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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건은 오늘 수업이 저녁까지 잡혀 있어, 다음 수업을 준비하러 가는 길에도, 자신이 주운 그 나데르의 학생증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보통 이런 상황이었으면 원래 주인에게 즉시 돌려주는 게 이치에 맞겠지만, 로건은 그런 생각은 하고 있지 않다. 지금 주운 건 그야말로 나중을 위한 무기라는 생각밖에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 만나기만 해 봐. 얼굴이나 체형을 제멋대로 바꾼다고 나를 피할 수 있을 줄 알아?”
나데르가 어떤 학과에 있다는 것도 알고, 또 어떤 수업을 듣는지도 대략은 알고 있으니, 찾아가서 어떤 조치를 하는 건 어렵지 않다. 조만간, 교단에 정식으로 ‘섭리의 방해자’로 지정할 것을 요청할 생각이다.
“각오해라... 내가 호락호락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테니!”
그런데, 일은 로건의 뜻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을 모양이다. 로건이, 가던 길에 한 여자를 만난다. 단발머리에 푸른 상하의를 입은 여자다. 아까 초능력 방범대의 동아리방에 찾아왔던 그 여자다. 로건이 갑자기 화가 잔뜩 난 얼굴을 하더니, 그 여자를 복도 뒤쪽의 사각지대 비슷한 공간으로 끌고 간다. 그리고는, 곧장 그 여자를 질책하기 시작한다.
“정신머리를 어디에다 두고 다니는 거야? 총회장님이 말씀하신 거, 머릿속에 안 넣고 다니나 보군? 어떤 얼간이하고 했길래 그런 것도 못 해? 그리고 너, 어느 회당이야?”
“죄, 죄송합니다. 동부회당 소속의 저 ‘비비아나 마이어’와, 같은 동부회당 소속의 신도 ‘캄란 바랄’입니다!”
로건은 바로 그 두 사람의 이름을 메모하더니, 더욱 얼굴을 일그러뜨리고서, 그 비비아나라고 불린 여신도를 보고 화를 낸다.
“그딴 정신머리로 전도자는커녕 후보전도자에도 갈 수 있을 줄 알아? 너희 둘, 내가 잘 봐 둘 걸 그랬는데!”
로건은 그 여신도를 갈구느라, 정작 옆을 지나는 타마라는 눈길도 안 준다. 아니, 옆에 지나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으니, 타마라에게 꼼짝없이 빈틈을 줄 수밖에 없다. 그렇게 타마라는 무언가 만들어진 조그만 결정을 들고 어디론가 가고, 로건은 그 상황을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계속 비비아나라는 이름의 여신도를 갈구기에 여념이 없다.
“내가 너희들은 꼭 지역장님께 보고할 테니, 그렇게 알고 있어. 알겠어?”
“죄송합니다...”
로건의 그 말에 여신도는 고개를 떨굴 뿐이다. 조금 시간이 지나 분이 풀린 듯, 로건은 그 여신도를 놔두고 거기서 나와, 강의실로 향한다.
“에이, 뭐야. 별로 큰 무언가도 없었잖아.”
민과 친구들은 아까의 그 공원을 벗어나, 다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이상한 비행물체라고 해서 나름 구경해 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싱겁게 끝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같이 지켜보던 토마가 불만스러운 듯 말하고 있다.
“나는 또 뭐 영화나 게임 같은 데서 나오는 광선 공격 같은 거라도 하는 줄 알았는데, 진짜 아무것도 없었다고.”
“그나저나, 이제 뭐 하지? 시간도 이제 저녁 먹을 시간이잖아.”
“저녁 먹을 시간? 야, 너 마침 말 잘했네. 그래, 오늘은 뭘 먹지?”
라미즈의 그 말에, 민은 잠시 고민하는 듯 보이다가, 이윽고 입을 연다.
“일단 먹는 것보다도, 오늘 못 한 게 있잖아!”
“못 한 거라니?”
다른 친구들이 그렇게 되묻자, 유가 문득 손뼉을 탁 치며 말한다.
“아, 그때 민이가 자기 집에서 게임이나 한 판 하자고 했었지. 그거 때문에 그러는 것 같은데...”
