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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수사대] XIX-6. Morpheus

국내산라이츄, 2024-09-03 22:23:29

조회 수
58

<꿈 속의 아이>

이곳은 C 대학교 근처의 어느 주택가. 개강을 앞둔 몇몇 학생들이 자취방을 알아보기 위해 이방저방 둘러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한 집만큼은 찾아오는 사람이 뜸했다. 

그 집은 아이 유령이 배회하는 집이었다. 딱히 아이 유령이 가끔 놀래키거나 간식을 뺏어먹긴 해도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귀신이 있는 집이다보니 사람들이 잘 찾지 않았다. 그래도 집값을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찾아오는 사람이 이따금 있었지만, 보통은 귀신이 나오는 집이라는 것 때문에 아무도 그 집을 찾지 않았다. 그 집은 오히려 집값이 저렴해서 찾으러 왔다가도 귀신이 있다는 걸 알고 취소하는 집이었다. 

“이 집이군요. ”

귀신이 나온다는 이유로 누구도 찾지 않는 집을, 수수께끼의 여자가 찾아왔다. 움직임이 마치 한 마리의 나비를 보는 듯한 인상을 주는, 베일로 얼굴을 가린 여자였다. 베일 너머로 단정하게 빗은 머리카락이, 그녀가 움직일때마다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집을 한번 둘러보고, 마당을 배회하는 아이에게 사뿐히 다가갔다. 

“네가 가람이니? ”
“응! 누나는 누구야? ”
“아빠를 만나게 해 줄 사람이야. ”
“아빠를 만나게 해 준다고? ”
“응. ”

수수께끼의 여자는 가람이와 눈을 맞추기 위해 쪼그려 앉았다. 머리에 쓰고 있던 베일이 땅에 살짝 끌렸지만, 그녀는 그런 것은 개의치 않는 듯 했다. 

“가람이는 아빠를 만나면 뭘 하고 싶어? ”
“난 아빠를 만나면,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려주고싶어... 그래서, 아빠가 여기로 나를 찾아왔으면 좋겠어. ”
“그랬구나... ”

그녀는 아이와 대화를 마친 후, 조용히 얼굴을 가린 베일을 들었다. 그녀가 베일을 들어올리자 보인 것은, 단정하게 빗은 머리카락과 피그말리온이 석상을 깎아서 만들었나 싶은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그녀의 부드러운 두 눈은, 보기만 해도 어딘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아빠를 만나고 싶은 만큼, 아빠를 생각하면서 누나 눈을 봐야 해. ”
“응! ”

아이는 그녀의 말대로,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빠를 하늘만큼 땅만큼 보고싶다고 생각하면서 그녀의 눈을 보자, 아이는 어느 새 알 수 없는 공간에 있었다. 사방이 캄캄한 공간에, 아이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아빠가 보이자 아이는 아빠를 부르며 한달음에 달려갔다. 

“아빠~ ”
“가람아! ”

알 수 없는 공간을 가로질러 아빠에게로 달려가는 가람의 모습은 점점 변해갔다. 처음에는 포동포동해보였던 아이의 얼굴, 그리고 온 몸에서 점점 살점이 떨어져나갔다. 살점이 떨어져나가면서, 아이는 더 이상 아빠를 부를 수 없어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아빠, 보고싶어, 나를 찾아줘. 아빠에게 전하고 싶었던 얘기를 가람은 있는 힘껏 두 눈으로 전하고, 알 수 없는 공간을 빠져나왔다. 

“이렇게 하면 아빠가 정말 나를 찾아주는거야? ”
“그럼. 조금만 더 기다리면, 아빠랑 만날 수 있을거야. ”
“얼마나 기다려야돼? ”
“열 밤만 더 자면 돼. 알았지? ”
“응, 누나 말대로 할게. 고마워, 누나! ”

수수께끼의 여자는 가람의 머리를 쓰다듬고, 베일로 얼굴을 가린 채 집을 나섰다. 도대체 이 아이의 어디가 문제여서 이런 일을 당해야만 했던 걸까, 그녀는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골목길을 빠져나가 신기루가 사라지듯 사라졌다. 

