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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이 뒤를 돌아보니,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 보인다. 교복은 미린고등학교 교복이고, 거기에다가 양갈래 머리, 가방을 한쪽 어깨에 비스듬히 멘 자세 등을 보니, 민도 누구인지 알겠다. 저녁 시간이고 또 조명 때문에 약간 어둡게 보이기는 하지만, 얼굴의 윤곽선만 보고도 그게 누군지 민은 바로 알아볼 수 있다. 다름 아닌 자동차 연구 모임의 셰릴이다.
“잠깐! 누구...”
민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셰릴이 얼른 선수를 친다.
“오, 우리 학교지? 오늘 내가 하는 방송 봐 줄 거지?”
셰릴은 그렇게 말하지만, 민은 알아도 짐짓 모르는 듯 말한다.
“저는 방송한다는 이야기 처음 듣는데요.”
“아... 우리 학교라면 다들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셰릴은 민의 그 말에 잠시 떨떠름한 표정을 짓지만, 그것뿐이다. 셰릴은 다음 순간, 마치 자신이 백화점이나 마트의 판촉 직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과장된 목소리로 장광설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자, 아직 모른다면, 이제 알려 줄게! 매주 수요일 저녁 9시에 진행하는 내 방송은 하루 최대 1만 명이 넘게 시청하는 인기 방송으로...”
들으나 마나, 자신의 방송 홍보일 것이다. 그래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듣는다. 이러는 편이 차라리 낫다. 그런데, 건성으로 듣고 있기는 하지만, 셰릴이 마지막에 강조점을 넣어 말한 건 민에게 쉬이 잊히지 않는다.
“꼭 잊지 말고 채널 고정해 줘야 해! S! R! T! V!”
“네, 잊지 않고 꼭 볼게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해야지 셰릴이 놔 줄 것 같다. 민의 예상대로, 셰릴은 손을 흔들며 ‘꼭 봐야 한다’는 말을 덧붙인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민이 시야에서 멀리 사라진 것을 확인하자, 셰릴은 전화를 들어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한편, 마왕성이 나타난 아파트단지 소공원. 슬레인은 지금 꽤 난감한 상황에 부닥쳐 있지만,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하고 싶어한다. 그러면서도 꽤 초조한지, 수시로 식은땀을 흘린다.
‘지금 이런 상황에 내가 내 능력을 낭비하면 안 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한 슬레인은 어떻게든 후배들을 제지하기 위해 뭐라도 해 보려고 한다. 슬레인의 능력을 사용한다면 그건 한층 더 쉬울 것이다. 라시드와 토오루를 꼼짝하지 못하게 하면 딱이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마치 더 큰 힘이 슬레인을 잡고 흔드는 것 같이 느껴져 못 할 것 같다. 그리핀은 어느새 모습이 보이지 않고, 어둠 속에 몸을 감추고 말하기라도 하는 듯, 속삭이는 것 같은 목소리가 들린다.
“선배님, 그러고만 있을 건가요?”
‘그리핀, 너 자꾸...’
♩♪♬♩♪♬♩♪♬
거기에다가, 슬레인의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한다. 분명히 이건, 아는 사람으로부터의 전화다. 두 가지가 더해지니, 슬레인은 정말 미쳐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왜 하필 이런 때 또 전화가 오냐고... 나 원 참...”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일단은 전화를 받기로 한다.
한편 그 시간, 차논이 보여준 무언가를 본 지온과 세훈은 자신의 눈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비비고 그걸 다시 본다.
“아무리 봐도 저거... 이세계로 가는 통로 같아 보이는데.”
“그래, 그렇게 생겼지?”
차논은 마치 동의를 구하기라도 하는 듯, 지온과 세훈에게 말한다.?
그러고서, 또다시 그 이세계로 가는 문같이 생긴, 그러나 문보다는 소용돌이 속의 블랙홀에 더 가까워 보이는 무언가를 가리키며 말한다.
“너희들은 저기 너머에 뭐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어... 그야 당연히,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보는 것과 그대로, 이세계로 가는 통로라고... 생각하겠죠? 다르게 생각해 봤자, 다른 우주로 가는 통로 정도로...”
“그러니까요. 실제로는 그것보다도 더 이상한 무언가가 있겠지만요.”
지온과 세훈의 말을 들은 차논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수수께끼를 낸 노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윽고 자신이 답을 주겠다는 듯 말한다.
“잘 들어. 예나 지금이나 사기꾼들이 사기를 치는 방식은 크게 변하지 않아.”
“어...”
