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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HOMI?”
“여자친구 분으로부터의 연락이 왔는데, 연결할까요?”
“아... 연결해 봐.”
그런데... 연락이 왔다고? 분명히 잠가 놨을 텐데... 어떻게 된 거지?
“민우야. 뭐해. 왜 오늘 하루 종일 연락을 안 하는 거야.”
“야, 너 어떻게 연락이 된 거냐? 참 대단하다. 내가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암호도 걸어 놨는데.”
“자기 덕분에 푼 거지, 뭐.”
“조, 좋아. 그건 그렇고, 우리 이번에 휴가 가기로 했었지? 동부 지방으로.”
“그래. 너는 회사에 말하기로 한 거 잘 된 거야?”
“난 말야. 너만 잘 되면 돼.”
“알았어. 내가 내일 가서 말해 볼게.”
“그래. 자기야. 잘 자. 늘 내가 지켜보고 있는 거 잊지 마.”
여자친구의 연락은 끊어졌다. 하지만 어째 오늘은 여자친구가 왠지 무섭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휴가를 갈 생각에 즐거움으로 가득 찬 나머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는 수면 보조제를 먹고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요즘 며칠 동안 잠만 자면 이상한 꿈을 꾸었다. 계속 어딘가에 묶여 있고 연구원들이 그 앞에 서 있었다. 일어나도 잠자리가 뒤숭숭했다. 하지만 GT 제약에서 새로 개량된 수면 보조제라면 복용하는 사람을 원하는 시간 동안 잠자리에 들고 개운한 아침을 맞게 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곧 잠자리에 들었다.
일주일 뒤. 이민우는 여자친구와 그토록 원하던 휴가를 떠나게 되었다. 얼마 전에 정사원 특별할부로 산 그의 차는 마치 하늘 위에 떠서 다니는 기분이 날 정도로 승차감이 좋았다. 더욱이 여자친구와 같이 타니, 하늘을 넘어서 천국을 다니는 기분이었다.
“미나야, 좋지?”
“와! 바람 좋다.”
약 1시간쯤 고속도로를 달렸다. 드디어 푸른 산으로 둘러싸인 협곡이 나오기 시작했다. 병풍처럼 둘러진 산들은 완전히 초록색으로 우거져 있었다. 평소 여자친구가 말한 동부 지방이란 바로 이런 걸 말하는 것이었다. 다리를 건널 때 밑으로 지나가는 강물의 소리는 그렇게 힘찰 수가 없었다. 가끔 지나가는 구름과 비마저도 그들을 설레게 했다. 비가 내릴 때 차창으로 튕겨 나가는 빗물도 보기에 아름다웠다. 그들이 원하던 최고의 휴가가 시작되고 있었다. 한참 지나다 보니, 바위산이 보였다. 이 풍경에 어울리지 않는 바위 더미도 있었다.
“저거 봐! 뭔가 이상하지 않아? 사람들도 모여 있고. 자기야! 자기가 좀 아는 거 아냐?”
자세히 보니 경비대 전투복을 착용한 사람 몇 명이 소총을 들고 서 있었다. 복장으로 보아 모두 병사 아니면 사급 간부였다. 그는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로 했다.
“내가 가 볼게. 여기 차에서 잠깐만 기다려.”
그는 차에서 내려서 사람들이 모인 쪽으로 갔다. 전투복을 착용한 사람 몇 명 말고는 모두 민간인들로 보였다. 모두 초조한 눈빛이었다. 이민우는 사람들에게서 빨리 그가 뭔가 해 주길 바라는 눈치를 느꼈다. 앞에 지키고 서 있던 경비대원들이 그를 막아섰다. 상등경 계급장을 단 경비대원이 말했다.
“이곳은 접근 제한 구역이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지키고 있는 것 안 보이는가? 허가 없이는 들어올 수 없다. 당장 물러나지 않으면 즉각 조치하겠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사원증 홀로그램을 켰다.
- 이민우, 98-11064, 대정 경비대 1등위, 입사 506년 4월 -
그것을 본 경비대원들이 황급히 그에게 경례를 붙였다. 그 중의 대표 격인 듯한 2등사가 말했다.
