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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수사대] XX-2. 잘못된 우월감

국내산라이츄, 2024-09-05 23:50:56

조회 수
39

이른 저녁, 한 여성이 엘 푸르가토에 들어섰다. 

“어서오세요, 엘 푸르가토입니다. ”
“혹시, 기억을 지워주는 칵테일도 파나요? ”
“기억을 지워주는 칵테일이요? ”

황당한 요구에 그런 칵테일은 없다며 너스레를 떨려던 마스터는, 손님의 표정을 살폈다. 한 눈에 보기에도 내일 죽을 날이라도 받아둔것마냥 안색이 좋지 않은 표정을 본 마스터는, 지금 농담을 할 만한 분위기가 아님을 깨달았다. 

“마스터~ 샹그리아 한 잔. ”
“네이, 네이~ ”

마스터가 칵테일을 만들기 위해 잔을 준비할 무렵, 엘 푸르가토로 한 명의 여자가 들어왔다. 늘씬하면서도 육감적인 몸매에, 그녀가 보기에도 굉장히 아름다워보이는 여자였다. 목에는 비싸보이는 목걸이를 하고 귀에는 반짝이는 귀걸이를 한, 고급스러운 가죽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멘 여자였다. 그녀는 익숙한 듯, 바에 들어오자마자 샹그리아 한 잔을 주문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마스터도 그녀를 익숙한 듯 대했다. 그녀를 자리에 앉게 한 마스터는, 먼저 온 여자에게 왜 그런 칵테일을 찾는지 이유를 물었다.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오늘 헤어졌어요. ”
“헤어졌다고요? ”
“네. 정확히는, 제가 차였어요... ”
“어쩌다가요? 남자가 양다리라도 걸친거예요? ”
“네... ”

오늘까지만 해도 남자친구였던 사람에게, 여자는 차였다. 이유는 여자친구가 뚱뚱해서였다. 처음에는 통통한 모습에 반했다면서 잘 먹는 모습도 예쁘다고 해 주던 남자친구였지만, 남자친구의 친구들과 만난 날 이후로는 그녀가 뭘 먹자고만 하면 질려버린 눈으로 보고 있었다. 맛집 데이트를 하자고 하면 정색하기도 하고, 만날때마다 살 좀 빼라고 잔소리를 하는가 하면, 급기야는 돼지같다는 막말까지 할 정도였다. 

전 남자친구는 양다리를 걸치면서 끊임없이 바람녀와 그녀를 비교하는 말을  했다. 그 여자는 늘씬하고 예쁜데 너는 왜 그러냐, 이래서 너랑 만나기 싫다. 그럼에도 그녀는 사랑하는 남친의 마음을 돌리려고 했지만, 그는 허사였다. 연락만 해도 집착하냐고 역정을 내고, 스킨십이라도 할라치면 벌레라도 닿은 듯 쳐냈다. 처음 만났던 날처럼 사랑하고 싶었지만, 전 남자친구는 지금 그 모습으로는 택도 없다면서, 지방흡입이라도 하던가 살을 빼기 전까지는 어림도 없다고 했다. 그래야 친구들이 예쁘다고 칭찬해준다면서 말이다. 

“걘 친구들이랑 약속 있는 날 저를 부를 때 입을 옷이랑 신을 까지도 지정해줬어요. ”
"안 입고 나가면 어떻게 되나요? "
“친구들이랑 있을 때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데, 둘이 있을때 길길이 날뛰면서 화내죠. ”
"저런... "
“이런 놈이랑 사귀었다는 기억 자체를 지워버리고 싶어요. ”
“잠시 기다려주시면, 그런 아픔을 싹 씻어드릴 칵테일을 만들어드리죠. ”

잠시 후, 마스터는 커다란 잔에 얼음을 가득 채우고 술과 토닉 워터를 담았다. 그리고 그 위로 파란 액체를 살짝 끼얹자, 위쪽에서부터 천천히 푸른색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칵테일이 완성되자, 마스터는 가니쉬로 파란 우산을 꽂았다. 

