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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지도로 보는 세계 15. 동부 및 중부유럽편(하)

마드리갈, 2024-09-24 12:06:42

조회 수
194



2024년을 맞이하여 시작된 폴리포닉 월드 포럼의 프로젝트인 100년 전 지도로 보는 세계의 열다섯번째는 동부 및 중부유럽편(하)로 결정되었어요.
이번에도 이 지도의 편집에 TheRomangOrc님께서 힘써주셨어요.
이 점에 깊이 감사드리면서 원본 및 편집된 지도를 같이 소개할께요.

원본이 일본어 사용자를 상정한 일본국내의 출판물인만큼 1924년 발행 당시의 일본의 관점을 그대로 보일 수 있도록 원문표현은 가능한 한 충실하게 번역했다는 점을 명시해 드릴께요. 해당 표현에 대해서만큼은 저의 주관이 배제되었으니 그 점을 꼭 염두에 두시길 부탁드려요.

그러면 원본을 소개할께요.
당시 표기방식은 가로쓰기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방식이예요. 게다가 현대일본어가 아닌 터라 한자 및 히라가나의 용법도 현대일본어와는 차이가 여러모로 두드러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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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TheRomangOrc님께서 편집해 주신 한글화 지도를 소개할께요.
손글씨로 표기된 것은 자연관련 사항으로 갈색은 산지, 남색은 해양, 녹색은 국가 및 속령, 보라색은 도시, 검은색은 기타 특기사항인 반면, 고딕체로 표기된 것은 각 지역의 특이사항이니까 참조해 주시면 좋아요.
원문자에 대해서도 이런 원칙이 있어요. 적색 테두리의 흰 원 내의 검은색 알파벳 원문자는 각 지역의 상황, 그리고 청색 테두리의 검은 원 내의 흰색 번호 원문자는 추가설명이 필요한 각 지역에 대한 표시임에 주목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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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urtesy of TheRomangOrc




여기에서는 다루는 범위도 꽤 넓은데다 설명해야 할 항목도 매우 많고 국가명이 오늘날의 것과 같더라도 국가들의 성격이 매우 다르다는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어요. 특히 독일은 바이마르 공화국 체제였는데다 국토가 본토와 동부의 월경지인 오스트프로이센(Ostpreußen)으로 분단되어 있었고, 이탈리아는 이탈리아 왕국이면서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 1883-1945)가 1922년부터 총리가 되어 있는 상태인 한편 유고슬라비아 또한 군주국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셔야 해요. 그리고 소련은 이미 건국된 상태였지만 소련 해체 직전의 소련과는 달리 구성국도 적고 제정러시아가 소련으로 이행중인 혼란기여서 국가로서의 기틀은 여전히 잡히지 않은 상태이고 폴란드의 강역도 현대와는 크게 다르다는 것을 감안하실 필요가 있어요.



그러면, 이전에 공지해 바와 같이, 하편에서는각 지역에 대해서 다루어 볼께요.
청색 테두리의 검은 원 내의 흰색 번호 원문자항목. 1부터 23까지 23개 항목이 있어요.
지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보는 감각으로 보시면 23번 항목의 비엔나가 지도 중앙에 있음을 발견하실 수 있어요. 그 순서를 따르시면 읽기 편리하니까 추천드릴께요.


1. 킬
독일 북부의 해안도시 킬(Kiel)은 유틀란트반도 남동부의 항구도시이자 1887년에 기공되어 1895년에 준공 후 개통된 카이저빌헬름운하(Kaiser-Wilhelm-Kanal)의 동단(東端)에 위치한 도시이기도 해요. 이 운하는 독일제국이 발트해의 제해권을 장악하는 덴마크의 영향을 벗어나기 위해 북해와 발트해를 잇는 98km(=61마일) 길이의 운하로, 오늘날에는 1948년에 공식명이 노르트-오스트제 카날(Nord-Ostsee-Kanal)로 지어졌고 동단의 도시 킬의 이름을 딴 킬운하(Kiel Canal)로 통칭되고 있어요. 참고로 발트해는 독일어로는 라틴어 지명인 마레발티쿰(Mare Balticum)의 역어인 발티쉬메어(Baltisches Meer)라는 이름 이외에도 동쪽의 바다를 의미하는 오스트제(Ostsee)로도 불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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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이 운하가 있고 없음은 이렇게 지도에서 드러나게 되어요.
빨간색 점선이 기존항로, 파란색 점선이 킬운하를 통했을 경우의 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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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제국이 패전하면서 예의 운하는 독일이 관리하되 어느 국가든지 평시에는 국적에 관계없이 상선의 자유통항이 가능하고 전시에는 독일과의 우호국의 선박에게 개방된 국제수로(国際水路, International Waterway)로 지정되었어요. 그 지위는 1936년에서 1945년까지 정지되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다시 국제수로로 운영중에 있어요.


2. 베를린
독일의 수도 베를린(Berlin)은 기원전 6만년 정도에서부터 정착촌이 생긴 이래 중부유럽의 인간활동의 중심지로 중요성이 더해졌고, 도시로서 본격적인 개발이 추진된 것은 1157년부터였어요. 당시의 변경백(辺境伯, Markgraf) 알브레히트 데어 베어(Albrecht der Bär, 1100-1170)가 브란덴부르크 변경백령(Markgrafschaft Brandenburg)의 수도로서 설립한 것이 최초였어요. 베를린의 상징에 곰이 들어간 이유는 그 알브레히트 변경백의 상징이 곰이었던 것에 유래하고 있어서예요. 곰의 독일어는 베어(Bär)로, 영어의 베어(Bear)와는 철자만 다르다는 것도 이렇게 증명되어요.
그 이후 베를린은 30년 전쟁의 피해를 입어 인구의 절반이 사라질 정도로 초토화되었다가 재건이 이루어졌고 프랑스를 탈출한 신교도인 위그노(Huguenots)를 비롯하여 여러 나라 출신자들이 대거 유입되어 국제도시로 발전했고 이 변경백령이 프로이센 공국(Herzogtum Preußen)과의 동군연합의 형태로 프로이센 왕국(Königreich Preußen)으로 재출범하여 1701년부터 베를린이 프로이센 왕국의 수도로 지정되었어요. 그 이전까지의 수도는 후술하는 쾨니히스베르크였지만.

이 베를린은 일시적으로 제정러시아의 점령하에 있기도 했고 나폴레옹 전쟁 당시 프랑스군이 진군하기도 하는 등의 수난을 겪기도 했지만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대거 발전하여 오늘날의 형태에 가깝게 재편되었는가 하면 독일제국의 수도가 된 이후로는 독일 표현주의(Deutscher Expressionismus) 예술사조의 본산으로서도 명성을 드높였어요.
베를린의 면적인 오늘날의 크기인 883평방km로 확정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20년에 베를린 신자치체설립법(Gesetz über die Bildung einer neuen Stadtgemeinde Berlin)이라는 법률이 통과되면서부터였어요. 이렇게 되면서 도시면적이 종래의 66평방km에서 13배 이상으로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베를린 시민인구도 400만명을 넘게 되어 대륙유럽 최대의 도시권이 이렇게 한 세기 전에 탄생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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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베를린 옆에 그려진 쌓여진 책 위의 해골의 의미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발행된 것이어서 그것과 관련이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긴 해요. 세계문화사의 정점에 있던 유럽이지만 그 땅에서 일어난 전쟁은 "유럽문명의 자살" 이 되었으니.


3. 드레스덴
독일 남동부의 작센주(Freistaat Sachsen)의 주도인 드레스덴(Dresden)은 엘베강(Fluss Elbe) 상류에 입지한 독일 동부지역의 문화거점이예요. 독일의 강역이 되기 전에는 슬라브인들이 정착하기도 했고, 작센의 주도가 된 것은 나폴레옹 전쟁을 계기로 나폴레옹이 세운 작센왕국의 수도로 지정된 1806년부터.

이 도시는 18세기 후반 이후 음악사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 독일의 음악가들이 많이 활동한 무대로도 알려져 있어요. 비교적 그 위상은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 밀리기는 하지만, 칼 마리아 폰 베버(Carl Maria von Weber, 1786-1826) 및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 등의 작곡가들이 자신의 음악작품을 드레스덴에서 초연하는가 하면 이 지도의 작성시점인 1924년에는 독일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1864-1949) 또한 이 도시에서 활약했고 1905년작 오페라 살로메(Salome) 및 1924년작 오페라 인터메조(Intermezzo) 또한 드레스덴에서 초연되었어요.
드레스덴을 거점으로 하는 대표적인 음악단체 하면 역시 1548년에 설립된 관현악단 및 합창단인 슈타츠카펠레 드레스덴(Staatskapelle Dresden)을 꼽을 수 있어요. 그리고 1924년 당시에는 독일 오페라 지휘의 거장인 프리츠 부쉬(Fritz Busch, 1890-1951)가 수석지휘자였어요. 또한 세계적인 명성을 구가하는 소년합창단인 드레스덴 십자가합창단(Dresdner Kreuzchor)도 유명해요.

또한 드레스덴의 아름다운 건축문화도 빼놓을 수 없어요. 그 대표작이 드레스덴 츠빙어궁전(Dresdner Zwi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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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Zwinger with Semperbau,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웹사이트, 영어

4. 단치히
제1차 세계대전의 결과 독일제국이 해체되자 독일제국, 제정러시아 및 오스트리아가 분할지배하던 폴란드의 독립이 성사되었어요. 이 과정에서 폴란드를 발트해에 접근시키기 위해서는 독일이 동부영토를 포기하거나 국토를 분단시키는 대신에 폴란드가 해안에 닿도록 회랑지대를 만들어야 했는데, 독일에서는 역사적 의미가 중대한 후술하는 쾨니히스베르크를 놓을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려 국토의 분단을 감수하고 신생국 폴란드에 회랑지대를 만들었어요. 그것이 바로 폴란드회랑(Polnischer Korridor)이고, 북부의 끝이자 1793년 이후 프로이센(Preußen)의 지배하에 놓였던 항구도시인 단치히(Danzig)는 1920년부터 단치히 자유시(Freie Stadt Danzig/독일어, Wolne Miasto Gdańsk/폴란드어)라는 이름의 도시국가로 독립했어요. 

1924년에 발행된 단치히 자유시의 지폐를 소개해 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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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Danzig 100 Gulden, 1924, P-55, Banknote World International 웹사이트, 영어

당시 발행된 100굴덴 지폐에는 앞면이든 뒷면이든 철저히 독일어로만 표기되어 있어요. 


