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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때, 슬레인은 갑자기 걸려 온 전화를 받고 있다. 얼굴은 ‘왜 하필 이럴 때 전화가 오냐’고 푸념을 하기라도 하는 듯 얼굴을 찌푸리지만, 전화에 찍힌 이름을 보고는 금세 언제 그렇게 얼굴을 찌푸렸냐고 말하는 듯 조금 전의 평범한 표정으로 돌아온다. 그 전화 너머의 사람이란 다름 아닌 셰릴이다.?
“아, 여보세요? 슬레인, 지금 뭐 하냐?”
“어... 그, 그, 그, 그러니까요, 선배님...”
전화 너머의 슬레인은 당황하기도 했고, 또 옆에서 그리핀이 무언지 모를 힘으로 붙잡고 있으니, 말이 더듬거리며 나온다.
“왜 그래? 나한테 숨기는 거라도 있냐? 그냥 거기서 네 후배들 잘 도와주면 되는 거 아닌가?”
“어... 그렇죠! 당연히...”
“그래. 선배 노릇을 잘해야지. 이따가 내 방송도 봐 주고!”
“어, 방송이요? 아... 네, 네...”
그렇게 셰릴과 슬레인의 전화는 싱겁게 끝난다. 전화를 다 하고 나서, 슬레인은 ‘후’ 하고 한숨을 내쉰다. 셰릴의 말처럼 하는 건 어렵지 않다. 문제는 지금 이것이 슬레인의 본 목적이 아니고, 또 슬레인의 의도와는 아주 엉뚱한 방향으로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나는 분명히 후배들을 잘 감시하러 온 건데 어째서 이러고 있는 거냐...”
그리고 이제 상황은 슬레인에게 더 안 좋게 돌아가고 있다. 그리핀의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은 마치 램프 속의 요정과 꿈에 침범하는 악마, 그 사이의 어딘가 같다.
“선배님, 가만히 있을 거예요? 저기 봐요. 토오루가 당하고 있는데, 선배로서 보고만 있을 거예요? 선배님의 능력을 펼쳐야죠!”
“너, 그리핀...”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지금 토오루가 올리버에게 곤욕을 치르고 있는 건 사실이니까. 그리고 슬레인은 어쨌든 동아리의 매니저이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나가 본다. 그런데, 여기서도 슬레인의 뜻대로 되지가 않는다.
“어? 선배님?”
하필이면, 슬레인이 막 자기 능력을 사용하려는 바로 그때, 올리버와 눈이 마주쳐 버렸다. 이렇게 되어 버리니, 올리버의 머릿속에서의 퍼즐이 하나 더 짜 맞춰진다. 물론 그 퍼즐이라는 건 실제와는 조금은 거리가 있기는 하지만.
“그, 쓸데없는 일은 벌일 생각 마시죠?”
“아, 아니, 그게 아니야!”
슬레인은 그렇게 손을 내저으며 뭐라고 변명을 해 보려고 하지만, 올리버의 귀에 그게 들릴 리가 없다. 거기에다가, 슬레인의 주위에서 뭔가 슬라임처럼 흐물거리는 액체 같은 것이 바닥에 막 올라오려는 참이다. 물론 슬레인이 긴장한 탓에 이렇게 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올리버가 가만히 넘어간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저기, 선배님? 저는 웬만해서는 예의 같은 건 지키려고 하거든요?”
“아니야... 내 말을 좀 들어 봐...”
슬레인이 그렇게 말하기는 해도, 그걸 들을 올리버가 아닌다. 올리버는 잠시 슬레인을 노려보더니, 토오루를 옆에 놔두고 돌아서서 말한다.
“지금 그건, 선제공격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죠?”
슬레인은 급히 그리핀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두리번거린다. 하지만 그리핀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슬레인을 이렇게 만드는 게 그리핀일 텐데 말이다. 어디로 숨어 버리기라도 한 건지, 아니면 마치 자신은 사령탑 같은 곳에서 명령을 내리는 사령관이라도 되는 것처럼, 안 보인다. 그리고 올리버는 지금 슬레인을 향해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다. 올리버에게 초능력이 있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봤다. 무얼 믿고 저러는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슬레인도 대응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여기 왜 왔는지, 이제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좋아, 그렇다면...”
“뭐야, 너 진짜로 던진 거냐?”
“어...”
차논의 말에 지온은 말을 흐린다. 사실은 몇 초 전, 정말로 그 소용돌이 속의 공간을 향해 돌을 던졌기 때문이다. 물론 몇 초간 기다려 봐도, 돌이 떨어지는 소리는 안 들린다.
“진짜인 것 같은데요, 저건.”
“뭐야, 딴소리하지 말고, 던졌어, 안 던졌어?”
“어, 그러니까...”
