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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SMOPOLITAN] #1 - The Headliners (3) ※

Lester, 2018-11-22 02:54:35

조회 수
198

The Headliners - 헤드라이너(신문의 표제를 다는 사람, 혹은 인기 배우를 뜻함)




레스터와 존이 맥먼을 부축해서 골목으로 나오자, 큰 길가에서는 사람들이 총소리를 들었는지 어수선한 기색이 느껴졌다. 레스터는 순간적으로 망설였지만, 존이 늘 있는 일이라는 듯 개의치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자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골목을 건너는데 갑자기 존이 물었다.

"당신 차 있나?"

"없는데요..."

존의 얼굴이 살짝 구겨졌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눈썹을 치켜떴다. 이 정도로는 예상 외의 사태라고 할 수 없지, 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뭐, 그러면 방법을 찾아야지. 일단 이 친구는 내 차에 태우자고."

레스터는 올레인의 도움을 받아 맥먼을 자동차의 뒷좌석에 눕혔다. 맥먼은 이미 기절한 듯 축 늘어져 있었다. 레스터는 맥먼을 걱정하며 뒷좌석에서 기어나오자 존이 차 키를 던지며 말했다.

"당신이 데려다 줘. 이래뵈도 아끼는 차니까 살살 다루고."

그 말만 하고 존이 등을 돌리자 레스터가 황망히 물었다.

"어디로요?"

"아, 깜박했군. 포트 리뎀션Port Redemption의 서커스 스트리트 33번지야. 무작정 노크하면 알아서 챙겨줄 거야."

"데려다 주기만 하면 됩니까?"

레스터는 물어봤다가 금세 후회했다. 그냥 조용히 데려다 주고 조용히 빠질 생각이었는데, 부상자를 걱정한다는 것이 실수로 더 시킬 게 없느냐고 묻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혹시나 존이 알 필요 없다고 성질을 내진 않을지 걱정되거나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존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 이상은 바라지도 않아. 데려다 주는 걸로도 충분해. 주소는 기억해뒀지?"

"포트 리뎀션, 서커스 스트리트 33번지."

레스터는 생각보다 따스한 존의 반응에 어떻게 화답해야 할지 당황했지만, 이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생각해내고 정확히 기억해냈다. 존은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고, 맥먼은 그걸 돕다가 다쳤다. 그런 맥먼을 챙겨야 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존도 레스터의 기억력이 마음에 들었는지 다시 씩 웃고는 말했다.

"그럼, 부탁해. 올레인 씨는 저랑 같이 가시죠."

"미안하지만 나도 차가 없는데..."

올레인은 망설였지만 존은 씩 웃었다.

"왜 없어요? 여기 있는데."

존이 보라는 듯이 리모콘 열쇠를 꺼내? 버튼을 누르자, 그 골목에 어울리지 않는 한 고급 세단에 시동이 걸렸다. 올레인은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제서야 알아차렸다.

"설마, 그 쳐들어온 녀석들의 차인가?"

"정답입니다. 역시 올레인 씨군요. 아까 상황이 정리됐을 때 얼른 슬쩍했죠. 걸어오지는 않았을 테니까."

"대단하군, 여러가지로."

올레인이 복잡한 표정으로 차에 올라타는데 저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존은 표정이 굳어지더니 레스터 쪽을 보고 말했다.

"당연하겠지만 경찰은 피해줘. 나도 그 친구도 곤란하지만 당신도 곤란할 거야. 왜인지는 알 거라 믿어. 그럼 가, 빨리!"

존이 대답을 듣지도 않고 차에 올라타자 레스터도 얼른 존의 차에 시동을 걸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레스터는 시간제 부업으로 택시기사 일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시 지리에 대해서 그럭저럭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샛길만을 골라서 이동했기 때문에 우연히 경찰차와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경찰과 만났다면 보통 상처도 아니고 총상이니만큼 레스터도 이런저런 '수사'를 받았을 테니까. 존은 그걸 염려한 게 틀림없었다.

"으음..."

뒷좌석에서 신음소리가 들리자 레스터가 앞을 본 채로 물었다.

"괜찮아요?"

"죽을 만큼 아프네요."

"조금만 더 참아요, 거의 다 왔으니까!"

마침 레스터가 말하는 사이에 차는 포트 리뎀션에 접어들고 있었다. 트와일라이트 시티에서 가장 큰 항구 지역이었다. 길에서 보이는 건 창고와 간소한 상가들 뿐인데 어디에 병원이 있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레스터가 당황하여 서커스 스트리트를 찾는데 뒤에서 맥먼이 헛소리처럼 중얼거렸다.