5. 쾨니히스베르크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는 글자 그대로 "왕의 산" 이라는 의미로, 독일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상을 지닌 지역이자 중심도시의 이름이기도 해요. 그렇다 보니 독일제국 해체 후 폴란드를 독립시킬 당시에 독일이 국토분단을 감수하고 쾨니히스베르크를 독일령으로 유지시키는 것으로 결정했을 정도였어요. 
위의 단치히의 설명에서 보듯이 독일의 동부영토인 오스트프로이센(Ostpreußen)은 독일의 본토와 분리되어 버렸고, 이 지도의 발행시점에서 1년전에는 북동부의 메멜(Memel)은 리투아니아로 할양되어 있었고, 1945년에는 독일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해안의 북부지방은 소련령인 칼리닌그라드 오블라스트(Калининградская область)가 되고 내륙의 남부지방은 폴란드령인 바르미야-마주리현(Województwo warmińsko-mazurskie)으로 분할이관되어 2차대전 이후의 독일 현대사의 무대에서는 완전히 배제되고 말았어요. 이것에 대해서는 후술하는 렘베르크 항목도 같이 보시는 게 좋으니 같이 읽어 보시길 추천드려요.

쾨니히스베르크는 광학, 유체역학, 천문학 및 음악분야에서도 걸출한 업적을 남긴 독일의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Leonhard Euler, 1707-1783)의 유명한 위상기하학문제인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 문제(Königsberger Brückenproblem)로도 잘 알려져 있음은 물론 현대윤리학 및 현대미학의 아버지로 칭송되는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가 태어나 평생을 보냈고 그의 무덤이 위치하는 도시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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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칸트의 묘가 설치되어 있는 쾨니히스베르크 대성당(Königsberger Dom/독일어, Кафедральный собор в Калининграде/러시아어)의 벽에는 독일어 및 러시아어로 쓰여진 명판이 설치되어 있어요. 사실 이 성당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4년에 영국군의 폭격으로 일부분이 파괴되었다가 1945년에 소련에 편입되어 도시의 이름도 칼리닌그라드로 개칭되어 기공 615년만에 소련의 건물이 되었지만 손상된 상태로 방치된 역사가 있었어요. 현재의 모습은 소련이 해체되어 해당지역이 러시아의 역외영토가 된 이후인 1992년에 시작되어 1998년에 완성된 것. 그 명판 또한 그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여요. 이런 기막힌 사정은 후술하는 렘베르크 항목으로 이어져요.


6. 바르샤바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Warszawa)는 폴란드를 대표하는 대도시로 , 13세기에 설립된 이후로 발전을 거듭하여 한때는 "북방의 파리" 라는 타이틀을 얻을 만큼의 명성을 지닌 대도시로 성장하여 1596년부터는 한때 동유럽을 평정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Królestwo Polskie i Wielkie Księstwo Litewskie/폴란드어, Regnum Poloniae Magnusque Ducatus Lithuaniae/라틴어)의 수도로 군림했어요. 그러나 1795년에 프로이센에 복속된 이후로는 폴란드의 영토가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및 제정러시아에 분할되어 쥐트프로이센(Südpreußen)의 주도로 격하되기도 했고 그 시기에는 프랑스의 루이 18세(Louis XVIII, 1755-1824)가 신변을 의탁하기도 했어요. 이후 바르샤바 대공국의 수도가 되는가 하면 1830년의 11월 봉기의 무대가 되는가 하면 1915-1918년의 기간동안은 독일의 지배하에 있다가 1919-1921년의 독립 직후에 소련과 벌인 전쟁 중 1920년 바르샤바 전투에서 소련군을 격파한 전쟁터가 되기도 했어요. 이 전쟁에서 폴란드가 승전하면서 유럽을 위험하던 소련의 공산주의 수출은 일시저지되었어요. 그러나 그 승리도 그리 오래 못 갔고, 1945년에 제2차 세계대전에 끝난 이후 폴란드는 철저히 소련의 지배하에 놓이면서 수도 바르샤바에는 결국 소련의 상징이 크게 각인되어요. 아래에 소개되는 사진에도 나오는 237m(=778) 높이의 거대한 건물로 소련의 건축가 레프 블라디밀로비치 루드네프(Лев Владимирович Руднев, 1885-1956)가 설계한 통칭 "7자매" 중의 하나인 문화과학궁전(Pałac Kultury i Nauki)이 1955년에 완공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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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7. 렘베르크
렘베르크(Lemberg)라는 이 독일식 지명을 지닌 도시는 레오폴트슈타트(Leopoldstadr)로도 불렸던 곳으로 1924년 당시에는 폴란드의 도시 르부프(Lwów)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의 지배하에 편입된 이후에는 러시아어 명칭인 르이보프(Львов)로 개칭되고, 소련 해체 이후에는 우크라이나의 도시가 되어 현재는 우크라이나어 표기인 르비우(Львів)로 불리고 있어요.

이 도시가 왜 이렇게 복잡한 역사를 지니게 되었는지는 아래에 소개되는 지도로 설명해 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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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SOVIET INVASION OF POLAND: LEGACY OF CURZON LINE, 2012년 9월 12일 Polish Greatness (Blog) 기사, 영어

폴란드가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및 제정러시아에 분할점령되었는데 남부내륙의 르부프(Lwów)는 옅은 청회색으로 표시된 오스트리아령이 되면서 지명 또한 독일어 이름인 렘베르크로 바뀌었어요. 이것이 제1차 세계대전의 전후처리 때까지 이어졌고, 비록 세계를 잇는 해저케이블 및 무선통신이 운용중이어서 실시간통신도 가능했지만 당시의 정보수집 및 전달능력이 오늘날의 수준만큼 높은 것은 아니었으니 대외적으로는 역시 기존의 독일식 지명인 렘베르크로 불리는 것이 지극히 당연했을 거예요. 1924년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시점에서 불과 6년 뒤였고 베르사이유 강화조약 및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 체제가 출범한지는 겨우 4년밖에 안 되었으니까 이 방면의 정보가 신속하게 업데이트되었을 것은 기대하지 못할 거예요.

그러면 이제는 전후체제의 폴란드의 강역 변화에 대해서.

Map of Curzon line, ethnic divisions 1912, borders.jpg
이미지 출처

저렇게 폴란드의 강역이 정해진 것은 영국의 정치가이자 댱시 영국의 외무장관이었던 조지 커즌(George Curzon, 1859-1925) 후작이 제안한 커즌라인(Curzon Line)에 기반하고 있어요. 소련이 폴란드와의 전쟁에 패한 이후 커즌라인 A 이동(以東)의 소련의 강역이 폴란드로 이관되면서 렘베르크가 폴란드의 도시인 르부프가 되었고, 쾨니히스베르크가 있는 오스트프로이센(East Prussia/영어)은 독일령으로 남게 되었어요.
이 조치에 대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망함에 따라 소련은 폴란드의 그 동부영토를 모두 회수하는 한편, 폴란드에 대한 유화책 및 독일에 대한 전후처리를 겸하여 독일의 동부영토 상당부분을 폴란드로 귀속시키는 방식으로 폴란드의 국토를 서쪽으로 밀어내 버렸어요. 그렇게 해서 독일과 폴란드의 국경은 지도의 왼쪽 가장자리의 붉은 점선인 오더-나이세 라인(Oder-Neisse Line)으로 정해졌어요. 이렇게 형성된 폴란드의 영토는 대략 12세기 쯤의 폴란드인의 영역과 거의 일치하는 형태가 되었고, 폴란드 공산정권의 지도자인 블라디슬라프 고물카(Władysław Gomułka, 1905-1982)는 그렇게 할양받은 구 독일영토를 회복영토(Ziemie Odzyskane)로 지칭했어요. 
이 과정에서 오스트프로이센의 북부 해안지대가 분리되면서 소련으로 귀속되어 소련의 공산주의 혁명가인 미하일 이바노비치 칼리닌(Михаил Иванович Калинин, 1875-1946)을 기념하는 의미로서 칼리닌그라드로 개칭되고 르부프는 소련의 도시 르이보프로 편입되었어요.

그리고 1991년. 우크라이나가 소련으로부터 이탈했는데, 당시의 르이보프는 우크라이나의 강역에 속해 있었어요. 그렇게 다시 바뀌어 우크라이나의 도시 르비우로 개명되었지만, 이렇게 전세계적으로 불리게 된 것은 2022년에 발발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이 그 계기가 되었어요. 한동안 러시아어 이름으로 불리던 우크라이나의 도시들은 그 전쟁을 계기로 우크라이나의 지명을 우크라이나어어 명칭으로 불러 달라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호소에 따라 키예프, 르이보프 및 하리코프 등으로 알려진 도시들은 각각 키이우, 르비우 및 하르키우로 새로이 불리고 있어요.

2022년부터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서 폴란드가 우크라이나를 여러모로 돕고 있는 것도, 서부지역이 비록 다른 나라의 땅이 되긴 했지만 그 곳의 사람들이 결국은 동향인(同郷人)이나 다름없다는 정서에 기인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8. 부다 및 페스트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Budapest)는 원래는 부다와 페스트라는 다뉴브강(Danube River) 양안에 각각 세워진 독립된 도시였다가 1873년에 부다페스트라는 이름을 얻었어요. 19세기 후반에 후술하는 비엔나에 필적할 정도로 문화거점으로 빛났던 부다페스트는 다뉴브강(Danube River) 유역 제2의 도시이자 유럽 전체에서 9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기도 해요.

아래의 사진의 왼쪽 부분이 부다, 오른쪽이 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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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Explore Budapest, Hungary, THREE CORNERS 웹사이트, 영어

지도에 나오는 춤추는 여성무용수는 독일의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가 작곡한 21개의 춤곡으로 구성된 헝가리무곡(Ungarische Tänze)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여요. 특히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것은 1869년에 출간된 제1권의 5번째 곡인 F#단조의 것. 일본의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小澤征爾, 1935-2024)의 지휘로 헝가리 교향악단이 연주하는 영상으로 감상해 볼께요.



9. 부카레스트
부카레스트(Bukarest)란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București)의 영어 및 독일어식 표현. 지도의 발행시점인 1924년도 그렇고 오늘날도 일본에서는 루마니아의 수도를 부카레스트(ブカレスト)라는 표기로 일관되게 표현중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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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1459년에 처음으로 그 존재가 언급되었고 1862년부터 루마니아의 수도가 되어 온 부카레스트는 작은 파리(Micul Paris) 및 동유럽의 파리(Parisul Estului)라는 이명을 얻을 정도로 건축물도 아름답고 각종 예술사조의 혜택을 보기도 한 도시로, 다뉴브강의 지유인 딤보비차강(Dâmbovița) 및 주변의 여러 호수 등 수주원도 풍부하여 유럽의 내륙수운의 혜택을 많이 입기도 했어요.
또한,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1916년의 부카레스트 전투의 전장이 되어, 독일, 불가리아 및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지배하에 놓이기도 했어요.


