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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자 H] 84화 - 길고 긴 화요일(1)

시어하트어택, 2021-01-04 07:41:39

조회 수
126

월요일 저녁, 장 박사의 별장.
“뭐야, 레이양도 실패했고, 보안요원들도 모두 실패했다는 건가?”
장 박사가 약간 격앙된 목소리로 자신의 앞에 선 알레한드로와 라자를 보며 말한다.
“아니, 어떻게 녀석들이 유유히 사라질 때까지 손을 못 쓸 수 있는 거야!”
“레이양은 최선을 다해 막아 보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보안요원들 또한 제 힘이 닿는 데까지 통제해 보려 했습니다.”
알레한드로의 말에 장 박사는 더욱 고래고래 소리지른다.
“아, 됐고! 내일 나머지 동면인들 전부 출격시켜. 지하에 있는 마르코 녀석도 쓸 준비 하고! 알겠나?”
“알겠습니다, 보스!”
“이그니토와 파칸에게도 움직이라고 해!”

그날 밤, 수영의 집.
“아... 지금이 몇 시더라...”
수영이 막 집에 들어왔다. 머리는 헝클어졌고, 피곤한지 눈은 반쯤 감은 듯 보인다.
“저녁 9시 10분이네요, 수영 님.”
“그래, *니르바나, 고마워.”
수영이 겉옷을 벗고 작업실로 들어가자 작업실의 불이 저절로 켜진다. 밤이 깊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불이 켜지니 낮 시간대의 작업실의 풍광과 크게 다를 건 없다. 물론 수영은 인공광보다는 자연광을 더 선호하기는 하지만.
“여태껏 했던 취재 중에 가장 특이한 취재였지, 아마?”
씻지도 않고 바로 컴퓨터를 켜고 자리에 앉는 수영의 입가에는 미소마저 번진다. 이 정도로 격하게 굴러 가면서 했던 취재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이번이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그에 비례해 수영의 경험치도 많이 오르기는 했지만. 덕분에, 오늘은 <최강 냉동인간> 2회차 정도는 거뜬히 쓸 수 있을 것 같다.
“자, 어디 한번 써 볼까?”
수영이 막 자리를 잡고 앉아서 쓰려는데.
“응? 뭐야?”
뭔가 이글거리는 것 같은 느낌이, 수영의 뒤에서 타오르는 것만 같다.
그 느낌은, 발코니 창문 바로 뒤에서!
심상치 않은 예감이 수영을 뒤덮는다.
“아, 집중 안되게 왜 이러는 거야.”
마음을 다잡고 다시 글을 써 보려고 한다.
하지만 안된다. 자꾸만 뒤에서 화르륵 타오르는 기운 때문에 글이 써지지가 않는다.
“아, 오늘 글 못 쓰겠네.”
참다못한 수영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뒤의 발코니로 간다.
발코니에 서자, 보인다.
푸른색의 공중을 떠다니는 것들이.
수영은 저것들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아, 이 녀석, 또 시작이야!”

다음 날, 6월 9일 화요일 아침 8시, 알파 단지.
현애와 주리가 나란히 지하철역을 향해 걷고 있다.
“너 웬일이야, 금요일도 아닌데 오토바이도 안 타고.”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그런데 너 말이야...”
현애가 AI폰의 메시지를 보여준다.
“혹시, 메이링 씨한테서 이런 메시지 받았어?”
“어, 나도 받았는데. 오늘 보자며.”
“그런데 왜 굳이 만나서 보자는 걸까?”
“이런 사안은 보안이 철저해야 하니까.”
“생각해 보니까 그러겠네.”
한편 그때, 현애와 주리의 뒤를 쫓아가는 누군가가 있다. 비니를 쓰고 온몸을 트레이닝복으로 두른 모습이, 얼핏 보기에는 운동 나온 사람처럼 보인다. 조용히 벤치에 앉아서 두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보다가, 어느 정도 자리가 벌려지면 슬금슬금 일어나 따라 걷는다. 어느 정도 그렇게 했을까. 그는 먼발치에서 확인한다.
현애와 주리가 지하철 출입구로 들어가는 것을.
“사람들이 밀집한 곳에서 내 능력을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은데...”
그는 조그맣게 중얼거린다.
“하지만 일단은 쫓아가야겠군. 관찰하고 기회를 노린다고 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바로 그 시간, 미린역 남쪽 카페거리.
한 남학생이 고개를 숙인 채 미린역 방향으로 걷고 있다. 군청색의 니트를 입은 남학생은 다름아닌 시저 컬리. 얼굴빛은 한층 더 우울해 보인다.
“어, 시저 오빠 아니에요?”
한 여학생이 부르는 목소리.
시저가 아는 목소리다.
늘 반갑기는 했지만, 지금은 차마 듣고 싶지는 않은 그런 목소리.
시저는 애써 그 목소리를 무시한 채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저기, 시저 오빠!”
“......”
“제 말 좀 들어 봐요, 시저 오빠!”
시저는 뒤에서 들리는 그 여학생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계속 발걸음을 옮긴다. 몽실거리는 머리의 여학생, 루비는 안되겠다 싶었는지 대뜸 시저의 앞을 가로막는다.
“저기, 시저 오빠!”
“왜 그래, 너 자꾸!”
“할 말이 있어요.”
루비를 보는 시저의 얼굴은 평소에 루비가 시저를 만날 때 반갑게 맞아 주는 그런 얼굴이 아니다. 심하게 일그러졌다.
“네가 지금 내가 뭐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지 알기나 해!”
“저도 그것 때문에 말하려는 거예요. 그러니까...”
시저는 루비를 잠시 흔들리는 눈으로 보더니, 고개를 휙 돌리고는 그대로 지하철역을 향해 달려간다. 루비는 달려가는 시저를 잠시 보더니 손을 입에 대고 소리친다.
“메시지 보낼 테니까 꼭 봐야 해요!”
한편,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는 한 검은 승용차가 있다.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은... 대머리의 근육질 남자, 알레한드로.
“현재 특이사항은 없습니다.”
알레한드로는 전화에 대고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다. 전화 너머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알레한드로는 고개를 푹 숙인다.
“알겠습니다. 그럼 우선은 관찰하고 나서 명령이 있으면 행동을 개시하겠습니다.”

