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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자 H] 55화 - 드릴맨의 작업실(3)

시어하트어택, 2020-10-14 07:23:54

조회 수
164

“자, 다들 앉아 봐, 앉아 봐.”
수영은 손을 들어 앉으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금방이라도 자신을 향해 달려들 것만 같은 현애를 일단 앉게 한다. 현애는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을 하면서도, 일단은 앉는다.
“그래... 그래, 내가 무슨 취재를 하고 있냐면 말이야.”
수영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말한다.
“제목에서도 짐작했지만 말이야, 내가 이번에 쓰는 소설에서는 냉동인간이 주인공이지. 물론 재미를 위해서라면 그냥 재미있게 써도 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좀 더 실감 나게, 리얼하게, 개연성 있게 쓰려면, 많은 자료가 필요하지.”
수영은 홀로그램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수영이 모아 온 자료들이 유형별로 정리되어 있다. 인터뷰, 프로필, 기관 간행물 등.
“냉동인간에 대한 자료를 모으기 위해, 우선 ‘해동자 교육센터’에 자료를 좀 요청해서 받아 봤지. 물론 그곳의 자료는 그간 축적된 게 좀 많았는지 풍부하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실감은 좀 안 나더라고.”
“그래서 말이에요.”
현애의 목소리가 또다시 날카롭게 올라간다.
“소재가 생각이 안 나니까 제 뒤를 캐고 다녔다는 이야기인가요?”
“아니, 너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수영도 발끈했는지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얼굴을 붉히며 말한다.
“내가 그딴 스토커 같은 인간들하고 같이 보여?”
“제가 언제 스토커래요?”
현애가 또다시 금방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올 듯 일어서서 수영을 노려본다. 옆에서 세훈과 리나가 다리를 붙잡고 말리자, 현애는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 자리에 앉는다.

“자, 흥분을 좀 가라앉히고, 잘 들어 봐.”
수영은 다시 오른손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며 말한다.
“그렇게 내가 모은 자료 중에 ‘교육자 명단’이라는 게 있었어. 좀더 정확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그쪽 일을 잘 아는 지인에게 의뢰해 봤지. 물어보니까, 4월에 교육을 이수한 해동자들 중에 미린구, 동구 주변에 사는 사람이 몇 명 있다는 거야.”
“호오, 그래요? 그 지인은 혹시 누구죠?”
세훈은 궁금해졌는지 옆에 앉은 현애가 눈치를 주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영에게 곧바로 물어 본다.
“아, 그건 말해 줄 수 없어. <최강 냉동인간> 완결 전까지는 극비 사항이거든.”
“정말요? 그러면 혹시 이 근처에 사는 사람인가요?”
“아니, 그것도 말할 수 없어.”
“정말요...”
세훈은 그저 약간의 실망감을 비출 뿐이지만, 현애는 꽤 불만스러운 눈으로 세훈과 수영을 번갈아 보고 있다. 세훈은 이리저리 눈치를 보느라 초조한 얼굴이지만, 수영은 오히려 더?
“일단 그중에 몇 명을 추려냈지. 내가 쓰는 스토리에 맞춰서, 너무 어린 아이들은 일단 취재 대상에서 후순위로 밀고, 그 외에 몇 명도 빼고 하다 보니까, 보이더라고.”
홀로그램에 보인다. 수영이 골라낸 사람들의 프로필이 말이다. 총 4명. 다른 3명의 얼굴은 흐리게 가려 놨지만, 흐리게 처리하지 않은 사람이 한 명 있다.

[남궁현애]
[미린고등학교 1학년 G반 재학중]
[출신지 : 지구]
...