10. 소피아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София)는 불가리아의 최대도시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슬라브인들의 영역이면서도 슬라브식 이름이 아닌 지혜를 뜻하는 그리스어 유래의 이름을 가진 특이한 도시예요. 이름의 유래는 6세기에 완성된 교회인 성 소피아 성당(Света София). 이전에도 다양한 이름이 있기는 했지만, 현재의 이름으로 굳어지기 시작한 것은 의외로 오토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시기였어요. 이전에 불리던 세르디인의 도시라는 의미인 스레드네체스키(Срѣдечьскои)로 불렸는데 오토만 제국은 소피아라는 이름을 선호해서 이 이름이 뿌리내리기 시작했고 1879년의 대논쟁 끝에 소피아라는 이름이 확실히 우세해져 오늘날에 이어져 있어요. 즉 이슬람제국인 오토만 제국이 의외로 관대한 면이 있었던 것도 소피아의 이름에서 엿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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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Sofía, TurismoBulgara.es 웹사이트, 스페인어

불가리아는 여러모로 일본과 접점이 많은데다 친숙하기도 해요.
우선은 요구르트. 실제로 일본의 메이지유업(明治乳業)의 요구르트 상품 중에 불가리아요구르트(ブルガリアヨーグルト, 사이트 바로가기/일본어)라는 제품군이 있어요. 요구르트가 건강에 좋다는 것은 알려져 있고, 오늘날의 우크라이나의 강역인 말라야루스(Малая Русь, 소러시아) 출신의 미생물학자로 1906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일리야 메치니코프(Илья Мечников, 1845-1916)가 불가리아를 방문했을 당시 요구르트를 많이 섭취하는 사람들 중에 고령자가 많은 것에 주목하여 요구르트가 장수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가설을 세우기도 했어요. 비록 오늘날의 연구에서는 요구르트가 건강에 좋긴 하지만 그게 반드시 불로장생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다고 결론이 나오기는 했지만...
게다가, 일본에는 코토오슈 카츠노리(琴欧洲勝紀,)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불가리아 출신의 전직 스모선수 안도 카로얀(安藤カロヤン, 1983년생)도 큰 인기를 얻고 있어요. 위에서 언급한 불가리아요구르트의 광고에도 출연했구요.
창작물에서는 연애플롭스(恋愛フロップス)라는 애니의 캐릭터가 급거 변경된 사태가 있었어요. 2022년 4분기에 방영된 이 애니의 원안에서는 일리야 일류힌(イリヤ・イリューヒン)이라는 미소년 캐릭터의 국적이 원래는 러시아였으나 그해 1분기에 발생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국적이 러시아에서 불가리아로 변경되기도 했어요. 그만큼 불가리아가 일본에 친숙한 나라이다 보니 설정을 급거 변경하는 데에도 바로 활용될 수 있었던 것으로 여겨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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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플롭스, 후지TV FOD 웹사이트, 일본어)

위의 이미지에 있는 은발의 미소년이 바로 일리야 일류힌이지만 사실은 본명 이리나 일류히나(イリーナ・イリューヒナ)라는 소녀. 불가리아 또한 러시아와 같이 슬라브어권인데다 대부분의 경우 성씨가 여성에 사용될 경우 격변화한다는 점을 노려서 만들어진 설정이었음이 후에 등장해요.


11. 콘스탄티노플
비잔틴제국의 수도 및 오토만제국의 수도를 거친 이 도시는 현대의 터키공화국이 설립되면서 수도가 앙카라(Ankara)로 달라졌다 보니 더 이상 수도의 지위를 가지지는 않지만, 지금도 터키 인구의 19% 정도를 차지할 정도의 거대도시로 터키의 경제 및 문화의 중심지로 군림하고 있어요. 비록 1730년에 도시명이 오토만 터키어 표기인 이슬람볼(Islambol)로 쓰이기 시작하여 현대 터키어 표기인 이스탄불(Istanbul)로 정착되어 있긴 하지만, 콘스탄티누스 대제(Flavius Valerius Constantinus, 272-337)의 이름에서 유래한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이라는 영어명도 통하고 있어요. 오늘날에도 그리스어로는 콘스탄티노폴리(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η) 내지는 그냥 도시를 의미하는 이 폴리((η Πόλη)로 쓰이기도 해요.

역시 이 도시의 특징이라면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인 보스포루스해협(Bosphorus Strait) 그리고 9편에서 언급했던 하기아 소피아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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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hort stroll through the Bosphorus Strait, 2018년 10월 12일 gbnews.ch 기사, 영어

이렇게 이스탄불 시내를 가로지르는 이 보스포루스해협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지정학적 중요성이 주목받아 이 지도의 발행시점에서 12년 뒤인 1936년에 스위스의 몽트뢰(Montreux)에서 체결된 국제조약인 해협제도에 관한 조약(Convention concernant le régime des détroits)으로 평시에는 모든 민간선박의 통항의 자유를 누리되 전시에는 터키 정부의 방침에 따라 제한이 가능하고 전함 및 항공모함은 아예 이용할 수 없도록 규제되었어요. 체약국은 호주, 불가리아, 프랑스, 그리스, 일본, 유고슬라비아, 터키, 영국 및 소련의 10개국인데 유고슬라비아와 소련은 현재는 없어진 나라가 되었어요. 


12. 스미르나
이 지역은 지금의 터키 서부의 해안도시이자 이스탄불(Istanbul) 및 수도 앙카라(Ankara)에 이어 인구 3위의 대도시인 이즈미르(İzmir). 지도에 나온 이 이름은 고대 그리스어 표기인 스미르나(Σμύρνη)에서 유래해요.

이 도시는 의외로 일본과의 접점이 있어요.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19년에 발발하여 3년간 이어진 그리스와 오토만제국 사이의 전쟁인 희토전쟁(希土戦争, Μικρασιατική Εκστρατεία/그리스어. Batı Cephesi/터키어)에서 1922년에 오토만제국이 승리하자 그리스인들과 아르메니아인들이 박해를 피하여 이 스미르나에서 배를 타고 그리스로의 도항을 선택했어요. 1922년 당시 당시 일본의 상선 토케이마루(東慶丸)는 다른 나라의 선박과는 달리 수송중인 화물을 버리고 그들을 태워서 피신시킨 것으로도 유명하고 그 결정을 내린 선장 히비 사조(日比左三)는 "에게헤의 은인" 이라는 칭송을 받으며 그리스에서 가장 유명한 일본인이 되었어요. 이것이 인연이 되어 히비 사조의 어머니가 그리스정교로 개종하여 열렬한 신자가 된 등의 사정이 뒤따랐어요. 이 선행이 일본에서는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1922년 당시 토케이마루를 타고 피신에 성공한 그리스인 및 아르메니아인의 후손들의 증언을 추적한 결과 선박과 선장의 실체가 확인되었고 그 탈출 100주년을 맞아서는, 그 히비 사조의 후손이 아이치현(愛知県)의 치타반도(知多半島)에 거주중인 것도 확인되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기도 했어요. 

이 일에 대해 아르메니아의 일본학자가 도쿄신문(東京新聞)과 인터뷰를 한 신문기사의 스크랩이 있어요. 이것을 소개해 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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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17일 국제예술가센터 페이스북 페이지, 일본어)

그 토케이마루의 기적에 대해서는 이렇게 기록사진이 남아 있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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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의 위기를 구한 일본의 선박, 2018년 10월 12일 일본경제신문 기사, 일본어)


예의 히비 사조의 구난활동에 대해서는 그리스에서 자호스 사몰라다스(Ζάχος Σαμολαδάς, 1967년생) 감독의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기도 했어요. 
그것도 같이 소개해 볼께요.


또한, 스미르나라는 지명은 터키에서는 이제 과거의 것이 되었지만, 미국에서는 그리스계 이주민들이 세운 정착촌이나 도시 등에 스미르나(Smyrna)라는 이름을 채택한 곳이 꽤 있어요. 그 중 테네시주(State of Tennessee)의 도시 스미르나는 인구 5만명 규모로 주내 3위 규모의 공항인 스미르나 공항(Smyrna Airport)도 있어요.


13. 아테네
그리스의 수도인 아테네(Αθήνα)는 정확한 그리스어로는 "아테나" 로 발음되어요. 즉 그리스 신화의 지혜의 여신인 아테나와 표기가 같아요. 영어표기는 Athens로 발음은 "애씬즈" 인데, 그러면 이 발음은 어디서 왔을까요? 사실 이것은 프랑스어 표기인 Athènes의 발음을 옮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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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hens, Visit Greece 웹사이트, 영어

아테네는 그리스 신화의 발원지로, 인간이 계속 정착한지 5천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 제일의 고도(古都). 서양문화의 발원지이자 아테네 민주주의의 황금기에 등장한 위대한 인물은 문필가 소포클레스(Sophocles, 497/496BC-406/405BC), 역사가 헤로도투스(Herodotus, 484BC-425BC) 및 투키디데스(Thucydides, 460BC-400BC), 의학자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460BC-370BC), 철학자 소크라테스(Socrates, 470BC-399BC) 등이 있어요.
아테네는 펠로포네소스 전쟁 때는 스파르타(Sparta)에 패배하는가 하면 중세에는 사라센들의 침임을 받아 대거 파괴되는가 하면 십자군의 지배를 받기도 하고 비잔틴 제국의 멸망 이후로는 오토만 제국의 치하에 놓였다가 1822년에는 그리스인들의 봉기로 일시적으로 해방되기도 했고, 그리스가 8년간의 전쟁 끝에 독립에 성공한 이후 1834년부터 그리스의 수도로 지정되었어요. 그리고 1896년, 근대 올림픽의 첫 경기가 바로 그리스 아테네에서 개최되었어요.


