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맑고 추운 겨울날이었다.
H현에 자리한 어느 맨션 3층 출입문 앞에서 나와 여동생은 마치 미지의 탐험가와 같은 흥분에 감싸여 있었다.
과거엔 N시에서도 대단위 단지가 밀집한 걸로 소문이 자자했던 이곳도 이제는 그저 폐허가 된 채로 우리같은 별난 폐허 마니아나 찾는 곳이 되었다.
이미 탐색을 끝낸 1층과 2층의 경우 1층은 대개 현관문부터 잠겨 있어서 들어갈 수 조차 없었고 2층을 포함해?몇군데 열려있는 곳들 또한 별 수확은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는?예상보다 빠르게 3층까지 올라오게 된거였다. 역시나 예상대로 대개의 현관문은 다들 잠겨있었다. 폐허 탐사에서는 늘 있는 일이라 실망할 기색도 없는 우리에게 현관 복도로 난 창문이?골판지 상자와?테이프로 막혀있는 집이 눈에 띄었다.
"이번엔 열려있을까?"
"글쎄...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또 시간 낭비나 되지 않을까 하며 문 손잡이를 잡고 돌리자 다행히도 이번엔 끼기긱하는 쇳소리와 함께 문이?열렸다.?
"아 열렸다."
어차피 해도 뜨기 전인 이른 새벽이고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건 확인했지만 그래도 만약을 위해 가능한 소리를 내지 않기로 주의하며 조심스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몇군데 열려있던 곳과 크게 다를바 없었다.
이 맨션은 기본적으로 주방을 겸하는 복도가 거실로 이어지고 현관 바로 오른편에 작은 방이 딸려있고, 거실로 통하는 복도 끝 오른편엔 화장실이 있는 구조로?호수별로 좌우대칭이란 차이점이 있을뿐 구조?자체는 크게 흥미를 끄는 요소가 없었다. 손전등으로 가볍게 훑어보자 먼지가 가득 쌓인 싱크대와 식기들, 버려진채 남겨진 조미료 봉지나 병 따위가 나뒹굴고 있는 풍경이 반겨주는 것도 이제는 거의 일상이었다. 먼저 현관 오른쪽의 방문을 열어보려 했지만?방문이?굳게 잠겨 있었다.
현관문과 마찬가지로 방문이 잠겨 있는 것도 으레 있는 일이라 몇번 돌려보다 이내 포기하고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한 우리들을?별난 거주민들(?)이 반겨주었다.
"이거 레고 아냐?"
"그러게. 이 정도면 제법 비쌀텐데 말이지."
조미료나 라면 따위의 보조 식품이 들어있던 선반 위쪽에는 레고로 만들어진 커다란 집 두채와 자동차 모형 3대가 겹겹이 쌓인 먼지를 머금은채 방치되어 있었다. 크기를 보아하니 제법 값이 나가는 제품으로 보였지만 이래서야 그저 재활용 쓰레기일 뿐이다. 먼지 쌓인 레고 모형에 감탄하며?사진기로 찍기 바쁜 여동생을 뒤로 한 채?거실에 발을 들이자 상상도 못할 것이 반겨주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인 TV받침 위에는 한눈에 봐도 상당히 커다란 도쿄 타워 모형이 거실의 주인이라는 듯이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와... 뭐냐 이거. 굉장한데."
"뭐가 있는데 그래?"
무심코 나온 감탄에 이어 뒤늦게 거실에 들어온 여동생 또한 똑같이 감탄사를 내뱉으며?재차 사진기를 들이댔다.
도쿄 타워 모형 정도야 이따금 보긴 했지만 이정도로 거대하고 세밀한 제품은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자세히 살펴보자 원래는 조명이 들어오는 제품이었던지 베이스에는 잡다한 스위치류가 잔뜩 달려 있었다.
"불도 들어오는거 같은데 한번 보고 싶네."
이 정도 크기의 제품이라면 분명?조명도 상당히 볼만하겠지만 이제 여기서 두번 다시 켜지는?일 따윈 없겠지...
도쿄 타워를 뒤로 한채 거실을 둘러보자 한 구석에 두꺼운 매트리스와 담요가 깔려있었고 방 구석구석에는 장난감이나 인형, 프라모델 같은 것들이 방치되어 있었다. 한때는 나도 손 대봤던 것들이라 점차 집주인의 취미가 명확해져갔다.
