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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자 H] 93화 - 마리오네트

시어하트어택, 2021-01-31 18:16:33

조회 수
125

발레리오의 저택 바깥 정문 앞.
현애, 시저, 마르코와 알레한드로가 대치 중이다.
”아직 뜨거운 맛을 못 봤으니 그렇게 지껄이는 거 아니야!“
“네 능력? 시야 공유밖에 못 하는 거 아니냐?”
마르코가 박박 소리지르자, 알레한드로는 가당치도 않다는 듯 말한다.
“그딴 능력으로 나를 상대할 수 있다면, 진작에 이기고도 남았겠지? 안 그런가?”
마르코가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음에도, 알레한드로는 여유롭게 웃으며 마르코를 내려다본다. 물론 얼마든지 준비는 하고서 말이다.
“자, 그 쥐꼬리같지도 않은 능력으로 나를 어떻게 해 보라고?”
“......”
“호오, 그렇게 노려봐서 어쩔 건데? 해 볼 수 있으면 해 보라니까?”
“시저! 오른쪽이야!”
“어... 엇?”
알레한드로가 순간 오른쪽을 휙 돌아보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자식, 블러핑 작작 쳐라! 그러면 나한테 안 들통날 것 같냐?”
알레한드로가 씩씩대며 말하는데...
“블러핑이라고? 내가 한 건 블러핑이 아닌데.”
“그게 블러핑이지 뭐겠어!”
“자, 생각해 보라고? 네 입장에서 봤을 때, 내가 오른쪽이라고 말하면 네놈한테는 어느 쪽이지?”
알레한드로가 왼쪽을 돌아보자...
줄! 줄들이 모두 물렁물렁해졌다!
저택 안으로 다시 한번 뻗어 보려던 줄들이 말이다!
“이 자식, 잘도 나를 농락했겠다...”
알레한드로가 부글부글 끓는 용암 분출구처럼 말한다.
“이제는 정말 봐주지 않을 거다. 다들 각오해라!”

그 시간, 장 박사의 별장. 적막감이 흐르는 가운데, 장 박사와 라자 단 두 사람만이 발코니에서 정원을 내려다보고 있다.
“알레한드로가 오늘 고생을 많이 하는군. 플랜B까지 다 생각하고 있었다니 말이지. 고용 관계라고는 하나, 하나하나 세세하게 해 주는 면에 있어서는 피를 나눈 가족보다도 더 마음에 드는데.”
장 박사는 혼자 중얼거리다가, 옆에 선 라자를 돌아본다. 라자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숙인 채 장 박사의 말을 기다리고 있다. 장 박사와 라자, 두 사람 다 초조함이 얼굴에 짙게 배어 있다.
“그래서 자네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라자?”
“일단은 거처를 옮기는 게 좋겠는데요, 보스...”
“옮기자고?”
“네...”
“자네 그거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녀석들은 이미 우리의 소재까지 다 파악했어. 어디로 옮긴다고 해 봤자 다 드러나 버린다고!”
“하지만 그래도 보스, 일단 시간을 벌어서 훗날을 도모하는 게 어떨까 하는데...”
“안돼, 안돼!”
라자의 요청에도, 장 박사는 요지부동이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닥쳤을 때는 무조건 피하는 게 대책은 아니다. 맞서 싸워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알겠습니다...”
장 박사의 말에 라자는 찜찜한 표정을 하고 대답한다. 장 박사를 자꾸만 흘끗흘끗 보면서.

