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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푹 찌는 여름은 새벽녘마저 이마에 땀방울을 맺게끔 했다. 시곗바늘이 힘겹게 정상에 다다르고서 마치 중력에 손을 붙잡힌 마냥 빠르게 하강할 즈음 눈을 뜬다. 아침, 기울어져선 서서히 반듯해지는 햇살 속 샛소리도, 출근길을 나서려 시동을 거는 차 엔진소리도 없는 오후의 시작에.
?그런 기상을 매일 할 때마다 아침의 소리가 없다는 게 여유로 느껴지기도 한다. 대부분은 나태함이지만. 그도 그럴 것이 탈수 없이 갓 끝난 빨래처럼 무기력에 푹 젖어 일어나는 나날 속에선. 눈을 뜰 때마다 새로움에 대한 기대와 이룰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거세당해, 빈 지갑과 돈을 벌 수 없다는 현실의 여러 이유와 함께 눈을 뜨다 보면 여유보다는 나태로 다가오는 게 당연할 테니까.
?잠에서 깨어 어제 태웠던 담배의 개수만큼 무겁고 끈덕진 가래를 기침해 입안으로 올려 게워낸다. 아침의 라면물을 올리고선 컴퓨터를 켜고 뉴스를 찾아보고 나름대로 생각을 하며 스프를 끓는 물에 털어넣는다. 옳지 못한 생각과 행동은 오늘도 어제, 그 훨씬 이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가득했다. 면을 넣어 끓이며, 담뱃갑을 열고 개비 수를 센 다음, 지갑에 홀로 외로이 접혀있는 율곡을 생각했다. 담배를 사러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서 젓가락을 들었다. 한 짝이 휘어져갖고, 잘못 버릇들인 젓가락질로는 면발을 제대로 들질 못 했다.
?젓가락질도, 젓가락 한 짝조차도 온전하질 않구나. 라면의 밀가루 냄새가 이빨 사이를 파고들었다.
?적당히 설거지를 하고, 몸을 씻고 나와 선풍기 바람에 말리는 중에 휴대전화가 울렸다. 구청 직원으로부터. 사회복지과. 수급자 자격 유지를 위한 방문 조사 시간을 통보하는 내용이었다. 일을 해서 돈을 벌거면 등록금을 자비로 내고, 그렇지 않으면 하루에 담배 한 갑 사고 버스 두 번 타는 돈으로 학교를 다니라는 건 조금 너무한 거 아닐까. 뭐, 어쩔 수 있나. 학교를 다니는 게 맞을 테다. 그러니 통장 입출금 내역을 조회 당하면서 집에 갇혀 지내는 게 아닐까.
?복잡한데다 즉답할 수 없는 생각이 머릿속에 새끼를 쳐가며 불어나고 있었다. 다른 생각. 다른 생각을 해야 해. 어떤 생각을 할까. 저녁엔 무얼 먹지? 찬장에 있을 라면일 테다. 오늘은 뭘 하지? 돈이 없으니 집에서 보낼 것이다. 다른 생각으로의 도망도 그 새끼침에는 소용 없었다. 고개를 애써 가로젓고서 침대에 드러누워 휴대전화를 보았다. 옳고 그름의 사건사고. 네가 나빴네 하며 끝없이 이어지는 배려와 이해의 실종만 가득했다. 착잡하게 소식을 훑어나갔다.
?그래. 기왕 방학 내내 이렇게 박혀있을 거라면 생각이라도 하자. 그 동안 계속 그래왔지만 앞으로는 더 시간을 쏟자. 옳고, 그름이 뭔지. 제대로 알고, 가진 돈과 옷은 초라하지만 마음은 고귀한 사람이 되자. 그렇게 생각하고서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당겼다. 여섯 개비. 담배 살 돈으로 도서관까지 버스나 타고 가서 책이나 빌려보자. 지금 있는 건 다 읽었으니까. 원래도 소설만 빌리진 않았지만 여러가지를 빌려보자. 글만 잘 쓰는 사람이긴 싫으니까. 이 가난, 이 궁핍과 결핍의 죔쇠를 써내려가고 싶었다. 비단 가난뿐 아니라 오만가지 옳고 그름을 쓰고 싶어졌다. 그렇게 결심하고 나갈 준비를 했다. 찬장을 열고 라면의 개수를 셌다. 구청에서 들를 때 한 박스 더 가져다줄 테니 모자라진 않을 것 같았다. 현관에 발을 딛고 신발을 신었다. 라면만 먹다 죽기 전에 글을 좀 제대로 쓸 수 있게 되면 좋겠다며, 스스로, 거기에 더해 그냥 아무렇게나 빌고서 손잡이를 열고 나섰다.
?첨단을 지나 기울어가며 저녁놀이 맺히는 해마저도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2019년 여름
Smoothie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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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0-03-03 21:49:39
지난 여름에 쓰신 건가 보네요.
끈적한 공기를 필두로 한 여러모로 불쾌한 환경, 그리고 어딘가 찌든 냄새가 나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 삶이 무너질 것만 같은, 느리지만 위태로운 상황이 읽혔어요. 그리고 그것을 깨기 위한 작지만 큰 한 걸음...
그렇죠. 서서히 가라앉는 상황 속에 무기력하게 있는 것은 최악의 선택지일 수밖에 없어요. 물론 일어선다고 해서 최선의 선택지로 직결되지는 않지만...
시어하트어택
2020-03-03 23:02:51
본문하고는 조금 다른 내용입니다만, 오래 된 히키코모리들은 방 밖으로 나서는 것도 두려워할 정도라고 합니다. 지금 주인공의 저 한 걸음도 작아 보여도 앞으로를 바꿀 큰 걸음의 시작이겠죠.
잘 읽었습니다.
SiteOwner
2020-03-07 15:08:24
무료하게 보일 수만 있는 여름날의 무기력한 하루가 이렇게 잘 묘사될 수 있구나 하는 데에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동양에서 말하는 안빈낙도니 청빈이니 하는 게 얼마나 허구적이고 기만적인지도 상당히 잘 보입니다. 가난은 칭송할 것도 가까이 할 것도 못되는데다 사람의 마음마저 황폐하게 만들어 버리기에...
현 상황 속에서 그냥 침잠하기보다는, 무엇이라도 하는 게 결과적으로 나은 법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柔夜
2020-03-08 00:18:07
작품을 올리면 반응이 오는 장소에 머무는 것이 오랜만이기도 하고, 요새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바닥을 치고 있어서 '이럴 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같은 느낌일 때가 다반사인지라 댓글에 답글이 없어도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소통하기 싫어 안하는 것이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