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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 15분, 테르미니 호수 근처의 골목길.
아무런 기척도 없이, 미켈이 별안간 사라져 버렸다. 현애를 비롯한 일행은 갑자기 일어난 일에 주위를 돌아보며 미켈을 찾는다.
“파울리 씨, 파울리 씨 어디 갔어?”
“저 아저씨, 왜 갑자기 사라진 거죠?”
“그, 그러게.”
미켈의 바로 뒤에서 따라가던 니라차의 아버지 찻차이도 당황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인다.
“조금 전만 해도 바로 앞에 있었잖니? 그런데...”
“아저씨 바로 앞에서 가고 있던 거 아니었어요?”
“그래, 그건 맞기는 한데... 워낙 순식간에 사라져 버려서. 여지껏 패키지 여행을 몇 번 해 왔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찻차이는 바로 전화를 꺼내서 미켈에게 전화를 걸어 본다.
하지만...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가 들리면...]
“아니, 연결이 안 된다니?”
찻차이는 다시 전화를 걸어 본다.
하지만...
[연결이 되지 않아...]
“아니,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야. 가이드가 되어서 이런 데에서 혼자 사라져 버리면 어떡하자는 거지?”
1분도 안 되어, 찻차이의 얼굴에는 조금씩 의심이 묻어나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안 되겠는걸. 어제 연락이 닿았던 곳에 다시 한번 연락해 봐야겠는데...”
그렇게 말하고서는, 다시 전화를 들어 전화를 걸어 보려고 한다.
그런데...
“어?”
찻차이는 뭔가 이상함을 직감한다.
뒤에 분명히 있어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자... 잠깐.”
“왜 그러세요, 아저씨?”
불안하게 떨리는 찻차이의 모습에 세훈이 불안했는지 얼른 물어본다.
“너희들, 너희들 중에 한 사람이 안 보이는데...”
“응?”
세훈도 주위를 한번 돌아본다. 현애가 보이지 않는다. 세훈도 전화를 한번 걸어본다.
하지만...
[연결이 되지 않아...]
“응? 아저씨, 현애도 전화가 안 되는데요.”
“그래? 이거 참 이상한 일인데...”
“두 사람 모두 한순간에 사라졌고, 전화도 안 되고, 연락도 안 된단 말이죠...”
“그래.”
찻차이의 의심을 띠어 가던 얼굴이, 이번에는 불안함으로 조금씩 채워져 간다. 옆에 있는 라차야도 마찬가지고, 다른 일행도 불안함에 눈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세훈은 잠시 머리를 굴리더니 입을 연다.
“둘 다 오겠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정말? 네가 그걸 어떻게 장담할 수 있지?”
“파울리 씨는 아마도 여기 지리를 잘 알 것이고, 현애도 이 정도 가지고 뭔가 위협이 생겼다거나 그럴 애는 아니거든요.”
“그래? 믿어도 되는 거겠지?”
“네... 네!”
세훈도 사실 좀 약간 불안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태연한 척 대답한다.
“아저씨, 이런 거 가지고 너무 불안해하지 마세요.”
“그... 그래. 고맙다. 한 3분만 더 기다려 보자.”
그러고서 세훈이 한 번 더 여기저기 돌아보는데...
“엇?”
골목길 한쪽이 뭔가 일그러진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마치 차원의 문이 열린 것처럼. 하지만 다시 보니 별 것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이상한데... 잘못 봤나?”
눈을 한번 비비고 보니, 별것 아니다. 잘못 봤겠지... 세훈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고개를 돌린다.
“어때, 좀 정신이 드나?”
알 수 없는 어느 공간. 황토색 벽돌 위주의 골목길과 완전히 다른, 잿빛의 금속성 벽으로 이루어진 공간이다. 분명히 현실에 존재하는 공간은 아닐 터다. 거기에다가 막 침을 삼킨 것 같은 상태가 이어진다. 귀가 먹먹해지도록, 어느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한순간이다... 미켈 자신도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한순간에 일어나 버렸다. 이곳은 도대체 어디인가... 이 알 수 없는 곳은?
“미켈 파울리, 벼르고 별렀더니만 제대로 걸려들었군.”
여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여자치고는 조금 굵은 목소리. 미켈이 이끄는 일행 중에는 이런 목소리를 지닌 사람은 없다. 도대체 누구인가?
“도대체 어떤 녀석이냐.”
“알고 싶으면 보여 주지.”
말을 마치자마자,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모습을 드러낸다. 벽 한쪽에서 나오는 여자의 모습은 마치 암살자가 암살 대상을 확인하고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다. 미켈은 그 여자의 얼굴을 착 보고, 바로 알아본다.
“너... 레베카 모리스 맞지?”
“딱 알아보시네.”