“손님께서는 레테에 대해 아시나요? ”
“레테...? ”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망각의 강이예요. 망자가 생전에 있었던 일들을 전부 잊게 해 주는 강이죠. 실제로 쓰레기와 사귀었던 기억이 잊혀질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아픔정도는 싹 씻어 줄거예요. ”
“감사합니다. ”

그리고 새로 잔을 꺼낸 마스터는, 샹그리아 한 잔을 만들어 옆에 있는 여자에게 건넸다. 

“여기 있어 ”
“고마워. ”

칵테일을 들이키자, 시원한 청량감이 느껴졌다. 블루 하와이의 맛에 민트가 추가된 느낌이었다. 민트의 청량감과 탄산의 톡톡 터지는 느낌이 만나니, 마스터의 말대로 기억이 잊혀지지는 않았지만 남자친구때문에 속상했던 일은 싹 씻겨 내려갈 정도로 시원했다. 

“처음 보는 칵테일이네? ”
“이번에 처음 만든 칵테일이야. 이름은 레테라고 붙였어. 손님, 어떠세요? ”
“뭔가... 기분 나쁜 게 싹 씻겨내려간 느낌이었어요. 시원해요. ”
“그래요, 이제 그런 쓰레기 같은 남자친구는 잊어버리고 새 시작 하세요. 도덕경에도 ‘누군가 너에게 해악을 끼치거든 앙갚음하려 들지 말고 강가에 고요히 앉아 강물을 바라보아라. 그럼 머지않아 그의 시체가 떠내려 올 것이다. ’라고 하잖아요? 그런 쓰레기때문에 당신이 쓸데없이 감정소모 하실 필요 없어요. ”
"저, 옆자리에 있다 보니 본의아니게 얘기를 듣게 됐는데... 이거 받으세요. "
"네? "
"그쪽 사연이 너무 딱해서 주는거예요. "

그녀의 옆에 앉아있던 여자는,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여자에게 전단지 하나를 건넸다. 

“지인이 하는 곳인데, 요즘 파리아에서 스포츠 모델로 활동하는 소윤이씨도 여기서 살 빼고 예뻐진거래요. 프로젝트 하면서 파리아에서 지원금도 나와서 비용 부담도 없고, 도와주시는 분도 이쪽으로 전문가라서 식단이나 운동같은 것도 잘 짜주실거예요. ”
"...... "
“그쪽은 충분히 전 남자친구가 땅을 치고 후회할만큼 예뻐질 수 있어요, 그건 제가 장담할게요. ”
“감사합니다. ”

그녀는 자신은 남자를 많이 만나봐서 나름 프로페셔널이라면서, 그 사람은 아마도 친구에게 여자친구를 자랑하면서 우월감을 느끼는 타입이라서 독하게 마음 먹고 예뻐지면 분명 후회할 거라고 했다. 혹시나 나중에 예뻐져서 전 남자친구가 집착하게 된다면 자기가 처리해주겠다며 전단지와 함께 건넨 명함에는 화사라는 이름과 연락처가 쓰여있었다. 

'이름이 외자인건가? 특이하네... '

전단지를 받은 여자는, 다음날 전단지에 적힌 곳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그 날부터 운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전 남자친구가 땅을 치고 후회할 만큼 예뻐지리라 결심한 그녀는, 그 일념으로 식단도 운동도 꾸준히 해 나갔다. 운동은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하면 할수록 보람찼다. 힘들때마다, 그때 엘 푸르가토에서 만났던 여자의 응원도 도움이 됐다. 시간이 누적되는 만큼 자신감이 생겼고, 점점 예뻐져가는 것을 느낀 그녀는 이따금 SNS에 운동 후 사진을 공유하기도 했다. 그리고 여느때처럼 운동을 마치고 집에 가던 그녀에게 문자가 왔다. 

