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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에, 눈뜨다] 15화 - 덫 한가운데서

시어하트어택, 2019-04-16 22:32:39

조회 수
133

텅-
세훈의 귀에 또다시 공기를 가르는 그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또다시 전해져 오는 그 위화감. 그것이 세훈의 온몸을 가득 휘감는다. 그리고, 잠시 후...
“어, 뭐야.”
세훈의 왼손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만져지지 않던, 돌멩이가 만져진다. 다리에는 분명히 없을 터였던 나뭇가지도 하나 걸쳐져 있다. 목 뒤가 축축해진 듯한 이 불길함, 그리고 불쾌함. 그리고 위쪽에 느껴지는, 혐오스러운 느낌. 세훈이 고개를 들자...
“여기가 어딘지 혼란스러운가 보군. 눈 깜짝할 새 벌어진 일이니, 혼란스럽기도 하겠지.”
머리 위에서, 클라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세훈은 급히 몸을 돌려 벗어나려 한다. 그러나...
“소용 없어. 어차피 내 손바닥 안이거든.”
다음 순간, 세훈의 몸이 잠시 허공에 붕 뜬다. 그리고 곧이어...
퍽-
뭔가가 허공을 가르는 소리와 동시에, 둔탁한 충격음이 들린다. 클라인의 주먹이, 세훈의 뺨을 직격한 것이다. 세훈의 뺨을 파고들고, 두개골 깊숙한 곳까지, 그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그 충격으로, 세훈의 몸은 약 10m 정도를 날아가, 나무 밑동에 부딪힌 다음 나무 아래 풀밭으로 굴러떨어진다. 세훈은 바로 일어서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며 땅바닥에 엎드러져 있다. 주먹에 직접 맞은 건 오른쪽 뺨이지만, 온몸이 다 아파지기 시작한다.
“아깝군그래.”
클라인의 목소리가 점점 세훈 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강력한 재능을 갖춘 사람답지 못하군. 나름 기대했었는데 말이야.”
“너... 이 자식...”
세훈은 몸을 비틀거리며 일어선다.
“앤드루한테도 이런 식으로 한 거냐?”
“왜 당연한 걸 물어보고 그러나?”
클라인의 말투는, 태연하다 못해 매우 자연스럽다.
“너 같은 사람이 그런 것도 몰라서야 되겠나. 강해져야 살아남는다고. 냉정하기는 하지만...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세훈은 온몸이 쑤시는 중에도, 입술을 꽉 깨문다. 다시 온몸이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지금껏 이런 분노를 느껴 본 적이 없다.
“다시 한번 지껄여 봐.”
“귀가 어떻게 됐나? 강해져야 살아남는단 말이다! 네놈이 아직 뼈저리게 느껴 보지를 못했구나!”
탕-
또다시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린다. 세훈의 눈앞에, 그 푸른 연기 같은 것이 다시 보인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세훈의 몸은 또다시 부자연스럽게 일으켜져 있다. 어느새, 세훈의 눈은 클라인의 얼굴을 다시 바로 앞에서 보고 있다.
또 한 번, 충격음이 들린다. 그리고 충격이 전해져 온다. 이번에는 오른쪽 뺨에! 또다시, 허공을 가르고 세훈의 몸이 날아가기 시작한다. 재빨리 땅에 손을 짚으려 한다. 그러나, 세훈이 손을 짚으려던 바로 그 때!
텅-
또 한 번,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푸른 기운이 보인다. 금방 어딘가에 떨어지겠지... 금방일 거다. 세훈은 그렇게 생각한다.
“어... 어?”
하지만 3초도 되지 않아, 세훈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 몸이... 어째서 허공에 떠 있는 것인가! 어째서... 어째서...
“이게 무슨...”
“방심했군, 안 그래?”
또다시, 클라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번에는, 세훈의 바로 밑에서! 그대로 클라인의 위로 낙하한다. 이럴 수가!
텅-
또다시, 푸른 기운이 보인다. 클라인의 머리 바로 위, 세훈의 바로 밑에!
“흐흐흐..”
다음 순간, 세훈의 몸이 뭔가에 강하게 부딪힌다.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리고, 세훈의 몸은 힘없이 땅바닥으로 떨어진다. 허리가 아파져 온다. 그와 함께 머리도 지끈거린다. 눈을 들어 머리 위를 본다. 푸른 기운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오른손을 들어 본다. 바로 그때.
“어떤가? 지금까지, 내 능력을 온몸으로 겪어 본 소감은.”
클라인의 목소리가, 또다시 세훈의 옆에서 들려 온다. 세훈은 아무 말이 없다.
“그래. 이게 바로 내 진정한 능력이다. 공간을 찢어 버릴 수 있는 능력이지. 내게 대들었던 사람들, 모두가 이 능력을 보여 주자 무릎을 꿇었지.”
세훈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다만, 오른손 주먹을 꽉 쥐고 엎드려 있을 뿐.
“전의를 상실한 건가? 아니면 뭔가 보여 줄 게 있는 건가?”
“......”
“수작 부리려 하지 마라.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봤자, 어차피 여기서 빠져나갈 길은 없으니까!”