14. 벨그라드
벨그라드(Belgrad)는 세르비아의 수도이자 베오그라드(Београд)라는 세르비아어 표기의 영어 및 헝가리어 명칭. 역시 이 도시도 다뉴브강 유역에 있어요.
문제는 지도에 나와있는 "권총 1발에 세계평화가 깨지다" 라는 표현인데, 그것이 제1차 세계대전을 촉발한 오스트리아 황태자부부 암살사건인 건 맞지만 일어난 장소는 벨그라드가 아니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Sarajevo/영어, Сарајево/세르보-크로아티아어)였어요. 암살범 가브릴로 프린치프(Гаврило Принцип, 1894-1918)가 범행당시 19세이긴 했지만 꽤 노안이었던 것은 사실에 거의 부합하게 묘사되어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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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베네치아
이 지도에서는 이탈리아 각지의 주요도시 4개가 소개되지만 표기방식이 일관되지 않아요. 영어식으로 표기된 것은 베네치아, 나폴리 및 제노바로 지도에서는 각각 베니스, 네이플즈 및 제노아로 표기되어 있는 반면, 로마의 경우는 이탈리아어식으로 표기되어 있는 등 일정치 않은 점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실 필요가 있어요.

영어 및 프랑스 표기인 베니스(Venice)로 잘 알려진 베네치아(Venezia)는 "물의 도시" 라는 수식어로 모든 게 설명되는 아름다운 관광도시.
126개의 섬이 472개의 다리로 이어진 아드리아해(Adriatic Sea) 북부연안의 이 도시는 기원전 10세기부터 정착촌이 설립된 이래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여 697년에는 베네치아 공화국(Serenissima Repubblica di Venezia/이탈리아어, Serenìsima Repùblega de Venexia/베네치아어)이 설립되어 나폴레옹 전쟁 당시 프랑스군의 침공을 받아 결국 1797년에 멸망 후 지배세력이 바뀌다가 결국 1866년에 이탈리아 왕국에 편입되었어요. 물의 도시가 된 것은 그 베네치아 공화국이 수상 그리고 육상으로부터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서 그렇게 섬 위에 도시를 만들고 그 섬들을 간척하여 넓히고 다리를 놓아 잇는 식으로 강력한 해상거점을 만든 것에서 유래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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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nezia, VENETO.INFO 웹사이트, 이탈리아어

베네치아 하면 이 노래도 빼 놓을 수 없죠.
1984년 10월 31일에 미국의 가수 마돈나(Madonna , 1958년생)가 발표하여 당시 세계를 석권한 노래인 라이크 어 버진(Like a Virgin, 처녀처럼). 음악제작자는 미국의 톰 켈리(Tom Kelly, 1952년생) 및 빌리 스타인버그(Billy Steinberg, 1950년생). 같은 해 11월 10일에 전세계에 이 뮤직비디오가 세계에 공개되었어요. 


메리 램버트(Mary Lambert, 1951년생) 감독의 이 뮤직비디오는 미국의 뉴욕(New York) 및 수로로 된 베네치아의 골목길 각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요. 노래도 영상도 40년 전의 것이지만 결코 퇴색될 일이 없고, 지도에 기재된 100년 전의 베네치아도 영상 속의 40년 전의 베네치아도 현대의 베네치아도 이렇게 매력적인 도시로 남아 있어요.


16. 로마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이 한 마디면 이탈리아의 수도임은 물론 서양사의 중심도시인 로마(Roma)의 중요성은 더 말할 필요성도 없을 듯해요.
특이하게도,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와는 달리 로마만 이탈리아어 표기로 기재되어 있어요. 사실 영어로는 롬(Rome)이고, 영어에서의 Roma는 인도아리아족에 속하는 유랑민족인 집시(Gypsy)의 다른 명칭으로 통하니 주의가 필요해요. 

그리고 로마제국의 도로는 그 말에 부합하는 광대하고 정밀한 네트워크 그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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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이탈리아 제일의 도시이자 유럽에서 인구가 3번째로 많은 대도시인 동시에 내부에 바티칸 시국(Stato della Città del Vaticano/이탈리아어, Status Civitatis Vaticanae/라틴어)가 있는 특이한 구조의 도시. 이름은 전설의 왕인 로물루스(Romulus)의 이름에서 유래한다고 알려져 있고 그렇게 로물루스 왕의 설립 이래 28세기에 걸쳐 유구한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서구문명의 본산이자 가톨릭의 중심이기도 해요. 또한 이 장구한 역사 덕분에 도시 곳곳이 살아 있는 박물관이기도 한데다 관광객의 수는 280만명의 인구의 3배를 넘는 860만명. 
이탈리아의 통일이 19세기 후반에야 달성되었다 보니 이탈리아의 수도로서의 로마의 역사는 1870년부터라서 비교적 짧은 편. 지도의 발행시점인 1924년에는 수도가 된 지 불과 54년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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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고대에는 중심이 되는 도시라는 의미의 우르브스(Urbs)로 불리기도 했고, 로마가 아닌 곳은 정무관(政務官, Magistratus)이 다스리는 지역이라는 의미의 프로빈치아(Provincia)로 불렸어요. 지금은 우르브스라는 말 자체는 사어이지만, 프로빈치아라는 말은 오늘날에는 프로빈스(Province)라는 영단어가 되어 캐나다의 주 및 우리나라의 광역지방자치단체인 도(道)를 가리키는 용어로 정착해 있어요.


17. 나폴리
지도상에는 영어식인 네이플즈(Naples)로 표기되어 있지만 여기서는 이탈리아어 표기인 나폴리(Napoli)로 표기할께요.
나폴리는 로마 및 밀라노(Milano)에 이어 이탈리아 제3의 인구를 기록하는 대도시로 그 역사는 기원전 1천년대까지로 소급되는 유럽 내에서도 특히 유서깊은 도시로 유명해요. 그리스인들이 세운 이 도시는 661년부터 1139년까지는 나폴리 대공국의, 1282년부터는 나폴리 왕국의 수도였고 이탈리아가 통일된 1861년에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대도시로 자리잡아 있어요. 또한 바로크 문화의 수도이자 인본주의 및 계몽주의 사상이 꽃핀 유럽 정신사의 중심지이기도 한 이 도시는 바로크 음악에서 나폴리 학파(Scuola musicale napoletana)의 본산이기도 했어요. 그 학파의 주요 작곡가는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Alessandro Scarlatti, 1660–1725), 친척인 쥬세페 스카를라티(Giuseppe Scarlatti, ?-1777), 알레산드로의 아들인 도메니코 스카를라티(Domenico Scarlatti, 1685-1757) 및 피에트로 필리포 스카를라티(Pietro Filippo Scarlatti, 1679-1750), 비록 요절했지만 18세기 전반의 이탈리아 바로크 음악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죠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지(Giovanni Battista Pergolesi, 1710-1736) 및 1994년에 공개된 음악영화 파리넬리(Farinelli)에도 언급되는 니콜라 포르포라(Nicola Porpora, 1686-1768) 등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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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poli, Vesuvio, Pompei, Costiera Amalfitana, Reggia di Caserta 5 giorni, Viaggi in..altalena 웹사이트, 이탈리아어

나폴리 하면 유럽에서는 흔치 않은 화산인 1,281m(=4,203피트) 높이의 베수비오(Vesuvio)가 있는 것도 유명해요. 그리고 그 베수비오 화산은 79년의 분화로 당시에 번성했던 도시인 폼페이(Pompeii)를 하루아침에 멸망시킨 것으로도 악명높아요. 사실 폼페이는 한동안 그 존재가 전설로만 치부되어 여러 차례의 검증이 시도되었지만 본격적인 발굴이 추진된 것은 프랑스군이 나폴리를 점령한 1799년부터였고 그 뒤의 더욱 대대적인 발굴은 1863년에 이탈리아의 고고학자인 쥬세페 피오렐리(Giuseppe Fiorelli, 1823-1896) 주도로 이루어졌어요. 또한 20세기에 들어서는 이탈리아의 고고학자인 아메데오 마이우리(Amedeo Maiuri, 1886-1963)가 1924년부터 발굴을 추진해서 1950년대에 완료했어요. 그 마이우리의 발굴은 세계최초의 과학적인 발굴조사, 분석 및 자료출판으로 세계의 고고학의 역사 자체를 바꾸었어요.
또한 시칠리아(Sicilia)에 있는 화산인 3,403m(=11,156피트) 높이의 에트나(Etna) 또한 이탈리아의 유명한 화산. 이 화산은 지도의 발행시점에서 1년 전인 1923년 6월 6일에서 6월 29일까지 대거 분화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어요. 이탈리아에서 이 화산보다 더 크게 분화한 것은 베수비오밖에 없어요.

에트나 화산은 이렇게 계속 분화중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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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제노바
지도상에는 영어식인 제노아(Genoa)로 표기되어 있지만 여기서는 이탈리아어 표기인 제노바(Genova)로 표기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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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oa, ITALIA.IT 웹사이트, 영어

이탈리아 북서부의 이 도시는 이탈리아 제6의 도시이자 11세기에서 18세기말까지는 지중해의 제해권을 장악했던 가장 강력한 왕국의 수도였고 르네상스 시대에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로서의 명성을 떨쳤어요. 게다가 이 지도에는 나오지 않은 밀라노(Milano) 및 토리노(Torino)와 함께 이탈리아 북서부의 경제삼각지대를 형성하는 한 축으로서의 명성이 높아요. 
이 도시에는 이미 1853년부터 전력회사인 안살도 에네르기아(Ansaldo Energia)가 세워져 지금도 같은 이름으로 계속 운영중이고, 그 이외에도 소형 터보프롭 항공기의 명가로서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피아지오 에어로스페이스(Piaggio Aerospace)로도 있어요. 이 회사는 1884년에는 조선소 및 철도차량 제작공장으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항공기제조사인 이 회사는 이 지도의 발행시점인 1924년에는 리날도 피아지오 주식회사(Rinaldo Piaggio S.p.A.)라는 이름으로 이미 자사개발의 항공기 모델도 둘이나 있었어요. 게다가 1세기 전 그 시점에 활동했던 항공엔지니어 중에는 쥬세페 가브리엘리(Giuseppe Gabrielli, 1903-1987)가 있었고, 그가 설계한 쌍발 터보프롭 수송기인 아에리탈리아(Aeritalia) G.222는 1970년에 첫 비행을 했고 그 G.222의 개량형으로 아래의 이미지에 소개된 레오나르도(Leonardo) C-27J는 지금도 생산중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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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27J Spartan lives up to expectations in Peru, 2019년 5월 14일 Leonardo 프레스릴리즈, 영어

이 도시 출신의 유명인이라면 역시 컬럼버스를 거명해야겠죠.
사실 크리스토퍼 컬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1506)라는 이름은 이탈리아어 표기의 크리스토포 콜롬보(Cristoforo Colombo)의 영어식 표현. 그의 출신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긴 하지만 일단은 제노바가 정설이고 꽤 일찍부터 선원으로서의 생활을 시작해서 지중해는 물론이고 대서양의 영국, 아일랜드 및 포르투갈 등도 방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그리고 인도에 당도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싶다는 열망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사라센 세력을 일소한 레콩키스타(Reconquista)를 완성시켜 "스페인의 여왕" 으로도 기념되는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1세 여왕(Isabella I, 1451-1504)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아 레콩키스타가 완료된 1492년 그 해의 8월 3일에 5척 규모의 탐험선단이 꾸려져 출범했어요.


