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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왜 이래?”
예담이 그 티셔츠를 입은 ‘군단’ 중 하나의 티셔츠를 태워 버렸음에도, 그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담이 태운 그 부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눌러 꺼 버리고는, 예담을 더욱 압박한다. 거기에다가 눈사람들이 던지는 눈덩이는 점점 커진다. 이제, 호두알 정도 크기는 되는 것 같다.
“이 녀석들... 무슨 포기를 몰라!”
예담이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말을 내뱉자, 현애가 예담을 옆으로 밀더니, 자신이 앞에 서서 말한다.
“놔둬! 그 애들, 내가 한번 상대해 볼게.”
“선배님이 어떻게 한다고요?”
하지만 다음 순간, 예담은 알게 된다. 일순간에 그 티셔츠의 군단을, 얼려 버린 것이다.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눈사람들조차도, 지면의 얼음에 꼼짝없이 얼어 버렸다. 조금 전까지 무서운 기세로 예담에게 눈덩이를 던지거나, 숫자로 압박하거나 하는 모습은 전부 얼음 속에 가두어져 버렸다.
“선배님, 뭐 어떻게 한 거예요?”
“간단해. 지면으로 다들 닿아 있고, 다닥다닥 붙어있으니까, 한번에 얼리기는 쉽더라. 그런데, 오래 가지는 않을 거야. 빨리 여기서 벗어나는 게 좋을걸!”
“에이, 별 이상한 녀석들이 다 있어.”
그들을 살피거나 할 시간은 없다. 우선은 여기서 빠져나가는 게 중요하다. 어렵지는 않다. 그 자리를 빠져나온 다음 현애에게 간단히 인사한 다음, 얼른 자기 집이 있는 엘리베이터로 들어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들어가기 전 1층을 보니, 아까 출입문 앞을 가득 메웠던 티셔츠 군단과 눈사람 군단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계단이나 엘리베이터에 그런 기척이 들리는 것도 아니다. 일단은 그들을 격퇴했음에 안도하며, 집으로 들어간다. 그러면서도 그 갈색 점퍼의 남자는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이 녀석... 또 만나기만 해봐.”
“이 한심한 것들, 이렇게 맡긴 것도 제대로 못 해서야!”
진리성회 세라토 중앙교당의 지역장실. 지역장은 교구 소속의 몇몇 강사들을 한 군데 불러놓고 잔뜩 화를 내고 있다. 특히 지역장은 비비아나와 캄란을 콕 집어 가리킨다. 아까 로건이 심하게 질책했던, 그 여신도와 2인조로 다녔던 남자 신도다.
“오늘도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오히려 사고나 치고 다녔단 말이다! 동부회당 카와라다 강사! 왜 너희 신도 관리를 똑바로 못 해!”
“죄... 죄송합니다. 제가 두 사람, 비비아나 마이어와 캄란 바랄에 대해서는 잘 지도하여...”
“그럼 내가 명령했을 때 잘 하든지!”
카와라다라고 불린 그 강사는 지역장의 말에 한 마디 반박도 못 하고서, 고개만 숙이고서 별 말도 하지 못한다. 다른 강사들은 카와라다를 한 번씩 돌아보며 수군거린다.
그때, 누군가가 지역장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다. 키가 작은 여자 한 명이다. 지역장은 바로 그 여자를 알아본다. 지역장의 딸이다.
“얘야, 무슨 일이냐?”
“아버지, 차라리 그 두 신도들을 제가 직접 관리할 수는 없을까요?”
“네가 어떻게? 너는 후보전도자밖에 안 되잖니?”
그렇게는 말하지만, 지역장 역시 딸이 왜 그렇게 말하는지 알 것 같다. 딸의 능력에 대해서 모르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곧, 지역장은 딸에게 말한다.
“그래, 그렇다면 네가 한번 그 비비아나 마이어와 캄란 바랄이라는 자들을 데려가서 교육을 좀 시켜 보거라.”
그 말을 들은 카와라다가 지역장의 그 말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말한다.
“아니, 지역장님, 아무리 그래도, 따님은 후보전도자잖습니까? 그런 교육은 원래 강사급이 수행하도록 되어 있는데...”
“그 아이가 뭔가 알아서 잘 해내는 아이니까, 한번 믿어 보라고.”
“아... 알겠습니다.”
카와라다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일단은 지역장의 명령이니 꼼짝없이 따른다.
“자, 그래. 이제 다들, 총회장님의 말씀을 전달할 텐데...”
그 말에, 강사들은 일제히 지역장의 앞에 꿇어앉는다.
그 시간, 민의 집.