"좌회전."

"네?"

"자주 와 봐서 알아요."

그렇게 맥먼이 시키는 대로 33번지에 도착하니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허름한 건물이 있었고, 전기가 반쯤 들어오는 간판에는 '퍼레이더 진료소'라고 쓰여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병원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레스터는 일단 맥먼을 차에 놔둔 채 존이 말한 대로 문부터 두드렸다.

"계세요?"

대답이 없자 레스터는 좀 더 세게 문을 두드렸지만 역시 대답이 없었다. 혹시나 싶어 문고리를 돌려보니 열려 있었다. 레스터가 안으로 들어가자 을씨년한 복도가 나왔는데 그 중 한 문에서 여성의 신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레스터가 반사적으로 소리가 나는 곳의 문을 열자 한 남자가 화들짝 놀라더니 얼른 노트북을 덮었다.

"뭐야, 당신! 노크를 해야 할 거 아냐!"

남자가 일어서자 레스터보다 머리 하나 정도가 더 컸다. 레스터는 약간 주눅이 들었지만 그 적반하장적인 태도에 빈정이 상해서 똑같이 소리쳤다.

"노크 했는데요!"

"그래서 뭐!"

"환자가 있다고요!"

"어디!"

"밖에요!"

남자와 레스터는 말다툼 같지 않은 말다툼을 한 후 차에서 맥먼을 부축해 병원 안으로 데려왔다. 맥먼은 의사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힘겹게 웃었다.

"저 또 왔어요, 닥터."

"리로이라고 불러."

퍼레이더 진료소의 원장 겸 집주인인 리로이 퍼레이더Leroy Parader가 특유의 말과 행동이 다른 태도로 대꾸했다. 야한 동영상을 밝히거나 성격이 불같긴 해도 환자에게는 친절한 모양이었다. 침대까지 부축하자 레스터가 맥먼을 침대로 올리는 걸 도와주려는데 리로이가 전혀 퉁명스럽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됐어. 내가 할 테니까."

리로이는 두 팔로 맥먼을 가볍게 안더니 침대에 손쉽게 눕혔다. 이후 리로이가 옷걸이에서 수술복을 꺼내는 걸 보자, 레스터는 이제 자신이 사라져 줄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그러면 전 이만 가 볼게요."

"잠깐만."

리로이는 레스터를 불러세우더니 꼬깃꼬깃하게 접힌 지폐 몇 장을 건네줬다.

"이게 뭐죠?"

"뭐긴 뭐야, 수고비지. 환자를 여기까지 데려왔잖아. 왜 내가 내줘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레스터가 얼른 받지 않자 리로이는 어리둥절했다.

"뭐야, 왜 그래? 설마 너, 이런 일이 처음인가?"

"...그런데요."

순간적으로 레스터는 리로이의 얼굴에 존과 비슷한 묘한 미소가 스쳐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흐릿한 형광등 때문인지는 몰라도 확실히 알 수는 없었다. 리로이는 제대로 면도하지 않은 턱을 긁으며 혼잣말을 했다.

"그래... 처음이란 말이지. 처음이라. 그렇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레스터가 당황해서 묻자 리로이는 킬킬 웃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어짜피 곧 알게 될 테니까."

"네, 그럴 거에요."

"환자분께선 그냥 닥치고 있어."

침대에서 계속 가만히 있던 맥먼이 말하자 퍼레이더가 엄격한 얼굴로 대꾸했다. 그리고는 다시 웃는 얼굴로 레스터를 돌아보았다.

"아무튼 고마워. 그럼 나는, 급한 수술이 있어서 말이야."

리로이가 다시 수술복을 챙기며 말했다. 레스터는 자리를 피해달라는 뜻임을 알고 병실을 나섰다. 복도에서 레스터는 뜬금없이 수중에 들어온 지폐 몇 장과 존의 차 키가 폭탄인 것마냥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인질극에 휘말렸다가 살아난 것까진 분명히 이해가 됐는데, 그 다음부터는 도저히 그의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저 총에 맞고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려고 병원(?)에 데려다 준 것 뿐인데, 수고비라니?

