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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을 맞이하여 시작된 폴리포닉 월드 포럼의 프로젝트인 100년 전 지도로 보는 세계의 여덟번째는 한 세기 전의 인도 중심의 남아시아편으로 결정되었어요.
이번에도 이 지도의 편집에 TheRomangOrc님께서 힘써주셨어요.
이 점에 깊이 감사드리면서 원본 및 편집된 지도를 같이 소개할께요.
원본이 일본어 사용자를 상정한 일본국내의 출판물인만큼 1924년 발행 당시의 일본의 관점을 그대로 보일 수 있도록 원문표현은 가능한 한 충실하게 번역했다는 점을 명시해 드릴께요. 해당 표현에 대해서만큼은 저의 주관이 배제되었으니 그 점을 꼭 염두에 두시길 부탁드려요.
그러면 원본을 소개할께요.
당시 표기방식은 가로쓰기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방식이예요. 게다가 현대일본어가 아닌 터라 한자 및 히라가나의 용법도 현대일본어와는 차이가 여러모로 두드러져요.
그러면, TheRomangOrc님께서 편집해 주신 한글화 지도를 소개할께요.
손글씨로 표기된 것은 자연관련 사항으로 갈색은 육상지형, 남색은 해양 및 도서지형, 녹색은 각 도서 및 속령, 청록색은 천연자원, 보라색은 도시인 반면, 고딕체로 표기된 것은 각 지역의 특이사항이니까 참조해 주시면 좋아요.
원문자에 대해서도 이런 원칙이 있어요. 적색 테두리의 흰 원 내의 검은색 알파벳 원문자는 각 지역의 상황, 그리고 청색 테두리의 검은 원 내의 흰색 번호 원문자는 추가설명이 필요한 각 지역에 대한 표시임에 주목해 주세요.
By Courtesy of TheRomangOrc
인도라는 나라의 이름은 강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어휘인 신두(Sindhu)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고 특히 세계 4대 고대문명의 하나로 잘 알려진 인더스문명(Indus Valley Civilisation)의 발상지인 인더스 강이 그 신두인 것으로 이해되고 있어요. 그 신두가 여러 언어로 수용되면서 그리스어에서는 인도스(Ινδός), 라틴어에서는 인디아(India), 페르시아어로는 힌두쉬(Hindush) 등으로 정착했고 한자문화권에서는 印度라는 표기가 널리 쓰이고 있어요. 인도를 대표하는 다신교인 힌두교(Hinduism)는 생각해 보면 "인도의 종교" 라는 의미가 되어요. 역시 종교의 나라라는 수식어가 결코 아깝지 않아요.
100년 전의 인도와 지금의 인도는 같지 않으니까 이 점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을 드려야겠어요.
100년 전의 인도는 정확히 말하자면 영국령 인도제국(British Raj)으로 이전의 동인도회사(British East India Company) 체제로 인도를 지배하던 영국이 1857년 인도 각지에서 발생한 반란인 세포이항쟁(Sepoy Mutiny, Indian Rebellion of 1857)을 1년 반만에 제압한 이후에 1858년부터 동인도회사를 폐지하고 총독부를 설립하여 인도를 직접 통치하는 상태였어요. 이 인도제국은 제국이라는 이름으로 존속한 식민지였고 인도제국의 황제는 영국의 군주가 겸임했어요. 1947년까지 존속한 이 체제는 지금의 인도의 영토 전역은 물론 현대의 스리랑카,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및 미얀마를 포함하는 광대한 영역을 포함했어요. 단 1924년 당시에는 서부의 발루치스탄(Baluchistan/Balochistan)은 수석판무관관구(Chief Commissioner's Province)로 지정되었던 반면 동부의 버마(Burma)는 자치령이 되어 있었다 보니 영국령 인도제국의 다른 지역과는 다른 색의 영역으로 구분되어 있어요.
또한 인도의 자연의 특이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인도아대륙(Indian Subcontinent)이라고 분류될 정도로 유라시아대륙과 판이하게 다른 이 지역은 전반적으로 열대기후대인데 반해 북쪽의 히말라야산맥은 세계에서 가장 고지대인 한대지방인 반면 서부는 낙타 이외의 교통이 사실상 봉쇄된 험한 지형으로 악명높은 타르 사막(Thar Desert)이 펼쳐졌고 동부 갠지스강 유역은 연평균 10,000mm를 아득히 뛰어넘는 세계최대의 강수량으로 잘 알려진 다우지인 등 기후가 극과 극을 달리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어요.
또한 인도에는 대형 육식동물인 사자도 호랑이도 서식하는데다 몸을 펼쳐서 크게 만들어 적을 위협하는 독사인 코브라(Cobra, Elapidae)도 상당히 많이 있어서 사는 동물들도 매우 위험한 게 많아요. 특히 인도의 킹코브라(King Cobra)는 몸길이 7m(=23피트) 내외로까지 크게 자라는데다 일어서면 사람 키에 가까울 정도로 매우 크고 독의 양도 많아서 세계최악의 독사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여러모로 위협적이예요. 한때 총독부가 코브라 퇴치를 위해 포획해 오는 사람에게 보상금을 주는 제도까지 운영할 정도였지만 그 돈을 노리고 코브라를 사육하던 사람들도 늘어나는 바람에 총독부가 그 정책을 폐기했고 코브라 농장도 버려져서 결국 아무것도 안한 것보다 더욱 못한 결과가 발생한 정책실패도 있었어요(19세기 코브라 퇴치정책의 실패를 생각하는 밤 참조).
여담으로, 당시에는 코브라를 국자뱀(杓子蛇)이라는 한자표현으로 불렀던 것이 원본 지도에서 드러나고 있어요. 역시 몸 옆면을 펼쳐놓은 모습이 국자처럼 보였다 보니 저런 한자표현도 나왔나 보네요.
그리고, 코브라의 서식범위는 의외로 넓어요. 인도양에 접하는 지역에는 다 있다고 생각하시면 틀리지 않은데다 의외로 태평양에 접하는 지역에도 있어요. 호주, 파푸아뉴기니, 필리핀, 대만은 물론 일본에서도 오키나와현(沖縄県) 및 카고시마현(鹿児島県)의 도서부를 포함하는 난세이제도(南西諸島)에도 있고 북미대륙에도 있다고 하네요. 더 찾아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지만...
적색 테두리의 흰 원 내의 검은색 알파벳 원문자 항목으로 시선을 옮겨볼께요. A부터 I까지 9개 항목이 있어요.
A. 페라린 중위, 로마에서 도쿄까지 비행성공
여기서 왜 뜬금없이 이탈리아 공군의 장교이자 탐험가인 아르투로 페라린(Arturo Ferrarin, 1895-1941)이 나오나 싶지만, 사실 이 페라린 중위는 유럽과 아시아의 하늘을 난 세계최초 인물로서 매우 중요한데다 일본의 문화컨텐츠에도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니까 역시 특기할만하겠죠.
페라린 중위의 유라시아 횡단비행은 아래의 지도에 나타난 것처럼 이루어졌어요.
이탈리아 공군참모부 주관으로 기획된 이 프로젝트는 이탈리아 최초의 국산전투기인 안살도(Ansaldo) S.V.A.9 복엽기(複葉機)가 1918년에 이탈리아의 파도바(Paduva)와 오스트리아의 비엔나(Vienna/영어, Wien/독일어) 사이의 1,000km 구간을 처음으로 비행한 이후 기획된 것으로 11대의 항공대를 편성하여 로마-도쿄의 18,000km 구간을 이동하는 프로젝트였어요. 여기에 대해서는 이탈리아 정부의 후원도 있었어요.