순간, 또다시 그 파란 기운이 보이고, 텅- 하는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세훈의 몸이 또다시 공중으로 솟구친다. 바로 그 다음 순간, 세훈의 눈에 뭔가 보이려는 찰나...
“흐흐흐... 또 방심했군.”
목소리가 들린다... 클라인의 목소리가. 하지만 어디서? 눈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오직 암흑뿐인데!
“물러터졌어. 기척도 눈치를 못 채서야!”
또다시 충격이 전해져 온다! 이번에는 등에... 주먹과는 다른 느낌이다... 클라인의 발차기에 등을 강타당한 세훈은 또다시 지상으로 낙하한다. 쿵 하는 소리가 울린다.?
“으으...”
안 그래도 쑤셔오던 온몸이 더욱더 욱신거린다.
“보통 현명한 사람들이라면 이쯤에서 무릎을 꿇기 마련이지.”
또다시 클라인의 목소리가 들려 온다. 세훈이 막 고개를 들어 보려는 찰나,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세훈의 몸은 강제로 일으켜 세워진다.
“그런데, 너는 멍청한 건지 아니면 아직도 투쟁심에 불타는 건지 모르겠군. 내가 생각해 봐도 둘 중에 뭘 택해야 할지 몰랐는데... 지금 보니, 점점 더 전자에 가까워지는 것 같아!”
말이 끝나자마자, 클라인의 주먹이 세훈의 가슴으로 날아온다. 퍽-하는 무겁고 깊은 소리. 또다시, 세훈의 몸이 뒤로 쓰러지려는 그때, 또다시 텅-하는 소리가 들리고, 세훈의 눈앞에 푸른 기운이 선하게 보인다. 다음 순간, 또다시 세훈은 공중에 붕 뜨더니, 이내 나무에 부딪히고 땅바닥에 구른다. 온몸에 또다시 찌릿거리는 그 고통스러운 느낌이, 온몸 군데군데 그 느낌이 전해져 온다. 그 와중에도, 세훈은 결코 꽉 쥔 오른손을 펴지 않는다.
“애초에 네게 기대를 걸어 본 내가 잘못이로군.”
클라인은 쓰러져 있는 세훈에게 다가오며 말한다. 목소리는, 어느새 진중한 중저음에서 비웃는 듯한 중고음으로 바뀌어 있다.
“나는, 너 정도로 강한 사람은 나와 호각으로 겨루거나, 적어도 조금은 부족하지만 나와 겨룰 수 있는 정도는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네가 강하다는 그 가정부터가 틀려먹었군. 어쩌면, 내 감이 잘못되었던 것일지도 모르겠군... 아니, 그게 확실하다!”
문득, 세훈의 귀에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것도 아주 기분 나쁜, 송곳과 바늘로 쑤시는 듯한 웃음소리가. 사방에서, 희미한 웃음소리가 얇은 바람을 타고 세훈의 온몸에 닿는다. 온몸을 간질이는 듯한, 그 참을 수 없는, 귀가 가려워지는 그 웃음소리. 분명히, 분명히 들려 온다.
문득 떠오른다. 어린 시절, 동급생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다했던 기억이. 혼자 빈 교실 안에 숨어서 ‘제발 저 애들이 못 보고 지나갔으면’ 하고 기도했던 그때를. 그리고 그렇게 숨어 있다가 세훈을 괴롭히던 그 패거리에게 발견되어, 엄청난 비웃음과 함께 구타당하고 저녁때까지 갖은 모욕을 당했던, 그 싫은 기억이, 저절로 떠오른다. 싫으면서도 자꾸만 떠오른다. 마치 그때로 돌아간 것만 같다. 지금 공기 속에 스며든 그 웃음소리를 들을 때, 마치 자동재생되는 음악처럼 떠오른다.
“그런데, 그 표정만큼은, 자신감에 넘치는군. 패기인 건가? 허세인 건가? 아마도, 후자겠지만.”
클라인은 마치 시체를 보고 이빨을 드러내는 하이에나처럼, 점점 다가오며, 애써 진중해 보이지만, 중간중간 김이 새는 콜라 같은 목소리로 말한다.
“이제 벗겨 주겠다... 너의 그 가식으로 가득찬 가면을! 지금... 헉?!”
득의양양하게 말하다 말고, 클라인은 갑자기 당황하는 얼굴빛을 띤다. 온몸이 마비된 듯,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다. 세훈은 오른손을 여전히 꽉 쥐고는 말없이 클라인을 바라본다. 세훈의 눈과, 클라인의 눈이 마주친다.
“너... 너 이 자식! 잘도... 잘도 이런 수작을...!”
“호오, 왜 그러시나? 내게 오는 데 뭔가 문제라도 생긴 건가?”
“이 자식... 이 비겁한 자식!”
클라인은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못 움직인 채, 세훈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이 와이어는 뭐냐... 대체! 언제 가져온 거냐!”
“혹시나 해서 가져왔지. 내 능력이 발현됐는지 안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힘에서 딸리면... 머리로 보완해야 하지 않겠어?”
세훈은 온몸이 욱신거리는 와중에도 한껏 호기롭게 말한다. 문득 클라인을 보니, 클라인의 손과 발이 뭔가에 걸려 있다. 어두컴컴한 가운데 군데군데 있는, 사라지지 않고 군데군데 남아 있는, 어느새 연기에서 줄 같이 변한 푸른 기운. 그 사이로... 와이어가 희미하게 보인다. 푸른 줄과 푸른 줄 사이를 연결하는, 서로 얽히고 얽혀 마치 거미줄처럼 짜여진, 와이어의 덫이!
“너 이 자식... 방금 전에 한 말들은 취소하도록 하지. 확실히 칭찬해 줄 만하군. 내 능력을 역이용한, 너의 잔꾀는 말이야.”
클라인은 와이어에 손발이 걸린 채로, 분하다는 듯, 그러나 다시 진중해진 목소리로 말한다.
“하지만, 걸려 주는 것도 한 번뿐이다!”
“무... 무슨!”
다음 순간, 클라인의 오른손에서 ‘부웅-’하는 소리가 나더니, ‘툭’ ‘투둑’ 하고 뭔가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실로 눈 깜짝할 사이에, 세훈은 클라인의 바로 앞에 서 있다.