유의 그 말에 라미즈는 당황한 듯하다.
“아니, 나 늦으면 엄마한테 혼난다고!”
“에이, 그건 내가 너희 엄마한테 잘 말할 테니까, 일단 가 보기나 하자고.”
예담은 지하철역에서 내려, 이제 집에 거의 다 다다른 참이다. 지하철역 출구에서 아파트까지는 걸어서 2분 정도지만, 10분처럼 느껴진다. 아파트단지 정문까지의 길이 이렇게 길었나 하는 생각도 문득 든다. 하지만 왜인지는 모르게, 돌아오는 길이 너무 평온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 하면 안 되는데. 지난주에도 그랬잖아. 나 왜 이러는 거지...”
그리고 예담의 그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무언가 예담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는, 막연한 불안감이었는데, 그게 그저 기우는 아니었다. 거기에, 처음 보는 사람도 아니다. 조금 전에 갈색 점퍼를 입고 있던, 바로 그 사람으로 보인다.
“뭐지, 저 녀석. 에이, 또 이러네...”
또 전처럼, 예담의 가방에 낀 텀블러 안에 든 물이 더워지기 시작한다. 예담을 기다리고 있는 그 수상한 누군가의 얼굴이 보인다. 누가 봐도, 예담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남자는 예담을 향해 바로 말한다.
“명을 받들어! 너를 처치하러 왔다!”
“응? 하, 무슨 명을 받든다고? 또 진리성회냐? 전에 그 잠수부도 그렇고, 어떻게 우리 집은 잘 알아내나 몰라.”
‘잠수부’라는 말을 들으니 그 갈색 점퍼를 입은 남자의 눈이 흔들리는 게 보인다.
그런데, 예담의 옆에 낀 텀블러의 물이 갑자기 도로 식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기분 정도가 아니라, 그건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그 남자가 다시 예담을 빤히 바라본다. 그러자, 지금의 날씨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한기가 예담을 뒤덮기 시작한다.
“그 자리에 가만히 얼어붙는 편이 너한테 좋을 거다.”
“별 헛소리를 다 하네. 할 테면 해 보라지.”
예담은 그렇게는 말하지만, 그 한기는 정말 어쩔 수 없다. 정말 뭐라도 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나한테 다가오지 않는데 어떻게 능력을 쓴다...”
지금까지는 상대방에게 직접 접촉하거나, 매개체가 있었는데, 지금은 공기와 지면밖에는 딱히 그런 것도 없다. 그래도, 되는 대로 양손에서 열기를 내 보려고 하는데, 그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느린 녀석이 지는 것도 몰랐나? 바보 같기는.”
예담은 곧 그게 무얼 뜻하는 건지 알게 된다. 그 한기가 이제 실체화되어 예담을 덮기 시작한다. 거기에 그게 끝이 아니다. 얼음으로 된 조그만 덩어리의 형태가 예담의 앞에 점점 나타나고 있다. 그것들은 작지만 여럿이다. 아니 적게 잡아도 100기 정도는 넘을 것이다.
“눈사람이라... 이거 참. 등산할 때나 스키장 같은 데서만 봤던 건데.”
그 눈사람들이 모두 예담을 노려보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걸 신기하게 여기거나 할 새도 없이, 그 눈사람들의 공격이 더 빠르다. 눈덩이를 뭉쳐서 던지기 시작한다. 아프다거나, 맞은 걸 느꼈다거나 한 건 아니지만, 분명한 공격이고, 맞을수록 얼어붙는 속도가 가속화되는 것 같다. 재빨리 눈사람 하나를 잡아서 녹이지만, 그걸 일일이 눈사람들에게 다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재빨리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면, 이 눈사람들이 결국 예담을 쓰러뜨릴 것이라는 건 잘 아는 사실이다.
“이것들아, 내가 녹으라면 좀 녹아라! 너희들, 이런 데 있을 친구들이 아니잖아!”
“소용없을 텐데? 눈사람들만 있는 줄 알았나?”
그 점퍼를 입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다. 또 다른 사람이다.