그 대장정은 1920년 2월 14일에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서 시작되었고 페라린 중위는 항공기관사와 동승하여 가장 먼저 출발하였고 이후에 다른 원정대원들로 뒤를 따랐어요. 그 중 페라린 중위가 탄 기체 및 뒤따라 출발한 기체 중 귀도 마지에로(Guido Masiero, 1895-1942) 중위가 탄 기체가 일본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한 기체로 로마-도쿄를 완주한 것은 페라린 중위가 탄 것뿐이었어요. 사실 페라린 중위도 도중에 악천후를 만나 할 수 없이 기후현 카카미가하라비행장(各務原飛行場)에 불시착했고 5월 31일에 마지에로 중위의 기체가 도쿄 요요기(代々木)에 착륙한 지 1시간 뒤에야 페라린 중위의 기체가 착륙했어요. 단, 마지에로 중위의 기체는 도중에 파손되어 예비기체가 도착하기까지 광동(広東)-상해(上海) 구간을 선박으로 이동했다 보니 기록이 공인되지 못하여 결국 페라린 중위의 비행이 역사상 최초의 유럽-아시아 횡단비행이 된 것이죠. 다른 기체는 이라크의 바스라(Basra)에 도착하기 이전에 모두 추락해서 완주하지 못했어요.
당시 그 프로젝트의 장면을 담은 이탈리아어 음성의 흑백영상도 전해지고 있어요. 7분 12초에서 7분 20초에는 한국무용이 나오는 것도 인상적이죠.
그 때에 사용되었던 항공기의 실물이 그대로 남아 있어요.
이미지 출처
(일본항공사 안살도 SVA 9, 2022년 6월 web-modelers 기사, 일본어)
항공자위대(航空自衛隊) 하마마츠홍보관(浜松広報館)에 전시되어 있는 이 안살도 S.V.A.9 복엽기는 이탈리아가 일본에 기증한 것으로 이렇게 남아 있어요. 저 기체에 대해서 진품이 아니라 레플리카라는 여러 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정설은 1920년에 세계최초의 유라시아 동서횡단비행을 마친 실제의 기체라는 것.
이 페라린 중위는 그 뒤로도 1928년에는 53시간 37분간 체공하면서 7,666km를 선회비행하는 기록을 세운 것은 물론 이탈리아의 귀도니아 몬테첼리오(Guidonia Montecelio)에서 브라질 나탈(Natal)까지의 7,186km를 무착륙비행하는 기록을 세우는 등 도전의 역사를 지속하다가 1941년 7월 18일에 로마 근교에서 테스트비행중 사고를 당해 46년의 짧은 생애를 마감했어요.
그의 이름은 1992년에 공개된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영화 붉은 돼지(紅の豚, Porco Rosso)의 등장인물인 페라린 소령(フェラーリン少佐)으로도 등장하고 있어요. 담당 성우는 이나가키 마사유키(稲垣雅之, 1955년생).
B. 쥐와 호랑이가 옮기는 병이 유행하는 지역 중 하나로 일본에도 이 지역이 생긴 병이 전염된다.
1918년에 인도 서부의 해안도시 봄베이(Bombay, 현재의 뭄바이(Mumbai))에서 창궐했던 판데믹인 봄베이열병(Bombay Fever) 또는 봄베이독감(Bombay Influenza)은 1921년 센서스(Census)에서 인구가 10년 전인 1911년 대비 감소한 것으로 집계되었을만큼 충격이 컸어요. 인도 역사상 실시된 인구총조사에서 인구감소가 나타난 것은 이때가 유일해요.
이 봄베이열병은 1918년에서 1920년 사이의 전세계를 강타하여 수천만명의 사망자를 낸 스페인독감(Spanish flu)의 한 부류로, 인도에서는 총독부 공식통계로는 1388만명이 희생되었다고 알려져 있고 최대 1800만명이 병사했을 것이라는 더 끔찍한 추정 또한 존재해요. 특히 20-40대 여성이 피해를 많이 입었다 보니 인구가 회복되기가 매우 힘들었다는 것이 바로 보이죠.
당시의 참상에 대한 서술 중에 끔찍한 것이 있어요. 인도에서는 강변에서 화장(火葬)으로 장례를 치르는 게 일반적인데, 그 화장에 쓸 땔나무가 부족해서 시신이 인도 각지의 강에 버려져서 강물의 흐름을 막아 버렸다고 할 정도...
이 봄베이독감은 이후 인도의 자유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고, 당시 이 병에 걸렸던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 1869-1948)는 1920년부터 영국에 대한 비협조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어요.
C. 인도양 위의 스콜 덕분에 소생할 것 같다.
지난 7편에서 언급된 호주와 인도를 잇는 항로는 인도양을 남동에서 북서로 횡단하는 것으로 매우 덥고 주변 풍경도 단조롭다 보니 여러모로 심신이 피폐해질 수밖에 없는 악조건의 항해를 강요받을 수밖에 없어요. 이 상황에서 갑자기 내리는 스콜(Skoal)은 그야말로 축복 그 자체일 거예요.
D. 이 주변은 바람이 불지 않고 매우 더운데다 몇일이고 하늘과 물 뿐인 단조로운 풍경에 질려버려 승객도 선원도 미쳐버리는 경우가 있다.
실시간으로 지구상의 바람의 흐름을 볼 수 있는 웹사이트인 Earth Nullschool에서는 인도양의 무풍지대를 확인할 수 있어요(사이트 바로가기/영어). 좌표상으로는 남북 방향은 적도에서 남위 5도, 동서 방향은 동경 70-90도 범위내에 있어요. 바로 이 지대는 범선으로 항해한다면 꼼짝없이 고립되어 바다 위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하고 동력으로 운행되는 기선(汽船)조차도 그다지 우호적인 해역이 아니었어요. 승선한 사람들이 승객이고 선원이고 미쳐버릴 정도라는 것은...
특기할 만한 것은 일본어 원문인 수부(水夫). 일본어 발음은 카코(かこ)와 스이후(すいふ)가 있어요. 둘 다 기본적으로는 선원이라는 뜻이지만 스이후는 선원 중에서도 계급이 낮은 사람들을 칭하는 용어라고 하죠. 이 지도에서 저 어휘가 어떤 독음이나 함의를 취하는지는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저 해역이 항해의 프로페셔널들에게도 매우 힘들다는 것만은 여실히 전달되고 있어요.
E. 세계대전 당시 독일 잠수함 및 순양함 엠덴이 이 해역에서 활약하여 일본의 군함을 추격해 오다.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용어는 어디까지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의 용어이다 보니 이렇게 "세계대전(世界大戦)" 이라는 표현에서 시대상이 느껴지고 있어요. 이 전쟁은 이전의 전쟁과는 궤를 달리할 정도로 국가 전체가 전쟁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총력전체제(総力戦体制)였고 그 참상 또한 전대미문의 것이었어요. 그 전쟁을 말하는 수식어가 "이것은 모든 전쟁을 끝내는 전쟁(This is a war to end all wars)", "죽은 자들만 이 전쟁의 끝을 보았다(Only the dead have seen the end of war)" 및 "유럽문명의 자살(The Suicide of Civilized Europe)" 이라는 끔찍한 것들이었어요.