그 시간, 매그넘 골드 빌딩.
“히야... 오늘은 왜 이렇게 일이 많은지 몰라.”
1층 로비를 한 사람이 급하게 가로지르고 있다. 한 손에 두툼한 가방을 들고 가는 건 주위의 여느 사람들과 다른 바가 없지만, 복장만큼은 확 눈에 띈다. 다들 정장을 입고 있는데, 혼자 야구모자에 민소매 조끼, 핫팬츠 등을 입고 있으니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어, 메이링 씨 아니야.”
누군가가 달려가는 메이링을 부른다.
“듀폰 씨잖아. 어떻게 한 번에 알아봤어?”
“이런 데서 메이링 씨같이 입고 다니는 사람은 없어.”
“하, 그런가...”
메이링은 잠시 눈을 굴리는 듯하다가, 뭔가 생각났는지 손뼉을 치며 말한다.
“참, 듀폰 씨, 요즘은 거기 도깨비불 안 나와?”
“도깨비불?”
듀폰은 잠깐 뭔가 생각하는 듯하다가 말을 꺼낸다.
“요즘은 안 나오지!”
“그거 어떤 녀석이 초능력으로 장난하는 거란 건 알지?”
“어... 메이링 씨한테서 한번 들었지.”
듀폰은 AI폰을 꺼내더니, 사진 몇 장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번에는 미린 시사이드센터 주변에서 나타났다는 것도.”
“뭐, 미린 시사이드센터? 언제?”
“바로 어젯밤에 처음 나타났다더라. 복수의 제보자가 있어.”
“그래...”
메이링은 시계를 초조하게 보더니, 엘리베이터가 도착한 걸 보고는 황급히 뛰어간다.
“일단 알았어. 오늘 시간 되면 좀 이야기해 보자고!”
“그래, 수고하고.”
메이링이 급히 엘리베이터에 뛰어들어간 후, 듀폰은 혼자서 로비 옆에 있는 카페로 들어가,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고 잠깐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한 남자가 있다. 카페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위화감이 없이 정장을 입고 있기는 하지만, 앞에는 모니터가 하나 놓여 있다.
“예, 침투 대상은 식별했습니다.”
남자는 공손히 말한다.
“예, 명령만 하시면, 오늘 침투해서 목표 대상을 타격하겠습니다. 예, 예. 알겠습니다.”

그 시간, 미린고등학교 근처의 주택가.
세훈은 혼자서 길을 걷고 있다. 평소 같으면 한두 명씩 옆에 같이 끼고 가겠지만, 오늘은 그냥 혼자 간다. 고독을 씹는다거나 하는 건 아니고, 세훈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예감이 좋지 않다. 누군가 노리고 있다는 그런 느낌을, 어제 카페에서 모인 이후로 쭉 받아 왔다. 그래서 오늘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좀 일찍 나왔다.
세훈이 길을 걷던 중, 누군가가 보인다.
익숙해 보이는 두 사람.
E반의 조제와 외제니다.
“어? 너희들...”
“뭐야, 세훈이잖아.”
“일찍 나왔네? 혹시 운동하고 오는 거야?”
“에이, 내가 앙드레냐, 새벽부터 뛰고 오게.”
“하하하, 그냥 해 본 소리지.”
조제는 농담을 좀 하려다가, 조제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눈치챈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
“아, 사실은 말이야...”
세훈은 조제와 외제니에게 좀더 가까이 간 다음,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해 준다.
“어, 그런 게 있었어?”
“맞아. 그래서 너희도 조심해야 할 것 같아.”
어떻게 잊겠는가, 조제와 외제니가. 일주일 전에 있었던 그 악몽과도 같았던 일을. 장주원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온몸이 떨리고, 신경이 곤두설 정도다.
“그런데, 지금 네 감만 그런 건 아니지?”
“아니야, 아니야.”