아까 봤던 그 회색의 외계인 두 명이 민에게 손을 흔드는 걸 보자, 민은 잠시 그 자리에서 머뭇거리다가, 이윽고 자신이 원래 앉았던 자리로 다시 돌아간다. 저 외계인들이 도대체 어떻게 집 정원까지 들어오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켜보기로 한다. 그러면서도, 민은 그 외계인들의 시선을 무시하는 척하며, 다시 게임을 하러 자기 자리에 앉는다. 물론, 거실에 쳐 놨던 커튼은 확 걷어 버려서 정원이 곧장 보이게 한다.
“야, 너희 집 아니냐? 왜 그렇게 너는 태연한데?”
“아, 그런 이유가 있거든!”
그 외계인들은 다른 민의 친구들은 제쳐놓고, 민에게만 관심이 있는 건지, 계속 민의 주위를 맴돌며 귀찮게 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집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거기에다가 그 외계인들이 무슨 수작이라도 부렸는지, 게임 화면이 갑자기 지직거리는가 하면, 게임에는 갑자기 없던 NPC가 나와서 진행을 혼란스럽게 한다든가 하는 일이 벌어진다.
“에이, 진짜 귀찮게 하네. 왜 자꾸들 그러는 거야?”
민이 못 참겠는지, 게임을 하다 말고 자리를 박차고 나와 그 외계인들에게 간다. 그러자, 그 외계인들은 민을 보자마자 곧바로 자리에 주저앉는다.
“아니, 다들 왜 그래? 말이라도 좀 해 보자. 너희들 누구인데?”
하지만 그 외계인들은 말도 하지 않고서, 오히려 민을 보고서 겁을 먹은 표정이 역력하다.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말을 좀 하라고. 나한테 이렇게 하지 말고.”
그렇게 민이 말해도, 그 외계인들은 대답하기는커녕, 오히려 민을 보고서 벌벌 떨기만 할 뿐, 그 이상의 진전이 없다.
“에이, 안 되겠는데. 얘들아! 누가 이 외계인들 말 잘 아냐?”
하지만 당연히도, 친구들 모두 고개를 가로젓는다. 애초에 다들 본 적이 거의 없는 외계인들이니 그럴 법도 하다. 그런데 그러던 중, 문득 유가 무언가 떠오른 듯 말한다.
“아, 맞아! 내가 어디 한번 연락해 볼 테니까...”
그리고 잠시 뒤, 민의 집에는 VP재단 요원 몇 명이 와 있다. 그 외계인들은 민의 집 담장 밖에서 요원들과 마주 보고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고, 외계인들과 마주 선 요원들은 그 외계인들을 달래려는 건지 허리를 굽히고서 억지로 웃음을 짓고 있다.
“하, 또 이 친구들이 이런다니까.”
그 요원들 중 하나는 민과 친구들을 아는 모양이다. 확실히 다른 요원들에 비하면 표정도 나긋나긋하다.
“‘헤그리’라는 종족이지. 자력으로 우주에 진출한 지 얼마 안 되는 친구들이야. 사전 지식이 부족해서 그럴 수가 있지. 가끔 사람들이나 개, 고양이, 아니면 다른 동물들로 의태해서 정찰을 하기도 하지. 의태하는 능력은 대단히 뛰어나다고 하니까, 그건 좀 조심해야 해.”
“어... 정말요?”
“아마 그중 한 녀석이 지금 경찰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너희들은 아직 거기까지는 자세히 알 필요는 없으니까. 또 저 친구들 보이면 언제든 연락해.”
그 요원은 이제 민의 집을 나서면서, 안부를 묻는다.
“혹시 너희 부모님 잘 계시지?”
“아, 그럼요.”
“그래, 간다. 이렇게 없을 때 와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 요원들이 민의 집을 나서자, 민과 친구들은 다시,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게임을 계속한다. 아까의 그 이상 현상은 이제 나타나지 않는다. 게임에 없던 NPC가 나타나지도 않고, 다른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지도 않는다. 하지만 걱정거리는 또 있다.
“에이, 정원이 다 헤집어져 버렸잖아.”
정원 정도야 그냥 민의 능력으로 돌려놓을 수도 있고, 거기에다가 더 꾸며 놓을 수도 있지만, 그 요원들이 어떻게든 여기에 대해 말해서, 가족들도 이 일을 알게 될까 봐, 민은 불안해진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안톤의 집.
“오빠, 또 릴라송 방송 봐?”
클라라는 안톤의 방으로 슬금슬금 다가가면서도, 안톤의 방에 다가서자마자 아주 크게 말한다. 안톤이 인터넷 방송에 빠진 건 부모님도 좋게 볼 일은 아니니, 클라라도 망설임 없이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톤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클라라가 오는 걸 알고 있는 모양이다.
“클라라! 너도 좀 할 일 없으면 저거 좀 봐!”
안톤이 보여주는 건 릴라송이 ‘오늘의 사건사고’에 대해 말하는 장면인데, 초록색의 외계인 이미지를 떡하니 띄워 놨다.