명색이 괴담 전문 동아리라는 MI스터리의 매니저인 차논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는 건 뭔가 안 어울리는 것 같이 들리지만, 지온과 세훈은 일단 한번 들어보기로 한다.
“실제 내가 들은 사례를 하나 이야기해 줄게. 저 능력의 장본인은 저런 포털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번화가에 열어 놨어. 그렇게 희생자가 걸려들었는데, 당연히 저렇게 이세계로 보이는 통로로 들어갔지. 그런데 어디로 나왔는지 알아? 무슨 햇빛도 안 들고 퀴퀴한 냄새가 풍기는 지하실로 나왔다는 거야! 그리고 나가려면 통행료를 내놓으라고 했다는 거야!”
“어... 정말요?”
“그게 말이 되나?”
지온과 세훈이 못 믿겠다는 반응을 보이자, 차논은 답답했는지, 돌멩이 하나를 집어서 보여주며 말한다.
“자, 이제 이걸 저기 포털로 한번 던져 볼게. 그러면 어느 정도 이해를 하겠지?”
“에이, 돌멩이를 던지면 들어가는 거 아닌가요?”
한편 올리버는 미리 가 있기로 한 장소에 가려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다시 돌아가는 참이다.
“에이, 여기는 왜 길이 꼬여 있어서... 길을 이렇게 이상하게 만들어 놓으면 어떻게 하라고. 그래 놓고 여기 약도에는 제대로 표시되지도 않고...”
그렇게 중얼거리며 발걸음을 재촉하던 올리버의 눈에, 무언가가 보인다. 올리버가 보는 게 맞다면, 그건 분명히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바로 ‘그것’일 것이다.
“뭐야, 저게 왜 지금 나와?”
올리버는 보고도 자신의 눈을 믿지 못한 건지, 조금 더 잘 보이는 곳으로 나와서 그 문제의 무언가를 자세히 본다. 다시 봐도, 요즘 화제가 되는 그 마왕성이 맞다.
“그럼... 이 근처에 있다는 이야기인데?”
거기까지 생각이 이른 올리버는 더 가까이 가 보기로 한다. 사실 이런 상항이 되니 올리버 역시 많이 당황스럽고 또 떨리기는 하지만, 역시 명색이 히어로 동아리이니만큼 올리버가 안 나서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도 빌런이 바로 여기에 있을 텐데 말이다.
“좋아...”
올리버는 그렇게 말하며 그 마왕성에 가까이 다가간다. 올리버 자신은 몇 번씩 보니 그냥 밋밋하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걸 보고 놀라는 사람들이 아주 없지는 않다. 당장 지금 봐도 지나가는 행인들 중 몇 명은 마왕성을 보자마자 재빨리 도망가고, 노인 한 명은 매우 놀랐는지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곧장 그 마왕성이 나타난 소공원 화단으로 발걸음을 옮겨놓은 올리버는, 이윽고 익숙한 상황에 직면한다.
“뭔가... 이리저리 다니고 있는 것 같은데?”
하지만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거기에다가 그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수십, 아니 수백 개 정도는 되는 것 같다. 그것을 3D 모형으로 그려보라고 하면, 올리버도 충분히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수십 개는 되는 파동이 이 소공원 전체에 펴져서, 규칙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그런 그림 말이다. 그리고 그 능력자가 누군지, 올리버는 대략 알고 있다. 틀림없이 이렇게 투명화 능력을 쓰는 사람이라면, 한 사람밖에 없다.
“토오루가... 설마 이 마왕성 장난을 하고 다닌 녀석인 건가?”
일단 거기에까지 생각이 이른 올리버는, 곧장 그 현장에 뛰어든다. 곧바로, 견디기 힘든 소음이 올리버의 두 귀를 엄습한다. 마치 그 소음에 실체라도 생겨서 올리버를 쫓아다니기라도 하는 것처럼, 올리버는 두 귀를 막지 않고는 견디기 힘들 정도가 된다. 그래도 어떻게든 그 소음에 몸을 맡기고는, 토오루가 있을 만한 곳을 찾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도 좀처럼 쉽지 않다. 그 전까지 관찰해 온 바로는 아무리 토오루가 자신을 투명하게 만든다고 하더라도, 시각에는 위화감이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해도 다 진 저녁이라서 추적하는 데 어려움이 크다.
“그런데... 토오루?”
올리버에게는 보이지는 않지만, 이미 어떻게 토오루의 능력을 파훼할지에 대한 건 다 생각을 해 놓았다. 마침 근처에 딱 적절한 것이 있기도 하고 말이다.
“네 능력은 이미 다 알고 있는데... 어쩌냐?”
