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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인 5월 10일 토요일 오전 10시, 미린역 남쪽 카페거리의 카페 커피하우스 미토. 테이블 하나를 잡고, 손님 한 명이 앉아서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있다. 뒤로 묶은 금발에, 몸에 딱 달라붙는 민소매 셔츠를 입은 사람. 딱 봐도, 메이링이다. 오늘은 사무실을 열지도 않고, 법정에도 나가지 않는 날이다. 모처럼 얻은 휴일이, 메이링은 달콤하다. 간만에 친구들과 후배들을 불렀다. 벌써, 메이링 앞에는 친구 반디와 후배 파라가 와서 인사하고 있다. 반디는 후줄근한 후드에 트레이닝복 차림이고, 파라는 한쪽이 트인 흰 상의를 입고 있다.
“여기야, 메이링.”
“아, 반디 왔구나. 어? 파라도 왔네.”
메이링은 반디와 파라를 번갈아 보더니, 반디를 한 번 더 위아래로 훑어본다.
“어? 너 토요일도 교수 연구실에서 논문 쓰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었어?”
“아, 오늘은 교수님 휴가라서, 할 것도 없어서 왔지.”
“아, 그래. 너희들, 부모님은 좀 안 바쁘시고?”
“에이, 두 분 다 바쁘시지. 아빠는 요즘 법안 발의 준비하느라 바쁘고, 엄마는 또 투자처 찾느라고 바쁘고.”
“뭐, 저희 부모님도, 그렇게 바쁘시죠.”
반디와 파라의 말을 차례로 듣자, 메이링은 ‘헤’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바로 그때.
♩♪♬♩♪♬♩♪♬
바이올린 독주곡이 울린다. 메이링의 전화벨이다.
“야, 너 오늘도 바쁜 거 아니야?”
“아, 아니, 아니라니까.”
메이링은 통화 버튼을 누른다.
“여보세요?”
메이링이 전화를 받자, 전화 너머에서는 자비에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 여보세요, 변호사님?”
“아니, 자비에, 오늘은 휴일인데 왜?”
“아, 다른 건 아니고요... ‘그 녀석’의 흔적을 또 찾았어요. 불그스름한 캡슐인데...”
“아니... 자... 자비에!”
메이링은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인다. 반디와 파라뿐 아니라, 카페 직원과 손님들이 다 한 번씩 힐끗힐끗 돌아볼 정도로, 메이링의 목소리는 살짝이나마 격앙되어 있다. 마치 끓어오르려는 화산의 용암같이.
“네가 묵묵히 힘써 주는 건 고마운데 말이야... 휴일인데 너도 좀 즐길 건 좀 즐기라고! 일만 하다 죽을 거야?”
말을 마치고 나서 메이링은 살짝 주위를 둘러본다. 카페 안은 잔잔한 음악에도, 물을 끼얹은 듯 어색한 분위기가 감돈다. 반디와 파라 역시 어색하게 메이링을 바라본다. 고개를 한번 꾸벅 숙이고는, 다시 전화에 집중한다.
“아... 아니... 제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요... 변호사님...”
“물론 네 심정이 뭔지는 잘 알겠는데 말이야...”
메이링은 열을 삭이며 말한다.
“뭐라고 할까... 이런 말 하기는 뭐한데, 너는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잖아! 네가 깊이 뛰어들고 그럴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해. VP재단 요원이나 다른 정보원들도 그런 건 다 해 주고 있으니까, 오늘은 신경 쓰지 말고 그만 돌아가.”
“하... 하지만요, 변호사님, 저는 이걸 절대 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이걸 반드시 해결해야만 발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휴-”
메이링은 한숨을 푹 쉬더니, 마지못해 허락하는 듯 걱정을 가득 담아 말한다.
“네 몸 잘 챙겨. 무리해서 하지 말고. 알겠지?”
“네, 변호사님. 그럼 이만 끊을게요.”
메이링은 전화를 끊고는 의자에 몸을 파묻듯 등을 기댄다. 휴- 하고 일부러 크게 숨을 내쉰다. 즐겁게 시작할 줄 알았던 토요일에 이게 무슨 일이람...