“이민우 1등위님, 몰라뵈었습니다! 불편을 끼쳐 죄송합니다!”
“아냐. 휴가 중이니 몰라볼 수도 있지. 그런데 여기 있는 사람들은 지금 누구인가?”
“이 사람들은 지금 이 근처의 세크라듐 광산에서 굴착 및 채굴을 하기 위해 징발된 사람들입니다. 저희도 지금 본사의 지시가 있어 그대로 시행하는 중입니다.”
“음, 그런가? 총본사에서 뭔가 할당량이 부족했던 건가?”
경비대원들이 말하는 본사란 경비대 사령부를 의미했다. 경비대는 독립된 법인이었으므로 모기업인 정부는 총본사라고 칭했다.
“이 사람들, 자원해서 온 건가?”
“아닙니다. 임의로 뽑아 온 겁니다.”
“그런가? 이 사람들 안 그래도 억지로 온 거잖아. 그런데 강압적으로 대해서야 되겠나? 좀 그런 건 신경 써 주면 좋을 것 같아.”
“알겠습니다. 휴가 나오셨다고 하셨습니까? 좋은 시간 되십시오!”
그는 차로 돌아왔다. 여자친구가 그에게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그래? 자기야, 무슨 일 있었어?”
“아냐... 아무 일도 아냐. 계속 가자.”
그는 일단 그 일을 잊고 여자친구와 즐겁게 놀 일만 생각하기로 했다. 일단은 2박 3일 동안 상류 쪽에 올라가서 물놀이도 하고, 산에도 올라가며 여자친구와 시간을 보냈다. 일상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자연이었다. 또한 동부 지역은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곳이라 그들은 자연을 만끽하고, 일상을 잊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이민우는 다시 그 일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자신을 바라보던, 광산 앞에 서 있던 그 사람들의 눈빛이 뇌리에서 없어지지 않았다. 원래 그는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휴가를 갔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그 일상보다 더 큰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며칠 전에 생각해 봤던 그 역사의 현장이 되풀이되는 것을 그 날 본 것이다. 그는 큰 한숨을 내쉬었다.
“자기야, 정말 뭐 안 좋은 거 있어? 왜 그렇게 표정은 어둡고 그래? 속이 안 찬 거야?”
“아냐... 아무것도 아냐. 걱정해 줘서 고마워.”
약 이틀 뒤, 그는 다시 부대로 출근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부하들이 그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고, 그도 인사를 했다. 행정사무원 중 한 명과 B소대장이 그에게 다가와 말했다.
“중대장님, 어제 저희가 B중대와 시위를 진압하는 와중에 시위의 총책임자를 잡아왔습니다. 지금 부대 내 유치장에 있으니, 중대장님께서 조금 있다가 직접 심문해 보라고 대대장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알았어. 가 봐.”
그는 부대 내의 간이 심문실로 가 봤다. 이곳은 본격적으로 교도소 등으로 보내기 이전, 체포된 사람에 대해 간단한 심문을 하는 곳이었다. 어제 연행해 왔다는 시위 총책임자는 그곳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가 심문실로 들어오자, 그곳을 지키고 있던 3등사가 경례를 붙였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자동문 쪽을 향해 외쳤다.
“1237 오주원! 나와라!”
시위 총책임자의 이름이 오주원인 듯했다. 오주원과 이민우는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았다. 이민우가 우선 입을 열었다.
“나는 시위 주동자들의 생각이 뭔지를 알고 싶었다. 그간 내가 시위를 많이 진압해 왔는데, 연행한 자들을 심문한 건 언제나 다른 중대였지. 그리고, 내 개인적인 의문점도 있었다. 오늘 당신에게서 말을 한 번 들어 보고 싶군.”
“당신이? GT 그룹의 충실한 종인 당신이 말요? 참 웃기는군.”
“나는 당신에게서 진실한 이야기를 듣고 싶단 말이오.”
