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너에게. 어쩌면 과거형으로 말해야 보다 정확할 성 싶은 너에게.
하지만 한국어로는 현재형과 과거형의 구분이 보다 뚜렷하지 않으니 아무래도 상관 없다 생각하며 너에게.
너는 지나면 지날 수록 내 안에서 흩어지듯 뭉치듯 다시 내 가슴 속에 신기루처럼 떠오른다.
너를 떠올리며 우습게도 나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너에 대한 내 감정은 스스로 그렇게 서글픈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도 내 가슴이 착각하는 것인지, 별 것 아니라 내 머리가 착각하는 것인지 헷갈린다. 하지만 어설픈 자존심이란 것이 있어 가슴이 착각하는 것이라 믿고 싶다.
잊고 지내다 떠오르는 너. 문득 떠오르는 너. 그렇게 다가오는 너. 어떤 일이 기억난다기보단 순간순간의 너가 다를 감싼다. 너는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나를 반기고 서있다. 마냥 반기지는 않았다. 표정을 구긴 적도 제법 있었고, 욕지거리를 내뱉기도 한다. 하지만 너의 그 속은 그렇지 않단걸 상관 없으니까. 사실은 반기는거라고 나도, 너도 그랬다.
가끔은 너의 흩날리는 반짝이는 땀을 기억한다. 땀 냄새. 땀 냄새라고 하면 기분 나쁜 추잡한 냄새가 날거 같지만 왜일까, 아, 왜일까. 향긋한 냄새가 나는 것이 아닌데도 그 땀 흩날리는, 땀이 반짝이는 그 냄새가 난다. 코가 편안한 냄새가 난다. 냄새란 건 정말 후각의 감지와 같은 말일까. 향긋한 향이 나는 것도 아니거니와 불쾌한 냄새가 나는 것이 아닌데 너의 이마에서 흐른 땀, 그리고 뛰기라도 하면 그 소리 없이 날리던 땀의 광경이 날 감싸는 냄샌 편안하다.
너는 그렇게 웃고 있다. 말도 안 되는 농담을 하든, 기분 좋은 일이 있든, 날 놀리든. 나는 그런 너를 보면 항상 웃었다. 가끔 너의 웃음이 뼈 아픈 적도 있었다. 나의 자존심을 상하게 빈정 거릴 때가 그러하였다. 그런 너를 미워하지 않았다면 그건 새빨간 거짓말. 너가 나를 어떻게 놀렸는진 조금도 기억나지않아. 하지만 너의 뺨을 때리고 싶을 정도로 미웠다는 것은 알아. 당연하게 뺨은 때리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 리 없잖아. 하지만 네 뺨을 때렸더라도 나는 때리기 전에도, 때리는 순간에도, 때린 후에도 널 아꼈겠지. 난 너를 아꼈다. 소중했다. 소중해서 소중해서 어떻게 할 줄을 몰랐다. 그냥 그렇게 흘러 가면 그걸로 된 거 아닐까. 이대로 같이 흐르면 그걸로 됐어. 그때 이렇게까지 미처 생각할 여력은 없었지만 분명 그렇게 깨닫고 있었다. 이건 한심한 말장난일까. 어린 이가 황당함을 겪고 그것이 '황당'이라고 표현 된단걸 미처 모를 때와 같은 거라고 받아들여달라면 너무 구차한 것일까.
그렇게 흐르는 우린 다른 곳에 있었다. 너와 나의 세계는 맞물려 있어 함께 흐른다고 생각하였는데 너와 나의 세계는 그저 흐를 뿐이었다. 필시 나는 변하지 않았다고, 네가 변한 것이라고 그렇게 확신하고 오열했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내가 착각했을 분이라고 나도 너도 변하지 않았다고 스스로 속이다가 밤이 깊어질 새벽이면 그 감정이 폭발해서 더 이상 스스로를 속여 넘길 수 없을 때 침대를 치며 이불을 잡아 찢듯 오열했다. 나는 변하지 않았는데, 나는 변하지 않았는데, 나는 변하지 않았는데. 나는 여기 이 자리에 서서 너를 줄곧 기다리고 있는데 왜 자꾸만 멀어져 가는지. 너를 따라가 볼까 하려면,
멍청한 나는, 길을 찾을 수 없는 방향치인 나는, 지도조차 볼 수 없던 미련한 나는 너를 찾아 갈 길을 몰랐다. 분명 저기에 네가 보이는데 한발짝 한발짝 걸음을 옮기고 네 발자국을 찾아 그 흔적을 더듬어 쫓아갈 적이면 네가 떠나있던 내 자리로 돌아올세라 헐레벌떡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갔다. 여기 왔었을까? 어쩐지 내가 떠나기 전이라 뭔가 달라진 분위기, 내가 떠나 있어서 그런걸까? 네가 와서 그런걸까?
아 정말로 멍청한 나는,
네가 그 자리에 왔다갔는지조차 함부로 판단할 수 없었다. 널 붙잡고 뛰어가 나는 계속 기다렸노라고, 네가 혹시 다시 돌아왔는데 그 자리에 내가 없었다면 오해하지 말아 달라고, 그런 구차한 변명조차 나는 네게 할 자격이 없는 것인가. 할 자격은 고사하고, 그럴 능력조차 없는 것인가.
괴로운 밤. 내 기억 속에서 너는 잊혀질듯 이렇게 선명하게 떠올라 이렇게 웃고 있다. 이렇게 찡그리고 있다. 이렇게……, 내 옆에서…….
