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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세훈의 귀에 또다시 공기를 가르는 그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또다시 전해져 오는 그 위화감. 그것이 세훈의 온몸을 가득 휘감는다. 그리고, 잠시 후...
“어, 뭐야.”
세훈의 왼손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만져지지 않던, 돌멩이가 만져진다. 다리에는 분명히 없을 터였던 나뭇가지도 하나 걸쳐져 있다. 목 뒤가 축축해진 듯한 이 불길함, 그리고 불쾌함. 그리고 위쪽에 느껴지는, 혐오스러운 느낌. 세훈이 고개를 들자...
“여기가 어딘지 혼란스러운가 보군. 눈 깜짝할 새 벌어진 일이니, 혼란스럽기도 하겠지.”
머리 위에서, 클라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세훈은 급히 몸을 돌려 벗어나려 한다. 그러나...
“소용없어. 어차피 내 손바닥 안이거든.”
다음 순간, 세훈의 몸이 잠시 허공에 붕 뜬다. 그리고 곧이어...
퍽-
뭔가가 허공을 가르는 소리와 동시에, 둔탁한 충격음이 들린다. 클라인의 주먹이, 세훈의 뺨을 직격한 것이다. 세훈의 뺨을 파고들고, 두개골 깊숙한 곳까지, 그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그 충격으로, 세훈의 몸은 약 10m 정도를 날아가, 나무 밑동에 부딪힌 다음 나무 아래 풀밭으로 굴러떨어진다. 세훈은 바로 일어서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며 땅바닥에 엎드러져 있다. 주먹에 직접 맞은 건 오른쪽 뺨이지만, 온몸이 다 아파지기 시작한다.
“아깝군그래.”
클라인의 목소리가 점점 세훈 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강력한 재능을 갖춘 사람답지 못하군. 나름 기대했었는데 말이야.”
“너... 이 자식...”
세훈은 몸을 비틀거리며 일어선다.
“앤드루한테도 이런 식으로 한 거냐?”
“왜 당연한 걸 물어보고 그러나?”
클라인의 말투는, 태연하다 못해 매우 자연스럽다. 자연스러움이, 이렇게 혐오스럽다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너 같은 사람이 그런 것도 몰라서야 되겠나. 강해져야 살아남는다고. 냉정하기는 하지만...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세훈은 온몸이 쑤시는 중에도, 입술을 꽉 깨문다. 다시 온몸이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지금껏 이런 분노를 느껴 본 적이 없다.
“다시 한번 지껄여 봐.”
“귀가 어떻게 됐나? 강해져야 살아남는단 말이다! 네놈이 아직 뼈저리게 느껴 보지를 못했구나!”
탕-
또다시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린다. 세훈의 눈앞에, 그 푸른 연기 같은 것이 다시 보인다. 그리고 다음 순간... 세훈의 몸은 또다시 부자연스럽게 일으켜져 있다. 어느새, 세훈의 눈은 클라인의 얼굴을 다시 바로 앞에서 보고 있다.
또 한 번, 충격음이 들린다. 그리고 충격이 전해져 온다. 이번에는 오른쪽 뺨에! 또다시, 허공을 가르고 세훈의 몸이 날아가기 시작한다. 재빨리 땅에 손을 짚으려 한다. 그러나, 세훈이 손을 짚으려던 그때!
텅-
또 한 번,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푸른 기운이 보인다. 금방 어딘가에 떨어지겠지... 금방일 거다. 세훈은 그렇게 생각한다.
“어... 어?”
하지만 3초도 되지 않아, 세훈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 몸이... 어째서 허공에 떠 있는 것인가! 어째서... 어째서...
“이게 무슨...”
“방심했군, 안 그래?”
또다시, 클라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번에는, 세훈의 바로 밑에서! 그대로 클라인의 위로 낙하한다. 이럴 수가!
텅-
또다시, 푸른 기운이 보인다. 클라인의 머리 바로 위, 세훈의 바로 밑에!
“흐흐흐..”
다음 순간, 세훈의 몸이 뭔가에 강하게 부딪힌다.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리고, 세훈의 몸은 힘없이 땅바닥으로 떨어진다. 허리가 아파져 온다. 그와 함께 머리도 지끈거린다. 눈을 들어 머리 위를 본다. 푸른 기운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오른손을 들어 본다. 바로 그때.