그 시간, 지하철 내부.
출근 시간대, 사람들로 꽉꽉 들어찬 지하철 내부는 서 있기도 힘들 지경이다. 절반 정도는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고, 나머지 대부분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다. 한쪽에는 현애와 주리도 서 있다. 아마도 사람들은 미린대역 한 정거장 앞의 미린역에서 좀 많이 내릴 것이다.
현애는 막간을 이용해 AI폰으로 <라리의 모험>을 보고 있다. 저번 회차가 한창 재미있어지려고 할 때 끝나 버려서 다음 회차를 정말 기대했는데, 다행히도 그런 갈증은 금방 풀릴 정도로 재미있다.
한참을 그렇게 만화에 빠져 있을 때.
“야, 뭔가 좀 이상한 것 같은데...”
옆에서 주리가 부른다.
“아니, 재미있어지려는데 왜 방해하고 그래!”
“아니, 방해라니! 너한테 경고를 해 주려는 거라고!”
“경고라니, 그게 무슨...”
주리는 목소리를 더 낮추고 현애의 귀에 대고 말한다.
“누군가 보고 있다는 느낌, 안 들어?”
“글쎄...”
“야, 너 뭐 그렇게 둔해! 나는 금방 느낌이 오는데.”
“무슨 느낌?”
“초능력을 가진 누군가가 우리를 노리고 있다는 예감 말이야!”
“그래? 그러면 시간을 두고 그 누군가를 쫓을 생각을 해 보자.”
“시간은 무슨 시간, 바로 다음이 미린대역인데!”
“어,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

현애와 주리는 지하철역 개찰구를 나온다.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미린중학교,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그렇게 많이 보이지는 않는다.
“이상한데...”
주리가 중얼거린다.
“나 잘 보고 있어. 그러니까 걱정 마.”
현애가 톡 쏘듯 말한다.
“너 걱정하는 거 아니야. 뭔가 이상한 느낌이 걸어가는 내내 든다고.”
“그래. 나도 그렇기는 한데...”
개찰구에 카드를 찍고 나와서, 현애와 주리 모두 주위를 한번 돌아본다.
“이상한 느낌이 자꾸 드는데, 어디서 오는 거지, 이 녀석은?”
“그러게. 딱 우리 근처인 것 같은데...”
틀리지 않았다!
그 느낌은...
갑자기 온다!
“잠깐...”
주리의 오른쪽에 서늘한 예감이 든다.
적대적인 이 예감, 이 느낌.
설마...
오른쪽을 돌아본다.
없다! 현애가!
“야! 현애야!”
다음 순간 들리는, 오른쪽의 직원용 통로 출입문에서 들리는 ‘쾅’ 소리!
바로 달려가서 열어 보려 한다.
하지만...
잠겼다! 굳게 잠겨 버렸다!
주리는 바로 AI폰을 꺼낸다.
그리고...
“여보세요, 발레리오 씨? 발레리오 씨?”
하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다. 현애가 위험한데, 전화를 안 받다니...
“좋아... 그럼 메시지라도 보내야지...”
시어하트어택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1-01-05 15:34:32

결국 도깨비불이 그냥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통제하고 있는 것이었네요.

수영의 집 창밖에 나타나서 방해를 하는 것에서 이미 확실해졌어요. 범인이 멀지 않은 곳에 있되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기도 하고...


현애가 갑자기 사라졌네요. 현애의 인생은 정말 왜 이렇게 험난한 것인지...

시어하트어택

2021-01-06 23:22:17

사실 장 박사와의 싸움을 앞두고 있다 보니 기존에 떡밥을 풀어 놨던 적들을 총출동(?)시켜야 할 필요가 있거든요. 아마 작중 시간으로는 다음날인 수요일에 2부가 끝나게 될 듯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 전날인 화요일은 제목대로 길고 긴 화요일이 되겠죠.

SiteOwner

2021-02-20 20:46:37

어떤 일이 한 번 일어나면 우연, 두 번 일어나면 기적, 세 번 일어나면 사기라고 합니다.

갑자기 도깨비불이 다수, 그것도 마치 자체적으로 지능이 있는 것같이 움직이는 일이 빈발한다면 그게 우연이 겹쳤다고 보는 것이 더욱 이상하겠지요. 역시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입니다.


그나저나 카페의 그 남자, 뭔가 좀 어설프군요.

헤일로 게임에서 코버넌트가 각종 지령을 평문으로 전달하는 실책을 저지르는 바람에 패착을 겪는 게 같이 떠오릅니다.

시어하트어택

2021-02-27 11:27:32

초능력을 가정하지 않은 경우라면 그저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치부되겠습니다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의심을 안 할 수가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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