여기서 언급된 엠덴은 이 이름을 가진 독일의 첫 군함으로 독일제국해군(Kaiserliche Marine) 소속의 드레스덴급 경순양함의 2번함으로서 1906년에 기공되어 1909년에 취역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인도양을 휘젓고 다녔으나 1914년에 호주 해군의 경순양함 시드니(HMAS Sydney)에 격파된 뒤 코코스섬 해안에 표착해 버렸던 SMS Emden. 여기서 SMS란 황제폐하의 선박을 의미하는 독일어 "자이너 마예스테트 쉬프(Seiner Majestät Schiff)" 를 의미해요. 또한 6편에서 언급된 1927년의 그 엠덴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인 1921년에 기공되어 1925년에 준공된 이후 취역하여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독일이 항복하기 직전에 자침된 군함이라서 완전히 별개라는 것을 밝혀 드릴께요.
이 엠덴의 활동기간은 불과 5년이었지만 활약상은 가공할 만한 것이었어요.
이미지 출처
S.M.S. Emden (1908), deutsche-schutzgebiete.de 웹사이트, 독일어
이 군함은 배수량 3,650톤에 정원 361명의 경순양함으로 오늘날의 구축함보다도 작은 편이었어요. 보통 대양항해에 적합한 군함의 배수량이 최소 5,000톤 규모라고 알려진 것을 볼 때 이 군함이 인도양 전역을 종횡무진하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어요. 게다가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한 초기에는 그 정보가 세계 각지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보니 적국인 영국의 항구에 기항해서 보급받는 일까지 벌어졌을 정도로 그 활동상황 또한 기상천외했어요.
이 지도가 바로 1914년 7월에서 11월까지의 활동상황.
이미지 출처
Map depicting the route of SMS Emden from July to November 1914, Australian War Memorial 웹사이트, 영어
이렇게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및 동북아시아를 항해하던 엠덴은 일단 1914년 상반기에는 충돌 없이 중국 및 일본 근해의 통상적인 항해를 하고 있었는데 그해 7월에 오스트리아의 페르디난트 황태자가 암살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그때부토 오스트리아의 동맹국인 독일제국의 군함으로서 적국인 영국과 맞서게 되었어요. 적국인 영국의 화물을 수송중이던 그리스의 석탄운반선을 나포한다든지 영국의 상선을 격침시킨다든지 인도의 도시 마드라스(Madras)를 포격하여 석유저장시설을 파괴한다든지 당시 영일동맹 체제하에 있어 동맹국을 구원하기 위해 급파된 일본의 군함을 추격한다든지 등 무서움 없이 인도양의 공포 그 자체가 되었지만 결국 1914년 11월 9일에 호주의 코코스 섬(Cocos Island) 앞바다에서 호주 해군의 경순양함 시드니와의 교전에서 대파되어 패배하면서 그 공포도 막을 내렸어요.
F. 유명한 아잔타 사원
보통은 아잔타 석굴(Ajanta Caves)로 잘 알려져 있는 이 아잔타 사원은 대략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전 5세기 후반에 걸쳐 마하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지구(Aurangabad district, Maharashtra)의 아잔타 지역의 산에 인공적으로 굴착된 30개의 석굴사원을 의미해요. 특히 유명한 것은 1, 2, 16 및 17번 석굴로 여기에는 고대 인도벽화가 거의 완벽한 형태로 대량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도 유명해요.
이 아잔타 석굴은 중세에는 중국의 불교신자들이 잘 찾던 순례지였다가 잊혀진 후인 1819년에 영국군 장교인 존 스미스(John Smith)를 필두로 한 호랑이 사냥에 나선 그룹이 우연히 발견하여 그 존재가 전세계에 알려졌고, 1983년에는 유네스코(UNESCO) 선정 세계유산(World Heritage Site) 242번으로 등록되었어요.
아잔타 사원의 외양은 그렇게 화려하지는 않아요. 암벽을 깎아서 만들어졌다 보니 겉으로 드러나는 것 자체는 많지 않거든요. 그러나 외부에 드러난 것도 어떻게 고대의 기술로 저렇게 만들었는가 싶을 정도로 경이롭다는 것은 확실히 느낄 수 있어요.
이미지 출처
Ajanta Caves Aurangabad (Timings, Entry Fee, History, Location, Images & Facts), Aurangabad tourism from HOLIDAYS INDIA 웹사이트, 영어
내부는 정말 경이 그 자체.
이미지 출처는 위의 것과 동일하여 생략할께요.
이렇게 아우랑가바드의 아잔타 사원은 고대인들의 깊은 신앙심과 높은 기술력이 어떤 걸작을 만들어 냈는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어요. 이게 유명하지 않다면 대체 무엇이 유명해져야 하는 것일까요. 게다가 이렇게 수작업으로 현무암(玄武岩, Basalt) 암반을 깎아 만들어진 30개의 석굴은 모두 100km(=62마일)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이 아잔타 사원은 인도 불교예술의 걸작인 동시에 본인이 기록을 남기지 않았고 제자 및 신자들의 기록만으로 행적이 전해지는 석가모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게 해 주는 단서를 대량으로 갖고 있는 중요한 사적이기도 해요.
그나저나 입장료에는 차등이 있네요. 인도 내국인 및 남아시아지역협력연합(South Asian Association for Regional Cooperation, SAARC) 회원국인 아프가니스탄, 방글라데시, 부탄, 몰디브, 네팔, 파키스탄 및 스리랑카의 국민에게는 35루피(=576원)의 입장료가 부과되지만 그 외의 국적자에게는 15배를 넘는 550루피(=9,042원)가 부과되니...
G. 홍차가 많이 생산된다.
인도의 특산물 하면 역시 저에게 친숙한 것으로는 홍차(紅茶, Black Tea).
그리고 인도의 홍차에는 품종에 따라서는 크게 아삼(Assam), 다즐링(Darjeeling) 및 닐기리(Nilgiri)의 3계통이 있어요. 사실 아삼과 다즐링이 많이 알려져 있는 편이고 닐기리는 상대적으로 마이너하지만요. 인도의 홍차 중에서도 접해 본 것은 아삼과 다즐링이었어요.
사실 홍차가 인도를 대표하는 상품이 된 것은 그렇게 역사가 길지만은 않아요. 차의 본고장이 중국 남부인데다 재배 및 가공기술이 철저히 비밀로 유지되었다 보니 유럽에서는 한동안 중국 이외에서는 차를 생산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후 영국인들의 대담한 실험이 상황을 일변시켰어요. 영국인들이 중국의 차나무를 입수하여 인도에서 재배하는 데에 성공했고 그것이 오늘날의 인도 동부의 다즐링 홍차와 서부의 닐기리 홍차의 기원이 되어요. 반면 아삼에서는 중국의 차나무와는 다소 다른 고유종의 차나무가 있다는 것이 추가로 발견되고, 이후 영국에서는 인도는 물론 영국령의 다른 지역인 방글라데시(Bangladesh), 말레이시아(Malaysia), 네팔(Nepal), 스리랑카(Sri Lanka), 케냐(Kenya), 말라위(Malawi), 모리셔스(Mauritius), 남아프리카(South Afirca), 우간다(Uganda) 등에도 대규모 플랜테이션(Plantation) 농장을 건설하여 차의 수입원을 다원화하는 데에 성공했어요. 그렇다 보니 지금도 차엽의 원산지에 남아시아 국가는 물론 아프리카 국가들도 이름을 올리고 있어요.