“언니, 미안해.”
파라가 메이링을 제대로 보지도 못한 채 말한다.
“야! 왜 주눅이 들어서 그래!”
메이링은 자기도 모르게 또 버럭 소리 지를 뻔한 걸 겨우 틀어막고 말한다. 하지만 파라는 여전히 주눅든 목소리로 말한다.
“모든 게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거 아니야. 내가 그걸 안 가져왔다면 지금과 같은 일들이 벌어지지 않아도 되고...”
“야! 파라!”
메이링이 목에 힘을 준다.
“너 때문이 아니니까, 걱정 안 해도 돼. 너는 그저 그걸 안전하게 맡기려고 했을 뿐이잖아. 걱정하지 말고, 앉아서 커피나 마셔. 그러면 좀 나아질 테니.”
파라 옆에 선 반디도 메이링처럼 등을 토닥여 주자, 파라는 그제야 기분이 풀어졌는지, 크게 숨을 내쉬고는, 자리에 앉는다.
사리시는, 미린구에서 북쪽으로, 동구를 거쳐서 가면 나오는 곳이다. 강변의 모래사장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300년도 더 전에 세라토시에 편입된 곳이지만, 세라토시 건설 이전부터 있던 도시였기 때문에, 지금도 외곽의 편입된 시들을 제외하면 다른 구와는 달리 ‘시’로 불리고 있다. 격자형 도심인 중구, 남구의 황궁대로 일대나, 비교적 최근에(그래 봤자 100년도 더 된) 지어진 계획도시인 남항구, 미린구와는 달리, 강가를 따라 늘어선 오래된 느낌의 건물들과 주로 벽돌로 지어진 고풍스러운 주택들, 불규칙하게 이어진 시가지, 군데군데 보이는 좁은 도로 등, 전반적으로 ‘오래된’ 느낌이 강하게 나는 곳이다.
사리시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사리역 주변은, 세라토시의 주요 상권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다. 역 자체도 여러 개 노선이 만나는 환승역이거니와, 역 바로 앞에는 초고층 오피스빌딩과 백화점, 패션 쇼핑몰이 자리 잡았고, 역 남쪽으로 강변까지는 맛집이나 패션몰, 오락시설 위주의 상권이 자리 잡았다. 인근에는 대학이 2개나 있어 대학 상권 역할도 하는 곳이다. 그 명성답게, 세라토시에서 이름난 상권을 꼽으라면 항상 순위 안에 들어간다. 강변공원의 모래사장도 볼거리다.
어제 *프로도의 추천대로, 현애와 세훈, 주리는 여기 사리역 번화가에 놀러 왔다. 물론 주말을 즐겁게 보내고 싶어서 온 것도 있기는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미린 안에서 놀자면, 초능력자와 마주칠 게 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나마 초능력자를 만날 가능성이 낮은, 이곳으로 놀러 온 것이다. 여기도 적대적인 초능력자, 특히 같은 미린고 학생이 없다고는 장담 못 하지만...
이리저리 인파에 둘러싸여 눈요기하며 돌아다니다 보니, 점심시간이다. 시계는 오전 11시 50분을 가리키고 있다. 현애와 세훈, 주리의 배는 빨리 먹을 것을 달라고 조르고 있다.
“아, 먹을 데 좀 추천해 봐.”
현애가 주리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한다.
“먹을 데? 아, 그래.”
주리는 AI폰을 만지작거리더니, 잠시 후, AI폰을 현애와 세훈의 눈앞에 보여 준다.
“봐, 여기 어때?”
[임페리얼케밥]
[사리역 주변 케밥 맛집 추천 1위]
[정통 케밥, 퓨전 케밥 모두 맛있어요!]
[소스와 버무려져서 더 맛있고, 디저트도 좋고...]
“여기 갈까? *하나가 추천해 준 곳이야. 한 100m 정도 걸으면 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
“좋아, 가 보자고.”