19. 마르세이유
프랑스 제1의 도시 하면 누구나 수도 파리(Paris)를 꼽겠지만, 그럼 제2도시는 과연 어디일까 하는 의문은 충분히 가질 수 있을 거예요. 그 의문에 대한 저의 대답은 마르세이유(Marseilles). 인구 2위의 도시임은 물론이고 북부와 남부의 문화가 크게 다른 프랑스에서 마르세이유는 남부의 프로방스(Provence)의 문화의 명실상부한 중심지이자 그 역사가 기원전 660년으로까지 올라가는 명실상부한 프랑스에서 가장 유서깊은 도시니까요. 게다가 유럽에서 영국의 런던(London) 및 프랑스의 파리 다음으로 유태인 인구가 많은 도시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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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cover 20 Fun Facts about Marseille, France’s Oldest City, 2023년 2월 21일 EXPLORIAL 기사, 영어

지중해 연안에 자리잡아 물산이 풍부한 것으로도 명성이 높은 이 도시의 특산물은 지중해에서 나는 질 좋은 해초로 만든 전통제법의 비누가 대표적이예요. 큰 덩어리로 만들어져 필요할 때마다 칼이나 피아노선 같은 강철 와이어로 잘라서 쓰거나 처음부터 소분포장되어 나오는 그 비누는 미용에도 좋아서 저도 쓰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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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마르세이유는 세계 해운업의 메이저인 CMA CGA의 본부가 있는 도시임은 물론 잠수기술의 명가 코멕스(COMEX) 및 유럽의 헬리콥터산업을 대표하는 에어버스 렐리콥터즈(Airbus Helicopters)도 소재해 있는 등 바다와 하늘에 닿는 프랑스의 중핵도시로, 역사와 전통은 물론 최첨단산업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굉장한 곳이예요. 이걸 안다면 더 이상 파리와 사막(Paris et le désert français)이라는 말은 못할지도요?


20. 모나코
모나코(Monaco)는 프랑스의 강역 안에 있는 대공국으로, 공화국 내에 존재하면서 공화국의 군사력에 의존하는 군주국이라는 기묘한 지위를 지니고 있고, 이미 14편에서 언급되었듯이 카지노를 위시한 도박산업이 발달해 있으면서 그것을 주축으로 금융업이 발달해 있는 국가인 현실은 1세기 전에도 현재에도 다를 바가 없어요.
이탈리아 반도 서쪽의 두 큰 섬인 코르시카(Corsica)와 사르데냐(Sardegna)의 지도상 표시색이 다른 이유 또한 모나코와 접점이 있어요.
코르시카도 사르데냐도 모두 이탈리아어를 쓰는 지역이었지만 코르시카는 1769년에 프랑스 왕국에 이미 복속된 상태였고 그 직후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가 태어난 것은 유명한 사실. 그리고 사르데냐의 북부에 있는 모나코 등의 이탈리와와 가까운 지중해 연안의 지역이었지만 1815년에 이탈리아에 복속되어  보호령(保護領, Protectorate)으로 편입되었다가 1860년에 프랑스로 할양되고 사르데냐는 이탈리아 왕국에 가입한 역사가 있어요.
모나코는 그 이후로도 상당기간 절대왕정국가였지만 1911년의 모네가스크 혁명(Révolution monégasque)으로 입헌군주국으로 전환하였고 1918년에는 대공계승문제가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등 마냥 평온하지만은 않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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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Monaco Seaside In Summer HD Photo, LovePik 웹사이트, 영어

국토 전체가 2평방km를 조금 넘는 작은 도시국가이다 보니 내부치안유지는 내무부 직속으로 편성된 515명 규모의 모나코경찰서(Direction de la Sûreté Publique)라는 단일기관에서 전담하고 있어요. 이 경찰서가 일상의 출입국관리, 도로순찰, 범죄자 검거 등은 물론 해상초계도 모두 담당하고 있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종합경찰서인 셈이죠. 게다가 모나코의 경찰관은 초임의 연봉이 74,000달러(=1억원 내외)를 넘는 등 급여수준이 세계최강인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어요.


21. 배른
알프스산맥의 내부에 입지한 산악국가 스위스의 수도 베른(Bern)은 다른 도시들보다 지명도가 낮은 감이 없지 않아요. 서부의 로잔느(Lausanne)나 바젤(Basel)이라든지 중부의 루체른(Luzern)이라든지 동부의 취리히(Zürich) 등의 지역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그래도 스위스의 수도인 위상을 생각하면 절대로 가볍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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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Bern, AlpExcursion.com 웹사이트, 영어

여기서 언급해야 할 인물이 바로 일본의 등산가 마키 아리츠네(槇有恒, 1894-1989).
"마키 유코" 라는 발음으로도 잘 알려진 마키 아리츠네는 메이지(明治)-타이쇼(大正)-쇼와(昭和)의 3시대를 걸쳐 활약하고 헤이세이(平成) 시대의 개막까지 보고 95년의 생을 마친 일본 근현대사의 산 증인이자 근대 알피니즘(Alpinism)의 개척자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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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아이거 동쪽 능선 첫 등정으로부터 100년 여전히 선명한 마키 아리츠네의 궤적, 2021년 9월 10일 swissinfo.ch 기사, 일본어)

이 사진에서 보이는 키가 가장 작은 사람이 마키 아리츠네로, 1921년 9월 10일에 촬영된 모습이예요. 게다가 날짜 위에는 Yuko Maki라는 로마자 표기가 있어서 2가지로 읽을 수 있는 그의 이름이 해외에서는 주로 "마키 유코" 로 통했음도 이렇게 잘 드러나고 있어요.

케이오의숙대학(慶應義塾大学)에 재학하던 당시에 당시 교수인 카노코기 카즈노부(鹿子木員信, 1884-1949)와 함께 일본산악회(日本山岳会)를 설립하여 그 회원이 되는 등 젊어서부터 등산에 남다른 열의를 가졌던 그는 1918년에 미국 컬럼비아대학에 진학했다 중도에 자퇴한 후 다음해인 1919년부터 유럽에 체재하면서 알프스산맥의 여러 산을 등정했어요. 그리고 1921년에는 베른 남부의 그린델발트(Grindelwald)에서 현지 가이드 3명과 함께 해발 3,967m(=13,015피트)의 아이거(Eiger)에 세계최초로 등정하는 데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그 등정을 기념하여 3년 뒤인 1924년에는 1만 스위스프랑을 기부하여 아이거봉의 해발 3,355m(=11,007피트) 지점에 미텔레기휘테(Mittellegihütte)라는 현재도 운영중인 산장의 건설에도 조력을 제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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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The Mittellegi hut 웹사이트, 영어

20세기 후반에는 히말라야산맥의 미답봉(未踏峰)으로 세계에서 8번째로 높은 해발 8,163m(=26,781피트)의 마나슬루(Manaslu) 등반에도 세계최초로 성공했고 그 공적을 인정받아 영국, 스위스 및 미국의 산악회 명예회원으로 추대되기도 했어요.


22. 뮌헨
독일 바이에른(Bayern)의 주도이자 최대도시인 뮌헨(München)은 독일 가톨릭의 본산, 항공기 및 자동차의 제작사로 유명한 BMW의 본사 소재지임은 물론 하면발효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라거(Lager) 맥주의 본고장으로서 세계적인 인지도를 자랑하고 있어요.
맥주의 본고장으로서의 뮌헨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행사가 바로 10월축제를 의미하는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 이 축제는 세계최대의 대중축제(Volksfest)로 독일 국내외 600만명 이상이 참가하는 맥주, 음악공연 및 행진이 있는 축제로 유명해요. 매년 9월 중순이나 하순부터 10월 첫째 일요일까지 열리는 이 축제는 1810년 10월 12일에 거행된 바이에른 왕국의 루트비히 황태자(Kronprinz Ludwig, 1786-1868)와 작센-힐트부르크하우젠 대공의 딸 테레제 폰 작센-힐트부르크하우젠(Therese von Sachsen-Hildburghausen, 1792-1854) 공주의 결혼식을 계기로 1811년부터 이 축제가 열렸어요. 특히 테레제 공주가 결혼식장에 왕족과 귀족이외에도 뮌헨 시민들을 초청하여 그 결혼식을 국가적인 행사로 만들기도 했다 보니 그 다음해부터는 아예 이렇게 정례화된 것이었어요. 그 이후에도  바이에른의 주민들에게 매우 친화적이었고 자선사업도 많이 펼쳤던 테레제 공주는 이후 황태자가 왕위에 올라 루트비히 1세가 되자 왕비가 되었고 그 이후에도 인기가 매우 높았어요. 지금도 역시 그 테레제가 기념되고 있고, 옥토버페스트의 개최장소로 쓰이는 420,000평방m 규모의 광장은 "테레제의 공원" 이라는 의미의 테레제비젠(Theresewiese)으로 명명되어 있어요. 현지에서는 이 장소를 줄여서 옥토버페스트의 또다른 이름인 드비젠(d'Wiesn)으로 부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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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The Oktoberfest – how millions of people get cosy together, invest in bavaria 웹사이트, 영어

이 옥토버페스트가 대성공하면서 이후 전세계 각국의 맥주축제도 이것을 모범으로 삼고 있어요.