‘잘 지내? ’
“누구세요? ”
‘내 번호 지운거야? 나야, 임형언. ’

그녀에게 연락한 사람은 그녀가 뚱뚱하고 보기 싫다고 했던 전 남자친구였다. 그는 SNS에 올린 거 봤다면서 예뻐졌다는 말로 운을 뗐다. 

‘너 많이 예뻐졌다. 이제는 친구들한테 보여줘도 예쁘다고 해줄 것 같아. 지금이라면 너랑 다시 만나줄게, 영광으로 알라고. ’
“너처럼 사람을 장식으로만 생각하는 인간은 내가 사양할게. 차단한다. ”

기가 막혀서 정말, 그녀는 그의 문자를 차단했다. 문자고 메신저고 전화고 전부 막히자 전 남자치구는 이제 SNS 메시지로 추파를 던지기 시작했다. 차단할때마다 부계정을 생성해서 추파를 던지는 전 남자친구가 한심하기 짝이 없었던 그녀는, 며칠을 그것때문에 고통받다가 고키부리 사무실로 찾아갔다. 

“전 남자친구분이 계속해서 메시지를 보낸다고요? ”
“네. 처음에는 문자, 전화, 메신저... 그거 다 차단했더니 SNS 메시지가 계속 와요. ”
“이 정도면 변호사 상담도 한 번 받아보시는 게 좋겠네요. 이 쪽 한번 찾아가보세요. 꽤 실력 있는변호사라서, 적절한 대처를 잘 해주실거예요. ”
“감사합니다. ”

그녀는 도희에게서 명함 하나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고키부리 사무실을 나선 그녀는 명함에 적힌 궁변호사를 만나러 가는 길에 몇달 전에 엘 푸르가토에서 만났던 화사에게 연락했다. 

"여보세요? "
"저, 몇달 전에 엘 푸르가토에서 만났는데... 레테 시켰던 사람이예요. 전단지랑 명함도 받았는데... "
"아, 기억나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세요? "
"전에 나눠주셨던 전단지, 그거 신청해서 살 뺐어요. "
"잘 됐네요~ 전 남자친구한테서 연락은 안 왔나요? "
"당연히 왔죠. 이제는 친구들한테 보여줘도 예쁘다고 할 것 같으니까 다시 만나주겠다고요. 연락처 다 차단하니까 SNS 메시지로 계속 보내서, 고키부리 사무실 소개로 궁변호사님한테 찾아가는 길이예요. 차단해도 자꾸 계정을 파서 보내니까 살 수가 없겠더라고요... "
"그러셨군요... 궁변호사님은 꽤 실력 있는 분이니까 알아서 잘 해주실거예요. "

그리고 몇달 후. 

“지수 너, 많이 예뻐졌다. 형언이가 봤으면 땅을 치고 후회했겠는데? ”
“아서라, 아서. 안그래도 스토킹 수준으로 추파 날려대서 얘 고키부리 사무실까지 갔었어. ”
“진짜? ”
“어. ”
“그럴만 하지 ㅋㅋ 형언이 걔 남한테 여친 자랑하는거 엄청 좋아하니까. 친구들이랑 만나서 여친 칭찬 듣는거 좋아하거든. 지금 지수랑 다시 만나면 친구들이 칭찬일색일거라 100% 형언이가 떠받들고 다닐걸? ”
“어쩐지... 걔 변했던 것도 친구들 만난 이후였고, 다시 문자로 연락할때도 친구들도 나 보면 예쁘다고 해줄테니까 지금이라면 다시 만나주겠다고, 영광인 줄 알라고 했었어. 근데 그런 인성 바닥인 인간은 내가 사양이야. ”
"잘 생각했어. 그런 놈은 아마 사고나서 흉터같은거 생기면 흉해졌다고 다시 찰걸? "
“그럴지도 모르지. 사람을 인형 취급 하는 인간이니... 그 뒤로 너희들한테는 뭐 연락 온 거 없지? ”
“음... 두달인가 전에 돈 빌려달라고 연락 한 번 왔었어. 근데 거절했지. ”
“너한테도? 나한테도 왔었는데... ”
“정말? 왜? ”
“그게... ”

친구가 꺼낸 얘기는 꽤 뜻밖이었다. 