한편, 어느 반지하 가정집. 

“헉...? ”

현장 일을 마치고 지친 몸을 뉘였던 그는, 꿈 속에 아들이 나와 환하게 웃는 꿈을 꿨다. 잠들때마다 꿈 속에 나왔던 아이는, 하루하루 남자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가 남자쪽으로 다가올때마다 점점 몸이 썩어가고 있었다. 몸이 점점 썩어가면서, 처음에 아빠 아빠 부르던 아이는 말도 못 하고 슬픈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면서 다가올 뿐이었다. 살이 통통하게 올랐던 아이는, 살점이 다 썩어 문드러지고 뼈만 남아있는 얼굴에 눈만 덩그러니 있었다. 뼈밖에 남지 않은 몰골로 아빠를 보던 아이의 꿈을 꾼 그 날, 잠에서 깬 남자는 생각했다. 분명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거라고. 

“왜 그래? 악몽이라도 꾼거야? ”
“뭔가 이상해. 아이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 ”
“아이...? 전처가 데려갔다는? ”
“응. 며칠 전부터 꿈에 나왔는데, 꿈에 나올때마다 몸이 썩어들어가고... 오늘은 말 한마디도 못 하고 그저 보고만 있었어. ”
“...... ”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 ”
“내일은 오전에만 일하고, 괴담수사대로 한번 가 봐. 하루정도 일 안나간다고 당장 굶어 죽는것도 아니니까. ”

다음날도 일이 잡혀있어 어찌어찌 출근했지만, 그는 꿈에 나왔던 아들때문인지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안씨! 조심해! ”
“아이고! ”
“거, 안씨. 요즘 왜 그래? 어디 아파? ”
“그게... ”

그는 요즘들어서 아이가 꿈에 나오는데 이상하다고 해야 할 지, 아프다고 적당히 둘러대야 할 지 망설였다. 속사정을 그대로 말한다 한 들, 그런 것 때문에 일도 똑바로 못 하면 어쩌냐고 타박을 들을까 내심 걱정됐다. 그런 그의 속내를 꿰뚫어보기라도 한 듯, 작업반장은 그에게 소장한테는 몸이 안 좋다고 얘기할테니, 오늘은 오전 근무만 마치고 퇴근하라고 했다. 그렇게 그는 점심시간에 반일치 일당을 받고, 먼지가 묻은 작업복은 미처 벗지도 못한 채 아내의 말대로 괴담수사대로 향했다. 현장에서 지하철을 타고 전화로 상담 예약을 잡으면서 괴담수사대까지 가는 길이, 이상하리만치 오래 걸리는 것 같았다. 

이윽고 괴담수사대 사무실에 도착한 그는, 제발 여기에서 해결해주길 속으로 빌면서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사무실 문을 열었다. 

“실례합니다. ”

그리고 그런 남자를, 미기야가 맞았다. 

“어서오세요, 제가 괴담수사대의 오너입니다. 꿈때문에 상담할 일이 있다고 하셨죠? ”

<뒤늦은 후회>

홍이 안치된 납골당에 끌려가 오열하면서 사과한 후로, 무열의 주변을 맴도는 홍과 아이의 유령은 사라졌다. 아마도, 남아있던 미련을 풀고 성불했겠지. 그 뒤로, 가끔 홍이 그리워질때면 명계 방명록에 글을 남겼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그 사람을 찾느냐는 매몰찬 답변이었다. 그는 책임감이 두려워 도망친 대가로, 한때 연인이었던 사람과 더 이상 닿을 수 없게 됐다. 

