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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애는 사진을 한 번 보더니, 의아하다는 얼굴을 하며 메이링에게 다시 묻는다.
“저... 그런데, 왜 이 사람을 조심하라고 하는 거죠?”
“이 사람이 널 노리고 있어.”
“저를, 노려요?”
현애는 메이링을 다시 한번 보고, AI폰 속 사진을 다시 본다. 후드를 쓴 남자의 인상은 아무리 봐도 사납다기보다는, 음침해 보인다.
“정말요? 안 믿어지는데...”
“네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니까?”
현애는 여전히 의심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다.
“좋아, 그러면 이따가 학교 끝나고 나하고 앨런 씨나 자비에 씨한테 연락해.”
“아... 알겠어요.”
현애는 일단 알겠다고는 했지만, 아무래도 영 믿기지는 않는 듯, 팔짱을 끼고 메이링을 노려본다.
“메이링 씨라고 했죠? 변호사 맞기는 해요?”
“에이, 맞다니까.”
“좋아요, 제가 학교 끝나고 연락할 테니까.”
세훈과 주리는 메이링에게 손을 흔들고 교문으로 향한다. 현애는 세훈과 주리를 따라 교문 안으로 들어가기 전, 메이링을 한번 돌아본다. 여전히 의심을 품은 눈이다.
메이링과 앨런이 자리를 뜨려는데, 자비에는 미린고 교문 쪽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다. 마치 머릿속 깊이 뭔가에 깊이 빠진 것처럼, 아니면 소금기둥이 되어 버렸다는 누군가라도 된 것처럼.
“자비에, 뭐 해? 빨리 가자고.”
“네, 변호사님.”
자비에는 못내 아쉽다는 듯한 얼굴을 하며 메이링과 앨런을 따른다.
오전 9시, 미린고등학교 1학년 G반 교실. 평소와는 달리 책상은 한쪽으로 치워져 있고, 의자는 반원형으로 놓여 있다. 가운데에는 흰 셔츠 차림의 젊은 여교사가 서 있고, 그 옆에는 현애가 서 있다. 여교사의 이름은 키라 미호. G반의 담임이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남궁현애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세훈은 삐딱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팔짱을 끼고 듣는다. 현애의 자기소개를 듣는 내내, 마치 아까처럼 겨울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이다. 옆에서 듣는 주리는 조금 다르다. 말 하나, 몸짓 하나하나가, 마치 얼음을 가득 넣은 커피같이, 시원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누구라도, 한두 번 해 본 것 같지는 않은 실력이라는 데에, 모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현애는 마치 강연회나 시연회 같은 곳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듯, 자신감을 가득 담아 말한다.?
“오늘부터 여러분하고 같은 반이 됐고요, 사실 저도 여기에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는 못했지만, 아무튼 우리는 어떤 이끌림으로 만나게 된 것 같네요. 여러모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질문 있으신 분?”
의자에 앉은 동급생들 중 한 명이 손을 든다. 동급생들의 시선이, 그 붉은 사과 모양 머리를 한 여학생에게 쏠린다.
“안녕, 만나서 반가워. 내 이름은 ‘니라차 아리야눈타카’야.”
마치 도전자를 마주하는 챔피언처럼, 니라차는 당돌하게 말한다.
“첫 질문부터 이렇게 말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혹시 여기 오기 전에는 어떻게 지냈는지... 알 수 있을까?”
니라차가 질문을 마치자, 현애는 잠시 뭔가 생각하는 듯 눈을 굴리더니, 이내 입을 연다.
“아, 니라차라고 했지? 반가워. 좋은 질문이야.”
현애는 니라차의 거침없는 질문에도 여유롭게 웃음을 지으며 응수한다.
“하지만 말이야, 이왕이면 같은 반이 된 이상, 자연히 지내면서 알게 되겠지. 처음에 너무 많은 걸 알게 되면 재미가 없잖아. 그렇지?”
니라차는 고개를 끄덕인다. 세훈은 현애의 답이 뭔가 마음에 안 든 듯, 팔짱을 낀 채로, 입을 살짝 내밀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현애의 이 모습이 마치 시원한 아이스크림 같겠지만, 세훈에게는 얼다 만 아이스크림 같다.