여담이지만 동양에서는 우려낸 차의 색이 붉은 점에서 홍차라고 부르지만, 서양에서는 발효건조된 차엽이 검다는 이유로 영어로는 블랙티(Black Tea), 프랑스어로는 테누아(Thé noir), 독일어로는 슈바르처 테(Schwarzer Tee), 러시아어로는 쵸르느이 챠이(Чёрный чай), 이탈리아어로는 테네로(Tè nero)로 부르고 있어요. 모두 검은색 표현이 들어가는 게 보이죠. 참고로 레드티(Red Tea)는 남아프리카 원산의 대용차인 루이보스(Rooibos)를 가리키는 용어예요. 말린 루이보스도 우려낸 루이보스차도 붉은색이니까요.
H. 다이아몬드가 많이 산출된다.
지도에서는 금강석(金剛石)이라는 한자표기가 사용되고 있고, 다이아몬드(ダイアモンド/ダイヤモンド)라는 표현은 20세기 후반부터 많이 쓰이고 있어요. 오늘날에는 다이아몬드의 주산지가 아프리카, 러시아 및 북미 쪽으로 변천했지만요.
I. 립톤 홍차의 발상지이자 "천상천하유아독존" 이라는 엄청난 발언이 전해지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태어나신 실론 섬
오늘날의 스리랑카에 해당되는 실론(Ceylon)은 역시 주목할 점이 많아요. 특히 홍차의 명산지로 잘 알려진 스리랑카(Sri Lanka) 및 그 스리랑카 원산의 홍차인 실론티(Ceylon Tea)의 위상을 있게 한 인물이자 홍차 대중화를 선도한 영국의 사업가 토마스 립톤(Thomas Lipton, 1848-1931)의 가장 성공적인 사업인 립톤홍차의 출발점이기도 하니까요.
토마스 립톤은 1890년에 스리랑카의 홍차농장을 인수한 이래 "다원에서 티포트까지 바로(Direct from the tea gardens to the teapot)" 라는 캐치프레이즈를 필두로 홍차 소분판매를 시작해서 대성공을 거두었어요. 특히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 등의 대사건으로 인해 홍차에 대한 인식이 나쁜 미국에서조차 성공을 거두었을 정도니까 립톤의 비즈니스모델이 얼마나 혁신적이었는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을 거예요. 그리고 지금도 홍차에서 세계 1위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어요.
오늘날의 립톤 홍차는 스리랑카 이외에도 중국, 인도, 케냐 등 다양한 국가에서 생산된 홍차를 혼합하여 생산되고 있어요. 립톤의 홍차를 매우 싫어하는 홍차 매니아도 있긴 하지만 저는 그렇게까지 미워할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어요. 홍차 대중화에 기여하여 누구든지 관심만 있으면 홍차를 즐길 수 있게 만든 공로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데다 간편하고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홍차상품을 많이 내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트와이닝스(Twinings), 아마드(Ahmad), 아크바(Akbar), TWG 등의 다양한 브랜드의 홍차를 즐기는 저도 립톤을 배제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석가모니의 출생지가 실론 섬이라는 설은 이 지도에서 처음으로 접했어요.
사실 석가모니라는 인물 자체가 어느 시대의 인물인지도 부정확한 상태인데다 본인이 남긴 기록은 없고 그에 대한 것들은 그의 제자를 비롯한 불교신자들의 기록에 의존하는 것이 대부분이죠. 또한 석가모니의 출생지 또한 다수설은 현재의 네팔의 룸비니(Lumbini)로 알려져 있고 현지에 룸비니 동산이 조성되어 있다든지, 불교는 물론 힌두교의 성지이기도 한 바라나시(Varanasi, 베나레스(Benares) 명칭도 통용) 또한 인도의 마지막 왕조국가인 무굴제국(Mughal Empire, 1526-1857)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유명한 타지마할(Taj Mahal)이 있는 북인도지역의 우타르프라데시(Uttar Pradesh)에 있다 보니 대체 어디에서 튀어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어요. 그나마 짚이는 곳이 있다면 일본 불교가 스리랑카 불교와도 접점이 있다는 것일까요?
그 다음은 청색 테두리의 검은 원 내의 흰색 번호 원문자항목. 1부터 9까지 9개 항목이 있어요.
1. 헤라트
지명도가 좀 낮기는 하지만,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에서 인구가 3번째로 많은 도시인 헤라트(Herat)는 오아시스에 세워진 도시로 아프가니스탄 서부의 중심이자 와인의 명산지로서 명성이 높았고 이슬람교의 영향을 받은 이후로는 이슬람 과학 및 예술의 중심지로서 번성했어요. 유럽에 이탈리아의 르네상스가 있었다면 남아시아에는 아프가니스탄의 헤라트가 있다고 할 정도의 위대한 문화유산에 빛나는 이 헤라트는 1507년 티무르 제국(Timurid Empire)이 멸망한 이후로 지배세력이 바뀌다가 1747년에 아프가니스탄으로 편입된 이후 비교적 안정되게 유지되어 왔고 2021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Site)으로 지정될 예정이었어요. 그러나 2021년 8월 12일, 아프가니스탄 내부에서 벌어진 탈레반의 여름 대공세에 결국 헤라트는 함락되었고 이 도시의 앞날은 알 수 없게 되었어요.
아프가니스탄은 영국, 소련 및 미국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철수했다는 이유로 제국의 무덤이라고 불리기도 하죠. 헤라트 국제공항(Herat International Airport)에도 그 역사가 반영되어 있어요. 1960년대 미국 주도로 건설된 이 공항은 1980년대에는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아프가니스탄 국내의 항공기지로 사용되었다가 소련군이 철수했고 1995년에는 탈레반이 장악했다 2001년에 탈레반이 축출된 이후에는 미군 특수부대가 그 공항을 다시 장악하여 2002년부터 2005년까지는 국제공항으로 운영했고 2005년 이후로는 미군 및 영국군을 필두로 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제치안지원부대(International Security Assistance Force)가 창설되어 헤라트 국제공항에 이탈리아군이 전진배치되기도 했어요.
2. 발루치스탄
발루치스탄이라는 지명은 당시에도 현재에도 계속 존속하고 있어요. 앞서 밝힌 것처럼 한 세기 전에는 수석판무관관구라는 특별한 지역으로 지정되어 관리된 한편 오늘날에는 파키스탄의 7개 주 중 면적이 가장 넓은 주의 이름으로 존속하고 있어요. 단 기후가 여름은 섭씨 50도(=화씨 122도)를 넘는데다 겨울에는 장소에 따라서는 섭씨 영하 20도(=화씨 영하 4도) 미만이 될 정도로 매우 지독하다 보니 면적은 파키스탄 전체의 40%에 육박하면서도 인구는 파키스탄 전체의 6% 미만에 머물러 있어요.
3. 쿠치 대습원
쿠치 대습원(Great Rann of Kutch)은 지도에서는 하나의 섬같이 묘사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지역으로 면적 7,500평방km 가량의 세계최대의 소금사막이자 위에서 언급된 타르 사막의 인도양방면의 끝에도 해당되는 지역이예요.
이 쿠치 대습원에 대해서는 대표적인 사진이 많긴 한데 여기서는 하나만 소개해 볼께요.
이미지 출처
Great Rann Kutch Photos, FREEPIK 웹사이트, 영어
저 습원에서 조금만 내륙으로 들어가면 낙타가 유일한 교통수단인 사막이 펼쳐지고 있어요.