“저런 외계인들이 나를 강제로 춤추게 했다고! 무슨 말인지 알아?”
하지만 클라라는 그런 안톤의 다급한 말에는 관심조차 없어 보인다. 오히려, 안톤이 앉은 의자의 뒤쪽으로 슬금슬금 다가가는 게, 안톤의 눈에도 보인다.
“클라라, 뭐 하는...”
안톤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 클라라는 의자를 확 뒤로 빼 버린다. 안톤이 어떻게 대응할 사이도 없이, 휙 하고 넘어진 안톤은 엉덩방아를 찧고, 일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자마자, 클라라는 박장대소하며 큰 소리로 말한다.
“히히히- 엄마! 오빠 또 울어!”
그리고 얼굴에 웃음을 띠며 안톤을 피해 도망가는 클라라의 뒤로 안톤의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야! 클라라! 너 잡히기만 해 봐!”
다음 날 아침. 예담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집을 나와서 지하철역으로 향하고 있다.
평소보다는 조금 이른 시간이기는 해도, 이 정도 시간이면 다른 동급생들도 좀 보이고, 거기에다가 지하철도 자주 다니기 시작하는 등, 학교 갈 시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다른 학교의 교복들도 물론 보인다.
그런데, 예담이 보기에도 조금 이상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왜 에디가 옆에서 같이 걷고 있는 거지?”
에디는 분명히, 예담이 알기로는 지금 예담이 사는 곳 쪽이 아니라, 반대편에서부터 학교로 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 예담의 옆에서 걷고 있다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다. 짐짓, 일부러 크게 말을 걸어 본다.
“에이, 에디, 왜 그러냐! 나한테 할 말 있으면 말로 하지 그래!”
“하하하, 친구 옆에서 걷기만 할 뿐인데, 뭘 그런 걸 가지고 다 놀라고 그러냐.”
지금 에디가 하는 말이 어딘가 어색하게 들리기도 하고, 또 에디가 옆에서 걷고 있다는 건 더욱 이상하다. 에디는 지금껏 학교 가는 길에서 마주친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에디의 집은 학교 기준으로 방향이 정반대여서, 지하철을 탈 때도 반대 승강장에서 타기 때문이다.
“에디, 혹시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없냐? 있으면 여기서 말로 하지 그래.”
“그런 거 없다니까.”
그런데, 평소 쓰는 말투가 아닌 꽤 딱딱한 말투라 그런지, 예담에게는 더욱 이상하다. 에디의 모습이 자신이 아는 에디의 평소의 소심한 그 모습이 아님을 눈치챈 예담은, 에디를 한번 유심히 훑어본다. 하지만 지금 봐서는 별다른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는다.
“에이, 뭐야, 도대체. 내가 아는 에디가 맞기나 한 건가?”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2 댓글
마드리갈
2025-03-19 21:40:34
의외로 현애가 이 상황에서 강력한 원군이 되었네요. 처음에는 대체 어쩔 셈인지 몰랐는데, 이렇게 해결되는 것에서 감탄했어요. 열의 전도가 접촉으로 이루어지는 원리를 역이용해서 아예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어버린 데에서 현애의 명민한 판단력이 돋보였어요. 정말 잘 해결되었네요. 그렇지만 예담의 주변을 둘러싼 완전히 상황이 해결된 것은 아니고 에디는 또 계속 주변에서 이상한 모습을 보이니 역시 불쾌함을 떨칠 수 없어요.
진리성회의 상황에서 어제 본 NHK 클로즈업 현대에 나온 옴진리교의 아이들 회차가 떠오르기도 했어요.
민의 집 주변에 나타났던 외계인들은 왜 이렇게 어수룩한 건가요. 우주개발을 한 게 용하다 싶네요. 다른 존재로 의태하는 능력이 있다는 건 꽤 무섭지만...
SiteOwner
2025-03-20 00:31:05
읽다 보니 죠죠의 기묘한 모험 4부에 등장하는 스탠드인 배드 컴퍼니가 생각났습니다만 무력화되는 양상은 지극히 다르군요. 배드 컴퍼니의 경우는 본체인 니지무라 케이쵸가 뻗어버리는 바람에 해제되어 버리지만 이 경우는 문제의 군단 자체가 밀집대형이라서 피해를 제대로 봤다는 것이니 이렇게도 달라집니다. 현애가 정말 냉정하게 잘 대처해 주었습니다.
문제의 헤그리라는 외계인은 어리숙한 듯 해도 의태능력이 있다는 데에서 섬뜩합니다. 이름에서 연상되는 것 중에 돼지의 간은 가열해라의 작중 국가인 메스테리아의 도처에 나타나는 타조를 닮은 괴생물인 헤크리폰이 있습니다만 속성이 다르긴 합니다.
에디의 돌변에서 생각나는 사람들이 좀 있는데 지금 이것까지 이야기하기에는 좀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