방에 있는 것들을 사진으로 남기는건 여동생에 맡겨두고 나는 아까 열어보려 한 방문 열쇠를 찾아보기로 하였다. 열쇠가 있을법한 이런저런 서랍을 열어보던 와중에 또 다시 전혀 의외의 물건을 찾아냈다. 방금 전 여동생이 귀엽다고 혼잣말을 하던 물건인 듯 싶었다. 보통 인터넷 공유기 같은게 있기 마련인 TV받침과 서랍 사이의 공간에는 공유기와 함께 회색 빛깔의 손바닥만한 물체가 놓여 있었다.
"뭐지 이거? 수퍼 패미컴?"
먼지를 살짝 걷어보자 이름과 함께 정체가 명확해졌다. TV와 연결해 플레이하는 게임기인 모양이었다. 그러고보니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이런게 있었다고 했던가... 문득 게임기를 좋아하는 삼촌이 제법?비싼 돈을 주고 고전 명기의 미니어처 복각판을 샀다고 자랑하는걸 듣고 복고사상에도 정도가 있지 라고 맞받아치다 혼났던?추억이 떠올랐다.?그런 빛 바랜 추억과 함께?게임기를 들어올리자 그곳에서 방문 열쇠가 모습을 드러냈다.
"찾았다."
사진 찍기를 끝마친 여동생과 함께 거실을 지나 잠겨있던 작은 방의 문을 연 우리 남매는 일순간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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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부만 몇번을 고쳐썼던지 나오지 않는 착상을 억지로 쥐어짜내? 오랜만에 써본 단편입니다.
유튜브에서 자주 시청하던 폐허 탐사 영상을 보며 떠올렸던 상상을 글로 담아본건데 역시 부족한 글재주로 묘사하기엔 어렵다는 느낌. 공간적 배경은 일본...을 가장한 어딘가이고 그마저도 단순히 분위기를 내기 위한 장치(이자 특별한 의미는 없다는 소리)입니다. 시간적 배경은 현재의 2010년대 후반이 한국에서 70~80년대, 일본에서 쇼와 시대나 버블 경제 시대를 떠올리는 느낌 즈음의 시대로 취급되는 미래의 어느 날입니다.
요컨대 지금으로부터 수십년 후의 미래를 배경으로 현재의 저희 집이 그대로 폐허가 되어 있고, 거기를 어느 남매가 탐사하는 모습을 상상했던걸 구체화시켜본 글입니다. 역시나 부족한 글재주와 합쳐져서 폐허 탐사 영상의 로망(?)과 특유의 분위기를 담는게 제법 힘에 부치네요.
자칭 폐허 마니아 남매라는 이 주인공들도 순전히 이 단편을 위해 급조한 캐릭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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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18-09-16 15:01:14
마키님의 방을 폐허 매니아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렇게...
뭐랄까, 방 안의 먼지낀 공기와 여러 컬렉션의 촉감이 그대로 전해지고 있어요. 그래서 재미있게 그리고 박진감 넘치게 감상할 수 있었어요.
이렇게 자신의 영역을 타인의 시선에서 보는 것도 신선하고 좋은 발상이예요.
감탄하면서 읽을 수 있었어요!! 다음 편이 기다려져요. 중편일지 하편일지...
마키
2018-09-16 21:05:27
개인적으로는 아직도 살짝 부족한 느낌인데 재밌게 읽어주셨다니 다행이네요.
익숙한 생활공간을 낯선 느낌으로 묘사해 보는건 확실히 재밌는 경험이었어요.
SiteOwner
2018-09-16 18:06:04
전에 소개해 주셨던 각종 레고 제품, 도쿄타워 모형이라든지, 복각판 수퍼패미컴 등이 나오는 데에서 마키님의 방같다는 인상을 받은데, 실제로 마키님의 방을 소재로 이렇게 단편소설로 재구성하셨군요. 재미있게 단숨에 읽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와 동생도 폐허 관련에 관심이 많긴 해서 같이 폐허 사진도 보고 합니다만, 저렇게까지 폐허 탐방을 할 여건이 되어도 할 지는 자신할 수는 없군요. 예전에 동생과 일본 군마현에 있는 우스이고개 철도문화촌에 가 본 적은 있고 구 마루야마변전소도 가 봤습니다만 거기는 관광자원으로 개발된 곳인데다 변전소 건물 자체에의 출입은 제한되어 있는 터라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인근에 여러 폐공장이 좀 있었던 것도 기억납니다. 제법 큰 규모의 제련소였는데 뭐였는지는 구체적으로는 생각나지 않습니다.
마키
2018-09-16 21:11:42
정확히는 저희집(도쿄타워나 수퍼패미컴은 거실에 있는 것들)?이지만요.
익숙한 풍경을 아무것도 모르는 제3자의 시점에서 재구성해보는 상상이 제일 재밌었네요.
글재주가 부족하다보니 본문은 살짝 모자른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