“어떤가? 지금까지, 내 능력을 온몸으로 겪어 본 소감은.”
클라인의 목소리가, 또다시 세훈의 옆에서 들려온다. 세훈은 아무 말이 없다.
“그래. 이게 바로 내 진정한 능력이다. 공간을 찢어 버릴 수 있는 능력이지. 내게 대들었던 사람들, 모두가 이 능력을 보여 주자 무릎을 꿇었지.”
세훈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다만, 오른손 주먹을 꽉 쥐고 엎드려 있을 뿐.
“전의를 상실한 건가? 아니면 뭔가 보여 줄 게 있는 건가?”
“......”
“수작 부리려 하지 마라.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봤자, 어차피 여기서 빠져나갈 길은 없으니까!”
순간, 또다시 그 파란 기운이 보이고, 텅- 하는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세훈의 몸이 또다시 공중으로 솟구친다. 바로 그 다음 순간, 세훈의 눈에 뭔가 보이려는 찰나...
“흐흐흐... 또 방심했군.”
목소리가 들린다... 클라인의 목소리가. 하지만 어디서? 눈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오직 암흑뿐인데!
“물러터졌어. 기척도 눈치를 못 채서야!”
또다시 충격이 전해져 온다! 이번에는 등에... 주먹과는 다른 느낌이다... 클라인의 발차기에 등을 강타당한 세훈은 또다시 지상으로 낙하한다. 쿵 하는 소리가 울린다.?
“으으...”
안 그래도 쑤셔오던 온몸이 더욱더 욱신거린다.
“보통 현명한 사람들이라면 이쯤에서 무릎을 꿇기 마련이지.”
또다시 클라인의 목소리다. 세훈이 막 고개를 들어 보려는 찰나,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세훈의 몸은 강제로 일으켜 세워진다.
“그런데, 너는 멍청한 건지 아니면 아직도 투쟁심에 불타는 건지 모르겠군. 내가 생각해 봐도 둘 중에 뭘 택해야 할지 몰랐는데... 지금 보니, 점점 더 전자에 가까워지는 것 같아!”
말이 끝나자마자, 클라인의 주먹이 세훈의 가슴으로 날아온다. 퍽-하는 무겁고 깊은 소리. 또다시, 세훈의 몸이 뒤로 쓰러지려는 그때, 또다시 텅-하는 소리가 들리고, 세훈의 눈앞에 푸른 기운이 선하게 보인다. 다음 순간, 또다시 세훈은 공중에 붕 뜨더니, 이내 나무에 부딪히고 땅바닥에 구른다. 온몸에 또다시 찌릿거리는 그 고통스러운 느낌이, 온몸 군데군데 그 느낌이 전해져 온다. 그 와중에도, 세훈은 결코 꽉 쥔 오른손을 펴지 않는다.
“애초에 네게 기대를 걸어 본 내가 잘못이로군.”
클라인은 쓰러져 있는 세훈에게 다가오며 말한다. 목소리는, 어느새 진중한 중저음에서 비웃는 듯한 중고음으로 바뀌어 있다.
“나는, 너 정도로 강한 사람은 나와 호각으로 겨루거나, 적어도 조금은 부족하지만 나와 겨룰 수 있는 정도는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네가 강하다는 그 가정부터가 틀려먹었군. 어쩌면, 내 감이 잘못되었던 것일지도 모르겠군... 아니, 그게 확실하다!”
문득, 세훈의 귀에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것도 아주 기분 나쁜, 송곳과 바늘로 쑤시는 듯한 웃음소리가. 사방에서, 희미한 웃음소리가 얇은 바람을 타고 세훈의 온몸에 닿는다. 온몸을 간질이는 듯한, 그 참을 수 없는, 귀가 가려워지는 그 웃음소리. 분명히, 분명히 들려 온다.