너에게 편지를 보냈다. 내 마음을 보냈다. 어디까진 나의 진심을 담을 수 있을 것인가. 조잡한 말과 글을 적었다. 너에게 답신이 돌아 왔다. 그 곳엔 네 마음이 없었다. 내가 부주의하니, 내가 미련하니, 내가 모자라니 미처 발견 못한 것이라고 너의 편지를 한참을 쳐다 보고, 봉투를 들여보고 다시 보고, 바라 보고.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너에게 무엇이었는가.
너무나 본질을 찌르는 원초적인 질문.
이에 대해 너무나 강한 확신이 있었기에 차마 의심조차 못했던 이 것.
분명 조금은 다르지만, 우리 서로, 너도 나와 같이 함께 맞물려 흘러가고 싶었다는 것을 나는 분명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내가 확신하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이다. 그저 사실이고, 아는 것이다. 나는 여전한데 너는 변하였는가? 나는 너에게 무엇인가. 물어야 할 것은 이 것이다. 나는 너에게 무엇인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너말고도 우리의 주위에 있던 모두가. 우리를 보고 알았다. 그리고 나는 그들보다 더 정확히 알았다. 하지만 나는 이제 저에게 무엇인가. 나는 알 수 없다. 주위에 있는 모두는 알고 있는가. 이제 그들이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가 없다. 나는 무엇도 모른다.
나는 이 자리에 이렇게 서 있는데, 내가 움직이는 파도 위에 있어 다른 곳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인가.
그도 아니라면 나는 가만히 있는데 파도가 다른 곳에 다른 데려다 놨는가. 그저 우리 둘, 그저 나란히 같이 서있다 다른 물결을 타 서로 다른 곳으로 흘러 간 것이라…….
그리 인정하기는 허무하다. 허무했다.
이 것이 사실일 거라 생각하는 것이 가장 편할게 분명한데 너무나도 허무하다.
이게 내가 만난 사실이고 지금이란 시간.
너는
지금까지도
이렇게 웃으며.
이렇게 찡그리고.
새하얀 얼굴에, 분홍색 입술이 실룩 입꼬리를 올려 곡선을 그리고.
뚜렷한 일은 이제 기억나지도 않아. 하지만 너는 이렇게 내 속에서, 내 앞에서.
나를…, 나를…….
혼자 널 그린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영원히 이러고 살 수 밖에 없겠지. 네가 있는 곳을 찾아 걸어갈 수 있다. 널 만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 마음만 먹으면 가능할 것이다.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영원히 맞물려 닿지 못해. 이미 나한테 너는 이렇게, 박제 되어 날 바라보고 있다. 나는 여전히 과거의 너를 쳐다보고, 바라보고, 과거의 너에게, 너에게.
나에게 있어 너란 것은 결국, 과거. 가고 싶어도 도저히 돌아갈 수 없는 과거.
돌아간다 할지언정 무엇하나 할수없는 그런과거.
과거의 너는 다시 내 속에서, 내 앞에서 재생 되어 나를 바라보고 나도 그런 너를 바라보고. 이제 너와 이 너는 너무나도 멀어져버려서. 앞으로는 평생 너를, 진짜 너를 바라 볼 일은 없을거라고 믿고 싶다. 그러기를 바란다. 이것은 너. 그리고 결국 그런 너를 바라보는 나의 재생. 너를 바라보는 나에 대한 그리움. 지쳐가는 미련. 영원히 따라잡을 수도, 버려버릴 수도 없는 너를 바라보는 나의 재생.
내가 하나 작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너에게도 그런 내가 박제 되어 있기를. 나처럼 괴로워하며 나의 박제 전시를 바라보지 않기를. 하지만, 나만 괴로워 하기엔 너무나 억울하다고 유치하게 굴고 싶은 것이 너를 재생하는 나를 재생하는 나.
박제 된 너는, 낡은 시체. 이제 낡았다고 그런 생각을 하려 들면 왜 너는 살아있는 것처럼 나를 바라보는가.
에프알오엠점나
피점에스
너를 처음 만난지 꼬박 십년하고 몇개월이 흘렀다.
그래, 십년이 지났구나. 이렇게.
피올랑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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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댓글
마드리갈
2014-10-28 23:46:54
안녕하세요, 셰뜨랑피올랑님. 정말 오랜만에 포럼에 오셨어요.
그간 궁금했는데, 이렇게 수필로 찾아오셨군요. 환영해요!! 글은 당일에 읽었는데 코멘트가 본의아니게 많이 늦어졌어요. 이 점에 대해서 양해를 부탁드릴께요.
제목과 끝 부분이 무슨 말인가 했는데, DEAR.너, FROM.나, P.S를 말하는 거였군요.
만남이 있다면 헤어짐이 있는 것인데, 그걸 알면서도 언제나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사람은 갈등하고, 또 번민해요. 왜 그럴지...글을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어요.
가을이 깊어가고 추워지고 있어요. 아무쪼록 몸과 마음의 건강에 유의하시길 바래요.
셰뜨랑피올랑
2014-11-05 10:26:02
아... 이런 글을 읽고 장문의 감상평 감사합니다. 인터넷으로 글을 쓰면서 언밸런스하게 손편지 양식을 왠지 전부 다 한글로 적고 싶더라고요.
SiteOwner
2018-10-12 23:43:30
한때 편지쓰기를 좋아했던 사람으로서, 이렇게 간절한 편지의 형태를 띤 수필이 반갑습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편지를 쓴 적이 없군요. 인간관계를 필요최소한으로 하고 있어서...
그리고 반문해 봅니다.
지금은 끊어진 인연이지만, 그래도 한때나마 편지를 주고 받았던 사람들이 있었던 게 다행이었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인연이 이어지지 않는 편이 좋았던 것인가...그리고 갑자기 슬퍼집니다. 더 이상 이야기를 이어 나가기 힘들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