“자, 또 질문할 사람 있나요?”
키라 선생도 현애가 질문을 받는 게 재미있는 듯, 웃으며 말한다.
또 한 사람이 조심조심 손을 든다. 이번에는 금발의 포마드를 한 남학생이다. 손을 번쩍 든 니라차와는 달리, 오른손을 머리 높이까지만 들고 현애와 키라 선생을 번갈아 가며 두리번거리며 본다.
“우선, 만나서 반가워. 내 이름은 ‘알렉산더 페페를레’야. 다들 ‘알렉스’라고 많이 부르던데.”
남학생은 조금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연다.
“처음부터 이런 질문은 좀 그렇지만, 혹시, 어느 부에 들어갈 건지는 생각해 봤어?”
알렉산더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수군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하하하, 쟤 벌써부터 영업하네.”
“그러게. ‘영화부의 알렉스’ 아니랄까봐...”
세훈의 귀에도 옆에서 이렇게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부로 왔으면 좋겠는데’ 같은 기대감을 가득 품은 말도 들린다.
“좋은 질문 해 줘서 고마워, 알렉스.”
현애는 또다시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사실 나는 운동도 좋아하고, 또 책 읽기도 좋아하고, 좋아하는 건 참 많은데...”
‘책 읽기’라는 대목에서 세훈은 고개를 돌리고는 한숨을 푹 내쉰다. 설마 독서부로 오는 거 아닌가... 괜한 걱정에 빠진다.
“그래서, 어디로 갈지 고민을 좀 해야 할 것 같아. 생각해 볼게. 질문 고마웠어.”
현애는 교실 안을 한 번 더 스윽 돌아본다.
“또 질문할 사람?”
또 한 명의 남학생이 손을 든다. 현애가 그 갈색 머리의 남학생을 지목한다.
“아, 내 이름은 ‘미셸 카스티유’야.”
“그래. 궁금한 것은?”
“궁금한 것까지는 아닌데 말이야...”
미셸은 조금은 걱정스러워하는 얼굴이다.
“우리 학교는 황족, 재벌, 정치인, 법조인, 관료, 사업가 같은 집안의 콧대 높은 애들이 많아. 그런 애들 사이에서, 주눅 안 들고 당당히 지낼 수 있겠지?”
“하하하, 걱정은 내려놔.”
현애는 여유롭게 웃는다.
“다들 그럼 질문 없는 거지?”
세훈은 혼자 생각에 잠긴다. 아까 전에 *나라가 몰랐던 걸 알아낼 좋은 기회였는데... 저거, 너무 신비주의 아닌가? 세훈은 다짐한다. 현애라는 저 전학생의 비밀은 내가 반드시 파헤쳐 주겠다...
그렇게 생각에 빠지고 나서, 머리를 흔들어 보니, 어느새 현애는 세훈의 옆, 주리의 앞에 와 있다. 입이 다물어진다. 아까 전, 교문 앞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오싹한 기억이 다시 전해져 온다.
온다.
세훈의 앞이다.
어느새.
“세훈이라고 했지?”
순간적으로 딱 얼어붙는 것 같다. 손가락 하나하나에 냉기가 맺혀오는 것만 같다... 현애의 손이, 세훈의 손 바로 앞에 와 있다. 금방이라도 냉기를 내뿜을 것만 같은, 그 손이...
“잘 부탁해.”
서늘하면서도 어딘가 차갑지만은 않은 목소리다... 세훈은 한 번 옆을 힐끗 보다가, 이내 현애를 마주 보고 손을 잡는다. 세훈은 여전히 조금 굳은 얼굴이지만, 현애는 슬며시 미소를 짓고 있다.
“이쪽이야말로.”
세훈은 짧고 무겁게 말하고는 입술을 깨문다. 잠시 눈을 마주친 후, 현애는 또다시 옆에 앉은 동급생에게 간다. 세훈의 입에서 한 10년은 묵혀 둔 것만 같은 한숨이 터진다.
오후 3시. 미린고 학생들이 하나둘씩 교문을 나서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현애가 교문을 나선다. 조금 사이를 두고, 세훈과 주리 역시 교문을 나선다.
“오오, 네가 그 전학생이야?”
“안녕, 반가워!”