레베카라고 불린 여자는 의외라고 생각했는지, 미켈이 바로 알아보자 조금은 놀란 듯한 얼굴을 한다.
“내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는, 너도 잘 알겠지?”
“당연히 알고 있지.”
미켈의 입에서는 바로 대답이 나온다.
“스코프 녀석들의 사주를 받고 왔지? 예를 들자면 ‘파울리 녀석을 좀 손봐 주고 오라’는 것 같은 지령을 누구한테서 받았겠지. 안 그래?”
레베카가 미켈이 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거리더니, 입을 씰룩거리며 말한다.
“반은 맞았어.”
“반이라니? 맞으면 맞고, 아니면 아닌 거지.”
그러나, 바로 그때...
확 쏠리는 것 같다. 미켈의 몸이 한쪽으로, 마치 신이 그를 어딘가로 잡아끄는 듯이.
쿵-
어딘가에 부딪친다. 다행히 별로 충격은 큰 것 같지 않다. 밑을 내려다보니, 분명 아까의 그 금속성의 바닥이 맞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아까는 분명 긴 미로 안에 있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보니 까마득한 천장이 그의 머리 위로 펼쳐져 있는 게 아닌가. 순간 직감한다. 그의 예감이 맞다면...
“좀 알겠나?”
레베카가, 가로로 서 있는 게 아닌가. 그의 머리 위에!
“무슨 수작을...”
순간, 미켈은 뭔가 좀 알 것 같다. 분명 레베카는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을 텐데, 레베카의 시선은 밑을 내려다보는 것 같지 않다. 머리카락도 아래로 흘러내린다거나 하지 않다. 그렇다는 건...
“이 자식, 중력을 도대체 어떻게 한...”
“아주 간단해. 중력의 방향만 좀 바꿨지. 이렇게나 간단한 능력인데, 쩔쩔매고 있는 네 녀석의 꼴이란!”
미켈이 보기에 벽에 붙어서 선 레베카는, 올려다보는 미켈을 똑바로 보며 여유롭게 말한다.
“자, 그럼 이제 뭔가 말을 해 줘야겠지?”
“나 원 참, 별소리를 다 하고 있네.”
미켈은 가당치도 않다는 듯, 레베카의 말을 바로 받아친다.
“내가 말해 줄 게 뭐 있어? 네가 나한테서 들을 만한 건 없을 텐데?”
“천만에, 분명히 있지.”
레베카는 이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옴짝달싹 못 하는 미켈을 몰아붙인다.
“하지만 나는 말하지 않을 거야. 그것인즉, 네 입으로 말하라고. 네 입으로 말할 때까지 이곳은 계속 너를 가두고 있을 테니.”
“내 입으로 말하라고?”
“그래.”
미켈은 잠시 말이 없이, 그 자리에 가만히 앉은 채로, 움직이지도 않고 멍한 눈으로 위의 레베카를 올려다보기만 한다. 마치 레베카에게 뭔가를 바라기라도 하는 듯.
“왜 말이 없는 거지? 내가 네 녀석의 입을 직접 열어 주기라도 해야 하는 건가?”
“그건 아니지.”
“아니라면, 지금 직접 말해 준다는 건가?”
“미안하지만, 그것도 아니고.”
“둘 다 아니라면, 도대체 뭐란 말이냐!”
레베카는 조금 열이 받은 듯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장난치지 말고, 둘 중 하나만 골라라! 너한테는 선택권이 없단 말이다!”
그 순간.
레베카는 뭔가 이상한 낌새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천만에, 없기는.”
“이건 대체...”
레베카의 두 다리가 흔들거리고 있다. 급히 아래쪽을 내려다본다. 레베카가 두 발을 딛고 선 바닥이 흐물거리고 있다. 그 흐물거림이 어디서 왔는지는, 금방 알 수 있다.
바로, 레베카의 정면에 쓰러져 있는, 미켈의 손에서부터!
서 있는 바닥이, 흐물거리면서 점점 흘러내리고 있다. 아니, 레베카가 보기에는, 그 흘러내려서 흐물흐물해진 바닥이 점점 미켈이 있는 곳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것도 두 발을 더욱 옥죄어 가며!
“그러니까 한시도 방심하면 안 되지.”
“이 자식, 이런 수를...”
“자, 이러면 내가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이제 순순히 좀 보내 주시지?”
“뭘 말이냐.”
“이걸로 내 메시지는 충분히 전달된 것 같은데. 좀 더 해 줘야 하나?”
미켈의 말에도 레베카가 발을 이리저리 움직일 뿐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자, 미켈은 조금 열이 올랐는지 얼굴이 붉어진다.
“아니면 좀 더 메시지를 줘야지 네 녀석이 행동에 옮길 거냐?”
“뭐, 어느 쪽이든 상상은 네 마음대로 해도 좋아.”