문득 떠오른다. 어린 시절, 동급생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다했던 기억이. 혼자 빈 교실 안에 숨어서 ‘제발 저 애들이 못 보고 지나갔으면’ 하고 기도했던 그때를. 그리고 그렇게 숨어 있다가 세훈을 괴롭히던 그 패거리에게 발견되어, 엄청난 비웃음과 함께 구타당하고 저녁때까지 갖은 모욕을 당했던, 그 싫은 기억이, 저절로 떠오른다. 싫으면서도 자꾸만 떠오른다. 마치 그때로 돌아간 것만 같다. 지금 공기 속에 스며든 그 웃음소리를 들을 때, 마치 자동재생되는 음악처럼 떠오른다.
“그런데, 그 표정만큼은, 자신감에 넘치는군. 패기인 건가? 허세인 건가? 아마도, 후자겠지만.”
클라인은 마치 시체를 보고 이빨을 드러내는 하이에나처럼, 점점 다가오며, 애써 진중해 보이지만, 중간중간 김이 새는 콜라 같은 목소리로 말한다.
“이제 벗겨 주겠다... 너의 그 가식으로 가득찬 가면을! 지금... 헉?!”
득의양양하게 말하다 말고, 클라인은 갑자기 당황하는 얼굴빛을 띤다. 온몸이 마비된 듯,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다. 세훈은 오른손을 여전히 꽉 쥐고는 말없이 클라인을 바라본다. 세훈의 눈과, 클라인의 눈이 마주친다.
“너... 너 이 자식! 잘도... 잘도 이런 수작을...!”
“호오, 왜 그러시나? 내게 오는 데 뭔가 문제라도 생긴 건가?”
세훈은 태연히 말한다.
“이 자식... 이 비겁한 자식!”
클라인은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못 움직인 채, 세훈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이 와이어는 뭐냐... 대체! 언제 가져온 거냐!”
“혹시나 해서 가져왔지. 내 능력이 발현됐는지 안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힘에서 딸리면... 머리로 보완해야 하지 않겠어?”
세훈은 온몸이 욱신거리는 와중에도 한껏 호기롭게 말한다. 문득 클라인을 보니, 클라인의 손과 발이 뭔가에 걸려 있다. 어두컴컴한 가운데 군데군데 있는, 사라지지 않고 군데군데 남아 있는, 어느새 연기에서 줄 같이 변한 푸른 기운. 그 사이로... 와이어가 희미하게 보인다. 푸른 줄과 푸른 줄 사이를 연결하는, 서로 얽히고 얽혀 마치 거미줄처럼 짜여진, 와이어의 덫이!
“너 이 자식... 방금 전에 한 말들은 취소하도록 하지. 확실히 칭찬해 줄 만하군. 내 능력을 역이용한, 너의 잔꾀는 말이야.”
클라인은 와이어에 손발이 걸린 채로, 분하다는 듯, 그러나 다시 진중해진 목소리로 말한다.
“하지만, 걸려 주는 것도 한 번뿐이다!”
“무... 무슨!”
다음 순간, 클라인의 오른손에서 ‘부웅-’하는 소리가 나더니, ‘툭’ ‘투둑’ 하고 뭔가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실로 눈 깜짝할 사이에, 세훈은 클라인의 바로 앞에 서 있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2 댓글
SiteOwner
2020-03-27 23:15:17
막다른 상황에서 오히려 솟는 용기, 바로 이것이 인간승리라고 할만하군요.
그리고, 교만해질대로 교만해진 클라인은 그런 세훈의 용기있는 모습, 그리고 자신의 전략이 먹혀들지 않은 것에 꽤나 당황해져 있습니다. 세훈이 클라인의 바로 앞에 서 있을 때에는 무슨 상황이 발생했는지 이해하지도 못할 것 같아 보입니다.
다음 회차가 기대됩니다.
마드리갈
2020-03-28 20:57:36
적자생존의 원칙은 이렇게 대표되죠.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고.
그래서 빈센트 클라인의 그 사고방식은 틀렸어요.
그리고 그 틀린 사고방식의 대가를 치를 때가 머지 않았네요.
온갖 자객들을 보낸 것은 정당했고, 세훈이 갖고 온 와이어에 걸려들자 비겁하다고 날뛰는 클라인의 사고방식, 이것이야말로 참 편리한 것인데, 편리함의 대가는 후불제인 것으로 보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