?“우리 부 들래?”
지나가는 사람마다 현애를 보면 손을 흔들거나, 아니면 일부러 목소리를 높이거나 하며 아는 척을 한다. 현애는 이런 상황을 즐기는 듯, 손을 흔들어 주거나, 아니면 눈웃음을 지어 주거나 한다.
“현애랬지?”
누군가가 뒤에서 다가와 현애의 어깨를 짚는다. 돌아보니, 현애보다도 키가 더 큰, 세훈과 거의 같은 키의, 분홍 머리의 여학생이 서 있다. 같은 G반의 레지나 맥길리브레이. 말은 한마디도 안 했지만, 줄곧 현애의 자기소개를 관심 있게 보고 있던 여학생이다.
“잘 해보자.”
“그래. 월요일에 봐.”
현애와 레지나는 서로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레지나가 멀어져 간다.
이런 광경을 뒤에서 보고 있는 세훈은, 조금은 언짢음이 섞인 눈으로 현애가 하는 모든 것들을 지켜본다.
“너 입은 왜 그렇게 내밀고 있어?”
주리가 옆에서 핀잔을 준다.
“설마 아까 전에 그것 때문에 그런 거야?”
“딱히 그것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닌데...”
“네 얼굴은 지금 그것 때문이라고 하고 있는데.”
세훈은 대충 얼버무리려 하지만, 아무래도 주리의 눈썰미는 속일 수 없다. 그것도, 아주 어릴 때부터 알아온 소꿉친구니까 더 그럴 수밖에.
“그냥 해프닝이었잖아. 그러니까 이제 좀 풀 때도 됐잖아?”
“그건 그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세훈은 여전히 아까 그때가 계속 떠오른다. 다른 건 다 잊더라도, 손가락 끝과 발가락 끝에 감각이 없어지다시피 했던 아까 전 아침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정도다. 그 정도의, 상상 이상의 추위였다...
머리를 흔든다. 자꾸 생각난다.
“아으...”
계속 걷는다. 땅만 보고 걷는다. 걷다 보면 잊히려나...
이곳은 미린고에서 조금 떨어진, 미린역 남쪽의 카페 거리. RZ타워가 있는 미린역 사거리의 번화가에서 멀지 않은 곳이기는 하지만, 조그만 개울을 따라 공원이 있고, 바로 옆이 저택이 많은 부촌이기도 하고, 또 걸어서 10분 정도만 더 가면 마리나, 해변공원 등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아직 낮이라서 그런가? 사람이 많이 없잖아.”
아직 사람이 많지 다니지 않아 한산한 거리를, 미린고 교복을 입은 여학생 한 명이 두리번거리며 거닐고 있다.
“주리가 분명, 이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했는데...”
카페 거리를 다니는 여학생은 다름 아닌 현애. 여기 보고 저기 보고 하며 걷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오후 4시가 다 되어 가고 있다. 그 많은 카페 중에서도 현애의 눈길을 사로잡는 건, 붉은 벽돌로 장식된 외관에, 아기자기한 꽃들이 여기저기 놓여 손님들을 맞는 ‘쿠쿠스 가든’이라는 이름의 카페.
“아, 나중에 여기 가 봐야지. 꼭.”
현애는 왼손에 찬 AI시계를 머리 높이로 든 다음 쿠쿠스 가든의 정면을 스캔한다. 스캔이 끝나자, 현애는 만족한 듯 얼굴 가득 웃음을 지으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다음은 또 어디를 가야 하나...”
마침 거리가 끝나는 지점에, 나무가 늘어서 있고, 그 너머로 크지 않은 개울이 하나 보인다.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이나 운동하는 사람만 몇 명 지나갈 뿐, 아직 그렇게 붐비지는 않는다. 하지만 수변을 따라 다양한 외관의 가게들이나 집들이 늘어서 있고, 밤에 켜는 것으로 보이는 조명도 굉장히 독특해 보이는 걸 볼 때, 사람들이 많이 찾는 거리라는 건 확실히 알 것 같다.
“조심해.”
현애의 AI폰에서, 인공지능의 목소리가 들린다.
“*하나, 주리한테 안 가고 왜 나한테 온 거야?”
“조심하라니까.”