차논의 말에 지온이 말을 다시 얼버무리는데, 갑자기 그 소용돌이 너머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오는 것 같다. 하마터면 지온도 그것을 맞을 뻔했지만, 정면에서 보고 있던 게 아닌 옆에서 비스듬히 보고 있었기 때문에 다행히 거기서 튀어나오는 것을 맞지 않을 수 있었다.
“아니, 뭐야. 누가 대체...”
“야, 그러니까 조심하라고 했잖아!”
지온을 보고서 차논이 재빨리 지온을 옆으로 끌어당기며 말한다. 지온이 살짝 보니, 차논의 표정 역시 많이 일그러져 있다.
“거기서 얼쩡대다가 또 뭘 당하려고? 이리 오라니까? 저 거짓의 벽 너머에 있는 녀석들은 절대 일반인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녀석들이 아니야! 누가 말했잖아? 사기꾼들은 숨쉬는 것도 거짓말이라고! 내가 말한 건 귓등으로 들었냐?”
“아, 아니, 그런 건...”
하지만 지온이 막 그렇게 말하려는데, 또다시 무언가가 그 소용돌이 너머에서 날아온다.
“또 뭐야?”
“이번에는 돌멩이 같은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럼 뭐죠?”
세훈이 묻자 차논은 잠시 머리를 굴리기라도 하는 듯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금세 무언가 생각났는지 입을 연다.
“아, 맞아! ‘휙’ 하고 빠른 소리로 지나갔지. 거기에다가 금속음도 좀 들렸던 것 같아. 그렇다고 한다면, 내가 생각하기로는 못이나, 아니면...”
차논은 거기서 잠시 말이 없지만, 차논의 말로 미루어 볼 때, 그건 분명히 송곳이나 긴 나사를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걸 망설임없이 던질 수 있다는 건, 보통 위험한 상황은 아니다.
“저, 선배님! 빨리 여기서 피해야 할 것 같은데요?”
“잠깐...”
지온과 세훈이 차논을 붙들고 가자고 하지만, 그래도 차논은 그 소용돌이에 뭔가 미련이 있었는지, 지온과 세훈을 제지한다.
“왜요? 저거 위험하잖아요? 그냥 있다가는 우리도 어떻게 될 것 같은데...”
“조금 더 지켜봐야 해. 저건 있지, 정말...”
차논은 그 묘하고도 이상한 소용돌이를 조금 더 지켜볼 생각이다. 당연하지만, 이런 걸 놓치기가 싫어서다. 위험하다고는 해도 차논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이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 뭐야.”
그 이상한 소용돌이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순식간의 일이다. 마치 거품이 물에 녹아 버리듯, 3초도 안 되는 시간에 없어진 것이다.
“이럴 리가 없는데... 보통 저 소용돌이는 한번 생기면 하루고 이틀이고 한 자리에 쭉 있어서 마치 개미지옥처럼 희생자를 노리는 것으로 아는데, 왜 갑자기 사라지는 거지...?”
차논은 그렇게 의문을 품지만, 그 답은 의외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시간은 약 30초쯤 전으로 돌아간다.
“그러니까, 너희 상사가 그런 악취미가 있는 초능력자일지 모른다는 거지?”
“맞아. 거기에다가 또 신경질적이기까지 하니까 의심이 안 되겠냐?”
지온과 세훈, 차논이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메이링과 우준의 대화가 들려온다. 여기까지는 그냥 평범하게 주고받는 대화지만, 메이링이 갑자기 멈추어 선다.
“야, 너 왜 멈추냐? 뭐라도 있는 거야?”
“어... 있지.”
메이링은 마치 무언가를 감지한 CCTV라도 되는 것처럼, 어딘가에 시선을 고정하더니, 잠시 후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정말 뭐가 있었나? 아무리 봐도 그런 것 같은데.”
“맞아.”
메이링은 마치 퀴즈를 내고 그걸 맞췄을 때 하는 말처럼 말한다.
“바로 저쪽이었지.”
“응? 저쪽에 뭐가 있어?”
메이링이 가리킨 곳을 우준이 보자, 사람 3명이 수풀 안에 숨어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당연히, 우준은 그 숨어 있는 사람들을 경계하며, 발걸음을 늦춘다.
“아니, 저 사람들, 왜 저렇게 허술하게 숨어있는 거야? 딱 봐도 알겠네!”
“쉿, 저 사람들이 아니라고.”
“응? 뭐야...”
우준이 허탈했는지, 잠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더니, 더욱 의문이 들었던 건지 메이링에게 더 가까이 가서 묻는다.
“그럼 뭐야? 저기 숨어 있는 사람들이 범인 같아 보이는데?”
그렇게 말하자, 메이링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내젓는다. 그리고 우준에게 가만히 멈춰 있으라는 눈짓을 주더니, 그 세 명의 사람이 숨어 있는 곳으로 가더니, 대뜸 말한다.