4. 봄베이
영국령이었던 당시에 봄베이(Bombay)로 통했던 이 도시는 오늘날 지명이 앞에서 언급했듯이 뭄바이(Mumbai)로 개칭되어 있어요. 앞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1918년부터 창궐했던 판데믹인 봄베이열병으로도 잘 알려졌던 이 도시는 현재는 마하라슈트라(Maharashtra)의 주도일 뿐만 아니라 인도 경제의 중심지인 한편 인구 1250만명을 상회하는 인도 최대 인구를 자랑하는 도시로 성장해 있어요. 또한 경제적 위상이라든지 복잡한 해안선 등의 이유가 있다 보니 미국의 뉴욕(New York)과 잘 비견되는 명실상부한 인도의 간판도시이자 남아시아 제일의 도시로 불러도 손색이 없어요. 심지어 역사마저 뉴욕과 꽤 유사하죠. 뉴욕에는 네덜란드인들이 먼저 정주했다가 영국인들이 네덜란드 세력을 축출하고 근거지를 세웠고, 봄베이에는 16세기초 포르투갈의 탐험가가 처음으로 도달한 이래 16세기 후반에는 동인도회사 체제가 확립되어 포르투갈 세력을 밀어내기도 했어요. 봄베이도 뉴욕도 후발주자인 영국이 주도해서 개발했다는 게 꽤 흥미롭게 보여요.
5. 라호르
파키스탄의 도시 중 인구규모로 남부 해안의 카라치(Karachi) 다음으로 큰 내륙지역의 라호르(Lahore)는 펀잡(Punjab) 지방의 최대도시이자 유서깊은 국제도시로서 명성이 높았어요. 또한 파키스탄의 공용어인 우르두어(Urdu Language)보다도 펀잡어가 더 널리 통용되는 펀잡어 구사자 인구 세계최대의 도시라는 특이점도 지니고 있어요. 저 시대에는 파키스탄이 없었다 보니 인도 서부의 도시였지만요.
라호르는 철도교통의 요지로 1924년 당시에도 북인도 지역을 종단하는 철도의 역 소재지로서 번성했을 뿐만 아니라 파키스탄 성립후인 현재에는 파키스탄 북부의 철도교통이 모두 라호르 착발이라고 할 정도로 그 위상이 증대해 있음은 물론 인더스 강을 종단하여 남부의 항구도시이자 파키스탄 최대의 도시인 카라치(Karachi)로도 이어지는 철도도 라호르에서 남서쪽으로 뻗어나가는 등, 역시 파키스탄 경제의 1/9 이상을 담당하는 파키스탄의 경제수도라는 위상이 잘 어울려요. 그러나 모두 핵보유국인 인도-파키스탄-중국 3국간의 영토분쟁으로 1947년 이래로 진행중인 카슈미르분쟁(Kashmir Conflict)의 현장에서 멀지 않다는 점에서 라호르에는 우호적이지 않은 문제도 산적해 있어요.
6. 캘커타
뭄바이와 마찬가지로 캘커타(Calcutta) 또한 오늘날에는 콜카타(Kolkata)로 달라져 있어요.
이 도시는 웨스트벵갈주의 주도인 동시에 최대의 도시로, 벵갈지방의 역사와 문화는 이 도시를 빼놓고는 성립 자체가 되지 않을 정도였어요. 게다가 대영제국 체제 하에서 런던 다음가는 대도시이기도 했으며 18세기부터 20세기 전반의 벵갈 전통문화의 중흥인 벵갈 르네상스의 거점인 동시에 인도 독립운동의 산실이 되기도 했어요. 지금은 동쪽의 인접국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가까운 인도의 대도시인데다 인도산 명품인 홍차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인도차이사회(Tea Board of India)의 본부소재지로도 잘 알려져 있어요.
또한 캘커타는 세계최초로 사진관이 개업한 곳이기로 해요. 1863년에 개업한 사진관인 본 & 셰퍼드(Bourne & Shepherd)는 1991년의 대화재를 겪은 이후 경영난에 시달려 2016년에 폐업하기는 했지만 인도의 근대사의 여러 장면을 사진으로 담아낸 공이 있어요.
여담으로서 위의 두 사례와 달리 신구지명의 발음이 완전히 다른 경우도 있어요. 1세기 전에 마드라스(Madras)라는 이름으로도 더 많이 통용되었던 도시가 현대에는 첸나이(Chennai)라는 완전히 다른 이름으로 통용되는 꽤 극단적인 사례도 있어요. 오히려 더 전통있는 이름은 마드라스로 이것의 기록은 13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반면, 첸나이의 유래는 인도 남부에 세워졌던 비제이아나가라 제국(Vijayanagara Empire, 1336-1646) 후기의 지방관이었던 다르말라 첸나파 나야카(Damarla Chennapa Nayaka, 1585-1614)의 이름이다 보니 역사가 더 짧아요.
7. 마찰리파트남
인도 남동부지역인 안드라프라데시(Andhra Pradesh) 주의 항구도시인 마찰리파트남(Machilipatnam)은 마술리파트남(Masulipatnam) 또는 반다르(Bandar)라는 지명으로 통하고 있어요. 지도에 표기된 일본어표기인 마술리탄(マスリータン)은 마술리파트남을 음차한 것으로 보여요.
인도의 많은 도시 중 이 도시는 동북아시아에서는 지명도가 낮기는 하지만 사실 국제관계사에서 매우 중요한 도시로 기록되어 있어요. 지역의 언어인 텔루구어로 생선의 도시라는 의미를 가진 이 어업도시는 16세기에 유럽인 정착촌이 세워진 이래 17세기부터 포르투갈, 영국, 네덜란드 및 프랑스와의 무역거점으로 번성했어요.
8. 포크 해협
인도의 타밀나두(Tamil Nadu)와 스리랑카의 자프나(Jaffna) 사이를 잇는 포크 해협(Palk Strait)은 폭 64-137km(40-85마일) 및 길이 137km(85마일)의 큰 해협이자 남단과 북단의 파도 패턴이 완전히 다른 매우 독특한 해협으로 잘 알려져 있어요. 이름의 유래는 동인도회사체제 당시 1755년부터 1773년까지 마드라스 주지사로 근무했던 로버트 포크 경(Sir Robert Palk, 1717-1798). 저 해협에 있는 인도 방면의 라메스와람 섬(Rameswaram)과 인도 본토는 1914년에 바다 한가운데를 건너는 철도교량인 팜반철교(Pamban Bridge)가 개통되었어요.
이미지 출처
The fascinating Pamban Bridge, and the holy town of Rameshwaram, 2019년 9월 9일 timestravel 기사, 영어
바다 한가운데에 놓인 이 철교 위로 열차가 달리는 환상적인 풍경은 이미 이 지도의 제작 당시에 구현된 것이었고 이미지 출처의 기사가 발행된 당시에도 저렇게 이용되었지만, 구조재의 부식이 심각해서 2022년에 열차운행이 종료되었어요. 포크 해협 전체를 횡단가능하여 인도와 스리랑카를 해운 없이 이을 수 있도록 해저터널이나 연륙교가 제안되고는 있지만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직 없어요.
9. 벵갈 만
벵갈 만(Bay of Bengal)은 인도 동부의 해역을 가리키는 지명으로 인도양의 북동부에 속하고 "벵갈" 은 "벵골" 로도 표기되어요. 여기에서는 지도 원문의 표기에 따른 "벵갈" 을 우선시했어요.
