 되기도 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