“야! 세훈아! 그리고 거기 누구더라? 아무튼, 숨어 있지 말고 어서 나와!”
“어... 누구...”
물론 지온과 세훈, 차논은 그 목소리를 처음 들을 때는 누구인지 몰라서 더 몸을 움츠리지만, 세훈이 그게 누구의 목소리인지 파악하자마자, 곧바로 일어나더니 경계를 풀고 말한다.
“아니, 변호사님이 말도 안 하고 오시면 어떡해요?”
“왜기는. 이상한 기척이 있길래 바로 손을 좀 썼지.”
“네...?”
지온과 차논이 되묻자 메이링이 곧바로 말한다.
“그 이상한 게 뭔지는 너희가 더 잘 알잖아?”
“어...”
“네, 그렇죠.”
“얼른 돌아가. 내가 우연히 이 근처를 안 지났으면 너희들 더 험한 꼴도 당했다.”
“어...”
지온과 세훈은 얼른 고개를 끄덕이고서 공원을 떠날 준비를 하지만, 차논은 망설인다.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차논은 아직 이곳에서 괴담 몇 가지를 더 조사해 보고 싶고, 또 후배들도 아직 집에 갈 준비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메이링의 태도는 단호하다.
“네가 왜 안 가고 싶어하는지는 잘 아는데, 지금 돌아갔다가 더 많은 미스터리를 수집하는 게 낫겠냐, 아니면 지금 여기 더 있다가 험한 꼴을 더 겪는 게 낫겠냐?”
“어... 답은 이미 정해져 있죠.”
차논은 마지못해 말한다.
“그래, 그럼 어서 가.”
“네...”
차논은 김이 빠진 듯 말하더니, 그 자리를 벗어난다. 그러면서도 미련이 좀 남았는지, 그 소용돌이가 있던 자리를 한번 돌아보다가, 이윽고 후배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기로 한다.
한편 그 시간, 민은 집에 막 들어가기 전이다.
“뭐냐... 메시지가 왜 또 와 있어?”
어느새 또 누군가의 메시지가 와 있는 게 보인다.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향하는 바로 그 사이에 온 것 같다. 시간도 2분쯤 전이다.
“어디... 토마가 보냈고.. 게임이나 한판 하자고? 에이, 얘는 아까 뭘 들은 거야...”
아까 게임은 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는데도 토마는 또 게임을 하자는 메시지를 보냈다. 한숨을 푹 내쉬고는, 민은 메시지를 하나 보낸다.
[내일 하자. 또 이상한 말 하지 말고]
그리고 대문을 열고 들어가다가, 정원 한쪽에 무언가 떠 있는 게 보인다. 척 보니 풍선같이 보이기도 하고, 드론 여러 개를 겹쳐 놓은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그게 뭔지, 문득 궁금해진다.
“가만, 우리집에 저런 게 있었나...?”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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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갈
2023-08-20 23:50:28
이제 슬레인은 막다른 골목에 와 있는 거네요. 자기가 어떻게든 안하면 미래는 없다는 절박함에...
그런데 그 결단이 과연 유효할지는 좀 더 관망해야겠네요.
메이링이 나타나 준 게 확실히 전화위복이 되었네요. 정말 뭔가가 마구 날아오고 하는 상황은 매우 위험하기 짝없어요. 괴담을 수집하고 하는 것도 살아있고 몸이 멀쩡한 다음의 이야기니까요.
집의 정원에 못보던 게 있는 상황, 정말 싫네요.
시어하트어택
2023-08-27 21:51:06
슬레인의 의도대로 된 상황은 아니지만, 어떻게 하더라도 슬레인에게는 쉽지 않은 상황이죠.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든 슬레인에게는 좋지 않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겠죠.
메이링의 능력이 이럴 때는 꽤 유용합니다.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으면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까지 위협할 상황이었죠.
SiteOwner
2023-09-16 16:02:10
안 좋은 일은 떼로 몰려다니는 법. 그리고 무엇을 해도 안 좋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면...
영어의 속어 중에 in deep shit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즉 깊은 똥구덩이에 빠졌다는 것인데 슬레인이 딱 그 형국이군요. 게다가 슬라임 같은 것이 바닥에서 올라온다니 정말 싫은 상황 그 자체입니다.
뭔가가 날아다니고 못 보던 게 보이고, 조금 전에 먹었던 포도의 맛이 입에서 사라지면서 떨떠름해집니다.
시어하트어택
2023-09-18 22:34:41
그것도 자신이 하지 않은 것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니, 슬레인에게는 더욱 그 말이 어울릴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슬레인 자신 역시도 책임이 없는 건 아니니 변명은 통하지 않겠습니다만...
지온의 앞에 벌어진 저 상황은 아마도 3부 이후에 본격적으로 다루어 보게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