현애와 세훈은 기대감을 가득 모아, 한입으로 말한다.
케밥 전문 식당 ‘임페리얼케밥’. 사리 번화가에 직장이 있는 사람들이나, 근처 대학생들이나, 이곳에 자주 다니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TV 맛집 소개 프로그램에도 여러 차례 나온 곳이다.
벌써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고, 종업원과 로봇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다. 현애와 세훈, 주리는 창가에서 조금 떨어진 사각형의 테이블에 앉는다. 창밖에서 들리는 소음이 좀 덜 들리고, 의자도 푹신푹신해서 아늑하다. 거기다가 주방도 잘 보인다.
메뉴는 소고기 케밥과 닭고기 케밥을 주문했다. 원래 현애는 동면 전에도 이국적인 음식을 많이 찾아 먹어서 그런지, 여기서도 이레시아인들의 별미라는 ‘카라미아식 케밥’을 먹고 싶었지만, 세훈이 ‘처음 왔으면 오리지널 메뉴를 먹어 봐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해 결국 수긍했다. 그래도 맛있게 한다니까 현애는 기대를 가득 품고, 일단 애피타이저로 나온 샐러드부터 먹기 시작한다.
“오- 이거 무슨 드레싱이지? 익숙하면서도 뭔가 달콤한데.”
“어, 이거? ‘네오 달리아’라는 꽃의 꿀로 만든 특제 드레싱이라는데.”
“아, 듣고 보니까 더 맛있어지는걸.”
현애는 고개를 돌려 주방 쪽을 본다. 고기가 구워지는 모습이 보인다. 주방에서부터 풍겨오는 향긋하고 기름진 냄새가 벌써 군침을 돌게 한다. 케밥을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이 저절로 그려진다...
“음?”
포크를 잡으려던 주리의 손에 뭔가 물컹한 게 잡힌다. 뭐지? 음식 같은 건 아닌데... 시선을 아래로 내려 본다.
경악할 만한 것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손이다!
사람의 손!
어떻게 여기에 놓인 것인지는 몰라도, 그야말로, 손만 뚝 떼어서 여기에 놓여 있다! 팔로 이어져 있어야 할 단면에는 까만 우주 공간 같은 것이 대신 있다.
“이... 이건...”
주리의 앞에 놓인 손을 본 현애와 세훈도 거기서 더 말을 잇지 못한다.
사람의 손이 갑자기 놓여 있다니! 그걸 어디 생각이나 했겠는가.
거기에다가, 손가락을 스스로 까딱거린다. 징그럽다.
그러나 더욱 놀랄 만한 건 그다음이다.
손이, 뛰어오른다! 스스로!
잡는다...
대뜸 주리의 멱살을 잡고, 흔들기 시작한다!
“이... 이런...”
당황했는지, 주리는 순간 말을 잃고, 입은 다물지 못하고, 두 손도 굳어 버린 채, 멱살을 잡고 흔드는 손을 경악스럽게 바라볼 뿐이다.
“이... 이건...”
다음 순간, 현애와 세훈은, 이 상황을 대략 짐작한다. 누군가의 공격이다. 초능력자의 공격! 그리고 그 공격이 향하는 곳은, 주리만이 아니다!
현애는 바로 태세를 갖춘다. 세훈도 마찬가지다. 서로 마주보고, 잠시 눈빛을 교환한다. 고개를 끄덕인 다음, 현애는 다시 마주앉은 주리를 돌아본다.
숨을 한번 들이쉰다.
현애는 손을 뻗는다. 점점 냉기가 감도는 손을.
주리의 멱살을 잡은 그 손이, 마치 눈이 달리기라도 한 듯, 현애가 손을 뻗자, 주리에게서 재빨리 떨어져, 현애의 목 쪽으로 바로 향한다. 마치 먹이를 향해 뛰어드는 짐승같이.
하지만, 현애가 더 빨랐다.
순식간에, 그 손은, 현애의 손에 잡혀 버린다.
그 손도 가만히 있지는 않으려 한다. 격렬하게 비틀고, 흔들고, 버둥거린다. 마치 사람의 손에 막 잡힌 물고기처럼.