벵갈 만은 세계최대의 만이자 영국령 인도제국 시대에는 사실상의 영국의 내해(内海)나 다름없었어요. 단 동부에는 네덜란드령인 수마트라가 있었지만요. 오늘날에는 이 바다는 인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미얀마, 태국 및 인도네시아와 접해 있고 미접촉부족이 사는 것으로 알려진 이외에는 내부사정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노스 센티넬 아일랜드(North Sentinel Island)가 속한 안다만-니코바르 제도(Andaman and Nicobar Islands) 또한 이 바다에 속해 있어요.
안다만-니코바르 제도와 말레이반도로 둘러싸인 바다이자 벵갈 만의 일부를 구성하는 안다만해(Andaman Sea)에 대해 추가해 볼께요.
1987년 11월 29일에 일어난 대한항공 KE858 폭파사건. 등록번호 HL7406인 보잉 707 여객기로 운항되던 바그다드(Baghdad)-서울 정기항공편인 KE858은 북한의 공작원 김승일(金勝一, 1987년 사망) 및 김현희(金賢姫, 1962년생)이 기내의 화물구획에 반입한 폭탄에 폭발하고 그 공작원들은 항공기의 1차경유지인 아부다비(Abu Dhabi) 국제공항에서 내렸어요. 그 여객기는 결국 안다만해 상공에서 폭파되어 2차경유지인 태국 돈므앙(Don Mueang) 국제공항에 착륙하지 못했고 승객 104명 및 승무원 11명이 모두 희생되었어요.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이 북한을 1988년부터 테러지원국(State Sponsor of Terrorism)으로 지정했어요. 그 테러지원국 지위는 2008년에 일시해제되기는 했지만 2017년에 말레이시아에서 일어난 김정남(金正男, 1971-2017) 암살사건으로 인해 북한이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되었어요.
이렇게 인도 중심의 남아시아편을 완성했어요.
그러면 다음은 북서쪽에 있는 중동으로 가 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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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인도제국은 일전에 언급했던 셜록 홈즈 시리즈의 시대 배경(빅토리아 시대) 특성상 시리즈 전체에 걸쳐 언급되죠. 그 중에서도 일전에 언급했던 "네 사람의 서명"은 과거편의 배경 자체가 세포이 항쟁이 막 벌어졌던 시점이라 당사자(?)의 입장에서 진행되는데, 백인이지만 지배 계급은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한 선인도 아닌 묘한 입장의 캐릭터입니다. 작가 코난 도일이 (당시 기준으로) 개방적인 가치관을 지녔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닌가 싶어요. "네 사람의 서명"은 (중학교 벼룩시장에서 산 이후로) 지금도 소장하고 있으니만큼 나중에 대강당에서 본격적으로 소개해볼까 합니다. 그 외에 시리즈 전반적으로 인도와 관련된 자잘한 언급이 종종 나옵니다.
다음은 항목별 감상.
A. 거리와 코스만 해도 정말 대장정이군요. 이걸 보고 찰스 린드버그가 생각나서 검색해봤더니 그의 대서양 횡단 비행은 7년 뒤(1927년 5월 21~22일)였네요. 린드버그는 바다 위를 날았고 페라린은 여러 도시를 거치는 대신 장거리로 날긴 했지만 둘 다 우열을 따질 수 없을 만큼 항공사(史)에서 중요한 업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나저나 린드버그와 다르게 흑해와 카스피해를 거치는 최단거리가 아니라 여러 도시를 거쳤네요. 그러면 기록 수립보다는 항로 조사와 도시간 교류 조성 혹은 퍼포먼스(?)가 목적이었을까요?
B. 일본에 영향을 끼칠 정도라 지도에 수록됐나 보네요. 시신이 강을 막는다는 말은 만화 "창천항로"에서 서주대학살을 묘사할 때 본 게 전부인데, 현실에서 그럴 정도라... 얼마나 참혹했을지 바로 상상이 됩니다.
C. 보통 스콜만을 다루면 급작스럽다거나 당황스럽다는 식으로 다소 부정적인 서술이 많은데, '소생할 것 같다'라고 하니 마치 겪어보고 지도에 써넣은 듯한 느낌이 나네요.
D. 뱃사람으로서 단조로운 풍경은 감수해야겠지만, 바람이 불지 않는다는 건 뱃사람으로서는 정말 미쳐버릴 거에요.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아는데 발이 묶여서 서서히 식량만 축내는 상황이라니... 게다가 바다 위의 배라는 환경 자체가 '무슨 일이 일어나도 도망갈 수 없는' 입장이라 규율이 엄정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당장 콜럼버스만 해도 선상 반란을 걱정하며 선원들을 속여가면서 아메리카에 도착했으니까요. 그래서 일본어 원문을 직독직해하진 못하겠지만 '아랫사람들이 미쳐버리면 관리자들이 멀쩡해도 수적으로 열세인데 별 수 있을까?'라는 의도가 느껴지네요.
F. 외양은 화려하지 않을지언정 자연물인 돌을 깎아서 저렇게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고 신비롭네요. 게다가 사진을 보아하니 절벽 같아서 그 노고가 더욱 느껴지고요. 만들려면 얼마든지 시내에 만들 수 있었겠지만 허례허식이나 오해를 낳을 수 있는 문자 기반의 가르침과 거리를 두려고 한 게 아닐까 싶어요. 옛날 가톨릭계 수도원들이 대체로 산간벽지에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라고 알거든요. 동서양 할 것 없이 통하는 건 있나 봅니다.
참고로 부탄이었나 네팔이었나는 비정상회담에서 말하길 '여행객 본인이 혼자 둘러보려면 돈이 제법 들지만 현지인을 대동하면 파격적 할인'이라고 소개해서 벙쪘던 기억이 나네요.
G. 먼나라 이웃나라 영국편에 영국인들이 차에 우유를 타서 마시는 걸 보고 중국인이 "저거 차가 아니라 뜨물이다 해!"하면서 경악하던 컷이 나와서 지금도 기억나는데, 영국 본토에서만 그렇고 인도에서는 그렇지 않아서인지 지도에는 별다른 언급이 없네요.
I. 대중화 혹은 상용화의 영향력은 절대 무시하지 못하죠. 오늘날의 전기차도 아무리 친환경이니 뭐니 하고 좋은 얘기는 하지만 이런저런 단점 때문에 엄밀한 의미의 대중화는 안 되고 있으니... 소분판매라는 건 오늘날의 티팩 정도로 소량으로 포장하되 원하는 만큼 사갈 수 있는 구조를 말하는 건가요?
석가모니와 실론 섬(오늘날의 스리랑카)의 관계는 검색해보니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스리랑카에 세 번 들렀다거나, 소승 불교의 중심지라거나, 인도에서 맥이 끊긴 보리수나무를 옮겨와서 계속 키우고 있다거나 하는 식으로 '현대 불교의 중심지는 스리랑카다' 하는 이야기가 많네요. 이 지도가 제작된 당시에도 그랬을지는 모르겠지만 영향은 있지 않을까 싶어요. 더 찾아보니까 인도 불교는 훈족의 침공이나 이슬람 때문에 점점 쇠퇴했다고 하고, 영국령 시절에는 뭘 알지도 못하는 영국인들이 자기들의 행정적 편의를 위해 멋대로 신분증에 종교를 기입해서 차별을 부추겼으니(by 조승연), 사실과 관계없이 스리랑카가 더더욱 부각되는 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네요.
지형 항목에 대한 감상은 나중에 쓰겠습니다.
마드리갈
2024-06-09 18:06:15
이번에도 자세한 코멘트를 해 주신 점에 깊이 감사드려요.