“으... 어...? ”

잠들었던 그는, 어느 정원에서 눈을 떴다. 만화에서도 신적인 존재가 있을 법한 장소에 꾸며놨을 법한 정원이었다. 주변에는 형형색색의 꽃이 심어진 화분이 있었고, 정원 가운데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정자가 서 있었다. 정자에는 앉아서 쉴 수 있도록, 나무로 만든 벤치가 있었고 그 주변을 형형색색의 나비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가운데에는 맑은 물이 흘러넘치는 분수도 있었다. 

“여기는...? ”

정자로 다가가자, 어디선가 붉은 나비가 나타났다. 따라오라는 듯 눈앞에서 날갯짓하는 나비를 따라 정자를 지나쳐 터널로 들어가니, 꽃이 한가득 피어있는 꽃밭이 보였다. 처음으로 보인 것은, 보라색 크로커스가 한가득 핀 꽃밭이었다. 크로커스가 한가득 핀 꽃밭을 지나, 노란 카네이션이 피어있는 꽃밭까지 지나면 붉은 석산이 피어있는 꽃밭이 보인다. 그리고 붉은 석산이 피어있는 꽃밭을 지난 무열의 눈앞에 보인 것은, 단정하게 빗은 검은 머리를 가진, 베일을 쓴 여자였다. 그녀는 인기척을 느끼고 이 쪽을 돌아봤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저를요? ”

알 수 없는 말을 건넨 여자가 손짓하자, 그의 눈앞에 있던 붉은 나비가 사라졌다. 

“여기는 어디죠...? ”
“...... ”

그녀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한참동안 그를 바라본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대는 이 곳까지 오는 길에 세 가지 꽃이 피어있는 꽃밭을 지나 오셨을겁니다. ”
“세 가지 꽃...? 아, 네. 나비를 따라서... ”
“첫번째 꽃은 노란 카네이션. 꽃말은 ‘경멸, 당신을 경멸합니다, 거절, 실망, 이의 제기, 후회’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꽃은 보라색 크로커스, 꽃말은 ‘너는 날 사랑한 것을 후회하고 있어’입니다. 이는 그대의 행동에 의한 결과를 나타냅니다. ”
“......! ”

그는 한때 사랑했던 연인을 떠올렸다. 그리고 홍에게 저질렀던 잘못과, 그로 인해 홍이 죽었던 사실, 그리고 그것때문에 들었던 수많은 질타를 떠올렸다. 그랬지, 한때는 홍과 그렇게 하룻밤을 보냈던 것을 후회했지. 하지만, 그는 홍을 사랑했던 모든 순간을 후회한 적은 없었다. 함께 학교에 가고, 함께 공부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눴던 순간만큼은 행복했다. 그리고 지금도 추억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그는 홍을 그리워하곤 했다. 

“저는... 적어도 홍과 사랑했던 매 순간을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
“이 꽃들은 당신의 마음을 대변해주지 않습니다. 당신이 한때 사랑했으나 저버렸던 사람의 마음을 대변할 뿐입니다. ”
“...... ”
“그리고 마지막 꽃은 석산. 꽃말은 ‘슬픈 추억, 잃어버린 기억, 이룰 수 없는 사랑, 죽음, 환생’입니다. 이 꽃은 그대의 행동으로 인해 그대가 받게 될 형벌을 의미합니다. ”
“형...벌이요? ”
“단장의 고통을 세 사람에게 안겨놓고, 미안해하는 것 만으로 끝날거라고 생각하셨나요? ”

단장의 고통, 그를 책망했던 사람들이 했던 이야기였다. 무열이 홍과 홍의 부모님에게 안긴 고통이 단장의 고통이라며, 아이를 잃은 부모의 고통이라고 했다. 

“적어도 당신은 비명횡사 하지는 않을겁니다. 오히려 제 명까지 다 살다가, 잠든 채로 죽겠지요. 앞으로 90살, 100살... 그대의 수명이 끝나는 날까지 말이죠. ”
‘그게 형벌이 되나? ’

제 명에 살다가 죽는게 형벌이라고? 그는 의아했다. 보통 천벌을 받는 사람들은 일찍 죽거나 뭔가 저주를 하나 입거나 하지 않나? 그런데 오히려 그녀는 형벌이라면서 비명횡사 한 번 하지 않고 제 명에 죽을거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마지막 말을 들은 그는, 제 명에 죽는 것이 그 자체로 형벌인 이유를 이해하게 됐다. 