레스터는 얼마 안 되는 돈은 지갑에 넣었지만, 존의 차 키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다시 병원에 들어가 리로이의 책상에 두고 왔다. 통성명을 하진 않았으니 이름이 뭔지는 몰라도 리로이와 아는 사이인 것 같으니 문제 없을 것 같았다. 자기들끼리 지지고 볶으라지,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리고 레스터는 그 얼마 안 되는 돈도 택시비로 다 써버리고 집에 도착했다. 아직 초저녁이라 잠을 자기는 일렀지만, 레스터는 머리가 너무 복잡하여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하지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상황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


(계속)


※ 2024-10-15 일부 내용 수정 (회색으로 표시) + 2024-11-17 추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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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은 좀 짧습니다. 2화를 쓸 때 후반부를 좀 바꾸면서 3화도 날려버렸는데, 내용 전개가 달라지다 보니 원래 어떤 식으로 구상했었는지도 싹 잊어버렸네요;;; 어쨌든 다음 화에서 에피소드가 마무리될 것 같습니다.
Lester

그거 알아?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유야 어쨌든 고독을 즐겨서 그러는 게 아니야. 사람들한테 계속 실망해서 먼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는 거야. - 조디 피코

6 댓글

마드리갈

2018-11-22 14:58:44

여러 영상물에서 본 뒷세계 사정과 생태계가 여기에서도 잘 보이네요.

특히 그 중에서 일반적인 병원의 이미지와 동떨어진 뒷세계 병원의 존재가 어떻게 드러나는지가 박진감 있게 묘사되고 있어요. 형법상 낙태가 원칙적으로 범죄로 규정되어 있는 사정이 있어서 국내 드라마에 간혹 나오는 낙태시술 병원은 외관상 일반주택과 거의 다름이 없다든지, 듀라라라의 캐릭터 키시타니 신라가 뒷세계 사람들을 고객으로 영업하는 의사라든지 등등...


레스터 리의 혼란은 자연스러울 수 있죠. 경제학에 대한 지식이나 사고방식 등이 없거나 부족하다면.

받은 수고비는 정상적으로 영업하는 병원이 인쇄물, 라디오, TV, 인터넷 등의 각종 매체에 광고를 게재하고 광고료를 내는 것과 동일한 개념. 그렇게 뒷세계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비용으로 이해하면 되겠지만요.


짧아도 급박한 상황, 그리고 종료된 이후의 폭주하는 머리속 등이 잘 묘사되었으니 충분히 좋지 않을까요.

다음 회차가 기대되어요!!

Lester

2018-11-27 20:17:17

저도 전반적으로 다른 작품에서 나오는 묘사를 따라가고 있긴 한데, 그나마 '엠블럼 TAKE2'나 '야쿠자 크러셔'가 그럭저럭 현실적인 면이 있어서 참고가 많이 되었습니다.


본문의 수고비는 말씀하신 것과 같은 맥락이지만, 더 복잡한 사정이 있습니다. 일반 병원처럼 구급차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뒷세계 전용 운전사들이 그런 일을 맡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리고 원래는 의뢰인인 존이 내줘야 하지만, 위급한 상황에 갑자기 돈을 찔러넣어 주는 것도 이상해서 '보통은 의사가 먼저 내주고 나중에 따로 청구하고 있다'는 설정입니다. 나중에 레스터와 존이 정식으로 만나는 상황에 집중하고 싶어서요.


짧지만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감사드립니다.

SiteOwner

2018-11-23 23:32:34

정신없이 촌각을 다투는 상황, 그리고 상황이 종료된 뒤의 긴장 풀림...

실제로 그 상황에 처하지 않은 게 얼마나 행복한 삶인지를 이번 회차를 읽고 절실히 느꼈습니다.


이번같이 짧은 회차도 좋습니다.

상황이 일목요연하게 보이는 편을 좋아하다 보니 분량은 딱히 문제될 것도 없을 듯합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Lester

2018-11-27 20:25:04

짧은데도 일목요연하게 이해하셨다니 다행이네요.


덧붙여 저기에 나오는 의사 캐릭터는 사실 만화 "헌터x헌터"에 나오는 레오리오 파라디나이트의 패러디입니다. 성격이나 행동거지가 굴리기 적절해서 자주 등장시켜볼 생각입니다.

SiteOwner

2018-12-12 18:58:11

여기에서 의문 하나. 짧은데도 일목요연...? 무슨 취지인지 이해가 안 되고 있습니다.

구성이 복잡하다든지 분량이 이상하게 길어서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만, 현재 쓰신 표현은 앞뒤가 호응되지 않아서 약간 이상합니다.


확인을 부탁드립니다.

Lester

2018-12-15 15:22:10

요즘 길거리 알바 때문에 정신이 오락가락하네요. 그냥 괘념치 않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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