레베카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지. 나도, 둘 다 아니라는 것 말이지!”
“뭐, 그게 무슨 소리...”
미켈의 온몸이 휙 오른쪽으로 쏠린다.
한순간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미켈이 쓰러져 있던 ‘바닥’이, 어느새 ‘벽’이 되었다. 그리고 미켈 자신은 점점 ‘아래쪽’으로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다. 위험하다... 잡을 뭔가... 잡을 뭔가라도 있어야 한다... 잡아야!
“하...”
미켈의 손에 뭔가가 걸린다. 겨우겨우 ‘벽’의 움푹 들어간 곳에 손가락을 낄 수 있었다.
“자, 이제 입을 좀 열어 주겠어?”
또다시 레베카의 목소리가 들린ㄷ.
“더 험한 꼴을 당하고 싶지 않으면, 여는 게 좋을 텐데.”
“무슨 개 뼈다귀 씹어먹는 소리냐.”
한 손으로 겨우 붙드느라 얼굴이 온통 붉어졌는데도 미켈의 목소리는 변함이 없다.
“내가 뭘 말해야 하냐고. 나는 도무지 모르겠는데.”
“몰라? 정녕 모르겠다고?”
또다시 레베카의 목소리가 확 올라간다.
“그럼 좋아. 강제로라도 입을 열어 줄 수밖에...”
레베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뭔가가 확 미켈을 감싸는 것 같다. 거인의 손 같은 기운이 마치 미켈을 한 손아귀에 꽉 잡는 것 같다. 매우 적대적인 기운이...
“자, 이대로 중력을...”
하지만.
레베카가 뭔가 미처 말하기도 전...
“커윽...”
레베카가 휘청거린다. 뭔가에 맞았는지, 고통스럽게 신음한다.
“뭐야... 분명, 이 공간은 내가 만들어낸 공간이고, 아무도 못 들어올 텐데...”
몸을 비틀거리면서도, 레베카는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도대체 어디서 구멍이 생긴 건가, 누가 쳐들어온 건가...
“도대체 어느 녀석이...”
그리고 레베카가 다시 옆을 돌아보니, 옆에는...
“하, 참 이상한 곳이네.”
이 은근히 시원하게 들리는 여자 목소리.
미켈은 바로 알아본다.
“야! 너 여기 왜 들어왔어! 네가 들어올 곳이 아니야!”
“알아.”
현애는 덤덤하게 말한다.
“길가에 소용돌이 같은 게 있는데 들어와 보니 여기더라.”
“야, 여기는 레베카라는 녀석의 함정이야. 무슨 말인지 알아?”
“어라, 그건 몰랐는데.”
그때다.
“으읏?”
순간적으로 현애의 등뒤에서 날아오는 충격.
앞으로 고꾸라진다.
“이... 이 얼간이 같으니...”
현애가 넘어진 뒤에서, 레베카가 분이 안 풀린 듯 넘어진 현애를 노려보며 말한다.
“똑똑히 알게 해 주겠다. 너같은 얼빠진 녀석들이 이런 데 들어오면, 어떤 꼴로 내게 설설 기게 되는지를!”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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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1-05-08 22:01:37
가이드 미켈 파울리가 갑자기 사라져 버리면 대체 어쩌자는 건지...
그런데 미켈뿐만이 아니네요. 현애도 같이 귀신같이 종적을 감췄네요.
레베카 모리스라는 여자는 미켈과는 구면이고, 함정 같은 것을 설치해서 걸려든 사람을 다른 차원으로 강제로 이동시키는 것같은 능력을 갖고 있나 보네요. 확실히 상대하기 껄끄러워 보이네요.
게다가 이 레베카도 현애에 대해 적의가 장난아니네요. 대체 밑도 끝도 없이 왜...시어하트어택
2021-05-16 21:23:13
오해하지만 않았어도 저렇게 적대감을 보이지는 않았겠죠. 하여간 저 오해란 게 문제...
SiteOwner
2021-05-09 17:29:08
갑자기 누군가가 사라지고, 그 사라진 사람들이 생면부지의 공간으로 이끌렸다는 건 역시 상정하기 싫은 상황이군요.
분명 그 능력을 가진 레베카 모리스는 위험한 인물임에는 틀림없지만, 아무래도 그녀의 능력 자체에도 문제는 좀 있나 봅니다. 의도한 건 미켈 파울리 1명이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현애가 같이 딸려왔으니...
레베카에게 플랜B는 없을 것 같습니다. 현애에 대한 분노도 아마 그래서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시어하트어택
2021-05-16 21:24:02
아무래도 초능력에도 생각하지 못한 빈틈이 있는 법이니까요. 저 자신이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생각지 못한 약점이 있는 경우도 허다했고요, 적뿐만 아니라 주인공도 그렇습니다.