“이제 다시 볼 수도 없고 앞으로도 만날 일 없을 그대의 아이와 연인을 한평생 후회하면서 그리워하고, 평생 그 죄책감을 홀로 감수하는 것이 그대에게 내려진 형벌입니다. ”

<매장>

평소처럼 강의를 들으러 왔던 그는, 칠판에 쓰여 있는 ‘휴강’ 두 글자를 봤다. 아니, 오늘 휴강인데 왜 아무도 말 안 해줬지? 허탈해진 그는 가방을 잠시 강의실에 내려놓고 친구에게 오늘 휴강인거 알았냐고 연락했지만, 친구는 연락이 없었다. 친구 뿐 아니라 같이 수업을 듣는 과 동기나 학생들도 전부 연락을 받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메시지를 읽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심지어는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겨우 연락이 된 사람은, 같은 수업을 듣고는 있었지만 친하지는 않은 동기 한 명뿐이었다. 

“너 오늘 최교수님 수업 휴강인거 알고 있었냐? ”
‘최교수님 수업? 안그래도 과대가 연락해서 나가기 전에 알았다. ’
“뭐라고? ”

그 아웃사이더에게도 연락을 하는 과대가 나한테만 연락을 안 했다고? 그는 동기들과 함께 들어가있는 대화방에 왜 휴강인걸 알려주지 않았냐고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에이, 기분 잡쳤네, 집에 가야지. 그는 집으로 가기 위해 가방을 들쳐메고 강의실을 나왔다. 

‘어...라? ’

분명 그 수업은 오전수업이었고, 수업이 끝나면 곧 정오라서 점심을 먹으러 갔었다. 그런데, 그가 복도에 있는 창을 통해 밖을 보니 석양이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이상하다, 정오에 해가 떨어질 리가 없는데. 그렇게 생각한 그가 핸드폰으로 시계를 보자, 어째서인지 시계는 저녁 여섯시 반이었다. 거기다가 그 시간이면 보통 대학원생들이 밥을 먹기 위해 내려오거나, 밥을 먹고 올라가기 위해 로비에 있어야 했는데 건물 로비에는 아무도 없었다. 건물 입구에는 항상 밤 늦게까지 계시던 수위 아저씨도 없었다. 

‘왜 아무도 없지? ’

출입문을 나서자, 흡연구역이 보였다. 이 시간에 몇 명 정도는 식사를 하고 담배를 필 법도 한데, 흡연구역에조차 사람이 없었다. 벤치에도, 다른 건물에도 사람이 없었다. 형형색색의 차들이 움직이고 드나들던 주차장에는, 까만 세단 한 대만이 놓여있었다. 그가 세단 쪽으로 다가가자, 차에서 잘 차려입은 남자가 내렸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서 타시죠. ”

그를 세단에 태운 남자는 어딘가로 차를 몰았다. 세단은 앞쪽을 빼고 창문을 전부 가려놓아 그는 앞유리에 보이는 풍경만으로 어디로 가고 있는건지 확인할 수 밖에 없었다. 어디로 가는건지 물었지만, 남자는 곧 알게 될 거라는 말과 함께 묵묵히 차를 몰고 어딘가로 갈 뿐이었다. 한참동안 달려 세단이 어느 야산에 도착하자, 남자는 싣고 있던 삽을 꺼낸 다음 사람이 들어갈만큼 구덩이를 팠다. 그리고 한참동안 구덩이를 판 남자는- 

“이제 들어갈 시간입니다. ”

그를 그대로 구덩이에 던져넣었다. 구덩이 속으로 떨어진 그는 어떻게든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허사였다. 하관할 때 팔 정도로 깊은 구덩이였다.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려고 했지만, 남자는 그런 그를 그대로 파묻었다. 그의 위로 쌓이는 흙이 많아질때마다, 숨을 쉴 수 없어 답답했다. 그대로 의식이 흐려진다. 그리고... 