23. 비엔나
비엔나(Vienna)는 오스트리아(Austria)의 수도이자 음악의 도시로도 유명해서 음악사에 나온 유명 작곡가들의 활동무대이자 19세기에는 유럽 귀족사회에 대유행한 사교댄스음악인 왈츠(Waltz/영어, Walzer/독일어)의 발상지로서 명성이 높았어요. 사실 비엔나라는 명칭은 독일어 명칭인 빈(Wien)의 영어표기이긴 하지만, 대체로 오스트리아라는 국가 이름 자체가 독일어로 표기되는 외스터라이히(Österreich)의 영어표기인 사정상 도시명도 영어명으로 맞추었다는 것을 밝혀둬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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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Experience unique concerts! - Musikverein Wien, MUSIKVEREIN 웹사이트, 독일어

비엔나 하면 역시 1842년 창단 이래 세계 3대 관현악단으로 절대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비엔나 필하모닉(Wiener Philharmoniker)을 위시한 여러 관현악단, 1498년에 창단된 비엔나 소년합창단(Wiener Sängerknaben) 등의 각종 음악단체로도 유명한데다 역사주의 건축양식의 박물관으로 불릴만큼 유럽의 고전건축양식에서 19세기후반까지의 전 양식을 모은 각종 공공건축물 및 도시계획 또한 주목할만한 포인트. 위에 소개해 둔 이미지는 음악의 도시로서의 비엔나를 상징하는 공연장이자 비엔나 필하모닉의 본부인 비엔나 악우협회(Wiener Musikverein) 회관. 협회 자체는 1812년에 설립되었지만 저 콘서트홀은 1870년에 설립되었으니 지도의 발행시점에서는 54년 된 비교적 새로운 건물이기도 해요.

게다가 1865년 개업 이래 계속 확장되어 1899년부터 전철화가 시작된 292km 규모의 도시철도 네트워크 또한 비엔나의 자랑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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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ow to get around Vienna: Trains, trams and bike trails, 2021년 12월 13일 Lonely Planet 웹사이트, 영어

악기 중에는 전근대 내추럴호른의 설계사상을 거의 그대로 이어받으면서 19세기에 발명된 독특한 품펜펜틸(Pumpenventil) 구동 방식의 비엔나호른(Wiener Horn) 및 전근대의 오보에의 형식을 계승한 비엔나오보에(Wiener Oboe)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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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Viennese Horn, Vienna Symphonic Library 웹사이트, 영어

비엔나호른과 로터리호른의 가장 뚜렷한 차이는 크룩(Crook)이라고 부르는 교체관.
이것은 관의 길이를 바꾸어 음역을 달리하는 방식으로 여러 소리를 내는 금관악기의 특성상 조성을 바꾸는 기구를 말해요. 마우스파이프 쪽의 작은 원형으로 말린 관이 바로 그 크룩이고, 기존의 내추럴호른의 폼팩터에 밸브 구동기구만 추가한 형태로 19세기초에 발명된 비엔나호른에는 여전히 이 구조가 남아있어요. 19세기말에 독일에서 등장한 로터리호른(Rotary Horn)에는 필요가 없어서 결국 탈락해 버렸지만요. 위의 사진의 왼쪽의 비엔나호른에만 크룩이 있고, 가운데의 F/B플랫 더블호른(Double Horn) 및 오른쪽의 F/B플랫/하이F의 트리플호른(Triple Horn)은 로터리호른이라서 크룩이 없다는 것이 보여요. 


비엔나호른으로 연주된 1985년작 미국영화 백투더퓨처(Back to the Future)의 음악을 소개해 둘께요.

또한, 비엔나 오보에는 현대의 오보에의 근간인 프렌치 오보에와 다른 특징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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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Oboe, Vienna Symphonic Library 웹사이트, 영어

요즘의 오보에의 주류는 위의 그림의 아래에 나타난 프랑스식으로 이게 근대에 나타났어요. 비엔나 오보에는 전근대의 더블리드 목관악기인 숌(Shawm) 및 바로크 오보에(Baroque Oboe)의 직계로 근대의 프랑스식보다 짧고 굵은데다 리드 장착부분이 볼록하게 가공된 특징도 같이 지니고 있어요.
그럼 이번에도 비엔나 오보에의 실제 연주장면을 소개할께요.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의 작품번호 94번 오보에의 세 개의 로망스 중 두번째 곡으로.


비엔나소세지(Wiener Würstchen)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갈께요.
흔히 연상되는 비엔나소세지는 엄지손가락보다 짧은 사이즈의 것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실제 본고장의 것은 가늘고 긴데다 정작 오스트리아에서는 그것을 프랑크푸르트소세지(Frankfurter Würstl)로 부르는 일이 많다는 것. 대략 1903년부터 미국에서 오스트리아계 이주민들이 만든 짧게 만들어진 채 캔에 포장된 소세지를 제조판매하면서 등장했다는 것이 그 기원으로 알려져 있어요.




이렇게 동부 및 중부유럽편을 마쳤어요.
다음에는 프랑스 및 이베리아반도로 가 볼께요.
마드리갈

Co-founder and administrator of Polyphonic World

7 댓글

Lester

2024-10-31 10:53:14

이번에는 지역별 감상입니다.


1. 도시 이름은 영어로 들으면 식겁하기 딱 좋게 생겼지만, 운하가 있으니 거리가 꽤나 단축되네요. '카이저 빌헬름'이란 이름은 페르미 관련 위인전에서 연구소 이름으로도 등장했던 걸로 기억하는데(여기군요), 어감이 워낙 세서 기억에 잘 남았습니다. 운하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명박 전 대통령이 추진하려고 했던 4대강 혹은 대운하 사업은 이런 다국적인 용도는 아니었겠죠? 철저히 국내용이었던가요?


2. 베를린의 경우 설명에는 (아마도 너무 유명하고 당연해서 빠진) 냉전시기의 분단 때문에 국제적인 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그 이전부터 위그노의 유입이라든가 하는 이유로 국제도시로 발전했군요. 베를린 왼쪽의 해골은 왜 그려져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1차대전에서 독일의 패배를 의미한다기엔 책이 왜 있는지 모르겠고... 단순히 '메멘토 모리'로서 사용했다기엔 억측인 것 같고... 그나저나 해골 아래에 드레스덴이 있어서 그런지 2차대전에서 드레스덴 폭격을 암시하는 것 같아 복잡미묘하네요. 한편으론 2차대전 발발 이전에 유럽의 여러 석학들(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독일), 엔리코 페르미(이탈리아), 리제 마이트너(오스트리아) 등)이 망명하면서 유럽의 과학이 후퇴한 걸 암시한 것 같기도 합니다.


3. 위에서 폭격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드레스덴은 음악으로도 유명했군요. 검색해보니 드레스덴 음악제도 있다고 하는데 어떨지 살짝 궁금해집니다.


4. 단치히는 마찬가지로 (어째 2차대전 이야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만...) 히틀러가 폴란드에게 내놓으라고 억지를 부리는 바람에 2차대전의 빌미 중 하나가 됐다...로 알고 있습니다. 한편으론 위쪽 지폐 이미지를 보니 '우리 드디어 해상무역도 할 수 있습니다' 하는 자부심(?)이 엿보이네요.


5. 쾨니히스베르크에 대해서는 말씀하신 다리 문제, 즉 한붓그리기의 원조 격이라 관심이 생겨서 작정하고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 결론만 얘기하자면 연결부 개수가 홀수인 곳이 2개 이상이면 시작점으로 돌아올 수 없었고, 덕분에 위상수학이니 푸앵카레 정리(밀레니엄 문제 중 유일하게 증명 성공)니 하는 걸로도 이어진다는데... 이 이상은 제 문과 머리가 버티지 못해서 포기했습니다. 참고로 원조인 쾨니히스베르크 다리 건너기 문제의 경우 소련의 스탈린이 다리 몇 개를 날려버려서 한붓그리기가 가능해졌다 보니, 이를 두고 스탈린을 기적의 수학자라 부르는 우스갯소리도 있다죠.

문과로서는 임마누엘 칸트에 대해서 더 잘 알아야겠지만, 철학이 워낙 뜬구름 잡는 소리라... 나중에 알아봐야 할 듯합니다.


6. 사진으로 올려주신 문화과학궁전은 (건축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소련 느낌이 잘 안 나는 것 같으면서도, 지붕에 고만고만한 첨탑들이 늘어서 있는 게 러시아 궁전을 연상시키긴 하네요. 테트리스의 타이틀 화면으로 유명한 붉은 대성당처럼 말이죠. 막상 흐릿하게 보면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 있는 석상들처럼 보이기도 하고...


7. 렘베르크에 대해서는 이번에 처음 들을 정도로 아는 게 없어서 설명을 따라가기가 벅차다보니 생략할까 했는데, '오더-나이세 라인'을 보니까 그럭저럭 생각이 나네요. 빌리 브란트 만화 위인전에서 '전후 서독과 폴란드 사이의 오데르-나이세 선을 국경으로 인정하는지의 여부에 따라 서독의 사죄나 폴란드의 용서가 걸려 있다'는 식으로 지나가듯이 언급이 되거든요. 할슈타인 원칙에 비중을 맞춰서 해설을 적는 바람에 지면 문제상 오더-나이세 라인에 대한 설명은 빠져버렸지만... 그나저나 왜 그 위인전의 당대 시점에서는 (아무리 2차대전의 원한도 있다지만) 서독과 폴란드가 그렇게까지 으르렁대나 몰랐는데, 이제 찾아보니까 당시의 폴란드는 폴란드 '인민공화국'으로서 제2세계 소속이었군요. 어설프게 알았던 것까지 튀어나오니 과부하가 걸려서 이쯤에서 넘어갈까 합니다.


8. 헝가리 무곡은 너무 유명하죠. 지도에서 여성 무용수가 들고 있는 것은 탬버린인지 뭔지 헷갈리지만요.


9. 사진의 십자형 로터리(?)는 과연 별명답게 파리의 개선문을 둘러싼 로터리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그리고 부쿠레슈티의 국립미술관이라든가 하는 동방정교회 예술은 종교에 헌정하는 예술답게 화려하고 세밀한 데가 있어서 구경하기 좋기에 찾아보고 싶기도 하고요.


10. 소피아라는 이름을 듣고 성 소피아 성당(아야 소피아)이 생각났는데 과연 그렇군요. 사진에 나온 소피아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성당은 아야 소피아의 미니어처 버전 같기도 하고요. 그리고 메치니코프는 어렸을 적에 CF로 나왔던 걸 봤고 비싼 가격이어도 운좋게나마 몇 번 마셔보기도 했죠. 어린 나이여서 그런지 효과는 미미했던 것 같지만요. 그 외에 불가리스와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고... 마지막으로 일리야 일류힌은 뭐,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여자일 리 없잖아(こんな可愛い子が女の子のはずがない)' 정도로 넘어가겠습니다.