그것도 잠시.
“가만히 있어. 회 떠 버리기 전에!”
다음 순간, 현애의 손에 잡힌 그 손이 벌게지기 시작한다. 버둥거리던 움직임도 점점 잦아든다. 하지만 가느다랗게나마 비트는 건 계속된다. 손가락 끝은 퍼렇게 바뀌려고 하고 있지만, 저항을 그만두지는 않을 모양이다.
“아무래도 마무리를 해 줘야겠는데.”
세훈이 한마디 하자, 벌겋게 되어 있던 손이 순식간에 얼어붙기 시작한다.?
몇 초 후.
현애에게 들린 그 손은, 마치 급속냉동을 한 듯, 꽁꽁 얼어 있다. 움직이기는커녕, 조각상처럼 되어 버렸다. 그제야 주리도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야, 이 손, 누구 건지는 몰라도, 여기 전시해 놔도 되겠는데.”
세훈이 감탄하듯 비꼬며 말한다. 문득 현애의 눈에, 맞은편의 테이블에 앉은 또래 정도의 남녀가 보인다. 그 둘 중 남자는 손이 보이지 않는 팔목을 부여잡고, 고통스럽게 이를 악물고 있다.
“누구 건지 모르겠다고? 찾은 것 같아, 세훈아.”
“아, 그래?”
세훈은 자리에서 살짝 일어서서, 현애가 가리킨 곳을 뒤돌아본다. 얼굴을 있는 대로 찡그린 남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세훈은 손뼉을 딱 친다.
“아, 알겠어, 저 녀석!”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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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갈
2020-05-27 13:12:49
끔찍하네요, 사람의 손이 잘린 것처럼 대뜸 나타났고, 게다가 그 손이 자율적으로 움직이다니...
간만에 평온한 건가 싶었는데, 이렇게 또 난장판을 만들어 버리네요. 게다가 이런 상황이, 정감있어 보이는 구시가지 사리시의 중심인 사리역 주변 그리고 맛있는 요리의 묘사 뒤에 바로 나오니까 순간 토할 뻔 했어요. 죠죠의 기묘한 모험 4부 애니에 등장하는 잘린 손까지 동시에 연상되면서...
현애의 냉기능력이 확연히 강해진 것 같네요. 그 손의 주인을 완전히 꼼짝못하게 제압할 정도로...
역시 세훈의 강화능력이 작용한 것일까요. 별로 효과없었다고 여겨진 그의 능력이 서서히 부각될 듯해요.
시어하트어택
2020-05-28 23:42:55
전에 잘린 손이 살아 움직인다는 괴담 비슷한 걸 본 적이 있어서, 그걸 토대로 한번 써 봤습니다. 죠죠 4부에 나오는 토니오의 에피소드에서 따온 건 덤이고요...
능력 강화는 아마 단번에 이루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위기도 찾아오겠죠.
SiteOwner
2020-05-30 23:49:03
식사를 방해하는 행동은 정말 불쾌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경우에는 개도 으르렁대는데 사람이 방해받고도 가만히 있으리라고 예상하는 자체가 언어도단이겠습니다.
정말 무서운 상황이 일어났는데, 이것을 보고 의연히 대처할 수 있었던 현애가 정말 대단합니다.
그리고 냉기관련 능력이 확연히 강해졌습니다.
그런데 단면이 우주공간같이 보인다...죠죠의 기묘한 모험 5부의 브루노 부챠라티의 스탠드 스티키 핑거즈가 연상되기도 합니다. 애니에서 그걸 봤을 때의 알 수 없는 공포감이 같이 연상되다 보니 더욱 무섭습니다.
시어하트어택
2020-05-31 23:08:43
그렇습니다. 밥 먹는데 누가 말 걸거나 하는 것만 해도 불쾌한데, 저렇게 징그러운 짓을 한다면 그 불쾌함은 몇 배가 될 겁니다. 저 에피소드는 바로 그런 걸 염두에 두고 만든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