올리버가 그렇게 다들 들으라는 듯 의기양양하게 말하자, 토오루는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순간 움찔했는지, 주위의 공기가 잠시 흐려지는 듯한 느낌이 올리버에게 전해져 온다. 올리버는 그걸 놓치지 않고 다시 말한다.
“다음부터는 이런 허접한 능력 말고 다른 걸 좀 개발해서 사용하면 어때?”
그렇게 말을 마치자마자, 무언가가 올리버에게 점점 다가오는 것 같다. 올리버는 마치 그걸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화단 옆에 있는 음수대의 꼭지를 최대한으로 열어 버린다.
“자, 한번 맛보라고!”
그 순간, 토오루가 있을 법한 방향으로, 수없는 물방울이 마치 커튼이 덮이듯 깔리고, 이윽고 투명하게 모습을 감추고 있던 토오루의 모습이 드러난다.
“거기 있었네! 이리 나와!”
“어? 어...”
토오루는 투명화를 풀지 않은 상태에서도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어렴풋이 파악하지만, 투명화를 풀지는 않는다. 그러자 올리버는 재빨리 토오루를 덮쳐서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어딜 도망가! 이제 장난은 끝났어!”
“아니, 그러니까...”
토오루는 뭐라고 더 해 보려고는 하지만, 어차피 지금 투명화 능력을 계속 사용하고 있어 봤자 더 뭐가 안 될 거라고 생각했는지, 투명화 능력을 풀고 말한다.
“들어 봐! 내가 지금 투명화 능력을 쓴 건 맞지만...”
하지만 올리버는 마치 토오루에게 훈계를 하는 교사라도 되는 것처럼 말한다.
“야, 너도 에밀리오하고 똑같아. 너희 같은 애들은 꼭 잡히면 하는 말이, 자꾸 자기는 아니라고 그러더라. 그런데 그런 애들이 또 장난은 치지 못해서 안달이 나 있지.”
“그러니까, 내가 아니라고. 잘 들어 봐.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토오루는 그렇게 변명을 해 보려고 하지만, 올리버는 마치 지금 추궁하지 않으면 나중은 없기라도 한 것처럼, 토오루를 끝까지 놔 주지 않을 기세다.
“그리고 지금 이 마왕성 때문이 아니라도, 너 한 짓이 많은 건 알고 있지?”
“진짜라니까... 뭔가 오해가 있는 거야. 내가 그 많은 걸 언제 어디에 가서 하는지...”
그렇게 말해 봤자, 올리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기 폰에 있는 음성파일의 목록을 보여 주며 말한다.
“이미 증언은 많지. 그 며칠 사이에 또 너를 봤다는 말도 좀 많이 들었고. 네가 그렇게 변명이나 하면 내가 가만히 놔 줄 줄 아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건, 잘 알고 있겠지?”
“아니, 그러니까, 아니라니까...”
토오루가 그리핀을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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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3-08-16 18:50:34
한 상황을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역시 각양각색이네요. 자신의 개인방송채널을 홍보하는 셰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뭐라도 해야 하는 슬레인, 그리고 기현상에 대해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차논까지...
올리버의 복안, 굉장하네요. 저렇게 견디기 힘든 기괴한 상황하에서도 토오루의 이상한 짓을 파훼하다니...역시 히어로답다고 해야겠네요. 게다가 토오루도 진짜 아직도 혼이 덜 났어요.
이제 문제는 그리핀이네요.
시어하트어택
2023-08-19 22:55:06
다들 상황은 자기 뜻대로 돌아가지 않죠. 셰릴도 그렇고, 슬레인도 그렇고 말입니다. 차논 역시도, 생각 외로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죠.
그리핀은 일단 위기를 넘긴 것처럼 보이지만, 얼마나 갈까요.
SiteOwner
2023-09-13 22:30:45
이런 정신없는 상황하에서는 1초도 있기 싫군요. 철저히 자기본위인 셰릴은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사는 아이란이 차라리 덜 못할만큼 정신없고,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상황에 빠진 슬레인은 속수무책에...
그렇습니다. 사기꾼들이 사기를 치는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딱히 다르지 않습니다.
올리버, 정말 치밀하군요. 그리고 그 상황에서 정말 기민한 게 역시 히어로 그 자체입니다.
시어하트어택
2023-09-18 22:24:45
대체로 보니 개인 방송을 진행하는 사람들 중에는 저렇게 자기본위적 성격을 지닌 사람들이 없지않아 있는 것 같더군요. 셰릴은 그런 성격을 극대화시켜 본 케이스고, 자동차 연구 모임의 다른 부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