발레리오의 저택.
“다들 이상은 없는 건가?”
발레리오가 하나둘씩 몸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보며 말한다.
“혹시 숨쉬거나 하는 데 불편하거나 하는 사람 있으면, 빨리 말하게. 병원에 가야 할 정도로 숨쉬기 힘든 사람 있나?”
한 사람이 손을 든다. 잔뜩 벌게진 얼굴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외제니 르루아 양이랬나, 자네?”
“하... 하... 네... 네...”
“저, 발레리오 형, 저한테 맡기죠.”
“피오, 정말 네가 할 수 있다고? 병원에 안 가고도?”
피오는 대답하는 대신 옆에 있는 로봇 하나를 외제니의 옆으로 오게 한다. 피오 자신도 조금씩 텁텁해하는 것 같지만, 능숙하게 공기를 끌어모은 다음, 로봇의 옆에 있는 흡입구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호스와 마스크를 연결해서, 외제니의 입에 댄다.
“정말, 괜찮은 거겠죠?”
옆에서 지켜보는 조제가 걱정스럽게 말한다.
“죽거나 이러면 안 될 텐데...”
“걱정하지 마. 그럴 일은 없을 테니.”
약 1분 정도 지나자...
“하... 후아...”
외제니가 거칠게 숨을 몰아쉰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만 같았던 얼굴색은 조금 전보다 훨씬 나아졌다.
“외제니! 외제니!”
조금 전보다 나아진 얼굴로 안도의 숨을 내쉬는 외제니를 보고서, 조제 역시 기뻤는지 들떠서 소리지른다.
“정말 괜찮은 거지?”
“아... 그래. 이제 한결 나아졌어.”
“다행이다... 다행이야!”
저택 안의 사람들을 살피던 발레리오의 귀에 문득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참, 저택 밖에 소란이 있는 것 같은데?”
“저택 밖에요? 한번 볼까요, 형님?”
비토리오가 잠시 옆에 있는 로봇의 홀로그램 화면을 들여본다. 그리고...
“형님, 장 박사의 하수인이에요. 집 안에 상자를 갖다놓은 녀석 말이에요!”
“누군데?”
“알레한드로 구스만 말입니다!”
“아... 알레한드로?”
“네!”
“이 녀석... 이렇게 가까이까지 왔다니...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발레리오의 저택 밖.
“봐 주지 않겠다. 각오해라, 너희들!”
“그래? 그 각오, 한번 보여주시지그래?”
현애가 조롱하듯 말하자, 알레한드로는 피식 웃는다.
“왜 웃는 거지? 보여 달라니까?”
“이미 보여주고 있거든!”
“어... 엇?”
순식간이다. 시저와 마르코의 몸이 멋대로 움직인다. 마치 마리오네트 인형이 된 것처럼, 부자연스럽게 두 팔과 두 다리를 허우적대더니, 현애 쪽으로 향하는 게 아닌가!
“아... 아니... 나... 나는...”
휙-
재빨리 피한다. 엉성하게 뻗은 시저의 주먹, 마르코의 발이 현애의 옆을 살짝 스친다. 엉성하게 보이기는 해도, 상당히 빠른 속도다, 이건!
순간 현애에게 그 날이 다시 떠오른다. 어두운 폐건물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투명한 줄들에 묶여 조종당할 뻔했던, 그리고 친했던 한 사람과 마지막으로 있었던 그 순간 말이다.
“봤나?”
“그래... 이게 네놈의 각오라는 거냐?”
“뭐, 각오까지는 아니지만, 네 녀석의 친구가 한 말, 기억하고 있겠지?”
“무슨 말?”
“결심한 순간, 이미 공격은 끝나 있다고 말이지. 흐흐흐...”
그렇다. 앙드레하고 싸울 적에, 그런 말을 몇 번 들었다. 문제는 그렇게 말하다가 조제한테 졌다는 것이지만.
”너희들이 나하고 농담 따먹기나 하느라 정신을 놨을 때, 나는 이미 다시 공격 준비를 하고 있었지. 그리고 아무리 줄들이 끊어지더라도, 몇 번이고 다시 만들어낼 수 있고, 또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도 있지! 더군다나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내가 너희들을 어떻게 못 할 이유가 없단 말이다!”
“그러셔...”
현애는 씨익 웃는다.
“그렇게 말하는 네 녀석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인데?”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냐?”
곧바로 나오는, 알레한드로의 어이없다는 듯한 썩은 표정.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상황이 꽤 많이 달라졌단 말이지! 너도 그걸 잘 알 텐데? 안 그러나?”
“그래. 알지.”
“지구에서는 그런 걸 안 가르쳐 주던가? 아니면 네 연식이 너무 낡아빠져서 업데이트를 못 하는 거 아닌가?”
“뭐? 내가 낡아빠졌다고?”
“그래. 화석보다도 더 낡았으니, 내 말이 틀린 건 아니지.”
“말 다 했냐?”
현애의 목소리가 확 올라간다.
“호오, 무서워라.”
“내가 말했지.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고, 너 말이야.”
알레한드로의 피부에 닿는다. 차가운 기운, 그때 알레한드로의 손을 얼게 해서 굴욕을 안겼던 그 차가운 기운 말이다.
“좀 더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해 주지!”
“이... 이 자식!”
찬 기운이 줄을 타고 오는 게 느껴진다. 몇 초 안에 두 손을 바짝 얼려 버릴 수 있을 정도의 차고 매서운 기운 말이다. 알레한드로의 눈에도 보인다. 그 찬 기운.
“이대로 너를 얼려 주겠다!”
“호오, 그래? 나를 얼리시겠다?”
알레한드로의 표정이 돌연 바뀌었다. 잔뜩 긴장한 얼굴이 아니다. 저 자신만만한 얼굴, 도대체 무엇을 믿길래 저렇게 으스댈 수 있단 말인가?
“분명 말했을 텐데. 이건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줄이라고!”
“어... 엇?”
다음 순간.
현애의 눈에 보인다.
시저와 마르코의 손발... 두 사람의 손발이 얼어 있지 않은가!
“야! 야... 이게 도대체 어떻게...”
“......”
시저와 마르코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당황한 표정이다. 애원하는 눈으로 현애와 알레한드로를 번갈아 보고 있다.
“자, 어떤가? 이게 바로 나한테 퍼붓는다던 네 공격의 결과물이다.”
“이 자식...”
“나를 때려눕혀 준다고 했지만, 그 결과는 어땠나? 나한테는 전-혀 오지도 않았지. 오히려 당한 건 네 친구들이라고?”
현애는 서둘러 능력을 해제하고 시저와 마르코의 손발을 녹인다. 곧바로 알레한드로를 다시 돌아보며 알레한드로를 얼리려고 더 강한 냉기를 흘려보내지만...
“하하하! 그런다고 내가 얼거나 할 것 같나?”
이런... 현애의 바람과는 반대로, 오히려 시저와 마르코의 상태가 악화되어 버렸다. 시저와 마르코의 팔다리가 온통 얼어 버렸지 않은가...
“자, 보라고! 네 녀석이 냉기를 흘려보내거나 하지 않았다면, 이 녀석들이 얼어 버리거나 할 일도 없었겠지. 가만히 있으면 이 친구들은 다친 데 하나 없이 무사했을 텐데.”
“이 자식, 말 다 했냐!”
현애가 주먹을 내지르려 하자, 곧바로 현애의 앞에 펼쳐지는 팽팽한 줄들. 거기에 막혀 버린다. 그리고 감싸 버린다!
“지금 이것도 마찬가지야.”
알레한드로의 얼굴, 몸짓, 목소리. 모두 조금 전보다 한층 여유가 생겼다.
“그냥 가만히 있었다면 그나마 네 녀석의 운신의 폭은 넓었겠지. 안 그런가?”
“이 자식!”
“이건 모두 네 탓이다. 가만히 있어도 될 걸 괜히 어떻게 해 보겠다고 움직였다가 이렇게 된 네 잘못이란 말이다!”
“말 다 했냐아아아아!”
바로 앞에 선 알레한드로를 향해 발차기를 내지르지만...
그것도 잠시!
훅-
“크... 윽...”
다리도 묶여 버렸다. 알레한드로의 실에.
“내가 그러니까 말했지? 한쪽 팔만 묶인 상태에서 그냥 있었으면 그나마 다리는 마음껏 움직일 수 있었는데, 그것도 아니게 됐지? 안 그런가?”
“......”
한 팔, 한 다리가 묶여 버린 채로, 현애는 알레한드로를 가만히 노려본다. 저렇게 냉정하면서도 악랄하게 공격하다니. 장 박사가 아니라 그의 하수인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아니, 어쩌면 장 박사를 능가할지도 모르겠다... 무지막지한 힘은 아니지만, 이 정도로 사람을 갖고 놀다니...

