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리즈를 처음 쓰게 되는군요. 다른 작품을 연재할 때도 그랬지만 연재처에 쓰기 이전에 먼저 공개되는 것이라서 오탈자가 조금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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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도착할 역은...”
지하철의 좌석 한가운데, 모자를 눌러쓴 한 남자가 앉아 있다. 그는 때때로 사람들의 시선을 살피며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다. 일견 온화해 보이는 얼굴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차가워 보이는 눈빛은 피하고 싶을 만큼 강렬하다. 그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곳, 그것도 손에 꼽히는 거대도시지만, 그럼에도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벽이 그에게 보이는 듯하다. 그 벽 너머 그의 시선은 매우 불안정하다.
[이곳에 내려라, 마리우스.]
알 수 없는 목소리가 그의 머릿속에 울린다. 거기에다가 한 번 들린 목소리도 아니고, 여러 번 들린 목소리다. 들으면 거부감이 들지만 절대로 거부할 수 없는 목소리. 익숙하지만 그게 누구인지, 지금으로서는 도무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들리고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의식이 점점 몽롱해진다.
잠시 후, 그 남자가 지하철에서 내려서 역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CCTV에 보인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남자가 그 마리우스라고 불린 문제의 남자를 따라 계단을 올라간다. 계단을 올라가는 길에, 그 모자를 쓰고 후드티를 입은 남자는 누군가와 통화를 한다.
“왜 나보고 저 사람을 쫓아가라는 건데?”
“야, 리암, 그야 이유가 다 있으니까. 괜히 너한테 부탁한 게 아니라니까?”
“알았으니까, 이따가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리암이라고 불린 그 남자는 귀찮았는지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는다. 하지만 그는 곧이어 무슨 사명감에 취하기라도 한 것처럼, 의욕적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한편 마리우스라고 불린 남자와 리암이라고 불린 남자가 움직이는 걸 지켜보던 누군가가, 은밀히 뭔가를 말하기 시작한다. 지하철역 출구 즈음에서 ‘설문조사’라고 큼지막하게 써 놓은 피켓 아래에 앉아서 있던 사람인데, 가판대 앞에 놓인 ‘소비자만족’이라는 제목의 설문지와는 다른 내용이다.
“네, 지역장님, 예의 그 ‘섭리의 수행자’가 가까이 온 모양입니다. ‘자매님’과는 계속 연락하겠습니다.”
그렇게 자기 시계에 대고 알 수 없는 말을 한 그 남자는, 이윽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태연히 설문조사를 하는 척한다. 두 눈은 계속 다른 곳을 두리번거리면서 말이다.
그리고 또 한 명, 이 분위기와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긴 봉에 자기 폰을 얹고 한참 촬영에 몰두 중인, 마치 누군가 억지로 배경에 그려 넣은 사람 같이 보이는 여자도 한 명 보인다. 그 여자는 마리우스가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을 포착하자마자, 바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자, 갑니다, 갑니다! 특종! 특종!”
이상한 말을 마치 다들 들으라는 듯 외치면서 말이다.
한편, 바로 그 시간.
“에이, 오늘은 일찍 돌아가야겠네.”
미린중학교의 하교 시간. 동아리 활동을 제외하고는 다들 학교에서 나와서 제각기 갈 길을 갈 시간이다. 하지만 지금 교문 앞에 서 있는, 짙은 갈색 머리의 남학생 ‘예담’은 자신에게 방금 온 메시지를 받고 툴툴거리고 있다.
“왜 일찍 돌아가냐? 너 동아리 하지 않았어?”
같은 반의 여학생이 말을 건다.
“에이, 한나, 오늘 동아리 다 쉰다더라.”
“아니, 왜?”
한나라고 불린 그 여학생이 되묻자 예담은 이죽댄다.
“난들 아냐? 내가 아는 건 그냥 매니저 선배님이 보낸 메시지인데. 갑자기 오늘 도서부 활동 취소하고, 매니저들끼리 회의 한대.”
“그래? 왜 갑자기 취소한대? 하긴, 너 도서부였지. 왠지, 오늘 동아리 할 애들이 안 하고 그냥 나온다 했어.”
그렇게 말하고 보니, 지금쯤 다른 동아리에 있어야 할 동급생들과 후배들도 보인다. 다들 실망 섞인 표정이다. 그리고 조금 더 걸어가다 보니, 어딘가에서 둘에게 좀 익숙한 선배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 너희도 그 이야기 하고 있었냐?”
딱 보니 머리를 양옆으로 묶은 미린고등학교 여학생 한 명이 미린고등학교 정문에서부터 걸어오고 있다. 예담과 한나 역시 잘 안다.
“그래,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니까. 지금 당장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저기, 아멜리 선배님, 혹시 알고 있었어요?”
