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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가 가까운 시간.
수업 하나가 끝나고, 예담은 또 밖으로 나온다. 복도에 보니, 니코가 보인다. 니코는 아까 등교 시간에 있었던 일이 아직도 떠오르는지, 예담을 돌아보면서도 표정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다가 예담을 보더니, 대뜸 말한다.
“아무튼, 그 이상한 녀석은 오늘 또 나타날 거야.”
“아... 그 녀석...”
예담은 누구를 말하는지 잠시 헷갈리다가, 이내 누군지 알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유독 축구부가 이런저런 활동을 할 때만 그 녀석이 출몰했거든. 아마 오늘도 그러지 않을까 하는데...”
니코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얼른 예담이 끼어든다.
“그 녀석, 오늘 나도 봤어! 심지어 나를 연못으로 빠뜨리려고 했다니까!”
“뭐야, 네가 하는 말은... 무언가... 엉뚱한데. 그 만화에서 나온 것 같은 괴물의 손이, 너를 약올리기만 한 것도 아니고, 아예 연못에 빠뜨리려고 했다고?”
니코는 예담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머리를 흔들더니 말한다.
“너 혹시, 시간 되면 축구부 시합 하는데 한번 와 볼래?”
예담은 고민도 하지 않는다. 마침 오늘은 부모님이 딱히 일찍 오라고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 좋아. 한번 가 볼 테니, 나도 좀 그 녀석 잘 보여줘.”
그렇게 말하고서 예담이 발길을 돌려 자기 반으로 돌아가려다가, 누군가를 마주친다.
“에디냐?”
하지만 다른 사람이 겹쳐 보이는 것 같은 착시가 있었다. 머리를 흔들고 다시 보니, 예담이 알던 그 에디가 맞다. 에디는 말도 없이 거기 무뚝뚝한 표정을 하고서 서 있다.
“왜 저래, 정말. 무슨 자기가 어디 요원이 된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렇게 예담은 에디를 이상하다는 듯 한번 더 돌아보며, 자기 교실로 들어간다.
그런데, 교실에 막 들어가려는데...
“깜짝이야!”
예담은 교실에서 나오는 한나와 하마터면 정면으로 부딪칠 뻔한다. 그것도 그런 게, 부딪치려는 둘의 간격이 채 5cm도 되지 않았다.
“아니, 잘 보고 다녀야지!”
“그거야말로 내가 할 소리인데. 눈을 한 6개는 달고 다녀야 하는 건 아닌가?”
예담은 할 말이 나오지 않아 한숨만 내쉬는데, 그런 모습을 더 재미있게 여기기라도 했는지, 한나는 깔깔대기 시작한다. 한나만 그러는 것도 아니고, 한나와 같이 다니는 사쿠라, 지젤을 포함해 다른 동급생들 역시 그 장면을 재미있다는 듯 돌아본다.
“아니, 얘들아, 오해는 하지 말아 줘! 나는 부딪치려고 부딪친 게 아니고, 그냥 나는 들어가려고 했고, 한나는 나오려고 했고! 그게 전부니까...”
하지만 친구들의 시선은, 예담의 의도와는 달리 다들 예담과 한나를 멀뚱멀뚱 돌아본다. 예담의 입에서 한숨이 나온다. 눈앞에 있는 한나가 자신보다도 커 보인다. 분명히 예담보다 10cm 정도는 작을 텐데 말이다.
“아, 그래, 알았어, 알았어.”
예담은 어색하게 한숨을 쉬며, 자기 자리로 들어가 앉는다. 그 광경을 보던 진이 옆에 있는 동급생에게 속삭이며 한마디 한다.
“야, 조나, 예담이하고 한나, 설마 그렇고 그런 사이인 건 아니겠지?”
“응? 나는 모르겠는데. 내 예상도 한쪽으로 잘 이어지고 있는데 말이야.”
조나라고 불린 동급생이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진 역시 그런 조나에게 맞장구치는 듯하다가, 이내 자기 생각이 떠오른 듯 한마디 한다.
“글쎄? 세상 일은 모르는 거지! 이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물 밑에 숨은 것들이 훨씬 더 많잖아, 안 그래?”