“뭐, 뭐야?”
예담은 어느새 또다른 누군가가 예담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물론, ‘그들’ 역시 하나가 아니라 다수다. 예담이 보니, 흰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머리를 모자로 눌러써 가린 사람들의 군단이다. 그들은 당장 공격은 하지 않지만, 예담을 향해 무섭게 다가오는 건 확실하다. 그 눈사람을 조종하는, 처음에 예담을 향해 말했던 그 의문의 목소리가 다시 말한다.
“슬슬 운명이 너를 향해 다가오는 게 느껴지지 않나?”
“별 헛소리를...”
그런데, 예담의 귀에, 또 한 명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눈사람과도, 티셔츠의 군단과도 다른 소리다. 이건 분명한 ‘한 사람’의 소리다.
“아니, 또 누구야, 성가시게...”
“피아식별은 좀 해라!”
“엥? 누구...”
미린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다. 그것도 눈에 잘 띌 만한 외모의. 예담은 이 선배를 몇 번 본 적이 있어, 금방 알아보고 말한다.
“어... 그 미린고 1학년에 전학생 선배인가요?”
“내 이름은 전학생이 아닌데? 이름은 좀 알고 말해! 내 이름은 남궁현애라고 하고...”
그렇게 말하려다가, 그 여학생은 무언가 낌새를 눈치챈 모양이다.
“응? 설마, 나하고 아주 비슷한 타입의 능력자가 있었을 줄이야!”
“엥? 선배님? 선배님도 얼음 능력자... 아, 그렇지, 참! 알겠어, 알겠다고!”
오히려, 현애가 예담을 더 안쓰럽게 보는 것 같다.
“아니, 나는 그냥 친구들하고 헤어진 참인데, 난데없이 이런 데 휘말려 버렸지 뭐야!”
“그건 그렇고, 선배님 시간 많아요? 왜 그렇게 돌아다녀요?”
예담의 그 말에, 현애는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왜냐고? 나도 너하고 비슷한 일을 겪거든! 그래도 떼로 몰려오지 않는 걸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지, 아니면 뭐라도 큰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야 하는 건지, 나 원 참...”
“어쨌든 저 티셔츠 군단부터 막아야겠어요!”
예담의 말처럼, 그 얼굴을 가려 보이지 않는, 티셔츠를 입은 군단은 점점 예담과 현애의 앞으로 다가오는 중이다. 마치 진군하는 군인들처럼. 그리고 예담을 포위하기 시작한다.
“에이, 이것들! 좀 말을 좀 하면 들으라고! 내가 언제까지 일일이 이렇게 해 줘야 하나?”
그런데, 그 ‘군단’은 고통스러워하거나 무서워하는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예담이 열을 내서 태우는 부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끄고는, 곧이어 예담을 다시 압박하기 시작한다.
“소용없다. 어차피 본체는 멀리 있거든. 그렇게 때려 봤자, 아무 소용없다고.”
한편, 민은 자기 집에 친구들을 들여놓고, 거실을 오락실 비슷하게 개조해 놓고서, 한참 게임을 하는 참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거실을 오락실처럼 만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민에게는 간단한 일이다. 그저 가구 몇 개만 치워놓으면 된다. 다른 가족들이 돌아와도 원상복구만 해 놓으면 될 일이다.
“에이, 그 외계인들, 계속 신경이 쓰이잖아.”
한참을 친구들과 게임을 하면서도, 민은 자꾸 아까 봤던 외계인들이 떠오르는지, 게임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래? 아까 그 녀석들? 어차피 자기네 우주선이 못 뜨니까 여기 발이 묶여 버렸잖아. 안 그래?”
“아니, 그러기도 한데...”
그러다가, 민이 문득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모양이다. 집 정원 쪽에 누군가 수상한 사람이 있는 걸 알아채고는, 친구들에게 잠시 멈춰 보라고 손짓하고는 정원 쪽으로 나가 본다.
“야, 왜 그러는데? 정원에 뭐라도 있어?”
“어, 있는 것 같네.”
민의 예상대로다. 정원에는 아까 본 그 회색의 외계인 두 명이 민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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