11. 위에서 얘기했던 아야 소피아가 있는 콘스탄티노플(오늘날의 이스탄불)이 바로 나오는군요. '그 도시요?'라는 까막귀에 도시전설급 어원으로도 유명하고요. 보스포루스 해협은 경치도 경치지만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다는 점이 너무나도 인상깊어서 코마키 린의 불법 패러디(?)인 키리사와 마코토의 사업장 이름으로도 사용하기도 했더랬죠(공작창, 로그인 필요). 새삼스럽지만 이름은 잘 빌려다 썼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나저나 말씀하신 조약에 대해서 다른 나라들은 유럽에 있으니까 그렇다 쳐도 일본, 그리고 거의 지구 정반대편에 있는 호주는 왜 있는 건지 다소 뜬금없으면서도 궁금하네요. 일본의 경우 A에서 짚었던 앤트워프 항로 때문이라고 하기엔 거리가 있어 보이고...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요?


12. 히비 사조에 대해 한글로 검색해보니 아무런 결과가 없어서 일본 한자 이름으로 검색해 봤더니, 2022년 NHK에서의 검증기사가 뜨네요. 말씀하신 그리스정교 개종이나 아이치현에 있는 후손 이야기가 그대로 나오고, 해당 사실의 연구 및 100주년에서의 결과발표를 한 것이 무라타 나나코(村田奈々子) 교수(토요대학 프로필)라는 점도 알았습니다.


새로운 지식이 너무 많아 과부하가 걸려서, 나머지 반은 나중에 작성하겠습니다.

마드리갈

2024-11-01 23:44:38

이번은 정말 다룰 항목이 많았는데다 여러모로 압축하기도 많이 힘들었다 보니 완성이 생각보다 매우 늦게 되었어요. 이에 대한 코멘트에 깊이 감사드려요.


운하를 만드는 이유가 역시 항로의 단축이죠. 오늘날에도 해난사고가 꽤 나는데 1세기 전은 더 말해서 뭐할까 싶을 정도로 해난사고가 잦았어요. 그래도 출항한 4척 중 1척이 영영 못 돌아온 대항해시대 때보다는 혁신적으로 나아졌지만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항로는 수에즈운하가,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항로는 파나마운하가, 그리고 북해와 발트해를 잇는 항로는 킬운하가 크게 단축시켰고, 결국 그 단축 덕분에 해난사고를 극적으로 줄일 수 있었으니 충분히 할 만해요. 

과거 우리나라에서 추진되었던 한반도 대운하는 철저히 국내용이죠. 사실 운하의 크기에 따라 항행할 수 있는 선박의 크기가 다르고, 우리나라 주변의 바다는 그 얕은 서해조차도 운하보다는 항행조건이 월등히 나으니 그 운하에 사용료를 내고 비집고 들어가는 자체가 바보짓일 수밖에 없어요.


베를린이 국제도시인 것은 유서깊죠. 변경백이라는 지위 자체가 일단 백작이지만 국경지방의 안전보장이라는 임무가 부여되어 있어 실질적으로는 후작과 거의 대등할 정도의 실권을 가졌다 보니 그 변경백의 근거지는 매우 강력한 안보거점인 동시에 외부문화와의 교류거점이기도 하니까요.

쌓여진 책 위의 해골에 대해서 설명을 좀 더 자세히 드리자면, 저는 이 2가지를 지목하고 싶네요.

하나는 바로크 미술에서 잘 나타나던 해골이 있는 정물화. 사실 이 표현양식은, "모든 것은 유한하다" 내지는 "덧없구나 삶이란" 등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죠. 일본에도 이러한 바로크 미술사조가 에도시대의 난학이나 명치유신 이후의 서구문물 수용에도 알려졌으니 그런 것을 차용했을 가능성이 높아요. 다른 하나는 독일의 과학기술이 대량살상에 악용된 것. 실제로 1918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프리츠 하버(Fritz Haber, 1868-1934)는 제1차 세걔대전 당시 독일군의 독가스 개발 및 사용을 진두지휘하기도 했거든요. 화학전에 대비하여 방독면 및 중화제도 개발했던 일면도 있었지만요. 그런 것들이 문명의 자살로 여겨졌기에 그것을 그렇게 형상화하한 게 아닌가 싶어요.


드레스덴은 음악의 도시로도 명성이 아주 높아요. 

참고로, 독일에서 음악의 도시로 특히 꼽히는 곳이 세계 3대 교향악단이라 불리는 베를린 필하모닉(Berliner Philharmoniker)의 근거지인 베를린(Berlin),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등으로도 유명한 드레스덴(Dresden),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가 교회의 음악감독인 칸토르(Kantor)로 봉직했던 라이프치히(Leipzig), 바그너축제가 열리는 바이로이트(Bayreuth), 정격연주의 선구자인 프라이부르크 바로크오케스트라(Freiburger Barockorchester)의 근거지인 프라이부르크(Freiburg) 등 꽤 있어요.


결과론적인 생각이고 위험할 수도 있는 논리이지만, 폴란드가 독립한다고 해서 반드시 해안선을 가져야 할 이유는 없었는데 당시 베르사이유 조약에서 프랑스가 복수심에 사로잡힌 나머지 독일에 대해서 무리할 정도로 횡포를 부린 것도 부정할 수 없어요. 같은 연합국 진영이었던 영국과 미국마저 만류할 정도로. 그리고 이전에 언급했던 라인란트 점령에서, 일부러 아프리카 식민지 출신의 흑인 군인들을 동원해서 독일인 여성들을 조직적으로 집단성폭행하는 방식으로 독일을 모욕하는 만행도 벌였어요.


코멘트를 분할할께요.

마드리갈

2024-11-01 23:54:46

그러면 이어서 코멘트할께요.


쾨니히스베르크가 1세기 전에는 독일 본토와 분리되어 있고, 지금은 러시아 본토와 분리되어 있는 게 참 기막히죠. 게다가 현지 러시아인들도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고 알려져 있어요. 임마누엘 칸트가 독일을 대표하는 철학자 중의 1명이면서 그의 행적의 전부가 그 칼리닌그라드에 남아 있으니...게다가 이제는 인접국인 리투아니아와 폴란드가 적대관계로 돌아섰다 보니 그 칼리닌그라드의 생활여건은 날로 악화되고 있다고 해요. 독일이 저지른 패착을 지금에는 러시아가 그대로 반복하니, 러시아야말로 네오나치가 맞네요.


바르샤바의 문화과학궁전은 루드네프의 7자매답게 비슷한 건물이 있어요. 로모노소프 모스크바국립대(Московски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университет имени М. В. Ломоносова) 본관과 거의 비슷하게 보이죠. 아주 웅장한 건물이지만 실용성은 그다지 좋지 않다고 해요. 대학생 때 모스크바국립대 출신의 교수에게 직접 들어본 적도 있어요.

사실 2022년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이전에는 우크라이나의 역사는커녕 현재지명 또한 제대로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어요. 심지어 동유럽 사정에 비교적 밝은 저조차도 우크라이나어 표기보다는 러시아어 표기가 익숙해서 각 도시들을 키예프, 하리코프, 르이보프, 니콜라이예프,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 등으로 기억하고 있는 실정이었어요. 그러니 르비우의 독일어 이름인 렘베르크를 제대로 아는 경우는 거의 기대할 수 없으니 결코 이상하지 않아요.


그런데 오더-나이세 라인에 대해서는 위인전의 내용이 상당히 잘못되어 있네요.

사실 독일의 통일에 대해 소련과 폴란드가 두려워한 것은 사실이었고, 그래서 그 국경선을 인정하기를 독일측에 강요한 것도 사실이었는데 사죄와 용서에 관한 게 아니었고 구영토 포기를 전제로 한 조건부 국가승인이었어요. 그리고, 그 위인전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최근에 폴란드가 독일에 대해 전후배상 청구를 해서 논란을 일으킨 것도 전혀 설명되지 않아요. 그래서 그 내용은 왜곡일 수밖에 없어요.


다시 코멘트를 분할할께요.

아마 다음 코멘트는 내일 오후에야 가능할 듯해요, 빠르면.

Lester

2024-11-02 22:46:41

다시 생각해 보니 말씀하신 대로 '동독을 국가로 인정해야 하는 문제가...'라는 대사가 저 오더-나이세 라인이 등장하는 컷에 같이 있었던 것 같네요. 다음 장에서는 서독에서는 왜 우리가 동독에 양보해야 하냐고 난리면서 탈당자가 발생하고, 동독에서는 동독을 국가로 인정하라면서 고자세로 나오는 등 여러모로 불리한 상황이었던 것 같고요. 전권을 고향집에 두고 왔다 보니 기억이 흐릿해져서 잘못 떠올렸나 봅니다.

마드리갈

2024-11-04 23:23:23

그럼 또 이어서. 

동유럽의 도시들이 참 아름답고, "아, 이게 바로 동유럽이다!!" 라고 느껴질만한 게 많아요. 특히 서유럽의 석조건축물의 외벽이 주로 자연석의 색채와 가까운 것과 달리 동유럽의 경우는 상당히 인공적인 그래서 자연물과 인공구조물이 차이를 극명히 보이는 식으로 마감된 게 많고, 특히 동방정교회 건축양식에서 잘 보이는 황금색 돔 스타일은 무엇보다도 큰 차이. 그런데 정치적으로는 그렇게 축복받지는 못해서 19세기에는 오토만 제국의 지배를 받고 20세기에는 해방되는가 싶었는데 공산화, 그리고 21세기에는 구조적인 가난으로 인한 인구급감 등으로 3세기에 걸쳐 고난의 연속이니 언제 이게 해결될지는 전혀 알 길이 없네요.


사실 우리나라의 남양유업에서 출시한 불가리스 또한 요구르트로 유명한 불가리아에서 착안한 상표명이죠. 그러나 우리나라의 상표법상 국가명을 쓸 수는 없어요. 이와 비슷한 예로, 의류제조사 이랜드 또한 잉글랜드라는 이름을 상표로 등록하려 했지만 거부당한 사례가 있어요. 

일본의 경우는 이야기가 크게 달라요. 예의 메이지 불가리아요구르트가 1970년 오사카엑스포 당시 불가리아관에서 본고장 불가리아 요구르트를 선보인 데에 메이지유업의 간부가 그것을 시식한 뒤에 감명을 받아서 연구를 시작하고 불가리아 현지에도 방문해서 그렇게 제품을 개발한 것인데 처음에는 불가리아 대사관 측에서 반발하는 일도 있었어요. 게다가 불가리아 유산균은 국외에서는 성질이 달라지다 보니 정기적으로 수입하고 있는데다 균주의 국외반출은 불가리아 정부의 사전허가가 없으면 안되는 것이고, 결국 양국의 교섭 끝에 1972년에 메이지유업이 불가리아 정부로부터 정식 허가를 받아서 불가리아로부터 균주를 정기적으로 수입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국가명을 상표명에 포함시키게 되었어요. 그렇게 브랜드명이 확정되어 1973년부터 계속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어요.