한편, 오후 수업 하나가 끝나고 공강 시간에, 리암은 나데르와 만난 참이다.
“동아리방을 옮길 거라고? 안돼!”
나데르가 대뜸 그렇게 말하자, 리암은 당황했는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말한다.
“아니, 반응이 왜 그러냐? 내가 옮기자고 한 것도 아닌데.”
“응? 그러면 누가 그렇게 말한 건데? 혹시...”
나데르는 거기까지만 말했지만, 곧바로 누가 그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는지 알아낸 모양이다.
“내가 그럴 줄은 알지.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모르고 말하는 게 당연하잖아.”
“그러면 어떡하냐? 우리도 뭔가 대책을 세워야지.”
“내가 생각해 본 게 있거든? 그런데 무슨 결론이 났는지 아냐?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야!”
나데르의 그 말에 리암은 손을 내저으며 말한다.
“아니, 나데르, 아무리 그래도 그건... 우리는 단지 동아리라고! 무장 조직 같은 게 아니야!”
“그러면 애초에 그 선배는 왜 죽은 건데?”
“집에서 기습을 당한 건데... 사실 우리도 정확한 내막은 몰라.”
“혹시 그러면 이 사건에 대해 조사하고 있는 사람이 너희들만 있는 건 아니지?”
“아, 당연하지! 믿을 만한 사람들도 있고 하니까. 그런데, 내가 따르던 선배님이잖아!”
“하긴 그렇지.”
나데르도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인다.
“살아있었으면, 정말 볼만했을 텐데.”
그리고 수업이 끝나자, 예담은 서둘러 도서관으로 향한다. 오늘은 도서부 활동이 있는 건 아니지만, 불안감은 예담의 머릿속을 떠나지 못한다. 며칠 전의 비둘기에 대해 잊었다고 한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얼른 발걸음을 재촉한다. 중간에 몇 명의 동급생들을 만나고, 심지어 에디까지도 마주치지만, 다들 신경 쓰지 않고 지나쳐 간다.
‘거기 지금은 괜찮으려나...’
그런데 그 길에, 미린고등학교 남학생 1명과 마주친다. 예담은 이 남학생을 알고 있다. MI스터리의 매니저다.
“차논 선배님이잖아요.”
“아, 그래. 너 나한테 뭐 할 말 없냐?”
“무슨...”
그렇게 말하려다가, 예담은 자신이 릴리스에게 그 괴현상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떠올린다.
“아, 맞아요. 그거, 뭐 결과라도 나왔나요?”
“거기에 대해 말하자면, 우리 동아리가 지금 그런 ‘사소한’ 일에는 신경 쓸 상황은 아니라서 말이야.”
“뭐예요! 선배님, 그러면 아까 릴리스가 그렇게 말한 건 뭐가 되는 거죠? 저는 분명, 릴리스에게 그거 때문에 딸기케이크도 샀고, 청크쿠키도 샀고, 저는 그런 거 많이 안 먹는다고요. 알기나 해요?”
차논이라고 불린 그 남학생은 예담의 그 말에도 오히려 태연히 말한다.
“이건 우리 동아리의 중대사라니까. 우리 동아리가 총동원될 일이라고!”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괜히 말하기 싫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겠죠?”
“진짜라니까! 못 믿겠으면 이걸 한번 봐도 돼.”
“이게 무슨...”
예담에게 차논이 대뜸 내민 건, 도서관에 있었을 오컬트 잡지다. 최신호인 것 같은데, 대뜸 웬 원형의 비행물체 하나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그러니까, 여기 나오는 내용을 탐독한다는 말인가요?”
“그거 말고! 표지에 나오는 이거라니까!”
차논이 가리키는 게 뭔지는 알지만, 예담에게는 황당함이 앞선다. 거기에다가 차논에게 따질 시간도 지금은 없다.
“아, 알겠어요. 뭔지는 나중에 볼게요.”
예담은 그렇게 말하고서는 서둘러 도서관으로 발길을 돌린다. 그렇게 도서관에 도착하자마자, 창가에 있는 테이블 쪽을 본다. 어느새 접근금지 펜스는 치워져 있고, 거기서 책을 보거나 하는 몇몇 학생들이 보인다. 그런데, 예담의 눈에 익숙한 얼굴이 또 보인다.