“개자시이이이익!”
돌아본다.
시저가 알레한드로에게 달려들고 있다.
“호오, 여기 냉동인간만큼 멍청한 녀석이 또 하나 있었네. 네 녀석, 라자가 그렇게 신경 써 줬는데도 정신을 못 차렸지?”
다음 순간.
시저를 둘러싼 줄들이 순간 말랑말랑해지나 했더니...
확-
시저를 오히려 감싸 버린다!
“으으그그그...”
“거미줄에 묶인 먹잇감처럼 되어 버렸군.”
시저를 보며 비웃는 알레한드로. 잠시 후, 그의 시선이, 현애를 바로 향한다.
“자, 다들 알맞게 요리할 시간이 됐군.”
“너 이 자식, 이걸 풀지 않으면...”
상황은 절망적이다. 현애에게도, 시저에게도, 그리고 마르코에게도. 마치 거미줄의 거미처럼, 알레한드로는 의기양양하게 셋을 보고 있다.
“그럼 이제 시작해 볼까? 네 녀석의 말대로, 나의 마리오네트를 말이지!”
시어하트어택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1-02-01 14:58:19

바로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긴박한 전투가...

게다가, 알레한드로의 능력인 마리오네트가 이름에 걸맞게 타인을 조종한다는 게 다른 어느 때보다도 더욱 무섭게 느껴지고 있어요. 현애의 노력이 역효과를 낸 것도 더해서...


장주원 박사의 결단, 아무래도 저건 패착으로 이어지는 것 같은데...

시어하트어택

2021-02-01 23:27:39

사실 저렇게 한 번쯤은 역으로 당하는 경우도 있어야, 이기는 과정도 통쾌한 법이겠지요.


장 박사 역시, 뭔가 믿는 구석이 있으니 저렇게 자신만만한 것입니다만...

SiteOwner

2021-03-06 20:25:18

역시 예측을 벗어나는 일이 속출하는군요.

사실 평화로운 상황을 전제하는 여행이나 각종 이벤트의 개최 등도 돌발상황이 일어나기 마련인데, 목숨이 달려있는 전투상황이라면 정말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겠지요. 알레한드로가 다시 능력을 발휘하는가 하면 장주원 박사의 결정에 라자가 불안함을 떨칠 수 없게 되기도 하고...


역시 강해서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아서 강한 것 같습니다.

시어하트어택

2021-03-14 22:58:24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는 말은 몇 년 전에 어느 게임에서 본 이래로 정말이지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제 작품들에도 그런 걸 좀 많이 녹여넣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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