“아, 당연하지! 내가 총학생회장씩이나 되는데 그런 것도 모를 리가 없잖아!”
아멜리라고 불린 미린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여학생은 바로 말한다.
“그런데 나도 조금 전에 알게 된 거야. 워낙에 갑자기 듣게 된 소식이라.”
“아니, 뭐길래 그래요?”
예담와 한나가 아멜리의 입에서 나올 말에 막 관심을 기울이려는데, 또 누군가가 예담, 한나, 아멜리가 모여 있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온다. 예담이 그쪽을 돌아보니, 그림이 그려진 셔츠를 입고 검은 백팩을 맨 20대 초반 정도의 갈색 머리의 남자 한 명이 서 있는데, 아마도 미린대 학생일 것이다.
“응? 서언 선배님이세요? 여기는 어떻게 알고 왔어요?”
아멜리의 말에, 서언이라고 불린 그 남자는 아멜리를 아는 듯, 바로 아는 척을 하며 말을 건다.
“그러는 너희야말로. 내가 묻고 싶은 말이거든.”
예담 역시도 서언을 몇 번 본 적은 있다. 그냥 지나가다 몇 번 본 정도지만. 대학생일 거라고 짐작은 했는데, 아멜리의 말을 들으니 역시나 맞는 것 같다.
“다들 여기 있었네!”
“어... 메이링 씨... 아니, 변호사님! 여기 왜 직접 왔어요? 분명히 아까는 앨런 씨가 와 본다고 하지 않았어요? 바쁠 텐데...”
그리고 서언은 메이링을 잘 아는 것 같다. 메이링은 서언의 말에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며 말한다.
“걱정되어서 직접 왔지! 초능력자가 아니면 걱정할 필요는 없다지만, 그 초능력자라는 사람이 워낙에 위험한 능력자라고 파악되어서 말이야.”
아멜리는 옆에 있는 메이링이라고 불린 여자가 자신의 옆에 밀착해 서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는지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친다.
예담은 메이링이 변호사일 뿐만 아니라 초능력자를 연구하는 VP재단과도 연줄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메이링도 초능력자였을 줄은 미처 몰랐다. 그런데 한나를 돌아보자, 한나는 ‘눈치가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은근히 입꼬리가 올라간다.
“에이, 몰랐을 수도 있지!”
그게 무슨 능력인지 짐작은 하지만, 지금까지 직접 겪지는 않아서 그런지 예담은 아직도 어색하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무려’ 변호사씩이나 되는 메이링이 왜 여기까지 직접 ‘행차’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무슨 초능력자요?”
예담뿐만 아니라, 한나와 아멜리 역시 메이링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메이링의 입에서 나올 말을 기다린다. 메이링이 손짓하자, 다들 가까이 와서 메이링이 하려는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자, 잘 들으라고! 이런 사람이 지금 이쪽으로 오고 있어. 그것도 이 동네를 노리고 있을 가능성이 꽤 크지.”
메이링이 거기 모인 예담과 다른 사람들에게 사진 하나를 띄워서 보여준다. 사진의 주인공은 일견 온화해 보이는 30대 정도 되는 남자다. 어디에서나 볼 법한 그런 인상인데, 얼른 봐서는 누군가를 해치거나 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아니... 하필이면 왜 여기죠?”
“그야... 누가 여기에 초능력자들을 많이 만들고 다닌 탓이지!”
“에이...”
메이링이 그렇게 말하자마자, 서언은 마치 원망이라도 하듯 한숨을 푹 내쉰다.
“어떤 녀석인지, 똥을 많이 싸 놨지, 참.”
예담과 한나가, 서언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메이링은 서언의 말에 동의라도 하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한마디 툭 던진다.
“그래. 정말 고약한 녀석이었지, 아마? 하지만 그건 그거고, 지금 닥친 일은 헤쳐나가야지.”
“네...”
예담은 지금 메이링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아직은 파악하기 어렵지만,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 확실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학교 맞은편 소공원 벤치에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 한 명이 주위를 돌아보며 끊임없이 무전을 하고 있는 게 보인다.
“아, 저 사람은 걱정 안 해도 돼. VP재단 요원이거든.”
“어... 정말요?”
그리고, 그 정장 입은 남자의 가까이에, 미린초등학교에서 나오는 몇 명의 초등학생들이 보인다. 다들 지금의 이 상황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자기들끼리 재잘거리는 게 멀리서도 무슨 대화를 하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 저 애들...”
예담에게 익숙한 얼굴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의 이름은 예담도 바로 댈 수 있다. 검은색과 빨간색이 섞인 캡을 마치 쓴 듯 안 쓴 듯 비스듬하게 쓰고, 검은색 바탕에 진분홍색 무늬가 그려진 셔츠를 입고, 금발의 긴 머리의, 키가 예담과 거의 같은 남자 초등학생이다.