여성무용수가 들고 있는 악기가 무엇인지는 정확히는 알 수는 없지만 아마 탬버린 같은 것이겠죠. 사실 탬버린 자체가 중근동 등의 유럽 인접지역에서 발명되어 그리스로 전래된 이후 서유럽으로도 전파된 악기이고, 헝가리 음악에서도 사용례가 있으니까 그렇게 보시더라도 최소한 틀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요.

마드리갈

2024-11-07 19:26:40

몽트뢰조약에 대해서는 몇 가지 필요한 사전지식이 있어요.

사실 1924년은 출범한지 얼마 되지 않은 세계최초의 전세계적 국제기구인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 체제하의 시대였고, 일본이 1933년에 국제연맹을 탈퇴하고 독일과 함께 추축국동맹을 결성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세계열강의 하나인 점은 분명했어요. 또한 호주는 영국, 캐나다, 남아프리카, 뉴질랜드 및 인도와 함께 모두 별개의 국가로서 국제연맹의 원회원국이었는데다, 몽트뢰조약이 체결될 당시인 1936년에는 호주가 비상임이사국이기도 했어요. 그렇다 보니 지정학적 가치로 인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지역에 대해 당시 국제연맹 차원에서 나서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이었어요. 

그리고 소련의 상황도 1924년과 12년 뒤인 1936년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어요.

1924년의 소련은 폴란드에조차 패전했을 정도의 약체였지만, 이미 당시에 2년간 집권중이었던 이오시프 스탈린(Иосиф Сталин, 1878-1953)의 무자비한 철권통치 및 급격한 산업화의 결과 12년 뒤에는 국제연맹 체제를 위협할만큼의 현실적인 위험요소로 성장해 있었어요. 특히 흑해연안은 소련의 강역 중에서는 사계절 가동될 수 있는 항만과 조선소가 있어서 소련이 이 곳을 지중해로의 진출거점으로 삼게 되면 유럽은 공산주의 수출에 열올리는 소련에 안전한 곳이 전혀 없게 되어 버리니까 소련을 견제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었어요. 그렇다 보니 조약에서 소련을 끌어들여서 그 다자조약에 구속되는 형태로 질서를 형성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죠. 그러나 3년이 더 지난 1939년에 소련이 핀란드를 침공하면서 결국 국제연맹에서 축출당해 버렸어요.


히비 사조에 대해서 알고 있는 한국인 자체가 정말 거의 기대할 수 없어요. 사실 히비 사조의 존재에 대해 당시 스미르나 탈출 당시 토케이마루 화물선에 탔던 그리스인과 아르메니아인 당사자 및 그들의 후손들이나 기억하고 있었지 일본인들조차도 그 존재를 거의 몰랐을 정도로 철저히 잊혀졌다가 근년 들어서 알게 되었고, 저와 오빠는 근년 들어서 그 히비 사조의 존재를 일본 언론에서 읽어봤으니까 알고 있는 것이고, 그러해요.


키리사와 마코토가 불법 패러디인가요?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요. 공인 스핀오프로 정의해 두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니 보스포루스 미디어라는 기업명은 역시 신의 한 수 같네요.

Lester

2024-11-23 22:33:23

너무 많아서 미뤘던 나머지 절반에 대해서 감상을 적어 보겠습니다.

13. 영어와 유럽어권의 발음이 워낙 다른 것이 비단 아테네만 그렇진 않더라고요. 특히나 미국에는 유럽의 온갖 유명한 도시 이름을 그대로 갖다 쓴 곳이 많은데 정작 발음은 미국식이라...
사진은 파르테논 신전이겠군요. 찾아보니까 아테네의 어원인 아테나를 모시기 위한 신전이었고, 이후 여러 문화권에서 성소로 사용하다가 화약에 의한 내부 폭발로 훼손... 2022년 기준으로 복원에 들어갔다고 하니 기대가 됩니다. 이제까지의 파르테논 신전은 반파된 모습으로 각인됐다 보니, 복원된 이후에 방문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어떠한 차이가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네요.

14. 앞서 여러가지 파트에서 역사적 사실을 많이 담았길래 생각보다 정확도가 높구나 싶었는데... 인간이 만든 거라 그런지 부정확한 부분도 있군요. 아니면 상대적으로 최신(?) 정보여서 틀렸을지도?
그나저나 아래 사진의 항구는 뭔가 컨테이너 박스를 쌓아 올린 것처럼 특이하네요. 특히 바닷물에 자주 닿은 것치고 붉은 색인 것이...

15. 베네치아는 과연 물의 도시죠. 원한다면 옛날처럼 곤돌라를 타고 떠다니며 관광을 즐길 수도 있지만, 물가 특유의 냄새라거나 기타 안 좋은 영향에 시달리기도 해야 하는... 그래서 여러 창작물 중에서는 만화 "ARIA"처럼 이상적인 면만 부각시킨 물건도 있지만(사실 이 작품의 베네치아는 화성에 재현된 '네오 베네치아'라서 그렇기도 하지만요), 게임 "어쌔신 크리드 2"처럼 작중 인물의 입을 빌어 '(작중 수영이 가능한 점에 빗대서) 시궁창도 너보단 낫겠다'라는 대사가 나오기도 하죠... 그것도 베네치아 출신 여자한테요. 뭐 상황이나 분위기상 당사자가 농담으로 넘어가니 됐지만요.
저도 노래 하나 소개해 보겠습니다. 상술한 어쌔신 크리드 2의 OST에서 베네치아 테마 중 하나인 "Tour of Venice (베네치아 여행)"입니다.


16. 그래서 상술한 어쌔신 크리드 2 3부작(aka 에치오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자 콘스탄티노플이 배경인 "어쌔신 크리드: 레벨레이션"에서는 집시족이 '로마니'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더군요.
게임 얘기가 나온 김에 더 얘기하자면, 어쌔신 크리드 2의 두 번째 작품이자 로마가 배경인 "어쌔신 크리드: 브라더후드"에서는 사진에 나온 판테온을 포함해 지금도 실존하는 로마 건축물들을 가까이 가는 것은 물론 꼭대기까지 올라가 볼 수도 있습니다. 이거 하나로 팬들을 엄청나게 만들기도 했죠.



17. 나폴리 학파는 잘 모르겠지만, 스카를라티 가문은 거의 음악가 가문이라고 봐도 되겠군요. 뭐 그 또한 '가업'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요.
반면에 베수비오 화산과 폼페이 최후의 날은 여기저기서 다뤘기에 잘 알죠. 그나마 폼페이는 살짝 떨어져 있었고 또 공동이 그대로 남아서 발굴에 용이했지만, 거의 바로 옆이라고 할 수 있는 헤르쿨라네움은 피해가 크기도 했지만 물 먹은 화산재가 공동을 메워버리는 바람에 더 알아보기 힘들어졌댔던가...

18. 콜럼버스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탈리아계 미국인 성씨들 중에 제노바 출신이라는 뜻인 '제노베세(Genovese, 미국식으로는 '제노비스')'가 적지 않더군요. 방관자 효과로 유명한 키티 제노비스라던가, 뉴욕 5대 마피아의 전설적인 두목 중 하나이자 무투파였던 비토 제노베세라던가.

19. 마르세이유는 남부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고, 저처럼 먼나라 이웃나라를 자주 읽었던 세대로서는 프랑스 혁명에 관한 노래이자 현 프랑스 국가(國歌)인 라 마르세예즈로 더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 외에는 워낙 언급할 부분이 없었기도 하니...
비누인데 해초로 만든다니 특이하군요. 뭐 게르마늄 비누라든가 하는 거랑 같은 원리라고 보면 될까요?

20. 모나코는 역시 대체로 도박의 도시라는 인상이 깊죠. 다만 규모도 작지만 도시국가이기 때문에 국가급의 체계를 통해 치안과 질서를 지키는 것이 가능하겠다 싶습니다. 역으로 말하자면 도박으로 먹고 살려는 도시는 그 정도가 되어야 정상적인 운영이 가능하겠다 싶어서, 문득 생각난 강원랜드와 비교해보면 답답하기도 하네요. 강원도 입장에서는 관광지(?)라는 이유로 방치하는 인상이 강하거든요.

21. 마키 아리츠네는 유감스럽게도 한국어로 검색하면 결과가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만('마키 유코 산악인'으로 검색해야 조금 나오는 정도), 여러 개의 산을 세계 최초로 등정했던 굉장한 인물이네요.
한편 '알피니즘'이라는 말을 듣고 고르고13의 에피소드 중 하나인 "히말라야의 결투"에 나오는 '알파인 스타일 (클라이밍)'이랑 연관이 있나 했는데, 미묘하게 다르네요. 알피니즘은 예술적 행위이고 알파인 스타일은 등반기술이라나? 알파인(alpine)이란 말 자체가 산악과 관계가 있다보니 혼동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듭니다.
그 외에 베른 남부의 '그린델발트'라는 곳은 해리 포터 시리즈의 프리퀄인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의 주요 악역이라는 겔러트 그린델왈드(Gellert Grindelwald)가 생각나네요. 해리 포터 시리즈는 아즈카반의 죄수까지만 읽고 말아서 자세한 건 모르지만요.

22. 뮌헨은 역시 맥주로 유명하죠. 특히 옥토버페스트 같은 경우엔 여행하는 한국인이 나오는 공중파나 유튜브 방송에서 자주 나왔고요. 맥주는 물론 술과 딱히 인연이 없는 저로서는 그 분위기를 온전히 느낄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사진 우측에 나오는 어트랙션 정도라면 즐길 수 있겠다 싶네요.
그나저나 테레제 공주는 정말 대단하네요. 디즈니를 비롯한 어린이 만화영화 때문에 보통 왕자와 공주가 결혼하면 일반인들이 축하해 주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귀빈들끼리 끝내는 경우가 많을 터인데, 일반인들도 초청해서 국가적인 행사로까지 확장시켰다니... 엄청난 혜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3. 비엔나/빈은 상술한 나폴리보다는 그래도 음악적으로 잘 알려져 있긴 하죠. 비엔나 필하모닉과 비엔나 호른도 제법 들어본 것 같고요. 특히 호른의 경우 음악 관련 서적에서 버튼 외에도 나팔 속에 손을 넣어서 음색을 조절한다고 나와 있어서 유독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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