지수와 재회가 불발된데다가 궁변호사로부터 지수가 접근금지 신청을 했다면서 한번만 더 접근하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말을 경고를 들은 형언은, 전여친은 공쳤으니 헌팅 포차나 갈 요량으로 B구의 어느 번화가로 갔다. 번화가를 걸어 헌팅 포차로 가던 그는 어떤 여자와 스쳐지나갔다. 긴 생머리를 흩날리면서 그의 곁을 지나가는 여자는 그와 사귈 때의 지수 뿐 아니라, 그와 헤어진 후 살을 빼고 예뻐진 지수보다도 아름다웠다.  딱 달라붙는 옷이 아닌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있었지만, 밸런스 잡힌 육감적인 몸매가 한 눈에 보였다. 지금 저 사람을 이대로 보내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던 그는 그녀를 불러세웠고, 그녀와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그녀의 이름은 화사였다. 얼핏 봐서는 형언의 또래 같아보였지만, 나이는 두 살 연하였고 아직 취업 준비중이어서 데이트를 하러 멀리까지 가거나 비싼 곳은 무리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그녀에게 홀린 모양인지, 이런 선녀같은 분이라면 괜찮다면서 데이트 비용은 직장인인 자기가 대신 내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녀가 괜찮다는데도 한사코 비싼 레스토랑으로 갔고, 카페도 SNS 명소라면서 올라온 비싼 곳으로만 갔다. 그 뿐 아니라, 그는 무리해서 번쩍번쩍한 외제차까지 샀다. 

“이렇게 비싼곳은 좀 부담되는데... ”
“괜찮아, 괜찮아~ 오빠 돈 많이 벌어. ”

형언이 그녀를 데리고 친구들을 만나러 갔을 때, 친구들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녀가 착용한 악세사리들도 실제로는 비싸지 않았지만, 그녀가 착용할때만큼은 이태리 장인이 한땀한땀 만든 한정판 악세사리를 보는 것 같았다. 시계나 가방같은 것들도 마찬가지여서, 친구의 여자친구들이 그녀의 꽃같은 얼굴을 질투할 정도였다. 

“나도 몇 번 봤는데 완전 예뻤다니까? 진짜 그 분이 메면 에코백도 고급 가방처럼 보일걸? ”
“형언이 완전 어깨뽕 찼겠네. ”
“어깨뽕 정도가 아냐, 어깨가 아주 하늘로 솟았지. 친구들이 여친을 처음 보고 입을 다물지를 못했다더라. ”

화사와 사귀는 내내 그는 화사의 지갑에서 돈이 나가는 꼴을 보지를 못 했다. 이번에 새 핸드폰이 나온다면서 바꿀지 고민된다는 말에, 바로 화사가 원하는 색깔에 제일 큰 용량으로 예약구매를 해 줄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가방이 낡아서 수선을 받으려고 한다는 말에 백화점 명품관으로 가서 최대한 비슷하게 생긴 가방을 사주고, 구두 굽이 낡아서 수선을 받으려고 한다는 말에 백화점 명품관으로 가서 비싼 구두를 사주기도 했다. 그럴때마다 화사는 매번 부담된다고 했지만, 그는 그런 그녀에게 한사코 고가의 선물을 했다. 가방이나 구두 뿐 아니라 옷, 화장품, 악세사리같은 것도 전부 명품으로 선물했다. 커플링도 화려한 보석이 박힌, 가격이 나가는 걸로 골랐다. 그녀에게 슬슬 정장이 필요할거라 생각한 그는 고가의 정장도 맞춰주려고 했지만, 그녀는 이미 정장이 있다며 거절했다. 