“앗! ”
“또 그 녀석에게 놀아났나 보군. ”

의식을 되찾은 그가 눈을 뜬 곳은, 붉은 국화로 치장한 방이었다. 기차가 달리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여기는 기차역이거나 기차 안일지도 모른다. 그의 맞은편에는 붉은 머리의 여자가 앉아있었고, 붉은 머리의 여자는 ‘그 녀석에게 놀아났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 녀석이 누구인지, 여기는 어디인지 물을 새도 없이 서류 더미를 팔락거리던 여자가 그에게 말했다. 

“뭐, 그건 상관 없지... 넌 이미 죽었고, 무간지옥으로 갈 예정이거든. ”
“그게 무슨... ”
“과 후배 스토킹하고, 강간해서 죽였잖아. 그것도 동성인 후배를... 산에 시체 묻으면 아무도 못 찾을 줄 알았어? 손이나 얼굴같은 게 없어도, 소요 시간이 길 뿐이지 못 찾는 게 아니야. ”
“......! ”

<그리워하다>

그녀는 오늘도 하늘로 먼저 가버린 남자친구를 생각하며 울다 잠들었다. 친구가 놀러와도, 그녀는 방 안에서 하루종일 멍하니 앉아있을 뿐이었다. 300일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생을 사랑했지만, 남자친구와 나눴던 추억과 주고받았던 선물만큼은 그녀에게 있어서 다이아몬드 못지 않은 보물이었다. 이제 제발 버리라는 말에도, 제발 치워달라는 말에도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멍하니 침대에 앉아 먼저 가버린 남자친구를 생각하며 울 뿐이었다. 

“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야? 곡기도 다 끊고... 너도 따라가려고 그러니? ”

여느때처럼 울다 잠들었던 그녀가 눈을 떴을 때,  온통 하얀 공간에 테이블 하나가 보였다. 테이블은 둥근 모양이었고, 고급 레스토랑에서나 볼 법한 테이블보 위에는 테이블 매트가 두 장 깔려있었다. 

‘이 매트는...? ’

남자친구와 함께 소품점에 들렀을 때, 언젠가 결혼하게 되면 식탁에 올려놓자면서 샀던 테이블 매트였다. 사고 나서는 한번도 쓴 적 없었기에 테이블 매트는 푸른색 그대로였다. 쪽으로 염색한 천을 직접 재단해서 만드는거라 꽤 비쌌고, 그렇기때문에 신혼집에 들여놓기 전까지는 한번도 포장을 뜯지 않았다. 

테이블로 다가간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그러자 두 매트에 포크와 나이프, 숟가락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디선가 나타난 웨이터가 물잔 두 개를 내려놓고 물을 따랐다. 그리고 웨이터는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면서, 일행이 도착하면 음식은 그 때 내어드리겠다는 말을 남겼다. 

‘일행이 있다고? ’
“수연아. ”
“......? 혁주야? 진짜 너야? ”
“응, 나야. ”

눈 앞에서 사고로 죽었던 남자친구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의 모습으로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남자친구가 테이블에 앉자, 곧 웨이터가 카트를 끌고 도착했다. 주섬주섬 그릇들을 테이블에 세팅하는 걸 가만히 보고 있으니, 테이블에 올라오는 음식들은 전채로 나온 브로콜리 스프를 제외하면 전부 남자친구와 그녀가 데이트 할 때 많이 먹었던 음식들이었다. 간장치킨, 알리오올리오, 그리고 시저 샐러드와 고르곤졸라 피자. 고르곤졸라 피자는 또띠아 피자로 만들어져서, 깔끔하게 8등분이 된 데다가 꿀까지 곁들여서 내 왔다. 