어느새, 클라인과 마주보고 선 세훈의 눈앞에는... 클라인의 손에 쥐어진 잘려 나간 와이어가 보인다! 그것도, 손에 한 움큼, 무더기로 들고 있는!
“봐라! 네 부질없는 수작은 간파되었다. 한 번은 속아 줄 수 있어도 두 번, 세 번 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이야말로 큰 오산이다!”
클라인은 와이어 조각들을 멀리 던져 버린다. 세훈은 그렇지 않아도 입안에 얼마 남지 않은 침을, 자기도 모르게 꿀꺽하고 삼킨다. 클라인은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세훈의 눈앞으로 가져간다. 곧이어, 세훈의 눈이 뜨거워질 정도의, 아니 세훈의 온몸을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듯한, 저 땅 밑에서 스며나오는 마그마와도 같은, 그런 기운이 세훈의 온몸을 휘감는다.
“나는 충분히 네게 기회를 주었다. 그 기회를, 줘도 못 찾아 먹으니 어쩔 수 없군. 몇 번을 망설였지만, 역시 너는 처리해야 하겠다!”
클라인이 막 오른손을 뒤로 젖히고 세훈을 향해 조준하는 그때.
“흐흐흐흐... 흐하하하하하...”
세훈은 갑자기 정신 나간 사람 마냥 미소를 지어 가며 웃기 시작한다. 클라인은 세훈의 갑작스러운 웃음에 잠시 세훈을 노려보더니, 어이없다는 듯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김빠진 목소리로 세훈에게 말한다.
“드디어 머리가 어떻게 됐군그래? 패배를 인정하랬는데, 왜 웃고 그러는 거지? 설마, 정신이 나가 버린 건 아니겠지?”
“착각하지 말라고. 나는 네가 생각하는, 절대 그런 뜻에서 웃는 게 아니니까.”
“그러면 뭐지? 나는 네 웃음의 뜻을 도저히 모르겠는데.”
“뭐냐고? 너는 절대 자만하지 않았어야 했어.”
“뭐야?”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거든!”
세훈이 일갈하는 그 순간, 클라인은 손 밑에 뭔가 이상한 감촉을 느낀다. 가느다랗고 탱탱한 느낌! 분명 와이어! 방금 잘랐을 텐데... 어째서?
“혼란스러운가 보군. ‘내가 와이어를 방금 잘랐을 텐데’ 분명 이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클라인의 얼굴은 흙빛이 된다. 어떻게... 어떻게 생각을 읽어낸 거지? 도대체 어떻게... 설마... 조세훈 저 녀석의 초능력이 저런 식으로 발현된 건가? 아닌데... 분명히... 분명히... ‘그 느낌’은 없었는데...
이상하다...
이상하다...
이상하다...
턱-
그 와이어... 와이어의 느낌... 손목을 둘러서 전해져 온다! 양 손목에 모두! 조여 온다! 급히 손목에 힘을 주어 손을 빼 보려고 하지만... 이미 늦었다! 와이어는 이미, 클라인의 양 손목을 옭아매었다. 빼려야 뺄 수 없을 정도로.
“네... 네놈이... 네놈이 감히 이런 짓을...”
“너를 만나기 직전에 나무에 묶어 놨지. 다른 와이어들을 다 잘랐을 때, 이건 안 잘랐더군. 뭐, 꼭꼭 숨겨 놔서 알아볼 수도 없었을 테지만 말이야.”
세훈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한다.
“어디 한 번 그것도 끊어 보시지. 조금 전에도 잘만 했잖아?”
클라인은 다시 한번, 공간을 끊어내는 그 능력을 발동해 보려 한다. 손을 벌린다... 그러나 거기까지. 손이 와이어에 묶여 버렸으니 어떻게 해 볼 방도가 없다...?