마치 인형놀이를 하듯, 그는 화사에게 갖가지 명품들을 입혀서 친구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사주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명품을 입고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 아마 입이 떡 벌어지겠지. 그리고 그는 뭘 입혀도 격이 다른 여자친구를 자랑스러워하면서, 친구들 앞에서 으쓱해할 것이다. 하지만 정작 선물을 받은 화사는 명품을 입는 대신 집에 고이 보관해두고, 항상 신던 가방이나 구두를 수선해서 다시 신고 다녔다. 가끔 왜 사준걸 안 입냐고 물어봤지만, 그녀는 뒀다가 중요한 날 입으려고 한다고만 했다. 아마도 면접날 입으려고 아껴두는 모양이지, 그는 생각했다. 

“걔 나랑 데이트할때는 서로 선물도 주고받지 말자고 했었는데? ”
“지갑 여는것도 여자친구 외모에 따라 달라지나보지. 생각할수록 잘 헤어졌네, 그 놈이랑. ”
“근데 그렇게 매번 사주기도 버겁지 않을까? 걔 나랑 사귈때도 사원이었고, 승진했다 쳐도 주임인데... 잘 해봐야 대리 아냐? ”
"그치, 여친한테 내색은 안 했어도 엄청 부담됐을걸? 걔네 집, 아파트는 자가지만 그거 말고는 뭐 없잖아. "

아무리 직장인이고, 월급을 번다지만 평범한 사원이었던데다가 금수저도 아닌 형언에게 매번 비싼 레스토랑을 가고, 매번 명품을 사 주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거기다가 외제차는 번쩍번쩍한 만큼 유지비도 비싸고 보험료도 비쌌다. 처음에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데이트 비용으로 썼지만, 은행 대출을 받는 것도 한계가 있었던데다가 같이 데이트를 하는 와중에도 시도때도 없이 은행에서 독촉 전화가 왔다. 그럴때마다 친구나 회사 사람이라고 얼버무리긴 했지만, 내심 그 빚들을 다 어떻게 갚아야 하나 걱정하고 있었다. 

“걔 그래서 결국 사금융으로 갔대. ”
“사금융? ”
“왜, 그 있잖아. 전노대부라고... ”
“아, 거기... ”

전노대부에서 돈을 빌린 그는, 은행 대출은 어찌어찌 갚았다. 그 뒤로도 전노대부에 화사에게 비싼 물건들을 사 주기 위한 돈을 빌리기 위해 자주 드나들었던 형언은, 어느새 이자만 수백만원에 달하는 사채빚을 떠안게 됐다. 그는 급한대로 외제차라도 팔아서 빚을 변제하려고 했다. 돈을 빌리기 위해 주변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리기도 했다. 아마도, 지수의 친구들이 형언의 전화를 받았던 게 그 무렵인 듯 했다. 하지만 외제차는 팔려면 오히려 돈을 더 내야 하는 상황이었고, 친구들은 당연하게도 돈을 빌려달라는 그의 부탁을 거절했다. 

“여자친구는 어떻게 됐대? ”
“헤어졌대. 사채까지 써가면서 자기한테 선물했다는 거 듣고 충격 받았나봐. 그 동안 형언이가 사줬던 거 전부 포장도 안 뜯고 가지고 있었던거라 다 돌려주고 쫑냈다더라. ”
“그거 팔면 그래도 어느정도는 변제 되겠네... ”
“사금융만 아니었어도 그랬겠다. ”

자신의 여자친구를 이용해 자신을 돋보이려던 그는, 돈을 물 쓰듯 마구 써 댄 결과 거액의 빚을 지고 말았다. 그는 헤어지면서 여자친구가 돌려준 명품들을 전부 팔았고, 다행히도 그것들은 꽤 비싼 값에 팔렸지만 그 돈으로는 겨우 이자 정도만 변제할 수 있었다. 그 뒤로도 월급을 탈 때마다 빚을 변제하면서, 경첩 접히듯이 허리를 연신 숙였다. 