우리나라에서 여러 나라들을 묘사할 때에 여러 수식어를 쓰는데, 일본에 대해서는 흔히 "가깝고도 먼 나라" 라는 표현이 쓰이죠. 이것들을 인도에 적용하자면 "멀고도 먼 나라" 일까요? 그 정도로 인도에 대해서는 그렇게 많이 알지 못하고, 인도의 문물이 낯설 수밖에 없겠죠. 그나마 잘 알려진 인도의 문물이면 불교와 카레지만 불교는 이미 이슬람제국이었던 무굴제국 치하의 인도에서 박멸되어 버렸고 카레도 사실 인도 정통의 카레라기보다는 영국에서 변형된 것이 일본에서 또 일본화를 거친 끝에 들어온 것이라서 인도 본래의 것과는 크게 달라져 있고 그렇죠. 게다가 홍차는 일단 국내에서 홍차 자체가 매우 마이너한 음료이다 보니 인도의 홍차를 특별히 관심갖고 보는 것도 국내에서는 매우 드물고 그렇죠.
페라린의 모험 당시 카스피해 연안은 소련이 성립된지도 얼마 안되어서 정국이 매우 불안했어요. 게다가 이탈리아는 제1차 세계대전의 전승국이고 소련은 패전국이 된 그 제정러시아를 타도한 뒤에 혼란기를 거쳐 설립된 국가이다 보니 이탈리아의 군인이 비행기를 몰고 갈 수 있는 곳도 아니었는데다 인구과소지여서 너무 위험했거든요. 그래서 카스피해 루트는 선택할 수 없었는데다 그 루트를 선택한다고 한들 그 앞에는 중국 및 몽골의 험난한 사막이 기다리고 있으니 너무 위험했어요. 사실 저렇게 가는 이외에는 당시에는 선택 자체가 불가능했어요.
인도 각지의 장례식은 강변에서 화장(火葬)하는 게 일반적인데, 사실 오늘날이라고 해서 제대로 화장된다는 보장은 없어서 덜 탄 시신이 강 위를 떠다니다가 가라앉고 하는 일이 흔하죠. 판데믹 상황에서는 그렇게 연료를 구할 수도 없어서 그냥 시신을 강물에 떠내려보냈을 것이고 그 결과는...참 끔찍하죠. 시산혈해(屍山血海)라는 그 고사성어가 불과 한 세기 전의 인도에서도 있었고 유일하게 인구가 전년대비 감소했을 정도라니...
인도양의 무풍지대가 워낙 악명높다 보니 별별 일이 다 일어나는 것이고, 그러니 상식에 맞지 않는 일도 저렇게 일어날 수 있나 봐요. 사실 저 당시 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방법은 싱가포르를 거쳐 가는 남회항로 해운 아니면 시베리아철도밖에 없었는데 시베리아철도는 제정러시아-소련 과도기의 문제로 사실상 이용할 수 없었으니 저 진술은 경험담에 근거했을 가능성이 높아요.
아잔타 석굴의 경이로움은 정말 놀랍죠. 그리고 그 이면에, 비록 소액이긴 하지만 외국인들에게 사실상 바가지를 씌우듯이 입장료를 올려받는 행태가 참 고약하기 그지없어요. 죠죠의 기묘한 모험 3부에 나오는 카라치의 케밥장수 스틸리 댄과 죠죠 일행의 리더 죠셉 죠스타의 흥정이 결코 허구의 영역이 아니라는 게 실감나고 있어요. 게다가 지도의 발행시기인 1924년 당시에는 파키스탄이 없었으니 카라치는 인도제국의 강역이었으니까요.
차를 마시는 방법에는 사실 정답은 없어요. 온수에 우려내기만 하는 방법도 있고 감미료를 넣을 수도 있고 우유를 넣은 밀크티도 있고 우유에 끓여서 소금간을 하는 수테차도 있고 온갖 향신료를 넣는 마살라 짜이같은 것도 있고 자기가 알맞은 방법으로 즐기면 되는 거죠. 최근에는 중국 기문홍차(祁門紅茶, Keemun Black Tea)로 만든 트와이닝스 프린스 오브 웨일즈(TWININGS Prince of Wales) 홍차로 밀크티를 만들어 봤는데 정말 감탄해서 역시 왕자의 품격이 있다는 것을 실감했으니까요. 하지만 짜이는 향신료 향이 너무 진하고 독해서 못 마셔요. 그런다고 짜이를 비하할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요.
사실 인도의 차문화는 그렇게 길지 않았어요. 인도에도 자생 차나무는 있지만 그건 음료로서라기보다는 약재로서 이용되었고 유럽인들은 그 사실을 모른 채 차나무가 중국에만 있고 중국에서만 재배되는 것인 줄 알다가 19세기 전반에 반례를 인도 각지에서 찾아내면서 인도를 비롯한 영국령의 열대지방 식민지에서 차 플랜테이션을 개척하기 시작하면서 그 영국인들의 차문화가 현지인들에게도 영향을 끼친 것이라고 봐야겠어요.
사실 립톤의 그 혁신은 티백까지는 이르지 못했어요. 티백은 1903년에 미국인 발명가가 창안해 내고, 립톤은 차나 커피가 큰 자루 단위로 거래되는 기존의 비즈니스모델 대신 1파운드, 1/2파운드 및 1/4파운드의 3종류의 포장 차엽을 팔기 시작해서 가정에서도 소량구매해서 바로 준비할 수 있게 한 정도였어요. 참고로 지금도 커피의 거래단위는 60kg 포대 단위가 통용되고 있어요.
스리랑카 불교에 대해서는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불교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는 저도 이상하게 여겼는데...
Lester
2024-06-09 13:54:58
다음은 지역 항목에 대한 감상.
1. 현재 구글 지도에서 봐도 강을 끼고 있어 이란 및 투르크메니스탄과 국경을 맞닿고 있어 여러모로 교역과 문화의 중심지로 보이는데... 탈레반 같은 악당들이 활개치면 문화고 뭐고 없다는 게 안타깝네요. 특히나 탈레반은 이미 바미안 주에 있는 바미안 석불을 '우상숭배 금지'라는 이유로 파괴했으니 더더욱 걱정됩니다. 정작 그래놓고 다른 불교 관광지에서는 (활동자금 마련에 용이하니까) 입장료를 받기 시작했다니 가관이죠. 그 이슬람식 채권이라는 수쿠크도 그런 편법이라는데 대체 뭐하자는 건가 싶네요. 같은 아브라함 계통 종교인 가톨릭도 과거 물욕을 경계했으면서 면죄부를 판 전적이 있다보니, 역시 뿌리가 같아서 공통점이 있나 봅니다.
3. 소금사막인데 물이 있는 걸 보니 뭔가 우유니 호수 느낌이 난다 싶었는데, 그 우유니 호수의 정식 명칭도 우유니 '(소금)사막'이었네요. 아마 직접 탐사가 아니라 비행기에서 본 경험을 토대로 지도를 그렸기에 습지로 그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해변가로 착각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거든요.
4. 인터넷에서 세계사 정보글을 유머 풍으로 작성할 때 유니언 잭 아래에 '원래 세계사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을 때 이 X끼를 찍으면 대충 맞는다. 역시나 이번 이야기도 세계 만악의 근원에서 출발한다.'라는 문구를 붙인 사진을 넣는 게 거의 밈이 됐을 정도(예시)로, 영국이 세계에 끼친 영향을 여러모로 많으니까요.