“이... 여우 같은 자식... 네가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클라인은 다시 한번, 손에서 능력을 발동해 보려고 한다. 호흡을 바로 하고, 다시 한번, 천천히. 세훈이 있는 곳을 베어내 버린다고 생각한다. 그거면 된다. 그거면 될 텐데...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분명히 능력이 발동해야 할 텐데...?
“너... 너... 무슨... 무슨 수작을!”
“나는 아무 짓도 안 했어. 네 정신이 흐트러져서 그런 거겠지.”
“말해라... 무슨 속임수를 쓴 거냐!”
클라인은 악에 받쳐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아무 짓도 안 했다니까? 분명히 말해 두지. 네놈의 패인은 결코 나나 네 부하 같은 다른 데 있지 않아. 심지어 네가 내 친구를 해친 데 대한 분노도, 네 패인은 될 수 없어. 네놈의 패인은 다름 아닌 너 자신에게 있다고. 알겠어?”
“좋아...”
클라인은 천천히 한쪽 무릎을 굽힌다. 그것도 세훈의 바로 앞에서. 세훈은 머리를 한 번 흔들고는, 여전히 의심을 풀지 못한 얼굴을 한다.
“왜 그래? 네놈답지 않은 행동을 다 하고.”
“이건 쇼가 아니다. 나는 네놈에게 지금...”
“지금 뭐?”
“경외심을 느끼고, 무릎을...”
“무릎을 뭐? 말해 봐.”
“꿇을 줄 알았냐! 하하하하하하...”
클라인은 마치 정신 나간 사람처럼 웃더니, 주위를 둘러보고 말한다.
“거기! 뭣들 하는 거냐? 어서 이 녀석을 끝장내지 않고!”
그런데 세훈은 클라인의 발악에 찬 말을 듣고도 전혀 요동하지 않는다.
“너 이 자식... 뭣 때문에 이렇게도 태연하지? 내 부하들이 지금 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니까? 허세 그만 부리라니까!”
“아니... 지금 상황은, 그 반대야. 이건 나도 예상하지 못했던 거야.”
“뭐... 뭐라고?”
그 순간, 아모르 숲이 마치 야외 콘서트장처럼 환하게 밝아진다. 세훈은 손목에 찬 AI시계를 본다.
“역시나. 아까부터 내가 조작하지도 않았는데, 왜 계속 깜박이고 있나 했어.”
세훈과 클라인은 동시에, 불빛이 반짝이는 곳 중 각각 다른 한쪽을 본다. 검은 방탄복을 입은 사람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다. 세훈은 그 사람들을 보고 안도하는 얼굴로 다가가지만, 클라인은 그 사람들이 가까이 올 때마다 한 발 한 발 슬금슬금 뒤로 물러난다. 그것도 얼굴은 울상이 되기 직전에다, 와이어에 묶인 손은 풀지도 못하고 어떻게든 뭐라도 하려다 보니, 눈물 콧물 다 흘리며 싹싹 비는 꼴이 되었다.
“호오. 자네가 빈센트 로스 클라인 군이구만.”
클라인의 뒤에서 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누... 누구야... 누군데 이런 수작을 거는 거야!”
클라인은 울며불며 소리 지른다. 그와 동시에, 클라인의 어깨를 누군가 뒤에서 슬며시 짚는다.
“나는 VP재단의 엘더 박사라고 하네. 자네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네. 자네와 이야기를 좀 하고 싶은데, 따라와 주겠나?”
“다... 당신이 뭔데... 뭔데 그래! 당신...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기에...”
클라인이 신경질적으로 엘더 박사에게 소리지르려는 찰나, 양옆에서 방탄복 입은 사람들이 클라인의 팔을 잡는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따가 하겠네. 따라와 주게.”
클라인은 몸을 배배 꼬고 이리저리 비트는 등 나름 저항해 보지만, 방탄복 입은 사람들에게 그대로 어디론가 끌려간다.