“가족들은 뭐래? ”
“걔네 집, 그것때문에 원래 살던 아파트 팔고 단칸방으로 이사갔잖아. 그 뒤로 집에서 쫓아내면서 여자에 미쳐서 집안 기둥뿌리 뽑는 놈은 없는 셈 치고 살겠다고 했대. ”
“형언이네 아파트 살지 않았어? ”
“그나마 아파트가 신축이고 집값이 비싼 지역이라, 빚은 겨우 갚았다더라. ”

연신 빚을 갚기 위해 굽신거리는 형언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가족들은 살던 아파트를 팔았다. 그리고 아파트를 판 돈으로 원금은 물론 이자까지 변제를 거의 마쳤지만, 수중에 남은 돈이 없었던 그들은 작은 월셋방으로 이사를 가야 했다. 사채를 쓰게 된 이유를 듣고 분노한 형언의 부모님은, 여자에 미쳐서 집안 기둥뿌리 뽑는 놈은 자기 아들이 아니라면서, 자기는 앞으로 아들 앞세운 셈 치고 살겠다고 했다. 

“걔 여동생이 너랑 꽤 친했지? ”
“결혼하기 전부터 언니동생 했으니까. 지금도 가끔 연락해. 오빠 쫓겨났다고 연락해서 무슨 일인가 했는데, 여자친구한테 홀려서 사채써서 쫓겨났다고만 했었어. ”

형언의 여동생은 집에서 내쳐진 형언을 보면서 ‘지수언니 내치더니 꼴 좋게 됐다’고 한마디 했다. 나는 오빠처럼 남자에 미쳐서 기둥뿌리 뽑는 사람은 되지 않겠다면서. 빚을 다 갚은 뒤, 형언은 지수에게 그랬듯 화사에게 계속 연락을 시도했지만 지수가 그랬듯 화사 역시 충격이 컸는지, 아니면 자신에게까지 돈을 빌려달라고 할까봐 두려웠는지 그의 연락을 차단해버렸다. 여자친구에게 갖다 바치기 위해 사채까지 썼다는 걸 알게 된 친구들 역시 그와는 연락을 끊은 상태였고, 가족들에게는 내쳐저서 작은 고시원에서 살아야 했다. 그래도 가족들 덕분에 험한 꼴은 면했지만, 이제 그에게 남은 거라곤 고장때문에 몰지도 못 하고 팔려면 오히려 돈을 내야 하는 중고 외제차 한 대와 아직도 남아있는 빚이였다. 
국내산라이츄

엄마가 고지고 아빠가 성원숭인데 동생이 블레이범인 라이츄. 이집안 뭐야 

2 댓글

마드리갈

2024-09-07 00:15:28

그래서, 누가 꽃뱀이었다는 건가요?

동의할 수 없네요. 형언이라는 그 남자가 작정하고 무리한 것일 뿐인데. 그리고 형언의 잘못에 비해서 복수 방식이 과하다는 감도 떨칠 수가 없네요. 작중의 사회가 알바니아는 아닐텐데...


독자로서의 감상평은 여기까지 쓸께요.

국내산라이츄

2024-09-07 00:47:45

작중 등장하는 화사가 유혈목이(꽃뱀) 요괴입니다. 


화사가 작정하고 돈을 뜯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홀리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그녀에게 돈을 펑펑 쓰게 됩니다. 형언의 경우 화사와 사귄 다음 자기 친구들에게 자랑해서 우월감을 느낄 목적이었기 때문에 홀린 것이고, 그 때문에 화사에게 돈을 펑펑 쓰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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