“먹자. ”
“응. ”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할때처럼, 테이블 위에 놓인 음식을 사이좋게 나눠먹었다. 사랑하는 연인과 먹는 만찬이라니, 거기다가 데이트 할 때 종종 먹었던 음식들이라니, 옛날 생각이 났다. 식사를 하면서, 그녀는 울고 있었다. 

“왜 울어? ”
“좋아서... 이렇게 너 보니까. ”
“너, 나 떠나고 며칠째 식사도 안 하고 방 안에서 멍하니 있었다며? 준우한테 다 들었어. ”
“...... ”
“나는 네가 내 몫까지 잘 살다가 왔으면 좋겠어. ”
“혁주야... ”

디저트로 나온 치즈케이크까지 먹고 나서, 남자친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가 봐야 할 것 같아. ”
“안 가면 안 돼? ”
“나도 널 두고 떠나고 싶지 않아. 하지만 가야 해... ”
“...... ”
“수연아. 우리가 함꼐 했던 날들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지만... 그래서 수연이가 슬퍼하는 것도 이해하지만, 그래도 너무 오래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계속 방 안에서 멍하니 앉아만 있는 거, 하늘에서 지켜보기 힘들어. ”

남자친구가 돌아간 후, 낯선 여자가 나타났다. 머리에는 베일을 쓰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고, 베일 너머로는 단정하게 자른 머리가 살짝 보였다. 그녀는 남자친구가 마지막으로 부탁한 물건이라면서 ‘수연에게’라고 쓰여있는 봉투를 건넸고, 그 안에는 그 동안 연애하면서 찍었던 사진들이 들어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슬픔은 무뎌지고, 슬픔과 추억이 남긴 발자국만이 남을거예요. ”

잠에서 깬 그녀가 눈을 떴을 때는, 정오가 지난 시각이었다. 꿈 속에서 죽은 남자친구를 만났고, 무언가를 건네받은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라고 생각한 그녀가 머리맡을 보니, 낯선 여자에게 건네받았던 봉투가 있었다. 봉투 안에는 꿈 속에서 봤던 사진도 그대로였다. 사진을 한장한장 넘겨보는데, 마지막 장에 작은 쪽지가 하나 끼워져 있었다. 쪽지에 ‘나 없다고 너무 슬퍼하지 말고, 나아갔으면 좋겠어. ’라고 쓰여있는 것을 본 그녀는 죽어서도 자신을 끝까지 걱정하는 남자친구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쪽지 뒷장에는, 명계 방명록을 이용할 수 있다는 얘기와 함께 QR코드와 이용법이 적힌 종이도 함께 들어있었다. 
국내산라이츄

엄마가 고지고 아빠가 성원숭인데 동생이 블레이범인 라이츄. 이집안 뭐야 

3 댓글

마드리갈

2024-09-06 23:09:16

여러 이야기가 수록된 것이군요. 꿈 속의 아이, 뒤늦은 후회, 매장, 그리워하다 이렇게 4개의.

숨이 막히는 듯한 내용으로 점철된 3개의 이야기와 달리, 그리워하다의 경우는 참 슬프지만, 비록 먼저 갔지만 마음은 변함없이 남아 있는 그 짙은 그리고 아름다운 여운이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왔어요.


복수의 에피소드를 한 글에 때에는 가독성에 신경을 써 주시는 것도 방법이예요.

적어도 각 에피소드의 제목을 볼드체로 처리해 주시는 것도 좋아요.

국내산라이츄

2024-09-07 01:12:57

이걸로 단장의 고통-미련에서 이어지는 무열과 홍의 이야기는 완전히 끝났습니다. 그리워하다의 경우 그래도 좀 훈훈한 이야기가 있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 추가했습니다. 

SiteOwner

2024-09-14 23:15:54

맨 마지막의 이야기의 감상평은 좋아하는 가수 린다 론스타트(Linda Ronstadt, 1946년생)의 명곡인 Don't cry now로 대신할까 싶습니다. 그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코멘트입니다. 소개해 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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