“내 이름은 아까 저 3등사가 말해 주어서 알 것이오. 나는 원래 정사원이 될 예정의 촉망받는 대학생이었소. 당신과 똑같이 정부에 지지를 보냈지. 하지만, 4학년이 되던 해 기업 국가의 실체를 알게 되었소. 그리고 나는 감히 국가에 의문을 품었다는 이유로 쫓겨났고, 비사원으로 내려앉았소. 그 이후, 지금까지 이 자리에 위치하여 시위를 주도해 오게 된 거요.”
이민우는 그가 원래 엘리트였다는 사실에 놀라워했지만, 한편으로는 더욱더 궁금해했다.
“그럼, 당신이 깨달았다는 그 실체에 대해 말해 주실까.”
“좋소, 몇 가지만 이야기해 주지. 지금 이 나라는 정사원, 비사원 두 가지의 큰 계급으로 나누어져 있소. 정사원이 되면 여러 가지 혜택을 받지만, 비사원은 그런 건 없지. 이것은 GT 그룹이 70년 전에 우리나라 정부를 인수한 이후부터 시작된 거요. 기업의 기본적인 목적은 이윤 추구요. 이는 지구에 있던 시절부터 바뀐 게 없소. 아니, 먼 과거에 지구에 있었던 때보다 지금의 시간대로 넘어와 여러 행성에 나뉘어 정착한 시점에 더 치밀해졌지. 기업국가란 간단해. 국가가 국민들을 보호하는 게 아닌, 국민들로부터 수익을 창출할 생각을 하는 거지. 당신도 강영 밖을 다니다 보면 봤을 거요. 국가가 나서서 비사원들을 싼값에 착취해서 세크라듐을 채굴하고 있소. 국가는 돈이 쌓이지. 그 밑의 정사원들도 당연히 주식이 있고 배당금을 받으니 풍족해. 하지만 전 국민의 80%를 차지하는 비사원들은 지옥의 나락이지. 이건 최준우 부자 집권 때와 다를 게 없소. 아니 더 심해졌지. 내가 당신에게 말하고 싶은 건...”
오주원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민우 역시 정사원으로써 배당금을 받고 있었다. 또 그가 휴가 중에 목격한 것도 딱딱 들어맞았다. 오주원이 뭔가 더 말하려는데, 3등사가 막아섰다.
“잠깐! A중대장님! 죄송합니다! 여기서 심문을 중단하라는 대대장님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1237 오주원! 다시 원래 위치로 복귀한다!”
3등사는 그를 자동문 저편으로 끌고 갔다. 오주원은 이민우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내가 한 말을 잊지 마시오! 당신이라면 알 수 있을 거요!”
“...!”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2 댓글
마드리갈
2019-05-14 15:41:07
아무리 문명이 발달하더라도 역시 전근대적이거나 차별적인 부분은 존재할 수 있고, 그게 더 극단적으로 진화할 수도 있어요. 그게 이 회차에서 보이네요. 전문적인 기술영역인 광업의 최전선에 징발된 인력을 투입한다든지 하는 것은 "막장" 이라는 말의 어원 그대로이고, 기업국가에서의 정사원/비사원 구분은 과거 군국주의 시대 일본의 국민/비국민 개념이라든지, 일본 드라마 파견의 품격에서 보이는 정사원과 파견사원의 차별, 그리고 한국에서 리메이크된 드라마 직장의 신에 나오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벽을 느끼게 하고 있어요.
가장 적대적인 사람은 외부에 있지 않고, 내부에 있다 밀려난 사람이죠. 그게 바로 오주원을 통해서 드러나고 있어요.
SiteOwner
2019-05-29 18:19:03
역사에 이런 경우가 좀 있습니다. 폭정을 몰아냈다고 생각했는데, 그 폭정을 대신한 신정권이 그 이전보다 나을 것이 없거나 오히려 역기능이 더욱 많은 경우. 일제치하에서 해방된 이후 38선 이북에 들어선 북한 정권이나, 소련 해체 후 1990년대의 러시아의 혼란상 등과 같은 것이 과거보다 더욱 못해진 현재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예의 GT그룹이 지배하는 이 세계는 현실세계의 북한이나 신생 러시아 공화국보다는 그나마 덜 못하지만,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드러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