*하나는 주리의 개인용 인공지능. 하지만 왜인지 현애한테 와서 경고하고 있다.
“아니,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조심하라고만 하면...”
수상한 기척. 직감한다.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그 기척은 현애의 바로 옆에서 느껴졌다.
“뭐지? 도대체...”
불길하다. 이건. 현애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이것은!
그때, 현애는 오른쪽 허벅지가 왜인지 따끔거리는 것을 직감한다. 내려다본다. 붉은 줄이 그어져 있다. 눈으로 보자니 더욱 따끔거린다. 그리고 보인다. 거기에 맺혀서 나오는, 붉은 피가!
“이... 이건 도대체 뭐야!”
현애는 두리번거린다. 하지만 거리는 평온하기만 할 뿐.
“어느 녀석이야! 빨리 나와!”
하지만 현애의 목소리는 허공에 메아리칠 뿐. 여전히 아무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나오라니까!”
“알아채는 게 그렇게 느려서야...”
들은 적 없는, 조금 높은 음성의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개울 쪽, 나무 뒤편에서. 그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어느새, 검은 터틀넥 티셔츠를 입은 고동색 머리의 남자가 현애의 앞에 서 있다. 현애는 대뜸 그 남자를 향해 목소리를 높인다.
“너, 누구냐?”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0-04-12 12:56:32
아직 현애와 세훈의 감정의 골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래도 일단은 이렇게 같은 생활공간 속에서 지내게 되었네요.
사람의 마음이란 쉽게 바뀌지는 않으니까요.
학교생활의 즐거운 일상이 시작되나 싶었는데, 끝부분에서 경악했어요.
현애의 허벅지에 갑자기 긁힌 상처가 났고, 거기서 출혈이...
보이지 않는 자객이 초능력을 써서 피해를 입힌 것 같은데, 그 자객이 의외로 일찍 등장하고 있네요. 대체 무슨 목적인지는 몰라도 괴이하고 고약하기 짝이 없어요.
시어하트어택
2020-04-12 16:47:39
사람의 인상은 처음 몇 초 안에 결정된다는 이야기가 있죠. 저렇게 이상하게 만났는데, 좋은 관계가 되려면 참 많이 어렵죠. 일단 박힌 '첫 인상'을 고치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제 '절단신공'이 아무래도 잘 먹혀든 것 같군요... 감사합니다.
SiteOwner
2020-04-14 23:33:05
개인마다 의외의 구석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게 이번 회차에 잘 보여서 꽤 흥미롭게 읽힙니다.
전형적인 변호사의 이미지와는 꽤 다른 메이링, 당당한 태도로 새 환경에 첫 발을 디딘 현애, 전학생에 대해서 용기의 말을 건네주는 미셸, 전학생 현애를 눈여겨보는 장신의 여학생 레지나 등, 이런 것들을 보니 잘 만들어진 한 편의 학원물 애니의 한 장면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미소가 지어지는 장면에 후속한 다음 장면은 굉장히 섬찟하군요.
진짜 보통 사람같으면 패닉해 버립니다. 청춘 돼지 시리즈에 나오는 아즈사가와 카에데가, 작중의 특이한 증상인 "사춘기증후군" 에 걸려서, 친구들이 핸드폰 메신저로 전하는 비방중상에 마음은 물론이고 몸에 상처가 나버리기까지 합니다. 게다가 그 카에데의 오빠인 사쿠타는 자신이 여동생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그 역시 사춘기증후군에 걸려 가슴에 큰 자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가는 대소동의 장본인이 되기도 하는데, 거기서는 카에데는 그 뒤로 등교거부 상태로 집에 은둔하고, 사쿠타는 아예 핸드폰을 바다에 던져 버리는데다 인간관계를 일부러 멀리하기까지 합니다. 그게 같이 생각나다 보니, 다소 놀랐지만 최대한 차분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적을 찾는 현애가 정말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시어하트어택
2020-04-15 23:32:53
사실 보통의 현실에는 있을 것 같지 않은 캐릭터들을 많이 넣었죠. 뭐, 현실의 이미지를 많이 반영한 캐릭터들도 좀 나올 예정이긴 합니다만...
평온함 뒤에 숨은 반전이 또 매력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