“뭐야... 한나...”
예담은 서둘러 고개를 돌린다. 이런 데서까지 한나를 보거나 하고 싶지는 않는데, 자꾸만 눈에 띈다. 거기에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예담을 향하고 있다. 그것도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듯한 시선이다.
“아니, 그러니까, 다들 왜 그렇게 나를 보는 건데...”
“예담이 너, 혹시 한나 보려고 온 거 아니야?”
“아니라니까!”
한쪽에 앉아 있던 지젤의 놀리는 듯한 말에, 예담은 강하게 고개를 가로젓는다.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한나의 시선도 예담에 고정된 모양이다.
“야, 예담아, 왜 그러냐? 무슨 일이라도...”
이번에는 리하르트가 묻는다. 예담은 원래의 목적도 잊고, 빨리 이곳을 나가고 싶어한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선배님! 저는 단지, 잠깐 일이 있어서...”
예담은 그 길로 얼른 도서관을 빠져나간다. 다들 시선이 예담에게 향한 걸 수습하기 힘들다. 그나마 빨리 빠져나와야 할 것 같다. 고개를 숙이고서, 얼른 도서관 문을 닫는다. 그나마 세훈 같은 다른 선배들은 도서관에 없었던 걸 위안 삼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에이, 축구장으로 다시 가 봐야 하나...”
바로 발길을 돌려 다시 축구장으로 간다. 중간에 또다시 에디가 보인다. 그런데, 에디는 또 이상해 보인다. 사람이 서 있다기보다는 무슨 비밀요원이 서 있는 것같이 보이기도 하다.
“정말 이상하네... 에디, 도대체 왜 저러는 거지?”
한편 그 시간, 만화부실. 여느 때처럼, 만화부원들은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아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애니메이션 상영 시간이나 특별히 윤진이 신경 써서 마련한 시간이 아니면, 보통은 이렇게 삼삼오오 모인다든지 혼자 아니면 둘이서 자리를 잡고 앉아 원하는 걸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게 일반적이다.
“오늘은 다들 조용하네.”
물론, 민 역시 마찬가지로, 만화부실 한쪽에 마련된 소파에 앉아 <좀비매직>이라는 만화를 읽으며 발을 까딱거리는 중이다. 이럴 때 시간이 꽤 잘 가는 듯하다. 물론 게임을 할 때의 그 느낌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런데, 어디에선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 소리를 들은 건, 옆 창가에 앉은 유와 토마다.
“야, 민아. 어디가 저렇게 시끄럽냐?”
“왜?”
유가 갑자기 말을 걸자, 흥이 깨진 민은 순간적으로 얼굴이 일그러지지만, 곧 유가 왜 그렇게 말하는지 알게 된다. 그것도, 도와달라는 듯한 절박한 소리,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그게 무엇 때문에 그러는 건지도 알아낸다.
“아니, 그 녀석 또 시작인가?”
“어...”
뒤이어 토마도 창밖을 내다보더니, 이내 그게 무엇인지 알게 된다.
“또 그거 시작인 건가? 저 형들, 참 불쌍도 하네.”
신지와 하비가, 이쪽을 보고서 원치 않은 춤을 추고 있다. 아마도, 벽에 무언가가 붙어 있는 모양이다. 그러다가 민을 보자마자, 눈이 둥그레지더니, 빨리 자신들을 구해 달라는 듯한 표정을 짓지만, 곧 다시 춤을 추게 된다.
“당장 내려가서 내가 뭐라도 해야 하나?”
“야, 하지 마! 밖에 신경써서 뭐 해.”
어느새 윤진이 이쪽으로 오더니, 민과 유, 토마를 제자리로 돌아가게 한다. 귀찮은 생각이 가득했던 민은, 제자리로 돌아가고 신지와 하비의 목소리도 잦아들자, 곧 거기서는 관심이 사그라든다.
“에이, 죽거나 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이따가 신경 쓰지 뭐.”
민이 자기 자리로 가서 앉아서 다시 만화를 보기 시작하는데, 또다시 그 도와달라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다른 만화부원들이 창밖을 보려고 하자, 윤진은 이번에는 커튼까지 쳐 버린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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