클라인이 숲 저편으로 사라지자, 세훈의 귀에 어디선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조심스럽게 걸어 그쪽으로 가 본다.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진다. 걸음을 재촉한다. 마침내, 세훈의 눈앞에는 어두컴컴한 나무들 대신, 검푸른 비단 위에 보석을 수놓은 듯한 밤하늘, 그리고 도시의 야경이 환하게 비치는 호수가 펼쳐진다. 야경 정도야 밤이면 흔하게 보는 것이지만, 지금 세훈에게는 이것보다 더 아름다워 보이는 게 없다.
“어딜 그렇게 헤매?”
익숙한, 아니 반가운 목소리가 들린다. 세훈은 고개를 두리번거린다. 그런데, 잘 보이지 않는다. 어디지? 분명히 목소리는 들렸는데...
“여기 있어, 여기.”
목소리가 들린 곳은 세훈의 바로 옆. 곧이어 누군가 세훈의 어깨를 짚는다. 그쪽을 돌아보니...
“어? 메이링 씨잖아요!”
“왜 그렇게 놀라고 그래.”
메이링은 아무 것도 안 했다는 듯 태연히 말한다.
“아까부터 쭉 여기 있었는데.”
“아까부터... 라니요?”
“주리가 아까 낮에 연락했어. 변호사님하고 나한테 말이지.”
이번에는 앨런이 세훈의 앞으로 나와서 말한다.
“그러고 나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연락했지.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주리의 연락을 받고 온 거야.”
그러고 보니, 어느새 세훈의 앞에는 반가운 얼굴들이 한군데 모여 있다.
“서언이 형... 맞지?”
서언이 고개를 끄덕인다.
“거기에... 레아, 사이, 나타샤, 그리고... 하야토도... 다들 와 줘서 고마워.”
“그러니까, 말했잖아요?”
사이가 이를 드러내 웃으며 말한다.
“뭉치면 강하다고요.”
“아, 그래. 내가 그걸 잊고 있었네. 그런데... 주리는 어디 있어?”
“응? 내가 여기 있는지 아직도 몰라?”
주리가 세훈의 뒤에서 나타나자, 모두 깔깔대며 웃는다. 세훈은 뒤를 돌아본다. 주리가 얼굴 가득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서 있다.
세훈의 머릿속에, 그때가 떠오른다.
어린 시절, 세훈을 지독히도 괴롭히던 그 패거리가 빈 교실에서 세훈을 한껏 괴롭히고 나간 후, 혼자서 울먹이며 창밖을 내다보고 있던 그때를. 해가 질 때까지 교실에서 나가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누군가의 기척이 들리자, 세훈은 뒤를 돌아봤다. 교문 앞에 서 있는 사람, 다름 아닌 주리였다. 주리는 울먹이고 있던 세훈에게 말없이 미소를 지어 주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 것 같았던 세훈에게는, 그것이야말로 구원이었다. 몇 년도 전의 일이지만, 세훈은 그때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지금 와서 보니, 꼭 그때로 돌아간 것만 같다. 차이점이라면, 지금은 세훈 스스로 그 상황을 이겨냈다는 것이지만. 다시 한번, 세훈은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모여 준 사람들, 특히 주리를 향해 감사의 인사를 한다.?
“저... 세훈 님?”
AI시계에서 NURI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 고마워. 네가 아니었으면 큰일날 뻔했어.”
“천만에요. 감사는 HANA한테 하셔야죠.”
“HANA라니?”
“HANA가 저한테 빨리 사람들한테 연락하라고 아주 닦달을 하더라고요.”
“아... 그래?”
세훈은 밤하늘을 본다. 이토록 밤하늘이 아름다웠던 적이 없었다. 어쩌면, 몇 년 전 그날보다도 더욱 잊지 못할 날이 되리라. 세훈은 그렇게 생각한다.