“뭐, 뭐야.”
현애 자신도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자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도대체 어떻게 얻어낸 건지는 모르겠지만...
“꽤 많이도 얻었네요.”
또다시, 세훈은 주위의 공기가 차가워지고 있는 걸 느낀다. 현애의 목소리도, 다시 차가워졌다. 마치 음성만 들어도 서리가 맺힐 듯 말이다.
“그럼 하나만 더 묻죠.”
“하, 뭔데? 말해 봐.”
“왜 하필이면 저를 콕 집은 건데요?”
“왜냐면 말이지...”
수영은 심호흡을 한번 하고 말한다.
“네가 그 가운데에서는 최적의 조건이기 때문이야.”
최적의 조건이라니? 대략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하지만 현애의 얼굴은 더 일그러진다. 마치 자존심의 한구석을 강하게 긁어놓는 것만 같다. 하지만 세훈과 리하르트의 눈은 빛나기 시작한다. 왜 ‘최적의 조건’이란 말인가?
“아, 일단은 흥분은 좀 자제하고...”
“이보세요. 드릴맨 씨.”
현애가 또다시 일어나려고 한다. 수영의 말이 다시 멈춘다. 세훈은 또다시 현애의 팔을 잡아끌고 앉힌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현애의 팔에서 손을 뗐는데, 손바닥이 뻘겋다. 찬 기운이 피어오른다! 직감한다. 이거, 가만 놔뒀다가는 큰일 나겠다!
“야, 세훈아.”
보다 못한 리하르트가 세훈을 돌아보며 말한다.
“현애 좀 잠깐 데리고 나갔다 와. 따뜻한 차 같은 거라도 한 잔 마시게 하고.”
수영 역시 그러라는 눈치를 준다. 그 와중에도 오른손은 계속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수영의 작업실 밖의 거실. 막 해가 저물면서 빛나는 붉은 노을빛이 거실 안으로 들어오고, 창밖에는 사람들이 아까보다 더 늘어났다.
“야, 도대체 왜 그렇게 화가 나 있는 건데?”
세훈은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실은 현애 주변의 찬 기운이 조금이라도 풀리기를 내심 바라고 있다. 무심결에라도 자기 능력을 쓰지 않기 위해 심호흡을 여러 차례 하는 건 물론이다. 말할 것도 없이 세훈을 둘러싼 공기는 아직 가을은커녕 겨울도 풀리지 않았다.
마침 바로 그때, 로봇이 와서 따뜻한 보리차 2잔을 놓고 간다.
세훈이 컵을 잡아 보니, 아슬아슬하게 뜨겁지 않을 정도로 후끈거린다. 이 정도라면, 지금 세훈을 둘러싼 정도의 추위는 쉽게 풀릴 수 있으리라...
앞을 보니, 현애는 말없이 딴 데만 보고 있다.
“야! 뭐 하냐.”
세훈이 불러 봐도 반응이 없다. 일부러 저러는 걸 거다.
다시 한번 부른다.
“뭐 하고 있어. 보리차 왔어.”
“어, 그래?”
“너 마시라고 일부러 따뜻하게 만들어서 가져왔나 봐. 빨리 마셔.”
“그래...”
현애는 보리차를 받아들고서도 앙금이 풀리지 않은 듯 무표정하게 멍하니 있다. 세훈이 얼핏 현애의 컵을 잡은 오른손을 보니, 물기 같은 게 맺혀 있다. 자세히 본다.
김이, 모락모락 나야 할 김이, 올라오지 않고 있다. 컵으로부터 말이다!
“이상하다, 이거.”
현애가 보리차를 한 모금 마시고서, 여전히 배배 꼬인 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분명히 따뜻한 보리차랬는데, 왜 이렇게 미지근하지? 끝은 차가운 것 같기도 하고.”
“그야, 네가 무의식중에 능력을 사용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차가운 거 아니야? 좀 풀어!”
“그래, 나도 무슨 말인지 알아.”
의식하고는 있지만 현애의 목소리는 자기도 모르게 확 올라가 있다.
“그게 생각대로 안 되니까 그렇지. 안 그래?”
“그래도 좀 마시면 나아지지 않을까?”
“그래... 그랬으면 좋겠는데.”
세훈은 조심조심 지켜본다. 현애는 보리차를 조금조금씩, 그러나 끊지 않고 다 마신다.
“후.”
현애가 크게 숨을 내쉰다. 세훈은 조마조마하게 현애의 입을 주목한다.
그리고 잠시 후.
“차라리 커피 같은 거라도 줬으면 조금 나았을 텐데.”
약간의 실망이 섞인 말이다. 그리고... 세훈의 주위는 아주 약간 온도가 올라갔다. 그래 봤자 미미한 정도의 차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조금이나마 온도를 높인 게 어디냐...
그렇게 기대를 품은 채, 세훈은 현애와 함께 다시 수영의 작업실로 들어간다.

한편 수영의 작업실.
아까 현애와 수영이 말다툼을 하던 그 험악한 분위기가 맞나 할 정도로 화기애애해졌다. 음료수를 나눠 마시고 있는 수영, 리나, 리하르트 모두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있다. 특히 처음 만났을 때 리나와 리하르트는 꽤 어색했음에도.
“그래. 뭐 더 궁금한 건 없어?”
“궁금한... 거요?”
리하르트가 묻는다.
“아무거나 물어 봐도 되나요?”
“묻고 싶은 거 있으면 아무거나 물어봐도 돼.”
“작가님, 그렇게 멀티플레이를 하면 집중이 잘 안 되지 않나요?”
“글쎼다... 난 아무 상관 없던데.”
수영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한다. 여전히 모니터를 곁눈질하며, 한 손은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린다.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리나도 한 마디 한다.
“저 작가님, 혹시 말이죠.”
“왜?”
“작가님 혹시, 어떤 능력이 있는 건가요?”
“그건 왜 갑자기 묻는 거지?”
“작가님도 초능력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그런데,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 거지?”
“아, 사실 저도 이런 게 있거든요.”
그렇게 말하며, 리나는 자신의 신호에 따라 창밖에서 움직이는 새들을 보여준다.
“오, 그런 초능력도 있었어?”
“아, 이게 말이죠, 한 달쯤 전에 우연히 생긴 능력이거든요. 전부터 여러 가지 동물들을 길렀는데, 초능력이 생기고 나니까 동물들하고 대화할 수 있을 정도가 됐어요.”
“호오, 그래?”
수영은 눈을 크게 뜬다.
“왜... 왜 그러시죠?”
리나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하자, 수영의 눈은 더욱 커져, 희열에 가득 찬 눈을 한다.
“좋아, 좋았어! 네 능력, 다음에 한 번 소재로 써 봐야겠어!”
“소재라니요?”
“말 그대로야. 차기작에 네 능력을 소재로 쓸 거라고!”
“그런데, 어떻게 쓰게요? 다큐멘터리라도 찍을 거예요? 아니면 저를 납치...”
“아니, 그런 건 아니지!”