그리고 봄베이는 봄베이 혈액형으로도 유명하죠. 저는 김전일 시리즈에서만 잠깐 봐서 대충 '희귀 혈액형 중에 하나'라고만 알고 있지만요.
5. 라호르 역시 1번의 헤라트처럼 철도교통의 중심지이건만 분란 때문에 제 구실을 못하는 게 안타깝네요. 그나저나 절반이 산간지역이라 힘들겠지만 우리나라도 이런 식으로 철도의 중심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딱 경기 남부나 전북이 기차의 환승중심지처럼 되면 좋을 것 같은데 말이죠. 어디까지나 상상이지만요.
6. 캘커타 역시 인도에서 엄청 유명한 도시죠. 저한테는 개그콘서트에서 전설의 코너였던 '갈갈이 삼형제'의 테마송인 Dr. Bombay의 Calcutta로 더 기억에 남았지만요. 노래 맨 처음의 cali cali cutta가 대충 '갈갈아 먹자'로 들리는 데에 착안해서 유명해지지 않았나 싶어요. 덧붙여 가수 이름은 닥터 봄베이라고는 하지만 본명은 조니 야콥센(Jonny Jakobsen)이라는 스웨덴 사람이라고 하네요.
7. 과연 국제관계사에서 중요한 교역도시라 그런지, (발음 문제로 인해 마찰리파트남으로는 별다른 검색 결과가 없지만) 마실리파트남이라는 이름으로 대항해시대 오리진 사이트에 등록되어 있네요. 해본 적은 없지만 대항해시대로 세계 각지의 도시를 달달 외거나 세계사에 입문한 사람들이 제법 된다는데, 동기야 어쨌든 그렇게 무언가에 빠지는 건 좋다고 생각해요.
8. 팜반 철교 길이를 검색해 보니까 2.065km라고 하는데 생각보다 상당한 길이네요. 어쩌면 만화 "원피스" 중 워터 세븐 편에 나오는 나오는 바다열차의 모티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역시 바다 위니까 파도에 의한 침식 및 부식은 어쩔 수 없겠네요. 만화니까 가능한 거였을지도... 테트라포드 같은 걸로 하면 안정성이나 내구도도 상당하겠지만 어느 천년에 완공할지, 그리고 그럴 메리트가 있을지 막막하네요.
한편 검색해 보니까 우리나라 동해안에도 바다열차가 있었네요. 노후화된 열차를 활용해 바다 옆을 달리는 구조라서 큰 문제는 없었지만, 신차 도입을 두고 의견이 갈려서 작년(2023년) 11월에 운행을 종료했다고 합니다. 사진을 보니 확실히 이런저런 로망을 충족시켜줄 수 있을 것 같지만, 역시 비용의 문제는 쉽지가 않네요.
9. 벵갈 만 자체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지만, 상술한 셜록 홈즈 시리즈 중 두 번째 장편인 "네 사람의 서명"과 다른 단편들에 말씀하신 지명이 거의 전부 나옵니다. 벵갈호랑이는 무섭다든가, 수마트라의 큰 쥐라든가. 후자인 '수마르타의 큰 쥐' 같은 경우에는 앞뒤 맥락 없이 대뜸 언급하고 '그런 사건이 있었다' 정도로만 넘어가기 때문에 셜로키언 및 홈지언(홈즈 애호가를 가리키는 미국식 및 영국식 명칭)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네요. 그리고 "네 사람의 서명"의 빌런이 과거에 복역했던 지역이 바로 안다만 해입니다. 여기서 작중 모든 사건의 단초가 되는 일을 겪죠. 자세한 것은 대강당에서 소개하겠습니다.
마드리갈
2024-06-09 18:33:54
남아시아의 여러 도시는 경이로운 역사를 담고 있는데 상당수가 갈 수 없거나 설령 갈 수 있더라도 매우 위험해서 사실상 도항금지상태인 경우가 많죠. 헤라트는 이미 탈레반의 수중에 떨어진지 오래인데다 라호르는 외지인에 극단적으로 배타적이라서 매우 위험한데다 잠무카슈미르 문제는 이미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할 이래로 전혀 해결되지 않은 채로 존속중인 문제니까 방법이 없어요.
사실 사막이라고 해서 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죠. 애초에 사막이라는 것은 연강수량 개념으로 정의되는 것이라서 지형이 어떻든간에 그건 상관없고, 그 정의에 따라 세계최대의 사막은 남극대륙이 되는 것이지만...
당시의 측량기술에 한계가 있으니까 섬이 아닌 지역을 섬으로 묘사한다든지 하는 것은 꽤 있어요. 마미야 린조가 사할린이 섬이라는 것을 최초로 확인했다든지, 캘리포니아반도가 섬이 아니라는 것이 실측결과로 알려진 등. 게다가 저 당시는 항공측량도 태동기라서 한계가 있었어요.
역시 흉악한 건 영국이 관여해 있다는 게 잘 보여요. 그리고 상당 부분 사실이고.
그리고, 영국식으로 불리는 지명이 오늘날에는 현지언어의 표기로 바뀐 사례가 많다 보니 그런 것도 대조를 해줘야 하죠. 그리고 이것을 역으로 추적하면 문헌의 발행시기 추정에 공헌할 수 있기도 해요. 캘커타 하면 생각나는 문화컨텐츠 하면 소개해 주신 그 캘커타라는 노래 이외에도 뮤지컬 오 캘커타(Oh! Calcutta!)도 있긴 해요.
저녁식사 준비를 위해서 일단 여기까지 쓰고 코멘트는 추후에 이어나갈께요.
마드리갈
2024-06-11 19:11:52
이어서 코멘트할께요.
역시 게임 등의 여러 컨텐츠를 통해서 세계를 배우는 일이 있죠. 저도 대항해시대 게임은 해 본 적은 없지만, 적어도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로 중국의 지명 및 지리를 자세하게 알게 된 것은 있어요. 역시 지명이라는 것도 상대적인 것이, 누가 누구의 관점으로 기록하는가에 따라 여러모로 달라지고 그렇죠. 예의 마찰리파트남 또한 그럴 거예요.
바다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그 팜반철교가 20세기초에 완공되어 저 지도의 출판시점에서는 이미 운영중이었다는 것이 경이롭죠. 원피스를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묘사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관련이 전혀 없지는 않을 거예요.
저 시대의 건축물은 금속의 물리적 피로나 이온화경향 등에 대한 이해가 그리 철저하지 않았는데다 해수의 흐름 등에 대한 대책도 지금만큼은 아니니 한계가 있었을 거예요. 테트라포드 등으로 쌓기에는 비용의 문제로 바로 가로막히고...그렇죠. 비용의 문제는 매우 큰 것이죠.
대안으로서 제안되는 게 해저터널이고 이게 가장 좋기는 한데, 문제는 건설주체. 현재 인도의 기술력과 현장노무관리 수준으로는 기대할 수 없어요. 터널굴착에 독보적인 기술력과 실적을 지닌 일본과 스위스, 연약지반 대처기술이 뛰어난 네덜란드와 싱가포르 등이 참여하는 국제컨소시엄이라야 해결가능한데 인도의 해당지역의 주정부가 얼마나 열의를 가질지가 문제거든요. 연방정부가 의욕을 지녀도 주정부간의 마찰로 사업이 늘어지거나 엎어지는 경우가 횡행하다 보니 이것도 관건이죠.
셜록 홈즈 시리즈의 네 사람의 서명에 안다만해가 나오는군요. 그것도 작중 빌런의 복역지역으로...
앞으로 쓰실 글에 대해 기대가 많이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