-------------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작품이었지만 이제 에필로그만 남겨두고 있네요.
쭉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미리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시어하트어택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2 댓글

마드리갈

2019-04-17 09:02:55

제왕으로 군림하던 클라인이 결국은 자충수로 패배했어요.

독일어 단어 클라인(klein)의 의미는 작다는 뜻. 이것과 겹쳐 보니 그 허세충만한 그의 최후가 참 보잘것없이 작아 보인다는 게 그대로 잘 느껴지고 있어요.


세훈은 정말 행운아임에 틀림없어요.

상당히 힘든 상황을 잘 극복했음은 물론이고, 좋은 친구 주리가 있으니까요.

That's what friends are for라는 노래가 생각나고 있어요.

For good times and bad times I'll be on your side forever more.

이 가사 그대로예요.

SiteOwner

2019-04-22 21:52:19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그렇습니다.

그리고, 최후에 웃는 자가 바로 승리자입니다. 그것을 제대로 보여준 세훈은 그렇게 클라인과의 피할 수 없는 일전을 이겼고, 위험한 상황을 이겨냈습니다. 멋진 자력본원이자, 소중한 친구들과 이루어 낸 타력본원입니다.

VP재단의 사람들에게 끌려간 클라인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일단 VP재단이 국가기관은 아니니까 험한 꼴은 안 보겠지만, 초능력을 이용하여 위험을 초래했으니 실험용 생쥐마냥 조사를 받을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 아름다운 밤하늘, 저도 느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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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 8
대왕고래 2019-03-26 168
1430

[단편] 교수의 비밀

| 소설 3
시어하트어택 2019-03-19 157
1429

[초능력에, 눈뜨다] 12화 - 캠핑장에서

| 소설 2
시어하트어택 2019-03-14 123
1428

꿈의 터널을 빠져나오자, 마음의 고향이었다.

| 스틸이미지 4
  • file
마키 2019-03-14 166
1427

등장인물 그림들 두 장 더.

| 스틸이미지 2
  • file
시어하트어택 2019-03-10 131
1426

간만의 건축 연습

| 스틸이미지 4
  • file
마키 2019-03-09 153
1425

[초능력에, 눈뜨다] 11화 - 도서관에서 당한 기습

| 소설 2
시어하트어택 2019-03-07 136
1424

간단히 그려 본 등장인물들 그림

| 스틸이미지 6
  • file
시어하트어택 2019-03-03 208
1423

[초능력에, 눈뜨다] 10화 - 공원에서 조우하다

| 소설 2
시어하트어택 2019-02-28 135
1422

두 번째 리퀘스트의 채색 버전입니다.

| 스틸이미지 4
  • file
Lester 2019-02-28 147
1421

일단은 두 번째 리퀘스트의 초안입니다.

| 스틸이미지 4
  • file
Lester 2019-02-27 152

Polyphonic World Fo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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