다음 순간, 리나의 눈에 보인다. 키보드를 두드리던 수영의 오른손이 창가로 향했고, 그 창가에는!
새들이 모여들고 있다!
어느새!
“뭐죠, 작가님... 작가님도, 동물을 불러모으는 초능력이 있었나요?”
“아니.”
수영은 딱 잘라 말한다.
“그러면요? 도대체 뭐죠?”
“다른 사람의 초능력을 조금씩 베껴서 쓸 수 있지. 비록 좀 열화된 버전이기는 하지만, 나름 쓸만하고, 직접 체험도 가능하지. 덕분에 글을 더욱 풍부하게 쓸 수 있기도 하고.”
“아...”
리나는 입도 다물지 못하고 한 1분간을 가만히 있다가, 머리를 흔들고는 다시 입을 연다.
“그건 그렇고, 차기작이요? 벌써 차기작을 준비해요?”
“그래. 차기작은 흡혈귀와 수인, 동물 조종 능력자의 대결을 다룰 예정이야.”
“우왓! 이거 특급 정보다! 특급 정보라고!”
“선배님, 들었죠?”
리나와 리하르트는 박수를 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참! 너희들만 알아야 하는 거야.”
“아... 알겠어요.”
리나와 리하르트는 금방 흥분을 거둔다.
“그런데, 혹시 작가님이 하는 말이 저기 밖에도 들리지 않았나요? 아니면 혹시 저희가 변심해서 다른 데다가 퍼나른다든가 그렇게 하면요?”
“아, 1차적인 보안 문제는 걱정 안 해도 돼. *니르바나는 내가 하는 일을 잘 알거든. 내가 이 작업실에 있거나 할 때면, *니르바나는 항상 내 방에 방음 전파를 흘려 놓지. 그런 건 걱정 안 해도 돼.”
거기서 말을 멈추더니, 수영은 웃음기를 조금 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들이 내 작품의 정보를 누설한다든가 하면, 그때는 나도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겠지. 그걸 잘 알아주었으면 좋겠어.”
“그 조치라는 건...”

리하르트와 리나가 뭔가 막 물어보려는 그때, 수영의 작업실 문이 열린다.
시어하트어택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0-10-18 23:48:54

이번에는 서체가 바뀌어 있네요. 의도하신 건가요?

읽는 데에는 딱히 불편함은 없어요.

그대로 두실 것인지, 아니면 바꾸실 건지에 대해서는 답변을 기다릴께요.

만일 서체 변경에 대해 기술적인 문제가 있다면 바로 말씀해 주시길 부탁드리겠어요.


내용에 대해서는 별도로 코멘트할께요.

시어하트어택

2020-10-19 07:29:39

프로그램 문제인 듯합니다. 바꿨습니다.

마드리갈

2020-10-19 13:14:26

그럼 이제는 내용에 대한 코멘트를 할께요.


일본어의 센사쿠(詮索)라는 표현이 있죠. 집요하게 파고든다는 의미인데, "뒷조사" 가 주로 위법하거나 부도덕한 방법에 의존하는 감이 있다면 센사쿠는 합법이든 비합법이든 가리지 않고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한다는 의미. 수영이 현애에 대해 온갖 정보를 모은 것을 안 현애 본인이 바로 그 센사쿠의 대상이고, 이 상황에서 속이 뒤집어질 것 같은 거부감을 안 느낀다면 그게 도리어 이상하겠죠.


참고가 될만한 영상자료를 하나 소개할께요.



이 영상에서, 남학생 아야노코지 키요타카는 무기력한 듯한 표정과 말투로 일관하고 있는데다 평온한 일상을 희구할 뿐이라고 할 뿐이지만, 여학생 호리키타 스즈네가 "넌 대체 정체가 뭐야?" 라고 묻자 아야노코지가 다시금 대답해요. "A반으로의 승격을 위해 돕기는 하겠다. 하지만, 나를 깊이 알려고 하지 마(오레노 센사쿠와 스루나)" 라고 차가운 눈빛과 함께.

시어하트어택

2020-10-20 23:31:46

저렇게 영상으로 보니 뭔가 제가 써 놓은 것도 더 실감나는군요.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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