“어!”
예담이 바로 이름을 말하려는데, 메이링 역시 바로 손짓하며 말한다.
“거기, 너희들! 너희들도 이리로 좀 와 봐!”
“어? 저요?”
예담이 바로 얼굴을 보고 안 그 문제의 주인공을 포함한 초등학생들이 이쪽으로 온다. 예담이 딱 보니, 너무나도 태평해 보이는 얼굴이 지금의 분위기와는 전혀 맞지 않는다. 누가 보면 ‘다른 세계에 관광을 다녀온 사람들’ 같이 보이기도 할 것이다. 메이링이 그 문제의 주인공을 보고 말한다.
“민이 너, 왜 그렇게 태평해?”
“엥? 그게 무슨 말이죠?”
민이라고 불린 그 초등학생은 오히려 메이링에게 되묻는다.
“저희는 그냥 친구들끼리 이야기하는 건데요. 잘 알잖아요?”
민의 그 말에, 예담은 ‘역시나’라고 조그맣게 중얼거리고 말한다.
“야, 민아, 너 또 시작이냐? 뭐 그렇게 까칠해?”
“아니, 예담이 형! 나는 일부러 그렇게 말한 게 아니라고! 알잖아!”
“어... 그런데 내가 듣기에는 그렇게 들리거든.”
한나 역시, 예담의 말에 동의한다. 그러자 민은 금세 안 그랬다는 듯 표정을 바꾸고는, 다시 메이링을 보고 말한다.
“그런데...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나요?”
“하, 하하하! 나는 또 네가 그렇게 대답하길래 뭐라도 있는 줄 알았지!”
“무슨 일 있어요?”
민의 그 말에, 메이링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안 그래도 말해주려던 참이야. 위험한 사람이 나타났고, 바로 여기로 오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말이지.”
“에이- 또 귀찮게 누구야.”
민의 입에서 바로 그 말이 나오자, 메이링은 마치 ‘딱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이거, 그렇게 가볍게 넘길 게 아닌데. 너희들 목숨이 몇 개씩 되고 이런 거 아니잖아. 그리고, 그냥 아무 능력도 없는 사람들보다 너 같은 사람들이 더 위험해!”
“그런 사람 정도, 그냥 쫓아서 보내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니까 그렇지! 지금은 상황이 워낙 급하니까 우선은 다들 돌아가고, 무슨 일 있으면 내가 또 연락할게. 알겠지?”
메이링의 그 말에, 다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헤어진다.
“아니, 그 이상한 사람이 여기는 도대체 왜 온다고?”
“그러게. 여기 뭐 큰 거라도 있나...”
그 자리를 뜬 예담과 한나가 서로 한 마디씩 주고받는데, 갑자기 물건을 가득 실은 자전거 한 대가 예담의 앞으로 끼어 들어온다.
“어... 어?”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4-08-01 18:17:33
새 시리즈의 출범을 축하드려요!!
이전작의 배경인 미린중학교는 물론 이전작의 캐릭터인 미린고등학교 학생인 아멜리라든지 변호사 메이링이라든지 초등학생인 민 등도 나오는데, 단편에 등장했던 그 문제의 마리우스도 나오네요. 분명 대사건이 될 것같은 불길한 예감이 아주 짙게 나타나네요.
역시 이 세계라도 지하철도 있고 자전거가 사용되고 있고, 역시 문명은 발달해도 반드시 기존의 것을 대체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건 아니라는 게 잘 보이네요.
시어하트어택
2024-08-04 23:04:44
우선 감사드립니다. 배경도 그대로고 등장인물도 많이 가져오다 보니 겹치는 게 많긴 하지만, 사건은 다르게 흘러갈 예정입니다. 이를테면 학교에서 이 사건이 일어나는 동안, 밖의 동네에서는 또다른 사건이 일어나는 걸 해결하는 식이죠. 앞으로 스토리의 진행을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SiteOwner
2024-08-02 23:39:35
이제 새로운 작품을 공개해 주셨군요. 출범을 축하드립니다.
처음부터 이상한 사람이 여럿 나오는 것이라서 긴장됩니다. 특히 예전에 행색이 이상한 사람이 알 수 없는 괴성을 내면서 쫓아와서 위험할 뻔 했던 사건이 있었다 보니 그게 생각납니다(이상한 사람이 있어서 위험할 뻔 했습니다 참조). 이전작의 배경과 인물들이 나오면서 또 새로운 사건이 벌어진다는 것에서 긴장을 안 느낄 수 없겠습니다.
시어하트어택
2024-08-04 23:08:12
조종당하는 초능력자, 사이비종교, 기인에 가까운 인터넷방송인은 분명히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조합입니다만, 저기서는 분명히 어떻게든 엮이게 될 겁니다. 어떤 일로 엮이게 될지는 아직 불명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